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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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현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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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등번호 39번
팀 창단

신승현
(2000~2007)


지훈
(2008~2009)
지훈
(2008~2009)

신승현
(2010~2013.5.5)


진해수
(2013.5.6~2014)
KIA 타이거즈 등번호 27번[1]
김상현
(2009.4.20~2013.5.5)

신승현
(2013.5.6~2013)


김태영
(2014~2015)
LG 트윈스 등번호 28번
임도현
(2013)

신승현
(2014~2015)


임찬규
(2016)
LG 트윈스 등번호 37번
루카스
(2015)

신승현
(2016~2017)


이우찬
(2018~)



파일:/image/076/2011/09/09/2011090901000752700061594.jpg
SK 와이번스 시절.
파일:/image/382/2013/05/17/55181343.10_59_20130517071117.jpg
단 1년뿐이었던 KIA 타이거즈 시절.
파일:/image/311/2016/05/31/1464696674412_99_20160531211206.jpg
LG 트윈스 시절.
신승현
申承賢 | Shin Seung-hyeon
[1]
출생
1981년[2] 8월 13일 (42세)
전라북도 전주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금평초 - 전주동중 - 전주고 - (전남과학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2차 11라운드 (전체 81번, 쌍방울)[3]
소속팀
SK 와이번스 (2000~2013)
KIA 타이거즈 (2013)
LG 트윈스 (2014~2017)
병역
공익근무요원 (2008~2010)
등장곡
Black Eyed Peas - Shut Up

1. 개요
2. 피칭 스타일
4. 펠릭스 호세와의 난투극
5. 연도별 주요 성적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 LG 트윈스 소속의 장신 우완 사이드암 투수. 하위픽 선수 중 성공한[4] 몇 안 되는 케이스. 예전의 이름은 김명완(金明完).[5]

SK 와이번스의 과도기 시절 이승호를 이어 실질적인 '푸른 와이번스 유니폼의' 에이스 역할을 했던 선수이고 부상과 공익 입대 이후, KIA 타이거즈에서 불펜 필승조로 자리를 잡은 선수이다. 다만 KIA 시절에는 점차적으로 선동열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 시절의 정노예 포지션을 담당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2. 피칭 스타일[편집]


193cm에 97kg라는 좋은 체격을 지니고 있는 장신의 사이드암 투수로, 최고 구속 149km/h, 평균 구속 140km/h 초반대를 마크하며 사이드암으로써는 꽤 빠른 공을 던진다. 이와 같은 묵직한 속구와 120km/h 중반대의 싱커성 체인지업, 113km/h에 불과한 느린 커브 등으로 구질은 그리 다양하지 않으나, 완급조절을 통해 타자를 잡는 투수. 특히 이 싱커성 체인지업과 커브로 인하여 우완이지만 좌타자에게 강하다.[6]


3. 선수 경력[편집]


신승현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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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펠릭스 호세와의 난투극[편집]




여담으로 참교육 펠릭스 호세와의 맞대결로 유명하다. 2006년 8월 5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롯데가 스코어 3:1로 앞선 3회초 2사 후[7] 볼카운트 3볼1스트라이크에서 신승현의 몸쪽 공이 그 해 5년만에 롯데 자이언츠에 돌아와 중심타자 역할을 하고 있었던 호세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맞췄다. 평정심을 잃은 호세는 원현식 주심의 만류를 뿌리치고 순식간에 마운드로 달려나가 글러브를 자신에게 던진 신승현을 붙잡았으나, 신승현이 반대쪽으로 달려나가면서 놓쳤다.[8]

그 후 롯데 공필성 1루 코치의 적극 제지로[9] 호세가 신승현을 쥐어패는 사태는 면했지만, 그 직후 다혈질 성격인 신승현이 분을 못 이기고 SK 덕아웃 쪽으로 들어가서 방망이를 들고 나오자,[10][11] 열받은 호세가 다시 SK 덕아웃 쪽으로 돌진했다. 호세세님 한판해요.

결국 당시 SK 코치진인 성준 투수코치, 최태원 주루코치[12] 외 SK 선수, 롯데 선수 수십 명이 붙잡아 호세를 넘어뜨려서 겨우 제지에 성공했다. 이는 호세의 엄청난 파워를 증명하는 사건 중 하나로서 당시 호세의 나이는 거의 은퇴 직전인 마흔둘이었다.

결국 8월 5일 경기에서 호세가 SK 측 덕아웃으로 와서 모자를 벗고 사과했고, 신승현 또한 롯데 덕아웃에 가서 사과했다. 그리고 두 선수에게는 KBO 징계위원회에서 각각 벌금 300만 원이 부과되었고, 방망이를 들고 나온 신승현에게는 유소년 야구봉사 24시간이 추가로 부과되며 마무리되었다. 또한 이 사건은 한국 프로야구 5대 난투극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벤치 클리어링 항목의 동영상 참조.

비슷한 사례로 호세의 참교육을 받은 삼성 배영수는 푸른 피의 에이스(…)로 거듭난 반면, 방망이까지 휘두르며 참교육을 거부한 신승현의 성적은 2006년을 기점으로 내리막을 타게 되었기 때문에 야갤 개드립 소재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꼴데툰 2013년에서는 한국을 방문한 호세에게 암수드립을 치면서 배트를 들고 덤비다가 한 방 맞고 만다.


