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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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궁
洋弓
Archery


과녁을 조준하는 양궁 선수
종류
무술(궁술)
경기 방식
정해진 거리에서 양 선수(팀)이 동시에 혹은 교대로 과녁을 3회(1:1)나 6회(팀전) 쏘아 가장 높은 점수의 과녁을 맞춘 쪽이 1세트 승리
세부 종목
컴파운드 보우
리커브 보우[1]

타깃 아처리(표적 경기)
싱글 라운드
더블 라운드
그랜드 라운드
올림픽 라운드(남녀 개인·단체전 및 혼성 단체전)
필드 아처리(야외 경기)
클라우트 아처리(원사 경기)
인도어 아처리(실내 경기)
경기 장소
실내 또는 실외 양궁장
참여 인원
1~4명
남녀 각 64명, 총원 128명(올림픽 기준)
신체 접촉
불가
종주국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2]
국제 대회 정보
올림픽
정식 종목
1900 파리 올림픽(남성부, 시범)
1904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여성부, 시범)
1972 뮌헨 올림픽(정식)
아시안 게임
정식 종목
1978 방콕 아시안 게임(시범)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정식)

1. 개요
2. 역사
3. 종류
3.1. 구조에 따른 분류
3.2. 목적에 따른 분류
3.2.1. 경기용 양궁
3.2.2. 사냥용 양궁
4. 경기 종목
4.1. 올림픽 라운드
5. 양궁 강국
6. 한국 양궁
6.1. 대한민국 선수단의 독보적인 위상
6.1.1. 에피소드
6.2. 대한민국의 올림픽 성적
6.2.1. 남자부
6.2.2. 여자부
6.2.3. 혼성부
6.3. 지원 및 후원
7. 양궁 제조 업체
9. 국가대표
9.2. 국가대표 출신 선수
10. 창작물에서
11. 언어별 명칭
12.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양궁()은 을 가지고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진 과녁을 화살로 맞히는 스포츠이다. 본래 영어로는 아처리(Archery, 궁술)라고 부르며 이는 동, 서양의 구분이 없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의미의 활 쏘기를 의미하나, 한국어에서는 전통 국궁과 대비하여 서양으로부터 유입된 활쏘기라는 이름으로 '큰바다 양()'자를 붙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현대에 들어 제도화되고 규격화된 스포츠이기 때문에 롱보우(장궁) 같은 서양의 전통적인 활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양궁에서 사용하는 활을 공학적으로 개량한 '현대궁'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올림픽에서는 리커브 보우를 사용하는 종목만 있으며, 세계선수권대회와 같은 다른 대회에서는 컴파운드 보우를 사용하는 종목도 있다.


2. 역사[편집]


양궁의 역사는 1538년 영국헨리 8세가 처음으로 대회를 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부터 전 유럽에 널리 보급되어 1931년에는 국제양궁연맹이 조직되었다.

현대적인 양궁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1972 뮌헨 올림픽부터로 이 당시에는 개인전 남, 여성부 한 종목만 있었다. 이후 1984년까지 단체전 없이 개인 종목만 있었으나 1988 서울 올림픽부터 단체 부문이 생겨서 남/녀 각각 개인전, 단체전 총 4개의 메달이 되었다. 즉, 올림픽 역사를 보면 메달수는 오히려 늘었고 줄인 게 아니다. 단, 이건 올림픽에 한정한 이야기다. 양궁 세계선수권대회 같은 경우는 1970년대까지는 거리별로 종목이 세분화되어 있었으므로 김진호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 5관왕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는 혼성종목이 추가되어 메달이 5개가 되었다('올림픽 라운드' 문단 참조).

현대 양궁의 규칙은 원거리에서 시작해 거리를 점점 좁혀 나가며 맞히는 것이라 이제 와서 거리별로 종목을 세분화 하는 것은 어려워졌다. 전술한 바와 같이 현대의 양궁은 정립된 시기가 20세기 후반으로 비교적 역사가 짧기 때문에 규칙에 있어 정통성을 따질 필요가 없었으며, TV 중계에 특화하기 위해 경기를 빠르고 흥미진진하게 유도하려는 의도도 있었다.[3]


3. 종류[편집]



3.1. 구조에 따른 분류[편집]


이 항에서는 리커브 보우와 컴파운드 보우의 구조 및 사용되는 부품에 대해 서술한다.


3.1.1. 리커브 보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리커브 보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2. 컴파운드 보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컴파운드 보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 목적에 따른 분류[편집]


사용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 양궁의 구조적 차이점에 대해서 기술한다.


3.2.1. 경기용 양궁[편집]


파일:양궁_경기용.jpg
리커브 보우(좌), 컴파운드 보우(우)[4]
Target Bow.
경기용 세팅의 특징으로는 모든 구성이 화살의 정확도를 가장 중시하며 동시에 비싸다. 파이빅스의 경기용 풀 패키지 세트를 구입한다면 200만원에 가까울 정도다.[5]

라이저부터 다양한 부품을 장비하기 위하여 여러 규격의 나사구멍이 있으며 상대적으로 무겁다. 또한 활을 당겼을때 림의 텐션이 부드럽게 당겨지도록 제작되며 각 회사마다 다른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며 이 부분에서는 윈앤윈의 림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부품이 위 아래로 길고 큰 아름다운 사이즈를 자랑한다. V 빔까지 설치한 스테빌라이저가 부착된 경기용 보우의 크기는 단연 돋보인다.

뿐만 아니라 활에 화살을 거는 에로우 레스트는 화살을 발사했을때 간섭을 줄이도록 닿는 면적을 최소화 한다. 이로 인해서 비교적 깔끔한 비행을 추구하지만 이 구조 덕분에 우궁 기준으로 화살을 걸었을때 조금만 왼쪽으로 기울여도 화살이 고정되지 않아 툭툭 떨어지며 초보자의 경우 시위를 당기는 것 만으로도 레스트에서 화살이 잘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외에 화살의 진동과 센터를 잡아주는 쿠션 플런져와 사용자의 드로우 렝쓰는 가늠해주는 클리커 등 겉으로 봤을때는 잘 알 수 없는 자잘한 부품도 추가되며 사용자의 손 사이즈에 맞춰 핑거탭을 사용하는데 고가형은 몇십~몇백만원을 호가한다.


3.2.2. 사냥용 양궁[편집]


파일:양궁_사냥용.jpg
리커브 / 컴파운드 보우.
두 사람 모두 보우 릴리즈를 사용하고 있으며, 손가락만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양궁 사법과 다르다.
Hunting Bow.
사냥용 세팅의 특징으로는 운반 및 이동, 조준 신속성 등 범용성을 중요시 하며, 경기용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싼 가격이다.
또한 사냥용 활로는 사용자의 기량을 많이 타는 리커브 보다 작은 크기로도 큰 힘을 낼 수 있는 컴파운드 보우가 주로 선호된다.

어떤 스타일로 사냥을 하냐에 따라 다양한데 숲과 산을 돌아다니며 기동성을 중시하는 것과 동물의 흔적을 추적하고 나무 위에서 대기하다가 슈팅하는 잠복사냥에 특화된 유형이 있다. 전자의 경우 숲이 무성한 산에서 사냥하는 경우 30미터만 넘어도 나뭇가지나 나무에 맞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장거리 정확도보다는 튼튼한 내구력과 가벼운 무게를 선호하며 상대적으로 활의 크기가 작은 편이다. 후자의 경우 60~70미터 거리에서도 정확도를 보장해야하며 조용한 활이 주로 사용된다.

장애물이 많은 사냥 환경의 특성상 걸리적 거리는 부품을 줄이기 위해 경기용에 비하면 작은 스테빌라이저를 사용하며 빠른 조준과 화살 고정을 위하여 다핀 조준기와 화살을 감싸는 형태의 레스트를 사용한다. 이 경우 화살의 고정은 편리하지만 발사 시 어느정도 화살의 비행에 간섭하기 때문에 경기용 보다는 정확도는 떨어지는 편. 정확도를 중시하여 살짝 걸치는 형태의 에로우 레스트도 있지만 이 경우 화살을 건채 이동할 때는 애로사항이 꽃핀다.

또한 사냥용의 경우 활줄 퉁기는 소리에 의해 동물들이 경계하고 도망갈 수 있기 때문에 경기용에서 찾아보기 힘든 스트링에 깃털을 달고 림과 라이저에 사일런스 패드를 붙여 소음을 최소화 하는 부품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4. 경기 종목[편집]


종목
올림픽
최초 시작
리커브 남자 개인전
O
1972 뮌헨 올림픽
리커브 여자 개인전
O
1972 뮌헨 올림픽
리커브 남자 단체전
O
1988 서울 올림픽
리커브 여자 단체전
O
1988 서울 올림픽
리커브 혼성 단체전
O
2020 도쿄 올림픽

종목
올림픽
최초 시작
컴파운드 남자 개인전
X
-
컴파운드 여자 개인전
X
-
컴파운드 남자 단체전
X
-
컴파운드 여자 단체전
X
-
컴파운드 혼성 단체전
X
-

컴파운드 종목은 아시안 게임에서는 채택되었으나 올림픽에서는 아직 채택되지 않았다.


4.1. 올림픽 라운드[편집]


파일:양궁_랭킹라운드.jpg
파일:양궁_올림픽라운드.jpg
랭킹 라운드(예선)
올림픽 라운드 (본선 1:1 토너먼트)

점수 경계선에 맞으면 둘 중 더 높은 점수로 인정된다. 한편 10점에는 과녁존이 두 개가 있는데 정확히 가운데 맞으면[6] 퍼펙트골드, 안쪽 원에 맞으면 엑스텐(X-10), 안쪽 원 바깥쪽이면 텐이다. 물론 퍼펙트골드, 엑스텐, 텐 모두 점수는 10점으로 같다.

양궁은 처음에는 사격 훈련마냥 수십개의 과녁을 세워두고, 역시 수십명의 궁사들이 자신의 과녁에 쏘아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사람에게 시상을 하는 단순한 구조였다. 이 방식은 비교적 공정하다[7]는 장점이 있었지만, 치명적인 단점 또한 여럿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재미가 없다는 점이다. 사격과는 달리 실시간 점수 집계도 용이하지 않아서, 실시간 랭킹을 보여주기도 어렵다. 관람객의 안전상 이유로 선수 뒤쪽에나 관람석이 설치되어 과녁을 보는 것도 어렵다. 그리고, TV 방송에도 적합하지 않았다. 모든 선수가 다 쏘고 나서 심판이 점수 집계를 하고 나서야 순위가 나온다는 점 때문에 긴장감도 떨어진다는 점도 단점이었다.

