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추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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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cho I de León
가문
아스투리아스 왕조
생몰년도
932년 ~ 966년 12월 19일
출생지
레온 왕국
사망지
레온 왕국 레온
재위
기간
레온 왕국 국왕
956년 - 958년(1차 재위)
960년 - 966년(2차 재위)
아버지
라미루 2세
어머니
우라카 사노이츠
형제
베르무두(이복 형제), 오르도뉴 3세(이복 형제), 테레사 라미레스(이복 누이), 엘비라 라미레스
배우자
테레사 안수레스
자녀
라미루 3세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레온 왕국 8, 10대 국왕.


2. 생애[편집]


932년경 레온 왕국 6대 국왕 라미루 2세팜플로나 왕국 국왕 안초 1세의 딸 우라카 사노이츠의 아들로 태어났다. 친누이로 엘비라 라미레스가 있었고, 이복 형제로 베르무두, 오르도뉴 3세, 테레사 라미레스가 있었다. 951년 1월 아버지가 사망하고 이복형 오르도뉴 3세가 왕위에 오르자, 그는 이에 불복하여 팜플로나 왕국과 카스티야 백작 페르난도 페르난데스의 지원을 받으며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한때 레온 성벽 앞까지 이르렀으나 오르도뉴 3세의 토벌대에게 패배했고, 국외로 달아났다.

956년 오르도뉴 3세가 30세에 요절한 뒤 레온 왕국으로 돌아와서 왕위에 올랐다. 그는 오르도뉴 3세가 후우마이야 왕조와 맺었던 휴전 협약을 무시하고 전쟁을 단행했다가 957년 패배했다. 이에 레온과 카스티야 귀족들은 그가 지나치게 뚱뚱하다는 명분을 내걸고[1] 왕위에서 몰아내고 전 왕 알폰수 4세의 아들인 오르도뉴 4세를 왕으로 옹립했다. 아내 테레사 안수레스와 함께 코르도바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유대인 의사이자 학자, 외교관이었던 하스다이 이븐 샤프루트(חסדאי אבן שפרוט)로부터 40일간 액체만 섭취하는 방식의 치료를 받아 비만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했다.

959년 후우마이야 칼리파 아브드 알 라흐만 3세와 팜플로나 왕국 국왕 가르체아 1세 사노이츠는 산추 1세를 복위시키기 위해 연합군을 결성하여 레온 왕국으로 진격했다. 그들은 그 해 사모라를 공략했고, 960년에 카스티야 백작 페르난도 곤살레스를 격파하고 사로잡았다. 오르도뉴 4세는 연합군이 레온 시 목전에 이르자 아스투리아스로 달아났다. 이리하여 레온 왕위에 복위하고 후우마이야 왕조의 봉신이 되기를 자처하면서, 그들의 지원을 받아 아스투리아스로 달아난 오르도뉴 4세를 재차 공격했다. 오르도뉴 4세는 961년 부르고스로 달아난 뒤 알 라흐만 3세에게 자신을 복위시켜주면 레온 왕국의 남쪽 영토를 통째로 넘겨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알 라흐만 3세가 그해 10월에 죽으면서 무산되었다.

962년 알 라흐만 3세의 뒤를 이어 칼리파에 오른 알 하캄 2세는 오르도뉴 4세가 자신을 도와주면 레온 왕국 남쪽 영토를 지키고 있는 성채 10개를 할양하겠다는 제안을 받자 그를 코르도바로 불러들인 뒤 원정을 준비했다. 오르도뉴 4세를 돕지 않는다면 그 성채들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다가 오르도뉴 4세가 962년 또는 963년에 코르도바에서 사망하자, 약속을 취소하고 팜플로나 왕국, 바르셀로나 백국과 연합하여 알 안달루스를 침공했다.

이에 분노한 알 하캄 2세는 963년 여름 친히 대군을 이끌고 북상하여 고르마즈와 아티엔자를 점령했고, 사라고사 총독 야흐야 이븐 무함마드 알 투지비는 팜플로나 왕국을 공략했다. 여기에 슬라브계 장군 갈립 앗 시클라비는 나바라령 칼라호라를 점령하고 나바라 국왕 가르시아 산체스 1세를 격파했다. 그 후 레온 왕국과 팜플로나 왕국이 잇따라 사절을 보내 배상금을 바치며 평화 협정을 맺자고 호소하자, 알 하캄 2세는 이를 받아들이고 물러났다.

966년, 레온 시에 아브드 알 라흐만 3세 치세 때 순교한 성 펠라요를 기리기 위해 산 펠라요 수도원을 세웠다. 이 수도원은 왕실 수도원으로서 산 살바도르 데 팔라트 델 레이 수도원을 대체했다. 그러나 치세 말년에 갈리시아와 카스티야 귀족들의 반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서 그들의 독립성이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레온 왕국의 성직자이자 학자였던 삼피로의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포르투갈 백작 곤살루 멘데스가 바친 독이 든 사과를 먹고 독살당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인지, 뜬 소문을 그대로 믿고 적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사후 카스트렐로 데 미뇨 수도원에 안장되었다가 나중에 산 살바도르 데 팔라트 델 레이 수도원에 이장되었다. 그는 생전에 몬손 백작 안수르 페르난데스의 딸 테레사 안수레스와 결혼하여 아들 라미루 3세를 낳았다. 라미루 3세는 아버지가 사망한 후 레온 국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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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일 풍부한 수렵육과 건강에 해로운 다른 음식들로 구성된 27코스의 식사를 했고, 이로 인해 말에 탈 수 없을 정도로 비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