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제(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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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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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제12대 황제
효성황제 | 孝成皇帝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mperor_Cheng_of_Han%2C_Northern_Wei_painted_screen.jpg

남북조시대에 그려진 통종의 어진
출생
기원전 51년
전한 장안 미앙궁
(現 산시성 시안시)
즉위
기원전 33년 8월 4일
전한 장안 미앙궁
(現 산시성 시안시)
사망
기원전 7년 4월 17일 (향년 44세)
전한 장안 미앙궁
(現 산시성 시안시)
능묘
연릉(延陵)
재위기간
전한의 황태자
기원전 47년 6월 12일
~ 기원전 33년 7월 8일
(14년 26일)
제12대 황제
기원전 33년 8월 4일
~ 기원전 7년 4월 17일
(25년 25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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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유(劉)

오(驁)
부모
부황 고종 효원황제
모후 효원황후
형제자매
3남 3녀 중 장남
배우자
폐후 허씨
효성황후 조씨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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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조씨(昭儀 趙氏)
미인 왕씨(美人 王氏)
첩여 위씨(婕妤 衛氏)
첩여 반씨(婕妤 班氏)
미인 허씨(美人 許氏)
궁인 조씨(宮人 曹氏)

자녀
없음 (4남 1녀) [1]
묘호
통종(統宗)[취소]
시호
효성황제(孝成皇帝)
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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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함도에 실린 통종 어진

1. 소개
2. 생애
3. 여담
4. 둘러보기



1. 소개[편집]


전한의 12대 황제. 묘호는 통종(統宗)이었으나 후한 때 폐지했다. 시호는 효성황제(孝成皇帝). 원제효원황후 왕씨 사이에서 태어난 적장남.


2. 생애[편집]


원제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으니 황후 왕정군이 낳은 태자 유오, 후궁 부씨가 낳은 둘째 정도왕 유강, 후궁 풍씨가 낳은 셋째 유흥이었다. 태자 유오는 자라면서 주색을 즐긴데 비해 유강은 총명하고 부지런한데다 원제처럼 음악을 좋아하고 악기를 잘 다루었다. BC.35년 병석에 누운 원제는 태자를 유강으로 교체하려 했으나 태자궁을 관리하는 사단이 목숨을 걸고 개입해 포기했다. 사단은 원제의 증조모인 양제 사씨의 친척으로 원제를 존경했다.

태자 유오가 즉위하니 그의 시호는 효성황제이다. 성제의 생모 왕정군은 왕금의 딸인데, 왕금에게는 8남4녀가 있었다. 장녀는 왕군협, 차녀는 왕정군, 셋째 딸은 왕군력, 넷째 딸은 왕군제였다. 8남은 왕봉, 왕만(왕망의 부친), 왕담, 왕숭, 왕상, 왕립, 왕근, 왕봉시였다. 이들은 왕정군에게는 모두 아우였는데 이 가운데 왕봉과 왕숭은 왕정군과 어머니가 같았다. 성제가 즉위하자 외척인 왕씨 일족이 권력을 잡아서 횡포를 부리자 황권은 무력해져갔다. 즉위 초에 첫째 외숙부인 함평후(咸平侯) 왕봉(王鳳)을 대사마 겸 대장군으로 삼았고, 이어서 다른 외숙부들인 왕담(王譚), 왕상(王商), 왕립(王立), 왕근(王根), 왕봉시(王逢時)를 제후로 삼았다. 이들을 제후로 삼을때 날씨가 요동치고 황색 안개가 끼어 불길한 징조를 나타냈다고 한다.

