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장(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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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사후

한서(漢書)

[ 본기(本紀) ]
1권 「고제기(高帝紀)」
2권 「혜제기(惠帝紀)」
3권 「고후기(高后紀)」
유방
유영
여치
4권 「문제기(文帝紀)」
5권 「경제기(景帝紀)」
6권 「무제기(武帝紀)」
유항
유계
유철
7권 「소제기(昭帝紀)」
8권 「선제기(宣帝紀)」
9권 「원제기(元帝紀)」
유불릉
유순
유석
10권 「성제기(成帝紀)」
11권 「애제기(哀帝紀)」
12권 「평제기(平帝紀)」
유오
유흔
유간
※ 13권 ~ 20권은 表에 해당. 21권~30권은 志에 해당. 한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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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기(本紀) ]
1권 「고제기(高帝紀)」
2권 「혜제기(惠帝紀)」
3권 「고후기(高后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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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31권 「진승항적전(陳勝項籍傳)」
32권 「장이진여전(張耳陳餘傳)」
33권 「위표전담한왕신전(魏豹田儋韓王信傳)」
진승 · 항적
장이 · 진여
위표 · 전담 · 한신
34권 「한팽영노오전(韓彭英盧吳傳)」
35권 「형연오전(荊燕吳傳)」
36권 「초원왕전(楚元王傳)」
한신 · 팽월 · 경포 · 노관 · 오예
유고 · 유택 · 유비
초원왕
37권 「계포난포전숙전(季布欒布田叔傳)」
38권 「고오왕전(高五王傳)」
39권 「소하조참전(蕭何曹參傳)」
계포 · 난포 · 전숙
제왕 · 조왕 · 조왕 · 조왕 · 연왕
소하 · 조참
40권 「장진왕주전(張陳王周傳)」
41권 「번역등관부근주전(樊酈滕灌傅靳周傳)」
42권 「장주조임신도전(張周趙任申屠傳)」
장량 · 진평 · 왕릉 · 주발
번쾌 · 역상 · 하후영 · 관영
부관 · 근흡 · 주설
장창 · 주창 · 조요 · 임오 · 신도가
43권 「역육주유숙손전(酈陸朱劉叔孫傳)」
44권 「회남형산제북왕전(淮南衡山濟北王傳)」
45권 「괴오강식부전(蒯伍江息夫傳)」
역이기 · 육고 · 주건 · 유경 · 숙손통
유장 · 유사 · 유발
괴통 · 오피 · 강충 · 식부궁
46권 「만석위직주장전(萬石衞直周張傳)」
47권 「문삼왕전(文三王傳)」
48권 「가의전(賈誼傳)」
석분 · 위관 · 직불의 · 주인 · 장구
양왕 · 대왕 · 양왕
가의
49권 「원앙조조전(爰盎晁錯傳)」
50권 「장풍급정전(張馮汲鄭傳)」
51권 「가추매노전(賈鄒枚路傳)」
원앙 · 조조
장석지 · 풍당 · 급암 · 정당시
가산 · 추양 · 매승 · 노온서
52권 「두전관한전(竇田灌韓傳)」
53권 「경십삼왕전(景十三王傳)」
54권 「이광소건전(李廣蘇建傳)」
두영 · 전분 · 관부 · 한안국
임강민왕 · 하간왕 · 임강애왕 · 노왕 · 강도왕
우왕 · 조왕 · 중산정왕 · 장사왕 · 광천왕
교동왕 · 청하왕 · 상산왕
이광 · 소건
55권 「위청곽거병전(衛靑霍去病傳)」
56권 「동중서전(董仲舒傳)」
57권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
위청 · 곽거병
동중서
사마상여
58권 「공손홍복식예관전(公孫弘卜式兒寬傳)」
59권 「장탕전(張湯傳)」
60권 「두주전(杜周傳)」
공손홍 · 복식 · 예관
장탕
두주
61권 「장건이광리전(張騫李廣利傳)」
62권 「사마천전(司馬遷傳)」
63권 「무오자전(武五子傳)」
장건 · 이광리
사마천
여태자 · 제왕 · 연왕 · 광릉왕 · 창읍왕
64권 「엄주오구주보서엄종왕가전(嚴朱吾丘主父徐嚴終王賈傳)」
엄조 · 주매신 · 오구수왕 · 주보언 · 서악 · 엄안 · 종군 · 왕포 · 가연지
65권 「동방삭전(東方朔傳)」
66권 「공손유전왕양채진정전(公孫劉田王楊蔡陳鄭傳)」
동방삭
공손하 · 유굴리 · 전천추 · 왕흔 · 양창 · 채의 · 진만년 · 정홍
67권 「양호주매운전(楊胡朱梅云傳)」
68권 「곽광김일제전(霍光金日磾傳)」
69권 「조충국신경기전(趙充國辛慶忌傳)」
