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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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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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 초대 패왕
항적 | 項籍

파일:서초패왕 초상.jpg
출생
BC 232년
(楚) 팽성(彭城) 하상(下相)
(現 강소성 숙천현(宿遷縣) 서남)
사망
BC 202년 12월 (향년 30세)
서초(後楚) 오강(烏江)
(現 안후이성 쑤저우 시)
능묘
서초패왕묘(西楚霸王墓)
재위
서초의 패왕
BC 206년 2월 ~ BC 202년 12월
(4년 10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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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項)

적(籍)

우(羽)
신장
184cm[1]
묘호
없음
시호
없음
왕호
서초패왕(西楚霸王)
국적
초(楚) → 진(秦) → 후초(後楚)
가족
조부 항연, 숙부 항량, 항백
연인
우희


1. 개요
4. 여담
5. 대중매체에서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계보)



1. 개요[편집]


글이라는 것은 본래 자기 성과 이름을 쓸 줄 알면 족할 뿐입니다. 검술 역시 한 사람과 싸워 지지 않을 정도면 충분합니다. 둘 다 배우기는 충분치 못하니, 만인(萬人)을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학문을 배우겠습니다.

사기(史記)》항우본기(項羽本紀)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는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고대 중국 진나라 말기의 군인이자 초한전쟁 당시 서초(西楚)의 패왕이었다. 성은 항(項), 이름은 적(籍)으로 우(羽)는 자(字)다. 다만 본명보다는 자로 더 널리 알려져 있어 항우(項羽)로 주로 불린다.

초나라 부흥 운동의 선봉장으로서 임하는 모든 전투에서 백전백승의 위업을 달성했으며, 초(楚)나라패왕을 자칭하며 (漢)의 유방(劉邦)과 천하의 패권을 두고 자웅을 다투었다.


2. 생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항우/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평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항우/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여담[편집]


  • 패자라고는 해도 짧고 굵게 살다 간다는 남자의 로망을 체현한 인물이라 그런지 후세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높다.
역사의 박한 평가와는 다르게도 그의 일대기는 너무나도 드라마틱하며, 또한 개인적인 면모에서 비롯되는 일화도 많이 남겼기에 중국 본토에서는 역사적 평론과 관계 없이 크게 흠모받는 인물이다. 중국인들이 한을 고대 중화의 집대성으로 보면서도 한과 대립한 항우를 한 축으로 삼은 초한지라는 소설까지 나왔다는 걸 생각해 보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든 사례로도 꼽힌다.

  • 다만 항우와 같이 패자(敗者)가 오히려 대중으로 널리 사랑을 받으며 주인공 대접을 받는 일이 그리 드문 것은 아니다. 애초에 "성즉군왕 패즉역적"이라거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말들 자체가 "공식적인 역사 기록은 승자의 입장과 관점에서, 그를 정통으로 보고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이지 "패자의 이야기는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잊혀진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저러한 말들이 자주 나오는 상황이야말로 패자를 위한 변명이 필요한 상황, 말하자면 "역사란 결국 승자가 남긴 기록인데, 승자는 더 올바르고 뛰어난 인물이었고 패자는 더 못되고 어리석은 인물이었다는 기록을 곧이곧대로 믿기만 할 수 있느냐?"와 같은 의문을 제기하려는 상황들인 것이다. 게다가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원하는 대중이 오히려 결국 패배한 약자 측에 이입하여 그를 응원하는 현상 역시 대단히 대중적인 것으로써, 영어로는 <언더독 효과>, 중국에서는 <어남부대(鱼腩部队)>, 일본에서는 <판관비희(判官贔屓)>라 하여 이런 현상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이 따로 만들어져 있을 정도. 즉, 드라마틱한 최후를 맞이한 패자가 진지한 역사 연구에서 박한 평을 받는 것과는 달리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서사에서 널리 사랑받는 현상은 세계적으로도 흔한 것이다. 다만 항우의 사례에서 특이점을 찾아본다면 그 자신이 남긴 행적과 그 행적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문학적으로 정리되는 과정을 통해 짧고 굵지만 화려한 행적을 남긴 나쁜 남자형 주인공최후에는 비극적으로 패배하는 이야기라는 하나의 서사 유형에서 거의 모범이 할 만큼 완벽한 전형으로 완성되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 사마천의《사기》에서는 한 고조 유방에게 패배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제후를 다루는 세가나 신하와 반역자를 다루는 열전 대신 천자의 기록을 수록하는 본기에 항우의 전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를 보면 사기는 천자와 제후를 나누는 데 명분보다 실제 세력과 영향력을 중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기에서 유방 다음에 나오는 것도 명분상 천자가 아니라 태후로서 실제로 천하를 호령한 여후다.

  • 그의 이름은 항적이지만 자인 항우로 훨씬 널리 알려져 있다. 조자룡, 제갈공명과 비슷한 케이스지만, 이름이 조운, 제갈량이란 건 대부분 알고 있는 것에 반해, 이쪽은 대부분이 항우가 이름이 아니란 걸 모르는 경우가 많다.