왕봉의 뒤를 이어 왕상과 왕근이 대권을 잡았는데, 이들 왕씨 일족으로 고위직을 차지한 자가 25명이나 되었고, 그 외의 관직도 왕씨가 독점하여 닥치는대로 뇌물을 받아 조정 기강을 개판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왕봉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무엄하게도 황제의 거처인 궁정을 빌린 일이 있었다. 게다가 왕봉은 집을 붉은 색으로 칠하고 토산점대(土山漸臺)도 세웠다.[1]

이렇게 개판이 되니 상소가 빗발쳤는데 당대의 석학이자 종실인 유향은 왕씨의 득세가 한 황실에 위협이 될 것으로 보아 장문의 상주문을 성제에게 올렸으나 성제는 동의하면서도 어쩌할 도리가 없었다. 왕봉은 대사마, 대장군으로 11년간 재직하다 양삭 3년(BC.22)에 사망했다. 왕봉은 사촌인 어사대부 왕음으로 하여금 자신의 뒤를 잇게 하도록 유언을 남겼다. 이는 왕봉 자신의 아우들은 사치하고 방탕해 국정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왕음은 대사마.대장군 자리에 7년 동안 있다가 영시 2년(BC.15)에 사망했다. 이후 대사마.대장군 직위는 왕봉의 아우인 왕상과 왕근이 연이어 계승했다. 점점 제국은 쇠락의 길로 가고 있었다. 결국 야심가 왕망이 출현, 한 고조의 후손들을 등쳐먹고 찬탈을 하게 된다.

굳이 아름다운 일화를 꼽아본다면, 성제의 황태자 시절의 글 스승으로 있었던 장우(張禹)라는 사람이 왕씨 일파에게 아첨하고 간신 짓을 했는데, 이를 본 괴리현(槐裏縣)의 현감인 주운(朱雲)이라는 사람이 황제를 알현한 한 자리에서 '간신배를 처단하십시오' 라고 말했다. 성제가 '간신배가 누군데?' 라고 묻자 주운은 '네 스승 장우요' 라고 대답했다. 일개 고을 현감이 자기 스승을 욕한 것에 빡친 성제는 노발대발해서 '저 놈의 목을 베어라' 라고 소리쳤다. 주운이 질질 끌려나가다가 난간을 잡고 부러지도록 버티면서 '전 걸왕(桀王)이나 주왕(紂王)에게 죽은 충신들처럼 죽을 수 있지만, 앞으로 우리 폐하는 재난이 끊이지 않을 겁니다' 라고 소리쳤다. 이에 좌장군으로 있던 신경기(辛慶忌)가 '저 놈 입은 험해도 강직하거든요. 용서하세요' 라고 빌어 주운은 목숨은 건졌다. 얼마 후 난간을 수리하고자 했는데 성제가 그만두라고 했다. 이유인즉슨 '그거 그대로 남겨두어서 주운이 직언한 사실을 기리는 징표로 삼으리라.'

이 사실만 보면 나름 개념군주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개념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의 차이. 직언을 끝까지 듣기는 들었지만 막상 실행한 적은 거의 없다. 즉, 폭군 소리 듣기 싫어서 신하의 간언은 다 들었지만 막상 행하지는 않은 것. 왕씨 일가에 대한 상소만도 산처럼 쌓일 지경이었지만, 상소를 거부하지는 않고 받기는 다 받았는데 무시한 셈. 그야말로 의지박약의 결정체적 군주로 위에 앉은 사람은 아랫사람 말을 잘 듣기해선 안 된다 라는걸 몸소 보여주는(…) 반면교사격 인물.

왕씨도 왕씨였지만 성제 본인도 행실에 꽤 문제가 있어서 취미가 사복 차림으로 밖으로 몰래 나가 닭싸움과 경마로 내기하기였다고 한다. 게다가 부평후(富平侯) 장방(張放)이라고 성제의 동성애 대상이었던 신하가 있었는데, 성제는 밖에 나돌아다니다가 누가 신분을 물으면 '나 장방님 하인이에요, 헤헤' 라고 대답했다.

사실 중국에서 성제가 유명한 이유는 본인보다는 2번째 황후인 효성황후(孝成皇后) 조비연(趙飛燕)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사복 차림으로 누이 양아공주(陽阿公主)의 집에 갔다가 춤추고 노래하던 조비연을 보았는데, 한눈에 홀딱 반해서 후궁으로 삼아 매우 총애했다. 조비연의 원래 이름은 조의주(趙宜主)였으나 워낙 몸이 깃털처럼 가볍고 날아다니는 것처럼 춤을 춰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얼마나 몸이 가벼웠느냐면 성제와 같이 뱃놀이를 즐기다가 배가 흔들렸는데, 춤을 추던 조비연이 빠지려 하자 성제가 팔을 뻗어 조비연의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춤을 멈추지 않고 성제의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었단다.

