페드로 마르티네스/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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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주요 기록
1.2. 매체의 평가
2. 동 기간대 선발투수들과의 비교
3. 동 기간대 불펜투수들과의 비교
5. 2연속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와의 비교
6. 4연속 사이 영 상 수상자들과의 비교
7. 4년간 3회 사이 영 상 수상자들과의 비교
8. 2010년대 투수들과의 비교
9. 기타 2연속 사이 영 상 수상자들과의 비교
10. 21세기 최고의 이닝이터와의 비교




1. 개요[편집]


파일:투수 최고 시즌.jpg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전성기는 일반적으로 야구 역사상 최고로 평가되며, 실제로 클래식 스탯이든 세이버 스탯이든 2010년대의 슈퍼에이스라 불리는 커쇼, 벌랜더, 슈어져, 디그롬, 그레인키와는 완전히 급이 다르고, 메이저리그 역사상 그 누구와도 클래스가 남다른 어나더레벨이다.[1] 페드로의 전성기는 세이버 매트릭스와 클래식 양 진영 모두를 완벽히 만족시키는 아름다운 성적을 기록했기에 현재까지 페드로의 전성기를 확실히 능가하는 단기 임팩트를 선사한 투수는 없으며, (물론 크게 밀리기는 하지만) 단순히 비견할 수 있는 선수조차 야구의 140년 역사상 다섯 정도밖에 없는 걸로 생각된다.[2]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순 임팩트로 유명한 투수들은 샌디 코팩스밥 깁슨, 드와이트 구든, 디지 딘 등 꽤 있지만 각종 전통적인 지표들과 세이버 매트릭스, 심지어 이미지상으로도 페드로의 임팩트는 이들을 능가한다. 특히나 덩치가 다른 투수에 비해서 많이 왜소함에도 불구하고 플레이 스타일도 전형적인 구위로 윽박지르는 우완 탈삼진형 파이어볼러에다가 빈볼(데드볼-헤드샷)도 많고,[3] 기분이 나쁘면 극도로 차가워지는 성격[4]이어서 전설적인 성적 이외에 본인 자체도 이미 포스를 뿜어내는 편이다.

페드로의 전성기는 보통 1998년~2004년 보스턴 시기의 7년으로 인식되는데, 기록상으로 2004년에는 성적이 급락하고 사이 영 상을 탄 1997년에 비해 모든 스탯이 월등히 떨어지므로 페드로의 실질적인 전성기는 몬트리올에서의 마지막 해인 1997년부터 보스턴에서의 2003년까지로 볼 수 있다. 참고로 이 시기는 야구 역사상 최악의 타고투저였으며, 스테로이드 시대의 절정기와 정확히 일치한다.[5] 또 이 7년 중 6년이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의 타자 친화 구장에, 메이저리그의 6대 지구 중 지난 40여년간 소속팀들이 월드시리즈에 25번 진출하고 15번의 우승을 차지하여 가장 타격이 막강하다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6] 거둔 성적이기에 더욱더 빛나는 것이다. 더구나 결코 타격을 잘한다고 볼 수 없는 투수들이 타석에 들어서 번번이 득점의 흐름을 끊는 내셔널리그와 달리(현재는 지명타자 도입), 아메리칸리그는 때론 클린업 트리오[7]에 버금가는 수준의 타자를 주로 쉬어가는 하위 타선에서 한명 더 상대해야 될 수도 있는 지명타자[8] 제도가 일찍부터 존재해왔음을 감안해야 한다.[9] 게다가 전성기가 지난 이후의 페드로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잔부상ㆍ이닝부족도 2001년[10]을 빼면 전혀 해당하지 않았다.[11]

이 7년간의 성적은 1,408이닝 118승 36패(76.6%), 344자책 1761K/315BB, fWAR 55.6, bWAR 57.3인데, 이걸 1년당 평균으로 보면 201이닝 17승 5패 ERA 2.20, ERA+ 213, FIP 2.26, WHIP 0.94, 251K/45BB, 11.25K/9, 5.59K/BB, 0.59HR/9, 피안타율 .196, fWAR 7.9, bWAR 8.2이다. 특히나 페드로의 전성기 bWAR은 고작 7년 동안 무려 57.3이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는, 페드로의 시대와 일부 겹치면서 리그를 지배했던 에이스급 투수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로이 할러데이의 토론토 12년 bWAR이 48.4이고, 요한 산타나12년이 51.1, 저스틴 벌랜더의 디트로이트 13년이 56.6, 클리프 리13년이 42.5다. 그야말로 당대 최강의 먼치킨 투수였음을 알 수 있다.[12] 그리고 리그는 다르지만 똑같이 7년 뛴 류현진의 KBO 시절 누적 WAR이 45 정도이다. 페드로의 위엄을 엿볼 수 있는 부분.

상기한 화려한 성적들을 스테로이드 시대(소위 대약물시대)에 보여준 덕분에 단일 시즌, 임팩트, 전성기 몇년 등을 논할 때 사실상 1위로 고정되며, 인간이 아닌 듯한 성적들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외계인이란 별명을 얻었다.[13]


1.1. 주요 기록[편집]


베이스볼 아메리카 유망주 순위 10위였다. 비슷한 수준의 (역대) 탑급 유망주들의 성적은 메이저 리그 유망주 순위를 참조.

야구 역사상 최고의 단기 임팩트를 선사한[14][15] 투수이다. 또한, 흔히 1990년대 이후 현대 야구 최고투수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16] 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홈런과 득점이 발생했던 2000년을 전후한 스테로이드 시대를 평정한 청정 투수이며,[17] 1997년과 1999~2000년의 너무나 충격적인 피칭 때문에 2000년대 초반의 위대한 시즌들도 스스로의 임팩트에 가려졌을 정도이다. 전성기 시절 비율 스탯은 당대 최고의 불펜/마무리 투수들을 능가하며[18] 팬그래프스의 조정 스탯들을 참고한다면 임팩트 면에서 압도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야구 역사 전체에서 그의 통산 커리어는 상당히 우수한 축에 속하지만 압도적이진 않은데[19], 전성기는 이견이 없는 GOAT로 추앙받는다.

커리어가 끝난 시점에서 1,000이닝 이상 소화한 투수들 중 통산 K/9(SO9)가 10개를 넘어가는 3명의 투수들[20] 중 하나였으나,[21] 현재는 투수들의 구속이 점점 좋아지는 대신 수명이 짧아지는, 투고타저의 흐름이 지속됨에 따라 K/9이 10을 넘어가는 투수들이 무려 4명이나 더 추가되어 맥스 슈어저, 제이콥 디그롬, 게릿 콜, 크리스 세일 등까지 포함한 MLB 역대 일곱 투수들 중 중 1명이다. 이렇게 시대적으로 양대 리그 슈퍼에이스들의 삼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0K에 이르는 페이스가 MLB에서 역대 두번째로 빨랐다. 페드로는 1,711⅓이닝만에 2,000K에 이르러 역대 2위로 1,626이닝의 크리스 세일[22] 다음인데, 현재 세일은 누적 성적 페이스에서 대표적인 닥터K들에 비해 한참 모자라고 장기화된 유리몸의 부상으로 200승은 커녕, 3,000K를 달성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어쨌든 MLB 전체적으로 삼진율이 높지 않던 시대에 기록한 페드로의 2,000K 페이스는, 삼진이 대폭 늘어난 2020년대 최고의 삼진 마스터인 게릿 콜도 넘지 못하였고(1,714⅔이닝), MLB 역대로 최고의 삼진 마스터라 불리는 랜디 존슨도 페드로의 뒤에 머물러 있으며(1,733⅓이닝), 대표적인 투고타저의 시대인 2010년대에 MLB 총 탈삼진 1위를 기록한 맥스 슈어저조차 페드로에 미치지 못한다(1,784이닝). 게다가 3,000K를 돌파한 역대 19명의 투수 중 2번째로 적은 760볼넷을 기록하였고, 라이브볼 시대 투수들 중 통산 K/BB이 2위로 커맨드와 컨트롤 역시 가장 뛰어난 투수들 중 한명이었다.[23] 실제로 미국의 대표적인 스포츠 매체나 MLB가 공식적으로 정하거나 투표하는 야구 역사상 투수로서 최고의 시즌을 고르면 1위는 페드로가 고정인데 1999년 페드로와 2000년 페드로가 1~2위를 번갈아가며 차지한다.[24] 3,000K를 기록한 19명의 선수 중 통산이닝이 가장 적은 선수이며 1999년 13.20으로 야구 역사상 최초로 단일 시즌 K/9 13을 넘긴 선수이다. 또 랜디 존슨과 더불어 1990년대 전체 누적으로 K/9 10을 넘긴 유이한 투수다.[25]

WHIP의 경우 역대 단일시즌 최저 WHIP 기록 보유자이며 여기에 클레이튼 커쇼, 맥스 슈어저와 함께 라이브볼 시대 0점대 WHIP 5회를 기록한 3인 중 1명이다. 팬그래프스에서 제공하는 조정 WHIP인 WHIP+ 역시 2000년 페드로가 49라는 수치로 1위에 위치하고 있다.[26] 통산 기록을 볼 때의 규정이닝인 1,000이닝 이상의 모든 투수들 중 WHIP+가 2위(75)고, 선발투수만 보면 단연 1위다. 이 부문 1위는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71).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남긴 탈삼진과 WHIP, ERA+ 등의 기록은 1920년 이전의 기록들마저 제치며 각 부문 최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OPS는 2000년에 .473으로 단일시즌 4할대 피OPS를 기록한 5명의 투수 중 한명이다.[27]

2000년 1.742로[28] AL 사이영상 수상자들 중 가장 낮은 ERA로 수상한 선발 투수이며[29] 몬트리올 엑스포스 소속으로 사이영상을 수상한 유일한 투수이다.[30] 또 엑스포스~워싱턴 내셔널스의 역사를 통틀어 유일한 규정이닝 1점대 ERA 기록자이기도 하다(1997년-1.90).

거기에 로저 클레멘스와 더불어 1920년 이후 AL과 NL에서 각각 1점대 ERA를 기록한 두명 중 한명이면서 랜디 존슨과 함께 AL과 NL에서 각각 300 탈삼진을 기록한 두명 중 한명인 투수이다. 즉, 페드로는 양대리그에서 시즌 1점대 ERA와 300 탈삼진을 모두 달성한 유일한 투수이다.

베이스볼 레퍼런스가 제공하는 ERA+에 관한 대기록들을 몇가지 가지고 있다. 유명한 2000년 페드로의 291은 1880년 팀 키프의 기록을 제외하면 최고 기록이고 1920년대 이후 이에 근접한 기록이 1968년 밥 깁슨의 258, 그렉 매덕스의 1994년 271, 1995년 260뿐이다. 또한 페드로는 왠만한 선수도 넘기 힘들다는 조정방어율(ERA+) 200을 넘은 시즌이 무려 5회로 MLB 역사상 최다이다. 역대 모든 투수들을 합하여 ERA+ 200을 넘긴 시즌은 1880년부터 2019년까지 42번, ERA+ 210을 넘긴 시즌은 33번 있었다. 기록들이 이럴진대, 페드로는 1997~2003년에 통산 213ERA+를 기록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사이영상 5회 수상자인 랜디 존슨[31]과 2010년대 최고의 투수들인 클레이튼 커쇼[32], 맥스 슈어져[33], 저스틴 벌랜더[34]조차도 200을 넘긴 적이 없었다(반면 제이콥 디그롬은 일찌감치 2018년에 217이닝, 1.70ERA로 ERA+ 218을 기록한 적이 있다). 그러던 것이 벌랜더는 2019년 사인 훔치기 스캔들로 유명했던 구단 휴스턴에서 맞은 2차 전성기에서조차 200을 넘지 못하다가, 마침내 2022년에 가서야 휴스턴에서의 마무리 시즌을 통해 갑자기 회춘하며 185이닝이라는 적은 이닝에 가까스로 220을 기록하였다. 이렇듯 조정방어율 200이라는 수치가 양대 리그의 슈퍼에이스들도 평생 한번 기록할까 말까하는 상징적인 기록인 것이, 2010년대를 통틀어 모든 투수들을 살펴봐도 200을 넘은 기록이 겨우 5번인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페드로의 엽기적인 기록은 약물만 아니었으면 월터 존슨과 더불어 역대 선발 투수 원탑을 다투었을 로저 클레멘스의 최고 기록과도 무려 65, 역대 투수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마스터 그렉 매덕스와도 20 가까이 차이가 난다. 또한 페드로는 비록 ERA+에서는 역대 1위를 놓쳤으나, 팬그래프스의 ERA-에서는 2000년 기록이 35로 1880년 팀 키프와 동일하여 역대 1위에 다시 등극하였다.