  • 당나라의 시인 두목(杜牧)은 항우가 죽은 오강에 와서 그를 기리는 시를 짓기도 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바로 권토중래.
勝敗兵家不可期(승 패 병 가 불 가 기 병가의 승패는 기약할 수 없으니
包羞忍恥是男兒(포 수 인 치 시 남 아 부끄러움을 참는 것도 사내의 일이다.
江東子弟多才俊(강 동 자 제 다 재 준 강동의 자제 중에는 뛰어난 인재가 많았으니
捲土重來未可知(권 토 중 래 미 가 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돌아왔다면 결과는 알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여기에 송나라의 정치가 왕안석은 백성들을 아끼는 민중사관의 입장에서 반박하는 답시를 남겼다. 강동의 민중을 전쟁에 끌어가 희생시킨 항우, 그리고 그런 학살자와 그가 일으킨 전쟁에 로망을 느끼는 시인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민생을 위한 개혁안을 평생 추구한 왕안석다운 관점이 느껴지는 시.
百戰疲勞壯士哀(백 전 피 로 장 사 애 수없이 싸워 피로함에 장사들의 사기는 떨어졌고
中原一敗勢難回(중 원 일 패 세 난 회 중원에서 크게 패하니 대세를 이미 돌이키기 어렵게 되었네
江東子弟今雖在(강 동 자 제 금 수 재 강동의 자제들이 지금 남아있다 하더라도
肯與君王捲土來(긍 여 군 왕 권 토 래 과연 군왕과 더불어 흙먼지를 일으키며 올 성 싶은가?

  • 패왕이라는 칭호는 항우가 호칭이 필요하다고 부르자 장량"삼황오제, 춘추오패, 전국 9왕 같은 호칭들이 많으니 택일하십시오."라고 답하여 패와 왕을 섞어서 스스로 패왕이라 붙였다고 전한다. 이 때 범증은 춘추오패의 결말이 모두 좋지 못했다는 점과 왕 칭호의 격이 너무 낮다는 점을 들어 항우에게 다른 명칭을 권했으나 묵살당했다.[1] 그리고 범증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이 패왕이라는 호칭 때문에 '패'라는 글자의 의미도 어느 정도 변질이 되어서 무력적이고 강압적인 의미를 많이 띠게 되었다.[2]

  • 삼국지조조에게 데꿀멍하는 민담도 있다. 어느 날 조조가 항우에게 바위를 기어다니는 를 가리키며 "공께서는 힘이 산을 뽑을 정도로 강한데 이 이를 죽일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항우는 코웃음을 치며 다른 바위를 들어 이가 기어다니는 바위를 내리찍었는데 큼지막한 바위들 사이의 틈이 컸는지 이는 죽지 않고 여전히 바위 위를 기어다녔다. 이를 본 조조는 항우를 비웃으며 "천하 장사가 이만한 이도 못 잡는단 말인가!"라고 말한 후 손가락으로 이를 톡 터뜨려 죽여 버렸다. 이것을 본 항우가 기겁을 하여 조조에게 굽신댔다는 훈훈한 민담 한 토막. 실제 항우가 저 정도로 무식한 사람은 절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항우가 능력을 가지고도 그 힘을 엉뚱한 데다가 쓰기도 했던 역사적 행적을 생각하면, 이 민담은 항우와 조조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민담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같은 역적이라 지탄받은 항우는 나라를 세우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여 군담소설의 권선징악을 이루었는데 조조는 망하지 않고 나라를 세우고 천수를 누렸으니 권악징선이라 할 만하다. 또한 이러한 항우와 조조의 성격 차이가 똑같이 학살을 일삼고 충의보다는 패도의 길을 걸었음에도 현대 이전까지 항우와 조조의 평가를 극과 극으로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 종종 삼국지의 최강 무장이라 꼽히는 여포와 비교를 하는 경우도 보인다. 당장 네이버에 검색에도 "항우하고 여포하고 누가 더 쎔?"이라는 초딩같은 질문이 굉장히 많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최강 논쟁은 언제나 그렇듯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중국에서의 무력 비교는 거의 대부분 항우가 기준이다. 이 때문에 삼국지에서는 그 어린 나이에 인간 병기급 활약을 보인 손책항우의 재래[3]라며 그의 용맹을 있는 대로 추켜세우는 묘사도 존재한다. 애초에 여포가 삼국지 최강자라는 인식은 연의가 띄워준 것이 크다. 또한 당대에 곽가도 여포의 위력이 항우에 못 미친다고 평가하였다.[4] 중국의 용맹한 장수에 대한 묘사를 보면 거의 언제나 '그 모습과 무용이 능히 항우와 견줄 만했다'는 뜻을 가지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의 여포보다 '실제 역사 기록'의 항우가 훨씬 강하게 묘사된다. 팽성대전거록대전만 살펴보더라도 이게 인간인가 싶을 정도의 무용을 자랑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무력으로 한때나마 중국 전역을 제패한 패왕과 용맹하긴 했지만 일개 군벌 내지 제후를 벗어나지 못한 여포의 비교인데 성립할 여지가 없다. 물론 여포 역시 당대에 비할 인물이 없다는 평가를 받긴 하는데 얜 애초에 기마병 겸 활잡이가 본업이다. 항우 마냥 판타지의 영역인 장수가 아니라 살상력이 높은 기술에 능한 현실적인 장수에 가깝다. 현대에 과거 맹장에 대한 우위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긴 하지만, 적어도 중국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상상할 수 있는 최강의 장수자리에는 항우가 자리잡고 있다고 봐도 될 듯하다. 말 그대로 남자의 로망이 형상화되었다 볼 수 있는 것이 항우기 때문. 사실 삼국지내에서 항우랑 비교를 할꺼라면 으로 추존된 관우하고 비교를 하는게 더 말이된다. 당장에 관우는 삼국시대 이후로 오랜세월 중국에서 제후에서 왕으로 왕에서 황제로 추존되다가 마침내 신으로 격상됐는데 많은 중국인들이 무력최강이라는 단어앞에서는 관우가 아니라 항우의 손을 들어줄 정도다.

