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행성동맹/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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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건국과 발전
3.2.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이제르론 요새 건설
4. 쇠퇴
4.1. 전쟁으로 인한 피해
4.2. 경제적 압박
4.3. 이념적 변질
5. 말기
6. 멸망
7. 동맹의 후예들


1. 개요[편집]


이 문서는 소설 은하영웅전설에서 등장하는 가공의 국가 자유행성동맹의 역사를 서술한 문서다.


2. 건국과 발전[편집]


흑기군의 반란으로 지구 통일 정부가 멸망한 뒤... 서기 2801년, 알데바란 성계 제2행성 테오리아를 수도로 은하연방이 건국되면서 시리우스 전역 이후 1세기 동안 지속된 혼란기는 종식되었다. 은하연방은 무한한 활력과 눈부신 기술 발전을 토대로 2세기 동안 전성기를 누렸지만 건국된지 200년쯤 지나자 서서히 사회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부패해가기 시작했다. 인류사회가 정체와 불안정성에 질식해 갈 때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 혜성처럼 등장했고, 시민들은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며 표를 몰아주었다. 루돌프는 시민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고 수상, 종신집정관을 거쳐 서기 3110년, 우주력 310년 스스로를 은하제국 황제라고 자칭하며 은하연방을 무너뜨렸다.

황제가 된 루돌프는 처음엔 사회를 개혁해나갔지만, 제국력 9년 열악유전자 배제법 제정을 시작으로 공화파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탄압을 일삼았다. 공화주의자들은 루돌프 사후 대대적으로 봉기했으나 제국 수뇌부를 구성하던 군부, 귀족, 관료는 합심하여 반란군을 쳐부수었다. 반란을 진압한 제국은 반란에 동참한 5억 명을 처형하며 100억 명을 농노로 만들었다.

이후 지기스문트 1세, 리하르트 1세, 오토프리트 1세 등이 제위에 오르며 제국 체제를 강건히 다져갔다. 일부 공화주의자들은 제국령 탈출을 시도했으나 우주선 재료를 입수하기 쉽지 않았고, 설령 입수하더라도 사회질서유지국에 발각되면 기다리는 건 탄압과 죽음 뿐이었다.

그러나 제국력 164년, 알타이르 성계 제7행성에서 강제노역하던 알레 하이네센과 공화주의자 40만 명이 제국령 탈출에 성공했다. 이들은 매우 추워 드라이아이스로 뒤덮인 행성에서 자원채굴하던 노예들이었는데, 알레 하이네센은 한 아이가 얼음을 깎아 만든 배를 가지고 노는 걸 보고 당국에 걸리지 않고 얼마든지 입수할 수 있는 우주선 재료, 드라이아이스가 이 행성에 널려 있음을 깨닫고 탈출 계획을 입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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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주의자들이 건조한 간이 우주선, '이온 파제카스 호'
미지의 영역으로 떠나는 공화주의자들의 우주선단
드라이아이스로 덮인 계곡을 통째로 들어내 간이 우주선을 건조한 공화주의자들은 유배지를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은하제국군은 이들을 집요하게 추격했으나 공화주의자들은 어느 행성에 숨어 항성간 우주선 80척을 비밀리에 건조한 뒤 은하계의 중심부를 향해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났다.

아직 인류의 발자취가 미치지 못한 영역을 탐사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공화주의자들은 거성, 변광성, 왜성 등 온갖 재난에 노출되었고, 지도자 알레 하이네센을 사고로 잃었다. 그러나 그의 동지 응웬 킴 호아가 친구의 뜻을 이어 여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반세기의 세월과 1만 광년의 거리를 주파한 뒤에 이들은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 바라트 성계 제4행성에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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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하이네센'에 정착한 공화주의자
자유행성동맹 건국
바라트 성계에 정착한 공화주의자들은 정착한 행성에 그들의 동지이자 지도자 알레 하이네센의 이름을 붙여 공적을 영원히 칭송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은하연방의 진정한 후계자라 자처하며 자유행성동맹을 건국했으며, 루돌프가 제정한 제국력을 폐기하고 우주력을 부활시켰다. 제국력 218년, 우주력 527년의 일이었다.

매우 조그만 세력이 불과했지만 공화주의자들은 뼈 빠지게 일해 급속도로 내실을 다져가고 국력을 신장했다. 동맹은 다산을 장려하여 인구를 불리고 농공생산력을 증강하며 국가 체제를 갖춰갔다. 그리고 언젠가 제국이 동맹의 존재를 알아채고 정복을 위해 대군을 파견할 것이라 예견한 건국자들에 의해 동맹은 백여년 동안 군대를 양성했다.

이후 다곤 성역 회전 이전까지 동맹은 번영을 누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도 불평불만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국부 알레 하이네센의 이상은 부모에서 자식으로 대를 이어 전해졌으며, 독재와 부패를 경계했다. 민주주의는 건강을 유지했으며 시민들은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선출한 정부를 존경하고 신뢰했다. 작중 표현을 인용하면 '좋았던 옛 시절'이었던 것이다.[1]


3. 중기: 제국-동맹 전쟁[편집]



3.1. 다곤 성역 회전~코르넬리우스 1세의 친정[편집]


그렇게 해서 은하연방의 시대가 재현되려는 찰나인 건국으로부터 113년 후, 자유행성동맹 함대와 은하제국 함대가 우주에서 우연하게 맞닥뜨리게 되었다. 동맹으로써는 이미 건국 때부터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고 각오하던 바였으나 은하제국에서는 국경 바깥에서 갑자기 발견된 정체불명의 외계함대에 크게 당황하였다. 함대가 전멸당하면서 보낸 통신을 받은 제국에서는 긴급하게 조사에 착수했고 머지않아 이 외계세력이 2세기 전 유배지에서 탈출한 노예들의 후손임을 알게 되었다.

우주 어딘가에서 객사하지 않고 신천지를 건설한 불경한 반도들을 토벌하기 위해 은하제국은 헤르베르트 대공을 지휘관으로 야심차게 대규모 함대를 파견했다. 링 파오 중장이 지휘한 자유행성동맹군 우주함대는 다곤 성역 회전에서 은하제국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회전을 통해 자유행성동맹은 은하제국에 필적할 만한 강력한 세력이라는 인식을 널리 떨쳤으며, 실제로 그렇게 성장하게 된다. 이 전투는 160년간의 기나긴 제국-동맹 전쟁의 시작이었다.

하여튼 동맹군의 승전 소문이 널리 퍼지자, 권력 다툼에서 패배한 왕족, 귀족이나 지하에 숨어 있던 공화주의자들이 동맹으로 망명했고 자유행성동맹은 이들을 모조리 받아들였다. 사회질서유지국은 동맹으로 향하는 망명자들의 물결을 막지 못했고 동맹은 망명자들을 통해 인구와 농공생산력을 키워갔으며 세력을 확장했다.[2]

다곤 성역 회전으로부터 30여년 뒤 동맹은 다시 위기를 맞게 된다. '청안제'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원수양산제' 코르넬리우스 1세명군이라고 칭송받는 선제를 뛰어넘기 위해 동맹령 원정을 계획했고, 침공 이전에 사자를 세 차례 파견해 복종을 권유했다. 그러나 동맹은 제국의 요구를 거부했고, 제국은 코르넬리우스 1세를 최고지휘관으로 다곤 성역 회전 당시 동원한 전력을 뛰어넘는 대함대를 동원하여 동맹을 침공했다.