1992년[35] 이후 선수별 ERA+ 최고 기록[36]
선수
기록
페드로 마르티네스
2000년: 291
그렉 매덕스
1994년: 271
1995년: 260
페드로 마르티네스
1999년: 243
로저 클레멘스
2005년: 226
1997년: 222
잭 그레인키
2015년: 222
저스틴 벌랜더
2022년: 220
페드로 마르티네스
1997년: 219
제이콥 디그롬
2018년: 218
블레이크 스넬
2018년: 217
제이크 아리에타
2015년: 215
로저 클레멘스
1990년: 211
페드로 마르티네스
2003년: 211
잭 그레인키
2009년: 205
페드로 마르티네스
2002년: 202
코리 클루버
2017년: 202
클레이튼 커쇼
2014년: 197
카일 헨드릭스
2016년: 196
트레버 바우어
2018년: 196
랜디 존슨
2002년: 195
클레이튼 커쇼
2013년: 194
랜디 존슨
1995년: 193

FIP의 경우 1999년의 1.39라는 수치로 역대 3위/1911년 이후 압도적 1위이다.[37] 애초에 라이브볼 시대에 1.50미만의 FIP가 기록된 것도 1999년뿐이다. 단순 지표로는 역대 3위지만, 팬그래프스에서 제공하는 조정 FIP라 볼 수 있는 FIP-는 31로 압도적인 1위다.[38] 그냥 기록으로 1위인 1908년 크리스티 매튜슨(1.28/48)과 1910년 월터 존슨(1.37/54)은 각각 5위ㆍ21위다. 2000년 페드로가 역대 4위(48), 2003년 페드로가 11위(51), 2002년 페드로가 17위(54), 1997년 페드로가 30위(57)에 위치한다. 통산 기록 역시 68로 마무리 투수를 포함한 역대 2위이며 선발투수 중에서는 1위다. 이 부문 역시 1위는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62).

상술한 비율 스탯이 한창일 때는 더 좋았기에, 전성기를 타면서부터 대부분의 지표에서 현역 1위였다. 그 지표들은 다음과 같다. 승률은 1999년~2009년까지 2006년만 제외하고 1위였다. ERA(+)는 2001~2007년, WHIP는 1998~2007년, H/9은 2000~2007년까지 현역 1위였다. K/9은 2000~2009년 중 2006~2007년을 제외하고 1위, FIP는 1999~2007년까지 1위였다. 2007년까지 1위였던 지표들이 2008년부터 1위가 아닌 것은 대부분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의 규정이닝 포함에 의한 것으로 선발 투수와 MLB.com의 규정이닝(2,000)을 넘긴 선수들 중에서는 은퇴할 때까지 거의 1위였다고 보면 된다. 자신이 활동한 기간(1992~2009)에 가장 낮은 ERA/피안타율/WHIP 등을 기록했다.[39]

fWAR 80을 넘어가는 투수는 총 19명이고 이 중 페드로는 통산 이닝이 2,827.1이닝이며 독보적으로 적은데, 실로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마르티네스 다음으로 적은 선수가 3,562.2이닝 81.2의 마이크 무시나이고 그 다음이 3,884.1이닝 82.6의 밥 깁슨이다. 투수 bWAR은 86.1로 역대 17위에 해당된다. 투수 bWAR 20위권 안에서 자기만 3천 이닝이 안되는데 페드로 다음으로 적은 인물이 3,940.2이닝의 레프티 그로브(113.3)이다.[40] 페드로보다 무려 2배 가까이 2,500이닝 이상을 더 던졌던, 5,386이닝을 투구한 놀란 라이언이 81.3이고 5,217이닝의 스티브 칼튼이 84.1인 걸 보면 이닝 대비 WAR이 역대급으로 가장 높은 선수로 봐도 무리가 없다.
  • 1999년 11.6으로 역대 단일 시즌 투수 fWAR 1위를 기록했다.
  • 랜디 존슨과 더불어 연속되는 2년의 fWAR/bWAR이 20을 넘는 둘뿐인 투수다(1999~2000= 21fWAR/21.5bWAR).[41] 즉 2년 fWAR 21을 넘는 유일한 투수다.
  • 1999년(9.8)-2000년(11.7)로 2년 연속 MLB bWAR 1위를 기록했는데 AL 투수가 이 기록을 달성한 건 현재까지 마지막이다. 이전에는 1936년(10.6)-1937년(9.2) 레프티 그로브가 기록.

통산 18시즌 476경기/409선발 2,827.1이닝 219승 100패 46완투/17완봉 2.93ERA/154ERA+/-66ERA-[42] 3,154K/760BB[비율] 2.91FIP 1.054WHIP 피타출장(.214/.276/.337) 86.1bWAR/84.4fWAR.[43]

타격 성적은 18시즌 518타석 434타수 43안타 22득점 0홈런 18타점 15볼넷 190삼진 타율 .099 OPS .256를 기록했는데 fWAR가 -1.9, bWAR이 -2.2, 통산 OPS+ -32, 통산 wRC -39로 투수 WAR를 갉아먹는 수준이었는데, 평균이하의 타격조차도 보여준 적이 없을 정도로 타격 능력이 형편없었다. 타자로서 가장 많이 상대한 투수는 존 스몰츠인데, 15타석 상대해서 OPS 0을 기록할 정도로 극히 약했다. 그런데 의외로 1996년 NL에서 희생번트 1위(16개)를 기록했다.


1.2. 매체의 평가[편집]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2019년 3월 30일 사이영상 수상자들의 수상 시즌 성적을 1위부터 118위까지 매겼다. 여기서 날고 기는 모든 투수들을 제치고 1999년 페드로가 1위, 2000년 페드로가 2위, 1997년 페드로가 12위를 차지했다.출처 2021시즌이 끝난 11월 18일에도 여전히 페드로의 시즌들을 1위-2위-12위로 평가했다.출처

2016년 ESPN은 All-Time #MLBRank에서 페드로를 11위에 선정했다. 이는 투수들 중 월터 존슨(9위) 다음으로 높은 순위이고 1980년 이후 선수들 중에서는 배리 본즈(5위) 다음으로 높은 순위다.# 같은 프로젝트인 최고의 우완투수 탑10에서도 월터 존슨 다음인 2위로 선정했다.# 사실 후자는 전자의 순위에서 우완투수들을 추려내어 줄 세운 것이라 큰 의미는 없다.

2020년 10월 31일 미국의 스포츠 매체 블리처리포트는 라이브볼 시대 선발 투수 랭킹 1위에 페드로를 선정했다. 라이브볼 시대에서는 페드로 이상의 전성기를 누린 투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파일:페드로 Elo1.png


파일:페드로 Elo2.jpg

2000년 6월, 페드로는 투수 Elo 레이팅 역사상 최고점을 찍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페드로는 자신의 전성기 7시즌을 모두 역대 Elo 레이팅 상위 30위 안에 집어넣고 1~3위를 차지했다.
빌 제임스게임 스코어를 기반으로 만든 Elo 레이팅이 잘 인용되는 자료는 아닌데 여기서도 페드로의 수치가 압도적이다.

호사가들은 2004년 배리 본즈의 충격적인 6할 출루율 시즌에 대항할 시즌으로 거의 100% 2000년 페드로를 고른다. 시즌 최고 출루율과 최저 피출루율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다만 전성기가 끝난 2004년의 페드로는 본즈를 3타석 상대해서 단 한 번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았다.[44]

2. 동 기간대 선발투수들과의 비교[편집]


위 성적들을 지표별로 살펴보면 2.20의 ERA는 랜디 존슨의 2.70을 따돌리는 선발로서 압도적 1위이고[45] 213을 기록한 ERA+ 역시 랜디의 170을 크게 따돌리는 기록이다. 2.26의 FIP도 랜디의 2.70을 넘어 1위에 위치한다. .196의 피안타율은 선발로서 유일한 1할대 피안타율이고 .253의 피출루율, 선발로서 유일한 2할대인 .297의 피장타율 역시 1위이다. K/9은 랜디의 뒤를 이은 2위, K/BB는 5.58의 커트 실링을 넘어간다. bWAR과 fWAR은 투수로서 1위, 타자를 합쳐도 배리 본즈에 이은 2위 기록이다. 이 기간에 나온 역대 1위 기록만 해도 2000년에 뽑아낸 WHIP 0.74, 피출루율 .213, 피안타율 .167 3가지이다. 거기에 1999년 1.39의 FIP는 역대 3위에 1911년 이후 압도적 1위이다. 또 이를 바탕으로 1999년 11.6으로 단일시즌 투수 fWAR 1위를 기록했다.

페드로의 전성기인 1997~2003년의 투수 기록과 페드로의 지표/순위는 다음과 같다.
1997~2003[700이닝]
페드로
1위
2위
페드로의 순위
이닝
1,408
1,603
1,601.1
12위
ERA
2.20
2.70
1위
ERA-
47
59
K/BB
5.59
5.58
승리
118승
126승
124승
3위
탈삼진
1,761K
2,162K
1,742K
2위
탈삼진율
31.8%
33.5%
31.8%
2위
볼넷율
5.7%
3.8%
4.3%
11위
HR/9
0.59
0.57
0.59
2위
피안타율
.196
.205
1위
WHIP
0.94
1.08
FIP
2.26
2.70
fWAR
55.6
54.5


3. 동 기간대 불펜투수들과의 비교[편집]


이제 동 기간대의 fWAR 상위 4자리를 차지한 불펜투수들과 비율성적을 비교해보자. 이 중 페드로가 뒤처지는 지표를 굵게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선수
이닝
ERA
ERA+
FIP
WHIP
K/9
K/BB
피안타율
피OPS
마리아노 리베라
475
2.16
211
2.86
1.02
7.60
3.55
.209
.555
롭 넨
452.1
2.67
153
2.67
1.15
10.62
3.49
.215
.599
빌리 와그너
452.1
2.55
172
2.67
1.03
12.48
3.89
.186
.584
트레버 호프만
422.2
2.53
159
2.67
1.01
10.60
4.41
.202
.584
스텟상으로 봤을 때 놀랍게도 페드로는 거의 대부분의 지표에서 동기간대 최고의 불펜투수들보다도 우수하며 이들이 적은 이닝만을 소화하며 보여준 퍼포먼스보다 더 나은 수준의 퍼포먼스를 7년 동안 시즌 내도록 보여줬다는 결론이 나온다. 많이 나와봐야 한 시즌에 70이닝 나오는 불펜투수들보다 3배~4배의 이닝을 소화하고도 비율 스텟에서 앞선다는 것은 역대급으로 잘하네 어쩌네로 표현될 수준이 아닌 야구의 상식을 파괴하는 수준의 성적이다.


