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칼튼

덤프버전 :

스티브 칼튼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스티브 칼튼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파일:STL1967.gif파일:1980필리스우승로고.gif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1967
1980





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Carlton%20Steve%20plaque%2090_NB_0.png
스티브 칼튼
헌액 연도
1994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95.6% (1회)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7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퍼거슨 젠킨스
(시카고 컵스)

스티브 칼튼
(필라델피아 필리스)


톰 시버
(뉴욕 메츠)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7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랜디 존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스티브 칼튼
(필라델피아 필리스)


게일로드 페리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8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브루스 수터
(시카고 컵스)

스티브 칼튼
(필라델피아 필리스)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8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스티브 칼튼
(필라델피아 필리스)


존 데니
(필라델피아 필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81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투수 골드 글러브
필 니크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스티브 칼튼
(필라델피아 필리스)


필 니크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파일:MLB 로고.svg 메이저 리그 투수 트리플 크라운

샌디 코팩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66년)

스티브 칼튼
(필라델피아 필리스, 1972년)


드와이트 구든
(뉴욕 메츠, 1985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번호 32번
어니 브로리오
(1959~1964)

스티브 칼튼
(1965~1971)


빌 스테인
(1972~1973)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번호 32번
버키 브랜든
(1971)

스티브 칼튼
(1972~1986)


영구결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번호 32번
댄 글래든
(1984~1986)

스티브 칼튼
(1986)


댄 글래든
(1986)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번호 32번
팀 헐렛
(1983~1986)

스티브 칼튼
(1986)


팀 헐렛
(1987)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등번호 32번
존 버처
(1986)

스티브 칼튼
(1987)


러디 시아네즈
(1990~1991)
미네소타 트윈스 등번호 38번
론 워싱턴
(1981~1986)

스티브 칼튼
(1987~1988)


카를 베스트
(1988)




파일:Steven Norman Carlton.png

필라델피아 필리스 No. 32
스티브 칼튼
Steve Carlton

본명
스티븐 노먼 칼튼
Steven Norman Carlton
출생
1944년 12월 22일 (79세)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신체
193cm / 95kg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63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STL)
소속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65~1971)
필라델피아 필리스 (1972~1986)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86)
시카고 화이트삭스 (1986)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87)
미네소타 트윈스 (1987~1988)

1. 개요
2. 선수 생활
3. 피칭 스타일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5. 연도별 성적
6. 기타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미국의 전 아구 선수.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대표했던 선수이자 197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가 최전성기였다. 올스타 10회, 사이 영 상 4회 수상에 메이저리그 역대 좌완 투수 최다승 2위 및 최다 탈삼진 2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1]

아울러 팀 통산 패전이 1만에 달했던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암흑기를 끝내고 빛나는 영광의 시절을 이끄는 주역으로, 거포 마이크 슈미트와 함께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팀 역사상 투/타를 각각 대표하는 스타로 꼽힌다. 당연히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통산 성적은 24시즌 동안 329승 244패, 3.22 ERA, 5217.1이닝, 4136K, K/9 7.13, BB/9 3.16, K/BB 2.26, HR/9 0.71을 기록했으며 역대 좌완투수 중 랜디 존슨과 더불어 300승과 3000K를 모두 달성한 투수다.(둘 다 3000K를 훌쩍 뛰어넘는 4000K를 달성.)[2] 이외에 재미있는 기록으로 통산 최다 보크 1위(90개) 기록이 있다.[3] 단, 좌완의 장점을 활용해 견제사도 1위(144개)다.[4] 즉 아웃 아니면 보크식의 극단적인 견제동작을 가졌다고 보면 된다. 아울러 MLB 최후의 300+ 이닝을 달성한 투수이다.

특히나 1972 시즌의 칼튼은 클래식 스탯으로나 세이버상으로도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지만[5] 당해 팀이 부진했으며, 후대에 비슷한 임팩트를 기록한 다른 투수들로 인해 다소 묻혔다.[6]

2. 선수 생활[편집]



2.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편집]


파일:external/www.halloffamememorabilia.com/p-30562-steve-carlton-st-louis-cardinals-8x10-photo-pose-hf-9044.jpg
1944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난 칼튼은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배워 자유계약신분으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하기에 이른다. 루키 시절에도 뛰어난 스터프를 바탕으로 주목받는 선수였고, 1960년대 밥 깁슨이 리그를 호령하던 카디널스의 전성 시절에 한 몫 하면서 1967년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카디널스 뛴 7시즌 동안 77승을 거두었지만, 이 당시의 칼튼을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준수한 젊은 선발요원 정도.