양왕손 · 호건 · 주운 · 매복 · 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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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권 「부상정감진단전(傅常鄭甘陳段傳)」
71권 「준소우설평팽전(雋疏于薛平彭傳)」
부개자 · 상혜 · 정길 · 감연수 · 진탕 · 단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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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권 「왕공양공포전(王貢兩龔鮑傳)」
73권 「위현전(韋賢傳)」
74권 「위상병길전(魏相丙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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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현
위상 · 병길
75권 「수양하후경익이전(眭兩夏侯京翼李傳)」
76권 「조윤한장양왕전(趙尹韓張兩王傳)」
수홍 · 하후시창 · 하후승 · 경방 · 익봉 · 이심
조광한 · 윤옹귀 · 한연수 · 장창 · 왕존 · 왕장
77권 「갑제갈유정손무장하전(蓋諸葛劉鄭孫毋將何傳)」
78권 「소망지전(蕭望之傳)」
갑관요 · 제갈풍 · 유보 · 정숭 · 손보 · 무장륭 · 하병
소망지
79권 「풍봉세전(馮奉世傳)」
80권 「선원육왕전(宣元六王傳)」
풍봉세
회양왕 · 초효왕 · 동평왕 · 중산왕 · 정도왕 · 중산왕
81권 「광장공마전(匡張孔馬傳)」
82권 「왕상사단부희전(王商史丹傅喜傳)」
83권 「설선주박전(薛宣朱博傳)」
광형 · 장우 · 공광 · 마궁
왕상 · 사단 · 부희
설선 · 주박
84권 「적방진전(翟方進傳)」
85권 「곡영두업전(谷永杜鄴傳)」
적방진
곡영 · 두업
86권 「하무왕가사단전(何武王嘉師丹傳)」
87권 「양웅전(揚雄傳)」
하무 · 왕가 · 사단
양웅
88권 「유림전(儒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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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권 「순리전(循吏傳)」
90권 「혹리전(酷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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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권 「화식전(貨殖傳)」
92권 「유협전(游俠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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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 전중 · 극맹 · 곽해 · 우장 · 누호 · 진준 · 원섭
94권 「흉노전(匈奴傳)」
95권 「서남이양월조선전(西南夷兩粤朝鮮傳)」
흉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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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권 「서역전(西域傳)」
선선국 · 저말국 · 소완국 · 정절국 · 융로국 · 서미국 · 거륵국 · 우전국 · 피산국 · 아타국 · 서야국 · 포리국 · 의내국 · 무뢰국 · 난두국 · 계빈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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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권 「외척전(外戚傳)」
효혜황후 · 효문태후 · 두의방 · 효경황후 · 왕지 · 진아교 · 무사황후 · 효소태후 · 효소황후 · 사양제 · 왕부인 · 허평군 · 곽성군 · 효선황후 · 효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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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권 「원후전(元皇傳)」
99권 「왕망전(王莽傳)」
왕정군
왕망



