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발(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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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第六) 후제(侯第)
3위 선평후(宣平侯) 장오

4위 강후(絳侯) 주발

5위 무양후(舞陽侯) 번쾌
사기(史記)

[ 본기(本紀) ]

||<-2><tablewidth=100%><tablebgcolor=#3D414D><width=33%> 1권 「오제기(五帝紀)」 ||<-2><width=33%> 2권 「하본기(夏本紀)」 ||<-2><width=33%> 3권 「은본기(殷本紀)」 ||
||<-2><rowbgcolor=#fff,#191919> 공손헌원 · 전욱 · 제곡 · 방훈 · 중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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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권 「주본기(周本紀)」 ||<-2> 5권 「진본기(秦本紀)」 ||<-2> 6권 「진시황기(秦始皇紀)」 ||
||<-2><rowbgcolor=#fff,#19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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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나라
^^
비자 · 진후 · 공백 · 진중
장공 · 양공 · 문공 · 헌공(憲公)
출자 · 무공 · 덕공 · 선공
성공 · 목공 · 강공 · 공공
환공 · 경공 · 애공 · 혜공
도공 · 여공공 · 조공 · 회공
영공 · 간공 · 후혜공 · 출공
헌공(獻公) · 효공 · 혜문왕 · 무왕
소양왕 · 효문왕 · 장양왕 }}} ||<-2> 시황제 · 이세황제 · [[영자영|{{{#000,#e5e5e5 진왕 자영
]] ||
||<-2> 7권 「항우기(項羽紀)」 ||<-2> 8권 「고조기(高祖紀)」 ||<-2> 9권 「여후기(呂后紀)」 ||
||<-2><rowbgcolor=#fff,#191919> 항우 ||<-2> 유방 ||<-2> 여치 ||
||<-2> 10권 「효문제기(孝文帝紀)」 ||<-2> 11권 「효경제기(孝景帝紀)」 ||<-2> 12권 「효무제기(孝武帝紀)」 ||
||<-2><rowbgcolor=#fff,#191919> 유항 ||<-2> 유계 ||<-2> 유철 ||
||<-6><width=1000> 보사기(補史記) 「삼황본기(三皇本紀)」 ||
||<-6><bgcolor=#fff,#191919> 복희 · 여와 · 신농 ||
※ 13권 ~ 22권은 表에 해당, 23권 ~ 30권은 書에 해당. 사기 문서 참고
}}}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 세가(世家) ]

||<-2><tablewidth=100%><tablebgcolor=#3D414D><width=33%> 31권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2><width=33%> 32권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 ||<-2><width=33%> 33권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 ||
||<-2><rowbgcolor=#fff,#19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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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4권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2> 35권 「관채세가(管蔡世家)」 ||<-2> 36권 「진기세가(陳杞世家)」 ||
||<-2><rowbgcolor=#fff,#19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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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7권 「위강숙세가(衛康叔世家)」 ||<-2> 38권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2> 39권 「진세가(晉世家)」 ||
||<-2><rowbgcolor=#fff,#19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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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성 위씨(姬姓 衛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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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 · 강백 · 고백 · 사백 · 첩백 · 정백
기백 · 경후 · 희후 · 공백 · 무공
장공 · 환공 · 주우 · 선공 · 혜공
검모 · 의공 · 대공 · 문공 · 성공(成公)
위군 하 · 목공 · 정공 · 헌공 · 상공
양공 · 영공 · 출공 · 후장공 · 반사
· 도공 · 경공 · 소공 · 희공
신공 · 성공(聲公) · 위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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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성 자남씨(姬姓 子南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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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후 · 사군 · 희군 · 원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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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0권 「초세가(楚世家)」 ||<-2> 41권 「월왕구천세가(越王勾踐世家)」 ||<-2> 42권 「정세가(鄭世家)」 ||
||<-2><rowbgcolor=#fff,#19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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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3권 「조세가(趙世家)」 ||<-2> 44권 「위세가(魏世家)」 ||<-2> 45권 「한세가(韓世家)」 ||
||<-2><rowbgcolor=#fff,#19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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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분립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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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 · 성자 · 선자 · 장자 · 문자
경자 · 간자 · 양자 · 환자 · 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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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분립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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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후 · 무후 · 경후 · 성후 · 숙후
무령왕 · 혜문왕 · 효성왕 · 도양왕 · 유목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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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라(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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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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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분립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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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필만 · 위망계 · 무자 · 도자
장자 · 헌자 · 간자 · 양자 · 환자
^^
삼진 분립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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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후 · 무후 · 혜왕 · 양왕
소왕 · 안희왕 · 경민왕 · 위왕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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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분립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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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 · 구백 · 정백 · 자여
헌자 · 선자 · 정자 · 간자
장자 · 강자 · 무자
^^
삼진 분립 후
^^
경후 · 열후 · 문후 · 애후
의후 · 소후 · 선혜왕 · 양왕
희왕 · 환혜왕 · 한왕 안
||
||<-2> 46권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家)」 ||<-2> 47권 「공자세가(孔子世家)」 ||<-2> 48권 「진섭세가(陳涉世家)」 ||
||<-2><rowbgcolor=#fff,#19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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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성 전씨(嬀姓 田氏)

