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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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제국이란 무엇인가?
3. 역사학에서의 분류
3.1. 논의
3.1.1. 한자 문화권
3.1.2. 유럽 문화권
4. 제국의 넓이
5. 사악한 제국?
6. 여담
7. 목록
7.2. 유럽[1]
7.2.1. 로마 제국 계통 황제국
7.2.2. 기타
7.4. 동남아시아[2]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 Empire, Imperium

제국황제국가원수군주제 국가 또는 다른 민족이나 국가를 통치(지배)하는 국가를 말한다.[3] 1970년대만 해도 에티오피아 제국, 이란 제국, 중앙아프리카 제국 등이 남아 있었지만, 21세기 현재는 제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4]

제국과 비슷한 의미로 황국(皇國)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말 그대로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란 뜻으로, 대한제국일본 제국이 스스로를 황국이라고 칭했으며, 천자국을 이렇게 부르기도 했다. 서양권 제국 개념과 구분되는 중화권 천자국 개념을 지칭하는 단어로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현재 한국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단어라 일본에서만 주로 볼 수 있다.

근대에 들어서는 식민제국을 단순히 '제국'으로 일컫는 경우도 많다. 공식적으로 제국이었던 적도 없고 군주를 황제 또는 여제로 칭하지도 않았던 대영제국의 경우가 대표적으로, 지배했던 식민지 가운데 인도에 한해서만 제국과 황제의 호칭을 사용했음에도 통상 제국주의 국가로서 제국이라 인식되는 경우이다.

2. 제국이란 무엇인가?[편집]


제국이라는 정치 질서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닌다.

첫째, '제국'으로 불리려면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서로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서로 다른 부족이나 민족을 지배해야 한다. 정확히 얼마나 많아야 할까? 둘이나 셋으로는 충분치 않다. 통상적으로 10이나 20이면 충분히 많다고 본다.

둘째, 제국의 특징은 탄력적인 국경과 잠재적으로 무한한 정복욕이다. 제국은 자신의 기본 구조와 정체성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갈수록 더 많은 국가와 영토를 집어삼키고 소화할 수 있다. 오늘날 영국은 국경이 분명하며, 스스로의 기본 구조와 정체성을 변경하지 않고는 국경을 넘어설 수 없다. 1세기 전에는 지구상의 거의 어떤 지역이라도 대영제국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문화의 다양성과 영토의 탄력성은 제국의 독특한 특징일 뿐 아니라 역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두 가지 특징 덕분에 제국은 다양한 소수 민족과 생태적 지역들을 하나의 정치 체제하에 묶어낼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인류와 지구에서 점점 더 큰 부분을 하나로 융합했다.

강조할 점은, 제국은 그 기원이라든가 정부 형태, 영토의 범위, 인구 수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문화적 다양성과 국경의 탄력성으로 정의된다는 것이다. 제국이 반드시 군사적 정복으로 등장할 필요도 없다. 아테네 제국은 자발적 동맹으로 생명을 얻었으며, 합스부르크 제국은 혼인으로 탄생해 일련의 영리한 결혼동맹에 의해 꿰어 맞춰졌다.

제국은 또 반드시 절대 군주가 통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대영제국의 통치체제는 민주주의였다. 다른 민주적(혹은 적어도 공화정인) 제국으로는 근현대의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등이 있다. 근대 이전의 노브고로드, 로마, 카르타고, 아테네도 여기에 속한다.

크기 역시 실제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국은 왜소할 수도 있다.

아테네 제국은 최전성기에도 크기와 인구가 오늘날의 그리스보다 작았다. 아즈텍 제국은 오늘날의 멕시코보다 작았다. 두 국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이었지만, 현대 그리스와 멕시코는 아니다. 왜냐하면 전자는 수십 수백 개의 서로 다른 통치 조직을 점차 복속시킨 데 반해, 후자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테네는 원래 독립된 도시 국가 1백여 곳을 지배했으며, 아즈텍 제국은 과세 기록이 사실이라면 371개의 부족과 해당 부족민을 다스렸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어느 정도까지만 근대적이었던 국가의 영토 안에 구겨 넣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과거에는 민족과 부족의 수가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늘날의 전형적 민족에 비해 구성원의 수도 적었고 차지한 영토도 더 작았다.

오늘날 지중해와 요르단 강 사이의 땅에서 서로의 정통성을 다투는 민족은 둘 뿐이지만, 성서 시대에 이 땅은 수십 개의 국가, 부족, 작은 왕국, 도시국가를 수용했다. 제국은 인류의 다양성을 급격히 축소시킨 주된 이유의 하나였다.

제국이라는 증기 롤러는 수많은 민족의 독특한 특징을 지워버리고, 그로부터 훨씬 더 크고 새로운 집단을 만들어냈다.

3. 역사학에서의 분류[편집]



3.1. 논의[편집]


일반적인 역사학계의 평가에 따르면 BC24세기 아카드 제국을 세계 최초의 제국으로 본다. 그러나 고대 문명 수준의 조직을 갖춘 제국은 신 아시리아 제국(916 ~ 612BC)을 최초로 본다. 동아시아 최초의 제국은 , 유럽 최초의 제국은 알렉산드로스 대왕헬레니즘 제국을 꼽는다. 이들보다 앞서 BC3000년 경 고대 이집트 고왕국의 통일을 제국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지배자를 황제와 맞먹는 급의 파라오로 지칭한 것은 BC1400년 경 신왕국에 들어와서였다.[5]

많은 역사학자들은 철기 시대에 들어서면서 생산력이 대규모로 향상되고, 이러한 경제적 발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사회체제가 정비되는 시점에 하나의 문화권을 통합하는 최초의 대제국들이 성립한 것으로 본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대제국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가 최초이며, 그 뒤를 이어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가 성립했고, 이어서 중국의 , 과 유럽의 로마 제국이 성립했다.