물론 평균자책을 보면 2점대 중반부터 3점대 중후반까지 지금 보기에는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1960년대 메이저리그는 사상 최고의 투고타저의 시대였기 때문에 3점대 중후반의 평균자책은 대단히 평범한 수치였다. 그래도 1969년에는 17승에 2.11의 평균자책을 기록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세인트루이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에는 20승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팀에서는 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고, 실제로 1969년을 제외하면 조정평균자책이 에이스라 할 정도로 높은 편은 아니다. 게다가 카디널스에는 전설적인 에이스 밥 깁슨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칼튼을 고액 연봉까지 줘가며 지킬 필요는 없었다. 당시에는 밥 깁슨이 무릎부상 때문에 커리어를 길게 가져가지 못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하던 시점이었다. 무엇보다 스티브 칼튼의 성적과 성장은 1969년부터 배운 슬라이더의 영향력이 아주 컸는데, 당시 개념으로 슬라이더는 스크류볼에 못지않게 선수에게 부상을 입히는 공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 때문에 1969년 스티브 칼튼이 처음 슬라이더를 던지기 시작한 것은 첫 6경기에서 4패를 당해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투수코치가 인정한 뒤였다. 더욱 큰 문제는 실제로 스티브 칼튼은 슬라이더를 던지면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1970년에는 20승을 하기는 했지만 평균자책점은 전년도의 2.11에서 3.71로 수직상승했고, 시즌 막바지에는 슬라이더는 전혀 던지지 않았다.

결국 그의 재능이 더 발전할 수 없을 거라 판단했는지, 연봉을 더 올려달라는 칼튼의 요구에, 세인트루이스는 1971시즌이 마친 후, 그를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투수 릭 와이즈(Rick Wise)와 트레이드했고, 이는 카디널스 역사상 최악의 실수로 남게 되었다. 사실 릭 와이즈는 세인트루이스에서 뛴 2년간 매년 16승에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올스타에도 한번 선정이 되었으며,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의 올스타 외야수 레지 스미스와 트레이드 되는 등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다. 문제는 트레이드 상대인 스티브 칼튼이 너무 잘했다는 것이다.


2.2.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절[편집]


파일:external/24.media.tumblr.com/tumblr_lwaw9d23h51qzz33qo1_1280.jpg
칼튼의 트레이드가 실수였다는 것은 트레이드가 된 바로 다음 해인 1972년에 입증되었다. 칼튼은 1972년 41경기에서 무려 346.1이닝을 던지며 30완투/8완봉 27승 10패 1.97ERA/182ERA+ 2.01FIP 87BB/310K를 찍으며 사이 영 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시즌 칼튼은 무려 11.1이라는 당시 역대 1위의 투수 단일 시즌 fWAR을 기록했다.[7][8] 이 해에 팀이 거둔 성적은 고작 59승뿐이었고 그리고 그는 30번의 완투를 했다.[9]

세인트루이스 시절부터 팔꿈치가 좋지 않았고, 심지어는 슬라이더 제구가 다시 흐트러지는 등 3년 정도 고생했지만, 1977년 23승 10패 평균자책 2.64로 부활에 성공하며 다시 사이 영 상을 득템. 그리고 1980년에 다시 24승 9패로 역시 사이 영 상을 또 다시 득템, 마지막으로 1982년에 23승을 거두면서 본인 커리어의 마지막 사이 영 상이자 통산 4번째 사이 영 상을 획득했다. 1980년의 경우 304이닝을 던졌는데, 이후로 점점 투수들의 분업화와 5인 로테이션 체제가 정착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역사상 최후의 300이닝 돌파를 달성한 선수로 기록에 남았다. 정리하자면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칼튼이 리그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탈삼진 능력이 빼어나서 필라델피아에서 다섯 번의 탈심진왕에 올랐다. 선수 생활 후반부에는 놀란 라이언게일로드 페리와 치열한 통산 탈삼진왕 경쟁을 펼치며 전설적인 대투수 월터 존슨의 기록을 넘었다. 이 치열한 경쟁은 먼저 게일로드 페리가 떨어져 나가고, 라이언과 칼튼의 대결이 되었는데, 최후의 승자는 칼튼이 은퇴한 후로도 5년을 더 뛰며 5,000 탈삼진을 넘긴 라이언. 칼튼은 대신 왼손 투수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가졌다가 이 또한 랜디 존슨에 의해 깨졌다.