진완 · 전맹이 · 전맹장 · 전문자
전환자 · 전희자 · 전성자 · 전양자
전장자 · 전도자 · 태공 · 제후섬
환공 · 위왕 · 선왕 · 민왕
양왕 · 제왕 건}}} ||<-2> 공자 ||<-2> 진승 · [[오광(초한쟁패기)|{{{#black,#e5e5e5 오광
]] ||
||<-2> 46권 「외척세가(外戚世家)」 ||<-2> 50권 「초원왕세가(楚元王世家)」 ||<-2> 51권 「형연세가(荊燕世家)」 ||
||<-2><rowbgcolor=#fff,#191919> 박태후 · 두태후 · 왕태후 · 위황후 · 구익부인 ||<-2> 유교 · 유수 ||<-2> 유고 · 유택 ||
||<-2> 52권 「제도혜왕세가(齊悼惠王世家)」 ||<-2> 53권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 ||<-2> 54권 「조상국세가(曹相國世家)」 ||
||<-2><rowbgcolor=#fff,#191919> 유비(劉肥) ||<-2> 소하 ||<-2> 조참 ||
||<-2> 55권 「유후세가(留侯世家)」 ||<-2> 56권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2> 57권 「강후주발세가(絳侯周勃世家)」 ||
||<-2><rowbgcolor=#fff,#191919> 장량 ||<-2> 진평 · 왕릉 · 심이기 ||<-2> 주발 ||
||<-6><width=1000> 58권 「양효왕세가(梁孝王世家)」 ||
||<-6><bgcolor=#fff,#191919> 유무 ||
||<-6> 59권 「오종세가(五宗世家)」 ||
||<-6><bgcolor=#fff,#191919> 유덕 · 유알우 · 유영 · 유여 · 유비(劉非) · 유단(劉端) · 유팽조 · 유승(劉勝) · 유발 · 유기 · 유월 · 유승(劉乘) · 유순 ||
||<-6> 60권 「삼왕세가(三王世家)」 ||
||<-6><bgcolor=#fff,#191919> 유굉 · 유단(劉旦) · 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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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1권 「백이전(伯夷傳)」
62권 「관안전(管晏傳)」
63권 「노자한비전(老子韓非傳)」
백이 · 숙제
관중 · 안영
노자 · 장자 · 신불해 · 한비
64권 「사마양저전(司馬穰苴傳)」
65권 「손자오기전(孫子吳起傳)」
66권 「오자서전(伍子胥傳)」
사마양저
손무 · 손빈 · 오기
오자서
67권 「중니제자전(仲尼弟子傳)」
안회 · 민손 · 염경 · 염옹 · 염구 · 중유 · 언언 · 복상 · 전손사 · 증삼 · 담대멸명 · 복부제 · 원헌 · 공야장 · 남궁괄 · 공석애 · 증점 · 안무요 · 상구 · 고시 · 칠조개 · 공백료 · 사마경 · 번수 · 자유 · 칠조개 · 공서적 · 양전 · 안행 · 염유 · 조휼 · 백건 · 공손룡
68권 「상군전(商君傳)」
69권 「소진전(蘇秦傳)」
70권 「장의전(張儀傳)」
상앙
소진
장의
71권 「저리자감무전(樗里子甘茂傳)」
72권 「양후전(穰侯傳)」
73권 「백기왕전전(白起王翦傳)」
저리질 · 감무
위염
백기 · 왕전
74권 「맹자순경전(孟子荀卿傳)」
75권 「맹상군전(孟嘗君傳)」
76권 「평원군우경전(平原君虞卿傳)」
맹가 · 순경
전문
조승 · 우경
77권 「위공자전(魏公子傳)」
78권 「춘신군전(春申君傳)」
79권 「범수채택전(范睢蔡澤傳)」
위무기
황헐
범수 · 채택
80권 「악의전(樂毅傳)」
81권 「염파인상여전(廉頗藺相如傳)」
82권 「전단전(田單傳)」
악의
염파 · 인상여
전단
83권 「노중련추양전(魯仲連鄒陽傳)」
84권 「굴원가생전(屈原賈生傳)」
85권 「여불위전(呂不韋傳)」
노중련 · 추양
굴원 · 가의
여불위
86권 「자객전(刺客傳)」
87권 「이사전(李斯傳)」
88권 「몽염전(蒙恬傳)」
조말 · 전저 · 예양 · 섭정 · 형가
이사
몽염
89권 「장이진여전(張耳陳餘傳)」
90권 「위표팽월전(魏豹彭越傳)」
91권 「경포전(鯨布傳)」
장이 · 진여
위표 · 팽월
영포
92권 「회음후전(淮陰侯傳)」
93권 「한신노관전(韓信盧綰傳)」
94권 「전담전(田儋傳)」
한신
한신 · 노관 · 진희
전담
95권 「번역등관전(樊酈滕灌傳)」
번쾌 · 역상 · 하후영 · 관영
96권 「장승상전(張丞相傳)」
장창 · 주창 · 임오 · 왕릉 · 신도가 · 위현 · 병길 · 전문 · 황패 · 위현성 · 광형
97권 「역생육가전(酈生陸賈傳)」
98권 「부근굉사전(傅靳蒯成傳)」
99권 「유경숙손통전(劉敬叔孫通傳)」
역이기 · 육가 · 주건
부관 · 근흡 · 주설
유경 · 숙손통
100권 「계포난포전(季布欒布傳)」
101권 「원앙조조전(袁盎鼂錯傳)」
102권 「장석지풍당전(張釋之馮唐傳)」
계포 · 난포
원앙 · 조조
장석지 · 풍당
103권 「만석장숙전(萬石張叔傳)」
104권 「전숙전(田叔傳)」
105권 「편작창공전(扁鵲倉公傳)」
석분 · 장숙
전숙
진월인 · 순우의
106권 「오왕비전(吳王濞傳)」
107권 「위기무안후전(魏其武安侯傳)」
108권 「한장유전(韓長孺傳)」
유비(劉濞)
두영 · 전분
한안국
109권 「이장군전(李將軍傳)」
이광
110권 「흉노전(匈奴傳)」
흉노
111권 「위장군표기전(衛將軍驃騎傳)」
112권 「평진후주부전(平津侯主父傳)」
위청 · 곽거병
공손홍 · 주보언
113권 「남월전(南越傳)」
114권 「동월전(東越傳)」
115권 「조선전(朝鮮傳)」
조타
추무제 · 추요
위만
116권 「서남이전(西南夷傳)」
야랑 · 전국 · 공도 · 백마국
117권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
사마상여
118권 「회남형산전(淮南衡山傳)」
119권 「순리전(循吏傳)」
120권 「급정전(汲鄭傳)」
유장 · 유안 · 유사
손숙오 · 자산 · 공의휴 · 석사 · 이리
급암 · 정당시
121권 「유림전(儒林傳)」
신공 · 원고생 · 한생 · 복생 · 동중서 · 호무생
122권 「혹리전(酷吏傳)」
질도 · 후봉 · 영성 · 주양유 · 조우 · 장탕 · 의종 · 왕온서 · 윤제 · 양복 · 감선 · 두주
123권 「대완전(大宛傳)」
대완 · 강거 · 오손 · 엄채 · 대월씨 · 대하 · 조지 · 안식국
124권 「유협전(遊俠傳)」
125권 「영행전(佞幸傳)」
곽해 · 주가 · 극맹 · 전중
등통 · 한언 · 이연년
126권 「골계전(滑稽傳)」
순우곤 · 우맹 · 우전 · 동방삭 · 서문표 · 동곽선생 · 왕선생 · 곽사인
127권 「일자전(日者傳)」
128권 「귀책전(龜策傳)」
129권 「화식전(貨殖傳)」
사마계주
점복
범려 · 자공 · 백규 · 의돈 · 정정 · 도한
130권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사마천


