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야구)/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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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4. LG 트윈스 시절
4.1. 2014 시즌
4.2. 2015 시즌
4.3. 2016 시즌
6. kt wiz 시절
8. 아마추어 야구
9. 코치로서의 평가


1. 개요[편집]


최태원의 지도자 경력을 다룬 문서.


2.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그 후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SK 와이번스에서 주루코치로 있었다. 2007 시즌이 끝나고 KIA 타이거즈로 옮기게 되었다

SK 코치 때 주목할 만한 사건으로는 때 펠릭스 호세신승현의 난투극 때 살신성인을 보여주었다.


3. KIA 타이거즈 시절[편집]


2007 시즌이 끝나고 SK 시절 은사였던 조범현이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임명되면서 KIA 타이거즈 코치로 갔다.

초반에는 좀 많이(…) 헤메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파이팅 넘치는 모습에 조범현 감독과 그 라인들을 까던 기아팬들 조차도 최태원 코치는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시절까지만 해도 선수들을 잘 통솔하고, 특유의 파이팅 넘치는 모습, 그리고 최태원보다 훨씬 무능한 인물 덕분에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았다.


4. LG 트윈스 시절[편집]


2011년 10월 18일, 조범현 감독이 사퇴하면서 결국 LG 트윈스로 이동했다. 같은 쌍방울 레이더스 출신 선배인 김기태 감독의 부름을 받은 것.

주루코치로서의 능력으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았다. 차라리 유지현이 주루코치를 보는 시절이 훨씬 낫다는 게 중론인데, 뇌없는 주루 지시로 2013시즌 플레이오프 3차전 9회말 한 이닝에 홈에서 보살을 두 번당하는 역사를 썼다. 후에 밝힌 바에 따르면 이 보살 사건 이후로 자책감을 크게 느꼈다고 하며 세이버매트릭스 등 최신 야구 이론을 다시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4.1. 2014 시즌[편집]


2014시즌에도 7월 10일 어이없는 주루 지시로 다 이길 경기를 놓치는데 일등공신이 되면서 가루단위로 까였다.

2014년 10월 27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3회초 작은 이병규의 좌중간 2루타 때 김용의의 뇌주루로 인해 비난을 받았다. 최태원 코치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도 있는 것이, 넥센 중견수 이택근의 중계 플레이 시 박용택에게 2루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김용의가 그것을 자신에게 지시한 줄 알고 2루와 3루 사이에서 머뭇거렸다가 홈으로 쇄도, 결국 홈에서 태그 아웃되고 말았다. 거기에 이미 2루를 지나쳤던 이병규는 2루로 귀루하는 박용택을 안 보고 멍때리다가 선행 주자 추월로 아웃되었다. 전적이 화려했던 최태원 코치였기에 모든 비난이 그에게 향했지만, 1차적으로는 뇌주루를 시전한 김용의에게 책임이 있다.

2014 시즌 후 김무관 코치와 김민호 코치가 타 팀으로 이적한 데 반해, 여전히 살아남아 2015년에도 보게 되었는데, 팬들은 태원 또 본다고 상당히 싫어했다.

더군다나 2015시즌에도 3루코치를 본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 말이 많은 이유가 2014시즌 기준으로 최태원은 LG 코치 가운데 짬이 높은지라, 연봉서열이 작년에도 김무관 코치에 이어 2위였고 능력에 관계없이 나름대로의 친화력 덕에 윗선에 잘 보여서 살아남은 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김기태 감독이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하면서도 최태원을 자신이 데려왔음에도 데려가지 않았고 인맥으로 연결되 있는 김성근 & 조범현 감독조차도 안 데려간 걸 보면 능력에 대해 확실하게 무능하다는걸 알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라고 LG팬들 사이에서 말이 나왔다. 그래서 향후 LG에 오래 재직한 노장선수들중에 은퇴자가 나온다면 신경식과 더불어서 제발 LG에서 잘리고 팀내에서 프랜차이저 코치로 채우길 바랄 정도였다.

