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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揚雄
전한 말기의 학자이며 문인. 자는 자운(子雲). 생몰년도는 BC 53 ~ AD 18.
익주 사천성 성도현 출신으로, 전한 성제(成帝) 때 궁정 문인이 되어 성제의 여행을 수행하며 《감천부(甘泉賦)》,《하동부(河東賦)》 등의 문장을 지었다. 역경과 노자의 이론에 바탕을 둔 철학서 《태현경(太玄經)》을 저술했다.
왕망이 정권을 찬탈한 후에 그에게 협조하여 새 정권을 찬미하는 《극진미신(劇秦美新)》 등의 문장을 지으며 어용문인 노릇을 했고, 이 때문에 후대에 변절자로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말년에는 유흠의 난에 연루돼 체포당할 위기에 처해지자 투신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왕망에게 다시 신임을 받아 대부 직책에 있다가 조용히 삶을 마쳤다고 한다.[1]송대에 이르러 정호·정이 형제와 주자 등 주로 성리학 진영의 공격을 받았다.
저서로는 태현경, 법언, 방언 등이 있다.전한(前漢) 신나라 시기의 언어학 서적인 『방언(方言)』은 양웅이 27년간 수행한 학술 답사 결과를 채록한 저서이며, 세계 언어학 역사상 최초의 방언 어휘를 조사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의 책 방언에서는 당대 고조선과 북방민족 언어에 관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어 관련 연구에서도 중요성이 크다.
참고로 촉왕본기도 썼지만 유실 되었다.
1. 개요[편집]
揚雄
전한 말기의 학자이며 문인. 자는 자운(子雲). 생몰년도는 BC 53 ~ AD 18.
2. 생애[편집]
익주 사천성 성도현 출신으로, 전한 성제(成帝) 때 궁정 문인이 되어 성제의 여행을 수행하며 《감천부(甘泉賦)》,《하동부(河東賦)》 등의 문장을 지었다. 역경과 노자의 이론에 바탕을 둔 철학서 《태현경(太玄經)》을 저술했다.
왕망이 정권을 찬탈한 후에 그에게 협조하여 새 정권을 찬미하는 《극진미신(劇秦美新)》 등의 문장을 지으며 어용문인 노릇을 했고, 이 때문에 후대에 변절자로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말년에는 유흠의 난에 연루돼 체포당할 위기에 처해지자 투신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왕망에게 다시 신임을 받아 대부 직책에 있다가 조용히 삶을 마쳤다고 한다.[1]송대에 이르러 정호·정이 형제와 주자 등 주로 성리학 진영의 공격을 받았다.
저서로는 태현경, 법언, 방언 등이 있다.전한(前漢) 신나라 시기의 언어학 서적인 『방언(方言)』은 양웅이 27년간 수행한 학술 답사 결과를 채록한 저서이며, 세계 언어학 역사상 최초의 방언 어휘를 조사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의 책 방언에서는 당대 고조선과 북방민족 언어에 관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어 관련 연구에서도 중요성이 크다.
참고로 촉왕본기도 썼지만 유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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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흠은 광무제 유수의 아버지 유흠과는 다른 사람이며 광무제 항목에도 나오는 국사공 유수와 같은 사람이다. 전한 말기 사상가로 유명한 유향의 아들로 스스로 천자가 될 꿈을 품고 훗날 이름을 수로 고쳤으며 왕망을 암살을 꾀했으나 실패하고 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