한서(漢書)

[ 본기(本紀) ]
1권 「고제기(高帝紀)」
2권 「혜제기(惠帝紀)」
3권 「고후기(高后紀)」
유방
유영
여치
4권 「문제기(文帝紀)」
5권 「경제기(景帝紀)」
6권 「무제기(武帝紀)」
유항
유계
유철
7권 「소제기(昭帝紀)」
8권 「선제기(宣帝紀)」
9권 「원제기(元帝紀)」
유불릉
유순
유석
10권 「성제기(成帝紀)」
11권 「애제기(哀帝紀)」
12권 「평제기(平帝紀)」
유오
유흔
유간
※ 13권 ~ 20권은 表에 해당. 21권~30권은 志에 해당. 한서 문서 참고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 본기(本紀) ]
1권 「고제기(高帝紀)」
2권 「혜제기(惠帝紀)」
3권 「고후기(高后紀)」
유방
유영
여치
4권 「문제기(文帝紀)」
5권 「경제기(景帝紀)」
6권 「무제기(武帝紀)」
유항
유계
유철
7권 「소제기(昭帝紀)」
8권 「선제기(宣帝紀)」
9권 「원제기(元帝紀)」
유불릉
유순
유석
10권 「성제기(成帝紀)」
11권 「애제기(哀帝紀)」
12권 「평제기(平帝紀)」
유오
유흔
유간
※ 13권 ~ 20권은 表에 해당. 21권~30권은 志에 해당. 한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31권 「진승항적전(陳勝項籍傳)」
32권 「장이진여전(張耳陳餘傳)」
33권 「위표전담한왕신전(魏豹田儋韓王信傳)」
진승 · 항적
장이 · 진여
위표 · 전담 · 한신
34권 「한팽영노오전(韓彭英盧吳傳)」
35권 「형연오전(荊燕吳傳)」
36권 「초원왕전(楚元王傳)」
한신 · 팽월 · 경포 · 노관 · 오예
유고 · 유택 · 유비
초원왕
37권 「계포난포전숙전(季布欒布田叔傳)」
38권 「고오왕전(高五王傳)」
39권 「소하조참전(蕭何曹參傳)」
계포 · 난포 · 전숙
제왕 · 조왕 · 조왕 · 조왕 · 연왕
소하 · 조참
40권 「장진왕주전(張陳王周傳)」
41권 「번역등관부근주전(樊酈滕灌傅靳周傳)」
42권 「장주조임신도전(張周趙任申屠傳)」
장량 · 진평 · 왕릉 · 주발
번쾌 · 역상 · 하후영 · 관영
부관 · 근흡 · 주설
장창 · 주창 · 조요 · 임오 · 신도가
43권 「역육주유숙손전(酈陸朱劉叔孫傳)」
44권 「회남형산제북왕전(淮南衡山濟北王傳)」
45권 「괴오강식부전(蒯伍江息夫傳)」
역이기 · 육고 · 주건 · 유경 · 숙손통
유장 · 유사 · 유발
괴통 · 오피 · 강충 · 식부궁
46권 「만석위직주장전(萬石衞直周張傳)」
47권 「문삼왕전(文三王傳)」
48권 「가의전(賈誼傳)」
석분 · 위관 · 직불의 · 주인 · 장구
양왕 · 대왕 · 양왕
가의
49권 「원앙조조전(爰盎晁錯傳)」
50권 「장풍급정전(張馮汲鄭傳)」
51권 「가추매노전(賈鄒枚路傳)」
원앙 · 조조
장석지 · 풍당 · 급암 · 정당시
가산 · 추양 · 매승 · 노온서
52권 「두전관한전(竇田灌韓傳)」
53권 「경십삼왕전(景十三王傳)」
54권 「이광소건전(李廣蘇建傳)」
두영 · 전분 · 관부 · 한안국
임강민왕 · 하간왕 · 임강애왕 · 노왕 · 강도왕
우왕 · 조왕 · 중산정왕 · 장사왕 · 광천왕
교동왕 · 청하왕 · 상산왕
이광 · 소건
55권 「위청곽거병전(衛靑霍去病傳)」
56권 「동중서전(董仲舒傳)」
57권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
위청 · 곽거병
동중서
사마상여
58권 「공손홍복식예관전(公孫弘卜式兒寬傳)」
59권 「장탕전(張湯傳)」
60권 「두주전(杜周傳)」
공손홍 · 복식 · 예관
장탕
두주
61권 「장건이광리전(張騫李廣利傳)」
62권 「사마천전(司馬遷傳)」
63권 「무오자전(武五子傳)」
장건 · 이광리
사마천
여태자 · 제왕 · 연왕 · 광릉왕 · 창읍왕