롯데 자이언츠처럼 능력이 검증 안 되어도 델파이 폭스 기법으로 저비용에 경력 일천한 코치라면 몰라도, 최태원은 이미 코치 짬밥도 10년째임에도 전혀 발전이 없는 모습을 보고 심지어는 공부 안 하고 정치해서 살아남는 코치의 전형적인 유형이라고 볼 정도였으며 고비용 저효율 코치라고 까기까지 했다. 우습게도 2015년 LG 코치진 중 이 최태원과 신경식 코치가 연봉서열 2, 3위이다.


4.2. 2015 시즌[편집]


2015년 2월 3일 최태원 코치는 LG의 주루플레이에 대해 자살 특공대 라는 계획으로 그 위엄넘치는 계획을 세웠다.

이런 인터뷰에서 보더라도 얼마나 주루코치로써의 식견이 떨어지는지 한눈에 느껴지는 대목이다. 죽어도 좋으니깐 무조건 뛰라고 강요하고 자살 특공대라는 말도 안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작년의 실패를 거울삼아서 선수들과 의논하고 효과적인 주루 플레이에 대한 연구 대신, 막가파식 주루를 강요하는 저런 모습에서 공부 안 하는 코치의 전형을 볼 수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2015년 6월 15일 코치진 개편으로 박종호, 서용빈과 보직이 맞바뀌며 노찬엽과 함께 2군으로 내려갔다. LG 팬들은 철밥통 두 사람이 2군으로 내려가서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다.

한편 장광호 2군 배터리 코치와 윤학길 2군 투수코치가 재계약에 실패했음에도 또 살아남았다.

그러나 신임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쌍방울 레이더스, SK 와이번스 시절에 한 솥밥을 먹었던 조원우가 부임하면서 롯데 자이언츠의 코치로 갈 가능성이 있나 싶었지만 올해도 또 살아남았다. 내년에 또 볼 듯 하다.


4.3. 2016 시즌[편집]


시즌이 종료된 후 팀을 떠났다. 이후 한화의 주루코치로 부임하였다는 기사가 떴다.


5. 한화 이글스 시절[편집]


김성근 감독이 1군 경기 운영 외엔 거의 모든 권한을 뺏긴지라 김성근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음에도 한화로 오게 되었다. 프런트의 의도인지는 불명이나 LG 팬들은 한화의 주루사가 폭증한다며 쾌재를 부르고 있다. 감독과 마찰을 겪을지, 본인의 야구관을 조금이라도 수정할지가 주목할만한 부분.

막상 시즌 중에는 타격코치를 맡아서인지 감독과의 마찰은 없었으며, 김성근이 잘리자 위의 쟁점은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최근 3루코치도 맡기 시작했으며 한화 선수들의 갑갑한 기동성에 절규하는 모습이 경기 중에 자주 연출되고 있다.


6. kt wiz 시절[편집]


2017 시즌 종료 후 한화를 떠나 kt wiz팀을 옮겼다. 보직은 2군 수비코치.

이후 5월 11일 1군에 콜업되어 작전, 주루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그간 주루사를 많이 유도했던 고영민 코치는 2군으로 자리를 옮겼다. kt의 주루사율을 높이는 주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고영민이야 코치 첫해이기에 그렇다 할수 있지만, 본인이 풍차를 돌리면서 고영민도 같이 풍차를 돌리면서, kt의 뇌주루 공장의 메인 발전기 역할을 했다.

시즌 도중 김진욱 감독이 부친상을 당해 2018년 6월 20일, 21일 경기를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끌게 되었다.

2018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면서 팀을 떠나게 되었다.


7.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파일:최태원_삼성.jpg
그러나 2018년 10월 30일 김한수 감독의 부름을 받고 삼성에 1군 작전코치로 입단했다. 역시 불사조.