IOC는 이런 방식은 일종의 예선전인 '랭킹 라운드'에서만 남겨 두고, 여기서 성적순으로 64명을 1 vs 1 토너먼트 방식으로 바꾼 것이 올림픽 라운드이다. 여러 장점이 있었는데, 1:1 이다 보니 TV 방송에도 적합했고, 승패 여부가 경기 즉시 판정된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관중석 역시 선수와 과녁에 가깝게 설치가 가능해지면서 관람 편의성도 증가했다. 일설에 의하면 '세계 최강 대한민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채택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8] 올림픽 라운드 초기에는 1인당 12발을 쏘아서 합산 점수로 승패를 가르는 방식을 사용했다. 한번에 합산하는 지표가 많을수록 실력이 투명하게 드러나기에 기량을 겨루기엔 좋은 방식이지만, 한번의 큰 실수로 인해서 승패가 결정나 버리면 그 순간부터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IOC는 다시 규칙을 변경해서 세트 제도를 도입했다. 각 세트별로 3발을 쏘아서 이 점수가 높은 사람이 세트를 따내는 방식이며, 세트 승은 2점, 무승부는 1점씩, 세트 패는 0점이다. 총 4세트 또는 5세트를 경기하며, 세트 점수 5점 또는 6점에 먼저 도달하는 경우 즉시 해당 경기를 승리하는 방식이다. 만약 세트 점수가 동점이 된다면 1발의 슛오프를 해서 더 좋은 점수를 기록하거나, 동점일 경우 중심에서 더 가깝게 쏜 사람이 승리한다. 이 방식의 장점은 실수를 하더라도 해당 세트에만 영향을 주고 다른 세트에는 영향을 주지 않기에 경기가 좀더 긴장되게 유지될 수 있다. 실제로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혼성 단체전의 (멕시코-터키) 동메달 결정전에서 멕시코 선수가 2점을 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지만, 해당 세트만 내주었을 뿐 다른 세트를 모두 따내서 세트 점수 6:2로 승리하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올림픽 라운드
남/녀 개인전
남/녀 단체전
혼성 단체전
출전 선수
1명
3명
2명(남/녀 1명씩)
세트 수
5세트
4세트
4세트
세트당 화살 수
3발
6발 (1인당 2발)
4발 (1인당 2발)
제한시간
20초 (슛오프와 동일)
120초 (슛오프 60초)
80초 (슛오프 40초)
승리조건[9]
6점 도달시
5점 도달시
5점 도달시

슛오프는 모든 세트를 종료후 세트 점수가 동점일 때[10] 1인당 1발씩 쏴서 합계 점수가 더 높은 선수/팀이 승리한다. 만약 점수도 동점이면 과녁의 중심에서 더 가깝게 쏜 팀이 승리한다. 또한 제한시간 내로 6발을 다 쏴야 하기 때문에, 꾸물거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여담으로, 올림픽 라운드의 경우 두 개의 사대만 갖고 토너먼트로 치르기 때문에 경기장의 형태가 좌우가 좁고 앞뒤가 긴 형태가 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공간이 많이 필요가 없어서, 많은 올림픽에서는 비용도 아낄겸 해서 별도로 양궁장을 만드는 대신 개최 도시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스탠드만 적당히 확보해서 양궁 경기를 치루곤 했다.[11] 예를 들어 1996 애틀랜타에서는 인근의 유명한 명승지인 스톤 마운틴 아래의 공원에서 치뤘고, 2004 아테네에서는 1896년 1회 대회 때 주 경기장이 현재와 달리 길쭉한 모습이라 거기서 치뤘다. 2012 런던때는 유서깊은 크리켓 경기장에서 치뤘고, 2016 리우에서는 리우 카니발 퍼레이드가 열리는 삼보드로무에서 열렸다. 2024 파리에서는 앵발리드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올림픽에서 대체로 미국 등 강대국이 우세한 수영의 경우 거리별, 영법별, 심지어 혼성편성까지 종목이 다양한 반면[12] 양궁은 남녀 단체전, 개인전 달랑 4종류뿐이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남녀혼성 종목이 추가되어 2021년 현재는 총 5가지 종목으로 치러진다. 본래는 말타고 쏘기,[13] 그냥 쏘기부터 활 종류별, 거리별(국제대회는 70m 기준)로 주루룩 나눌 수 있으나 개인과 단체, 혼성 이렇게만 구분된다.[14]

아시안게임에서는 컴파운드 종목도 채택이 되었기 때문에 메달이 좀더 많다.

스포츠 중에서도 심판의 개입이 거의 없는 종목 중 하나다.[15] 시합의 결과가 과녁에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 따라서 판정 시비도 나지 않는다. 이런 특징 때문에 스포츠 외교가 약한 우리나라에서 메달을 독점하다시피 해도 강대국에서 장난을 칠 수 없다. 이해가 잘 안 되면 피겨 스케이팅에서 김연아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를 생각해 보자. 또한 규칙을 계속 바꾸어도 한국 양궁의 독주는 계속되고 있다. 비슷한 유형인 사격 역시 마찬가지.


5. 양궁 강국[편집]


한국은 9번의 올림픽 대회에서 금 23, 은 9, 동 7를 따내면서 최강국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성적이 좋은 나라는 미국으로 금 8, 은 5, 동 3를 받았다. 특히 남자부에서는 한국에 이어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16]

정작 아시안게임에서 한국팀과 자웅을 겨루는 축인 중국은[17] 의외로 올림픽에선 성적이 부진한 편인데, 올림픽 금메달은 2008년에 자국에서 딴 여자 개인전 금메달이 유일하다.[18] 총 메달 수는 금메달 1개에 동메달 2개를 딸 동안 은메달만 남녀 합쳐 6개. 그래도 아시아 국가로 따지면 한국에 이어 2위며 전체로 보면 종합 4위의 성적이긴 하지만, 남자의 경우 2008년에 자국에서 딴 단체전 동메달과 2012년에 딴 개인전 동메달 단 두 개 이후 단 한 번도 메달권에 들지 못하고 있다.

벨기에는 올림픽 메달이 없으나, 시범 종목이었던 1900년대에는 금메달 11개를 딸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6. 한국 양궁[편집]


한국은 대한양궁협회에서 전국 초중고 양궁부들을 모두 관리하고 있는 형태인데, 가장 중요한 점은 사교육은 종류와 시기, 강사 등을 모두 불문하고 절대 엄금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양궁의 인맥과 각종 연줄 등이 철저히 배제된 실력주의 기반의 국가대표 선발의 가장 핵심적인 원천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한동안은 올림픽에 관계되는 리커브 보우 종목에서만 강세를 보이고 컴파운드 보우는 미진했으나, 최근에는 컴파운드 보우 세계 선수권과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모두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 양궁 연맹 WA는 2028년 LA 올림픽부터 컴파운드 보우도 정식종목 채택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양궁에 최대 10개의 금메달이 걸리게 되어 메달레이스에서 양궁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6.1. 대한민국 선수단의 독보적인 위상[편집]


하계올림픽 양궁 총 메달 순위 (1972~)
순위
국가



총계
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27
9
7
43
2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8
5
3
16
3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2
3
4
9
4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1[19]
6
2
9
5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1
3
3
7
6
파일:핀란드 국기.svg 핀란드
1
1
2
4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우크라이나
1
1
2
4
8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1
1
1
3
9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1
0
2
3
10
파일:스페인 국기.svg 스페인
1
0
0
1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튀르키예
1
0
0
1

"농구에서 미국 드림팀의 위상을 양궁에서는 한국팀이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NBC 방송 해설위원,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 결승전 中

지금이야 엄청난 위상을 자랑하지만, 한국 양궁도 처음부터 강했던 것은 아니었다. 1960년대에 석봉근 선생이 손수 교본 등을 제작하여 제자들에게 양궁을 가르친 것이 한국 양궁의 시작인데,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양궁은 당시 잘 나가던 다른 종목과 비교하여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성적이 좋은 종목에만 대표팀이 참가하도록 했는데, 그 때문에 초기 양궁 선수들은 대표팀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게다가 석봉근 선생의 아들이자, 당시의 에이스였던 석동은 감독만 해도 선수 시절에는 올림픽에 참가한 적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 70년대 후반 이런 노력의 첫 결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니, 난세의 영웅 김진호가 세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전성시대가 개막했다고 평가받는다. 1978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 싹쓸이로 시작하여 1979년 세계 선수권까지 4관왕을 달성하여 신궁 계보의 시작점을 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진호는 각종 불운과 컨디션 난조로 올림픽만큼은 연이 없었고[20] 올림픽 첫 금메달은 바로 아래 후배였던 서향순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대신하게 된다.[21] 이런 양궁의 가능성을 포착해낸 정몽구는 대대적으로 투자를 결심, 대한양궁협회 회장으로 1985년 취임하였고 이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현대그룹의 대대적 투자가 시작하여 자본력과 기술력까지 업어 승승장구하게 된다.# 남자부에선 최초로 올림픽 개인전 은메달을 따낸 박성수가 계보의 시조로 거론된다.

현대가의 투자가 시작된 1988 서울 올림픽에선 4개의 세부 종목 중 금3, 은2, 동1을[22] 수확해내는 괴력을 선보이면서 올림픽 효자 종목으로 비로소 등극하게 되었다.

양궁이 올림픽 종목으로 재편입된 1972 뮌헨 올림픽[23] 이후 27개의 금메달을 포함하여 무려 43개의 메달을 따냈다. 2위인 미국과도 2.5배 이상의 차이가 나며, 특히 1988 서울 올림픽부터 시작해 2020 도쿄 올림픽까지 이뤄낸 여자단체 9연패미국 농구조차 이루지 못한 대기록이다.[24] 더욱 놀라운 것은, 대한민국 양궁 여자 단체 팀이 9연패를 달성하는 동안 3회 이상 연속으로 금메달을 딴 선수가 한 명도 없다. 연속을 빼고 그냥 3회는 김수녕 단 한 명,[25] 2회 연속은 김수녕을 비롯해서 윤미진[26], 박성현[27], 기보배[28]까지 4명만이 더 달성했다. 다시 말해 한두 명의 천재가 활약해서 이뤄낸 성과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다 강하다는 것.