5.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0
SK
6
7
0
2
0
0
0.000
9.00
7
1
3
5
7
7
1.286
2001
11
19
0
0
0
0
0.000
8.53
32
7
5
11
18
18
1.842
2002
5
5⅔
0
0
0
0
0.000
0.00
4
0
0
4
1
0
0.706
2003
25
42
0
0
1
2
0.000
6.00
42
10
17
30
32
28
1.357
2004
58
107
2
7
0
3
0.222
4.88
99
13
48
64
60
58
1.224
2005
30
154⅔
12
9
0
0
0.571
3.38
(5위)
146
12
57
91
70
58
1.235
2006
24
107⅓
8
6
0
0
0.571
3.44
107
9
45
53
52
41
1.295
2007
1
1
0
0
0
0
0.000
27.00
4
1
1
0
3
3
4.000
2008
군복무(공익근무요원)
2009
2010
1군 기록 없음
2011
4
4
1
0
0
0
1.000
9.00
9
0
0
3
4
4
2.250
2012
5
6
0
1
0
0
0.000
10.50
8
0
3
2
7
7
1.667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3
KIA
55
51⅔
1
1
0
8
0.500
4.88
49
5
43
55
35
28
1.626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4
LG
11
15⅓
0
0
0
1
0.000
5.87
21
2
13
12
15
10
1.957
2015
37
35⅔
0
1
0
3
0.000
4.79
32
3
23
30
19
19
1.40
2016
49
45⅓
3
1
1
9
0.750
4.96
41
3
28
31
26
25
1.43
2017
3
3⅔
0
0
0
0
0.000
0.00
1
0
1
1
0
0
0.27
KBO 통산
(15시즌)
324
605⅓
27
28
2
26
0.491
4.55
602
66
287
392
349
306
1.35

6. 관련 문서[편집]


[1] 2003 시즌까지 명완(金明完)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2] 호적상으로는 1983년 8월 13일이다. 그 이유는, 출생 후 호적 등록 과정에서 동사무소 공무원이 깜빡하고 등록하지 않았고 그 공무원이 사망하는 바람에 1983년으로 등록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개명 과정에서 생년월일을 고칠 수 있었으나 고치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는 원래대로 1981년생들과 함께 다녔다고 한다. 이것이 신승현이 1981년생 박정권과 전주고 동기이고 SK 입단 역시 2000년에 한 이유다. 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487954[3] 쌍방울 레이더스의 해체 후 지명권이 넘어간 SK 와이번스에 입단하였다.[4] 이때만 해도 지명권이 대학 진학 후에도 유지가 되어 상당히 많은 선수들을 뽑던 시절이었다. 당시 하위픽은 전략적으로 대학을 보내려고 찍거나, 그냥 로또 긁는 심정으로 픽하는 편이었다. 신승현은 후자였다.[5] 2003년 부모가 이혼하였는데, 어머니 쪽을 따르게 된 김명완은 성을 어머니의 성인 신(申)씨로 고치게 되었고, 더불어 이름도 명완(明完)은 야구선수로써 조금 유약해 보인다하여 승현(承賢)으로 개명하여, 2004 시즌부터 지금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前 프로게이머 정우서(개명 전 박준상), 일본의 야구선수 아카미나이 긴지가 유사한 사례(개명 전 우베 긴지).[6] 그래서 수준급 좌타자들이 즐비한 LG에게 강했다. 2005년에는 LG를 상대로 5전 5승을 거두었다. 사실 사이드암이 성공하기 힘든 요인 중 하나가 좌타자들의 공략 문제 때문인데, 신승현은 좌타자에게 강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7] 1사 2루에서 정수근이 도루를 시도하다 태그 아웃되었다.[8] 영상을 보면 호세는 처음부터 달려들 생각은 아니었고 아파서 화를 낸 정도였는데, 신승현이 오히려 화를내며 맞대응 하자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했다.[9] 호세를 말리던 와중에 공필성 코치는 호세가 신승현을 참교육 시키려고 때리려고 휘두른 주먹에 한 대 맞고 그라운드에 내동댕이쳐졌다(…).[10] 구단 직원들에게 제지당해 호세와 맞닥트리는 불상사는 없었다.[11] 벤치 클리어링에 야구방망이를 동원하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 벤클 문서에도 있지만 야구방망이의 전문가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매우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교야구에서는 한서고등학교 야구부 선수가 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와의 벤클에 야구방망이를 동원했다가 영구제명 당한 사례도 있다. 이 경우는 방망이를 꺼내들려는 찰나에 직원들이 제지해서 유야무야 넘어간 듯하지만.[12] 호세를 뒤에서 붙잡고 끌어안아 앞에 호세를 저지하러 몰려오던 선수단과 함께 호세를 뒤로 넘어트리는데 성공했다. 그 대가로 호세+몰려오던 다른 선수들에게 깔리고 말았지만. 최태원 코치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백드롭으로 넘어뜨리려 했는데 호세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한동안 최태원 코치와 공필성 코치의 살신성인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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