다곤 성역 회전의 승리에 도취한 동맹군은 2차례의 방어전에서 패배하여 위기에 몰렸고, 코르넬리우스 1세는 동맹을 무너뜨리기 직전까지 밀어붙였다. 그러나 그 순간 제도 오딘에서 궁정 쿠데타가 일어났고, 코르넬리우스 1세는 눈물을 머금고 회군해야 했다. 그리고 동맹군은 철군하는 제국군을 추격하여 상당한 피해를 입혔고, 수도로 돌아간 코르넬리우스 1세는 반란을 진압했으나 동맹을 정복할 여유는 남아있지 않았다.


3.2.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이제르론 요새 건설[편집]


우주력 730년, 1449명의 사관학교 생도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이들 중 888명이 2년 내 세상을 떠났지만 남은 이들 중 7명이 후일 730년 마피아라 불리게 된다.

이들이 주목받게 되는 사건은 우주력 738년에 벌어진 파이어저드 성역 회전으로 동맹군:제국군 비율이 1:15라는 압도적인 격차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두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몇 번이나 제국군을 격파하여 제국군의 증오를 한 몸에 사게 된다. 승승장구를 거듭한 730년 마피아는 종래는 우주함대 사령장관과 총참모장, 각 함대 사령관을 독차지하여 이들이 곧 자유행성동맹군 우주함대라고 불리는 위세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730년 마피아의 대두하자 동맹 정치권은 군의 군벌화나 애쉬비의 정계 진출을 우려했다.

그리고 우주력 745년,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730년 마피아는 제국군 장성 60명을 전사시키는 전과를 올리나 동시에 이 때 730년 마피아의 리더격인 브루스 애쉬비가 전사하고 만다. 이후 730년 마피아는 해체되어 두 번 다시 결합하는 일이 없었고, 자유행성동맹은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의 대승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구도(제국:공 동맹: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제국은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의 패배에서 교훈을 얻어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이제르론 회랑이제르론 요새라는 초거대 거점지를 세워 동맹의 제국령 침공 기도를 차단하고 일방적으로 동맹령을 침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4. 쇠퇴[편집]



4.1. 전쟁으로 인한 피해[편집]


인류사회의 유일한 국가라 자부하던 은하제국은 이들을 불충한 반역자로 간주해서 끝없이 토벌을 시도했으며, 자유행성동맹은 우선은 제국의 침공을 막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제국을 무너뜨리고 전제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전쟁을 계속했다. 하지만 1만 광년에 달하는 양국간의 엄청난 거리와 항로도의 부재, 경제적 상황, 제국의 정치적 상황 등이 겹쳐 서로가 서로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힐 만한 능력이 없었고, 또 제국과 동맹 사이에는 위험주역 사르갓소 지대가 넓게 자리 잡고 있어 그 사이를 관통하는 두 개의 좁은 통로(회랑)로만 상대방 지역으로 오갈 수 있었다.

이 중 이제르론 회랑다곤 성역 회전으로부터 끊임없이 전투가 벌어졌지만 페잔 회랑페잔 자치령 정부의 외교적 노력과 양국의 암묵적 합의로 전쟁 대신 무역과 망명 등 평화적인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평화지대가 되었기 때문에 페잔 회랑을 통한 침공은 불가능했다. 결국 주 전장은 이제르론 회랑으로 한정되어 오랜 세월 동안 전란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된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소규모의 충돌이 지속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나, 그 소규모의 충돌이란 것이 적어도 전투병력만 2~3개 정규함대, 함정 3만~4만 척, 장병 400만~450만 명 정도로 구성된 아군과 비슷한 숫자의 적군이 각기 자국의 근거지에서 수천 광년 떨어진 곳에서 격돌하는 것이며, 이로 인한 사상자도 기본이 수십만 명, 좀 심하다 싶으면 백만 명을 돌파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런 일이 1년에 2번 꼴로 있는 데다가 가끔 대원정이라고 해서 소규모 충돌의 3-4배 이상의 규모의 대회전까지 일어난다.

이로 인해 지속적인 대규모 인명 손실이 발생하며, 국가에 충성심이 있는 유능한 인재가 가장 먼저 전선에서 전사해서 인재 풀이 크기도 전에 고갈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후발주자로 제대로 탐사되지도 않은 미개척지에서 국가를 건립한 동맹의 입장에서는 제국보다 경제적인 압박이 더 심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4.2. 경제적 압박[편집]


오랜 전쟁으로 동맹의 경제는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게 된다. 국가예산의 절반 가량이 국방예산에 투입되었고, 전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문학계에 투자될 예산은 끊임없이 삭감되었다. 하지만 이럼에도 국방비가 모자랐고 예산합리화라는 명목으로 사관학교 전사연구과가 폐지되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페잔 자치령의 마수가 동맹을 옭아맸다. 동맹은 국방비를 조달하기 위해 전시국채를 대량으로 발행했는데 페잔 자치령은 닥치는 대로 국채를 사들였고, 우주력 798년 시점에는 당장 상환해야 하는 부채만 동맹 국가예산의 12~13%에 달했다. 그 뿐만 아니라 페잔 자치령은 위장기업을 통하여 동맹의 천연자원과 대기업들을 하나하나 접수해갔고, 동맹의 정치가, 외교관들에게 리베이트 등 뇌물을 제공하여 잘 길들여두었다. 그야말로 동맹은 페잔의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730년 마피아의 리더격인 브루스 애쉬비가 제안한 요새 건설안이 예산 문제와 애쉬비의 성향 때문에 함대 전력 강화안과 맞바꿔 폐기되는 일이 일어났다. 반대로 이보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지만 제국은 오토프리트 5세 시기, 그 악명높은 이제르론 요새를 건설했는데 이 두 사례를 비교해 보면 동맹의 경제력이 제국에 비해 빈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오토프리트 5세가 짠돌이 군주라지만[3] 그도 제국의 경제력이 빈약했다면 그런 돈지랄에 가까운 짓을 벌이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이제르론 요새는 제국에서도 건설비가 너무 들어 여러차례 건설이 중지될뻔 했다고 하니 제국도 기겁할 정도의 건설비면 동맹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4.3. 이념적 변질[편집]


제국과의 전쟁으로 피해가 누적되는 상황에서도 동맹은 타성적으로 자칭 전제주의를 타도하는 민주주의 성전에 골몰하며,[4]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내부적으로는 비민주적 사상이 팽배하는 등 점차적으로 망가져 갔다. 건국 당초의 이상이 빛이 많이 바랜 것이다.