4. 밥 깁슨 & 드와이트 구든과의 비교[편집]


밥 깁슨 최고의 전성기인 1968년, 드와이트 구든 최고의 전성기인 1985년과 페드로의 2000년을 비교해보자.[46] 깁슨과 구든의 단일 시즌은 페드로와 함께 모두 MLB에서 크게 회자되는 최고의 단일 시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증 페드로가 1위인 지표를 굵게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선수
이닝
ERA
ERA+
FIP
WHIP
K/9
K/BB
피안타율
피OPS
bWAR
fWAR
2000년 페드로
217
1.74
291
2.17
.737
11.8
284/32= 8.8
.167
.473
11.7
9.4
1968년 밥 깁슨
304.2
1.12
268
1.77
.853
7.9
268/62= 4.3
.170
.456
11.2
8.6
1985년 구든
276.2
1.53
229
2.13
.965
8.7
268/69= 3.8
.201
.524
12.2
8.9

일단 300이닝이나 소화한 깁슨의 이닝 이팅은 현대 선수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초월적인 수준이다.[47] 1.12의 ERA 역시 시대를 감안해도 충분히 비상식적인 수치다. 구든의 276.2이닝과 1.53의 ERA 역시 초월적이고 상식을 파괴하는 수치다. 구든의 bWAR 역시 2000년 패드로에게 앞선다. 하지만 깁슨과 구든은 야구 역사상 가장 투고타저였던 시절에 기록한 거고 페드로는 야구 역사상 가장 타고투저였던 시절에 기록한 거라 비율 스탯은 조정을 거치면 페드로가 여러 면에서 한 수 위고 그 결과 WAR에서도 조금씩 우위를 갖는다. 기본적으로 페드로가 약간 앞서지만, 300이닝 1.12라는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깁슨과 276이닝 1.53이라는 정신나간 퍼포먼스를 보여준 구든도 크게 뒤지지는 않는 수준이며, 어느 정도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셋이 라이브볼 시대 최고의 투수 시즌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5. 2연속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와의 비교[편집]


트리플 크라운이란 것이 다승ㆍERAㆍ탈삼진에서 모두 1위를 해야하니 만큼 1번 달성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이를 여러번 달성한 자들이 있고, 2년 연속 달성자는 1915~1916년의 피트 알렉산더, 1930~1931년의 레프티 그로브, 1965~1966년의 샌디 코팩스, 1997~1998년의 로저 클레멘스가 있다. 일단 코팩스는 4년 중 3번 사이 영 상을 탄 케이스이기도 하니 후술하고, 피트 알렉산더는 데드볼 시대의 선수이고 레프티 그로브는 라이브볼 시대 초창기의 선수였다보니 보통 클레멘스와 많이 비교되긴 했지만 이 넷 가운데에서도 데드볼 시대의 선수라 비교가 어려운 피트 알렉산더[48]를 제외하면 전부 페드로의 전성기가 확실히 우위를 점한다.


5.1. 레프티 그로브[편집]




5.2. 로저 클레멘스[편집]


클레멘스는 페드로의 2연속 사이영상 수상 직전에 사이영상을 2연속 수상했다. 로저는 원래 최강자급 투수였지만 보스턴에서 버려지는 바람에 절치부심하고 거기에 약물의 힘까지 더한 토론토에서의 2년은 더욱 특별하다. 로저의 bWAR 최고기록과 fWAR 최고기록 모두 토론토에서 보낸 1997년이다. 거기에 샌디 코팩스 이후 첫 2연속 트리플 크라운까지 있으니 토론토에서의 2년은 로저의 커리어 하이 시기이며 데뷔 후 맞은 2차 전성기로 볼 수 있다. 로저의 토론토 2년과 페드로의 2년을 비교해 본다. 서로에게 우위인 지표를 표시한다.

1999~2000년
페드로
지표
1997~1998년
로저
430.1
이닝
498.2
58선발
41승10패
(80%)

승패(승률)
67선발
41승13패
(75%)
1.90
(265)

ERA
(ERA+)
2.33
(196)
1.79
FIP
2.44
.830
WHIP
1.061
597/69
K/BB
563/156
12.5(36.1K%)
1.4(4.2BB%)

K/9(K%)
BB/9(BB%)
10.2(28.1K%)
2.9(7.8BB%)
6.0
0.5
H/9
HR/9
6.7
0.4
.186
피안타율
.206
.231
피출루율
.275
.274
피장타율
.293
.505
피OPS
.568
15
WPA
11.5
21.5
bWAR
20.1
21
fWAR
18.9
로저의 성적을 보면 환상적이란 말이 어울린다. 그러나 이 환상적인 성적에서 페드로에게 앞서는 지표는 68.1 이닝과 0.1의 HR/9밖에 없다. 더 많은 선발 기회와 이닝을 소화하고도 승수는 같은데 패배는 많다. 68.1 이닝을 더 뛰었지만 34K가 부족하고 BB는 2배가 넘는다. 2년 bWAR 20을 넘기는 초월적 수치를 찍었지만 페드로는 그거보다 1.4 더 높고 fWAR은 앞자리 숫자부터가 다르다. 표를 보면 로저의 커리어 하이 2년은 페드로의 2년보다 이닝과 HR/9을 제외한 모든 지표에서 밀린다. 결론적으로 약물의 힘까지 끌어다 쓰면서 만든 로저의 2년보다 약물 없이 정정당당하게 약쟁이들과 정면승부한 페드로의 2년이 더욱 압도적이다.

로저는 2연속 트리플 크라운을 하기 이전에도 보스턴 시절에 2연속 사이 영 상을 수상한 전적이 있다. 페드로의 최전성기 2년은 모든 지표에서 로저의 2차 전성기 2년을 압도적으로 바르기에 2연속 트리플 크라운 시기는 아니지만 약물 없이 2연속 사이영상을 타먹은 것으로 추정되는 신인 시절의 1986~1987년 2년과 페드로의 1차 전성기에서 리그 적응기(내셔널리그->아메리칸리그)를 거친 2년(1997~1998)과 비교해본다. 역시 서로에게 우위인 지표를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사실 로저의 1990~1992년이 1986~1987년보다 더 낫지만 1991년만 사이 영 상을 수상했으므로 논외로 한다).

1997~1998년
페드로
지표
1986~1987년
로저
475
이닝
535.2
64선발
36승15패
(71%)
승패(승률)
69선발
44승13패
(77%)

2.39
(186)

ERA
(ERA+)
2.74
(160)
2.89
FIP
2.86
1.011
WHIP
1.077
556/134
K/BB
494/150
10.5(29.3K%)
2.5(7.1BB%)
K/9(K%)
BB/9(BB%)
8.3(22.9K%)
2.5(7BB%)
6.6
0.8
H/9
HR/9
7.2
0.7
.201
피안타율
.217
.264
피출루율
.275
.312
피장타율
.328
.576
피OPS
.604
11.3
WPA
11
16.3
bWAR
18.2
14.3
fWAR
15.5
승패에 관한 언급은 생략한다. 기본적으로 60.2이닝이라는 차이가 난다. 일단 페드로의 첫 2년의 탈삼진 능력이 로저의 첫 2년보다 뛰어남은 수치상 명백하다. 그리고 안타를 적게 내줬지만 그놈의 1998년에 홈런을 많이 내주는 바람에 FIP에서는 오히려 로저가 앞선다. 그리고 볼넷의 경우 페드로가 적게 내줬지만 BB%는 오히려 로저가 근소하게 앞선다. 타출장 스탯은 모두 페드로가 앞서고 있고 기본 스탯인 ERA 역시 페드로가 앞선다. 다만 WAR은 로저가 앞서는데 산출 기준인 FIP는 페드로가 밀리지만 표에는 없는 RA9[페: 2.79/로: 2.97]는 페드로가 앞선다. 다른 지표를 보면 WPA는 페드로가 앞서지만 일종의 상황별 기대득점이라 할 수 있는 RE:24의 경우 로저가 앞선다.[페: 104.3/로: 110.7] RE:24는 누적 성적이라 이닝 차이라고 할 수도 있다.
  • 총평을 해보자. 로저의 홈런 억제 능력이 페드로보다 뛰어나지만 그것을 가지고 만드는 결과(실점ㆍ출루ㆍ피안타 등)는 전체적으로 페드로가 더 앞서며 아웃카운트를 잡는 능력 역시 페드로가 더 좋다. 따라서 이닝 차이와 홈런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표는 페드로의 첫 2년의 우위이지만, 모든 지표를 집대성한 WAR의 경우 로저가 앞선다. 즉,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페드로의 첫 2년이 명백히 앞서나, 누적은 로저의 첫 2년이 우위라고 보면 되며, 종합적인 능력은 페드로>=로저라고 보면 된다. 물론 2연속 사이영상 시즌을 가져온다면 전술했듯 당연히 페드로가 압도적으로 바르지만,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리그 적응기인 페드로의 1998년이 bWAR 7/fWAR 5.7이라는 비교적 평범한 시즌이기 때문이다.

6. 4연속 사이 영 상 수상자들과의 비교[편집]


야구에서 시즌 최고의 투수들에게 주는 것이 사이영상이니 만큼 사이영상을 4연속으로 수상한 그렉 매덕스랜디 존슨이 주는 임팩트는 엄청난 것일 수밖에 없다.

2연속 수상은 비교적 흔하지만[49] 이 둘을 제외하면 3연속 수상조차 기록된 바가 없다. 4연속으로 사이영상을 수상한 1992~1995년 매덕스와 1999~2002년 존슨과 4년 중 3개의 사이영상을 수상한 1997~2000년 페드로를 비교해 본다.

페드로의 흠으로는 균등하게 뛰어난 4년을 보낸 매랜에 비해 1998년은 충격과 공포 수준이었던 나머지 3시즌에 비해 비교적 평범한 시즌[50]이었고 하필 이 해에 로저 클레멘스가 약을 빨고 미쳐버리며 페드로의 1997년급 성적을 기록하여[51] 페드로가 2위로 밀려났다는 점이다. 물론 페드로의 다른 3년은 당연히 이 둘을 압도적으로 바르지만, 1998년 때문에 밀리는 지표들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드로의 4년은 이들의 4년과 비슷하다.

6.1. 랜디 존슨[편집]


1997~2000년
페드로
지표
1999~2002년
랜디
905.1
이닝
1,030
122선발
77승25패
(75.5%)

승패(승률)
139선발
81승
27패
(75.0%)
2.16
(219)

ERA
(ERA+)
2.48
(187)
2.36
FIP
2.53
.925
WHIP
1.044
1,153/203
K/BB
1,417/288
11.5(32.5K%)
2.0(5.7BB%)
K/9(K%)
BB/9(BB%)
12.4(34.5K%)
2.5(7BB%)
6.3
0.7

H/9
HR/9
6.9
0.9
.194
피안타율
.211
.248
피출루율
.275
.294
피장타율
.337
.542
피OPS
.612
26.3
WPA
23.8
37.7
bWAR
38.1
35.3
fWAR
37.6
일단 기본적인 내구도 차이인지 선발기회 17회와 125이닝이라는 큰 차이가 난다. 거기에 랜디의 탈삼진 능력이 페드로보다 뛰어남은 수치상 명백하다. 그런데 더 우수한 탈삼진 능력을 갖고도 정작 FIP는 더 높은데 이는 홈런과 볼넷을 많이 내주기 때문이다. 랜디가 더 좋은 탈삼진 능력을 가졌음에도 피안타ㆍ출루와 관련된 지표에서 전부 밀리는 것은, 페드로에 비해서 삼진을 못 잡으면 출루를 막지 못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52] 종합 스텟인 WAR의 경우 산출 기준인 FIP와 RA9(페: 2.46/랜: 2.86) 모두 페드로가 랜디보다 낫지만 정작 WAR이 밀리는 건 이닝 차이로 볼 수도 있다. 다른 세이버 지표를 보면 WPA(승리 확률 기여도)를 페드로가 앞서고, 표에는 없지만 일종의 상황별 기대득점이라[53] 볼 수 있는 RE:24는 탈삼진처럼 그냥 누적성적인데도 페: 263.3/랜: 246.6으로 오히려 앞선다.
  • 총평을 해보자. 랜디 존슨의 탈삼진 능력이 페드로의 것보다 우수하지만 그 능력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결과(실점ㆍ출루ㆍ피안타 등)는[54] 페드로가 더 앞서있고 출루-실점 없이 아웃 카운트를 잡는 능력은 페드로가 더 좋다. 내구도와 탈삼진을 제외하면 모든 지표가 페드로의 여유로운 우위를 부정하기 어렵지만, 모든 지표를 집대성한 WAR의 경우 랜디가 앞선다.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투수로서의 퍼포먼스는 페드로가 명백히 앞서나,[55] 내구성은 랜디가 우위라고 보면 되며, 종합적인 능력은 페드로>=랜디라고 보면 된다. 사실 1997년, 1999~2000년이 랜디의 4년과 각각 비교하면 확실한 우위이지만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리그 적응기인 페드로의 1998년이 bWAR 7/fWAR 5.7이라는 비교적 평범한 시즌이기 때문이다.