  • 항우 장사는 바로 이 항우에게서 비롯된 단어다.

  • 시각에 따라서 항우가 아니라 흉노묵돌을 최대의 적으로 여기기도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어느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다. 무력이나 카리스마는 항우가 월등히 뛰어났지만 유방, 항우, 묵돌의 직업은 군주이지 장수가 아니다. 항우가 군주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전투에서 승승장구했음에도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은 위에서 이미 강조된 바이다. 묵돌은 항우에 비해 문맹이었지만 지혜로움은 항우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뛰어났다. 반면에, 항우는 용맹했지만 감정적으로 행동하여 쓸데없는 살육을 많이 저지르고 자멸하였다. 묵돌과 항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여기서 작용한 것.
하지만, 묵돌이 상기한 것처럼 승승장구하며 중국을 위협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 중국 자체가 항우와 유방으로 나뉘어서 건곤일척의 혈전을 벌였던 것에 크게 기인한다. 만약 초한전쟁으로 인한 어마어마한 국력 소모가 없었더라면 결코 묵돌이 그렇게 활약했을 수가 없다. 당장 초한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진시황이 통치하던 시절, 진시황이 몽염을 보내어 흉노를 완전히 쓸어버렸다는 기록도 있다.[5]

  • 초한지를 쓴 이문열은 항우의 자살에 대해 "그가 태어나서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개인 일생이 후대 사람들까지 기억할 정도로 흥미로운 점과 별개로, 항우의 정치적 능력을 생각하면 나름 납득이 되는 평가.

  • 생전의 업보 때문인지 죽어서도 말년이 곱지 못했는데 문화대혁명 때 항우의 묘와 우희의 묘가 파헤쳐지고 석사자만 남게 되었다. 다만, 실제로 항우와 우희의 유골이 묻혀져 있는 묘는 아니다.

  • 구정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중원을 상징하는 9개의 솥 구정은 하나하나가 5천근이 되기에 구정을 옯기려면 수백명의 장사가 동원되어야 했다. 이를 무시한 진나라 무왕은 신하들과 힘 자랑하다가 구정 1개에 깔려서 죽은 것에 비해 초패왕 항우는 당시 진나라에 있던 구정 8개를 양어깨로 들고 수만리 떨어진 팽성까지 들고 갔다고 한다.

  • 만인지적(萬人之敵)[6], 패왕(霸王),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가 모두 항우로부터 유래되었으며, 어마어마한 용력과[7] 전술지휘력은 고대사에서 적수가 없을 만큼 뛰어났다.

  • 특히나 몇천 명의 병사로 수십만 대군을 패주시키거나, 단신으로 기병 수백여 명을 썰어버리는 등 기록만 보면 현실의 기록이 아니라 무협지의 묘사인 걸로 착각할 지경이다. 이 기록은 그의 초기의 대표적 전투인 거록대전, 그리고 화룡점정은 바로 팽성대전인데, 고작 3만의 군사로 60만 대군과 정면으로 맞붙어 초토화시키고 별다른 피해조차 없이 적군 30만 명을 일방적으로 살육한 경우는 세계 전쟁사를 통틀어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게 이 팽성의 전투는 오늘날까지 전설로 전해지는 항우의 괴력과 군사적 능력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전투가 된다. 이러한 기록들은 고대의 사료라는 시대적 한계가 있으나 춘추 필법#이라는 고대에 보기 드문 사실만을 쓰겠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신뢰성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8]

  • 천부적인 군사적 능력을 바탕으로 항우는 거병 후, 고작 2년만에 중국을 제패하고 패왕으로 군림한다. 이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도 찾아볼 수 없는 대기록으로, 사마천은 황제의 일을 기록하는 본기(本紀)에 항우의 행적을 적었으며, 다른 모든 제후를 무릎 꿇리고 홍문연에서 라이벌인 한고조를 그냥 죽일 수 있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천부적인 군사적 능력을 가지고 있던 것의 반대급부로 군주로서의 능력은 바닥이었다. 그 결과, 온갖 실책을 반복한 끝에 한고조에게 판세의 주도권을 완전히 잃고 압도적 열세에 처하게 되었다. 항우는 일생을 통틀어 해하 전투를 제외하면 지휘관으로서 전장에서 패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며, 그 해하에서도 자신의 3배가 훨씬 넘는 규모의 적을 상대로 초반에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결국 패하고 최후를 맞이했다.

