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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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례
3. 한국인이 외국인 감독으로 부임한 사례
3.1. 축구
3.2. 배구
3.3. 태권도
3.4. 양궁
3.5. 쇼트트랙
4. 여담



1. 개요[편집]


외국 국적의 감독.

정체된 흐름 속에서 기존과는 다른 남다른 생각과 참신한 무언가를 조금이나마 시도하고기 위해 종종 해외의 선진적인 기술과 지도력이 몸에 배인 뛰어난 외국인 지도자들도 외국인 선수 못지 않게 많이 활동하는 편으로 때로는 이러한 외국인 지도자들이 대한민국 스포츠에 굉장히 큰 원동력이 된다.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의 경우 주변 중국, 일본에 비해서 외국인 감독이 적고 인색한 편이다.#


2. 사례[편집]



2.1. K리그[편집]


1990년 프랑크 엥겔 감독이 대우 로얄즈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 국내 축구계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국인이 아닌 국적이 다른 감독이 K리그 구단을 맡는다는 것 자체가 팬들과 축구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왔고 당시 대우는 유럽의 선진 축구를 K리그에 들여왔던 선두 주자로서 엥겔 감독이 부임 첫 시즌 2위를 기록했고 이듬해 영입한 헝가리 출신의 비츠케이 베르탈란 감독은 부임 첫 해 K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외국인 감독 거스 히딩크의 지도 하에 대한민국이 기적적으로 4강에 진출한 이후 수많은 외국인 감독이 열풍 속에서 K리그 구단을 맡았다.

특히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포항을 맡으며 최장수 외국인 감독으로 꼽히고 있는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은 2007년 정규 리그 우승과 2009년 AFC 챔피언스 리그(ACL) 우승을 차지하며 가장 큰 업적을 남겼고 전술적으로도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리더십을 통한 선수단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파리아스 감독을 비롯해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과 셰놀 귀네슈 감독이 50승의 고지를 넘어서는 등 K리그에서 뛰어난 족적을 남겼고, 2009년 K리그는 그야말로 외국인 감독들의 각축장이으로 4명의 외국인 감독들이 서로 맞대결을 펼치며 팬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했다.

하지만 이후 외국인 감독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는데 K리그 각 구단이 독립 법인화 되면서 모기업의 재정적 지원이 감소했고 결국엔 감독에게 지급할 연봉 문제가 발을 잡게 되면서 하나둘씩 K리그를 떠났고 여기에 경기 내외적인 문화적 요소들 역시 외국인 감독의 이탈에 한몫했다.

적지 않은 외국인 지도자들과 달리 국내 스포츠의 분위기를 빠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국 국내 선수진 또는 운영진과 사고방식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며 별 다른 성적을 내지 못한 채 결국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다.

2016년의 경우 K리그2서울 이랜드 FC 마틴 레니 감독이 떠나고 K리그 23개 구단 전부를 한국인 감독이 이끌게 됐고 2년 후인 2018년에야 비로소 대구의 안드레 감독과 인천의 욘 안데르센 감독이 구단을 이끌며 외국인 감독끼리 맞대결을 펼치게 된만큼 외국인 감독을 선호하는 구단이 현저히 줄었으며, 활동한 몇몇 외국인 감독들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며 2010년대 중후반부터 점차 K리그는 외국인 감독들의 명맥 끊긴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7년 욘 안데르센 감독을 시작으로 안드레, 주제 모라이스, 파비아누 소아리스 페소아, 히카르두 페레스, 알렉산드레 가마가 연달아 선임되며 외국인 감독 황금기를 맞는 듯했으나 더블과 FA컵 우승을 달성한 모라이스와 안드레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대부분 구단을 떠났고 2023 시즌은 다시 외국인 감독 없이 전원 한국인 감독으로 시즌을 치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시즌 중반 전북이 단 페트레스쿠 감독을 선임했다.


2.2. KBO 리그[편집]


1982년 원년부터 2007년까지 25년 동안 한국프로야구는 외국인 감독 청정 지대였다.

2008년 롯데가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데려오면서 구단이 감독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으며 당시 롯데는 구단이 원하는 색깔을 분명히 알고 결과물을 만들어냈으며 야구 본고장 미국에서 오랫동안 쌓은 식견을 인정하게 됐다.

제리 로이스터는 7년 동안 8888577의 암흑기를 헤매던 롯데를 2008년부터 임기 3년 내내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았다. 성적 만이 아니다. 그는 짧은 시간에 대한민국 야구의 체질을 바꿔 놓았다. 야구의 기본을 상기시켜 줬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발 중심의 야구를 지켰고 타자들은 타석에서 기죽지 않고 마음껏 방망이를 휘둘렀다. 이런 롯데에 구도 부산 팬들은 열광했다. 조성환 이대호는 지금도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야구인으로 로이스터 감독을 꼽는다.