그가 미친듯이 팔 빠져라 던지는 사이 팀 전력이 좋아지면서 마침내 필라델피아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영광의 세월을 보낸다. 이 시기 6번의 PO에 나가는데, 칼튼은 모두 등판했다. 초기에는 PO에서 다소 부진했지만, 점차 이 또한 나아지면서 1980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사상 첫 월드시리즈 우승에 한 몫 했다.

아쉽게도 필라델피아에서 은퇴하지는 못했는데, 말년에 부진하자 필라델피아가 가차없이 방출해 버린 것. 그 뒤 여러 팀을 떠돌아다니다가 결국 1988년 조용히 은퇴를 선언했다.


3. 피칭 스타일[편집]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로 손꼽히는 슬라이더가 그의 주무기였다. 각이 크고 예리한 슬라이더를 바탕으로 타자를 농락했는데, 원래는 직구와 커브만 가진 평범한 투수였지만, 슬라이더를 장착하고 백도어 슬라이더로 우타자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전성기를 열었다. 하지만 친정팀 선배 밥 깁슨은 자기 슬라이더가 더 낫다면서 칼튼의 HoF 헌액식 때 "좌완 중에서는 최고지"라고 말했다. 물론 깁슨과 칼튼은 우완과 좌완에서 역대 최고의 슬라이더를 던진 투수로 꼽히는데엔 전문가들의 이견이 없다. 팬들의 기억에는 이 두 사람보다 다음 세대인 랜디 존슨의 슬라이더가 더 선명하지만.

칼튼은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밝히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던 선배 밥 깁슨이 팔꿈치 통증으로 고생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자신은 직구와 커브만 던지고 슬라이더는 안 던졌으므로 자신이 좋은 슬라이더를 던질 수 있는지 확신이 없었지만, 1968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으로 방일해서 일본 선발팀과 친선경기를 하던 중 오 사다하루가 앞선 타석에서 홈런을 치자 그를 위협하려고 처음으로 몸쪽 슬라이더를 던져 봤다고 한다. 이때 오 사다하루가 어깨쪽으로 날아오는 그 공을 보고 몸을 뒤로 피하는데도 공 궤적이 휙 변해 스트라이크존에 꽂히는 걸 보고 칼튼은 '내가 멋진 슬라이더를 가졌구나'라고 비로소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전설적인 슬라이더의 봉인을 풀었다고. 타자들을 구위로서 찍어누르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많은 삼진을 기록할 수 있었고, 동시에 완투형 투수로서 1967년부터 1982년까지 무려 16년 연속 10완투 이상 기록한 선수였다.

그가 이런 스태미너와 구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투수로서는 거의 최초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한 덕분이었다. 아울러 쿵푸를 즐기면서 몸의 유연성을 길렀고, 철사장으로 왼손을 단련했다고 한다. 요컨대 당대에 이미 따를 자가 없는 훈련량을 보여줬다.

그리고 강속구와 슬라이더의 조합으로 타자를 농락했지만, 수비력도 괜찮은 편이었다. 특히 왼손 투수로서 견제 실력이 빼어나서 타자들의 도루를 억제할 수 있었는데, 대신에 이 견제가 보크와 견제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었기 때문에 통산 보크 순위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90개로 2위와 무려 2배가 넘는다.) 대신에 이 빼어난 견제 실력은 통산 견제사 부문에서도 역시 압도적인 1위를 가져다 주었다. (통산 144개.)

또한 기록상으로 봐도 이닝이팅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풀타임 선발로 뛰기 시작한 1967년(22세)부터 노쇠화가 진행 중이던 1984년(39세)까지 17시즌 연속으로 세자릿수 이닝을 찍었고, 이중 200이닝+를 찍지 못한 시즌은 2시즌밖에 되지 않는다.[10] 1968년부터 1980년까지 17년 연속 200이닝+를 찍었고 그중 300이닝+ 시즌이 2시즌(1972, 1980)이나 된다. 또한 이중 MLB 최다이닝 소화 시즌이 5시즌(1972~73, 1980, 1982~83)이다. 게다가 스티브 칼튼의 1980년 시즌이 MLB 최후의 단일 시즌 300이닝 투수이다.[11]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편집]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스티브 칼튼
69
285
266
58
HOF 입성자 평균
40
185
100
50

  • JAWS - Starting Pitcher (17th)

career WAR
7yr-peak WAR
JAWS
스티브 칼튼
90.4
54.3
72.4
선발투수 HOF 입성자 평균
73.9
50.3
62.1


5. 연도별 성적[편집]