최초의 대제국이 성립한 철기 시대에는 또한 대제국이 성립되기 이전의 기존 체제 이념에 반기를 든 철학이 사상 최초로 등장했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인도우파니샤드 철학과 불교자이나교, 유럽그리스 철학, 중국제자백가 등이 이에 해당된다. 칼 야스퍼스는 이 시기에 축의 시대(독일어: Achsenzeit, 영어: Axial Age)라는 이름을 붙였다.

근대 민족국가, 국민국가 개념의 등장 이후에는 제국의 재 등장 가능성에 회의를 가진 시각이 늘고 있다. 제국은 다인종, 다문화를 포함하는 넓은 권역을 다스리는 국가인데, 근대 국민국가는 탄생배경 및 구조상 주류가 아닌 민족은 주류에 동화되지 않으면 소외, 심하면 탄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 반동으로 저항 및 분리독립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한 유럽 제국들의 몰락이나 단일민족의 제국을 주장했던 추축국의 몰락과 같은 사례가 이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사실 근대 이전에 거대한 제국을 세운 민족들의 경우에는 다문화적인 요소들인 '철학, 이데올로기, 종교' 등이 있어서 갈등을 최소화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관대함으로 유명한 페르시아로, 키루스 2세의 관대함은 유대인들에게도 찬양을 받았다. 로마 또한 다민족국가로 유명하고, 혈통주의처럼 오해를 받는 한나라 역시 기준에만 맞으면 한족으로 인정을 해주었다.[6] 중국에서 배타적 민족주의가 강해진 것은 송나라 이후의 일이다. 사실 한족 우월주의자들도 혈통적 민족주의자들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7] 관점에 따라서 이게 뭐가 다르냐고 할 수도 있지만 혈통이 다르면 엄청나게 배척하던 사람들에 비하면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으니 혁신적인 관점이기는 하다.


3.1.1. 한자 문화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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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제국
(대월)
(야마토)

일본
일본 제국
일본국
(고려)*
(대남)
대한제국

번외
소중화 사상

* 실제 황제국이 맞는지 학계에서 논란이 있으며, 이에 대한 내용은 고려/외왕내제 여부 문서에 있다.
(괄호는 외왕내제 왕조)




한자 문화권에서는 원칙적으로는 제국이란 단어는 상당히 생소한 것이었다. 관념적으로 황제는 한 나라(國)에 국한되는 영역이 아니라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쓰는 황제라는 표현은 진시황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8] 그러나 시황제의 진을 계승한 후대 왕조는 작은 규모의 정권까지 통틀어도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명목으로나마 로마 제국의 후예만을 공식적인 제국으로 인정해 주는 유럽과는 구분되는 점이다. 즉, 서양의 황제는 '로마 제국의 후예'라는 정통성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면, 동양의 황제는 '천하를 제패한 자', 그 중에서도 중원을 제패하고 통일한 국가가 그 중 가장 주된 조건이었다.[9] 물론 북방의 유목민족 국가들과 고구려는 조금 다른 사례이긴 하지만.

주변국에겐 연호와 직책(주로 왕이나 장군)을 하사하는 등의 조공 책봉 형식을 취했다. 천자국의 사상적 원칙상 주 목표 중 하나가 마치 로마제국처럼 자신들의 발달된 문화를 보급하고 문명을 전파하고 교화시키는 것이었는데. 초기 중원 왕조는 비교적 이 역할에 충실했고[10][11] 따라서 애초에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동아시아권에선 상대적으로 문물이 발달되었던 중원 이외 국가의 칭제에 대한 제약이 매우 강했으며 만리장성을 넘어 중원 대륙을 노리는 북방민족들은 천왕, 황제 등을 칭하면서 제국을 표방하였다. 또한 근대에 들어서는 일본 제국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이미 전세계에서 제국으로 인정해주고 있는 나라였으며,[12] 몽골 제국 같은 경우에도 세계 제국이었기 때문에 원나라의 존재 여부에 관계 없이 제국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베트남 같은 경우는 중국에 대해선 어디까지나 외왕내제의 체제를 갖고 있었지만 동북아동남아에 걸쳐 있었던 애매한 정황과 가급적 당시의 칭호를 존중해 주는 현대 학계의 동향에 따라 제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중국의 황제에게 영지를 분봉받은 경우나 조공 책봉을 통해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은 주변국들은 한 단계 아래인 제후국으로 칭해졌으나, 흉노등의 북방 기마족과의 관계에서는 세력의 우열에 따라 달라졌다. 중원 한족 왕조가 강하면 용병으로 일을 하거나 약탈한 것들을 바쳤고 거꾸로 북방 유목민이 강하면 한족 왕조에 조공을 받았다. 그 결과 중국[13]과 동격의 황제를 칭하고, 중국에서도 이를 인정했던 북조 국가들 및 요나라, 서하, 금나라 등이 나왔다.

결국 동양의 "황제"는 서양의 황제와 달리 세속적인 권력뿐만 아니라 문화와 종교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즉, 교황에 가까운 존재였다. 교황이(실질 영토 자체는 작을지언정)전 기독교인들의 왕, 왕 중의 왕으로 군림하면서 서유럽에 영향력을 떨치며 종교개혁 이전까지 명실공히 서유럽의 지배자나 다름없었듯이, 동양의 천자 역시 모든 제후(왕)들의 상전이자 하늘의 아들으로 전 동아시아에 영향력을 끼치며 군림했다.

한때 개항기의 서구 열강조차 형식적으로는 조공국의 모양새를 취했다는 잘못된 정보가 유포되었으나, 서양의 외교 사절이 공식적으로 조공국임을 인정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에서 러시아어/만주어 조약문에서 알 수 있듯이 루스 차르국청나라는 서로 대등한 국가로 인정하고 있었다. 이와 관해선 영국과의 외교사가 유명하다. 영국 최초의 대중국 사절인 매카트니 경은 끝내 청나라 황제 앞에서 삼궤구고두례를 거부함과 동시에 조공국임을 부인하여 외교관계 수립도 무산된다. 아편전쟁 이후 결국 서양국가들과 국교를 수립하게 되었을 때 청나라는 대등한 관계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한국 역사에서는 연호를 사용하거나 제후왕을 임명하여 국가원수가 왕중왕으로 군림하며 태왕, 황왕, 대왕, 황제 등의 칭호를 취하는 등 제국의 위상을 표방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고구려는 많은 학자들이 제국으로 보는 편이다. 태왕이라는 칭호에 함의된 제국의 지배자로서의 위상이 주목받는 편이며 전성기 시절 만주한반도 일대의 패권을 행사하고 동아시아의 주요 세력으로 군림하는 등 한국사에서 강대국, 제국이라는 단어에 가장 부합하는 시대였다.