이러한 원인에는 동맹으로 망명한 사람들을 융화, 흡수할 재정도 시간도 자원도 부족한 점에 있었다. 단순힌 민중이나 공화주의자였다면 모를까 권력에서 밀려난 황족, 귀족들도 많이 넘어왔고 이들 때문에 자유행성동맹의 민주주의가 많이 변질되었고 그 결과 이미 지크마이스터가 망명한 우주력 720년대 말, 이미 동맹은 그가 이상향으로 여길 수 없는 수준으로 타락했다.[6]

이는 제국력 기준으로 아예 400년대 초부터, 즉 우주력 700년대 초중반부터 자유행성동맹은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하며 다곤 성역 회전이 고작 우주력 640년, 제국력 331년의 일임을 감안하면 굉장히 빨리 썩었다.


5. 말기[편집]


"쉽게 말해 동맹은 이제 수명을 다 써버린 겁니다. 정치가는 권력으로 장난치고, 군인은 암릿처에서 봤듯 투기적인 모험에 골몰하고.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서 이를 유지할 노력을 태만히 했지요. 아니, 국민들조차 정치를 일부 정치꾼에게 맡긴 채 참여할 생각이 없었으니....... 전제정치가 쓰러지는 것은 군주와 중신들의 죄 탓이라지만, 민주정치가 쓰러지는 것은 모든 국민 책임입니다. 당신을 합법적으로 권력의 자리에서 몰아낼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으나 스스로 그 권리와 책임을 포기하고 무능하고도 부패한 정치가들에게 자기 자신을 팔아치운 거지요."[7]

자유행성동맹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 항복을 주장하는 트뤼니히트의 말에 반박하면서.


이렇듯 민주주의 부활을 외치며 건국된 자유행성동맹이건만 결국 우주력 790년대 말에는 여러 문제점으로 인해 전방위적으로 전형적인 국가적 말기 현상을 보이게 되었다.

작가 다나카 요시키는 인터뷰에서 동맹이 부패한 원인을 목적의 변화로 꼽았다. 민주공화정을 실현하기 위해 자유행성동맹이라는 국가를 설립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동맹을 유지하는 것으로 목적이 바뀌고,[8] 유지를 목적으로 하다가 점점 스케일이 작아져서 종국에는 국가가 아니라 정권을 유지하는 것으로 목적이 바뀌는 것.[9]

다만 이는 제국령 침공작전이라는, 실패할 시 국가적 대재앙을 불러올 것이 뻔한 작전을 단지 지지율 상승이라는 목적으로 제대로 검토도 안 해보고 실행한 점과 정작 동맹 시민들은 작가의 말대로 동맹이라는 국가를 유지하는 것을 중시하기는 하지만 본 목적인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에도 적극적이라는 점을 보면 작가가 말한 문제점은 정치인들의 문제지 동맹 시민 전체의 문제점은 아니다.

아드리안 루빈스키는 자유행성동맹이 이대로 계속 간다면 끝없는 침체를 향해 나아갔을 거라고 예측했다.[10][11]


5.1. 말기의 상황[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자유행성동맹/역사/말기의 상황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2. 외전 시기[편집]


우주력 790년대에 접어들면서 동맹은 더 이상 강건했던 모습을 잃어버리고 타성에 젖어 민주주의를 위한 성전이라는 허울 아래 전쟁을 이어나간다.[13][14] 제국 역시 타성에 젖어 주기적으로 동맹을 침공했고 동맹은 제국의 공세를 방어하면서 때때로 제국의 침공 교두보인 이제르론 요새를 공격한다.

그러나 이제르론 요새는 너무나도 강력한 토르 하머와 견고한 장갑, 그리고 1만 5천 척에 달하는 주둔함대가 시너지 효과를 내어 공격하는 동맹군을 일방적으로 도륙했고, 네 차례에 걸친 이제르론 공방전은 모두 동맹군의 패배로 끝났다. 제5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시드니 시톨레 대장이 방법을 바꿔 병행추격+무인함 자폭돌격이라는 전법으로 요새에 처음으로 타격을 입히는 데 성공했지만 아군 오사를 각오한 제국군이 토르 하머를 발포하면서 실패했고, 제6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는 전술을 좀 더 가다듬오 병행추격과 화력집중, 유인책으로 제국군과 호각으로 싸웠지만 맨 마지막에 제국군의 유인책에 넘어가 패배했다.

방어전에서도 동맹은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주력 794년에 발발한 반플리트 성역 회전에서 동맹군은 함대전에서는 제국과 대등하게 맞섰지만 지상전에서 패배했고, 이듬해 벌어진 제3차 티아마트 회전에서도 윌렘 홀랜드 중장의 돌출행동을 제어하지 못해서 11함대를 날려먹었다. 제4차 티아마트 회전 역시 동맹군은 제국군에게 희롱당하기 바빴다.[15] 그러나 제국도 프리드리히 4세 즉위 이후 봉건화와 양극화가 진행되고 재정적자, 지방반란, 궁정암투가 연례행사처럼 벌어지고 동맹 못지않게 사회가 침체되었기에 동맹은 버틸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우주력 788년 엘 파실 전투에서 양 웬리라는 영웅이 등장하여 300만 시민들을 구하는 일이 있었다. 동맹 정부와 군 수뇌부는 패전을 가리기 위해 양 웬리를 구국영웅으로 떠받들며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고 꼼수를 써서 2계급 승진시켰다. 그러나 군 내부에서는 그저 운 좋은 애송이로 치부했으며 양 스스로도 딱히 승진에 대한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그를 알아본 시드니 시톨레 원수와 드와이트 그린힐 대장의 비호로 승진가도를 달렸지만 엘 파실 전투 이후 세상의 이목을 끌 성과는 내지 못했다.

5.3. 아스타테 회전~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편집]


우주력 796년, 아스타테 성계를 통한 제국군의 침공이 있자 동맹군은 제2함대 사령관 파에타, 제4함대 사령관 파스톨레, 제6함대 사령관 무어를 보내 막게 하여 아스타테 회전이 벌어진다. 전력상 동맹군이 제국군의 두 배나 되는 규모였기에 크게 앞섰지만 아스타테 회전에서의 제국군 지휘관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었고 그의 계책과 하필 동맹군의 지휘권이 동등한 세 사람에게 나눠진 데다가 잘못된 전술로 순식간에 제4함대와 제6함대가 붕괴되고 남은 제2함대마저 파에타가 중상을 입고 기절하여 붕괴될 뻔 했지만 파에타는 중상으로 쓰러지기 직전 제2함대 차석참모 양 웬리에게 지휘권을 넘겨주었고 양 웬리의 활약으로 간신히 동맹군은 완전 붕괴까지는 면한 채 아스타테 성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때 당시 자유행성동맹군 통합작전본부장은 시드니 시톨레였는데 이 시기 그는 잘못된 인선으로 여러번 연거푸 전투를 말아먹었으나 사실은 최고평의회의 정치적 군사작전으로 인해 벌어진 참사였다. 그렇지만 대외적으로는 시톨레의 무능으로 비춰졌고 최고평의회도 사사건건 반대를 하는 시톨레를 곱지 않게 보았기에 시톨레는 경질될 위기에 처한다.

