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야콥 프로베르거
덤프버전 :
1. 소개[편집]
피에르 앙타이(Pierre Hantaï)의 연주.
독일의 작곡가, 건박악기 연주자. 바로크 중기의 건반악기의 대가이며 중요한 건반음악을 다수 남겼다. 음악사적으로 프로베르거는 유럽 각지의 춤곡을 바탕으로 한 바로크 모음곡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으며 한 세대 후의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와 두 세대 후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비롯한 독일 바로크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편집]
프로베르거의 유년 시절을 알 만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후 20세였던 1673년에 이미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빈 궁정의 오르가니스트로 기록되어있다. 그후 페르디난트 3세의 후원으로 로마로 4년여간 유학을 가 당시 성 베드로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였던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를 사사했다.
그후 1645년부터 이탈리아와 벨기에 등지에서 활동하게 되며 1652년 파리를 거치는데, 여기서 샹보니에르나 루이 쿠프랭, 자크 갈로와 드니 고티에 등 당시 프랑스의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분산양식(style brise)에 영향을 받았고 1653년 빈으로 돌아왔다.
요한 마테존의 전기에 따르면 프로베르거는 1657년에 드레스덴에서 선제후 요한 게오르크 2세가 주관한 건반악기 경연에 참가하였다.[2] 상대는 드레스덴 궁정의 오르가니스트 마티아스 베크만이었으며 이후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3. 음악세계[편집]
프로베르거의 토카타, 리체르카레 같은 작품은 이탈리아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지만 반면에 프로베르거의 건반 모음곡들은 당시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다. 이처럼 프로베르거의 음악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뿐 아니라 독일과 네덜란드의 스타일 모두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한 건반악기를 위한 춤 모음곡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으며, 프로베르거 본인은 알르망드 – 쿠랑트 – 사라반드 형식을 주로 작곡했고 후에 알르망드 뒤에 지그를 끼워넣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지그가 맨 뒤로 가게 된다.
작품번호는 FbWV로 표기한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0 22:24:37에 나무위키 요한 야콥 프로베르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Johann Jakob Froberger: German composer",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2] 당시 선제후는 부상으로 사슬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