  • 몰락한 귀공자 출신으로 자신의 무용과 카리스마로 순식간에 천하를 석권하고, 정점에 올랐으나 자신의 과오로 몰락하는 그 드라마틱한 생애, 우미인과의 짧은 로맨스와 역사를 통틀어 비교 대상이 없는 용맹, 귀족적인 인자한 모습과 광포한 학살자의 면모가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하는 인격 등. 정치인이나 군인으로서의 시시비비나 도덕적 선악을 따지기 이전에, 그 생애와 성격 자체가 중국사 전체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강렬한 개성과 포스를 갖추고 있어 후대에 초한지(서한연의), 패왕별희 등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생산하고 무수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 어떻게 보면 역사로부터 났으나 역사로부터 탈각되어 '이미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상징이 된 인물로, 중국사에서 포폄의 절대 기준이었던 유교 이데올로기마저 거슬러서 불후의 이채(異彩)를 발하는 중국 영웅열전 최대의 이단아이다. 충신, 명군, 의협, 군자도 아님에도 단지 무(武)와 카리스마만으로 그들과 나란히 중국을 대표하는 영웅호걸의 명단 최상단에 자리하고 있는 실로 이질적인 인물. 유교적으로는 충군도 애민도 갖다 버린 난신적자였고 정치적으로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폭군이었음에도 민중 문화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은 것은 물론 현대의 중국 지식인 중에서도 항우에게 긍정적인 인물이 상당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과 포스를 현재까지도 발휘하고 있다. 항우의 이런 인기는 정말 지극히 이례적인데 이는 걸출한 문장으로 항우의 삶을 재구성하고 응축해낸 사마천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천재성에 힘입은 바도 크다. 《사기》는 각 편과 인물 하나하나의 묘사가 핍진성이 있고 그 개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으로 고평가받지만 《항우본기》는 사기 전편 안에서도 손꼽히는 명문이다. 《항우본기》 자체가 중국판 영웅 서사시라 해도 무방할 만큼, 어지간한 연의소설이나 무협소설을 능가하는 생동감을 자랑한다. 특히 해하 전투에서 해하가를 부르고 한군의 포위를 돌파하다 자결하기까지의 대목은 항우본기의 압권으로 사마천이라는 대문호의 필력이 폭발하는 지점이다. 사마천은 항우의 포악을 비판하고 그의 파멸을 그 자신의 탓이라 말하면서도 역사의 패배자인 그를 정통한 천하 종주의 계보인 본기(本紀) 안에 포함시켰고, 극단적인 암과 명을 겸비한 그 생애를 역사에 다시 그려넣어 그에게 불멸을 부여했다. 그렇게 불후의 저작을 통해 다시 태어난 항우는 중국을 넘어 동아시아 세계의 한 문화적 원형으로 오늘날까지도 남아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바탕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9]


5. 대중매체에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항우/기타 창작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관련 문서[편집]




7. 둘러보기(계보)[편집]


사기(史記)

[ 본기(本紀) ]

||<-2><tablewidth=100%><tablebgcolor=#3D414D><width=33%> 1권 「오제기(五帝紀)」 ||<-2><width=33%> 2권 「하본기(夏本紀)」 ||<-2><width=33%> 3권 「은본기(殷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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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권 「주본기(周本紀)」 ||<-2> 5권 「진본기(秦本紀)」 ||<-2> 6권 「진시황기(秦始皇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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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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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 진후 · 공백 · 진중
장공 · 양공 · 문공 · 헌공(憲公)
출자 · 무공 · 덕공 · 선공
성공 · 목공 · 강공 · 공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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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공(獻公) · 효공 · 혜문왕 · 무왕
소양왕 · 효문왕 · 장양왕 }}} ||<-2> 시황제 · 이세황제 · [[영자영|{{{#000,#e5e5e5 진왕 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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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7권 「항우기(項羽紀)」 ||<-2> 8권 「고조기(高祖紀)」 ||<-2> 9권 「여후기(呂后紀)」 ||
||<-2><rowbgcolor=#fff,#191919> 항우 ||<-2> 유방 ||<-2> 여치 ||
||<-2> 10권 「효문제기(孝文帝紀)」 ||<-2> 11권 「효경제기(孝景帝紀)」 ||<-2> 12권 「효무제기(孝武帝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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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width=1000> 보사기(補史記) 「삼황본기(三皇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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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권 ~ 22권은 表에 해당, 23권 ~ 30권은 書에 해당. 사기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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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가(世家) ]