그래서 위에서 나온 미국의 방송 해설이 말한 것처럼 대한민국 양궁 국가대표팀은 미국농구, 캐나다아이스하키, 중국탁구다이빙, 러시아리듬체조 국가대표팀이 가진 드림팀의 위상을 갖고 있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올림픽 금메달보다도 어렵다." 같은 이야기도 있으며, 양궁 대표팀의 어마어마한 실력과 선발 공정성, 국민의 신뢰가 시너지를 이루어내고 있다. 특히 올림픽 양궁 신기록 14개 중 12개를 한국 선수가 세운 걸 보면 한국 선수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심지어 양궁에서 한국이 포디움 스윕[29]을 달성하기도 했다.[30]

올림픽 양궁에 여러 나라가 출전하지만, 결승전은 대부분 대한민국과 다른 나라가 맞붙는 구도가 된다. 상대국은 보통 개최국이나 미국[31], 중국[32], 이탈리아[33], 혹은 '한국 선수끼리의 내전'[34]이다.[35] 보통 올림픽에 주로 양궁을 언급하지만, 2년마다 열리는 양궁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도 한국은 엄청난 강호이다.1983년 LA 대회에서 처음으로 1위를 해본 뒤로 1989년부터 1999년까지 양궁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95년 자카르타 대회(메달 총합 1위가 미국)에서 2위한 것을 빼고 모두 한국이 메달 순위 1위였다. 그리고, 이후 1997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은 1위에서 내려가본 적이 아예 없다. 2003년 미국 뉴욕 대회에서 미국과 금은동 모두 같아 공동 1위를 한 것빼고 다음인 2005년 대회에선 한국은 금 4개를 비롯하여 7개로 미국과 러시아등을 제치고 금메달 8개 중 절반을 다 휩쓸었고 2015년 코펜하겐 대회에서 10개 금메달 가운데 6개를 한국이 차지했다.

양궁 세계선수권 대회가 1931년부터 열렸는데, 2019년까지 역대 메달 최다 국가는 금 63, 은 37, 동 32로 합계 132개의 미국인데, 2위가 한국이다. 금 59, 은 26, 동 24로 합계 109개. 미국이 50~80년대에 주로 1위를 휩쓸고 양궁으로 누리던 걸 생각하면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한 한국이 머지않아 넘어설 전망이다. 1930~50년대에 전성기를 누리던 폴란드(총 64개)나 영국(총 56개), 스웨덴(총 44개)은 역전이 어려워 보인다.

외국 감독이나 선수들이 한국 양궁을 벤치마킹하기 위해서 방한했다가 기초체력 훈련만 보고도 기가 죽어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 양궁의 좋은 성적에는 양궁 경기를 주관하고 선수들을 관리하는 대한양궁협회의 매우 우수한 행보도 작용한다. 대한양궁협회는 1983년에 대한궁도협회에서 분리되어 창설됐다. 한국의 스포츠 협회 중 상당수가 파벌 싸움이나 부정부패 문제로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르는 데 반해, 대한양궁협회는 이런 문제를 거의 일으키지 않고 선수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매우 개념잡힌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한양궁협회가 파벌과 짬짜미를 없애는 방법

현대자동차에서 그룹 차원으로 아주 오랫동안 지원해왔다. 양궁협회장도 정몽준정몽구 → 유홍종 → 이중우 → 정의선에 이르는 현대가의 주요인사가 계속해서 맡아오고 있다. 상세 내용은 대한양궁협회 참조.

선수 육성 및 선발을 위해서 그토록 치열한 내부경쟁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협회의 노력으로 순수한 실력 이외의 다른 의혹은 없다. 선수 및 지도자들도 선발 과정과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기 때문에 선수들의 기량 유지와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위기가 있을 때도 대응이 빨랐고, 양궁은 다른 종목과 달리 심판이 개입할 부분이 적어서 선수끼리 짜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에 의한 승부조작의 여지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양궁 국가대표는 보통 9~11월 사이에 2~3번의 과정을 거치는 종합선수권이라는 대회를 통해 남녀 각 8명씩 총 16명을 선발하여 동계훈련을 하고 이듬해 세계대회에 출전할 때, 이 8명의 선수들 중 평균 3회 이상의 평가전을 통해 3~4명을 선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전년도에 대표였든 금메달리스트였든 가산점 따위 없이 무조건 처음부터 시작하며, 선수권 진행 당시에 순위에 못 들어가면 바로 탈락이다. 다른 대회에서도 올림픽 메달까지 달성한 선수가 아무것도 없는 일반인에게 고전하거나 패배하는 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올림픽 금메달보다 한국 양궁 국가대표팀 선발전이 더 어렵다는 게 마냥 우스갯소리인 것만은 아닌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가대표 선발전이 사실상 세계최강결정전이라는 얘기도 나올 지경이다.

어느 정도냐면, 2014 인천 AG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세계랭킹 2위이자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기보배 선수가 겨우 10위를 기록했을 정도다. 2016 리우 2관왕 구본찬 선수는 2018 자카르타 AG와 세계선수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졌으며, 리우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인 이승윤 선수도 2018 아시안 게임 선발전에서 떨어졌다. 이 조건은 모두가 동등한 조건에서 치러지며, 눈이 오건 비가 오건 상관없이 같은 날짜에 무조건 시행된다.

이를 축구로 비유하면 리오넬 메시 같은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있는데 메시가 대표팀 평가전에서 살짝 삐끗하면 바로 대표팀에서 끌어내리는이다. 그리고 또 다른 메시가 대표팀 자리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팀에 이미 또 다른 메시들이 더 있다는 것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있는데, 94회 전국체전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기보배가 오다미에게 6대 0으로 참패를 하면서 광탈하고 말았다. 오진혁도 우승은 했지만 7-3으로 신승했으며 스코어 면에서도 상당히 고전하는 경기를 해야만 했다.

박태환이 전국대회에 출전했을 때 맞설 수 있는 상대가 거의 없다는 점[36]을 감안해보면, 한국 양궁판에서는 누구든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고 해도 보장된 국가대표 자리란 없다. 심지어 2015년 10월 18일 강원도 원주 양궁장에서 열린 전국체전 양궁 리커브 남자 일반부 30m 결선에서는 360점 만점이 3명이나 있어서 엑스텐 개수로 순위를 가리는 기막힌 일도 있었다.(기사) 이처럼 만점을 달성하고도 탈락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자 양궁은 1984년 올림픽부터 2004년 올림픽까지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석권했으며 개인전 금메달리스트의 얼굴은 계속 바뀌었고, 올림픽에 2번 이상 출전한 선수조차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37] 즉, 국가대표 단골 멤버라는 말은 양궁에서는 없다는 것. 더욱이 놀랄 만한 것은 금메달리스트들이 거의 고교시절에 금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실업팀 선수들도 뛰어나지만 그보다 더 뛰어난 선수들이 고교시절부터 계속 배출되고 있다는 게 실업팀 선수들에게는 엄청난 자극이자 부담이다. 남자 양궁은 미국에게 초반엔 밀렸지만 그 뒤로는 개인전뿐만 아니라 단체전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각종 기행들도 많은데, 표적 정중앙의 카메라를 깨부수는 것은 일상이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2000 시드니 올림픽,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카메라를 박살냈으며, 특히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한 김경욱은 개인전 결승 한 경기에서 카메라 두 개를 해먹었다. 예능에 출연했을 때는 30m 거리에 있는 실에 꿰인 콩을 맞히랬더니 콩을 꿴 실을 갈랐고, 최영광 선수는 아예 화살 안에 화살을 집어넣는, 로빈훗도 웃고 갈 신기보여주었다. 방송에서는 속이 빈 특수 화살 안에 집어넣었지만, 일반 화살을 사용하는 대회에서도 나왔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여자단체 종목에서 7번째, 그리고 1988 서울 올림픽 이후에 단체전이 정식종목이 된 이후로 20년 동안 정상을 지키는 데 성공했으며, 남자단체 종목 역시 3연패를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자개인 종목에서는 중국 응원단의 소음과 방해 때문에 7연패에 실패했다. 그러고는 한국의 독무대를 모처럼 깼다면서 우승한 중국 양궁선수들의 활을 올림픽 기념관에서 전시했고, 한국은 정당한 실력이 아니라며 이를 갈았다.

이에 한국 양궁팀은 또 중국의 홈그라운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심한 소음을 견디는 훈련 겸 연습경기를 9월 25일 잠실야구장에서 했다. 당일 홈경기를 주관하는 LG 트윈스 측에서는 "조금 일찍 경기장에 오셔서 양궁 대표팀의 연습경기를 보시면서 많은 함성을 보내주시면 태극 궁사들에게 큰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다."고 밝혔다. 그래서 관중들은 야유, 괴성, 호루라기, 막대풍선, 나팔, 짝짝이, 심지어 부부젤라까지 온갖 것들을 이용해 소음을 만들어냈다.기사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대비할 땐 넥센 히어로즈의 홈경기에서 소음 대비 훈련을 했고, #, 2015년 세계선수권 전에는 두산 베어스의 홈경기에서 소음 대비 훈련을 진행했다. #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다 보니 외국에서 한국 양궁 감독을 스카웃하는 일도 제법 많아졌다. 올림픽에 나가보면 각국의 양궁 감독이 대부분 한국인이다. 2012 런던 올림픽 남자부 경기에서 4강전을 치른 한국, 미국, 이탈리아, 멕시코 감독이 모두 한국인이었다. 특히 세계 랭킹 1위인 미국을 이기고 우승한 이탈리아를 맡은 감독이 석동은이다. 또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단체에서 은메달을 딴 미국 대표팀 감독도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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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각국 양궁 대표팀 감독의 단체사진.
8개국 10명의 감독이 모두 한국인이다.[38]


2012 런던 올림픽을 하루 앞두고 대표팀 양궁 감독인 오선택 감독이 "양궁 경기장에 폭우 쏟아져라."라는 망언 아닌 망언을 해서 화제가 되었다. 결국, 여자 단체전이 진행되는 와중에 정말로 비가 내렸다. # 예선에서 임동현 선수가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 문제는 이 임동현 선수의 시력은 0.2 정도. 그래서 어떻게 쏘느냐고 물었더니 '감으로 쐈다'는 대답이 돌아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다만, 7월 31일에 한 인터뷰에 따르면 시력에 관한 건 약간 과장되어 알려진 것으로 시력이 낮은 건 맞지만 원시라서 과녁판은 잘 보인다고 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한국시각으로 7월 30일 새벽 여자 양궁 단체전 기보배, 이성진, 최현주가 중국을 210:209 1점차로 누르며 금메달을 가져갔다. 이로써 1988년부터 지켜온 여자 양궁 단체전 금메달을 이번에도 가져가면서 7연패를 달성했다.

사이좋게 여자 개인전 메달을 독식으로 나눠가지던 한국이 이번 올림픽에선 기보배가 고전 끝에 금메달을 따내자, 한국 양궁 역사의 산증인인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권불십년을 외치기 시작했다. 사실, 권불십년이라기보다는 한국 양궁의 노하우가 외국으로 나가는 한국감독들에 의해 수출되어 실력의 상향평준화가 일어났다는 게 옳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위에서 썼듯이, 단체전 4강 진출 국가대표팀의 감독 모두 한국인 감독이 우수한 역량을 뽐내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니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일이다.

