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시아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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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가르시아 2세.jpg
García II de Galicia
가문
히메네스 왕조
생몰년도
1041년 또는 1043년 ~ 1090년 3월 22일
출생지
레온 왕국
사망지
레온 왕국 루나 성
재위
기간
갈리시아 왕국 국왕
1065년 - 1071년
아버지
페르난도 1세
어머니
레온의 산차
형제
사모라의 우라카, 산초 2세, 토로의 엘비라, 알폰소 6세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갈리시아 왕국 국왕.


2. 생애[편집]


1041년 또는 1043년 레온 왕국 히메네스 왕조 초대 국왕 페르난도 1세와 레온 국왕 알폰수 5세의 딸 산차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형제로 사모라의 우라카, 산초 2세, 토로의 엘비라, 알폰소 6세가 있었다. 1065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형 산초와 알폰소가 각각 카스티야 왕국과 레온 왕국을 물려받았을 때, 그는 갈리시아 왕국과 코임브라를 포함한 포르투갈 지역을 물려받았다.

그는 갈리시아 국왕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갈리시아의 저명한 귀족이었던 가르시아 무뇨스의 영지를 삭감하고 브라가, 라메고, 투이 주교구를 복원하고 산 안토닌 데 토쿠에스 수도원을 후원했다. 1070년 포르투갈 백작 누누 멘데스가 반란을 일으키자, 그는 1071년 페드로소 전투에서 반란군을 궤멸시키고 누누 멘데스를 주살했다. 이후 포르투갈 백국은 갈리시아 왕국에 편입되었고, 그는 '갈리시아와 포르투갈의 왕'이라는 칭호를 채택했다.

그러나 얼마 후 두 형 산초 2세와 알폰소 6세가 갈리시아를 분할 통치하기로 합의하고 힘을 합쳐 갈리시아로 쳐들어갔다. 그는 두 형의 공세에 패배하고 포르투갈 중심부로 도주했다가 산타렝에서 산초 2세에게 체포되었다. 그 후 갈리시아는 산초 2세와 알폰소 6세에 의해 양분되었다. 포르투갈 백작령은 알폰소 6세의 레온 왕국으로 편입되었고, 갈리시아는 산초 2세의 카스티야 왕국에 편입되었다.

가르시아 2세는 부르고스에 투옥되었다가 1072년 두 형에게 복종을 맹세한 뒤 풀려났다. 그러나 곧바로 세비야의 타이파 알 무타미드의 궁정으로 망명하고 장차 갈리시아를 되찾을 기회를 노렸다. 그러던 중 산초 2세와 알폰소 6세가 서로 전쟁을 벌이다가 산초 2세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그는 이 때를 틈타 세비야 타이파의 후원을 받으며 갈리시아로 돌아왔지만 1073년 2월 13일 알폰소 6세가 급파한 군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후 루나 성에 투옥되어 17년간 옥고를 치르다가 1090년 3월 22일에 사망했다. 사후 산 이시도르 데 레온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죽기 전에 감옥에 지냈을 때 처럼 사슬에 매인 채 매장되기를 원한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또한 그의 무덤에 세워진 비문에는 다음의 라틴어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H[ic] R[equiescit] DOMINUS GARCIA REX PORTUGALLIAE ET GALLECIAE. FILIUS REGIS MAGNI FERDINANDI. HIC INGENIO CAPTUS A FRATRE SUO IN VINCULIS. OBIIT ERA MCXXVIII XIº KAL[ends] APRIL[is]

여기 포르투갈과 갈리시아의 왕이며 위대한 왕 페르난도의 아들 가르시아가 있다. 그는 그의 형제의 속임수로 사로잡혀 사슬에 묶였다. 그는 카이사르 시대( Æra) 1128년 4월의 칼린다레(kalendae) 이전 11일째 되는 날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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