||<-2><tablewidth=100%><tablebgcolor=#3D414D><width=33%> 31권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2><width=33%> 32권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 ||<-2><width=33%> 33권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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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4권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2> 35권 「관채세가(管蔡世家)」 ||<-2> 36권 「진기세가(陳杞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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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7권 「위강숙세가(衛康叔世家)」 ||<-2> 38권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2> 39권 「진세가(晉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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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성 위씨(姬姓 衛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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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성 자남씨(姬姓 子南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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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후 · 사군 · 희군 · 원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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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0권 「초세가(楚世家)」 ||<-2> 41권 「월왕구천세가(越王勾踐世家)」 ||<-2> 42권 「정세가(鄭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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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3권 「조세가(趙世家)」 ||<-2> 44권 「위세가(魏世家)」 ||<-2> 45권 「한세가(韓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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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분립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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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 · 성자 · 선자 · 장자 · 문자
경자 · 간자 · 양자 · 환자 · 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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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후 · 무후 · 경후 · 성후 · 숙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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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 · 구백 · 정백 · 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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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6권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家)」 ||<-2> 47권 「공자세가(孔子世家)」 ||<-2> 48권 「진섭세가(陳涉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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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성 전씨(嬀姓 田氏)

진완 · 전맹이 · 전맹장 · 전문자
전환자 · 전희자 · 전성자 · 전양자
전장자 · 전도자 · 태공 · 제후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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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왕 · 제왕 건}}} ||<-2> 공자 ||<-2> 진승 · [[오광(초한쟁패기)|{{{#black,#e5e5e5 오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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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6권 「외척세가(外戚世家)」 ||<-2> 50권 「초원왕세가(楚元王世家)」 ||<-2> 51권 「형연세가(荊燕世家)」 ||
||<-2><rowbgcolor=#fff,#191919> 박태후 · 두태후 · 왕태후 · 위황후 · 구익부인 ||<-2> 유교 · 유수 ||<-2> 유고 · 유택 ||
||<-2> 52권 「제도혜왕세가(齊悼惠王世家)」 ||<-2> 53권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 ||<-2> 54권 「조상국세가(曹相國世家)」 ||
||<-2><rowbgcolor=#fff,#191919> 유비(劉肥) ||<-2> 소하 ||<-2> 조참 ||
||<-2> 55권 「유후세가(留侯世家)」 ||<-2> 56권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2> 57권 「강후주발세가(絳侯周勃世家)」 ||
||<-2><rowbgcolor=#fff,#191919> 장량 ||<-2> 진평 · 왕릉 · 심이기 ||<-2> 주발 ||
||<-6><width=1000> 58권 「양효왕세가(梁孝王世家)」 ||
||<-6><bgcolor=#fff,#191919> 유무 ||
||<-6> 59권 「오종세가(五宗世家)」 ||
||<-6><bgcolor=#fff,#191919> 유덕 · 유알우 · 유영 · 유여 · 유비(劉非) · 유단(劉端) · 유팽조 · 유승(劉勝) · 유발 · 유기 · 유월 · 유승(劉乘) · 유순 ||
||<-6> 60권 「삼왕세가(三王世家)」 ||
||<-6><bgcolor=#fff,#191919> 유굉 · 유단(劉旦) · 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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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1권 「백이전(伯夷傳)」
62권 「관안전(管晏傳)」
63권 「노자한비전(老子韓非傳)」
백이 · 숙제
관중 · 안영
노자 · 장자 · 신불해 · 한비
64권 「사마양저전(司馬穰苴傳)」
65권 「손자오기전(孫子吳起傳)」
66권 「오자서전(伍子胥傳)」
사마양저
손무 · 손빈 · 오기
오자서
67권 「중니제자전(仲尼弟子傳)」
안회 · 민손 · 염경 · 염옹 · 염구 · 중유 · 언언 · 복상 · 전손사 · 증삼 · 담대멸명 · 복부제 · 원헌 · 공야장 · 남궁괄 · 공석애 · 증점 · 안무요 · 상구 · 고시 · 칠조개 · 공백료 · 사마경 · 번수 · 자유 · 칠조개 · 공서적 · 양전 · 안행 · 염유 · 조휼 · 백건 · 공손룡
68권 「상군전(商君傳)」
69권 「소진전(蘇秦傳)」
70권 「장의전(張儀傳)」
상앙
소진
장의
71권 「저리자감무전(樗里子甘茂傳)」
72권 「양후전(穰侯傳)」
73권 「백기왕전전(白起王翦傳)」
저리질 · 감무
위염
백기 · 왕전
74권 「맹자순경전(孟子荀卿傳)」
75권 「맹상군전(孟嘗君傳)」
76권 「평원군우경전(平原君虞卿傳)」
맹가 · 순경
전문
조승 · 우경
77권 「위공자전(魏公子傳)」
78권 「춘신군전(春申君傳)」
79권 「범수채택전(范睢蔡澤傳)」
위무기
황헐
범수 · 채택
80권 「악의전(樂毅傳)」
81권 「염파인상여전(廉頗藺相如傳)」
82권 「전단전(田單傳)」
악의
염파 · 인상여
전단
83권 「노중련추양전(魯仲連鄒陽傳)」
84권 「굴원가생전(屈原賈生傳)」
85권 「여불위전(呂不韋傳)」
노중련 · 추양
굴원 · 가의
여불위
86권 「자객전(刺客傳)」
87권 「이사전(李斯傳)」
88권 「몽염전(蒙恬傳)」
조말 · 전저 · 예양 · 섭정 · 형가
이사
몽염
89권 「장이진여전(張耳陳餘傳)」
90권 「위표팽월전(魏豹彭越傳)」
91권 「경포전(鯨布傳)」
장이 · 진여
위표 · 팽월
영포
92권 「회음후전(淮陰侯傳)」
93권 「한신노관전(韓信盧綰傳)」
94권 「전담전(田儋傳)」
한신
한신 · 노관 · 진희
전담
95권 「번역등관전(樊酈滕灌傳)」
번쾌 · 역상 · 하후영 · 관영
96권 「장승상전(張丞相傳)」
장창 · 주창 · 임오 · 왕릉 · 신도가 · 위현 · 병길 · 전문 · 황패 · 위현성 · 광형
97권 「역생육가전(酈生陸賈傳)」
98권 「부근굉사전(傅靳蒯成傳)」
99권 「유경숙손통전(劉敬叔孫通傳)」
역이기 · 육가 · 주건
부관 · 근흡 · 주설
유경 · 숙손통
100권 「계포난포전(季布欒布傳)」
101권 「원앙조조전(袁盎鼂錯傳)」
102권 「장석지풍당전(張釋之馮唐傳)」
계포 · 난포
원앙 · 조조
장석지 · 풍당
103권 「만석장숙전(萬石張叔傳)」
104권 「전숙전(田叔傳)」
105권 「편작창공전(扁鵲倉公傳)」
석분 · 장숙
전숙
진월인 · 순우의
106권 「오왕비전(吳王濞傳)」
107권 「위기무안후전(魏其武安侯傳)」
108권 「한장유전(韓長孺傳)」
유비(劉濞)
두영 · 전분
한안국
109권 「이장군전(李將軍傳)」
이광
110권 「흉노전(匈奴傳)」
흉노
111권 「위장군표기전(衛將軍驃騎傳)」
112권 「평진후주부전(平津侯主父傳)」
위청 · 곽거병
공손홍 · 주보언
113권 「남월전(南越傳)」
114권 「동월전(東越傳)」
115권 「조선전(朝鮮傳)」
조타
추무제 · 추요
위만
116권 「서남이전(西南夷傳)」
야랑 · 전국 · 공도 · 백마국
117권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
사마상여
118권 「회남형산전(淮南衡山傳)」
119권 「순리전(循吏傳)」
120권 「급정전(汲鄭傳)」
유장 · 유안 · 유사
손숙오 · 자산 · 공의휴 · 석사 · 이리
급암 · 정당시
121권 「유림전(儒林傳)」
신공 · 원고생 · 한생 · 복생 · 동중서 · 호무생
122권 「혹리전(酷吏傳)」
질도 · 후봉 · 영성 · 주양유 · 조우 · 장탕 · 의종 · 왕온서 · 윤제 · 양복 · 감선 · 두주
123권 「대완전(大宛傳)」
대완 · 강거 · 오손 · 엄채 · 대월씨 · 대하 · 조지 · 안식국
124권 「유협전(遊俠傳)」
125권 「영행전(佞幸傳)」
곽해 · 주가 · 극맹 · 전중
등통 · 한언 · 이연년
126권 「골계전(滑稽傳)」
순우곤 · 우맹 · 우전 · 동방삭 · 서문표 · 동곽선생 · 왕선생 · 곽사인
127권 「일자전(日者傳)」
128권 「귀책전(龜策傳)」
129권 「화식전(貨殖傳)」
사마계주
점복
범려 · 자공 · 백규 · 의돈 · 정정 · 도한
130권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사마천