그리고 그 얘기가 무색하게 2013년 5월, 상하이에서 열린 양궁 월드컵에서 한국은 그동안 비주류로 여겨졌던 컴파운드 양궁에서도 금2, 은1, 동2개를 따냈다. 한국 양궁은 컴파운드에서는 부진해서 반쪽짜리 강국으로 여겼던 서구권이 충공깽에 빠졌다 하며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컴파운드 분야에서 금 2개(여자 단체, 여자 개인)와 은 2개(남자 단체, 여자 개인)을 차지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선 남자 단체전 양궁에서 지난 런던 올림픽 당시 동메달의 설움을 씻어내며 퍼펙트한 경기력으로 남자 양궁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여자 대표팀 역시 단체전에서 러시아 대표팀을 상대로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결승전에서 이기며 여자 양궁 단체전 8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39] 또한, 개인전에서는 4강에서 기보배 선수와 장혜진 선수가 만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그 뒤 기보배 선수가 최미선을 8강에서 0대 6으로 이긴 멕시코의 알레한드라 발렌시아에게 이기면서 동메달을, 장혜진 선수가 결승전에서 독일의 리자 운루를 꺾고 금메달을 수상했다.

남자 개인전에서는 김우진 선수가 32강에서 충격의 광탈을 당했고 이승윤 선수도 8강에서 광탈하는 위기가 있었지만 구본찬 선수가 8강, 4강을 슛오프로 드라마틱하게 승리했고 결승전에서 프랑스의 발라동 선수를 꺾고 결국 금메달을 따면서 마침내 대한민국 양궁이 올림픽 최초로 양궁 전 종목을 쓸어모았다. 이런 놀라운 성과를 거뒀으면 재신임할 만도 한데 협회는 파벌 문제와 공정한 경쟁을 위해 공모를 통해 대표팀 지도자를 전부 바꿨다.

2017년 아시아컵 3차 양궁대회에서 고교 선수들만 보냈음에도 전원 결승에 올랐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4개를 땄다. 성인국대선수들 사이에서 고교생들이 말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여자 단체전에서는 6연속 금메달을 차지했으며 총 금 4, 은 3, 동 1을 따면서 여전히 대한민국이 세계 최강임을 증명하고 있다. 다만 여자 리커브 개인전에서 단 한 명도 결승전을 밟지 못하면서 양궁도 상향평준화가 될 조짐이 보인다. 이 때문에 양궁 대표팀 선수들은 아시안게임 일정을 마친 후 매우 무거운 분위기로 언론 인터뷰에 참석했는데 전교 1등이 전 과목에서 100점이 하나도 없다고 슬퍼하는 꼴이라는 드립도 나왔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양궁 시합이 치러질 유메노시마 경기장을 똑같이 재현해서 훈련한다.영상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김제덕안산이 혼성전에서 네덜란드 국가대표를 제치고 대한민국의 첫 금메달이자 양궁 혼성전 첫 금메달을 땄다. 특히 안산은 혼성 단체전 준결승 경기 중 꽂혀있던 화살을 맞히는 엄청난 기량을 보여주기도 했다. 영상[40][41]

안산은 여자 단체 결승에서도 금메달을 따내 2관왕을 따내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양궁 여자 단체 금메달로 단일 종목 9연패라는 한국, 아니 세계 올림픽 역사상 손에 꼽히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42]

또한 7월 26일에서는 남자 단체 결승전에서 대만과 경기를 치른 결과, 한국이 6:0으로 이기면서[43][44] 단체전 금메달을 모두 석권하게 되었다.[45]

7월 30일, 안산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서 3관왕에 올랐다. 이는 대한민국 하계 올림픽 최초의 3관왕이며, 2024 파리 올림픽 공식 SNS에서 선정한, 도쿄 올림픽 대표 인물 몇 명만을 그리는 포스터에 안산 선수가 들어가있는 이유이기도 하다.반면 다음 날 31일 남자 개인전에서는 김우진 선수가 16강전에서 3세트 모두 30점씩 쏘기도 하였다. 하지만, 8강전에서는 아쉽게도 탈락하면서 2회 연속 전 종목 석권을 하지 못했다. 도쿄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이 총 6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마무리가 되었는데, 그 중 3분의 2인 4개가 양궁종목에서 획득하였다. 특히 6개 중 절반은 안산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도 하였으며,[46] 6개 중 3분의 1인 2개는 김제덕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도 하였다.[47]

도쿄 올림픽 이후 양크턴 세계선수권에서는 2009년 이후 12년 만에 리커브 전 종목 석권을 이루었고, 2진 국가대표로 구성된 대표팀으로 아시아선수권도 전 종목 석권을 달성했다. 2022년에는 2018년 이후 4년 만에 남녀 동반 월드컵 우승[48] & 연말 랭킹 1위, 2023년에는 상하이 월드컵, 메데린 월드컵에서 2연속 종합 1위를 기록하고 특히 상하이 월드컵에서 4명의 선수가 모두 4강에 오르며[49] 한국 양궁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베를린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리커브 종목에서 남자 단체전과 혼성 단체전을 우승하고 컴파운드 여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금 2, 동 1로 종합 2위에 올랐다. 앞선 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한 김우진은 2연속 다관왕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여자 단체전은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16강에서 패배했으며, 개인전에서 안산, 강채영, 임시현 모두 평균 9.32점이라는 좋은 경기력을 보이고도 8강에서 탈락했다.[50][51] 남자 개인전은 이우석이 32강, 김우진이 16강, 김제덕이 8강에서 세계 랭킹 1위 마르쿠스 다우메이다에게 패배하면서 42년 만에 남녀 6명 모두 개인전 메달을 놓치게 되었다.[52][53]

세계선수권과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2021 청두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는 남녀 개인전 동반 우승을 차지하며 종합 1위를 달성하였다. 이후 파리에서 열린 4차 월드컵 겸 프레올림픽에서는 남녀 단체전, 혼성전에서 모두 우승했다. 남자 개인전은 한국 선수들[54]끼리 결승전을 치뤘으며 여자 개인전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최미선이 동메달을 획득하여,[55]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종합 1위를 달성하며 명예 회복에 성공하였다.


6.1.1. 에피소드[편집]


퍼펙트 골드의 충격이 대단했던 덕분에 양궁 하면 박성현을 쉽게 떠올리지만, 그런 박성현도 국내대회에서 항상 메달을 독식하지는 못한다. 국가대표 단골 멤버인 윤미진 선수도 국내대회를 빈손으로 끝내는 것도 모자라 전국체전도 아니고 경기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질 뻔 했다.[56] 세계챔피언이 국내대회 출전을 걱정해야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2016 리우올림픽 남자개인전 결승에서 슛오프 직전에 박채순 감독이 구본찬 선수에게 한 말도 너 전국체전에서 메달 딸 자신 있어?였다.[57] 정확히는 ‘야 너 한국 가서 열리는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딸 수 있어? 못 따지? 올림픽이 더 편해’였다. 박 감독의 설명으로는 “사실 올림픽이 전국체전보다 쉽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건방진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따기 진짜 힘들다. 우리 선수들 실력이 그 정도로 높다.”라고.

세계 랭킹 1위만 1264일에 그랜드슬램을 기록한 신궁 박성현의 선배 격으로는 1979년과 1983년 세계선수권 5관왕 김진호[58], 신궁 김수녕 (올림픽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 이 있다. 사실 한국 양궁에서는 최소한 자기 이름을 딴 국제 양궁장 하나쯤은 있어야 레전드로 불릴 수 있다 는 말까지 나오는데, 실제로 예천군에는 진호국제양궁장이, 청주시에는 김수녕양궁장이 있다. 이 외에 광주 염주동에 서향순양궁장이 있었는데, 이후에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양궁장으로 쓰였던 곳이 서향순·기보배 양궁장으로 이름 붙여져 있다.[59]

어느 아시안 게임이 열릴 당시 한국 양궁팀은 무난하게 출전권을 따냈는데, 하필 같은 시기에 국내에서 규모는 작지만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대회가 열렸다. 이 때문에 1군 선수진은 모두 아시안 게임을 포기하고 이 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아시안게임은 2군 선수들만 가지고 남은 일정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결과는 점수 누적 부문 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

1990년대 중반 프랑스 양궁팀하고 같이 합숙을 하게 되었는데, 막 양궁팀에 들어오게 되어 참관을 목적으로 합숙 보조팀에 끼어온 (전력외인) 무명 한국인 후보 선수가 프랑스의 주전까지 싸그리 박살낸 일이 있다.

국가대표 선발전은 중학교 3학년부터 실업팀 선수들 가운데 일정 점수 이상을 한 번이라도 기록한 선수들을 모두 모아 놓고 뽑게 되는데 중학교 3학년 선수가 선배들을 제치고 국가대표가 되어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에 출전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한국체대 선수인 임동현 선수는 고교 1학년 때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했고, 고교 2년생 이특영 선수는 고1 때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여 개인전 은과 단체전 금을 따기도 했다. 김수녕의 경우도 1988 서울 올림픽 2관왕이 된 것이 고2때의 일이다.[60] 2020 도쿄 올림픽 혼성 금메달과 남자 단체에서 모두 금메달을 딴 김제덕도 2021년 현재 고2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개인전 은메달리스트였던 정재헌 선수는 훈련거부파동 사건으로 인해서 국가대표 자격 박탈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02년 사면되어 징계가 해제되고 징계 기록도 말소되었다. 이 사건이 있은지 13년이 흐른 2005년 국가대표 선발전을 뚫어 내며 다시 국가대표에 선발되었고,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했다. 다만, 2006년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꼴찌에 가까운 성적으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1988 서울 올림픽, 2000 시드니 올림픽 여자 개인전 양궁에서는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모두 우리나라가 석권한 적이 있다. 단,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4위는 북한의 최옥실 선수가 차지했다. # 해당영상은 2000 시드니 양궁 개인전 메달시상식 장면이다.

2005년 전국체전에서는 그간 전국대회에서 이름조차 내밀지 못했던 신성우라는 선수가 4관왕에 올랐으며, 국내 전국체전 기록이 세계 신기록보다 높게 나오기도 한다.[61] 전국체전 개인전 신기록이 12발에 120점 만점이다. 한 마디로 그냥 다 10점을 쐈다는 소리. 전국 체전에서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메달은커녕 초반 광탈이나 안 당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2012 런던 올림픽 여자 양궁 국가대표로 선발된 선수는 최현주, 기보배, 이성진[62] 세 명이었다. 그런데, 최현주가 선발전 이후에 부진이 계속되었고, 이 때문에 대표선수를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제기되었다. 교체론과 원칙론이 팽팽했는데, 여자 대표팀의 양창훈 감독은 불안해도 원칙을 깰 수는 없다며 원칙론을 고수했고, 양궁 대표팀 문형철 총감독 역시 "교체는 절대 안 된다. 원칙을 지켜줘야 후배들도 선발전 시스템을 믿고 갈 수 있다"고 힘을 실어줬다. 결국 최현주를 밀고 가기로 결정했고, 이 믿음은 런던 올림픽에서 빛을 발했다.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기보배마저 흔들릴 때, 최현주가 10점 행진을 이어가면서 결국 한국팀에게 금메달을 안겼다.