시톨레는 현 상황에서 자기마저 경질당하면 정부의 무리한 공세로 인해 국가를 파멸로 이끌 것이라 판단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연임을 꾀하고 그래서 이제르론 요새 공략 작전을 입안하게 된다. 이를 위해 시톨레는 우선 평소부터 눈여겨 보았으며 아스타테 회전에서 활약한 양 웬리를 소장 진급과 함께 13함대 사령관에 앉혔고 그에게 이제르론 요새 공략을 맡긴다.

통상적인 함대는 중장 이상이 맡으며 최소 1만척이 넘는 규모지만 13함대는 갓 진급한 소장인 양 웬리가 사령관인데다가 4함대와 6험대 잔존병력을 묶어 6600척 규모의 '반쪽짜리 함대'였으나 요새 공략에 실패해도 부담이 적으며 시톨레가 양 웬리의 능력을 믿었기에 13함대를 통한 이제르론 요새 공략 작전을 입안하여 국방위원회에 제춣했다. 그리고 당시 국방위원장인 욥 트뤼니히트도 시톨레를 실각시키고자 했기에 시톨레와 마찬가지로 져도 손해가 없고 이겨도 좋은 상황이라 승인하여 작전안은 통과된다.

그리고 그 결과 이제르론 요새는 동맹군의 손에 떨어져 동맹은 건국이래 최초로 제국의 영토를 점령하는 쾌거를 달성한다.[16]


5.4. 제국령 침공작전[편집]


제국령으로 가는 길이 열리자 동맹 내부에서는 주전론자들의 목소리가 커진다. 여기에 엘리트 의식에 빠져 양을 시기한 앤드류 포크 준장은 정식 루트를 거치지 않고 개인적인 연줄을 통해 로열 샌포드 의장에게 자신이 직접 짠 제국령 침공안을 입안했다. 때마침 각종 스캔들과 정체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지지율이 답보 상태에 있던 샌포드 정권은 통합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제국령 침공안을 통과시킨다.

하지만 제국령 침공작전은 목표부터 불분명했으며, 세세한 부분에도 문제가 많았다. 여기에 제국군이 청야전술로 대항하자 동맹군은 자기들뿐만 아니라 막대한 제국의 인민들까지 먹여살리느라 물자가 바닥나고 만다. 중앙정부는 뒤늦게 1차 수송선단을 파견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원정군 총사령부는 일선 부대들에게 보급품이 올 때까지 현지에서 물자를 조달하라고 명령하여 상황을 악화시킨다.

결국 동맹군은 물자부족과 적대적인 민심, 제국군의 총공세에 몰려 패배하고, 암릿처 성계에서 반격을 꾀했지만 이마저도 제국군이 동원한 신병기 지향성 제플 입자에 의해 제국군 별동대가 동맹군의 후방을 타격하면서 패배한다. 다행히도 양 웬리 제독이 분전하여 제국군의 포위섬멸 시도를 막고 동맹군의 퇴로를 확보하면서 제국군 슈바르츠 란첸라이터 함대를 박살내주었기에 '완패'는 면했으나, 동맹군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실패로 끝난 원정은 동맹에게 있어 재앙과도 같았다. 당장 날려먹은 경비만 해도 2000억 디나르 이상, 동맹 국가예산의 5%를 초과했으며 여기에 원정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유족에게 줘야 할 연금 등 바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2500억 디나르에 달했다. 안 그래도 전체 예산의 절반을 국방비로 지출하며 재정적자가 만성화된 동맹은 이 막대한 재정지출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고, 동맹의 재정은 파탄나기에 이른다. 군사 면에서 봐도 투입한 장병 중 70%가 사라졌으며 우란푸, 보로딘 같은 인재도 잃어버렸다, 궁지에 몰린 동맹정부는 10함대와 13함대를 합쳐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를 창설, 양 웬리 대장을 사령관에 임명하여 최전선에서 제국의 침공을 막도록 했다.

이렇게 되자 자연스럽게 무모한 원정을 추진한 정부와 주전파에 비난의 화살이 쏠렸으며, 로열 샌포드 정부는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평의원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하여 해산된다. 하지만 작전안 승인 자리에서 반대표를 던졌던 조안 레벨로, 황 루이, 욥 트뤼니히트 세 사람은 식견이 높다고 평가받았고 특히 이전부터 차기 의장감으로 주목받았을 뿐만 아니라 군부, 군수산업계, 언론 등과 공고한 카르텔을 형성한 욥 트뤼니히트는 다음 선거가 치러질 때까지 임시정권 수반을 맡았고, 이듬해 선거에서 정식으로 최고평의회 의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이 시기 제국에서 동맹과 제국간의 대규모 포로교환을 제안했고 하필 선거철인지라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동맹 트뤼니히트 임시정권은 제국의 제안을 승낙했다. 그러나...


5.5. 구국군사회의 쿠데타[편집]


포로교환 직후, 민주정권 붕괴와 반제국 거국일치체제 수립을 목표로 한 구국군사회의가 준동하기 시작했다. 반란군에 가담한 지방 군부대 지휘관들이 잇따라 봉기하여 지방 행성들을 점거하였고, 중앙에서는 사열부장 드와이트 그린힐 대장이 지상부대 훈련을 핑계로 병력을 시가지로 이동시켜 정부, 군, 사회의 주요 시설을 점거하였다. 욥 트뤼니히트 의장은 지하로 도망쳤고 구국군사회의는 군사정권의 수립과 동맹 헌장을 대신할 11개조 포고령을 발표했다.

그러나 양 함대는 동맹 헌정체제 지지를 선언하면서 쿠데타군과 대립했고, 도리아 성역 회전에서 쿠데타에 참여한 11함대가 박살나면서 전황은 급격히 앙 함대에 유리해졌다. 구국군사회의는 패배와 경제 정책 실패, 하이네센 기념 스타디움에서 민간인 학살로 이미지가 급격히 나빠져 민심이 돌아섰다. 그들은 아르테미스의 목걸이에 최후의 희망을 걸었으나 그것도 10억톤짜리 얼음덩어리 12개에 박살났고, 쿠데타군은 무조건 항복한다.

쿠데타를 거치며 동맹군은 남아 있는 3개 정규함대 중 하나와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날려버렸고, 쿠데타 동안 한 일이 없다 보니 발언력도 약해졌다. 반면 트뤼니히트 정권은 그동안 걸림돌이었던 제시카 에드워즈 의원이 죽고, 군부의 발언력이 약해지면서 군부를 장악할 기회를 얻었다. 이들은 군 곳곳에 트뤼니히트에게 충성을 맹세한 정치군인들을 채워넣었고, 그 때문에 쿠브르슬리알렉산드르 뷰코크는 각각 통합작전본부장과 우주함대 사령장관이라는 허울 좋은 직위에 앉아 있을 뿐, 망망대해에 있는 무인도처럼 고립되었다.


