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수 프루엘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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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onso Froilaz
가문
아스투리아스 왕조
생몰년도
미상 ~ 미상
출생지
아스투리아스 왕국
사망지
레온 왕국 산타 바실리사 데 루이포르코 수도원
재위
기간
레온 왕국 국왕
925년 - 926년
아버지
프루엘라 2세
어머니
누닐로 히메나 또는 우라카
형제
라미루 프루엘라스, 오르도뉴 프루엘라스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레온 왕국 4대 국왕.


2. 생애[편집]


레온 왕국 3대 국왕이었던 프루엘라 2세의 장남이다. 일부 저자는 그가 팜플로나 왕국 출신인 누닐로 히메라의 아들이라고 기술했지만, 현대 학계에서는 누닐로 히메라의 실존 여부를 의심하며, 프루엘라 2세의 두번째 왕비이자 바누 카시 혈통이며 투델라의 타이파인 압둘라 이븐 무함마드의 딸인 우라카의 자식일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다. 형제로 라미루 프루엘라스, 오르도뉴 프루엘라스가 있었다.

925년 8월 아버지가 나병에 시달린 끝에 사망한 뒤 레온 왕위에 올랐지만, 전왕 오르도뉴 2세의 세 아들 산추 오르도녜스, 알폰수 4세, 라미루 2세의 반란에 직면했다. 산추는 그의 아내 고토 누녜스의 출생지인 갈리시아 귀족 대다수의 지원을 받았고, 알폰수는 아내 오네카의 친정인 팜플로나 왕국의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라미루는 아내 아도신다 구티에레스와 관련된 포르투갈 귀족들의 지원을 받았다.

926년 초 오르도뉴 2세의 아들들과의 전쟁에서 패한 알폰수 프루엘라스는 두 동생과 함께 아스투리아스의 산악지대로 피신했고, 산추와 알폰수는 각각 갈리시아 왕국과 레온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했으며, 라미루는 코임브라를 비롯한 포르투갈 지역을 다스렸다. 얼마 후, 산추 오르도녜스는 레온 왕국까지 자신의 소유로 삼기 위해 알폰수 4세와 전쟁을 벌였다. 알폰수 4세는 이 전쟁에서 패배해 아스투리아스로 달아났다. 이후 알폰수 프루엘라스와 화해하고 그의 도움에 힘입어 산추 오르도녜스를 물리치고 레온 국왕에 복귀했다.

알폰수 프루엘라스는 알폰수 4세를 도운 대가로 아스투리아스 지역의 북부 해안과 산악 지대에서 왕 노릇을 하는 것을 용인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산토냐 항구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데 푸에르토 수도원의 기록 보관소에 보관된 927년 3월 16일자 수도원 일지에는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관리가 카스티야 백작 누뇨 페르난데스이며 국왕은 알폰수 프루엘라스라고 밝혔다. 그해 4월의 또다른 문서에는 알폰수의 치세가 2년째 이어졌다고 기술되었다.

931년, 알폰수 4세는 아내 오네카 사망 후 형제 라미루 2세에게 레온 왕관을 맡기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932년 초에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복위를 꾀했고, 알폰수 프루엘라스와 라미루 프루엘라스, 오르도뉴 프루엘라스는 알폰수 4세를 지원했다. 톨레도에서 후우마이야 왕조군과 한창 대치중이던 라미루 2세는 알폰수 4세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첩보를 접하자 즉시 군대를 돌려 주동자들을 체포했다. 이때 아스투리아스 귀족들이 배신하는 바람에 알폰수 프루엘라스 역시 두 동생과 함께 라미루 2세에게 넘겨졌다.

라미루 2세는 알폰수 4세와 알폰수 프루엘라스, 라미루 프루엘라스, 오르도뉴 프루엘라스를 실명형에 처하고 산타 바실리사 데 루이포르코 수도원에 감금했다. 연대기에는 그들이 수도원에서 죽을 때까지 갇혀지냈다고 기술했지만 언제 죽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사후 해당 수도원에 안장되었다가 훗날 레온 국왕 알폰수 5세가 루이포르코 수도원에 묻혀있던 모든 왕족의 유해를 산 이시도르 데 레온 대성당으로 이장시킬 때 함께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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