기보배 역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2개의 금메달을 따내면서 신궁의 계보를 계승했지만, 2014년 아시안 게임 대표선발전에서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고 결국 방송에서 해설자로 나왔다. 하지만, 2015년에는 다시 부활하여 세계신기록을 쏴대고 있다. 2016년에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국가대표 자격을 다시 한 번 획득했다. 하지만 2018년 아시안 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또 떨어졌으며, 2020년 도쿄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도 떨어져 KBS 해설자로 나오게 되었다.

전술한대로 2015년 전국체전에서는 이승윤(20·코오롱 엑스텐보이즈김법민(24·대전시체육회)·김규찬(25·예천군청)선수가 36발을 모두 10점 과녁(지름 8cm)에 맞혀서 360점의 만점자가 무려 3명이나 나왔다. 그래서 지름 4㎝인 X-10[63]을 맞힌 횟수로 순위를 정했다. X-10을 24발 쏜 이승윤과 김법민은 공동 금메달, X-10을 20발 쏜 김규찬[64]은 동메달을 받았다. 덤으로 공동 4위인 계동현, 진재왕은 36발 중 35발을 10점 쏘고, 딱 한발 9점 쏴서 359점을 받았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양궁 예선에서 김우진 선수가 72발 중 700점을 쏘아 올림픽신기록을 세웠다. 정작 대회 자체는 32강에서 탈락했다는 게 아이러니.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단체전에서 4강 타이완과의 1차전에서 3명의 선수가 1차전의 6발 모두 10점을 맞히면서 총합 60점 만점으로 1세트를 끝내버렸다. 역시 같은 올림픽 남자 단체전 결승전 미국과의 1차전에서 3명의 선수가 6발 모두 10점을 맞히면서 60점 만점으로 1세트를 끝내버렸다.

그리고, 리우 올림픽 남자 개인전 양궁에서 구본찬이 금메달을 따면서 한국이 최초로 양궁 전 종목을 석권하는 기록을 달성했다.

그래서,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의 양궁 선수들은 국가대표가 되면 메달권 진출이 반쯤 확정되는 추세다. 단지, 국가대표가 되는 길이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울 뿐이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이승윤 선수는 2018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졌고 2015 전국체전에서 만점 동메달 수상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김규찬 선수가 선발전에 붙었다. 심지어 2021년 도쿄 올림픽 양궁 3관왕을 차지한 안산 선수조차 다음 목표가 전국체전 금메달이라고 밝혔을 정도. 그만큼 3관왕 선수도 어려워하는게 국내 대회인데, 2021년 전국체전은 사실상 없었고,코로나로 한 해 미뤄진 전국체전에서 이 목표는 동메달을 획득하며 아쉽게도(?) 실현되지 못했다.

이렇듯 국제대회에서의 경쟁보다 국내 선수들끼리의 경쟁이 더 치열해서 그런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올림픽 등에 출전한 선수들을 보고 "다음 올림픽 해설위원(진)"이라는 농담조 드립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다만, 리커브가 아닌 컴파운드 종목에서는 컴파운드 보우에 많은 투자를 하고 선수도 늘어난 인도가 갑자기 잘하여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4개인 한국은 1978 방콕 아시안 게임 이후 40년 연속 아시안 게임 양궁 최다 금메달 강호 자리를 45년만에 인도에게 넘겨진 이변이 벌어졌다. 10개 금메달에서 5개를 인도가 차지했던 것(리커브 금메달 1개는 몽골)이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컴파운드를 리커브만큼 꾸준히 투자해가는 추세여서 앞으로 대한민국은 리커브와 컴파운드 모두의 최강국으로 다시한번 발돋움할 전망이다.

6.2. 대한민국의 올림픽 성적[편집]



6.2.1. 남자부[편집]


  • 개인전
대한민국 양궁 남자 개인전 역대 올림픽 메달 결과
대회
메달
선수
1988 서울
은메달
박성수
1992 바르셀로나
은메달
정재헌
1996 애틀랜타
동메달
오교문
2008 베이징
은메달
박경모
2012 런던
금메달
오진혁
2016 리우
금메달
구본찬
  • 단체전


6.2.2. 여자부[편집]


  • 개인전
대한민국 양궁 여자 개인전 역대 올림픽 메달 결과
대회
메달
선수
1984 로스앤젤레스
금메달
서향순
동메달
김진호
1988 서울
금메달
김수녕
은메달
왕희경
동메달
윤영숙
1992 바르셀로나
금메달
조윤정
은메달
김수녕
1996 애틀랜타
금메달
김경욱
2000 시드니
금메달
윤미진
은메달
김남순
동메달
김수녕
2004 아테네
금메달
박성현
은메달
이성진
2008 베이징
은메달
박성현
동메달
윤옥희
2012 런던
금메달
기보배
2016 리우
금메달
장혜진
동메달
기보배
2020 도쿄
금메달
안산
  • 단체전


6.2.3. 혼성부[편집]


대한민국 양궁 혼성 단체전 역대 올림픽 메달 결과
대회
메달
선수
2020 도쿄
금메달
김제덕/안산


6.3. 지원 및 후원[편집]


현대자동차그룹은 한국 양궁 종목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1985년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대한양궁협회를 후원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양궁 국가대표팀에게 첨단 IT 기술을 접목한 훈련 장비를 제공했다. 연습 때 선수들이 기록한 데이터를 자동으로 입력하고 이를 선수촌 서버에 저장해 빅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점수 자동 기록 장치, 선수의 얼굴을 촬영한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분석해 실시간으로 선수의 긴장 및 이완 상태를 측정하는 기술 비정 기반 심박수 측정 장치, 선수 영상과 표적 영상의 주요 장면을 포착해 하나의 영상으로 자동 편집하는 기능이 있는 인공지능 코치 총 3가지이다. 이외에도 활 내부의 파손 여부를 검사하는 활 비파괴 검사 기술, 화살을 검사하고 불량 화살을 선별하는 고정밀 슈팅 머신, 선수별로 최적화된 3D 그립 등이 있다.


7. 양궁 제조 업체[편집]


스포츠용 양궁을 기준으로 서술한다.

원래는 미국의 호이트와 일본의 야마하가 이쪽 분야의 양대 산맥이었다가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양궁 활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제조업체가 '윈앤윈'과 '삼익 스포츠'[65]이다. 한국 선수들이 한국산 활을 들고 대회를 섭렵하자 호이트와 야마하의 양강체제는 붕괴될 수밖에 없었고, 한국 양궁의 위상이 높아졌다. 이후 외국 선수들은 아무리 해도 한국 양궁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되자 한국 선수들의 유니폼, 걸음걸이, 스트레칭 동작까지 따라했고 한국인 코치를 영입하기 시작했다. 사용하는 활의 종류까지 따라하게 되자 자연히 외국 선수들도 한국산 활을 쓰게 되었고 현재 일본 야마하는 활 사업을 접었으며[66] 호이트는 점유율을 절반 이상 빼앗겼다.

조만간에 한국 메이커인 삼익, 윈앤윈이 시장을 거의 독점할 것으로 보였으나, 한국 선수들 중에서도 호이트사의 활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 상황이라 완전히 독점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윈앤윈은 세계 1위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이와는 반대로 삼익스포츠는 2015년 12월 파산을 했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도 여자 개인전 8강에 진출한 선수 중 5명이 한국산 윈앤윈 활을 사용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2012 런던 올림픽 때 외국선수들이 한국산 가슴보호대를 차고있었는데, 그게 여성의류 쇼핑몰 홍보용으로 상당히 귀여운 디자인이라 한국에서 화제가 되었다. 아래 사진의 우크라이나 선수 참고.[67]

파일:external/menu.mtn.co.kr/2012080110044633042_01_268.jpg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20729094922000.jpg

현재 한국에 있는 양궁장비 제조업체들은 아래와 같다. 어쩐 이유에서인지 경기도와 인천 쪽에 몰려 있다.[68]

회사 이름이 윈앤윈이고 양궁 브랜드는 위아위스다(선수나 동호인들은 짧게 “윈” 으로 주로 부름). 미국제 호이트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경기용 양궁 제조업체이다. 양궁에 관계된 모든 제품을 생산하지만 특히 카본제 양궁핸들과 림(활의 날개부분)이 유명하다.또한 양궁계의 명품으로 올림픽 국대급 선수들은 이 회사 활이 아니면 호이트 활을 애용한다. 심지어 올림픽에서 중국이나 일본대표팀 선수들도 윈앤윈의 활을 들고 경기를 치르는것이 보통이다. 요즘은 컴파운드 보우도 생산중이지만 아직까지는 리커브 보우가 주력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2010년대에는 축적된 카본 기술로 카본 자전거도 만들고 있는데, 평이 굉장히 좋은 편. 위아위스 카본 MTB는 국산품 중 유일하다. 양궁계의 명품 업체로서 성능은 탁월하나 가격대도 높다. 경기도 안성에 오프라인 매장이 있으나 온라인으로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사이트는 국내에 없으며 보통 해외 직구로 구매하는 편. 아무래도 국내 양궁용품 시장이 작다 보니 가격이 비싼 윈앤윈은 일반 동호인 소비자 보다는 대량구매가 가능한 선수단이나 단체 판매에 힘쓰는 듯하다. 동호인의 입장에서 구매나 A/S 면에서 윈앤윈의 위상에 비례한 서비스를 받기 힘들다는 것이 단점.