백제 역시 왕중왕으로 군림하고 황제의 칭호를 탐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후백제, 후고구려 역시 고고학적으로 연호를 내걸었던 것이 확인되고 문헌적으로도 단지 일국의 지배자가 아닌 그 이상을 표방했다는 정황이 뚜렷하다. 그리고 이들을 통합한 고려는 전반기에 천자, 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더러 제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여[14] 외왕내제(外王內帝)로 분류되기도 한다.

조선의 고종대한제국을 선포했지만 불과 13년 만에 일본 제국에 의하여 멸망하고 만다. 대한제국은 현대 역사학에서 정의된 '다민족, 다문화를 지배 하에 두고 일정한 권역에서 패권을 장악한 국가'라는 정의에는 부합하지 않아 제국으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참고로 소설가 현기영은 당시 장지연이 '조선이 제국의 자격이 있는 이유'에 대해서 글을 기고하기를 "북쪽으로는 여진을 가지고 있고 남쪽으로는 탐라를 가지고 있으므로 충분히 제국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라고 주장했다고 설명하며, '내부 식민지'로서 제주도함경도의 존재가 조선 왕조 입장에서는 국왕 아래의 동등한 인민이라기보다는 왕조에 복속되어 식민 지배를 받는 인민 이하의 신민 같은 존재였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경우는 중국의 천자(天子)처럼 천황이라는 독자적인 칭호를 쓰며 역사 내내 줄곧 독자 연호를 써왔으나, 전근대 동양에서 유일한 황제는 중원의 황제였으므로 국제적으로 제국으로 인정받는 것은 일본 제국 시기가 되어서야 가능했다.

베트남의 경우도 외왕내제를 내세워 내부적으로는 황제를 칭했지만 대외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3.1.2. 유럽 문화권[편집]




유럽에서는 전 유럽을 석권했던 로마 제국의 권위에 맞설 수 있는 기독교권을 통일한 대제국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로마 계승을 자처한 국가들 외에 황제를 자처하는 군주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심지어 16세기 아메리카필리핀을 식민지로 경영했던 스페인 왕조차도 감히 황제를 자처하지는 못했다. 카를 5세 시기에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스페인의 국왕을 겸하긴 했는데 어디가지나 동군연합에 불과하지 스페인 본토의 황제를 칭한게 아니다. 국력이 당대 프랑스 왕국의 5분의 1도 안 될 비참한 지경인 동로마 제국 멸망 당시의 각 분국들은 어쨌든 로마 황제 계승의 연속성을 주장하며 저마다 황제를 자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통성이 중요한 황제와 달리 제국이라는 용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현실을 나타내는 용어이기 때문에, 제위와 관계없이 본토 이외 식민지를 확보한 나라에서는 본토와 식민지를 아우르는 지배영역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제국'이라는 용어를 썼다. 이경우 본래 의미의 제국과 구분하기 위해 식민제국으로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대영제국, 스페인 제국, 프랑스 식민제국 등이 있다. 물론 본토를 지칭할 때는 제국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

유럽사에서 서로마 멸망 이후 제국을 자처한 국가는 다음과 같다.


3.1.2.1. 서로마 제국 계열[편집]

  • 서로마 제국 - 비록 반쪽만 남았지만 로마 제국 그 자체이다. 사실 그 이전에도 여러 황제를 두고 영토를 나눴으며 다시 합쳐지기도 했다. 또한 현재는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그로 인한 서유럽과 동유럽의 구분을 위해 구분하지만 당시에는 여전히 로마 제국 하나였다.[15]
  • 프랑크 왕국 - 카롤루스 대제교황의 대관식을 받아 서로마 제국의 계승국으로서의 황제 권위가 부활하게 된다. 이를 존중하여 영어에서는 Frankish Empire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후 프랑크 왕국이 분열 크리를 밟으며, 서로마 제국 계승자의 지위는 정치적 거래의 제물로 서, 중, 동프랑크 왕국 사이를 떠돌아 다니다가 오토 1세 시기 작센왕조의 동프랑크가 차지하게 된다.
    • 신성 로마 제국 - 다만 동로마 제국은 '황제'로서의 권위까지만 인정했으며, '로마 황제'의 칭호는 인정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동로마 황제는 신성 로마 황제를 로마인의 황제 (英 : Emperor of the Romans)가 아니라 로마시의 황제임을 인정했다.[19]
      • 오스트리아 제국 -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이 해체 수순을 밟을 즈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프란츠 2세가 선언한 제국.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보불전쟁 이후 헝가리의 내셔널리즘 세력을 달래기 위해 선포된 대타협으로 인해 생겨난 제국. 이중 제국으로도 알려져 있다. 단 오스트리아-헝가리 중 오스트리아 지역만이 제국이였고 헝가리 지역은 왕국이었다.[16]
      • 독일 제국 - 프로이센 왕국 주도로 오스트리아 제국을 배제한 도이칠란트 지역을 규합해서 만든 제국.
        • 제3제국[17][18]
    • 프랑스 제국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1세)와 나폴레옹 3세 시대. 당시 대다수 유럽인들은 나폴레옹 본인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서로마 제국 혹은 프랑크 왕국을 계승할 어떠한 정통성도 없었기에 나폴레옹의 황제 칭호를 참칭으로 여겼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수립한 제국 자체는 스스로는 카롤루스 대제의 후계국을 자처했으므로 억지로나마 서로마 제국 계열로 분류할 수도 있다. 혁명 프랑스를 토대로 한 막강한 국력으로 유럽을 평정했기에, 힘으로 주변국을 찍어누르고 제국의 칭호를 얻은 국가라 할 수 있다.[20] 서유럽에선 이전에도 제국을 칭할 법한 강대국들이 많았지만 프랑크 제국 이후로 한 국가가 나머지 국가들을 완전히 압도했던 적이 없어서 함부로 황제의 칭호를 주장하지 못했다. 그런데 혁명 프랑스는 독보적으로 강했고 혼자서도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를 힘으로라도 제압할 수 있었기에 황제 칭호를 교황에게 강요하여 억지로 빼앗은 것이다. 그렇지만 나폴레옹이 황제 칭호를 칭하는 근거가 순전히 '압도적인 군사력'뿐이고 그 제위에는 어떠한 정통성도 없었기 때문에 위에서도 언급했듯 주변국들이 참칭이라고 했던 것이다. 결국 나폴레옹 시대 이후 '힘'으로 황제를 자처할 수 있어 로마 제국의 정통성은 신경을 안쓰게 되고 다른나라를 정복하여 편법으로 황제가 되는 식민 제국 국가들이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해 '황제 인플레 현상'이 19세기 이후에 벌어지게 된다. 다만 역설적이게도 국민들이 의회를 통해 황제로 임명해주는 나폴레옹식이 방법론적으로 시민들이 원로원을 통해 황제로 인정하는 로마식과 가장 유사하단 점이 특기할 부분이다. 황제 칭호의 정식 명칭이 프랑스인의 황제이고, 이는 과거 로마 제국의 '로마인의 황제'와 비슷한 칭호다.