한서(漢書)

[ 본기(本紀) ]
1권 「고제기(高帝紀)」
2권 「혜제기(惠帝紀)」
3권 「고후기(高后紀)」
유방
유영
여치
4권 「문제기(文帝紀)」
5권 「경제기(景帝紀)」
6권 「무제기(武帝紀)」
유항
유계
유철
7권 「소제기(昭帝紀)」
8권 「선제기(宣帝紀)」
9권 「원제기(元帝紀)」
유불릉
유순
유석
10권 「성제기(成帝紀)」
11권 「애제기(哀帝紀)」
12권 「평제기(平帝紀)」
유오
유흔
유간
※ 13권 ~ 20권은 表에 해당. 21권~30권은 志에 해당. 한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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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 본기(本紀) ]
1권 「고제기(高帝紀)」
2권 「혜제기(惠帝紀)」
3권 「고후기(高后紀)」
유방
유영
여치
4권 「문제기(文帝紀)」
5권 「경제기(景帝紀)」
6권 「무제기(武帝紀)」
유항
유계
유철
7권 「소제기(昭帝紀)」
8권 「선제기(宣帝紀)」
9권 「원제기(元帝紀)」
유불릉
유순
유석
10권 「성제기(成帝紀)」
11권 「애제기(哀帝紀)」
12권 「평제기(平帝紀)」
유오
유흔
유간
※ 13권 ~ 20권은 表에 해당. 21권~30권은 志에 해당. 한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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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31권 「진승항적전(陳勝項籍傳)」
32권 「장이진여전(張耳陳餘傳)」
33권 「위표전담한왕신전(魏豹田儋韓王信傳)」
진승 · 항적
장이 · 진여
위표 · 전담 · 한신
34권 「한팽영노오전(韓彭英盧吳傳)」
35권 「형연오전(荊燕吳傳)」
36권 「초원왕전(楚元王傳)」
한신 · 팽월 · 경포 · 노관 · 오예
유고 · 유택 · 유비
초원왕
37권 「계포난포전숙전(季布欒布田叔傳)」
38권 「고오왕전(高五王傳)」
39권 「소하조참전(蕭何曹參傳)」
계포 · 난포 · 전숙
제왕 · 조왕 · 조왕 · 조왕 · 연왕
소하 · 조참
40권 「장진왕주전(張陳王周傳)」
41권 「번역등관부근주전(樊酈滕灌傅靳周傳)」
42권 「장주조임신도전(張周趙任申屠傳)」
장량 · 진평 · 왕릉 · 주발
번쾌 · 역상 · 하후영 · 관영
부관 · 근흡 · 주설
장창 · 주창 · 조요 · 임오 · 신도가
43권 「역육주유숙손전(酈陸朱劉叔孫傳)」
44권 「회남형산제북왕전(淮南衡山濟北王傳)」
45권 「괴오강식부전(蒯伍江息夫傳)」
역이기 · 육고 · 주건 · 유경 · 숙손통
유장 · 유사 · 유발
괴통 · 오피 · 강충 · 식부궁
46권 「만석위직주장전(萬石衞直周張傳)」
47권 「문삼왕전(文三王傳)」
48권 「가의전(賈誼傳)」
석분 · 위관 · 직불의 · 주인 · 장구
양왕 · 대왕 · 양왕
가의
49권 「원앙조조전(爰盎晁錯傳)」
50권 「장풍급정전(張馮汲鄭傳)」
51권 「가추매노전(賈鄒枚路傳)」
원앙 · 조조
장석지 · 풍당 · 급암 · 정당시
가산 · 추양 · 매승 · 노온서
52권 「두전관한전(竇田灌韓傳)」
53권 「경십삼왕전(景十三王傳)」
54권 「이광소건전(李廣蘇建傳)」
두영 · 전분 · 관부 · 한안국
임강민왕 · 하간왕 · 임강애왕 · 노왕 · 강도왕
우왕 · 조왕 · 중산정왕 · 장사왕 · 광천왕
교동왕 · 청하왕 · 상산왕
이광 · 소건
55권 「위청곽거병전(衛靑霍去病傳)」
56권 「동중서전(董仲舒傳)」
57권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
위청 · 곽거병
동중서
사마상여
58권 「공손홍복식예관전(公孫弘卜式兒寬傳)」
59권 「장탕전(張湯傳)」
60권 「두주전(杜周傳)」
공손홍 · 복식 · 예관