  • 파이빅스 (Fivics)
윈앤윈이나 호이트처럼 거의 모든 양궁장비를 다 생산하는 업체이다. 이 전 소마(SOMA) 브랜드로 판매되던 라인업을 파이빅스로 갈아타면서 회사를 확장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성장하는 중인 회사.
보통 초등학생-중학생 선수들이 처음 사용하는 활이 파이빅스의 입문용 모델 제니아인 경우가 많다.
화살 역시도 유명한데, 제일로나 텐프로의 경우는 적당한 가격대와 적당한 성능으로 양궁에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사용하고 넘어가는 화살이다. 학생 선수들이라면 너무 비싼 화살을 사용 할 수 없기 때문에 적절한 가격대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화살을 찾는데 그것이 바로 파이빅스의 텐프로.
이 회사는 양궁계에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가져온 회사이다. 활의 몸체 뿐만 아니라 스테빌라이져나 웨이트등등 소소한 부품 하나하나에 디자인적인 요소를 고려했다. 올림픽 중계에서도 이 회사의 화살통 (퀴버)이나 부가장비들이 꼭 카메라에 비춰지는데, 그만큼 부가장비들을 이쁘게 잘 만드니 선수들이 꽤 애용하는 것. 이 회사는 핑거탭을 잘 만든다. 만약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핑거탭 구매를 고려한다면 파이빅스에 방문하면 된다. 장담컨데 이 회사 핑거탭 제품 라인업 중에 적어도 하나는 당신의 손에 딱 맞을것이다. 그만큼 선택의 폭도 넓고 시장 점유율도 높다.
이 회사는 전직 양궁 선수였다가 감독이었던 사람이 만들어서 그런지 간혹 신박한 아이디어 상품을 잘 들고 나온다. 그것도 디자인을 이쁘게 다듬어서.. (대표적인 게 신박하고 튼튼한 원터치 스텐드)

  • 자이언트아처리(Cartel, infitec, midas)
위 세 업체는 라인업별로 브렌드를 세분화 시킨건지, 결국은 다 같은 회사이긴 하다. 역시 활을 포함한 모든 양궁 장비를 다 만든다. 파이빅스와 다른 점이라 하면 여긴 정말 다 만든다는 것이다. 웬만한 장비는 정말 다 있다 카더라... 여기서 만드는 알루미늄 코어 카본 화살이 유명하다. 학생선수들도 많이 사용을 하는 듯.

  • MK archery
생긴 지 얼마되지 않은 회사이다. 삼익스포츠가 망한 후에 몇몇 직원들이 독립해서 만든 회사라 카더라. 아직 제품이 다양하지는 않은데, 과거 삼익의 기술 덕분인지 이 회사의 제품은 상당히 자주 올림픽이나 세계대회에서 등장한다. 핸들과 림의 라인업이 적지만 고강도 (7000시리즈 합금) 알루미늄 핸들과 국내 생산을 고집하며 그 때문인지 가격은 윈앤윈이나 호이트만큼 비싸다. 성능도 그에 필적하는 장비이다.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의 대한민국 선수들은 모두 여기 활을 썼다.

  • 삼익스포츠
그 악기 만드는 삼익이 맞다. 과거에는 활도 잘 만들어서 꽤 유명한 네임드 양궁장비 제조 업체였으나, 도산 후 전문 타겟용 양궁장비는 더 이상 보기 힘들다.. (올림픽, 양궁월드컵 등등에서 씨가 말랐고 심지어는 동호인들 동네 대회에서도 안보인다... 있어도 옛날에 샀던 장비..) 2015년 부활한 뒤 개설한 홈페이지가 있으며, 사냥용 리커브 보우 쪽으로는 영업을 하는 듯 보인다.
새로운 홈페이지를 보면, 이름은 삼익스포츠/삼익아처리를 그대로 쓰고 있지만 2013년 회사가 넘어간 뒤, 2015년 리뉴얼하고 거의 모든 품목을 다시 생산하는 것 같다. 예전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할 일. 다른 업체 제품보다 전반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좋다. 국내 생산을 마케팅에 강조하지만 개인 대상 국내 판매는 아직 드문 듯 하다.

미국 회사
  • 호이트(Hoyt)
한때 세계 점유율 1위를 기록했었고, 한국 기업이 치고 올라온 현재도 2위권을 기록중인 회사이다.
대체로 고강도+고탄력에 높은 정밀도를 추구하는 성향이 있으며, 힘이 좋은 남자 선수들이 선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한국의 남자 국가대표 선수들 중에 김우진, 오진혁 등은 호이트 활을 선호하는 사람이 여럿있다.


8. 관련 용품[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궁/관련 용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국가대표[편집]



9.1. 국가대표 선발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대한양궁협회/선발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2. 국가대표 출신 선수[편집]


파일:대한양궁협회 로고.svg 리커브 남자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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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
박경래
1976
석동은
1979
감경윤 · 강종구 · 이기식 · 이세일
1980
감경윤 · 강종구 · 김홍복 · 이항용
1981
박명국 · 박익수 · 엄선기 · 이항용 · 임인택 · 임채웅
1982
김영운 · 박익수 · 이용호 · 이재형
1983 1기
곽윤식 · 김병갑 · 김영운 · 엄선기 · 이용호 · 전인수
1983 2기
김병갑 · 김영운 · 박익수 · 배진성 · 전인수 · 최원태
1983 3기
구자청 · 김병갑 · 김영운 · 박익수 · 전인수
1984 1기
구자청 · 김병갑 · 박익수 · 배진성
1984 2기
구자청 · 전인수 · 최원태
1985 1기
김병갑 · 문백운 · 박경상 · 안태성 · 유호상 · 이용호 · 이의명 · 이한섭 · 임동일 · 전인수 · 최원태 · 호진수
1985 2기
강정식 · 곽윤식 · 구자청 · 김병갑 · 박경상 · 박채순 · 안태성 · 이문수 · 이의명 · 전인수 · 최원태 · 호진수
1985 3기
강동원 · 구자청 · 김병갑 · 서만교 · 전인수 · 최원태 · 호진수
1985 4기
구자청 · 서만교 · 전인수 · 호진수
1986 1기
강동원 · 곽윤식 · 구자청 · 김동걸 · 박성수 · 배진성 · 서만교 · 임지원 · 전인수 · 조성민 · 최원태 · 호진수
1986 2기
구자청 · 박경상 · 박성수 · 양승현 · 양창훈 · 전인수
1987 1기
구자청 · 박경상 · 박성수 · 양승현 · 양창훈 · 임희식 · 전인수 · 호진수
1987/88
구자청 · 길준석 · 김춘식 · 박성수 · 안태성 · 양승현 · 양창훈 · 윤형두 · 이경출 · 임채웅 · 전인수 · 호진수
1988 2기
박성수 · 양창훈 · 이경출 · 이한섭 · 전인수 · 호진수
1988 3기
박성수 · 이한섭 · 송칠석 · 전인수
1989
김성남 · 박재표 · 양승현 · 양창훈 · 이정근 · 이흥섭 · 임채웅 · 전인수
1990 1기
강태경 · 김경호 · 박성수 · 송칠석 · 양창훈 · 이정근 · 임희식 · 전인수
1990 2기
강태경 · 김선빈 · 김준화 · 박성수 · 박재표 · 양창훈 · 이정근 · 호진수
1991
김경호 · 박재표 · 심영성 · 양창훈 · 전인수 · 정재헌 · 한승훈 · 황진우
1992
김경호 · 김보람 · 양창훈 · 이정근 · 임희식 · 정재헌 · 한승훈 · 황진우
1993
김경호 · 김보람 · 김성남 · 김재락 · 박경모 · 양창훈 · 이경출 · 한승훈
1994
김경호 · 김보람 · 박경모 · 심영성 · 양창훈 · 오교문 · 정재헌 · 한승훈
1995
김보람 · 김선빈 · 김재락 · 양창훈 · 오교문 · 이경출 · 정재헌 · 한승훈
1996
김경호 · 김민수 · 김보람 · 김선빈 · 김영수 · 박성수 · 오교문 · 이정근 · 임희식 · 장세희 · 장용호 · 정우성
1997
김경호 · 김보람 · 김선빈 · 오교문 · 임희식 · 장용호 · 정우성 · 홍성칠
1998
김경호 · 김보람 · 김선빈 · 장용호 · 오교문 · 이정근 · 임희식 · 한승훈
1999
김보람 · 배재경 · 오진혁 · 장용호 · 정재헌 · 한승훈 · 홍성칠 · 황진우
2000
김경호 · 김보람 · 김청태 · 오교문 · 이태영 · 장용호 · 전성환 · 정재헌
2001
김원섭 · 박경모 · 연정기 · 이창환- · 김보람 · 김청태 · 장용호 · 정재헌-[자격박탈]
2002
김경호 · 김석관 · 박경모 · 배재경 · 이동욱 · 이승용 · 임동현 · 최원종
2003
김보람 · 박경모 · 박현수 · 이동욱 · 임동현 · 장용호 · 정재헌 · 최영광
2004
구춘성 · 김보람 · 박경모 · 이동욱 · 이창환 · 임동현 · 장용호 · 한승훈
2005
김보람 · 박경모 · 임동현 · 장용호 · 정재헌 · 최영수 · 최원종 · 한승훈
2006
박경모 · 연정기 · 이상현 · 이창환 · 임동현 · 장용호 · 홍성칠 · 한승훈
2007
김보람 · 김연철 · 박경모 · 이창환 · 이철수 · 임동현 · 임지완 · 오진혁
2008
김명수 · 김보람 · 김재형 · 박경모 · 이승용 · 이창환 · 임동현 · 장용호
2009
김성훈 · 김우진 · 오진혁 · 이승용 · 이창환 · 이호준 · 임동현 · 장채환
2010
김우진 · 김보람 · 오진혁 · 이광성 · 이창환 · 임동현 · 정성원 · 진재왕
2011
구동남 · 김우진 · 김주완 · 김성훈 · 오진혁 · 이창환 · 임동현 · 진재왕
2012
김우진 · 김법민 · 김봉만 · 김석관 · 김성훈 · 김용호 · 박진억 · 성우경 · 이창환 · 임동현 · 오진혁 · 진재왕 · 한우탁
2013
구본찬 · 김규찬 · 김석관 · 오진혁 · 이승윤 · 임동현 · 정성원 · 진재왕
2014
구본찬 · 김우진 · 오진혁 · 이승윤 · 이우석 · 임동현 · 정성원 · 한우탁
2015
구본찬 · 김우진 · 오진혁 · 신재훈 · 이승신 · 이승윤 · 이우석 · 임동현
2016
구본찬 · 김우진 · 김종호 · 오진혁 · 이승윤 · 이우석 · 임동현 · 정태영
2017
김우진 · 김종호 · 오진혁 · 이승윤 · 이우석 · 임동현 · 정태영 · 진재왕
2018
김규찬 · 김우진 · 배재현 · 신재훈 · 오진혁 · 이우석 · 임동현 · 정태영
2019
김우진 · 남유빈 · 배재현 · 오진혁 · 이승신 · 이승윤 · 이우석 · 임동현
2020
김우진 · 김필중 · 남유빈 · 오진혁 · 이우석 · 장채환 · 정태영 · 한종혁
2021
김우진 · 김제덕 · 김필중 · 박주영 · 오진혁 · 이승윤 · 이우석 · 한우탁
2022
김우진 · 김제덕 · 오진혁 · 이승신 · 이승윤 · 이우석 · 장채환 · 한우탁
2023
김우진 · 김제덕 · 서민기 · 오진혁 · 이승윤 · 이우석 · 최두희 · 최재환
[자격박탈] 군입소 극기훈련 집단 거부