파일:MLB 로고.svg 스티브 칼튼의 역대 MLB 기록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65
STL
15
0
0
0
0
25
2.52
27
3
8
1
21
1.400
156
0.2
0.8
1966
9
3
3
0
0
52
3.12
56
2
18
0
25
1.423
117
0.9
0.4
1967
30
14
9
1
0
193
2.98
173
10
62
2
168
1.218
110
4.4
2.8
1968
34
13
11
0
0
232
2.99
214
11
61
3
162
1.185
97
4.0
1.8
1969
31
17
11
0
0
236⅓
2.17
185
15
93
4
210
1.176
164
4.9
6.9
1970
34
10
19
0
0
253⅔
3.73
239
25
109
2
193
1.372
111
3.6
4.2
1971
37
20
9
0
1
273⅓
3.56
275
23
98
5
172
1.365
102
3.1
4.1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72
PHI
41
27
10
0
0
346⅓
1.97
257
17
87
1
310
0.993
182
11.1
12.1
1973
40
13
20
0
0
293⅓
3.90
293
29
113
3
223
1.384
97
4.5
2.2
1974
39
16
13
0
0
291
3.22
249
21
136
5
240
1.323
118
4.9
4.8
1975
37
15
14
0
0
252⅓
3.56
217
24
104
2
192
1.257
105
3.5
2.2
1976
35
20
7
0
0
252⅔
3.13
224
19
72
1
195
1.172
113
5.1
3.9
1977
36
23
10
0
0
283
2.64
229
25
89
4
198
1.124
153
5.1
5.9
1978
34
16
13
0
0
247⅓
2.84
228
30
63
3
161
1.177
126
2.8
2.9
1979
35
18
11
0
0
251
3.62
202
25
89
5
213
1.159
106
4.3
2.4
1980
38
24
9
0
0
304
2.34
243
15
90
2
286
1.095
162
8.8
10.2
1981
24
13
4
0
0
190
2.42
152
9
62
1
179
1.126
151
5.3
5.5
1982
38
23
11
0
0
295⅔
3.10
253
17
86
1
286
1.147
119
8.2
5.5
1983
37
15
16
0
0
283⅔
3.11
277
20
84
3
275
1.273
116
7.4
5.5
1984
33
13
7
0
0
229
3.58
214
14
79
0
163
1.279
102
3.9
2.3
1985
16
1
8
0
0
92
3.33
84
6
53
0
48
1.489
112
0.5
1.0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86
PHI/SF/CHW
32
9
14
0
0
176⅓
5.10
196
25
86
1
120
1.599
79
0.5
-1.7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87
CLE/MIN
32
6
14
1
0
152
5.74
165
24
86
4
91
1.651
79
-0.2
-0.6
1988
MIN
4
0
1
0
0
9⅔
16.76
20
5
5
0
20
2.586
25
-0.4
-0.9
MLB 통산
(24시즌)

741
329
244
2
1
5217⅔
3.22
4672
414
1833
53
4136
1.247
115
96.5
84.1


6. 기타[편집]


  • 기자와 사이가 정말 안 좋은 것으로 유명했다. 심지어 필라델피아 시절에는 기자들과 단 한 마디의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죽하면 영어를 정말로 못하는 멕시코 출신 레전드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와 묶여서 "내셔널리그엔 영어를 못하는 투수가 둘 있다"는 소리를 듣기까지 했을 정도. 그래도 마지막 필라델피아에서 방출될 때, "그동안 필라델피아 팬들이 성원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한다."는 멘트는 남겼지만. 워낙 필라델피아의 언론과 팬들이 극성맞은 면이 있어서 그랬다고 하는 편이 맞을 듯. 필라델피아 필리스 항목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필라델피아 경찰서를 배경으로 하는 미드 콜드 케이스에서는 칼튼과 마이크 슈미트는 필리스 역사에 남을 프랜차이즈 스타인데도 이놈의 필리들이 워낙 극성맞아놔서 툭하면 그놈의 칼튼 그놈의 슈미트 하면서 욕먹는다. 은퇴 후, 95%가 넘는 득표율로 한 번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아울러 그의 등번호 32번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로이 할러데이는 필리스에 와서 34번으로 옮겼다.) 오늘날에는 필리스는 물론 MLB에서도 손꼽히는 대선수로 존경받고 있기에 현역 시절처럼 잠깐 못한다고 극성맞은 필리들에게 욕먹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 원체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에다가 은퇴 뒤에는 재산 관리자의 실책으로 선수 시절 모아둔 수백만불의 연봉도 거의 다 날려서, 90년대 초에는 콜로라도의 산골에 은둔하며 요가 등에 심취하고 정부가 모종의 전파를 흘려 시민들의 의식을 통제한다는 등의 음모론에 관심을 갖는다는 좀 서글픈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요새는 구단 행사에도 간간히 참석하는 등 다소 상황이 호전된 듯.

