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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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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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


1. 활동 내역[편집]


정진규는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서울돈암초등학교,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뒤 1973년에 제1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1975년에 사법연수원을 5기로 수료했다.

이후 1978년에 서울지방검찰청 수원지청 검사로 임용되어 검사 생활을 시작했으며 1981년에는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 검사로 발령났다가 1983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영전하였다. 그리고 1986년에는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으로 계속 영전을 거듭하였다.

그러다가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1988년에는 마산지방검찰청 충무지청장으로 임명되어 부장검사로 승진하였으며 1990년에는 대검찰청 공안2과장으로 영전했다가 1992년에는 대검찰청 공안1과장으로 영전해서 줄곧 공안통의 길을 걸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3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특수부장으로 발령났는데 이 때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 사촌동생의 석방알선 사건을 수사하였고 그 이후 서울지방검찰청 공안2부장으로 영전하여 이후 국회노동위 돈봉투사건, 범민련 사건, 자보 김사장 국회위증사건, 서총련 사건, 철도파업 사건, 서울지하철 파업 사건, 김일성주의 청년동맹 사건, 조계종 파업사태, 전국노조대표자회의 사건, 한국통신 노조 사건, 한전 불법파업 사건, 외국인 노동자 집단폭행 사건, 안호상 밀입북 사건 등을 수사했고 조계사와 명동성당에 공권력을 투입시키기도 했다.

이후 1995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공안1부장으로 영전하였고 5.18 위증 사건을 수사했으며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선거사범들도 수사했을 뿐만 아니라 5.1동맹 사건을 수사했고 전두환노태우를 수사하기도 하면서 정진규 검사는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꼽혔다.

이후 1996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차장검사가 되면서 차장검사로 승진했고 1997년에는 대구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로 발령났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에는 대구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로 자리를 옮겼다가 부산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로 옮겼고 이후 1999년에 검사장으로 승진해서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이 되었다.

그 뒤 2000년에는 전주지방검찰청 검사장이 되었다가 울산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영전했으며 2001년에는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으로 계속 영전을 거듭했다. 2002년에는 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발령났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3년에는 고검장으로 승진해서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이 되었고 2004년에는 법무연수원장이 되었다가 2005년에 사표를 제출했다.

이후 법무법인 대륙아주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삼성석유화학, 현대중공업, LS그룹 등에서 법률고문을 하고 있고 희망네트워크 이사장, 대한체육회 윤리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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