파일:대한양궁협회 로고.svg 리커브 여자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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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
이영숙 · 황숙주
1978
김진호 · 오영숙 · 황숙주
1979
김진호 · 박영숙 · 안재순 · 황숙주
1980
김진호 · 박영숙 · 안재순 · 황숙주
1981
김미영 · 김진호 · 박영숙 · 백종미 · 양경순 · 전문규 · 황숙주
1982
김진호 · 박영숙 · 양경순 · 황숙주
1983 1기
김미영 · 김옥경 · 김진호 · 박영숙 · 서향순 · 신정순
1983 2기
김미영 · 김진호 · 박영숙 · 서현주 · 정재봉 · 황숙주
1983 3기
김미영 · 김진호 · 박영숙 · 이순미 · 정재봉 · 황숙주
1984 1기
김진호 · 김미영 · 이순미 · 정재봉
1984 2기
김진호 · 박영숙 · 서향순
1985 1기
김미영 · 박민화 · 박정아 · 서은정 · 서향순 · 이숙향 · 이혜영 · 임명란 · 정재봉 · 조은신 · 허복자 · 황은희
1985 2기
김미경 · 김미영 · 김진호 · 김차남 · 박정아 · 서향순 · 양경순 · 오영숙 · 이숙향 · 이유미 · 이혜영 · 정재봉
1985 3기
김진호 · 박정아 · 서향순 · 양경순 · 이숙향 · 조윤정
1985 4기
김진호 · 박정아 · 서향순 · 양경순
1986 1기
김미자 · 김진호 · 박정아 · 박종숙 · 서향순 · 송영미 · 이선희 · 임명란 · 전애자 · 정민자 · 정재봉 · 지인숙
1986 2기
김미자 · 김진호 · 박정아 · 박종숙 · 이선희 · 임명란
1987 1기
김미자 · 김진호 · 박정아 · 박종숙 · 왕희경 · 이선희 · 임명란 · 정재봉
1987/88
김경욱 · 김수녕 · 박미경 · 박정아 · 박종숙 · 왕희경 · 이선희 · 이애리 · 이유미 · 이혜영 · 임명란 · 황은희
1988 2기
김경욱 · 김수녕 · 박정아 · 왕희경 · 윤영숙 · 이선희
1988 3기
김수녕 · 왕희경 · 윤영숙 · 임은숙
1989
김경욱 · 김수녕 · 박미경 · 박종숙 · 왕희경 · 이선희 · 이은경 · 정창숙
1990 1기
김경욱 · 김미희 · 김수녕 · 왕희경 · 임정아 · 정창숙 · 조윤정 · 한희정
1990 2기
김경욱 · 김수녕 · 문영희 · 박정아 · 이문영 · 이은경 · 이장미 · 한희정
1991
김수녕 · 김승실 · 문영희 · 이선희 · 이은경 · 조윤정 · 이장미 · 한희정
1992
김수녕 · 김승실 · 이은경 · 이선희 · 이장미 · 임정아 · 정창숙 · 조윤정
1993
김경욱 · 김효정 · 염연자 · 이명옥 · 이은경 · 이희정 · 임정아 · 조윤정
1994
강경옥 · 강현지 · 김경욱 · 양승숙 · 염연자 · 이은경 · 임정아 · 한희정
1995
김경욱 · 김정례 · 김조순 · 염연자 · 이은경 · 임정아 · 조미숙 · 황진해 · 박혜정[자격포기]
1996
강현지 · 김경욱 · 김남순 · 김은진 · 김조순 · 박명화 · 손민정 · 윤혜영 · 이은경 · 이희정 · 조미숙 · 최은주
1997
강현지 · 김두리 · 김조순 · 윤혜영 · 정창숙 · 조윤정 · 최은주 · 황진해
1998
강현지 · 김남순 · 김조순 · 이미정 · 이은경 · 임정아 · 정창숙 · 조미숙
1999
강현지 · 김두리 · 김조순 · 윤혜영 · 이은경 · 이희정 · 정창숙 · 하나영
2000
강현지 · 김남순 · 김수녕 · 박회윤 · 윤미진 · 정창숙 · 최남옥 · 최은정
2001
강현지 · 김경욱 · 김문정 · 박성현 · 우송이 · 최남옥 · 최은정 · 최진
2002
김문정 · 박성현 · 박회윤 · 안세진 · 윤미진 · 임귀숙 · 최은영 · 최진
2003
박미경 · 박선준 · 박성현 · 안세진 · 윤미진 · 이성진 · 이현정 · 최진
2004
김문정 · 박성현 · 안세진 · 윤미진 · 이성진 · 정승화 · 정창숙 · 조은지
2005
김유미 · 박성현 · 박회윤 · 윤미진 · 윤옥희 · 이성진 · 이특영 · 이현정
2006
김유미 · 박성현 · 안세진 · 윤미진 · 윤옥희 · 이성진 · 이특영 · 최은영
2007
김문정 · 김희정 · 박성현 · 안세진 · 윤옥희 · 이성진 · 이특영 · 최은영
2008
곽예지 · 김원정 · 박성현 · 윤옥희 · 이특영 · 이현주 · 주현정 · 최은영
2009
곽예지 · 김문정 · 김유미 · 박성현 · 윤옥희 · 이수지 · 주현정 · 한경희
2010
곽예지 · 기보배 · 김문정 · 박소희 · 오다미 · 윤옥희 · 장혜진 · 주현정
2011
기보배 · 김문정 · 윤옥희 · 장혜진 · 정다소미 · 주현정 · 최현주 · 한경희
2012
기보배 · 김민정 · 김유미 · 심예지 · 윤옥희 · 이성진 · 장혜진 · 전나영 · 정다소미 · 정지민 · 최현주 · 한경희
2013
기보배 · 윤옥희 · 이특영 · 장혜진 · 전성은 · 정다소미 · 주현정 · 최미선
2014
이특영 · 장혜진 · 전성은 · 전훈영 · 정다소미 · 주현정 · 최미선 · 홍수남
2015
강채영 · 기보배 · 박미경 · 이특영 · 장혜진 · 전성은 · 최미선 · 홍수남
2016
강채영 · 기보배 · 박미경 · 이은경 · 이특영 · 장혜진 · 전성은 · 최미선
2017
강채영 · 기보배 · 박미경 · 이은경 · 장혜진 · 최미선 · 최민선 · 홍수남
2018
강채영 · 박미경 · 안산 · 이은경 · 장혜진 · 정다소미 · 최미선 · 최민선
2019
강채영 · 안산 · 장혜진 · 전인아 · 정다소미 · 조아름 · 최미선 · 최민선
2020
강채영 · 곽진영 · 안산 · 윤옥희 · 장민희 · 전훈영 · 정다소미 · 최미선
2021
강채영 · 안산 · 오예진 · 유수정 · 임해진 · 장민희 · 정다소미 · 최민선
2022
강채영 · 김수린 · 안산 · 이가현 · 이은아 · 임시현 · 정다소미 · 최미선
2023
강채영 · 기보배 · 김소희 · 안산 · 임시현 · 전훈영 · 정다소미 · 최미선
[자격포기] 소속 학교 사정으로 입촌 포기










10. 창작물에서[편집]




11. 언어별 명칭[편집]


언어별 명칭
한국어
양궁
한자
洋弓
영어
Archery
중국어
射箭(Shèjiàn
일본어
アーチェリー
베트남어
𡭉弓(Bắn Cung
러시아어
стрельба из лука
프랑스어
Tir à l'arc
스페인어
Tiro con arco
아랍어
الرماية