장탕
두주
61권 「장건이광리전(張騫李廣利傳)」
62권 「사마천전(司馬遷傳)」
63권 「무오자전(武五子傳)」
장건 · 이광리
사마천
여태자 · 제왕 · 연왕 · 광릉왕 · 창읍왕
64권 「엄주오구주보서엄종왕가전(嚴朱吾丘主父徐嚴終王賈傳)」
엄조 · 주매신 · 오구수왕 · 주보언 · 서악 · 엄안 · 종군 · 왕포 · 가연지
65권 「동방삭전(東方朔傳)」
66권 「공손유전왕양채진정전(公孫劉田王楊蔡陳鄭傳)」
동방삭
공손하 · 유굴리 · 전천추 · 왕흔 · 양창 · 채의 · 진만년 · 정홍
67권 「양호주매운전(楊胡朱梅云傳)」
68권 「곽광김일제전(霍光金日磾傳)」
69권 「조충국신경기전(趙充國辛慶忌傳)」
양왕손 · 호건 · 주운 · 매복 · 운창
곽광 · 김일제
조충국 · 신경기
70권 「부상정감진단전(傅常鄭甘陳段傳)」
71권 「준소우설평팽전(雋疏于薛平彭傳)」
부개자 · 상혜 · 정길 · 감연수 · 진탕 · 단회종
준불의 · 소광 · 우정국 · 설광덕 · 평당 · 팽선
72권 「왕공양공포전(王貢兩龔鮑傳)」
73권 「위현전(韋賢傳)」
74권 「위상병길전(魏相丙吉傳)」
왕길 · 공우 · 공승 · 공사 · 포선
위현
위상 · 병길
75권 「수양하후경익이전(眭兩夏侯京翼李傳)」
76권 「조윤한장양왕전(趙尹韓張兩王傳)」
수홍 · 하후시창 · 하후승 · 경방 · 익봉 · 이심
조광한 · 윤옹귀 · 한연수 · 장창 · 왕존 · 왕장
77권 「갑제갈유정손무장하전(蓋諸葛劉鄭孫毋將何傳)」
78권 「소망지전(蕭望之傳)」
갑관요 · 제갈풍 · 유보 · 정숭 · 손보 · 무장륭 · 하병
소망지
79권 「풍봉세전(馮奉世傳)」
80권 「선원육왕전(宣元六王傳)」
풍봉세
회양왕 · 초효왕 · 동평왕 · 중산왕 · 정도왕 · 중산왕
81권 「광장공마전(匡張孔馬傳)」
82권 「왕상사단부희전(王商史丹傅喜傳)」
83권 「설선주박전(薛宣朱博傳)」
광형 · 장우 · 공광 · 마궁
왕상 · 사단 · 부희
설선 · 주박
84권 「적방진전(翟方進傳)」
85권 「곡영두업전(谷永杜鄴傳)」
적방진
곡영 · 두업
86권 「하무왕가사단전(何武王嘉師丹傳)」
87권 「양웅전(揚雄傳)」
하무 · 왕가 · 사단
양웅
88권 「유림전(儒林傳)」
정관 · 시수 · 맹희 · 양구하 · 비직 · 복생 · 구양생 · 임존 · 주감 · 장산부 · 왕식 · 후창 · 호모생 · 엄팽조 · 안안락
89권 「순리전(循吏傳)」
90권 「혹리전(酷吏傳)」
문옹 · 오성 · 황패 · 주읍 · 공수 · 소신신
질도 · 영성 · 조우 · 의종 · 왕온서 · 윤제 · 양복 · 감선 · 전광명 · 전연년 · 엄연년 · 윤상
91권 「화식전(貨殖傳)」
92권 「유협전(游俠傳)」
백규 · 정정
주가 · 전중 · 극맹 · 곽해 · 우장 · 누호 · 진준 · 원섭
94권 「흉노전(匈奴傳)」
95권 「서남이양월조선전(西南夷兩粤朝鮮傳)」
흉노
· 남월 · 민월 · 동해국 · 조선
96권 「서역전(西域傳)」
선선국 · 저말국 · 소완국 · 정절국 · 융로국 · 서미국 · 거륵국 · 우전국 · 피산국 · 아타국 · 서야국 · 포리국 · 의내국 · 무뢰국 · 난두국 · 계빈국
아익산리국 · 대월지국 · 강거국 · 대완국 · 동저미국 · 도괴국 · 효순국 · 언독국 · 사거국 · 소륵국 · 울두국 · 오손국 · 고묵국 · 온숙국 · 구자국
울리국 · 위수국 · 언기국 · 아탐자리국 · 비륙국 · 비륙후국 · 욱립사국 · 선환국 · 포류국 · 포류후국 · 서저미국 · 동저미국 · 겁국 · 호호국 · 산국
차사전국 · 차사후국 · 차사도위국 · 차사후성장국
97권 「외척전(外戚傳)」
효혜황후 · 효문태후 · 두의방 · 효경황후 · 왕지 · 진아교 · 무사황후 · 효소태후 · 효소황후 · 사양제 · 왕부인 · 허평군 · 곽성군 · 효선황후 · 효성황후
반염 · 조비연 · 효원소의 · 정도정희 · 효애황후 · 효원소의 · 중산위희 · 효평황후
98권 「원후전(元皇傳)」
99권 「왕망전(王莽傳)」
왕정군
왕망