6.2. 그렉 매덕스[편집]


먼저 매덕스의 위대함을 알아보자. 잘 간과되는 사실이지만 매덕스의 1994~1995년은 역사상 손꼽히는 시즌[56]으로 각각의 ERA+가 271, 260(역대 4~5위)으로 당시로서는 압도적으로 라이브볼 시대 1위였고, 1914년 더치 레오나드(279) 이후 처음으로 ERA+ 260을 넘긴 시즌들이었다. 미친 듯한 무브먼트와 엄청난 제구력으로 볼넷을 극한까지 줄여 만들어낸 1995년의 WHIP(.810)(역대 7위)는 역시 라이브볼 시대 1위로 1913년 월터 존슨(.780)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다. 이런 기록들과 사이 영 상을 4번 수상한 스티브 칼튼이 있었지만 3번 연속 수상한 선수도 없는 상황에서 최초로 4연속 사이 영 상을 수상한 매덕스가 가진 위상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AL에 로저 클레멘스가 있다면 NL에는 매덕스가 있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매덕스의 이런 엄청난 임팩트와 업적들이 잘 간과되는 원인은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외계인 짓을 하고 다닌 것과 커리어 후반기의 매덕스가 5,000 이닝과 15승 18회로 대표되는 롱런으로 역대급의 꾸준함과 누적에 임팩트가 조금 가려진 것에 있을 수 있다.[58]
1997~2000년
페드로
지표
1992~1995년
매덕스
905.1
이닝
946.2
122선발
77승25패
(75%)

승패(승률)
124선발
75승29패
(73%)
2.16
(219)
ERA
(ERA+)
1.98
(202)
2.36
FIP
2.54
.925
WHIP
.953
1,153/203
K/BB
733/176
11.5(32.5K%)
2.0(5.7BB%)
K/9(K%)
BB/9(BB%)
7(19.9K%)
1.7(4.8BB%)
6.3
0.7
H/9
HR/9
6.9
0.3
.194
피안타율
.212
.248
피출루율
.256
.294
피장타율
.281
.542
피OPS
.537
26.3
WPA
25.4
37.7
bWAR
33.1
35.3
fWAR
29.9
대표적인 이닝이터인 매덕스의 이닝이 적어 보이는 것은 1994~1995년의 파업으로 시즌이 축소돼서 그렇다. 그런데도 페드로보다 41이닝이 많다. 일단 더 적은 선발기회로 페드로가 더 많은 승을 따냈다. ERA는 1점대를 기록한 매덕스의 우위이지만 ERA+로는 202의 매덕스를 219의 페드로가 앞선다. FIP는 볼넷이 극단적으로 적고 피홈런을 최저치로 끌어내리는 매덕스와 매덕스보단 아니지만 볼넷이 적고 비교불가인 탈삼진 능력을 앞세운 페드로의 비교라 비슷하지만 수치상 페드로의 우위다.[59] 피안타율은 페드로의 승이지만 볼넷%는 매덕스가 앞서니 이 둘을 포함하는 피출루율 수치를 보면 페드로의 승리다. 그런데 페드로는 피홈런이 많아서 피장타율이 높고 앞의 둘을 합친 피OPS에서 매덕스가 앞선다. 승리 기여도는 별 차이가 아니지만 WAR은 페드로가 이닝이 적은데도 크게 앞선다. 대투수들을 비교하는 만큼 몇가지 지표를 더 살펴본다. 위에 랜디 항목에서도 나온 RE:24는 페: 263.3/매: 232로 페드로가 앞서지만 RA9은 페: 2.46/매: 2.24로 매덕스의 승이다.
  • 총평을 해보자. 이닝과 ERA는 매덕스가 앞서지만 ERA+, FIP, WHIP 페드로가 앞서며 저것들은 어마무시한 차이도 아니니 그러려니 해도 된다.[60] 타출장의 스텟을 보면 페드로가 더 적은 피안타율과 피출루율을 가졌지만 홈런이 많아서 피장타율과 OPS는 매덕에게 밀린다. 이는 RA9에서 매덕스가 앞서는 원인이다. 그런데 정작 WAR은 페드로가 크게 앞선다. 4년 전체의 비교는 아니지만 매덕스의 단일 시즌 기록들을 페드로가 넘어섰고 단일 시즌에서 페드로의 우위를 고려한다면, 비슷한 수준의 투수이지만 세이버메트릭스의 집대성인 WAR로 봤을 때는 페드로가 매덕스보다 더 우수한 투수다.

7. 4년간 3회 사이 영 상 수상자들과의 비교[편집]


페드로 외에 4년간 3개의 사이 영 상 수상자로는 코팩스, 커쇼, 파머가 있다. 이들의 임팩트도 엄청난 것일 수밖에 없는데 이들의 4년과 페드로의 4년을 비교해본다.

이들의 흠으로는 스테로이드 시대에 야구의 상식을 파괴하는 수준의 성적을 찍은 페드로와 달리 이들의 시대는 리그 평균 ERA가 3점대 중후반인 투고타저 시대였다. 그런데도 페드로의 조정하지 않은 비율성적을 커쇼와 파머는 넘지 못했고 코팩스도 조정 작업을 거치면 극도로 불리한 환경에서 뛴 페드로에게 밀리면 밀렸지 앞설 수가 없다. 따라서 사실상 이들은 누적이라면 몰라도 순수 임팩트만으로는 절대 페드로에게 비견이 안 된다.

7.1. 샌디 코팩스[편집]


분업화 이전의 당대 최고의 임팩트를 자랑했던 코팩스는 마지막 4년이 그 이전에 비해 성적이 월등히 좋아지는 바람에 고작 165승밖이 못했음에도 명예의 전당에 첫 턴으로 들어갔다. 선수생활 마지막 4년인 1963년~1966에 사이영상 3개에 MVP 1개를 따낸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임팩트형 투수인 코팩스의 4년과 페드로의 4년을 비교해본다. 서로에게 우위인 지표는 굵게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1997~2000년
페드로
지표
1963~1966년
코팩스
905.1
이닝
1,192.2
122선발
77승25패
(75%)
승패(승률)
153선발
97승
27패
(78%)
2.16
(219)
ERA
(ERA+)
1.86
(172)
2.36
FIP
1.97
.925
WHIP
.909
1,153/203
K/BB
1,228/259
11.5(32.5K%)
2.0(5.7BB%)
K/9(K%)
BB/9(BB%)
9.5(26.4K%)
2.0(5.6BB%)
6.3
0.7
H/9
HR/9
6.2
0.6

.194
피안타율
.191
.248
피출루율
.237
.294
피장타율
.281
.542
피OPS
.518
26.3
WPA
29.9
37.7
bWAR
36.3
35.3
fWAR
34.3
기본적으로 코팩스는 분업화 이전의 선수라 2000년 전후의 선수인 페드로보다 이닝이 많을 수밖에 없다. 페드로가 K%에서 6%/가장 기본적인 조정 스탯인 ERA+에서는 47이라는 큰 수치로 앞선다. 그러나 조정 작업을 거치지 않은 클래식 스탯에서는 대부분 코팩스가 앞서고 있다. 이는 페드로의 1998년이 다른 3년과는 다르게 비교적 평범한 시즌이라 발생한 일이기도 하다.[61] 물론 타고투저가 극한에 다다랐던 시기지명타자까지 있던 AL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페드로 입장에서는 투고타저 시기에 거대 구장에서 뛰었던[62] 코팩스와 조정 없이 비교되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질 수 있다.[63] 예를 들어 페드로는 자신의 최전성기 때 비율 스탯이 당시 최고의 불펜 투수들보다도 좋았다.

페드로가 뛰던 1997~2000년에 소속 리그(1997: NL+1998~2000 AL) 평균 ERA는 각각 4.20-4.65-4.86-4.91로 평균 4.65였다. 반면 코팩스의 4년에서 가장 높았던 때는 1966년(3.61)이었고 4년 평균이 3.49였다. 이 1.16의 차이는 코팩스의 ERA가 0.3점이나 낮은데도 ERA+에서는 크게 밀리는 원인이다. 1963년의 코팩스는 1.88ERA를 찍고도 ERA+로는 겨우 159였지만 페드로의 1998년은 1.01점이나 높은 2.89로 163이었다. 극단적으로 코팩스의 최저 ERA인 1.73(1966년)은 ERA+로 190이지만 페드로의 최저 ERA인 1.74(2000년)는 291로 무려 101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쉽게 얘기하자면 똑같은 ERA라도 코팩스 시대보다 페드로의 시대에 기록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페드로가 코팩스보다 극도로 불리한 환경에서 뛰었다는 증명으로 충분하다.

팬그래프스닷컴에서는 레퍼런스의 ERA+와 비슷하게 각 스탯들을 리그 평균과 비교하여 만들어둔 스탯들이 있다. 이 정도로 극단적인 환경 차이가 나는 기록들을 비교할 때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으니 그 스탯들을 참고한다.
1997~2000년
페드로
지표
1963~1966년
코팩스
46
ERA-
58
54
FIP-
65
64
WHIP+
72
178
199

K/9+
K%+
159
171
57
63

BB/9+
BB%+
70
75
72
AVG+[64]
76
62
HR/9+
72
상술한 극단적인 환경 차이가 조정 스탯들을 산출할 때 페드로의 수치들을 급격히 좋아지게 만든다. 클래식 스탯으로는 페드로가 밀리지만 조정 스탯에서는 페드로가 우수하다. 사실 클래식 스탯에서 코팩스가 앞선다지만 그 차이는 대개 미세하기 때문에 비슷한 클래식 스탯을 스테로이드 시대에 기록한 페드로가 조정 스탯과 WAR에서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 볼 수 있다.

페드로 입장에서 위의 자료들을 보면 클래식 스탯은 밀리지만 조정 작업을 거치면 더 우수하고, 결정적으로 세이버메트릭스의 집대성인 WAR에서는 무려 287.1이닝이나 부족한데도 오히려 앞서고 있다.[65] 누적 스탯인 RE:24 역시도 페드로가 적은 이닝에도 불구하고 32.8이나 앞서고 있다.(230.5vs263.3)[66] 전성기 X년/투수 최고 시즌 등 퍼포먼스 자체만 평가하는 경우에는 페드로가 1~2위를 독점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코팩스의 퍼포먼스가 더 높게 평가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론적으로 세이버메트릭스가 밀어주는 조정 스탯들과 더 높은 WAR, 극단적인 시대 차이를 보면 페드로가 코팩스보다 더 압도적으로 리그를 지배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포스트 시즌의 경우, 코팩스 시대에는 포스트 시즌=월드 시리즈였다. 코팩스는 1963~1966년에 48이닝 9실점(5자책) 3승 3패로[67] 위대한 모습을 보여준 반면에 페드로는 저 시기 1999년에만 포스트 시즌에 나갔고 ALDS+ALCS에서 17이닝 0실점을 기록했다. 물론 페드로도 11.6fWAR을 기록한 1999년 정규 시즌의 포스를 포스트 시즌에도 그대로 보여줬지만 코팩스는 월드 시리즈였고 여러 차례 완봉승을 따냈기 때문에 느낌이 다른 게 사실이다.


파일:P. Martinez&S. Koufax.jpg

코팩스의 12년과 비슷한 페드로의 13년을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13년이지만 페드로는 1년 차에 8이닝 1패밖에 없어서 12년과 거의 차이가 없다. 표에는 없는데 투수 WAR의 경우, 페드로는 77.3bWAR/74fWAR이고 코팩스는 53.1bWAR/54.5fWAR이다.
참고로 이 둘은 페드로의 메츠 시절, 코팩스의 방문으로 만난 적이 있다.