트레이 힐만 감독은 임기 2년 동안 SK 와이번스를 확실한 대포 군단으로 변신시켜 2018년 외국인 감독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냈다. 힐만 감독을 가까이서 지켜본 한 구단 직원은 “그의 디테일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해박하면서도 섬세한 야구 이론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2021년에는 롯데 자이언츠, KIA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 3개 구단이 각각 래리 서튼, 맷 윌리엄스, 카를로스 수베로 등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면서 과거에 비해 외국인 감독 영입에 더 구단들이 적극적으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세명 모두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 하고 전부 중도 퇴진했으며, 결국 2023년 8월 28일 유일하게 남아있던 서튼 감독마저 퇴진하면서 남은 2023시즌은 외국인 감독이 없는 시즌을 치르게 되었다.


2.3. V-리그[편집]


프로배구 역시 외국인 감독 청정 지대였고 2011년 반다이라 마모루 감독을 제외하고는 수십 년 동안 국내 감독들만이 감독을 맡으며 중요한 타이틀이 걸린 국제 대회마다 똑같은 방식으로 실패를 반복하는 등 사실상 우물 안 개구리로 새로움 패러다임을 줄 외국인 감독을 바라는 팬들도 일부 존재했다.

이에 2020년 대한항공이 선진 훈련 체계 접목과 유럽 배구의 기술을 습득하고 선수단에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자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을 영입하며 프로 배구 출범 이후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게 되었고 그 다음 해에는 젊은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을 영입했으며 이러한 외국인 감독 선임이 빛을 봤는지 세 시즌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2023년 창단 이후 계속 꼴찌를 기록했던 광주 페퍼저축은행 AI 페퍼스가 미국인 아헨 킴 감독과 조 트린지 감독을 선임한 것은 물론, 2022-23 시즌 도중 지진으로 인해 시즌이 중단되어 튀르키예 항공과 계약이 종료된 마르첼로 아본단자가 흥국생명의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 OK금융그룹도 일본인 오기노 마사지 감독을 선임하면서 프로배구는 외국인 감독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편견 없는 선수 기용, 데이터 활용 능력, 다양한 전술과 뛰어난 구단 운용 능력 등의 장점을 앞세 외국인 감독 지도 하에 대한항공은 연이어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특히 대한민국 여자 배구 대표팀은 라바리니 감독 지휘 하에 도쿄 올림픽 4강 신화를 새로 쓰며 점차 많은 배구 팬들이 대한민국 배구도 선진화된 배구를 접목시킬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4. 한국프로농구[편집]


2005년 제이 험프리스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한국프로농구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 등장했다. 그러나 국내 선수들과의 소통 부족과 성적 부진이 겹쳐 3승 17패의 초라한 성적을 내고 전격 경질된 안 좋은 선례를 남기면서 2018년 11월 15일 새로운 외국인 감독인 스테이시 오그먼[1]전주 KCC 이지스에 부임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5. 한국여자프로농구[편집]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구나단 감독의 사례가 유일하다.


2.6. 기타 종목[편집]


국내 아이스하키 구단 HL 안양대명 킬러웨일즈[2]도 외국인 감독을 등용하며 아이스하키의 발전을 도모했다.


3. 한국인이 외국인 감독으로 부임한 사례[편집]


한국인이 외국에서 감독에 부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역시 당사국 입장에서는 한국인이 외국인 감독이 된다.

3.1. 축구[편집]


흔히 '군대 없는 나라는 있어도 축구 리그가 없는 나라는 없다.'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3] 단일 종목으로는 전 세계에서 최고의 보급률과 경제적 영향력을 자랑하는 종목 특성상, 선수, 지도자 할 것 없이 국제 축구 시장에서 인적 교류가 매우 활발하다. 그 때문에 한국인 감독이 외국인 감독으로서 외국 축구팀에 부임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3.2. 배구[편집]


  • 박기원: 이란 대표팀, 태국 대표팀

3.3. 태권도[편집]


태권도 종주국 특성상 한국인 지도자가 해외에서 많이 활동하고 있다.



3.4. 양궁[편집]


양궁은 대한민국이 독보적인 성과를 내는 종목이기 때문에 한국인 지도자가 해외에서 많이 활동하고 있다.



3.5. 쇼트트랙[편집]


쇼트트랙은 대한민국이 높은 성과를 내는 종목이기 때문에 한국인 지도자가 해외에서 많이 활동하고 있다.


4. 여담[편집]


  • 한국인 감독이 같은 동아시아의 일본이나 중국 프로 무대에 진충한 경우는 제법 있으나 정작 한국 무대에 일본이나 중국인 국적의 감독이 부임한 적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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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이 험프리스와 스테이시 오그먼 모두 한국 프로농구 코치를 거쳐 감독이 된 공통점이 있다.[2] 2021년 3월 31일 해체[3] 실제로 자국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보다 축구 대표팀과 자국 축구 리그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가 훨씬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