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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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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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38대 검찰총장
한상대
韓相大 | Han Sang-dae


파일:한상대23.jpg

출생
1959년 1월 28일 (65세)
서울특별시
학력
보성고등학교 (졸업 / 67회)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1]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 / 박사 과정 수료)
가족
아내 박현선, 슬하 2녀[2]
병역
병역면제[3]
경력
제23회 사법시험 합격
제13기 사법연수원 수료
청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
법무연수원 기획과장
법무부 인권과장
법무부 국제법무과장
인천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
법무부 법무실장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제38대 검찰총장 (이명박 정부)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초빙교수
서강대학교 이사
1. 개요
2. 생애
3. 경력
4. 논란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검사 출신 법조인. 이명박 정부 당시 검찰총장을 지냈다.


2. 생애[편집]


1959년 1월 28일, 서울특별시에서 변호사이던 아버지 한윤수(韓允洙, 1925 ~ 2007. 7. 16)의 아들로 태어났다. 1977년 서울 보성고등학교(67회),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84년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사법연수원 기수는 13기. 1984년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로 임용된 후 계속 검찰에 몸을 담았다. 평검사 시절이던 1980년대 후반 대검찰청 중수부에 파견돼 전경환[4] 새마을운동본부장 비리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부산지방검찰청 1차장 때는 항운노조비리사건 수사 지휘로 대검 중수부가 주는 '올해의 특별수사상'을 받았다.

특수나 공안보다는, 기획, 국제통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1989년 대한민국 법무부 국제법무심의관실에서 근무했으며, 검찰 내 최초의 주미대사관 법무협력관을 역임했다. 그 후 법무연수원 기획과장, 법무부 국제법무과장, 법무심의관 등을 거쳤다. 특수와 공안 분야 경험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40대 이후 계속 중앙의 요직에 올랐기 때문에 '대기만성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02년에 일부 반대를 무릅쓰고 병풍사건 장본인 김대업을 무고명예훼손 혐의로 전격 구속수사한 것이 참여정부 당시 걸림돌로 작용해 한동안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3년 인사에서 대전고검 검사로 발령 받은 뒤 참여정부 동안 지방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다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고검장, 서울중앙지검장 등의 최고 요직을 두루 거친 것. 이명박과 고려대 동문이고 개인적 친분이 두터울 뿐 아니라, 장인 박정기 전 한국전력 사장이 이명박의 형 이상득과 같은 TK 출신이자 육사 14기 동기로 절친한 덕을 보았다는 말도 있었다.

2011년 서울중앙지검장 재임 시절에는 한상률 국세청장 로비 사건 당시 한상률을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그리고 이상득에 대한 로비 혐의, 태광실업에 대한 표적 세무조사 혐의, 이명박의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 등을 모두 수사대상에서 제외했다. 김경준의 누나 에리카 김의 BBK 투자자문 자금 319억 원 횡령 혐의에 대해서도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

그 덕분인지 중앙지검장 부임 5개월만인 2011년 8월에 대망의 검찰총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인사청문회 당시 군 면제,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 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끝까지 밀어줘서 총장 자리에 앉게되었다. 물론 검찰총장으로 취임한 후에도 'MB 지키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상득 연루 의혹이 제기된 이국철 SLS 중공업 회장 사건 등을 수사하면서도 이상득에 대해서는 서면조사만 했고, 이명박의 내곡동 사저 의혹 건에 대해서도 봐주기 식 수사를 주도했다.

그러다가 2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1년 3개월만에 검찰총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총장 취임 이후 너무 독단적으로 조직을 운영해 대검과 일선 지검에서 선후배 갈등이 커졌기 때문. 특히 개인적 친분이 있는 최태원 SK그룹회장을 봐주기 위해 법정 최저형인 4년으로 기소형량을 내리도록 수사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중수부 폐지를 비롯한 검찰개혁을 밀어붙이려다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이 반발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연수원 4년 후배인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연수원 17기)에 대해 사소한 문자 메시지를 트집 잡아 감찰을 지시하는 무리수를 둔 것이 마지막 결정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전국 각 검찰청에서 검찰총장 사퇴요구가 빗발쳐 나오자, 결국 최재경 당시 대검 중수부장, 채동욱 대검찰청 차장,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비롯한 중견 검사들이 집단 항명을 하였고, 2012년 11월 30일 불명예사퇴했다. 이를 초유의 검란(檢亂) 이라고 일컫는다.