12.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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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컴파운드 보우를 사용하나, 올림픽에서는 리커브 보우만을 사용한다.[2] 현대적 규칙을 제일 먼저 제정한 국가이다. 다만 국제올림픽위원회 등에서는 양궁의 기원에 대해 유럽과 이집트, 중국 등의 활쏘기를 원류로 하는 일반적인 궁술 대회로부터 유래한 것으로도 서술하고 있다.[3] 상업성의 경우 양궁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다. '시합이 지루하다'는 평을 받고 TV 중계권 협상에서 힘을 못 쓰는 종목은 자연스레 세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4] 컴파운드 보우의 특성 상 사수의 오른손을 보면 보우 릴리즈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5] 활과 활 부착물에 대한 가격이며 그 외 소모품까지 합한다면 비용은 더 추가된다.[6] 과거엔 여기에 카메라가 있어서 카메라를 하도 깨먹었단다. 도쿄 올림픽에서는 8강전 이상부터 극초소형 카메라를 사용해 그 금전적 손실을 최소화했다.[7] 양궁은 날씨(특히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선수들을 나눠서 서로 다른 시간에 예선을 치루게 한다면 날씨에 따라 성적이 차이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선수가 같은 시간에 동시에 경기하는 것이 공정하다.[8] 결과적으로 상위권 선수일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된 것은 사실이다.[9] 세트 승리시 2점, 무승부 시 1점[10] 개인전 5:5, 단체전 4:4 [11] 다만 이 경우 랭킹라운드는 64명이 죽 늘어서서 쏴야 해서 넓은 곳이 필요하기에 별도의 장소에서 치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04 아테네때 랭킹 라운드는 인근의 공군기지 활주로에서 치뤘다.[12] 예를 들어 단거리 자유형 선수면 100m, 200m, 400m에 혼계영까지 최소 4관왕을 노려볼 수 있다. 여기에 접영까지 곁들이게 되면 두 배... 수영에서 괜히 5관왕, 7관왕이 나오는 게 아니다. 지나치게 세분화된 종목 편성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13] 다만, 이것은 조금 무리일 듯 싶다. 승마를 할 때 두 손을 놓고 활을 쏴야하는 만큼 등자가 있어도 낙마할 위험이 있어서 부상의 위험이 너무 크다.[14] 넷상에선 이를 두고 대한민국의 금메달 독식을 방해하기 위한 음모론을 제기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올림픽 초창기인 1900~1920년에는 거리에 따라 나누었으나 정식 종목은 아닌 이벤트성이었고 그나마 대회마다 종목이 달랐다.[15] 심판의 개입이 있는 경우는 매 엔드가 끝날 때마다 표적심판들이 화살이 경계선에 닿았는지 너무 애매할 때 육안으로 자세히 확인하는 정도다. 이것조차 조금만 주의깊게 보면 화살이 경계선에 닿았는지 닿지 않았는지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심판 판정이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6] 자국에서 열린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단체 결승에서 대한민국을 이기고 금메달을 땄고 2012 런던 올림픽 준결승에서도 대한민국을 광탈시켰다.[17] 아시안게임에서의 성적은 일본보다도 떨어지는 3위다. 금메달 수만 봐도 한국이 38개, 일본이 7개, 중국은 3개에 불과하다.[18] 그것도 자국 관중들의 무개념 소음응원 덕에 딴 것이다.[19] 중국에서 열린 2008 베이징 올림픽 여자 개인전에서 장쥐안쥐안이 획득한 금메달이다. 다만, 경기 당시 지나친 홈 어드밴티지를 등에 업었고, 결승에서 박성현이 과녁을 조준할 때마다 중국인 관중들이 큰 소음으로 집중력을 흐트렸다는 비판이 있었다.[20] 1980 올림픽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하필 해당 대회는 개최지가 공산권 모스크바였던 터라 자본진영의 대대적인 보이콧으로 인한 불참이 선언되었고, 대한민국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해당 대회는 국제 정세에 휩쓸려 출전조차 기회가 없었고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되어서야 첫 올림픽 출전을 이뤘지만 전성기도 내려온 시점이었고 큰 긴장을 이기지 못한채 예상보다 저조한 성적으로 동메달로 만족해야 했다.[21] 이 금메달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금메달이기도 하다.[22] 김수녕의 맹활약으로 여자부에선 금메달을 석권했으며 개인전에선 은메달과 동메달까지 한국 선수가 차지하는 둘도없는 싹쓸이가 펼쳐지기도 했다. 남자부에선 박성수의 은메달이 개인전 최고 기록이었지만 단체전만큼은 금메달을 획득했다.[23] 1900년부터 1920년까지 정식 종목이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과는 경기 방식이 달랐고 그때 1위는 11개의 금메달을 딴 벨기에다.[24] 다른 종목 중, 1984년 LA 올림픽부터 정상을 지키고 있는 미국 남자 4×100 m 혼계영 팀이 2020 도쿄 올림픽까지 10연속 금메달을 획득했다. 케냐의 육상 남자 3000 m 장애물 달리기는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며 이전까지 9연패로 마무리. 각각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중국 탁구 여자단식, 여자 다이빙 3 m 스프링보드 종목도 2020 도쿄 올림픽까지 9연속 금메달로 타이 기록이다.[25] 1988 서울 올림픽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단체전에서 연속 우승한 이후 잠시 은퇴했다가 2000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현역으로 잠시 복귀했다.[26] 2000, 2004[27] 2004, 2008[28] 2012, 2016[29] 한 종목의 금, 은, 동메달을 모두 한 나라 선수들이 차지하는 것.[30] 1988 서울 올림픽 여자 개인전과 2000 시드니 올림픽 여자 개인전에서 나온 성과이다. 공교롭게도 두 포디움 스윕 모두 김수녕이 끼어 있었다.[31] 1996 애틀랜타, 2016 리우 남자단체 맞대결. 애틀랜타에서는 홈 버프를 등에 업은 미국이 이겼고 리우에서는 4년 전 런던대회 준결승에서 미국에 패한 대한민국이 승리하여 런던의 패배를 설욕했다.[32] 1992 바르셀로나, 2004 아테네, 2008 베이징, 2012 런던 여자단체, 1996 애틀랜타, 2008 베이징 올림픽 여자개인 맞대결. 이 중 베이징대회 여자개인 결승전은 토너먼트제가 도입된 바르셀로나대회 이후 여자부 결승에서 대한민국이 패배한 유일한 경기이다.[33] 2000 시드니, 2008 베이징 남자단체 맞대결[34] 1988 서울, 1992 바르셀로나, 2000 시드니, 2004 아테네 여자개인 결승전이 대한민국 선수끼리의 맞대결이었다.[35] 이와 비슷한 종목이 있다면 아시안 게임 한정으로 펜싱이 있다.[36] 박태환은 십여년간 한국에서 압도적인 원탑이었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경쟁상대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황선우가 대한민국 수영의 신성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박태환이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은 2020년부터였다.[37] 김수녕(1988 서울, 1992 바르셀로나, 2000 시드니), 윤미진(2000 시드니, 2004 아테네), 박성현(2004 아테네, 2008 베이징), 기보배(2012 런던, 2016 리우), 오교문(1996 애틀랜타, 2000 시드니), 장용호(1996 애틀랜타, 2000 시드니, 2004 아테네), 임동현(2004 아테네, 2008 베이징, 2012 런던), 박경모(2004 아테네, 2008 베이징), 오진혁(2012 런던, 2020 도쿄) 김우진(2016 리우, 2020 도쿄) 정도다. 특히 2016 리우 남자대표팀은 3명(구본찬, 김우진, 이승윤) 모두 올림픽 경험이 전혀 없는 선수들이었는데도 개인, 단체를 석권했다.[38] 박채순 감독(대한민국), 구자청 감독(대만), 조형목-김미정 감독(스페인), 이재형 감독(말레이시아), 이기식 감독(미국), 김청태 감독(일본), 김상현-이웅 감독(멕시코), 박면권 감독(이란), 박영숙 감독(말라위)[39] 이후 장혜진 선수는 '다음 9연패를 달성할 동생들의 그 마음이 어떨까'였다. -강채영, 안산, 장민희 : 다음 10연패를 할 동생들은...[40] 잘 보면 X-10 안에 들어갈 수도 있었던 화살이 꽂혀있던 화살 뒷부분에 맞아 살짝 꺾이면서 X-10 바깥에 꽂히는 것처럼도 보인다.[41] 관통된 화살과 관통시킨 화살은 '로빈후드의 화살'로 불리며 현재 IOC박물관에 기증되었다.[42] 1988년 정식 종목 채택 이후 9회 연속으로 우승하며 다른 나라에게 한 번도 정상을 내주지 않았으며 안산 선수가 대표팀 첫 2관왕이 되었다.[43] 심지어 2세트에서 6발 중 6발을 모두 10점을 맞히며 60점 퍼펙트 만점을 만드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지난 2016년 리우 올림픽 여자양궁 단체전에서 준결승전에 대만이랑 붙은 적이 있는데 이때도 60점 만점을 만든 적이 있다.[44] 이때 대만의 2세트 점수도 58점으로 결코 낮은 점수가 아니다.[45] 김제덕 선수가 안산 선수에 이어 2관왕을 달성했다. 마지막 금메달을 결정짓는 화살을 쏜 오진혁 선수가 "끝"이라고 나지막하게 내뱉은 한 마디가 카리스마 넘쳤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46] 혼성단체, 여자단체, 개인전[47] 혼성단체, 남자단체[48] 남자는 김우진, 여자는 안산.[49] 우승은 신예 임시현, 준우승은 강채영, 3위는 안산, 4위는 최미선. 임시현은 메데린 월드컵에서도 우승했다.[50] 30점 만점인 한 세트에서 28점을 쏘면 9.33점이다. 안산이 2021년 올 포디움을 기록했을 때의 평균 점수가 9.33점이었고, 올림픽 챔피언 장혜진의 커리어 하이 기록이 9.34점이다.[51] 하지만 안산, 강채영은 모두 앞선 두 세트에서 1점 차 패배로 4실점을 하며 0:4라는 위기에 몰려 모두 뒷심을 발휘하고도 4:6, 5:6으로 패배하였다.[52] 이로 인해 그동안 이어오던 세계선수권 종합 1위를 놓치게 되었으며 한국 양궁이 더 이상 예전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올 시즌에도 최고의 활약을 이어오던 한국 양궁의 위상을 한 대회의 결과만으로 판단하기 이르다. 2022년 3차 월드컵에서 여자부는 최미선이 개인전 동메달을 딴 것을 제외하고는 메달을 얻지 못했는데, 바로 다음 대회인 4차 월드컵에서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금, 은, 동을 싹쓸이했다.[53] 또한 2019년 스헤르토헨보스 세계선수권 대회는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로 마쳤는데, 바로 그 해에 열린 2020 도쿄 프레 올림픽에서 전 종목 석권을, 2019 방콕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컴파운드 혼성전을 제외하고 싹쓸이를 해서 금메달 9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라는 눈부신 성과를 냈었기 때문이다. 2023 시즌도 남은 대회인 항저우 아시안 게임, 방콕 아시아선수권 대회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54] 김우진이우석[55] 최미선은 2차 대회에서 TOP 4를 한국이 싹쓸이했을때 유일하게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는데, 4차 대회에서 팀 내 유일한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이렇게 2년 연속 여자부 4명의 선수가 모두 월드컵 개인전 메달을 획득하였다.[56] 경기도에는 수원시청과 여주시청 두 팀이 있어서 대회를 통해 4위 이내 선수까지만 전국체전에 출전할 수 있다.[57] 나중에 전국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땄지만 그 직후 전국 남녀 종합선수권에서는 올림픽 2관왕 두 명 모두 32강에서 광탈했다.[58]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하지 않았다면 김진호가 대한민국 양궁의 역사를 새로 썼을 것이다.[59]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서향순 문서 참조. 관련 기사 다만, 현재는 해당 경기장 이름이 '광주국제양궁장'으로 불려지고 있다.[60] 이 대회에서는 여자 개인전 금은동을 모두 대한민국 선수가 싹쓸이해버렸다. 대한민국이 여자 개인전에서 3개의 메달을 모두 싹쓸이한 일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다시 재현되었는데, 김수녕이 획득한 동메달이 1999년에 협회의 권유로 은퇴를 번복한 뒤에 선발전을 다시 뚫고 바로 이 때 나온 것이다. 본인은 동메달도 집에 보관할 수 있게 되어서 좋다고 밝혔다.[61] 전국체전 기록도 규격이 맞으면 공인세계기록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2006년의 전국체전 기록은 이전 세계 기록으로 올라가 있다.[62] 이성진은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여자 개인전 은메달, 단체전 금메달을 땄었다.[63] 과녁 가장 안쪽 원 안[64] 이 선수, 만점 맞히고도 금을 못딴 건 처음이 아니지만 만점을 냈는데도 3등이 될줄은 몰랐다는 인터뷰를 남겼다. 이전에 만점 2등을 한 적이 있었고, 2016년 대통령기엔 대통령기 역대 50m 최고점수였던 347점을 맞혔지만 이 대회에서 이우찬 선수가 349점으로 대회 기록을 갱신하면서 2등이 되었다. 절대 기량이 부족한 선수가 아니지만 한국 양궁이 얼마나 험난한 경쟁이 일어나는지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를 몸소 보여주는 선수다. 그리고 결국 2018년에 다시 국가대표 선발전에 통과했다.[65] 삼익 스포츠는 삼익악기에서 독립해 나온 업체.[66] 정확히는 윈앤윈에게 매각.[67] 국내의 한 의류업체가 지난 2009년 울산 세계 양궁선수권대회에서 무상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68] 사실은 인천항이 국내 목재 수입/공급 중 큰 몫을 담당하고, 인천에 가구 제조 및 목재 가공 업체가 몰려 있는 목재 공단이 있기 때문이다. 삼익악기, 영창악기, 콜트악기 등 목재를 많이 쓰는 악기 제조 업체 공장도 부평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