64권 「엄주오구주보서엄종왕가전(嚴朱吾丘主父徐嚴終王賈傳)」
엄조 · 주매신 · 오구수왕 · 주보언 · 서악 · 엄안 · 종군 · 왕포 · 가연지
65권 「동방삭전(東方朔傳)」
66권 「공손유전왕양채진정전(公孫劉田王楊蔡陳鄭傳)」
동방삭
공손하 · 유굴리 · 전천추 · 왕흔 · 양창 · 채의 · 진만년 · 정홍
67권 「양호주매운전(楊胡朱梅云傳)」
68권 「곽광김일제전(霍光金日磾傳)」
69권 「조충국신경기전(趙充國辛慶忌傳)」
양왕손 · 호건 · 주운 · 매복 · 운창
곽광 · 김일제
조충국 · 신경기
70권 「부상정감진단전(傅常鄭甘陳段傳)」
71권 「준소우설평팽전(雋疏于薛平彭傳)」
부개자 · 상혜 · 정길 · 감연수 · 진탕 · 단회종
준불의 · 소광 · 우정국 · 설광덕 · 평당 · 팽선
72권 「왕공양공포전(王貢兩龔鮑傳)」
73권 「위현전(韋賢傳)」
74권 「위상병길전(魏相丙吉傳)」
왕길 · 공우 · 공승 · 공사 · 포선
위현
위상 · 병길
75권 「수양하후경익이전(眭兩夏侯京翼李傳)」
76권 「조윤한장양왕전(趙尹韓張兩王傳)」
수홍 · 하후시창 · 하후승 · 경방 · 익봉 · 이심
조광한 · 윤옹귀 · 한연수 · 장창 · 왕존 · 왕장
77권 「갑제갈유정손무장하전(蓋諸葛劉鄭孫毋將何傳)」
78권 「소망지전(蕭望之傳)」
갑관요 · 제갈풍 · 유보 · 정숭 · 손보 · 무장륭 · 하병
소망지
79권 「풍봉세전(馮奉世傳)」
80권 「선원육왕전(宣元六王傳)」
풍봉세
회양왕 · 초효왕 · 동평왕 · 중산왕 · 정도왕 · 중산왕
81권 「광장공마전(匡張孔馬傳)」
82권 「왕상사단부희전(王商史丹傅喜傳)」
83권 「설선주박전(薛宣朱博傳)」
광형 · 장우 · 공광 · 마궁
왕상 · 사단 · 부희
설선 · 주박
84권 「적방진전(翟方進傳)」
85권 「곡영두업전(谷永杜鄴傳)」
적방진
곡영 · 두업
86권 「하무왕가사단전(何武王嘉師丹傳)」
87권 「양웅전(揚雄傳)」
하무 · 왕가 · 사단
양웅
88권 「유림전(儒林傳)」
정관 · 시수 · 맹희 · 양구하 · 비직 · 복생 · 구양생 · 임존 · 주감 · 장산부 · 왕식 · 후창 · 호모생 · 엄팽조 · 안안락
89권 「순리전(循吏傳)」
90권 「혹리전(酷吏傳)」
문옹 · 오성 · 황패 · 주읍 · 공수 · 소신신
질도 · 영성 · 조우 · 의종 · 왕온서 · 윤제 · 양복 · 감선 · 전광명 · 전연년 · 엄연년 · 윤상
91권 「화식전(貨殖傳)」
92권 「유협전(游俠傳)」
백규 · 정정
주가 · 전중 · 극맹 · 곽해 · 우장 · 누호 · 진준 · 원섭
94권 「흉노전(匈奴傳)」
95권 「서남이양월조선전(西南夷兩粤朝鮮傳)」
흉노
· 남월 · 민월 · 동해국 · 조선
96권 「서역전(西域傳)」
선선국 · 저말국 · 소완국 · 정절국 · 융로국 · 서미국 · 거륵국 · 우전국 · 피산국 · 아타국 · 서야국 · 포리국 · 의내국 · 무뢰국 · 난두국 · 계빈국
아익산리국 · 대월지국 · 강거국 · 대완국 · 동저미국 · 도괴국 · 효순국 · 언독국 · 사거국 · 소륵국 · 울두국 · 오손국 · 고묵국 · 온숙국 · 구자국
울리국 · 위수국 · 언기국 · 아탐자리국 · 비륙국 · 비륙후국 · 욱립사국 · 선환국 · 포류국 · 포류후국 · 서저미국 · 동저미국 · 겁국 · 호호국 · 산국
차사전국 · 차사후국 · 차사도위국 · 차사후성장국
97권 「외척전(外戚傳)」
효혜황후 · 효문태후 · 두의방 · 효경황후 · 왕지 · 진아교 · 무사황후 · 효소태후 · 효소황후 · 사양제 · 왕부인 · 허평군 · 곽성군 · 효선황후 · 효성황후
반염 · 조비연 · 효원소의 · 정도정희 · 효애황후 · 효원소의 · 중산위희 · 효평황후
98권 「원후전(元皇傳)」
99권 「왕망전(王莽傳)」
왕정군
왕망