4월 25일 SK와의 경기 6회 3:3 동점상황 1사 2루에서 박해민안타가 나왔을때 박계범의 스타트가 늦었는데 홈으로 붕붕 돌리다가 횡사시켜 역전 점수를 얻지 못했고, 결국 그것이 빌미가 되어 이틀 연속 연장패배의 원흉이 되었다.[1]

그 이후엔 딱히 비판받는 점 없이 무난하게 시즌을 치루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이전의 평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했다. 이전 자살특공대식 주루에서 180도 바뀐 안전하고 세밀한 주루유도를 하며 홀로 아마야구를 찾아가 선수들을 관찰하는 모습이 티비에 잡히거나 세이버매트릭스를 공부하는 모습을 봤다는 썰, 데이터실에 가장 많은 자료를 요구하는 썰들이 들려오는등 공부하는 친데이터적 성향으로 탈바꿈되었다는 평가. 또한 삼성 유튜브 팬서비스 논란에 즉각 피드백을 가져가 선수들의 팬서비스 참여를 독려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팬들의 가장 큰 지지를 받는 코치 중에 한 명이 되었다.

2019년 10월 11일 허삼영 삼성 신임 감독의 요청에 따라 2020시즌 1군 수석 코치가 되었다.

수석 코치가 된 이후에도 원팀 만들기 뿐만 아니라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자기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도록 노력하는 모습과 코치에게도 망설임 없이 선수 자신들의 생각을 바로바로 전하면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덕분인지 2021시즌 사실상 6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초읽기까지 들어갔고, 기어코 플레이오프 직행을 해냈다.

2022시즌을 앞두고 신인 이재현김영웅에 대해 칭찬을 하면서 특히 이재현은 안치홍의 향기가 난다고 까지 하면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2022년 8월 1일 허삼영 감독이 자진 사퇴하면서 박진만 2군 감독이 1군 감독대행으로 승격되었고 최태원 수석코치가 반대로 2군 감독대행을 맡게됨에 따라 2군으로 내려간다.

아무래도 내년 2군 감독을 계속 맡을 듯하다. 허삼영 감독 경질 이후 최태원을 감독으로 올리자는 여론도 있었고 삼성에 온 이후로 코치 평가도 좋아졌고 경험도 풍부해 감독으로써의 자격은 충분한 상황이다. 박진만 1군 감독대행이 감독으로 승격이 확실시 되는 가운데 최태원 2군 감독 또한 2군서 경험을 쌓으며 차기 삼성 감독 후보에 오를것으로 보인다.

2022년 10월 28일 예상과 달리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는 아마도 1군 감독이었던 허삼영 감독과 함께 수석코치였던 최태원 코치 또한 성적 부진에 따른 책임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수석코치까지 한 인물을 팀 내에서는 더이상 내줄 보직이 없으니 길터주기 식으로 내보낸 것으로도 보인다.


8. 아마추어 야구[편집]


2023년 5월 모교인 경희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은 사실이 확인됐다.


9. 코치로서의 평가[편집]


앞에서 거론했던 것과 같이 코치 경력만 2021년 기준으로 19년째이고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코치의 길을 걸으면서 중간에 나간 적 없이 꾸준히 커리어를 이어오고 있음에도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SK → KIA 시절에도 그랬고 LG에서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능력에 대한 논란이 나오는 코치 중에서도 평가가 나아진 코치도 있는가 하면 최태원, 신경식처럼 전혀 발전이 없는 코치가 있다는 점은 타 구단 코치들 중에서도 늘 나오는 일인데 공부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나뉜다.

최태원, 신경식 두 코치가 계속 능력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건 결국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는 셈.[2]

심지어 정성훈이나 일부 고참선수들은 최태원의 주자유도를 씹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게 목격되고 있어서 코치로서의 능력에 대한 논란은 더더욱 커지고 있다.