3.1.2.2. 동로마 제국 계열[편집]


또한 민족 구성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동로마 제국은 그대로 로마 그 자체이었기에 당대에는 그냥 로마로 불렸다. 이 제국의 공식 명칭도 'Imperium Romanum'으로 로마 제국 그 자체였다. 이것이 위에 언급된 러시아가 로마의 후신을 자처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대체로 이 제국이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을 계기로 사라졌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지만, 이러한 이유로 로마 제국의 멸망을 계승국인 러시아의 존재를 감안해 러시아 혁명 발발 전까지 건재했다는 입장도 있는 것.

3.1.2.3. 예외[편집]


4. 제국의 넓이[편집]


역사를 살펴보면 크고 아름다운 제국이 많았는데, 대표적인 게 몽골 제국대영제국, 러시아 제국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은 역사상 가장 많은 영토를 가진 나라로[22] 1920년 당시 세계 육지의 23.84%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위인 몽골 제국은 역사상 가장 큰 단일국가이자 역사상 가장 큰 유목제국이며, 황제가 국가권력의 수반인 나라 중 가장 큰 나라이다.
3위[23]러시아 제국알래스카를 가졌던 1867년까진 몽골 제국과 비등비등할 정도의 영토를 보유했으며 3개의 대륙[24]에 영토를 걸치고 있었다.[25]

반대로 미니 제국들도 있었는데 19세기아이티 제국은 오늘날의 아이티 영토와 다를 바 없는 27,750km²의 소국이었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종주권을 주장했으니 그걸 인정한다고 쳐도 히스파니올라 섬의 총면적이 76,480km²에 불과하니 한반도의 40%도 안 되었다. 물론 한반도를 영토로 가진 대한제국도 제국 치고는 영토가 매우 작은 편이다.

중세로 거슬러 올라가면 콘스탄티노폴리스만을 겨우 보존하던 요안니스 8세 ~ 콘스탄티노스 11세 치세의 과거의 영광만이 남은 로마 제국이나 멸망 직전의 라틴 제국(1260년 22,000km²), 로마 계열인 트라페준타 제국도 이 반열에 포함할 수 있다.

5. 사악한 제국?[편집]


오늘날 '제국주의자'라는 말은 거의 최고의 정치적 욕설이다. 이보다 심한 말은 '파시스트' 밖에 없다. 제국에 대한 현대의 비판은 대개 두 가지 형태를 취한다.

1. 제국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수많은 피정복 민족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것은 결국 불가능하다.

2.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실행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제국은 파괴와 착취의 사악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모든 민족은 자결권이 있고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1번 서술은 넌센스에 불과하고, 2번은 큰 문제가 있다.

실제로 제국은 지난 2,500년간 세계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정치 조직이었다. 이 시기에 살던 인류의 대부분은 제국에 속해 있었다. 제국은 매우 안정된 형태의 정부이다.

대부분의 제국은 반란을 너무나 쉽게 진압했다.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대개 외부의 침공이나 내분에 따른 지배 엘리트의 분열 밖에 없었다. 그래서, 정복당한 민족이 제국의 지배자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킨 기록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대부분은 수백 년에 걸쳐 복속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들은 제국에 서서히 소화되어 고유의 문화가 사멸되는 게 보통이었다.

가령 AD 476년 서로마 제국이 게르만족의 침공으로 마침내 무너졌을 때, 수 세기 전 로마에 정복당했던 민족들은 커다란 물고기 뱃속에서 헤어나온 성경 속 요나와는 달리 갈가리 찢긴 제국의 시체에서 살아나오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사라졌다. 스스로 로마의 신민이라고 믿었고 로마의 언어를 썼고 로마의 신을 섬겼고 로마의 신화와 전설을 읊었던 현지인들의 생물학적 후손은 이제 로마인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숭배했다.

많은 경우 하나의 제국이 무너진다고 해서 피지배 민족들이 독립하는 일은 드물었다. 옛 제국이 붕괴하거나 후퇴한 자리에 생긴 진공에는 새로운 제국이 발을 들여놓았다. 가장 명백한 예가 중동 지역이다.