5.6.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편집]


구국군사회의가 진압된 후 다시 트뤼니히트가 의장으로 복귀하지만 안 그래도 사정이 좋지 못했던 동맹의 군사와 경제 분야는 더 암담해졌다. 군사력은 제국령 침공작전 직전의 30%로 추락했고 이걸 복구하기 위해 GNP의 30%를 쏟아부었기 때문에 경제마저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트뤼니히트는 이 위기를 해결하는 것 보다 언론과 우국기사단을 동원하여 반대파를 억압하고 군 수뇌부에 자신을 맹종하는 정치군인을 채워넣는 데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동맹이 무너져가는 와중에 페잔 자치령양 웬리의 입지를 좁힐 생각으로 동맹 판무관 헨슬로를 통해 양 웬리가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다고 모함했다. 때마침 트뤼니히트도 고분고분하지 않은 양 웬리를 손봐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몇몇 건을 트집잡아 사문회를 개최하여 이제르론 요새에 있는 양 웬리를 수도로 소환하였다. 그런데 사문위원들이 수도에서 양 웬리를 들볶는 사이 은하제국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이동요새로 개조하여 동맹을 침공했고, 트뤼니히트는 양을 이제르론으로 돌려보내 반격작전을 지휘하도록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동맹 정부는 수도방위가 위험해진다는 이유로 양 함대 다음가는 전력을 가진 제1함대 대신 독립함대를 긁어모아 편성한 혼성함대 5,500척을 구원군이랍시고 양 웬리에게 주는 추태를 보였다. 다행히 양 웬리는 그 전력으로도 이제르론 요새와 협공하여 제국군 사령관 칼 구스타프 켐프 제독을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5.7.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편집]


동맹과는 반대로 라인하르트의 집권 뒤 행해진 각종 개혁으로 국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은하제국은 페잔 자치령과 밀약을 맺어 황제 에르빈 요제프 2세가 문벌귀족 잔당들에게 납치당하는 걸 방조했다. 동맹 최고평의회는 황제를 납치한 귀족 잔당들이 문을 두드리자 제국과 협상할 때 외교 카드로 쓸 생각으로 이들의 망명을 허가했으며, 밀약을 맺어 민주화를 조건으로 자칭 '은하제국 정통정부'라는 조직이 정당한 권리를 수복할 때까지 도와주기로 했다. 우주력 799년 8월 20일 트뤼니히트 의장은 요펜 폰 렘샤이트 백작과 함께 황제 망명과 정통정부 수립 선언을 했다.

하지만 이건 동맹의 자충수나 다름없었다. 민주공화정의 원수 골덴바움 가문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증조할아버지때부터 치고받고 싸웠는데 이제 와서 황제와 귀족들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그들의 편에 서서 라인하르트와 싸우라고 하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한편 몇몇 시민들은 어린 황제를 동정하며 그들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고 동맹 시민들은 망명정권을 위해 싸우느냐 마느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면서 동맹의 국론은 분열되었다. 그리고 동맹이 혼란에 빠진 사이 라인하르트는 황제 '납치'에 대한 어떠한 외교교섭을 거부하며 전쟁을 선포하여 라인하르트의 리액션을 기다리던 동맹 최고평의회를 후려쳤다.

제국은 전쟁을 선포한 뒤 대규모 훈련과 작전 준비에 전력을 다했고 페잔 판무관 니콜라스 볼텍을 포섭하여 비밀리에 페잔을 병탄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동맹정부는 코드가 안 맞는 쿠브르슬리 대신 도슨을 통합작전본부장에 임명하고, 양 웬리의 힘을 뺀답시고 율리안과 메르카츠를 양 웬리 곁에서 떼어냈다. 그ㅓ면서도 제국이 의도적으로 유포한 '이제르론 요새를 향한 군사행동'라는 첩보에 낚여 이제르론 방면만 신경쓴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하지만 제국은 별동대를 동원해 이제르론 요새를 치는 척 하면서 전격적으로 페잔 자치령을 공격, 손쉽게 페잔을 병탄하고 페잔 회랑을 통해 동맹령으로 쇄도했다.결국 이는 적은 병력으로 이제르론 요새에서 제국군을 맞아 싸운다는 동맹의 기본적 전략이 붕괴됨을 의미했고 이제르론 요새의 전략적 가치가 완벽하게 상실되게 되어 자유행성동맹이 큰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그런데 제국군의 침공이 기정사실화 되자 지금까지 자유행성동맹을 장악한 부패한 정치가와 무능한 군인들이 패닉상태에 빠졌고, 국가원수 욥 트뤼니히트는 유감 성명만 남기고 도주했으며 결국 제대로 일을 하는 것은 동맹에 남은 월터 아일랜즈를 비롯한 소수의 양심적인 정치가들과 군인밖에 없었다.[17] 결국 트뤼니히트의 앞잡이 노릇이나 하던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고관들은 아일랜즈의 진두지휘에 입 다물고 처박혀 있거나 시키는대로 잘 따라줬다.그로 인해 정말 황당하지만 이 시기 자유행성동맹은 매우 효율적으로 청정하게 운영되었다.

하지만 제국군이 포레비트 성역까지 진군하고, 지방 성계들이 동맹정부의 방위능력에 의문을 품으면서 동맹군은 지방 성계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라도 싸울 수 밖에 없는 지경까지 몰리고 말았다. 그런데 군이 바닥까지 긁어모은 병력은 제국군의 3분의 1 수준인 함정 3만 5천 척에 불과했고, 동맹군 최정예부대인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는 이제르론 회랑에서 발이 묶여 있었다. 뷰코크는 총참모장 춘우 지엔 대장의 건의에 따라 양 제독에게 자유재량권을 부여했고, 양은 제국군 헬무트 렌넨캄프 함대에 한방 먹인 뒤에 요새를 버리고 동맹령으로 철수했다.

하지만 양 웬리가 합류하기 전에 제국군이 먼저 동맹의 유인성계로 쇄도하게 되자, 뷰코크 원수는 동맹군 전 병력을 이끌고 란테마리오 성역에서 제국군을 요격한다. 동맹군은 처음에는 수세에 몰리면서도 나름 잘 맞서싸우는 듯 했지만 슈바르츠 란첸라이터가 동맹군의 집중포화와 에너지 조류를 뚫고 돌진하고 다른 제국군 함대가 공세에 가담하면서 동맹군은 패배한다. 그런데 동맹군의 숨이 끊기기 직전에 최단 루트로 달려온 양 웬리가 제국군의 후방을 타격하면서 동맹군은 전멸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양 웬리의 활약으로 동맹군 섬멸에 실패한 제국군은 행성 우르바시를 점령하여 그곳을 거점으로 삼았다.