조비연은 성제의 본처인 황후 허씨[2]를 '성제를 저주한다'는 명목으로 참소했다. 성제는 허 황후를 폐한 뒤에 칙령을 내려 자결하게 했고 조비연을 새 황후로 삼았다. 그런데 이후 그녀는 성제의 아이를 낳은 후궁 및 그 소생들을 떼몰살시킴으로서 당대에 적지 않은 악명을 얻었다.[3]

게다가 조비연에게는 합덕(合德)이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성제는 합덕도 총애하여 후궁으로 삼았다. 기록으로는 합덕은 조비연을 능가하는 미모의 소유자로서, 조비연이 차츰 나이를 먹어가자 '이러다 나 소박맞으면 안 되니까 동생을 끌어들여서 황제에게 주면 동생 봐서라도 나 내치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에 조비연이 합덕을 추천했다고 한다.[4] 결국 성제는 합덕의 침실에서 옷을 갈아입다 쓰러져 붕어하게 된다.[5] 평소 건강하고 질병도 없었으므로 그의 죽음을 놓고 말이 많았다. 조합덕이 준 미약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애제 때에 조비연을 탄핵하는 여론이 있었으나 '태후(조비연)가 성제의 서자들을 죽인 것은 바로 어지신 폐하(애제)를 제위에 모시기 위해서였다'는 애널써킹을 애제가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여전히 권세를 누릴 수 있었다. 그녀는 결국 평제 때 탄핵되어 서인으로 강등당하고, 빈곤하게 살다가 자살했다. 동생 조합덕은 애제 시절에 행해진 탄핵 때 미리 겁먹고 자결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외척 왕씨를 대거 등용함으로서 전한 멸망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으로는 어느 정도 알려진 황제라고 할 수 있다. 자식이 없어서 이복동생 정도왕 유강의 아들이자 조카 유흔이 뒤를 이어 애제가 되었다. 정확히는 후궁들이 아들을 몇 번 낳았는데 요절하거나 자식을 못낳던 조비연 자매에 의해 살해되어 성제의 뒤를 잇지 못한 것이다.


3. 여담[편집]


조비연과 관련된 고사성어로 연수환비(燕瘦環肥)와 연탁황손(燕啄皇孫)이 있다. '연수환비'는 조비연은 말랐으나 미인이었고, 양귀비(양옥환)는 뚱뚱해도 미인이었다는 말에서 나왔고, '연탁황손'은 조비연은 성제가 다른 후궁들에게서 황자를 볼 때마다 황자들을 살해한 고사에서 나왔다.

KBS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드라마)> 26회에서 하륜이 민씨 가문을 치기 위해 이숙번, 조영무 등과 이야기하던 중 오후와 함께 잠시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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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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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처에 붉은 색을 칠하거나, 누대를 세우는 것은 황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대놓고 맞먹은 셈.[2] 선제의 아내인 공애황후 허씨의 조카. 그러니까 성제의 아버지인 원제랑 같은 항렬이다.[3] 이유는 조비연이 황제의 친자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친자를 가진 후궁과 후궁 소생의 황제 친자들을 견제 목적으로 지워버린 걸로 보인다. 정작 그렇게 남의 아이를 치워버리던 조비연 본인도 황제의 친자를 갖는데는 끝끝내 실패했으며 이는 그녀보다도 더 총애받았다던 동생 조합덕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조비연은 어떻게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인임을 어필하기 위해 다른 남자들과도 자보고, 아이를 매수하는 짓을 하기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한다. 인과응보?[4] 《비연외전》이란 책에 따르면 조합덕은 발이 굉장히 예뻤다고 하는데 다 죽어가면서 골골거리던 성제가 이 조합덕의 발을 만지기만 해도 힘이 불끈불끈 솟았다고 한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조합덕은 일부러 성제의 애간장을 태우려고 발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5] 고대의 두루뭉술 표현이라는 것을 유념하자. 복상사를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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