그나마 최태원을 옹호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사람은 정말로 착하다는 거다. 팀 배팅 코치로 있던 2012년 6월에 노래방을 열어 팀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선수들과의 관계는 좋은 편이라는 건데, 이런 최태원의 붙임성은 구단 윗선에서도 좋게 볼 수 있는 장점이라는 점에서 능력 논란에도 살아남는 요소가 아닌가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이상군은 그룹 고위층과 친밀하니 그렇다쳐도, 최태원은 설명이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LG라는 기업의 문화를 생각해 본다면 최태원처럼 붙임성 있고 윗선과도 잘 지내는 사람을 구단 윗선에서도 좋아하는 게 진리인 만큼 친 구단적인 붙임성이 살아남는 비결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3루 코치를 맡을 수 있는 인물들이 정작 3루로 왔을 때의 실적이 그닥이라는 것도 강제로 최태원을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도 비판에 한몫한다. 15시즌 현재 타격코치인 노찬엽과 수비코치인 유지현은 3루 코치 시절 평이 좋지 않았으며, 2014년의 1루 코치인 김민호와 2015년에 새로 온 한혁수 또한 3루 코치를 보던 이전 소속팀인 두산과 SK에서 주자살인마로 까이던 사람들이니 자연스럼게 경력이 많은 최태원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차라리 팀 분위기를 하나로 뭉치게 하고 인화력이 좋다는 점을 감안하면 잘 맞지 않는 자리인 주루코치보다는 인화력과 리더십이 필요한 자리인 수석코치가 더 적합했을 것이다. 잘 할 수 있는 보직과 실제로 맡은 보직이 잘 맞지 않았다고 봐야 할 듯.

그러나 삼성에 와선 환골탈태되었다. 악평과 달리 3루 주루 코치로서 큰 실수도 없는 편이고 데이터를 꾸준히 공부하여 구시대적 야구관에 갇힌 일반적인 코치들과 대비되어 상당한 호평을 받고있다. 물론 주루와 관련해선 일단 주전에 러프, 이원석, 강민호를 제외하면 전부 주력이 상당한 선수들이라[3] 어지간한 본헤드 아니면 전부 주루에 성공하긴 하지만 그래도 최태원 본인의 성향 자체가 과거와 달리 최대한 안정적인 주루를 추구하는 성향으로 변했다.

또한 팬 서비스를 매우 강조하여 팬 서비스 후일담에 꼭 등장하며[4] 팬들의 반응에 즉각적인 피드백을 가져가주는 모습들로 인품과 사고관 역시 상당히 뛰어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즉, 외모가 듬직하고 사람 좋게 생기고 배 나온 사람이라고 다 능력 있고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구시대적 코치였지만 삼성 라이온즈에 와선 진짜 180도 바뀌었다 할만큼 안정적이고 확실한 주루추구와 공부하는 친데이터적 성향, 팬들의 니즈를 즉각 채워주는 굉장히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삼성 담당 기자인 박성윤 기자의 이야기에 의하면 최태원의 주도로 원팀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1] 그러나 2루 주자였던 박계범에게도 약간의 책임을 물 여지가 보이는데, 중견수가 정위치보다 좌측으로 치우쳐져 있는데다 박해민의 타구는 센터 방면에서 약간 우측 코스였기 때문에 초특급 다이빙캐치라도 하지 않는 이상 잡힐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너무 안전하게 확인 후 스타트를 했기 때문에 홈에서 아웃당한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박계범은 생긴거에 비해 발이 빠르지도 않은데 미처 파악을 못한 것인지 최태원 코치마저 무작정 돌린 부분도 책임은 당연히 있다고 볼 수 있다.[2] 그러나 신경식은 다시 2군에 간 후 최승준의 컨택을 향상시키는 데 공헌했으므로 무능하다고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배병옥의 스위치 전향이나 1군에서의 삽질은 쉴드칠 수 없다.[3] 김동엽도 겉모습에 비해 상당히 빠른 편이다.[4] 특히 팬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던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부터 팬들과 자주 소통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쌍방울의 해체 이후 쌍방울을 추억하는 팬들이 찾아오면 반갑게 인사하며 대화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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