국경이 어느 정도 안정된 많은 독립국이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현재 중동의 정치적 상황은 지난 수천 년간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중동에 마지막으로 이런 국면이 조성된 것은 기원전 8세기, 그러니까 거의 3천 년 전의 일이었다. 기원전 8세기 네오 아시리아 제국이 발흥한 이래로 20세기 중반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국이 붕괴할 때까지, 중동은 마치 이어달리기에서 다음 주자에게 넘겨지는 바통처럼 한 제국의 손에서 다른 제국의 손으로 넘어가는 일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가 마침내 그 바통을 떨어뜨렸을 즈음에는 이미 아람, 아몬, 페니키아, 필리스티아, 모아브, 에돔을 비롯해 아시리아에 정복되었던 여러 민족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늘날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조지아인이 고대 중동 민족들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규칙을 증명하는 예외에 불과할 따름이며, 이런 주장조차 어느 정도 과장되어 있다. 예컨대 현대 유대인이 지닌 정치, 경제, 사회적 관습은 고대 유대 왕국에서 유래한 부분이 크지 않다.

그보다는 지난 2천년 간 자신들이 그 휘하에서 살았던 제국에서 유래한 부분이 더 크다. 만일 다윗 왕이 오늘날 예루살렘의 초정통파 시나고그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동유럽식 복장에 게르만 방언(이디시어)으로 말하며 바빌로니아 문서(탈무드)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는 사람들을 보고 그는 크게 당황할 것이다. 고대 유대 왕국에는 시나고그, 탈무드 경전, 심지어 토라 율법 두루마리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기원후 83년 로마가 스코틀랜드를 침략하여 현지 칼레도니아 종족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을 때 로마의 대응은 이 지역을 초토화하는 것이었다. 로마의 평화 제의에 대해 칼가쿠스 족장은 로마인들을 ‘세상의 악당들’이라고 비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약탈과 학살과 강도질을 두고 제국이라는 허튼 이름을 붙이고, 사막을 만들어놓은 뒤 이를 평화라고 부른다.”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려면 수많은 사람을 악랄하게 살해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억압할 필요가 있었다. 전쟁, 노예화, 국외 추방, 대량학살은 제국의 일반적 수단으로 꼽힌다.

그렇다고 해서 제국이 그 뒤에 가치 있는 것을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모든 제국을 검게 지워버리고 제국의 유산을 모두 거부한다는 것은 인류문화의 대부분을 거부하는 것이다.

제국의 엘리트들은 정복에 따른 이익을 군대와 성채에만 쓰지 않았다. 철학, 예술, 사법 제도, 자선에도 썼다. 아직 남아 있는 인류의 문화적 성취 중 상당한 몫은 제국이 피정복민을 착취한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다. 로마 제국주의가 제공한 이익과 번역 덕분에 키케로와 세네카,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사색과 집필을 할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이 인도 신민을 착취해서 축적한 부가 없었다면 건설될 수 없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슬라브어, 헝가리어, 루마니아어를 사용하는 지역을 지배하면서 얻은 이익으로 하이든에게 연봉을 주고 모차르트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후손을 위해 스코틀랜드 족장의 연설을 적어둔 칼레도니아 작가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 덕분이다. 사실 타키투스는 아마 이 이야기를 지어냈을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가는 타키투스가 문제의 연설을 지어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비롯한 로마 상류층이 자신의 국가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대변하도록 하기 위해서 칼레도니아의 족장인 칼가쿠스의 캐릭터까지 창조했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엘리트 문화와 고급 예술을 넘어서 보통 사람들의 세상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대부분의 현대 문화에서 인류는 제국의 유산을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네 조상들이 칼로써 강요당했던 제국의 언어로 말하고 생각하고 꿈꾼다.

한국, 일본에서는 한자(漢字)로 말하고 꿈꾼다. 이들의 언어에서 한자를 지운다면 한국어, 일본어는 원시적인 언어로 퇴보할 것이다. 원래 기원이 무엇이었든, 알래스카에서 마젤란 해협에 이르는 두 아메리카 대륙의 거의 모든 거주자는 네 개의 제국언어 —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영어 — 중 하나로 의사소통을 한다.

오늘날 이집트인은 아랍어로 말하고, 스스로를 아랍인이라고 생각하며, 아랍 제국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7세기에 이집트를 정복했으며 자신들에 대항하여 일어난 여러 차례의 반란을 철권으로 진압했던 제국을 말이다.

6. 여담[편집]


  • 아시아, 유럽, 북아프리카를 제외하면 제국으로 칭해지는 역사상의 국가는 잉카 제국, 아즈텍 제국, 송가이 제국, 말리 제국, 통가 제국 정도가 있다. 이들 국가는 현대 역사학에서 내려진 정의에 따라 통일된 구심점을 갖고 강력한 다민족 지배 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에[26] 제국으로 칭해진다.
  • 에티오피아 또한 1974년 쿠데타로 제정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약 3000년간 제국으로 칭해 왔다. 브라질 또한 1822~89년 사이 제국으로 칭했고, 멕시코도 한때 제국을 칭했던 적이 있다. 팔레비 왕조 이란도 정식 국호가 이란 제국이었다.
  • 기타 단명한 자칭 제국으로 아이티 제국(1804 ~ 06, 1849~59), 중앙아프리카 제국(1976 ~ 79)이 있다.
  • 근대 들어 제국주의의 열풍으로 제국의 의미가 확대되어, 본국은 제국을 칭하지 않지만 타국이 제국으로 통칭해 주는 경우, 즉 행동과 국력, 기타 등의 요소가 합쳐져서 제국이나 다름 없거나 대영제국(British Empire)이나 프랑스 제국(French Empire) 등과 같이 다른 국가나 민족을 정치, 경제, 문화적 수단으로 지배하는 국가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제국 분류에서도 식민제국(colonial empire)이라는 용어로 분류하기도 한다.
  • 단,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철저한 계급 사회를 전제로 하는 제국이라는 표현에 굉장한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위 조건에 부합되어도 스스로는 제국이라는 표현을 경솔하게 붙이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소비에트 제국(Soviet Empire). 통치 방식 및 유고슬라비아중화인민공화국을 제외한 제2세계를 주무르는 방식이 제국이나 다름없으며, 위키백과에서는 제국으로 취급하고 있다.
  • 제국이라는 장엄하게 느껴지는 어감과 포스로 인해 판타지 소설 등의 각종 창작물에서는 위엄 있는 황제가 다스리는 막강한 권력을 지니는 국가로 등장한다.
  • 1880년대 중반으로부터 1945년까지 일본인들이 자국을 흔히 줄여서 부르는 말이기도 했다. 당시 거두절미하고 제국(帝國:テイコク 테이코쿠)이라고 하면 이것은 이른바 '대일본제국'의 줄임말로 일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마찬가지의 파생어로 일본군은 '제국군인'과 같은 식으로 부르기도 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태평양 전쟁으로 패망하기까지의 일본을 '(구)제국 시대'와 같은 식으로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건 일본만의 특별한 자칭법은 아니고 북한 주민들이 자신들의 국가를 칭할 때 공화국이라 부르거나[27] 영국에서 자국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브리튼이나 잉글랜드 대신 연합왕국(United Kingdom)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용례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오랜 인기팀이자 한시대를 호령한 뉴욕 양키스는 스스로를 악의 제국이라고 부른다. 이는 양키스와 견원지간인 보스턴 레드삭스가 양키스가 압도적인 자본력으로 선수들을 긁어모으고 우승을 독식한다[28]는 식으로 비아냥거린 것을 양키스가 아예 구단의 대표적 별명으로 굳혀버린 것. 재미있는 건 보스턴 레드삭스도 돈지랄에 있어서는 양키스를 욕할 처지가 아니라는 점.