7.2. 클레이튼 커쇼[편집]


커쇼의 전성기2010년대 최고로 평가받으며 실제로 다른 2010년대 이후의 현역 투수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이거나 적어도 급을 다르게는 보는 수준으로 평가된다.[68] 또한 페드로 본인을 포함하여 랜디, 매덕스, 코팩스 정도를 제외하면 야구 역사상으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최상위 수준에 놓인다. 지구 최강의 투수라는 별명의 클레이튼 커쇼와 별명이 외계인인 페드로는 둘 다 다저스 팜 출신에, 각자의 리그를 씹었다는 점과 사이영상 수상 순위까지[69] 상당히 닮은 부분이 있다. 2010년대 최고의 투수인 커쇼가 4연속 ERA 1위를 하고 사이영상 3개와 MVP 1개를 수상한 2011~2014년과 페드로의 1997~2000년을 비교한다. 서로에게 우위인 지표를 표시한다.

1997~2000년
페드로
지표
2011~2014년
커쇼
905.1
이닝
895.1
122선발
77승25패
(75%)

승패(승률)
126선발
72승26패
(73%)
2.16
(219)
ERA
(ERA+)
2.11
(172)
2.36
FIP
2.41
.925
WHIP
.946
1,153/203
K/BB
948/200
11.5(32.5K%)
2.0(5.7BB%)
K/9(K%)
BB/9(BB%)
9.5(27.3K%)
2.0(5.8BB%)
6.3
0.7
H/9
HR/9
6.5
0.5
.194
피안타율
.202
.248
피출루율
.251
.294
피장타율
.297
.542
피OPS
.548
26.3
WPA
17.6
37.7
bWAR
29
35.3
fWAR
28.5
페드로가 더 적은 선발기회로 더 많은 승을 따고 적게 패했다. ERA는 0.05 더 높지만 ERA+는 47차이로 앞서고 FIP 역시 커쇼보다 좋다. 커쇼보다 3BB를 더 줬지만 볼넷%는 커쇼보다 낮으며 탈삼진에서는 205K를 더 잡으며 K%에서 압도한다. 홈런%는 커쇼보다 높지만 피안타율과 피장타율ㆍ출루와 관련되는 기록은 차이가 크지는 않지만 모두 앞선다. 거기에 WPAㆍWAR은 확실한 페드로의 압승이다. 결과적으로 커쇼가 앞서는 지표는 피홈런율이 낮다는 것뿐인데 그러고도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한 페드로의 피장타율이 더 낮다. 아무리 커쇼가 지구 최강의 투수라지만 이 지표들을 보고 판단한다면 당연히 외계인 페드로의 여유로운 우위를 부정하기 어렵다. 여기에 전형적인 투고타저 시대의 커쇼와 MLB 역사상 극악의 타고투저 시대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스테로이드 시대라는 시대적 보정까지 감안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수치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포스의 차이까지 느낄 수 있다.

커쇼 역시 대표적인 투고타저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만큼 코팩스의 항목처럼 이를 감안하기 위한 참고 자료로 팬그래프스의 조정 스탯들을 참고한다.
1997~2000년
페드로
지표
2011~2014년
커쇼
46
ERA-
58
54
FIP-
63
64
WHIP+
73
178
199

K/9+
K%+
126
138
57
63

BB/9+
BB%+
66
72
72
AVG+[70]
80
62
HR/9+
57
보다시피 커쇼카 HR/9을 제외한 모든 지표에서 밀린다. 클래식 스탯보다는 이 조정 스탯을 보면 더 명확한 비교가 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페드로의 HR/9이 밀리는 것은 1998년의 부진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추가적으로 둘의 2연속 사이 영 상 수상 시즌들만 비교한다면 다음과 같다. 상술했듯이 2013~2014년은 근래의 대표적인 투고타저 시즌으로 NL의 ERA가 평균 3.69(3.73-3.66)로 1999~2000년 AL의 평균 4.88(4.86-4.91)보다 1 이상 낮다.
1999~2000년
페드로
지표
2013~2014년
커쇼
39
ERA-
51
39
FIP-
57
56
WHIP+
70
200
230

K/9+
K%+
128
141
39
44

BB/9+
BB%+
58
65
68
AVG+[71]
78
46
HR/9+
48
그렇다. 위의 4년간의 비교 때와는 다르게 불순한 1998년이 포함되지 않아서 페드로가 더욱 무지막지한 수치들을 찍고 있다. HR/9을 제외하면 너무나 큰 차이들이 나는 게 사실이다.

7.3. 짐 파머[편집]


먼저 파머의 위대함을 알아보자. 파머의 4년이 코팩스, 커쇼에 비해 인지도가 매우 떨어져서 그렇지 파머는 오리올스 역사상 최고의 대투수이며 20년동안 수많은 부상에 맞서 싸우면서 팀의 6번 리그 우승과 3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투수였다. 또한 1970년대 최저 ERA(2.58)과 최다승(186승)을 기록한 1970년대 최고의 투수 중 하나다. 또한 아메리칸 리그 최초의 2연속 사이 영 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이렇게나 위대한 투수인데 임팩트가 간과되는 원인은 인지도가 가장 떨어지는 투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 있다.

파머는 1973~1976년까지 4년간 3번의 사이 영 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1970년대에 보여줬던 임팩트는 엄청났다. 페드로가 똑같이 4년간 3개의 사이 영 상을 수상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파머의 4년과 페드로의 4년을 비교해본다. 서로에게 우위인 지표를 표시한다.

1997~2000년
페드로
지표
1973~1976년
파머
905.1
이닝
1,113
122선발
77승25패
(75%)

승패(승률)
141선발
74승45패
(62%)
2.16
(219)
ERA
(ERA+)
2.16
(141)
2.36
FIP
3.30
.925
WHIP
1.128
1,153/203
K/BB
594/346
11.5(32.5K%)
2.0(5.7BB%)

K/9(K%)
BB/9(BB%)
4.8(13.2K%)
2.8(7.7BB%)
6.3
0.7
H/9
HR/9
7.4
0.5
.194
피안타율
.224
.248
피출루율
.286
.294
피장타율
.321
.542
피OPS
.607
26.3
WPA
17.8
37.7
bWAR
22.6
35.3
fWAR
17.4
그렇다. 분업화 이전의 투수인 파머가 앞서는 지표라곤 207.2이닝과 0.2의 HR/9밖에 없다. 압도적인 선발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승수가 턱없이 부족하고 ERA는 같은데 ERA+에서는 페드로가 크게 앞선다. 페드로의 1998년이 홈런을 생각보다는 많이 맞으면서 HR/9에서 파머가 앞서지만 이는 미세한 차이이며 나머지 지표는 페드로가 조정 작업 없이도 여유롭게 앞서버린다. 거기에 WPAㆍWAR에서도 확실한 페드로의 압승이다. 결론적으로 분업화 이전에 1970년대를 지배한 파머의 4년보다 스테로이드 시대에 리그를 초토화시킨 페드로의 4년이 훨씬 압도적이다.

8. 2010년대 투수들과의 비교[편집]


시대가 지나 2010년대에 등장한 투수들 중에서도 커쇼의 전성기에 비벼 볼만한 무지막지한 피칭을 보여준 선수들이 있다. 바로 벌랜더, 슈어저, 디그롬인데 그들의 전성기와 페드로의 전성기를 비교해 본다.

이들의 경우엔 2010년대 최고의 투수들임은 자명하나,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들이랑 비교해 보면 당연히 밀리는데, 페드로는 무려 데드볼 시대 선수들과 비교하더라도 이닝 이팅 등의 어쩔 수 없는 지표만 제외하고 보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정도의 전성기이라 사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페드로에게 엄청난 실례일 지경이다. 당장 직접적인 비교만 보더라도 스테로이드 시대에 극단적인 불빠따를 자랑했던 약쟁이들을 상대로 던진 페드로의 비율스탯은 투고타저에 접어든 2010년대 투수들의 비율스탯조정 작업 없이도 거의 대부분 여유롭게 앞서버린다. 게다가 페드로의 사실상 유일한 약점이었던 성적 대비 아쉬운 이닝 이팅 역시 성적 대비 아쉬운 수준으로 2010년대 투수들이랑 별 차이가 없거나 더 우위이다. 따라서 이들은 추후 누적으로 페드로를 이길 순 있겠지만 순수 임팩트만으로는 절대 페드로에게 비견이 안 된다.


8.1. 저스틴 벌랜더[편집]


별명이 금강벌괴, 벌괴수 등인 저스틴 벌랜더는 2011년 오랜만에 사이영상+MVP를 동시 석권하고, 2011~2012년 8.6, 8.1이라는 bWAR을 기록하며 최고의 투수로 여겨짐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후 커쇼가 원체 사람 아닌 짓을 해대는 바람에 커쇼에게 밀리지만 벌랜더가 2010년대 투수 삼대장에 포함됨을 의심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페드로의 1999~2000년의 2년은 모든 지표에서 벌랜더를 압도적으로 바르기에 그나마 벌랜더가 유리한 bWAR상으로 비교할만한 1차 전성기인 2011~2012년과 페드로의 1차 전성기부터 리그 적응기(내셔널리그->아메리칸리그)를 거친 2년(1997~1998)을 비교해 본다. 서로에게 우위인 지표를 표시한다.

1997~1998년
페드로
지표
2011~2012년
벌랜더
475
이닝
489.1
64선발
36승15패
(71%)

승패(승률)
68선발
41승13패
(73%)


2.39
(186)

ERA
(ERA+)
2.52
(166)
2.89
FIP
2.97
1.011
WHIP
.987
556/134
K/BB
489/117
10.5(29.3K%)
2.5(7.1BB%)
K/9(K%)
BB/9(BB%)
9(25.4K%)
2.2(6.1BB%)
6.6
0.8
H/9
HR/9
6.7
0.8
.201
피안타율
.205
.264
피출루율
.256
.312
피장타율
.322
.576
피OPS
.578
11.3
WPA
9.2
16.3
bWAR
16.7
14.3
fWAR
13.4
승패에 관한 언급은 생략한다. 14.1이닝 더 많이 뛴 디트로이트 시절 벌랜더의 볼넷 억제 능력이 페드로의 첫 2년보다 뛰어남은 수치상 명백하다. 안타는 페드로가 조금 덜 맞았지만 볼넷을 많이 내주었으니 이 둘을 포함한 수치인 WHIP와 피출루율은 벌랜더의 승이다. 하지만 나머지 지표는 페드로가 모두 앞서고 있다. 다만 bWAR은 벌랜더가 0.4 더 높은데, 산출 기준인 RA9[페: 2.79/벌: 2.83]이 페드로의 승이고 RE:24는 그냥 누적 성적인데도 페드로의 승[페: 104.3/벌: 91.4]이다. 그런데 bWAR에서 벌랜더가 앞서는 것은 이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 지표가 모두 페드로가 앞서기에 볼넷 억제의 결점을 다른 스탯으로 만회하는 페드로의 첫 2년의 우위다.

벌랜더는 2018~2019년에 2차 전성기급 활약을 하며 몇가지 지표에서 역대 탑5에 드는 기록들을 세웠으니 이 시기의 벌랜더와 페드로의 최전성기 2년(1999~2000)을 비교해본다. 서로에게 우위인 지표를 표시한다.

1999~2000년
페드로
지표
2018~2019년
벌랜더
430.1
이닝
437
58선발
41승10패
(80%)

승패(승률)
68선발
38승15패
(71%)
1.90
(265)

ERA
(ERA+)
2.55
(172)
1.79
FIP
3.03
.830
WHIP
.851
597/69
K/BB
590/79
12.5(36.1K%)
1.4(4.2BB%)

K/9(K%)
BB/9(BB%)
12.2(35.1K%)
1.6(4.7BB%)
6.0
0.5
H/9
HR/9
6.0
1.3
.186
피안타율
.186
.231
피출루율
.230
.274
피장타율
.360
.505
피OPS
.590
15
WPA
10.8
21.5
bWAR
13.7
21
fWAR
13
2011~2012 벌랜더보다 2018~2019 벌랜더가 ERAㆍFIP 같은 수치는 부족하지만 출루와 관련된 수치는 더 좋다. 피출루율은 0.001차이로 페드로에게 앞선다. 이닝은 예전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페드로보다는 7이닝 많다. 탈삼진 수치의 지표도 밀리지만 큰 차이는 아니다. 그런데 피홈런이 많아져 피장타율과 FIP가 크게 차이 난다. 승리 기여도는 여전히 7.8/8이나 차이 나는 페드로의 압승이다. 벌랜더가 앞서는 지표는 차이가 매우 근소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차이가 꽤 나서 페드로의 여유로운 우위다.