그렇게 검찰총장 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보수성향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세미나 등에 나가 종북세력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며 지낸다는 후문(...)이 있다. #

모교인 고려대로 돌아온 이후에는 법학전문대학원에서 1학년을 위한 법조윤리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수강생들에게 커피를 자주 쏘는 것으로 유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조국 수사로 인해 문재인 정부와 갈등을 빚고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윤 대통령을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을 정지시켜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윤석열 대통령의 전임자인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이에 대한 전직 검찰총장들의 항의 결의를 주도하였는데, 문 전 총장이 직접 연락을 취해 요청한 김대중 정부 이후 검찰총장들 11인 중 채동욱과 한상대만이 이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3. 경력[편집]


  • 1981 제23회 사법시험 합격
  • 1984 제13기 사법연수원 수료
  • 1984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
  • 1986 대전지검 천안지청 검사
  • 1987 서울지검 검사
  • 1989 법무부 국제법무심의관실 검사
  • 1992 서울지검 북부지청 검사
  • 1992 주미한국대사관 법무협력관
  • 1994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 1995 춘천지검 강릉지청 부장검사
  • 1997 법무부 검찰국 검사
  • 1997 법무연수원 기획과장
  • 1998 수원지검 형사제4부장검사
  • 1999 서울고검 검사 겸 법무부 과장검사
  • 2000 서울고검 검사 겸 법무부 법무실 법무심의관
  • 2001 서울지검 부장검사
  • 2003 대전고검 검사
  • 2004 부산지검 차장검사
  • 2005 인천지검 1차장검사
  • 2006 광주고검 차장검사
  • 2007 법무부 법무실장
  • 2009 법무부 검찰국장
  • 2009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 2011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 2011 대검찰청 검찰총장
  • 2013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초빙교수
  • 2015 한상대 법률사무소 변호사
  • 2018 서강대학교 이사
  • 2020 가톨릭꽃동네대학교 감사

경력에서 알 수 있듯 이 사람이 바로 서울고검장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법리적으로 강등[5]당하고, 검찰총장이 된 케이스이다.


4. 논란[편집]


  • 일반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법학전문대학원-변호사시험 체제의 정초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한 변호사가 법무실장일 때 법무부에서 변호사시험법을 입안했기 때문. 로스쿨이 미국 제도인데도, 이 과정에서 일본의 소위 신사법시험법을 거의 토씨까지 그대로 베껴서 법안을 만들었다.[6] 따라서 이 법률의 독소조항들은 다 한 변호사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에서의 논의과정에서도 좋게 말해서 개그스럽고, 나쁘게 말해서 개탄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 자기가 법안을 만든 당사자인데도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 그냥 방청을 하러 왔다가(염탐?), 마침 잘 되었다고 의원들이 붙드는 바람에(...) 질의를 받게 되었다.
    • 박민식 의원에게서 '변호사법에 변호사시험 실시 근거를 두면 되는데 왜 별도로 법률을 만드냐'는 질문을 받았으나, 쿨하게 동문서답으로 씹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에서 변호사만이 자격시험에 관한 별도의 단행법률이 있는 전문직이 되었다.
  • 2009년에 검찰국장이었을 때 서울대 로스쿨(응? 왜 모교 출신은 제끼고?)에 가서 비공식(...) 검찰 설명회를 가졌는데,[7] 설명회 내용이 "검찰이 우수 인재를 입도선매하겠다"라는 것이어서 말썽이 되었다. 그 이듬해 나승철 변호사가 사시 존치 논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는데, 위 설명회도 그 불씨 중 하나였다.
  • 2009년에 "박원순 변호사가 국가정보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라는 명목으로 대한민국이 박원순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가 제기되었다. 그런데 이 황당한 소송#의 장본인이 바로 당시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이었던 한상대이다. 국가가 원고가 되는 모든 소송은 소관청이 임의로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할 검찰청에 지휘품신을 하여 사전 승인을 받게 되어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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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사 학위 논문 : 株式會社支配論(주식회사지배론)에 關(관)한 硏究(연구) : 美國理論(미국이론)을 中心(중심)으로(1986).[2] 장녀는 1985년 생이고 차녀는 1989년 생이다.[3] 사유는 디스크 수술[4]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으로 1979년 10.26 사건 당시 청와대경호실에서 근무했다.[5] 하지만 실질적인 파워는 중앙지검장이 더 세서, 실질적으로 아무도 강등이라고 생각 안 한다.[6] 그러다 보니 국회에서 발언하면서도 "사법시험법"이라고 말실수를 하기도 하였다. 더욱 기이한 것은, 한 실장은 영어에 능통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