7. 목록[편집]



7.1. 한자문화권[편집]


  • 황제국
    • 중화제국[38]
      • 진(영성) (B.C 221[29] ~ B.C 206)
      • 후초 (B.C 206[30])
      • 한나라
      • 신나라 (9 ~ 23)
      • 중나라 (197 ~ 199)
      • 조위 (220 ~ 265)
      • 동오 (229[31] ~ 280)
      • 사마진 (263 ~ 420)
      • 위진남북조시대의 황제국
      • 남북조시대의 황제국
      • 수나라 (581 ~ 619)
      • 당나라 (618 ~ 907)
      • 오대십국시대의 황제국
      • 요나라 (916[32] ~ 1125)
      • 송나라
        • 북송 (960 ~ 1127[33])
        • 남송 (1127 ~ 1279[34])
      • 서하 (1038 ~ 1227)
      • 금나라 (1115[35] ~ 1234)
      • 원나라 (1271 ~ 1368)
        • 북원 (1368 ~ 1388[36])
      • 명나라 (1368 ~ 1644)
      • 청나라 (1636[37] ~ 1912)
      • 중화제국(1915~1916)
    • 베트남계 국가
    • 8세기 이후 일본
      • 덴무 천황 시대[39]부터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의 일본[40]
      • 일본 제국 (1868 ~ 1947)
      • 일본국[41] (1947 ~현재)
    • 대한제국 (1897 ~ 1910[42])
    • 만주국 (1934[43] ~ 1945)
  • 애매한 나라
    • 고구려[44][45]
    • 고려[46]

7.2. 유럽[47][편집]



7.2.1. 로마 제국 계통 황제국[편집]




  • 로마 제국 (B.C. 27 ~ A.D. 1453)[51]
    • 서로마 제국 (395 ~ 476)[48]
    • 동로마 제국 (395 ~ 1453)[50]
      • 니케아 제국 (1204 ~ 1261)[49]
  • 비정통
    • 서로마 제국 계승
      • 신성 로마 제국 (800[52]/962[53] ~1806)
      • 프랑스 제국
        • 프랑스 제1제국(1804[54] ~ 1814[55]/1815[56])
        • 프랑스 제2제국 (1852 ~ 1870[57])
      • 오스트리아 제국 (1804 ~1867[58])
      • 독일 제국 (1871[59] ~ 1918[60])
    • 동로마 제국 계승
      • 니케아 이외의 동로마 잔존국[62]
        • 트라페준타 제국 (1204 ~ 1461)
        • 테살로니키 제국 (1224[61] ~ 1246)
      • 자칭 제국
        • 불가리아 제국
          • 불가리아 제1제국 (919[63] ~ 1018)
          • 불가리아 제2제국 (1185[64] ~ 1396?1422?[65] )
        • 차카 제국 (1094 ~ 1095)
        • 라틴 제국 (1204 ~ 1261)
        • 세르비아 제국 (1346 ~ 1371)
        • 오스만 제국 (1453[66] ~ 1922)
        • 루스 차르국 (1547 ~ 1721)
          • 러시아 제국 (1721 ~ 1917[67])
  • 기타

7.2.2. 기타[편집]



7.3. 유라시아 유목제국[편집]



7.4. 동남아시아[68][편집]



7.5. 남아시아[편집]



7.6. 서아시아 / 북아프리카[편집]



7.7.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편집]



7.8. 아메리카[편집]


  • 전근대
    • 아즈텍 제국
    • 잉카 제국[71]
  • 근현대
    • 황제국
      • 아이티 제국
        • 아이티 제1제국[72]
        • 아이티 제2제국[73]
      • 멕시코 제국
      • 브라질 제국
    • 식민제국

7.9. 오세아니아[편집]



7.10. 가상의 제국[편집]