수도로 귀환한 양 웬리와 간부들은 아일랜즈에 의해 1계급 승진하고, 다시 하이네센을 떠나 동맹령에 널린 보급기지를 거점으로 유격전을 전개한다. 이제르론 회랑에서 오던 제국군 수송선단이 첫 제물이 되었고, 슈타인메츠, 렌넨캄프, 바렌이 연이어 패배하며 라인하르트의 심기를 건드렸다. 결국 라인하르트는 양 웬리를 포위섬멸하기 위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제독들을 동맹령 각 성계로 보내면서 양 웬리를 끌어들이지만, 양은 버밀리온 성역에서 두 번이나 라인하르트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바로 이때가 동맹이 마지막으로 이길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분산출격했던 제국 원정 함대 중 로이엔탈 함대와 미터마이어 함대가 힐데가르트의 조언에 따라 버밀리온 성역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맹 수도성 하이네센을 공격하여 동맹정부에게 전면강화를 요구했다. 뷰코크 원수와 아일랜즈 국방위원장은 항전하려고 했지만 숨어 있던 트뤼니히트가 다시 나타나 지구교도들을 동원하여 뷰코크와 아일랜즈를 감금하고 의장의 권한으로 항복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 항복선언에 따라 양 웬리도 전투를 멈추면서 라인하르트는 간신히 살아날 수 있었다.

하이네센을 점령한 라인하르트는 지금 당장 동맹을 제국령에 편입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판단하여 병합 대신 '바라트 화약'이라는 평화조약을 맺었다. 그 내용은 동맹의 함대 보유 및 군사시설 건설 제한, 영토 일부 할양, 안전보장세 지불, 반제국 운동 단속, 고등판무관부 설치 등 동맹을 제국의 속국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트뤼니히트는 의장 권한으로 조약에 서명한 뒤에 패전 책임을 진다는 명목으로 사퇴하고 제국과 교섭하여 신변과 재산의 안전, 제국 망명권을 인정받아 제국으로 도망쳐버렸다. 자신들이 지지한 국가원수에 뒤통수를 맞은 동맹 국민들은 트뤼니히트를 증오했고, 정부 고관들은 협의 끝에 조안 레벨로에게 의장 대행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고 레벨로는 승낙했다.

5.8.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편집]


트뤼니히트가 떠나고 텅 빈 자리를 나라를 위해 떠안게 된 레벨로는 공무원 및 군인의 월급과 연금을 삭감하고 동맹헌장에 명기된 언론과 결사의 자유를 일시 제한하는 한편 반평화활동방지법을 제정하고 제국군이 동맹 전현직 군인을 감시하도록 허가하는 등 최대한 제국의 재침공 명분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제국 고등판무관 렌넨캄프 상급대장은 양 웬리에게 열등감을 품은 나머지 동맹정부에게 반평화활동방지법 위반 혐의로 양 웬리 체포를 권고했다. 혐의 자체가 풍문에 근거했기 때문에 물증이 없었찌만 레벨로는 한 명을 희생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해 위법으로 양 웬리를 체포했고, 동시에 양 웬리의 옛 부하들을 감시하게 시작했다.

하지만 이걸 모를 양 함대 간부진들이 아니었고, 로젠리터 연대가 반란을 일으켜 체포 위기에 빠진 쇤코프와 아텐보로를 구하고 레벨로 의장을 납치하였다. 납치된 레벨로를 대신하여 사태 처리를 맡게 된 록웰 대장은 반란부대의 교섭에 응하면서 양 웬리를 죽이려고 했지만 양 웬리가 죽기 직전에 로젠리터가 동맹 중앙검찰청을 습격하여 양 웬리를 구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국 고등판무관부도 로젠리터에게 털리면서 렌넨캄프 상급대장도 납치되었다. 양 웬리 일당은 렌넨캄프를 인질로 삼아 동맹정부로부터 무기와 순항함 레다 II호를 얻어내어 하이네센을 탈출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수치심을 느낀 렌넨캄프 상급대장이 자결해버렸다. 양 웬리 일당은 하이네센을 떠날 때까지 렌넨캄프가 살아 있는 것처럼 동맹 정부를 속이고 하이네센을 탈출한 뒤에야 렌넨캄프의 죽음을 밝혔다. 하지만 제국은 라인하르트가 최종 결단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이는 동맹 정부에 귀중한 시간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조안 레벨로 의장은 사태의 진상을 숨기고 양 웬리를 붙잡는 데만 열중했다. 그리고 우주력 799년 11월 제국이 태도를 바꿔 사태의 전말과 제국의 추태를 밝히고 사죄한 뒤 동맹 정부의 추태를 거론하며 바라트 화약 폐기와 재원정을 선언했다.

6. 멸망[편집]


제국이 재침공을 선언하자 동맹사회는 크게 혼란에 빠지고, 동맹정부는 조안 레벨로 의장이 정신줄을 놔버려 마비되었으며 통합작전본부도 군 통수 기능을 잃어버렸다.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가 현역으로 복귀하여 총참모장 춘우 지엔 대장과 함께 우주함대 사령부를 지휘하여 마지막으로 남은 우주함대를 모아 민주공화정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서 최후의 함대결전을 준비한다.

대략 2만 척이 넘는 함대를 소집한 뷰코크는 장래를 대비하여 엘 파실 독립정부에 가담한 양 웬리에게 함정 5천 척을 양도했으며, 나머지 함정들은 출격하여 마르 아데타 성역에서 몇 배에 달하는 제국군과 맞섰다.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에서 동맹군은 분전했지만 패배했고, 뷰코크 원수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항복 요구를 정중하게 거절하며 전사했다. 이로써 자유행성동맹군 우주함대는 2세기가 넘는 역사를 마감하고 사라졌다.

제국군이 하이네센으로 진공하자 통합작전본부장 록웰 대장과 그 부하들은 우드 디터 훔멜의 선동에 넘어가 보신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들은 조안 레벨로 의장을 살해한 뒤 수도를 장악했으며 제국군에게 무조건 항복했다. 제국군은 우주력 800년 2월 9일 하이네센에 강하하여 수도 각지를 점령했으며, 록웰과 반란장교들을 모조리 총살형에 처했다.

수도에 머물면서 여러가지 필요한 조치를 끝마친 라인하르트는 우주력 800년 2월 20일 겨울장미원에서 공식적으로 동맹의 멸망을 공표함과 동시에 과거의 존재로서 자유행성동맹을 '반란군'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는 겨울장미원의 칙령을 공표했다.

우주력 800년, 신 제국력 2년 2월 20일, 자유행성동맹은 그렇게 273년에 걸친 역사를 끝맺었다.

결국 자유행성동맹은 건국 이래 존재를 제국에게 인정받지 못하다가 멸망한 후 정복한 국가의 최고통치자에 의해 과거에 존재했던 정치체로서만 인정받게 된 셈이다. 로이엔탈은 이에 대해 '카이저의 말은 얼마나 신랄한가'라고 생각했다. 멸망 이후 구 동맹령은 노이에란트(신영토)라는 이름으로 제국에 편입되었으며, 노이에란트 총독부가 설치되어 제국의 2인자인 노이에란트 총독이 다스리는 땅이 되었다.