생몰년도
? ~ 기원전 169년
이름
주발(周勃)
작위
강후(絳侯)
시호
무후(武侯)
고향
패군(沛郡)

1. 개요
2. 생애
2.1. 등용 전
2.2. 반(反)진 전쟁
2.4. 반란 평정
2.5. 말년
3. 평가
4. 관직
5. 미디어 믹스


1. 개요[편집]


중국 진나라 말기와 초한쟁패기, 전한 한고조 시대의 군인이자 정치가. 유방(劉邦)의 막료(幕僚)로 그의 천하통일에 공헌했다. 전한개국공신. 이후 여씨를 숙청하여 유씨 천하의 안정을 가져온 인물.


2. 생애[편집]



2.1. 등용 전[편집]


패 땅에서 살던 사람으로, 이곳은 현재의 강소성 지역인데 본래 선조는 현재 하남성 지역인 권(卷) 땅 출신이었지만 패로 집단 이주를 왔다고 한다. 누에를 치고 엮어 근근히 먹고 살면서, 남의 집 초상(初喪)이 나면 피리를 불어 위로했다. 힘이 장사였는지 강궁을 다루는 재관(材官)이라는 병사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딱히 특색은 없었던 사람으로, 사마천은 비루하고 소박한 사람이었고 재능은 범용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이다. 사실 유방의 창업공신 중 거병 이전에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 드물긴 하다.


2.2. 반(反)진 전쟁[편집]


이후 유방이 거병하자 중연(中涓)[1]의 신분으로 유방을 따라 다니며, 이후 유방이 치루는 여러 싸움에서 앞장 서서 싸웠다. 하읍(下邑)을 함락시킬 때는 가장 먼저 성벽 위에 올라가는 용맹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이 공으로 오대부(五大夫)의 작위를 받았다. 주발뿐만 아니라 주발이 다루는 병사들도 다른 군졸들보다 용맹했는지, 개봉(開封)을 공격할 때는 성벽 아래에 가장 빨리 당도한 병사들 중 주발의 병사들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후 유방은 주발을 양비령(양비현의 현령)[2]에 임명하고, 그 이후에도 유방을 따라 종군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장사(長社)를 점령할 때 역시 가장 먼저 성벽에 올라갔다고 한다.


2.3. 초한전쟁[편집]


홍문연의 일이 있은 후 유방이 한왕이 되었을 때는 위무후(威武侯)라는 작위를 받았다. 유방이 삼진을 평정하면서 나설 때는 괴리(槐里)와 호치(好畤)의 전투에서 가장 많은 공을 세웠고, 조분(趙賁)과 내사(內史) 보(保)를 공격할 때도 가장 큰 공을 세웠다. 북쪽으로 진공하여 칠(漆)을 공략하고 장평(章平)과 요앙(姚卬)의 군사를 무찔렀다. 시무와 함께 적진에 위장 항복해 수하로 들어간 후, 한신이 공격할 때 배신을 해서 승리를 가져왔다.