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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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적, 문화적으로 유럽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아나톨리아도 같이 서술한다.[2] 베트남은 문화적으로는 한자문화권에 속하므로 여기에 서술하지 않는다.[3] 후자의 경우는 제국주의란 단어로 구분한다.[4] 현존하는 군주제 국가가 제국을 선포하거나, 공화정 국가에서 왕정 복고가 이루어지거나, 기존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 정부가 제정으로 들어선다면 제국이 다시 등장할 수도 있으나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도 그럴것이 어느 나라를 가도 시대가 어느 때인데 소리 듣게 딱 좋다. 그나마 제국이라는 사전적 의미에 부합하는 나라가 현재도 없진 않은데, 국가원수로 천황을 내세우고 있는 일본이 이에 해당한다. 물론 일본도 지금은 공식적으로 제국이란 표현은 안 쓰며, 정식 국호는 "일본국"이다.[5] 이집트를 제국이라고 보기 힘든 까닭은, 주변국들을 직간접적으로 지배했다고 볼 동기가 매우 모자라기 때문이다. 이집트가 하도 빨리 나타나는 바람에 주변국 자체가 없었고, 주변국으로 성장할 만한 잠재력 있는 집단은 다 제 발로 이집트에 복속되려고 안간힘을 썼기 때문이다. 굳이 머리 터지게 써서 어려운 인프라와 기술을 구축하고 나라를 만들어서 그 이집트와 척을 지느니 그냥 이집트에 복속되어 이집트의 제도와 기술을 물려받는 편이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집트가 정말 국력을 기울여서 치른 전쟁은 히타이트와의 카데시 전투가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었다.[6] 단, 한족의 경우에는 원래 중국 문물의 기준에 맞아야 인정을 해주었는데 오호십육국 같은 시대에는 개판이 되어서 자기들 문물을 유지하며 대충 세탁을 해도 되었다. 한족이 되고 싶어 했으면서 이게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간단히 지금도 어떤 나라의 국민이 되고 싶어 하면서도 자기들의 문화는 바꿀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7] 왜 한족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한족이 되려고 하지 않느냐? 하는 반감이다.[8] 어원은 삼황오제이다. [9] 사실 통상의 경우 정통성은 동양이 더 따졌는데 왜 황제로서의 자격은 유럽이 더 정통성을 따지냐는 의문이 드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그 이유는 교황의 존재였다. 교황이 직접 인정해야만 로마의 후예를 자처할 수 있었던 유럽은, 만약 "이전 제국(로마)에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으니 내가 뒤집겠다!"라는 식의 발언을 할 경우 교황에게 파문 당하고 가문이 풍비박산 났다. 반면 동양에서 교황의 포지션은 천자, 즉 중원의 패자 그 자체였다. 그래서 중원을 통일한 자가 "이전 왕조에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으니 내가 뒤집어엎겠다!"고 하면서 명분론을 통해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할 수 있었다.[10] 이것은 문화적 가치하에 볼 수 있고, 실제로 중원 왕조는 중화문에 대한 정벌을 질서에 배치되는 토착 문명에 대한 멸시감을 갖고 있었다.[11] 또한 어디까지나 자국의 권위에 배치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관대함을 베풀었고, 전한왕검성 전투당나라고구려-당 전쟁의 예와 같이 자국이 구축한 질서를 따르지 않는 국가에 무력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는 중원 왕조의 군주와 관료들은 기본적으로 유학 교육을 받아 고도의 철학적 소양을 구비한 것에서 기인한다. 유학의 핵심 이론이 중화가 가장 존귀하고 이적은 비천하기에 마땅히 중화가 이적을 교화해야 한다는 '화이론'과, 천하의 지배자인 천자(天子) 밑으로 모든 이적의 수장들이 마땅히 복속해야 하며 이를 거부하는 자를 정벌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방벌론(放伐論)'이었다. 제국의 통치자 입장에서는 유학적 가치하에 제국의 근본이 되는 핵심 이념을 수호하기 위해서 이적에 대한 정벌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12] 사실 이 상황은 그 당시에 있었던 아시아주의라는 사상이 등장했던 배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아시아주의 문서로.[13] 양자강 유역 내지는 그보다 남쪽에 위치, 한족계열 왕조.[14] 대표적으로 광종은 황제 칭호와 더불어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15] 하지만 공식적으로 서로마의 황제위는 서로마가 멸망할때 로마의 분할통치 원칙에 따라 이미 자동으로 동로마에 귀속되어 있었다.[16] 그래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K.U.k(kaiserreich und königsreich)라고도 한다.[17] 히틀러가 황제가 아니었음을 생각하면 왜 제국이라 부르는지 의아해 할 것인데, 제 3제국은 독일어로 Das dritte Reich라고 한다. Reich는 황제가 통치하는 일반적인 제국(帝國, Empire)를 뜻하는게 아니라 나라나 영토의 개념에 더 가깝다. 그러나 서로마 제국을 계승한 황제국임이 분명했던 신성 로마 제국도 Reich를 국호로 썼고, 제3제국이라는 명칭에 신성 로마 제국 - 독일 제국으로 이어지는 유럽 중부의 강대국이라는 지위와 이미지를 이어받고자 하는 의도가 포함돼 있었음을 고려할 때, Reich에 중의적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여담으로 독일 제국과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독일의 공식 국호는 모두 독일국(Deutsches Reich)이었다. 때문에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대 수상은 공식적으로는 이전 독일 제국의 수상들까지 포함하여 제 10대 독일 수상으로 명명된다.[18] 정작 히틀러는 군주제를 매우 혐오했던 사람이다.[19] 당시 로마 市는 교황령이었고 교황령은 신성 로마 제국과는 별개의 국가였으나 이탈리아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황령과 신성 로마 제국을 부부관계와 비슷한 관계로 여기고 있었기에 로마 市의 주인은 신성 로마 황제라고 인식하고 있었다.