8.2. 맥스 슈어저[편집]


2010년대 투수 삼대장[72] 중 하나이자 2010년대 최다승ㆍ최다 탈삼진 기록을 가진 슈어저는 워싱턴으로 이적한 후, 2연속으로 사이 영 상을 수상했다. 사이영상은 똑같이 3개지만 페드로는 NL 1개 + AL 2개, 슈어져는 AL 1개 + NL 2개다. 서로에게 우위인 지표를 표시한다.

1999~2000년
페드로
지표
2016~2017년
슈어저
430.1
이닝
429
58선발
41승10패
(80%)

승패(승률)
65선발
36승13패
(73%)
1.90
(265)

ERA
(ERA+)
2.75
(159)
1.79
FIP
3.08
.830
WHIP
.937
597/69
K/BB
552/111
12.5(36.1K%)
1.4(4.2BB%)

K/9(K%)
BB/9(BB%)
11.6(32.8K%)
2.3(6.6BB%)
6.0
0.5

H/9
HR/9
6.1
1.1
.186
피안타율
.189
.231
피출루율
.251
.274
피장타율
.344
.505
피OPS
.594
15
WPA
8.7
21.5
bWAR
13.4
21
fWAR
12.1
그렇다. 슈어저는 탈삼진과 피안타율이 근소하게 페드로에게 뒤처지고, 다른 지표들은 크게 밀린다. WAR이 각각 8.1, 8.9씩이나 부족한 것까지 고려하면 볼 것도 없이 모든 지표에서 앞서는 페드로의 압승이다.

슈어저는 워싱턴으로 오기 이전에도 디트로이트 시절 2013년에 각성하며 사이 영 상을 수상하고 2014년에도 2013년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치며 1차 전성기를 맞았다. 페드로의 1999~2000년의 2년은 모든 지표에서 슈어저를 압도적으로 바르기에 디트로이트 시절 슈어저의 2년과 페드로의 1차 전성기에서 리그 적응기(내셔널리그->아메리칸리그)를 거친 2년(1997~1998)과 비교해본다. 역시 서로에게 우위인 지표를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1997~1998년
페드로
지표
2013~2014년
슈어저
475
이닝
434.2
64선발
36승15패
(71%)

승패(승률)
65선발
39승8패
(83%)

2.39
(186)

ERA
(ERA+)
3.02
(133)
2.89
FIP
2.79
1.011
WHIP
1.074
556/134
K/BB
492/119
10.5(29.3K%)
2.5(7.1BB%)
K/9(K%)
BB/9(BB%)
10.2(28.3K%)
2.5(6.8BB%)
6.6
0.8
H/9
HR/9
7.2
0.7
.201
피안타율
.219
.264
피출루율
.275
.312
피장타율
.349
.576
피OPS
.624
11.3
WPA
7.1
16.3
bWAR
12.2
14.3
fWAR
11.5
승패에 관한 언급은 생략한다. 페드로가 더 많은 삼진을 잡았지만 1998년의 페드로 명성 대비 부진 때문에 볼넷도 많이 내주었다. 그리고 더 적은 피안타율을 가졌음에도 정작 FIP는 슈어저에게 밀리는데 이유는 리그 적응기인 1998년에 홈런을 많이 내주었기 때문이다. WHIP와 타출장 스탯은 모두 페드로가 앞서고 기본 스탯인 ERA(+)도 페드로가 압도적이다. 승리 기여도에서도 여전히 4.1/2.8이나 차이나는 페드로의 압승이다. 따라서 볼넷과 홈런을 제외한 모든 지표를 앞서는 페드로의 첫 2년의 압승이라고 할 수 있다.

8.3. 제이콥 디그롬[편집]


제이콥 디그롬은 2018~2019년에 팀 타선의 무능함 때문에 승수를 쌓지 못했지만 압도적 피칭으로 슈어저의 뒤를 이어 2연속 NL 사이영상 수상에 성공했다. 디그롬의 사이영상 2연패와 페드로의 사이영상 2연패를 비교해 보자. 서로에게 우위인 지표를 표시한다.

1999~2000년
페드로
지표
2018~2019년
디그롬
430.1
이닝
421
58선발
41승10패
(80%)

승패(승률)
64선발
21승17패
(55%)
1.90
(265)

ERA
(ERA+)
2.05
(189)
1.79
FIP
2.32
.830
WHIP
.941
597/69
K/BB
524/90
12.5(36.1K%)
1.4(4.2BB%)

K/9(K%)
BB/9(BB%)
11.2(32K%)
1.9(5.5BB%)
6.0
0.5

H/9
HR/9
6.5
0.6
.186
피안타율
.201
.231
피출루율
.250
.274
피장타율
.300
.505
피OPS
.550
15
WPA
10.7
21.5
bWAR
16.7
21
fWAR
16
이 표를 보면 페드로는 디그롬보다 9.1이닝을 더 던졌는데도 모든 비율 스텟에서 앞선다. 탈삼진은 많고 볼넷과 피안타(피홈런)는 적으며 FIP와 ERA도 더 낮고 WHIP와 피출루율ㆍ피장타율까지도 더 낮다. 거기에 WPAㆍWAR은 확실한 페드로의 압승이다. 그렇다. 페드로는 AL에서 스테로이드 시대이며 역사상 최고의 타고투저라는 시대적 한계를 뚫고서 디그롬 문서에서 "그냥 잘 던진 정도가 아니라 MLB 역대급으로 잘 던진 시즌이었다."라고까지 표현한 디그롬의 2년이 기록한 모든 지표를 조정스텟은 물론이고 단순 스탯으로도 눌러버리는 성적을 뽑았다. 결론적으로 모든 지표에서 앞서는 페드로의 2연속 사이영상 시즌의 압승이라고 할 수 있다.

2021년 디그롬은 압도적인 피칭을 하며 페드로의 기록을 깰지 화젯거리가 됐다. 결국 시즌 아웃 되버렸지만, 더 얘기를 하자면 이번 시즌(2021) 디그롬은 92이닝(15경기) 1.08ERA/27ERA- 14실점(11자책점) 6피홈런을 기록했는데 페드로가 2000년에 개막후 첫(연속되는) 91.1이닝(12경기)을[73] 소화했을 때는 0.99ERA/20ERA- 11실점(10자책점) 3피홈런을 기록했다. 2021년 NL의 ERA는 4.20이고 경기당 득점은 4.48점인데 2000년 AL은 4.91/5.28점이다. 일단 실점 자체가 디그롬이 더 많다. 리그 평균과 파크 팩터를 보정한 팬그래프스의 ERA인 ERA- 역시 7 차이가 난다. 디그롬의 레퍼런스 ERA+는 373인데 ERA-를 ERA+로 바꾸는 공식{ERA+= (100 ÷ ERA-) x 100}을 쓰면 370[74]으로 비슷한 값이 나온다. 페드로의 ERA-를 저 공식을 써서 바꾸면 500[75]이라는 값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동일한 이닝을 소화했을 때를 기준으로 보면 2021년 디그롬은 2000년 페드로에 미칠 수가 없다.

올 시즌 디그롬의 fWAR은 4.9라는 이닝 치고는 매우 높은 수치다. 그런데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1999년에 첫 89.2이닝(4월 5일~6월 4일)을 소화했을 때의 fWAR은 무려 5.2였다. 애초에 연속되는 12경기의 fWAR을 계산했을 경우 1~10위의 6자리가 그의 것이고 1~4위도 그의 것이다.#

디그롬이 소화한 이닝만큼만 볼 경우, 페드로의 1999년이나 2000년이 디그롬의 2021년보다 낫다고 볼 여지도상당하다.

9. 기타 2연속 사이 영 상 수상자들과의 비교[편집]


기타 2연속 사이 영 상 수상자는 디트로이트의 간판 투수였던 데니 맥클레인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엄청난 스타성을 자랑했던 팀 린스컴이 있다. 이 두 투수의 2년과 페드로의 2년과도 비교해보자.

이들의 경우에도 최고의 임팩트를 자랑한 투수임에는 자명하나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들이랑 비교해 보면 당연히 밀리는데, 투고타저 시대에 전성기를 맞은 이들과 달리 페드로는 스테로이드 시대에 야구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으므로 사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페드로에게 엄청난 실례일 지경이다. 단적으로 스테로이드 시대에 전성기를 맞은 페드로의 비율 스탯은 투고타저 시대에 전성기를 맞은 이들의 비율 스탯조정 작업 없이도 거의 대부분 여유롭게 앞서버린다. 그리고 이들의 누적 역시 페드로의 누적에 압도적으로 밀리기에 이들은 순수 임팩트나 누적으로나 절대 페드로에게 비견이 안 된다.

9.1. 데니 맥클레인[편집]


1968년의 맥클레인은 단일 시즌 31승을 거두며 전무후무한 아메리칸 리그 만장일치 MVP에 선정되었고 이듬해인 1969년에도 미친 활약을 이어가며 볼티모어 오리올스마이크 퀘이야와 함께 공동으로 사이 영 상을 수상했다. 마찬가지로 아메리칸 리그에서 2년 연속으로 사이영 상을 수상한 페드로의 2년과 맥클레인의 2년을 비교한다. 서로에게 우위인 지표룰 표시한다.

1999~2000년
페드로
지표
1968~1969년
맥클레인
430.1
이닝
661
58선발
41승10패
(80%)

승패(승률)
82선발
55승
15패
(78%)
1.90
(265)

ERA
(ERA+)
2.37
(142)
1.79
FIP
2.79
.830
WHIP
.997
597/69
K/BB
461/130
12.5(36.1K%)
1.4(4.2BB%)

K/9(K%)
BB/9(BB%)
6.3(17.8K%)
1.8(5BB%)
6.0
0.5

H/9
HR/9
7.2
0.8
.186
피안타율
.219
.231
피출루율
.260
.274
피장타율
.333
.505
피OPS
.593
15
WPA
12.5
21.5
bWAR
15.5
21
fWAR
14.2
그렇다. 분업화 이전의 투수인 맥클레인이 232.2이닝 더 많이 뛰고 압도적인 선발 기회로 승수를 많이 쌓았지만, 나머지 비율 스탯은 스테로이드 시대를 씹어먹은 페드로가 조정 작업 없이도 모든 지표에서 여유롭게 앞서버린다. 거기에 WPAㆍWAR은 확실한 페드로의 압승이다. 따라서 압도적인 이닝 차이를 제외하면 볼 것도 없이 모든 지표에서 앞서는 페드로의 압승이다.

9.2. 팀 린스컴[편집]


2010년대는 아니지만 커쇼 이전에도 2008~2009년 2연속 사이 영 상을 수상한 팀 린스컴이 있었다. 간지나는 투구폼으로 탈삼진을 쓸어담고 영화 같은 스토리까지 가져 하얀 페드로라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던 린스컴의 2년과 외계인 페드로의 2년을 비교한다. 서로에게 우위인 지표를 표시한다.

1999~2000년
페드로
지표
2008~2009년
린스컴
430.1
이닝
452.1
58선발
41승10패
(80%)

승패(승률)
65선발
33승12패
(73%)
1.90
(265)

ERA
(ERA+)
2.55
(170)
1.79
FIP
2.48
.830
WHIP
1.110
597/69
K/BB
526/152
12.5(36.1K%)
1.4(4.2BB%)

K/9(K%)
BB/9(BB%)
10.5(28.7K%)
3(8.3BB%)
6.0
0.5
H/9
HR/9
7.0
0.4
.186
피안타율
.214
.231
피출루율
.284
.274
피장타율
.303
.505
피OPS
.587
15
WPA
9.8
21.5
bWAR
15.2
21
fWAR
14.7
그렇다. 하얀 페드로라 불렸던 린스컴이 앞서는 지표라곤 22이닝과 0.1의 HR/9밖에 없다. 더 많은 선발 기회와 이닝을 소화했지만 승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22이닝을 더 뛰었지만 71K가 부족하고 BB는 2배가 넘는다. 거기에 WPAㆍWAR은 확실한 페드로의 압승이다. 표를 보면 린스컴의 커리어 하이 2년은 페드로의 2년보다 이닝과 HR/9를 제외한 모든 지표에서 압도적으로 밀린다. 결과적으로 간지나는 투구폼으로 하얀 페드로라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던 린스컴의 2년보다 스테로이드 시대에 리그를 초토화시킨 페드로의 2년이 훨씬 압도적이다.