이후 서쪽의 견(汧)을 점령하고 곡역(曲逆)을 평정하면서 많은 공을 세웠는데, 항우가 사망하고 나서는 사수군(泗水郡)과 동해군(東海郡) 관하의 22개 현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다만 역시 한신과 같이 엄청난 공훈을 세운 조참보다는 초한전쟁 중 공은 밀리는 듯한 인상은 있다.[3]


2.4. 반란 평정[편집]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이후에도 주발은 계속 일선에 나서 전투를 지휘했다. 연왕 장도(臧荼)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는 유방의 군대에 종군하여 많은 공을 세웠고, 이로 인해 열후가 되어 8,180호의 식읍을 받고 강후(絳侯)라는 작위를 받게 되었다.

한왕 신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유방을 따라 종군하여 무천(武泉)에서 흉노의 기병을 물리치고, 동제(銅鞮)에서 한왕 신의 부대를 격파하며 반란군에게 함락되었던 진양성 등을 수복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한군이 흉노 묵돌선우의 유인책에 속아 평성(平城)[4] 동북쪽의 백등산(白登山)에서 큰 곤경을 당한 백등산 포위전에서도 장수들 중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다. 백등산 포위전 자체야 완전히 포위되어 간신히 빠져나온 전투긴 하지만. 이때의 공으로 태위가 되었다.

진희(陳豨)의 반란군을 물리칠 때도 진희의 장수 승마치(乘馬絺)를 죽이고, 마읍(馬邑)을 함락시키는 등[5] 승리를 거두는가 하면, 노관(盧綰)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활약을 했다. 초한전쟁보다는 이성 제후들이 일으킨 반란 진압에서 오히려 더 공을 세웠다.

이리하여 평생 동안 유방을 따라 전쟁터를 전전하며 상국 1명, 승상 2명, 장군과 2,000석의 고관 3명을 포로로 잡고 별도의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여 2개의 군대를 격파했으며, 3개의 성을 함락시켰고, 5개의 군에 속하는 79개의 현을 평정하면서 승상과 대장 각 1명을 포로로 잡았다고 한다.


2.5. 말년[편집]


한제국 일등 공신인 주발이었지만, 유방이 사망하고 여후의 시대가 오자 그도 몸 조심을 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왕릉은 주발과 진평(陳平)이 여후가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견제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육가는 진작부터 주발이 진평과 화해하고 조정의 여론을 모아 여후와 맞서기를 바랐으나 주발은 육가와 지나치게 스스럼 없었던 탓에 오히려 진지한 얘기가 잘 안통했다. 마침내 육가와 진평 쪽에서 주발을 초대해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오랜 앙숙이었던 두 사람은 손을 잡았다.

꾸준히 때를 기다린 주발 등은 결국 여후가 먼저 사망하자 손을 쓰기 시작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여후의 두 조카 양왕 겸 상국 여산과 조왕 겸 상장군 여록(呂祿)이 장안의 군사권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는데, 역상의 아들인 역기가 여록과 친하다는 점을 이용, 역상을 협박해서 역기를 통해 여록의 북군(수도 방위군)을 빼앗기로 했다. '봉지도 있는 사람이 언제까지 군사를 끌고 장안에 있을 셈이냐, 슬슬 돌아가야하지 않겠나?'라고 꼬드기자 여록이 솔깃했는데, 부로들에게 물어보니 의견 일치가 되지 않고, 여후의 여동생 여수 또한 네가 군권을 내려놓으면 우리는 다 죽는다고 화를 내어 여록이 처음과는 달리 망설이게 되었다. 여록과 함께 군사(남군, 황궁 수비군)를 가지고 있었던 상국 여산까지 낌새를 채려고 하자, 주발은 이판사판으로 북문을 맡고 있던 기통과 합세해 황명을 사칭하여 억지로 북군 지휘부로 들어간 뒤, 역기를 시켜 여록에게 "야, 황명 내려왔다. 북문으로 가는 주발에게 네 군사를 다 맡기라고 하더라."라고 뻥을 치게 시켰다. 그러자 여록은 친구인 역기와 황명이란 말을 믿고 결국 장군의 인장을 주발에게 넘기고 만다. 드디어 북군의 군사권을 장악한 주발은 병사들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여씨들을 따르겠다는 군사들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유씨들을 따르겠다는 군사들은 왼쪽 어깨를 드러내라!"

이에 모든 병사들이 왼쪽 어깨를 드러내자 마침내 여씨들을 척살하는 데 성공한다.[6]

조정을 장악한 주발과 진평은 유방의 아들인 대나라 왕 유영을 즉위시키기로 한다. 유영은 자신을 한나라 황제로 세우고자 한다는 서신을 읽고 주발과 진평이 왕위 계승 순위가 높은 자신을 제거하려는게 아닌가 의심했다. 많은 신하가 음모가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만 송창이라는 신하가 "예전에는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 하는 자가 만 명이었지만, 이제는 천하가 유씨에 의해 안정되었습니다. 주발이 유씨를 따를 자는 왼쪽 어깨를 걷으라 하니 병사들이 모두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또한 천하에 봉지를 받은 유씨가 많습니다. 왕을 황제로 세우고자 하는 것은 진심입니다."라고 하였다.