[20] 나폴레옹이 교황을 강압하여 스스로 황제의 관을 쓴 것이 단적으로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준다.[21] 엄밀히 말하면 카이사르는 황제라기 보단 권위있는 황족에게 부여하는 부제(副帝) 혹은 공동황제의 칭호였다.[22] 단일 국가로서가 아닌 본토와 식민지의 영토 크기.[23] 몽골 제국보다 더 넓게 쳐주는 자료도 있다. 몽골 제국은 전근대 국가 특성상 국경이 모호하고 고려 등 부마국을 영토로 인정할지 말지의 여부(대부분의 자료에선 인정되는 편이다)에 따라 면적의 오차범위가 매우 크다. 따라서 사실 러시아 제국과 2, 3위를 가리는 비교가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다.[24]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25] 또한 기껏해야 200년 정도밖에 전성기 시절의 영토를 유지하지 못한 1, 2위의 제국과는 달리 현재까지 수백년간 영토의 상당 부분을 보전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세계 영토 순위 1위이다.[26] 따라서 현대 역사학계로 넘어가면서 이들 국가의 제국 성립 연도가 뒤로 밀렸다. 한국사와 비교하자면 조선대한제국이 동일한 왕실인데도, 국가 체제를 구분하는 것과 비슷하다.[27] 정식 국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28] 그나마도 최근엔 돈 씀씀이만큼 성적이 안 나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29] 시황제황제 즉위 기준[30] 진 멸망 직후에 초의제가 황제로 즉위했으나, 1년도 못 가고 붕괴되었다.[31] 손권의 칭제 기준[32] 요태조의 칭제 기준[33] 정강의 변[34] 애산 전투[35] 금태조의 칭제 기준[36] 국가 자체는 1635년까지 존속했지만, 황제 칭호는 1388년까지만 사용했다.[37] 숭덕제의 칭제 기준[38] 중국 대륙의 역대 왕조라고 해서 모든 국가들이 한족이 세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대 왕조중 수, 당(선비족), 원나라(몽골족)나 청나라(만주족) 같이 이민족이 세운 왕조들도 많다.[39] 덴무 천황 이전 야마토 천황들은 살아있을 때는 대왕에 해당하는 칭호인 오키미를 칭했다가 덴무 천황 또는 이후의 천황들에 의해 추존되었다.[40] 국내에서는 천황을 칭하고 대외적으로는 일본국왕 등의 칭호를 사용했다. 다만 천황이 허수아비로 전락한 막부 시대에는 아시카가 요시미츠쇼군들이 천황 대신 일본국왕으로 책봉받았다.[41] 정식 국호에서 제국을 삭제했지만, 천황은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Emperor of Japan'이라 불리고 있다.[42] 경술국치[43] 강덕제 즉위 기준[44] 고구려는 황제를 칭하진 않았지만 많은 학자들이 제국으로 보는 편이다. 태왕이라는 칭호에 함의된 제국의 지배자로서의 위상이 주목받는 편이며 전성기 시절 만주한반도 일대의 패권을 행사하고 동아시아의 주요 세력으로 군림하는 등 한국사에서 강대국, 제국이라는 단어에 가장 부합하는 시대였다.[45] 중국 측의 기록을 제외하고 봐도 내부적으로 중국의 연호를 빌려쓰거나 사대한 흔적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 다른 시대와 달리 고구려는 철저하게 자신을 천하의 중심으로 여겼고, 외부적으로도 대국임을 자처했으며 도량형, 연호 등 여러 면에서 그러한 흔적이 남아있다. 사실 고구려는 어엿한 제국으로 분류해도 무방한 국가로 고구려사 관련 주요 학자들이 고구려를 제국으로 보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46] 고려/외왕내제 여부 문서 참고[47] 역사적, 문화적으로 유럽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아나톨리아도 같이 서술한다.[48] 테오도시우스 1세 사후의 동서 로마 분열부터 라벤나 함락까지[49] 4차 십자군 이후 수립된 동로마잔존국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복하고 제국을 재건하는데 성공하여 정통으로 인정받고 있다.[50] 테오도시우스 1세 사후의 동서 로마 분열부터 오스만 제국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까지[51] 아우구스투스 즉위부터 오스만 제국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까지[52] 카롤루스황제 대관식 기준[53] 오토 1세의 황제 대관식 기준[54]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55] 나폴레옹의 몰락[56] 워털루 전투[57] 스당 전투[58] 대타협[59] 독일 통일[60] 독일 11월 혁명[61] 테오도로스 콤니노스 두카스의 칭제[62] 4차 십자군 이후에 수립된 동로마 잔존국이지만 니케아와 달리 정통으로 인정받지 못한다.[63] 시메온 1세의 칭제 기준[64] 아센과 페터르의 난[65] 1396년 불가리아 제국의 마지막 영토였던 비딘 전제군주국까지 수도가 함락되어 황제였던 이반 스라치미르도 잡혀 옥사하나, 1397년 그의 아들이였던 콘스탄틴 아센 2세가 비딘 전제군주국의 제위를 계승했다고 기록된걸 보면 어떻게든 영향력은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66]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67] 러시아 혁명[68] 베트남은 문화적으로는 한자문화권에 속하므로 여기에 서술하지 않는다.[69] 초기에는 왕중왕을 칭했으나 로마 제국에 맞서 정식으로 독립을 선포한 이후에는 아우구스투스임페라토르를 칭했다.[70] 암하라어로 왕중왕을 뜻하는 느구서 너거스트를 칭했다.[71] '유일한 군주를 뜻하는 사파 잉카를 칭했다.[72] 독립운동가 장 자크 데살린황제 자크 1세로 등극하며 수립한 제국이다. 자크 1세가 암살당해서 단명했다.[73] 대통령 포스탱 엘리 술루크가 황제로 즉위하여 수립된 제국이다. 포스탱 1세 퇴위 이후 아이티는 다시 공화국이 되었다.[74] 토르가 태어나기 전 한정.토르가 태어난 후 작중 시점에서는 평화주의 노선으로 변경,제국주의 국가가 아닌 상태다.[75] 제국의 이름은 쓰지 않지만 지배층인 아인즈 울 고운을 선두로 하는 나자릭 지하대분묘의 목표가 세계정복이고 그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만큼 엄연히 창작물에서 말하는 제국의 사례에 들어간다.[76] 국명에 제국(Empire)이 붙어있지 않을 뿐이지 엄연히 황제가 통치하며, 국력 또한 코프룰루 구역 최강의 세력이다.[77] 작중에서 제국으로 불린다.[78] 황제가 존재하지도 않고, 오히려 로마 공화정과 비슷한 통치 구조이지만 황금기에는 감히 프로토스 제국에게 대적할 만한 세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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