7. 동맹의 후예들[편집]


그러나 이것으로 동맹의 역사를 끝낼 수 없는 미묘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아무리 동맹이 썩어빠졌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민주공화주의자의 긍지를 가진 자유행성동맹 시민들이 아무리 유능한 독재자라도 그에게 무릎을 꿇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조짐은 이미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 당시 라인하르트가 하이네센에 온 순간부터 나타나 있었다. 한 공화주의자가 라인하르트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한 것과 일선 공무원들 중 일부가 제국군의 점령작업에 협조를 거부한 것.

바라트 화약 이후 엘 파실 자치정부가 민주주의를 저버린 자유행성동맹에서 이탈, 독립하여 엘 파실 독립정부를 창건하였다. 여기에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으로 모살당할 뻔한 양 웬리 함대가 합류하여 엘 파실 독립정부는 급성장하고, 양 웬리의 궤계로 이제르론 요새를 탈환, 이제르론 회랑을 점거한다.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 당시 자유행성동맹군은하제국군과의 결전에 앞서 마지막 우주함대의 20%를 양 웬리에게 양도했고, 동맹 멸망 이후 잔존 동맹군 우주함대는 하나 둘 엘 파실 독립정부에 합류하였다. 카이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최후의 적수, 양 웬리와 결착을 짓기 위해 20만 척에 가까운 우주함대를 회랑 내 투입하여 엘 파실 혁명군과 교전한다.

회랑 전투에서 제국은 우세한 병력에도 불구하고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제독이 전사하는 등 큰 피해를 입고 카이저의 병세가 악화되어 엘 파실 독립정부에 회담을 제의한다. 마침 엘 파실 혁명군도 제국군의 공세를 막아내면서 에드윈 피셔 제독이 전사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제국군의 회담 제의에 응했고, 며칠 뒤 혁명군 사령관 양 웬리와 독립정부 의장 프란체스크 롬스키 등 독립정부 수뇌부들이 회담을 위해 제국군으로 갔다.

하지만 민주공화주의 세력과 전제주의 세력의 화평 및 공존이 이루어지는 걸 볼 수 없었던 지구교의 모략으로 양 웬리프란체스크 롬스키 등 독립정부 중진들이 대부분 암살당하는 참극이 일어난다. 구심점은 잃은 엘 파실 독립정부는 해체의 길을 걸었으나, 과거 자유행성동맹군 시절부터 양을 따라 분전한 엘 파실 혁명군 간부들은 무너지지 않고 양 웬리의 전 부관이자 아내 프레데리카 그린힐 양이 주석에, 양자 율리안 민츠를 혁명군 사령관에 옹립하여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창건한다.

구 동맹령이 제국 치하 노이에란트로 개편되고, 총독으로 오스카 폰 로이엔탈 원수가 임명되었다. 로이엔탈은 우수한 통치로 과거 동맹의 병폐를 일소했으며, 그 덕에 동맹 시민들의 적개심이 누그러진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동맹 멸망 7개월 만에 동맹 시민들은 '제국 타도'를 외치며 제국군과 충돌한다. 바로 응웬 킴 호아 광장 사건 이 사건에는 지구교가 배후에 있다고 추측되나, 지구교가 배후에 있다 해도 그들이 한 건 동맹 시민들의 적개심에 불을 붙인 것 정도이기 때문에 동맹 시민들이 반제국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반증했다.[18] 응웬 킴 호아 광장의 폭동이 진압된 이후 구 동맹령에는 우발적, 또는 계획적으로 반제국 폭동이 벌어졌다.

노이에란트 전역 이후 아드리안 루빈스키의 파괴공작에 더불어 구 동맹령의 폭동은 더욱 커졌다. 우주력 801년 1월 말, 일명 '하이네센 동란'이라고 이름 붙여진 폭동이 하이네센 전역을 휩쓴 것이다. 여기에 루빈스키의 공작으로 구 동맹령과 페잔의 사회 인프라가 붕괴하여, 구 동맹령의 혼란은 더욱 확산되었다. 이는 역으로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를 위시한 강경파들의 이제르론 공화정부 토벌을 주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주력 801년, 아드리안 루빈스키의 공작으로 동맹의 사회 인프라가 다수 파괴되었고 군중들은 하이네센에서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다. 구 동맹령의 폭동이 확산되자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상급대장을 비롯한 강경파들은 공화주의 최후의 보루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토벌할 것을 주장했고, 이제르론 공화정부 역시 구 동맹령의 공화주의 세력으로부터 의심을 받고 있었으므로 제국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제11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이제르론 혁명군은하제국군과 맞서 승리하였고, 이 승리는 구 동맹령에 '황제의 정강이를 걷어차 줬다'고 선전되었다.

그러자 은하제국은 군무상서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원수를 보내 사태 수습을 지시하였고, 오베르슈타인은 구 동맹의 명사들을 체포하여 라그풀 교도소에 가둔 뒤 이제르론 공화정부 요인들의 출두를 강요했다. 이제르론 공화정부 요인들은 오베르슈타인의 출두 요청에 응했지만 누군가의 공작으로 라그풀 교도소에 폭동이 일어나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하이네센으로 향하던 공화정부 요인들은 이제르론 요새로 돌아갔다. 라인하르트는 수감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오베르슈타인을 질책했고 나이트하르트 뮐러를 협상 대표로 임명하여 이제르론과 교섭에 나섰다.

우주력 801년 5월, 이제르론 공화정부로 망명하던 '신세기호'라는 노후 수송선을 두고 이제르론 혁명군은하제국군간의 교전이 발생하였다. 이를 계기로 카이저 라인하르트가 5만 척의 함대를 이끌고 친히 공화정부를 토벌하기 위해 출정하였고, 공화정부 역시 함대를 출동시켜 시바 성역에서 격돌하였다. 전투는 혁명군에 크게 불리했지만, 사령관 율리안 민츠가 어렵사리 총기함 브륀힐트에 침입해서 카이저 라인하르트와 대면하여 화평을 요구했고, 그 의견을 카이저가 받아들여 양국은 일시 휴전한다.