1. 개요[편집]


劉章
기원전 200~177

전한의 황족으로 고제 유방의 손자였다. 유방의 서장자인 도혜왕(齊悼惠王) 비(肥)의 차남으로, 제애왕(齊哀王) 양(襄)의 아우였다.

2. 생애[편집]


기원전 186년, 제나라 왕인 형 유양을 대신해서 동생 유흥거(劉興居)와 동시에 장안의 조정에 입조했다. 이 때 그는 주허후(朱虛侯)[1]에, 유흥거는 동모후(東牟侯)에 봉해졌다. 유장은 이 때 여후의 조카였던 조왕 여록(呂綠)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지만 그는 여씨 일문의 전횡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제 도혜왕 유비는 살아 생전 불미스러운 일로 여후에게 찍혀 목숨까지 위협받았었다.[2]

기원전 181년, 유장은 여후로부터 궁중 연회의 간사장에 임명되어 군법에 따라 진행을 지휘하게 되었다. 이 때 유장은 연회의 여흥으로 민요를 구실로 하여 여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씨 일문의 전횡을 성토하였으며, 또한 머지않아 보복하고 여씨 일족을 도륙낼 것이라는 내용의 노래를 불렀다. 또 중도에 연석에서 마음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 여씨 일족 사람을 베어 죽이고 여후를 향해 '군법에 따라 이를 처형했다'고 당당하게 보고했다. 그러나 여후는 군법에 따라 옳은 일을 한 유장을 비난하지 못했다.[3] 유장은 이 때가 겨우 20세였으며, 기개가 있는 사람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기원전 180년 여후가 사망하자 여씨 일족이 난을 일으킬 것을 직감하고, 형 유양에게 밀서를 보냈다. 제나라 군사를 이끌고 오면 자신과 유흥거가 안에서 내응할 테니 황제가 되라는 내용이었다. 이때 장안의 군사는 양왕 겸 상국 여산(呂産, 남군 지휘)과 조왕 겸 상장군 여록(呂祿, 북군 지휘)이 가지고 있었는데, 주발·진평 등이 여록의 북군(수도 방위군)은 속임수를 써 충돌도 없이 넘겨받았지만 여산 쪽의 남군(황궁 수비군)은 손을 쓰지 못해서 크게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에 유장은 황궁의 정원에서 멍때리는(혹은 상황 파악을 못하고 성문 앞에서 서성이던) 여산을 보자 그 틈을 노려 뒤치기해서 죽였다.[4] 여씨 일족을 주살하면서 매우 큰 공을 세운 셈.

본디 유장은 형 유양을 황제로 삼고, 자신이 제나라(혹은 조나라)의 왕이 되려고 했다. 유양은 고제 유방의 장남 유비의 장남이었므로 황제로 옹립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씨의 난을 진압한 대신들은 유양의 외가인 사씨 일족이 포악하고, 장인 사균(駟鈞) 또한 야심가라 하여(즉 그들이 제2의 여씨 일족이 될까봐 두려워) 고제의 넷째 아들 대왕(代王) 유항(劉恆)을 불러 문제로 추대했다. 문제는 기원전 178년에 유장의 아버지 유비가 노원공주에게 헌상했던 성양군을 유장에게 주고 왕으로 봉했다. 유장은 논공행상이 내심 불만이었지만 조용히 영지에 부임했다. 이는 현명한 행동이었는데 바로 이듬해에 24세의 나이로 병사했기 때문이다. 시호는 경왕(景王)이었으며, 그의 아들 공왕(共王) 유희(劉喜)가 성양국을 계승했다.

3. 사후[편집]


유장이 죽은 뒤 그의 영토였던 성양 일대에 그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이 많이 건립되었다. 그 후 오랫동안 산동 지방에는 성양경왕 신앙이 많이 퍼졌다. 나라 말기 적미군은 이 신앙을 믿는 집단이었다. 그래서 유장의 후예 중에서 제비뽑기를 해서 최종적으로 양치기였던 유분자(劉盆子)를 황제로 옹립했다.[5] 그 후 후한 말기에도 신앙은 계속되었지만 제남국상으로 있었던 조조가 이 신앙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보고 사당을 모두 철거하며 제사를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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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훗날 삼국시대 때 원소의 명으로 진림이 쓴 조조 토벌 격문에 나오는 '주허후' 얘기하는 거 맞다.[2] 유비가 조정에 입조해서 이복아우인 혜제를 알현했고 혜제는 연회를 열었다. 이 때 혜제는 자신의 형이라고 유비에게 상석을 양보하려고 했는데 이걸 여후가 보고 분노해서 유비를 짐주로 독살하려고 했다. 그러나 혜제가 막음으로써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유비는 심복의 제안에 따라 자신의 봉지 중에서 성양군을 여후의 딸 노원공주의 봉지로 헌납했다. 이에 여후는 기꺼워했고 유비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3] 황제가 끼고 있던 조 은왕(趙隱王) 유여의(如意)도 기어이 죽였던 여후인데 고작 그런 명분 때문에 못 죽였을 리는 없다. 유장의 뒤에 있는 제왕 유양의 군사가 두려워서 굴복한 것이라고 봐야 맞다. 당장 남월왕 조타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되려 칭제에 영토 침탈 등 온갖 굴욕을 당하고도 방법이 없었던 와중이기도 했고.[4] 화장실에 숨어있는 걸 끝까지 쫓아가서 죽였다고 한다. 은근히 호러[5] 그 후 유분자는 적미군이 패배한 뒤에 광무제에게 항복했다. 광무제는 유분자를 보호했고 이 후 실명한 그에게 평생 녹봉을 주고 영지를 주어 편안하게 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