유영이 도성으로 와서 즉위하니 문제이다. 주발은 우승상의 자리에 임명되었고, 황금 5,000금과 식읍 10,000호를 얻었다.

하지만 문제에게는 주발과 진평보다는 자신의 사람들이 따로 있었다. 문제가 즉위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누군가 주발에게 충고했다.

"여씨들을 주살하고 천자를 추대한 장군의 위엄은 천하를 진동시켰습니다. 그리고 장군께서는 많은 상금과 식읍을 하사 받아 신분이 더할 수 없이 높아지고 황제의 총애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이 상태가 오래 간다면 화가 몸에 미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주발은 벼슬을 내려놓았는데 진평이 병으로 죽자 문제는 주발을 다시 조정으로 불러들였다.

원앙이 문제에게 "여씨의 핍박으로 유씨들이 전전긍긍할 때 태위였던 주발은 무엇을 했습니까? 여후가 죽은 다음에야 거사를 일으킨 주발은 공신일지언정 사직지신이 아닙니다."[7]라고 주발을 비판하였다. 문제는 주발에게 굽신거리던 자세를 바꾸고 엄한 태도를 견지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주발에게 넌지시 이런 말을 하였다. "옛날, 내가 열후들에게 조칙을 내려 봉국에 부임하라고 했소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부임하고 어떤 사람은 부임하지 않고 있소. 승상이 내 말을 중하게 생각한다면 그들에게 솔선수범을 보이시오."

주발은 다시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주발은 자신이 숙청당하지 않을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며 불안감 속에 살았다. 항상 갑옷을 입고 지내며 무장한 병사들을 거느리고서야 주위 사람들과 만났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주발이 모반을 일으키려 한다."라는 소문이 되었다. 문제는 주발을 조사하게 하였다. 고문을 받던 주발은 옥리에게 천 금을 뇌물로 주었다. 이에 옥리는 주발이 살 수 있는 방도를 넌지시 알려주었다.

당시 주발의 장남 주승지(周勝之)는 문제의 사위였다. 주발은 문제의 어머니 박태후의 동생 박소(薄昭)에게 많은 돈을 주었다. 박소는 박태후에게 "공주의 시아버지가 이런 꼴을 당하면 되냐"며 주발의 편을 들었다. 박태후는 문제가 문안 인사를 하러 찾아오자 두건을 내던지며 꾸짖었다.

"강후는 여씨의 난 때 황제의 옥새를 보관했고 북군의 군사들을 장악했음에도 모반을 꾀하지 않았는데, 어찌 지금 한 개 작은 현에 의지하여 반란을 꾀했겠소?"

이미 옥리와 주발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문제는 주발의 기가 완전히 꺾인 것을 보고 그를 손봐주는 일을 멈추었다.

가까스로 풀려난 주발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백만 대군을 지휘하던 장군이었던 내가 옥리 한 사람의 권세가 그렇게 대단한 줄 몰랐다."

이후 봉국으로 돌아가 사망했고, '무후'(武侯)라는 시호를 받았다. 자기 열전이 있는 공신들 중에서는 가장 나중에 죽었다. 참고로 아들 주아부도 비슷한 말로를 겪었다.


3. 평가[편집]


화통하고 단순한 인물이라 성품이 강직했다고 한다. 딱히 배운 것도 없어 문학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유세객들이나 선비들이 말을 좀 하려고 하면 "빨리 빨리 말하쇼!"라며 재촉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유방의 말년에 번쾌의 처분에서 유연한 대처를 보이거나,[8] 왕릉이 여씨의 전횡을 보다 못해 따지고 들다 쫓겨나는 셈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처했던 일과는 달리, 은근히 끈질긴 면이 있어서 여후의 권세가 극심할 때는 참고 있다가 이후에 여씨를 쫒아내는 일에 성공했다. 이런 점 때문인지 유방은 평소에 주발에게 일을 맡길 만하다고 여겼다. 실제 유방은 유언에서 "왕릉은 우직해서 진평으로 보좌하게 해야 하는데, 진평에게만 일을 맡기면 안된다. 주발은 배운 건 없지만 행동거지가 무겁고 믿음직하니 장차 유씨 왕조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예언에 가까운 말을 했고, 이는 완벽하게 실현되었다.

유방이 처음 진평을 등용할 당시, 관영(灌嬰)과 함께 가장 거세게 반대했던 인물이 주발이었다. "그 놈이 얼굴은 잘생겼지만 단지 관에 매다는 아름다운 옥구슬에 불과하여 그 심성은 비어있는 놈이다. 반복무상한 간신배에 불과한 작자다."라며 엄청나게 폭언을 퍼부었지만, 유방은 진평과 면담한 후 아랑곳하지 않고 진평을 썼다.

여씨를 평정할 때는 진평과 보조를 맞추었다.

문제가 즉위할 당시 문제가 주발에게 "온 나라를 통틀어 일 년 동안 옥사를 판결하는 소송은 몇 건이나 되는가."라고 질문하자 주발은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전국을 통틀어 일 년 동안 국가 재정으로 걷어들이고 지출하는 양식과 돈은 얼마나 되는가."라고 질문하자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부끄러워 땀을 뻘뻘 흘렸다.