  • 온라인 게임 마구마구에서는 2017년 기준 최고의 선발투수 용병 중 하나로 손꼽힌다. 본판의 슬라이더를 반영한 듯한 특구 슬라이더가 풀샷의 경우 직구처럼 오다가 스트라이크 존의 절반 이상 떨어지는 큰 각을 가져서 마구마구 내에 존재하는 모든 슬라이더중 원탑으로 꼽히기 때문. 80년대 MLB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는 블랙 등급의 선수카드만 존재했는데, 타자에 비해 효율이 떨어지는 투수 블랙 카드임에도 최정상급 가격을 호가했으며, 80년대 MLB 업데이트로 잠재력도 별로고 역속 보정도 안되고 체력도 영 좋지 않은 83년, 84년도 레어만 있었을 이 시절에도 특구 슬라이더 하나만으로 거래창 1~2페이지에 올라오는 괴물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잠재력, 역속보정, 체력 모두 훌륭한 82년도 엘리트와 역보는 되지 않지만 체력이 좋은 82년도 레어가 나오고 나서는 하이엔드와 프로 1,2군 유저들 모두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는 중이다. 게다가 구종 하나하나를 뜯어봐도 모든 투수가 기본으로 갖고 있는 포심을 필두로 맞춰잡기나 타이밍 뺏기 딱 좋은 슬로우커브 및 서클체인지업, 역회전으로 쏠쏠한 재미를 볼 수 있는 스크류볼, 포심과의 지옥의 이지선다가 가능하며 급격히 꺾여서 은근 치기 커터까지, 버릴만한 구종이 단 하나도 없다. 잠재력 "Lefty"[12] 혹은 "D마스터"[13]를 띄우고 강화슬커나 강화스크류볼을 장착한 칼튼을 상대하다보면 마구 영자가 필리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7. 관련 문서[편집]



[1] 각각 1위는 363승의 워렌 스판, 4875탈삼진의 랜디 존슨.[2] 300승-3000K를 동시에 달성한 사람은 월터 존슨, 톰 시버, 게일로드 페리, 돈 서튼, 그렉 매덕스, 필 니크로, 스티브 칼튼, 랜디 존슨, 놀란 라이언, 로저 클레멘스뿐이며, 300승-4000K를 동시에 달성한 사람은 탈삼진 역대 1위, 약쟁이, 빅 유닛, 스티브 칼튼뿐이다.[3] 통산 보크 2위는 밥 웰치로 고작(?) 45개다.[4] 참고로 최고의 견제 동작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앤디 페티트가 93개다.[5] 단순히 fWAR만 봐도 좌완투수 역대 1위인 11.1이다. 이 위에는 11.6의 페드로 마르티네스만이 있다.[6] 특히나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충공깽스러운 전성기로 인해 페드로가 임팩트의 상징으로 굳어지며 그런 경향이 강해졌다. 칼튼은 누적 역시 야구 역사에 손꼽히는지라 단일 시즌 임팩트로는 다소 덜 주목받는다.[7] 1888년 실버 킹이 585.2이닝을 던지며 11.1을 기록한 적이 있다.[8] 이 기록은 1999년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겨우 213이닝으로 11.6을 찍으며 경신했다. 단일 시즌 fWAR 11이 넘는 건 이 3명뿐이다.[9] 참고로 칼튼을 뺀 나머지 투수들이 기록한 평균자책은 4점대. 역대 단일 시즌의 한 선수가 팀 내의 전체 승에서 공헌한 최고 비율 기록.[10] 풀타임 첫해인 1967년(193이닝)과 1981년(190이닝). 1981년은 파업으로 인한 시즌 단축으로 200이닝을 달성하기엔 어려운 여건이었다.[11] 분업화가 심해진 현재로써는 단일 시즌 300이닝은 절대 불가능하고 나와서도 안 되며 200이닝 소화조차도 힘들어진 상황이다.[12] 칼튼 전용 잠재이며 효과는 D계열 무브먼트 7% 증가, 즉 특구 슬라 무브먼트 증가. 기존의 투수 별명 잠재는 ~마스터와 ~스페셜 잠재가 합쳐져 무브먼트 증가와 투구 체력 감소 효과를 동시에 받았지만, 칼튼은 슬라이더가 너무 사기 구종인지라 최초로 한가지 효과만 받은 것이다.[13] Lefty와 동일한 범용 잠재.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5 05:11:34에 나무위키 스티브 칼튼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