10. 21세기 최고의 이닝이터와의 비교[편집]


기타 페드로와 비교해볼 대상으로는 21세기 최고의 이닝이터인 로이 할러데이가 있다. 할러데이는 누적 승수는 203승으로 다른 명전급 투수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투수 분업화가 심해진 21세기의 독보적인 이닝이터라는 상징성에서 세이버메트릭션에서 고평가를 받고 '젊은 나이의 요절'이라는 드라마틱한 생애가 맞물려 명예의 전당에 첫 턴으로 들어갔다. 그는 토론토 시절 2002년부터 기량이 만개하고 대망의 2003년 사이 영 상을 수상하며 1차 전성기를 맞았다. 페드로의 1999~2000년까지의 2년은 모든 지표에서 할러데이를 압도적으로 바르기에 토론토 시절 할러데이의 2년과 페드로의 1차 전성기부터 리그 적응기(내서녈리그->아메리칸리그)에 걸친 2년(1997~1998)을 비교해본다. 서로에게 우위인 지표를 표시한다.

1997~1998년
페드로
지표
2002~2003년
할러데이
475
이닝
505.1
64선발
36승15패
(71%)

승패(승률)
65선발
41승14패
(75%)

2.39
(186)

ERA
(ERA+)
3.10
(151)
2.89
FIP
3.11
1.011
WHIP
1.128
556/134
K/BB
439/65
10.5(29.3K%)
2.5(7.1BB%)
K/9(K%)
BB/9(BB%)
6.6(18K%)
1.7(4.6BB%)
6.6
0.8
H/9
HR/9
8.5
0.6
.201
피안타율
.246
.264
피출루율
.286
.312
피장타율
.363
.576
피OPS
.648
11.3
WPA
8.3
16.3
bWAR
15.4
14.3
fWAR
13.8
승패에 관한 언급은 생략한다. 일단 30.1이닝을 더 뛴 토론토 시절의 할러데이의 볼넷과 홈런 억제 능력이 페드로의 첫 2년보다 뛰어남은 수치상 명백하다. 하지만 나머지 타출장 스탯을 포함한 비율 스탯은 모두 페드로가 앞서고 있다. 거기에 WPAㆍWAR은 페드로가 이닝이 적은데도 더 앞선다. 따라서 볼넷과 홈런을 제외한 모든 지표를 앞서는 페드로의 첫 2년의 압승이라고 할 수 있다.

할러데이는 필라델피아로 오기 이전 2008~2009년에 부활하면서 조짐이 보이더니 필라델피아로 와서 2010~2011년 회춘에 성공하며 2차 전성기를 맞았다. 2010년 사이 영 상 수상에 이어 2011년에는 2010년을 능가하는 퍼포먼스를 보이며 트리플 크라운을 먹은 커쇼에 이어 사이영 2위를 기록했다. 필라델피아 시절의 할러데이의 2년과 페드로의 2년과도 비교해보자. 역시 서로에게 우위인 지표를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1999~2000년
페드로
지표
2010~2011년
할러데이
430.1
이닝
484.1
58선발
41승10패
(80%)

승패(승률)
65선발
40승16패
(71%)
1.90
(265)

ERA
(ERA+)
2.40
(165)
1.79
FIP
2.62
.830
WHIP
1.041
597/69
K/BB
439/65
12.5(36.1K%)
1.4(4.2BB%)
K/9(K%)
BB/9(BB%)
8.2(22.8K%)
1.2(4.7BB%)
6.0
0.5