[1] 장량 역시 이를 잘 알기에 교묘히 항우가 패왕이라는 칭호를 선택하도록 유도했다는 말도 있다.[2] 원래 '패'는 천자인 주나라 왕을 잘 섬긴 제후에게 주었던 칭호였다.[3] 소패왕, 즉 작은 패왕[4] 출처: http://rexhistoria.net/history_sam/2289[5] 하지만 흉노가 시황제에게 쳐발리던 시점에서 묵돌은 아직 즉위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동호에게 삥이나 뜯기던 약체였으며 그런 약체 정권을 강대국으로 부상시켰다는 점에서 오히려 묵돌의 대단함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6] 중국사 정사에서 공식 인증된 만인지적은 항우, 관우, 장비, 한세충 4명 뿐이다. 특히 관우의경우 중국사 최고의 인기인물이자 중국내에서 수천년에 걸쳐 제왕 혹은 신으로 추존되어올 정도로 만인의 우러럼을 받아온 인물인데 이정도로 관우빠인 중국인들조차 최강 혹은 무력을 논하면 항우의 손을 들어줄 정도로 항우가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7] 진무왕도 들지 못한 8개의 청동솥 구정을 한손으로 들었다고 한다. 기록에는 9개의 솥 하나하나의 무게 무려 5천근이니 항우는 한손으로 4만근이나 되는 솥을 한손으로 들정도로 힘이 셌다.[8] 실제로 사실만을 쓰겠다는 사상이 주류가 된 나라는 고대에 매우 드물었다. 물론 호왈백만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온 동네이니만큼 병력의 수 등이 뻥튀기되어 있을 확률은 염두에 둬야 하지만.[9] 라이벌인 유방 역시 《삼국지연의》의 유비, 《수호전》의 송강 등 인화(人和)형 영웅 캐릭터의 원형으로서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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