진평은 같은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일을 맡아 하는 관리에게 물어보시면 될 것입니다. 폐하께서 옥사에 관한 일을 알고 싶으시면 정위(廷尉)를 불러 물으시고, 식량과 세금의 수입과 지출을 알고 싶으시면 치속내사(治粟內史)에게 물으십시오."

문제가 화를 내며 진평에게 "모든 일을 담당 관리가 맡아서 한다면 재상인 경은 무슨 일을 하는가?"라고 묻자 진평은 땅에 엎드리며 이렇게 대답했다.

"재상이란 직위는 위로는 천자를 보좌하고 음양을 다스려 사시를 순조롭게 하며, 아래로는 천지 만물의 생육을 제 때에 자라게 하고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와 제후들을 진무하며, 안으로는 백성들을 백성들로 하여금 황실에 의지할 수 있도록 어루만져 주고, 관리들을 감독하여 각기 자기의 맡은 바 임무를 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문제가 진평을 칭찬했다. 황제의 앞을 벗어나자 주발은 진평에게 "그런 대답을 알고 있었으면 왜 나를 돕지 않았소!"라며 따졌다. 진평은 웃으면서 "나보다 윗자리에 있으면서도 그것도 몰랐소."라고 답했다.[9] 그 말을 들은 주발은 딱히 대답할 말도 없어 진평이 자기보다 재주가 뛰어나다고 인정했다. 이후 주발이 벼슬을 그만두었기에 그때부터 승상은 하나로 통합되었다. 그 자리는 진평이 차지했다. 진평이 병으로 죽은 후 주발이 다시 불려왔다가 문제의 뜻으로 10개월 만에 다시 사직했다.

한문제를 추대한 당사자로 문제 즉위 이후 위세를 부렸을 법도 한데 일화를 보면 문제를 두려워했다. 사실 위세를 부릴 것이었으면 애초에 어린 황제를 세웠을 것이다. 원앙(袁盎)이 황제에게 문제를 제기한 다음부터는 완전히 잡혀 살았다.[10] 주발은 이 때문에 원앙을 꽤 미워했지만 주발이 가장 위급한 상황이었을 때 원앙이 도움을 주었다. 주발이 역모 혐의로 옥리에게 고문을 당할 당시 유일하게 주발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며 무죄를 주장한 사람이 바로 원앙이었다. 이후로는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가의(賈誼)가 개혁을 주장할 당시에는 "어린 놈이 뭘 아는 척을 하냐"는 식으로 욕을 퍼부어 가의가 개혁을 못하게 하기도 했다.

사마천은 이렇게 평론하였다.

「강후 주발은 처음 미천한 신분이었을 때 비루하고 소박한 사람이었고 재능은 범용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이윽고 고조를 따라 천하를 누비고 다니다가 장상의 자리에 오르고 다시 제려(諸呂)가 난을 일으키려고 하자 주발은 다시 한 번 나라를 바르게 세웠으니 비록 이윤(伊尹)이나 주공(周公)이라 한들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 사기, 강후주발세가(絳侯周勃世家)


4. 관직[편집]


탕군장>호비령>태휘>우승상>사퇴 후 우승상

5. 미디어 믹스[편집]


파일:주발0.png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 고대무장으로 등장한다. 병종은 궁기병. 성우는 이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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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참 역시 처음에 중연으로 유방을 따라 다녔다.[2] 호비령이 되었다고도 한다.[3] 사실 조참은 풍, 패 출신 인물들 중 전쟁터에서 가장 세운 공이 컸던 인물이다. 오죽했으면 공신 순위 1등으로 해야 한다고 신하들이 주청했을 정도다. 물론 고제는 소하를 밀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2등이 되었지만.[4] 현재 산서성 대동시(大同市)[5] 이때의 표현이 도(屠) 마읍이라, 마읍을 함락하고 학살이 일어난 듯 싶다.[6] 미처 손을 쓰지 못한 남군의 여산 쪽은 주허후(朱虛侯) 유장이 나서서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 여산을 군사를 몰고 가 기습하여 변소로 도망친 것을 기어이 찾아내서 죽여버렸다. 공신들은 당장은 유장을 칭찬했지만 정작 그의 형인 제 애왕 유양을 황제로 올리겠다고 한 약속은 뒤집었는데, 포악하기로 악명높았던 제 애왕의 외가 사씨가 여씨처럼 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토사구팽인 셈이다. 유장은 분을 이기지 못했는지 이후 겨우 몇 년만에 요절한다.[7] 문제부터 무제까지 이어지는 개국공신 탄압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8] 번쾌가 유방이 죽으면 여씨와 함께 군사를 일으킬 것이라는 모함에 진평과 주발을 시켜 번쾌를 현장에서 참수하도록 명했는데, 진평은 유방이 홧김에 한 말 같다면서 직접 죽이지 말고 유방에게 데려가 다시 확인을 받자고 했다. 주발도 이 말에 동의하여 번쾌가 죽지 않았다.[9] 당시 주발은 우승상으로 최고의 자리였고, 진평은 좌승상으로 두 번째 직위였다.[10] 그 이전부터 원앙의 형인 원쾌와 주발이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주발은 더 원앙에게 화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