H/9
HR/9
8.2
0.6
.186
피안타율
.242
.231
피출루율
.270
.274
피장타율
.344
.505
피OPS
.615
15
WPA
9.4
21.5
bWAR
17.3
21
fWAR
14.9
필라델피아 시절 할러데이의 성적은 토론토보다 더 환상적이다. 54이닝을 더 뛴 필라델피아 시절의 할러데이의 볼넷 억제 능력이 페드로보다 뛰어남은 수치상 명백하다. 하지만 나머지 지표는 페드로가 조정 작업 없이도 여유롭게 앞서버린다. 승리 기여도는 여전히 4.2/6.1이나 차이 나는 페드로의 압승이다. 결론적으로 볼넷을 제외한 모든 지표를 앞서는 페드로의 2연속 사이 영 상 시즌의 압승이라고 할 수 있다.
[1] 조금이라도 비벼 보고 싶으면 위에 나와 있듯 1968년밥 깁슨 혹은 1985년드와이트 구든 정도는 불러와야 하는데 이들과 따져봐도 비교우위를 가진 스텟이 꽤 많을 정도인데다 비교적 투고타저에 기록한 저 둘의 성적보다 스테로이드 시대에 더 나은 수준의 기록마저도 찾아볼 수 있으므로 당연히 조정 스탯으로는 가볍게 압살할 수밖에 없다.[2] 물론 세이버로 볼수록 더 대단하긴 하다. 클래식 스탯은 비슷하게 찍은 선수들이 몇 있지만 역대급의 타고투저 시대에 저런 괴물같은 스탯을 찍은 건 페드로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하며,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확률이 매우 크기 때문.[3] 물론 페드로의 사구가 모두 빈볼이라고 확신하긴 어렵지만 본인이 예전에 언급한 바 있듯이 고의성 있는 사구가 다른 투수에 비해선 매우 많은 편이었다.[4] 물론 평소에는 굉장히 쾌활한 성격이고 장난도 많지만, 조금이라도 화나는 순간 매우 냉소적으로 변한다. 대표적으로 카림 가르시아 빈볼 사건.[5] 정확히는 1998~2004년이 스테로이드 시대 초절정기인데, 1998년에 새미 소사마크 맥과이어가 각각 66홈런과 70홈런을 기록하며 스테로이드 시대의 포문을 열었고, 2004년은 배리 본즈가 .OPS 역대 1위(1.422)를 한 시즌이며 자신의 마지막이자 역대 최고인 무려 7번째 MVP를 수상한 시즌이었다. 이러한 시대의 선수들을 페드로가 어떠한 약물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압도적으로 찍어 누른 것이니 그의 위대함은 말이 필요 없다.[6] 일명 알동. 소속된 다섯 팀의 전력이 모두 강한데, 특히나 타력이 막강하다. 다만 페드로의 전성기 때에는 탬파베이 레이스는 약했었고, 양키스는 거의 전원이 최소 20홈런 이상의 타자들로 구성되었을 정도로 MLB 전체에서도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강했었는데, 페드로는 그런 양키스 타자들의 넋이 나갈 정도로 관광을 보내면서(영상에도 찍힌 바 있다) 양키스 팬들에게도 등판할 때마다 공포 그 자체인, 외계인이 되어버린 것이다.[7] 3, 4, 5번 타자, 중심타자급[8] 수비 부담을 덜어낸 중심타자가 하위 타선에서 타격에만 전념한다고 생각해보라. 컨디션 관리와 휴식이 좀더 용이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설령 하위 타선의 타자라 해도 때에 따라서는 중심타자급의 폭발력을 순간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극단적으로 가정하면 이도류로 유명한 오타니 쇼헤이가 선발 등판을 한번 거르고 타석에 들어섰을 때의 공포감 정도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9] 이것이 바로 줄곧 내셔널리그, 특히 LA다저스라는 투수 친화 구장에서만 뛰었던 클레이튼 커쇼페드로 마르티네스보다 전통적인 지표인 통산 방어율이 무려 0.45 정도나 낮은 편이고, 심지어 조정방어율마저 엇비슷함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같은 급의 포스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같은 레벨 선상에 놓고 평가하는 칼럼니스트들이 소수 존재할지 몰라도 야구를 오랫동안 보아온 팬이라면 아예 비교 대상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페드로에게 실례다.[10] 근데 이 2001년의 조정 성적이 제이콥 디그롬의 전설적인 2021년 성적과 비슷하다.[11] 저스틴 벌랜더 문서의 2.2.5. 2010 시즌 목차에 "더불어 자신이 용가리 통뼈급으로 강인한 하드웨어를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는데,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시즌 동안 1053이닝(시즌당 평균 210이닝)을 소화한 것이다. 그야말로 MLB를 대표하는 이닝 이터가 된 것이다."라고 서술되어 있는데 1996년~2000년 페드로가 소화한 이닝은 1122이닝(시즌당 평균 224이닝)에 최소 213이닝이었을 정도로 이닝 이팅도 대단했다. 사실 이닝 이팅은 2001년 부상 이후 2003년까지 이닝이 계속 적어졌으므로 부상 없던 전성기 때에는 말이 필요없는 완전체였다. 그래도 이후 2년간 매해 217이닝을 소화했을 정도로 끈기도 대단했긴 하지만.[12] 이후 나온 팀 린스컴, NPB의 야마모토 요시노부 등이 단신 투수 중 파이어볼러인 데다가 단기 임팩트로 이름을 날린 것으로 유명한데, 일단 린스컴은 전성기 시절 성적도 페드로에 비하면 한 수 아래인데다 커리어가 짧게 끝났다. 그리고 야마모토는 2년 연속 투수 5관왕을 달성하였기에 타이틀상으로는 밀리지 않지만 야마모토는 NPB 투수인데다 투고타저에 이룬 성적이므로 MLB의 스테로이드 시대에 저 성적을 낸 페드로에 비해 한참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는다.[13] 호나우딩요는 생긴 것도 외계인을 연상시키는 느낌이 있었고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젊은 시절 페드로는 나름 준수하게 생겼고 전성기 때 단정한 스타일이어서 생긴 게 외계인이란 얘기는 없었다.[14] 보통 1997년~2003년을 전성기로 보고, 이 중에서도 1999년~2000년이 커리어 하이이다. 2000년 ERA+ 291, ERA- 35. ERA- 는 팬그래프스에서 사용하는 툴로 평균자책(ERA)는 낮으면 우수한 투수라는 기본적인 상식에서 출발한다. 100이 리그 평균이고 ERA처럼 낮을수록 좋다. ERA+의 경우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데, 페드로의 291이라는 기록은 예전에는 데드볼 시대까지 합쳐도 1위였으나, 데드볼 시대인 1880년 팀 키프의 293 기록이 새로이 발견되면서 역대 2위로 밀려났다.[15] 페드로의 97~03년, 혹은 좁게 보면 99~00년 활약은 투수의 단기 지배력을 논할 때에 흔히 샌디 쿠팩스, 드와이트 구든, 밥 깁슨과 함께 거론되지 않는 일이 없다. 그 중에서도 페드로의 전성기는 단연 역대 1위이며, 당시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있어서 '압도적인 위압을 주는 투수'로 불렸는데 약물 시대를 청정하게 지배했다는 점에서 현 시점에서는 평가가 더 올라갔다.[16] 랜디 존슨, 그렉 매덕스 등이 제일 많이 거론되는데, 누적 성적은 존슨과 매덕스 쪽이 상당한 우위에 있음에도 임팩트만으로 비교된다는 점에서 페드로의 임팩트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17] 스테로이드 시대에 금지약물을 복용하지 않고도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고 평가받는 다른 레전드 선수들은 대부분 30대 후반~40대까지 롱런했기에 최소한 금지약물 복용 의심은 받았고, 실제로 약물을 복용하고도 걸리지 않아 청정 레전드 선수로 평가받는 선수가 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지만, 페드로는 30대 중반이 넘자 에이징 커브가 심하게 와서 몇년 못 가고 은퇴했기 때문에 누적 성적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금지약물 복용 의심은 그 어떤 선수들보다도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18] 많이 나와야 시즌 70이닝을 나오는 불펜 투수들보다도 우수한 비율 스탯을 평균 20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7년간 유지한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언터처블이라 할 수밖에 없다.[19] 물론 통산 fWAR 82.5(투수만 84.4), bWAR 83.9(투수만 86.1)로 통산 성적 역시 위대하다. 누적 성적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누적 성적의 중요성이 떨어진 현재 기준으로 봤을 때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고도 남는 성적이다.[20] 다른 2명은 랜디 존슨, 케리 우드[21] 삼진이 흔해진 2010년대 후반 들어 K/9 10개 이상의 기록은 비교적 희소성이 많이 없어졌지만, 오늘날의 삼진 좀 잡는 투수들의 흔한 기록과 페드로, 랜디 존슨 시대의 삼진 기록은 비교를 불허하는 수준이다. 팬그래프에서 제공하는 K/9+(조정방어율 ERA+처럼 100을 평균치로 삼음. 조정 삼진율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를 보면 K/9 13.20을 기록한 1999년 페드로는 212, 11.78을 기록한 2000년 페드로는 188를 기록했는데, 2019년 선발 투수 중 가장 뛰어난 탈삼진 기록 보유자이자 1999년의 페드로와 비슷하게 13개가 넘어가는 K/9를 기록한 게릿 콜이 154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참고로 K/9 9.67을 기록한 1998년 페드로의 기록이 151이다. 불펜 투수까지 합쳐도 K/9 16이 넘어가는 조시 헤이더가 기록한 186이 가장 높은 기록이다.[22] 그렇지만 크리스 세일은 거듭된 부상의 재발로 200승과 3,000K가 불투명하며, 따라서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도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23] 두 부문 모두 커트 실링에게 뒤쳐진다. 실링의 K/BB는 3,116K/711BB이고 페드로의 경우는 3,154K/760BB. 현재는 K/BB 비율이 슈어저가 1위이고(4.46), 페드로의 순위는 실링과 커쇼(곧 3,000K 달성 예정) 등에 이어 4위까지 내려갈 예정이다.[24] 투표 결과는 대부분 1~5위가 페드로, 밥 깁슨, 드와이트 구든이 차지하는데 밥 깁슨의 1968년이나 드와이트 구든의 1985년조차도 페드로의 1999년과 2000년보다 높게 평가받지 못한다.[25] 400이닝 이상. 페드로= 10.15 랜디= 11.03[26] 이 49가 비현실적인 것이 규정이닝을 충족하지 못한 기록들을 포함해도 2020년 8월 18일 기준으로 역대 4위다.[27] 역대 1위 1968년 밥 깁슨: .469, 3위 1995년 그렉 매덕스: .482, 4위 1968년 루이스 티안트: .495, 5위: 1981년 놀란 라이언 .496[28] 론 기드리는 1.743이다.[29] 선발이 아닌 투수까지 포함하면 1981년 롤리 핑거스가 기록한 1.04가 있다. 이 기록은 최저 ERA 사이영상 수상이기도 하다. 다만 핑거스는 당시로써는 굉장히 많은 세이브 갯수인 26개나 기록하면서 수상한 마무리 투수였기에 선발투수로서의 성적으로 수상한 페드로보다 평가가 낮을 수밖에 없다.[30] 당시 몬트리올 엑스포스에는 러스티 스타우브, 게리 카터, 안드레 도슨, 블라디미르 게레로 등 스타 타자는 많았지만 투수로는 페드로가 거의 유일한 슈퍼스타였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31] 1997년 197[32] 2013년 194, 2014년 197이고 2016년에는 ERA+ 237이었지만 149이닝밖에 안되어서 규정이닝 미달, 2020년 코로나 단축 시즌에 58.1이닝으로 202를 기록하였지만 역시 의미없는 기록[33] 2017년 178[34] 2019년 179. 류현진도 2019년에 조정방어율 179를 기록하였는데, 평균자책점 1위 타이틀을 얻긴 했지만 2.32라는 그렇게 높지 않은 ERA로 2010년대를 지배했던 슈어저, 벌랜더, 커쇼 급으로 조정방어율이 높은 이유는 2019년이 MLB 사무국의 장난질로 인해 공인구 반발력에 문제가 생겨 페드로가 뛰었던 약물시대급 타고투저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장 2019년에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통산 최다 홈런 기록, 홈런더비 최다홈런, 신인선수 최다홈런 등등 여러가지 타격 기록이 갱신됐고, 2018년에만 해도 양대리그에 존재했던 1점대 ERA 투수들이 사라지고 2019년에는 2점대 투수도 손에 꼽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35] 페드로 데뷔년도[36] 190 이상[37] 1~13위 중에서 1911년 이후 기록은 페드로뿐이다. 14위인 1984년 드와이트 구든부터 19위인 1968년 밥 깁슨을 제외하면 또 데드볼 시대의 인물들만 있다. 이 다음 나오는 1911년 이후 인물이 25위인 2014년 클레이튼 커쇼다.[38] 이건 100이 평균이고 숫자가 적을수록 좋다.[39] 1,100이닝 이상.[40] 1~20위의 평균 이닝은 4,500이닝 정도 된다.[41] 랜디는 20fWAR(2000~2001)/20.8bWAR(2001~2002). 그런데 랜디의 2000~2001 타격 bWAR이 -1.0이라 엄밀히 말하면 19.8이다. fWAR 역시 2001년 타격이 -0.4(2000년은 0.0)라서 19.6이다.[42] 2,000이닝 이상 투구한 선발투수 중 2위이다. 1위는 클레이튼 커쇼, 참고로 2021시즌이 끝난 33세 커쇼의 ERA+는 155지만, 33세 페드로는 당시 166을 기록했다.[비율] K/9 10, BB/9 2.4, K/BB 4.15, H/9 7.1, HR/9 0.8.[43] 타격 WAR 제외. fWAR은 역대 투수 중 15위, bWAR은 17위에 해당하는 기록.[44] 다만 본즈도 약을 안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페드로도 전성기를 누리기 전인 1996년까지는 본즈에게 많이 털렸기 때문에 통산 피OPS는 1이 넘는다.[45] 불펜을 합쳐도 2.16의 마리아노 리베라의 뒤를 이은 2위이다.[700이닝] 기준[46] 깁슨과 구든의 경우 4년~7년으로 누적을 비교할 경우 페드로에게 크게 뒤처지기 때문에 단일시즌을 비교한다.[47] 물론 코팩스의 시대처럼 시대의 차이를 감안해야 한다.[48] 확실히 조정스탯은 페드로가 압도하긴 하지만, 이닝 차이로 bwar이 밀린다. 데드볼 시대라 fip같은 스탯은 제대로 책정되지 않기도 했고.[49] 코팩스, 파머, 맥클레인, 클레멘스, 페드로, 린스컴, 커쇼, 슈어져, 디그롬.[50] bWAR 7, fWAR 5.7. 물론 이 성적도 만장일치 사이 영 상이 부럽지 않은 정도이나 나머지 세 시즌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이 시즌이 오히려 묻혀버리고 말았다.[51] 하지만 이마저도 페드로의 1997년이 근소히 위이다.[52] 표에는 없지만 몸에 맞는 공은 각각 40개, 46개로 이닝수 차이를 보면 큰 차이가 아니며 비율은 거의 동일해서 그 차이도 아니다.[53] 투수 입장에서는 막아낸 실점[54] 탈삼진은 그냥 아웃카운트를 잡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대신 삼진을 잡으면 홈스틸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3루 주자에 의해 실점을 당할 일은 거의 없다.[55] 피안타-피출루-피장타율, ERA(+), FIP, 피홈런, 실점, RE:24 등 실점(자책점)/아웃 카운트를 잡는 모든 지표가 랜디 존슨보다 낫다.[56] 물론 파업으로 인해 손해를 매우 크게 봤다.[57] 팀 키프의 기록은 저 당시에는 없었고 2000년대 중반이 지나서 발견됐다. 그나마도 1880년이고 수치가 2밖에 차이나지 않아서 페드로가 더 대단하다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58] 매덕스의 ERA+, WHIP 기록 모두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역대 최고치를 갱신[57]하며 넘어섰고 거기에 FIP/fWAR로 대표되는 세이버매트릭스 지표에서 페드로가 매해 기록들을 갱신해 나간 점이 크다. 거기에 탈삼진을 잡는 유형의 투수도 아니라서 라이트팬들에게 잘 어필이 안 되는 것도 있다.[59] 매덕스는 1점대 FIP 기록이 없지만 3점대로 내려간 적도 없다. 페드로는 1998년 3.40이라는 처참한 수치를 찍었지만 1999년이 1.39라 평균은 페드로의 승이다.[60] 다만 ERA+는 분산 형식의 스탯이라 103과 119의 차이보다 153과 169의 차이가 훨씬 크다. 즉 203과 219의 차이도 어마어마하나 이 경우는 4년 편균으로 저 ERA+를 찍는 둘다 상식 밖을 아득히 넘어선 경우라서...[61] 당장 3.40의 FIP와 2.89의 ERA만 봐도 그렇다. 다만 이 해에 페드로는 사이 영 상 2위를 기록했는데, 이 때 1위가 약을 빨고 미쳐버린 로저 클레멘스였고, 이 땐 이미 약을 빨며 기량이 수직 상승하던 시기였기에 약켓이 약만 안 빨고 그낭저냥한 스탯만 찍었어도 페드로가 탈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62] 코팩스의 은퇴 2년 후인 1968년 밥 깁슨의 폭거로 MLB에서 스트라이크존을 좁히고 마운드 높이를 내린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 시대는 그만큼 투고타저가 심했다.[63] 당장 코팩스는 통산 2.76ERA/131ERA+지만 페드로는 2.93/154로 ERA가 0.17이나 차이나는데 조정으로는 23이나 높다. 거기다 코팩스처럼 첫 12년만 따질 경우에는 2.58/175라는 미친 수치가 나온다.[64] 피안타율. 레퍼런스는 BA/팬그래프스는 AVG로 쓴다.[65] 물론 투수 WAR을 계산하는 Adj RA는 이닝이 많아지면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Adj RA가 더 나빠질 수도 있지만 더 좋아질 수도 있기 때문에 무의미한 가정이다. 그리고 이 정도 투수들은 혹사로 인한 피로 누적을 감안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던지면 던질수록 비율 스탯은 과도한 이닝 소화로 인해 다소 떨어지더라도 WAR 자체는 오르면 올랐지 절대 떨어지지는 않는다.[66] 코팩스야말로 페드로보다 극단적인 완전한 전성기 몰빵형 투수고, 그러면서 전성기 임팩트도 페드로에 밀린다. 그렇기 때문에 통산 WAR이 거의 두 배 차이가 난다. 올드스쿨적인 낭만을 평가 기준으로 넣어도 페드로 역시 쿠팩스에 밀리지 않는 엄청난 낭만과 임팩트를 선보였기 때문에 쿠팩스를 칼튼, 그로브, 스판 다 제끼고 좌완 원탑으로까지 엄청나게 고평가하던 20세기의 평가 기준이면 몰라도 현대의 평가에서는 쿠팩스가 페드로보다 위로 평가받는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된다. 물론 이닝 소화력만 놓고 보면 쿠팩스가 페드로의 위라는 평가를 받지만 시대의 차이가 있으므로 이를 감안하면 그 차이도 어느 정도 상쇄된다.[67] 커리어 통산 57이닝 10실점(6자책) 4승 3패.[68] 그나마 제이콥 디그롬의 2018~2019년이 커쇼의 전성기와 비견되지만 이마저도 비율 스탯에서는 커쇼에게 대부분의 지표에서 밀리며 세이버 스탯은 분명 디그롬이 조금 더 앞서지만 커쇼의 2014년이 부상으로 누적에서 손해를 본 시즌이라 33경기 풀타임으로 젠가해서 다시 계산해 보면 당연히 커쇼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69] 1위-2위-1위-1위[70] 피안타율. 레퍼런스는 BA/팬그래프스는 AVG로 쓴다.[71] 피안타율. 레퍼런스는 BA/팬그래프스는 AVG로 쓴다.[72] fWAR TOP3: 커쇼(59.1), 슈어저(55.0), 벌랜더(53.8), bWAR TOP3: 커쇼(59.3), 벌랜더(56.2), 슈어저(56.1)[73] 등판 간격상 92이닝이 깔끔힌게 안 끊어지고 아웃카운트 2개 차이니 거의 같다고 봐도 무방.[74] (100÷27)x100= 370.[75] (100÷20)x100=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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