이후 이제르론 공화정부와 은하제국 로엔그람 왕조는 공화주의 체제의 존속에 합의한다. 이 합의로 인하여 이제르론 공화정부는 이제르론 요새를 은하제국에게 반환하게 되었고 그 대신 전 자유행성동맹의 수도성이었던 하이네센을 비롯한 바라트 성계의 내정자치권을 보장받는다.
[1] OVA에서는 은하연방의 황금기가 재현되려고 하고 있었다고 언급하는데 은하연방은 인류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였음을 감안하면 그만큼 자유행성동맹이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었던 셈이다.[2] 작중에서 동맹은 변경 죄수 집단의 후손이라는 설정에 걸맞지 않게 나름대로 이것저것 잘 알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역시도 제국에서 넘어온 이들이 전해준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3] 승하할 당시, 그 동안 제국의 적자를 모두 메꾸고도 남을 흑자재정을 남겼다.[4] 제국령 침공작전에 동조한 코넬리아 윈저의 논리도 이랬다.[5] 그리고 이런 사람이 동맹을 보며 의식이 깨었다는걸 보면 이 시기의 동맹도 적어도 제국보다는 낫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타락할대로 타락하고 건국의 이상을 상실했다고 여겨진 790년대 말의 동맹도 동시기의 제국보다는 훨씬 나았다. 물론 제국 역시도 동맹 이상으로 타락한 것이 원인이긴 하지만.[6] 물론 만프레트 2세의 사례를 보듯 되려 자유행성동맹의 모습을 보며 나름 의식이 깨인 사람도 있었다는걸 보면 황족과 귀족 출신 망명객들이 꼭 나쁜 사람이라고만은 할 수는 없고[5] 애니 한정이지만 헤르크스하이머는 지향성 제플입자라는 최신형 무기를 동맹에 갖다바치려고 했다. 그러나 일단은 그 헤르크스하이머는 끝내 귀족적 사고를 버리지 못했고 황족과 귀족은 제국에 있을 때 최상류 기득권층이었던 만큼 동맹에서도 제국 시절만은 못해도 재산이야 많은데다 농지 뿐 아니라 광산업 등에도 손을 뻗쳐 재산증식을 하고 있었으니 동맹에 안착하여 심지어 동맹 상류층들과 교제하는 것도 딱히 어렵지는 않았을테니 확실히 귀족주의 성향을 그대로 간직한 황족과 귀족 출신 망명객들이 동맹 상류층이 되었다면 문제가 될법도 하다.[7]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327~328[8] 6권에서 록웰이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민주'국가'를 지키는 것이라고 독백하는데, 목적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이다. 심지어 레벨로조차 "국가를, 민주'국가'를 지키지 않고 뭐 하는 건가" 라고 말한 바 있고 심지어 동맹의 유지를 위해 반민주적인 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9] 이러한 사례의 가장 극단적인 케이스가 제국령 침공작전구국군사회의 쿠데타가 있다. 전자는 민주주의 정권이 고작 정권유지를 명목으로 국가를 멸망으로 몰아넣은 근시안적 재앙을 낳았고 후자는 국가유지를 명목으로 건국이상을 부정해버린 사례다.[10] 루빈스키의 시나리오대로라면 제국은 수많은 소왕국들로 분열하는데다가 민중 봉기로 혼란에 빠진 상황이 된다. 예의 구 제국령만 병합해도 중흥은 이뤄낼텐데 끝없는 침체로 나아간다는 건 다 이긴 전쟁조차 못 할 정도로 동맹 상황이 악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국가 역량이 고갈되는 셈[11] 다만 동맹이 이 지경이 된 것에는 페잔과 지구교의 공작이 있었고 또 그래도 동맹은 제국령 침공작전에서는 수십만 척에 달하는 함대를 한번에 동원할 역량이 있던걸 감안하면 동맹이 이제르론을 먹은 뒤 제국이 수많은 소왕국으로 쪼개진 상태까지 이제르론 요새에 의존한 우주방어만 시전한 채 국가역량을 되살리는데 매진한다면 얘기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물론 루빈스키는 동맹이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까지 파악하고 저 말을 한 것이겠지만... 애초에 제국도 동맹도 페잔과 그 뒤의 지구교에 놀아나고 있음을 감안하면 역량이 있는들 루빈스키나 지구교에서 의도적으로 없애려고 할 것이다. 애초에 이들 모두 결과적으로는 제국, 동맹 모두 멸망시키는 것이 목적이니(이후 루빈스키는 라인하르트 집권 후 목적을 바꾸긴 했지만 역시나 동맹은 멸망 대상이었다.) 그들이 국가를 유지할 역량을 남겨두는건 말이 안 된다.[12] 시기가 유제 납치 사건 이후다.[13] 외전이 아니라 본편이지만 OVA에서 나레이션은 "자유행성동맹의 건국으로부터 270년, 그 건국의 이상은 이미 사라졌으며 이권을 다투는 정치가들과 이익 유도에만 가치를 두는 대중의 중우정치로 변질되어 있다. 그러면서 반대로 라인하르트의 집권으로 강건해진 제국을 언급하며[12] 이상을 잃은 동맹은 그 존재가치조차 잃어버린 것일까? 라는 멘트를 던진다.[14] 물론 조금 변호를 해보자면 동맹은 억지로라도 전쟁을 이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이유는 근본적으로 제국은 동맹의 존재를 부정하며 반드시 타도해야 할 반란세력으로 인식해서 동맹을 어떻게든 멸망시키고자 했는데 동맹 입장에서는 자신을 멸망시키려는 적과 맞서지 않을 수도 없고 동맹 시민들 입장에서도 제국에게 나라가 망하면 어떤 대우를 받을 지 뻔했기에 양 웬리조차도 평화를 위해 제국에 항복/굴복하자는 말은 안 했다! 제시카 에드워즈를 위시한 반전파 역시도 마찬가지로 이들의 '반전주의'가 어떤 의미로 던지는 것인지는 묘사되지 않았지만 OVA 기준 반전파의 기수인 제임스 쏜다이크가 제2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자식 전부를 잃고 반전주의에 나섰다는 묘사를 보면 최소한 의미도 없고 무리한 공세를 그만두자는 것은 확실해보이며 제시카 에드워즈는 죽을 때까지 동맹의 민주주의를 옹호한 만큼 당연히 평화를 위해 제국에 항복/굴복해야 한다는 얘기는 안 했을 것이다. 심지어 그녀가 당당히 정치인으로 활동한 것을 보면 실제로 그런 말은 안 했을 것이다. 그런 말을 내뱉었다면 바로 매국노로 찍혔을 테니까. 즉 동맹이 전쟁을 이어나간 것은 자국내의 답없는 주전파 정치인의 영향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제국의 탓도 컸다. 설령 작중에 등장하는 주전파 정치인들이 싹 제거되고 반전파 정치인들이 집권해도 제국을 상대로 한 공세는 그칠지 몰라도 전쟁 자체는 이어진다는 것. 물론 이것만으로도 큰 성과이기는 하다.[15] 이러한 원인은 전체적으로 동맹군 장성들의 질이 하락한 것도 있고 정치인들 역시도 전쟁을 정쟁에 활용한 탓도 크다.[16] 제국은 고작 '반란군' 따위에게 영토를 상실했다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이전까지 그렇게 반란군이라고 매도한 것과는 달리 '외적'이라 지칭해 라인하르트의 비웃음을 샀다.[17] 사실 월터 아일랜즈도 원래는 양심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으나, 난세가 되고 나니 갑자기 포텐셜이 터진 케이스다. 만약 난세가 아니었다면 트뤼니히트 따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인물. 심지어 본인 스스로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18] 심지어 로이엔탈이 구 동맹의 정치인들보다 훨씬 더 정치를 잘 했는데도 말이다! 작중에서도 로이엔탈이 이런 모습에 씁쓸해 했을 정도, 그 정도로 아무리 선정을 펼친들 제국군은 누가 되었던 동맹 시민에게는 그저 침략자일 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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