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순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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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 | 安順王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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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조 왕대비
인혜왕대비 | 仁惠王大妃


조선 연산군조 대왕대비
인혜대왕대비 | 仁惠大王大妃



파일:attachment/예종/Example.jpg

창릉 전경
출생
1445년 4월 27일(음력 3월 12일)
조선 한성부 한백륜 사저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망
1499년 2월 12일(음력 12월 23일)
(향년 53세)
조선 한성부 경복궁 자경전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능묘
창릉(昌陵)
재위기간
조선 소훈
1463년 8월 29일 ~ 1468년 10월 2일
조선 왕비
1468년 10월 2일 ~ 1470년 1월 10일
조선 왕대비
1470년 1월 10일 ~ 1495년 2월 3일
조선 대왕대비
1495년 2월 3일 ~ 1499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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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청주 한씨
부모
부친 청천부원군 한백륜
(淸川府院君 韓伯倫, 1427 ~ 1474)
모친 서하부부인 풍천 임씨
(西河府夫人 豊川 任氏, ? ~ 1472)
형제자매
4남 6녀 중 장녀
배우자
예종
자녀
슬하 2남 2녀 [ 펼치기 · 접기 ]
장녀 - 현숙공주(顯肅公主, 1464 ~ 1502)
장남 - 제안대군(齊安大君, 1466 ~ 1525)
차녀 - 혜순공주(惠順公主, 1468 ~ 1469)
차남 - 대군 (요절)

봉작
소훈(昭訓)
전호
영소전(永昭殿)
존호
인혜명의(仁惠明懿)
휘호
소휘제숙(昭徽齊淑)
시호
안순왕후(安順王后)

1. 개요
2. 생애
3. 가계
4. 여담
5. 대중매체에서
6. 참고 문서



1. 개요[편집]


조선 8대 예종계비(繼妃). 세조정희왕후의 2번째 작은며느리[1]제안대군현숙공주의 어머니이다.


2. 생애[편집]


1463년(세조 9년), 당시 왕세자였던 예종후궁인 종5품 소훈으로 간택된다. 하지만 이미 이 때는 세자빈이 죽은 이후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세자빈의 예우를 받았으며 1468년(세조 14년)에 세조 뒤를 이어서 예종즉위하자 세조의 지명 아래 왕비로 책봉되었다.

문제는 예종이 즉위한지 15개월{1년 3개월}만에 사망한 것이다. 아들이 있었지만 나이(4~5세)가 어리다는 이유를 들어 권신 한명회와 시어머니인 대왕대비 정희왕후의 결정으로 자을산군이었던 성종이 다음 왕위를 잇는다. 과거 인수대비의 아들인 월산대군세자 자리가 자기 남편에게 돌아갔던 것처럼 자기 아들인 제안대군세자 자리가 다시 인수대비아들에게 돌아가는 데자뷔를 겪게 된다.

게다가 세조의 맏며느리에 성종의 친어머니인 인수대비에게 평생을 치여서 살게 되는데 사가의 법도대로 인수대비가 안순왕후보다 첫째 서열이라고 신하들이 멋대로 정해버려서 그렇다. 조카손자인 연산군이 즉위하고 나서는 대왕대비가 되었는데 이 때도 인수대왕대비가 계속 생존해 있었고 심지어 인수대왕대비보다 먼저 승하해서 생의 말년까지 별다른 을 가진 적이 없다.[2] 사망 1-2년 전부터 땀을 심하게 흘리는 증세를 보이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았으며, 지병이었던 당뇨병과 갑상선 질환으로 인하여 1499년(연산군 4년), 55세의 나이로 경복궁에서 세상을 떠난다. 그나마 나중에 한참 후 인수대비가 승하하고 인수대비에게 원한이 있던 연산군이 인수대비의 장례 절차를 안순왕후 때보다도 간소화하는 식으로 해서 장례는 인수대비보다 후하게 더 받긴 했다.


3. 가계[편집]


  • 친정(청주 한씨)
    • 아버지 : 청천부원군(淸川府院君) 한백륜(韓伯倫)
    • 어머니 : 부부인 임씨(府夫人 任氏)
      • 장남 : 한환(韓懽)
      • 차남 : 한열(韓悅)
      • 삼남 : 한항(韓恒)
      • 사남 : 한순(韓恂)
      • 장녀 : 본인
      • 차녀 : 군부인 한씨(郡夫人 韓氏)
      • 삼녀 : 부부인 한씨(府夫人 韓氏)


  • 배우자 / 자녀
    • 남편 : 예종(睿宗)
      • 장녀 : 현숙공주(顯肅公主)
        • 사위 : 풍천위(豊川尉) 임광재(任光載)[3]
      • 장남 : 제안대군(齊安大君) 이현(李琄)[4]
      • 양자 겸 시조카 : 성종(成宗)
        • 양며느리 겸 시조카며느리 : 공혜왕후 한씨(恭惠王后 韓氏)[5]
      • 차녀 : 혜순공주(惠順公主)


4. 여담[편집]


  • 아들 제안대군 때문에 며느리를 2번이나 내쫓았다. 1번째 며느리 김씨는 간질을 앓아 제안대군이 싫어하고 손자를 보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에 내쫓았다. 2번째 며느리 박씨 역시 제안대군과 사이가 좋지 않던 와중에 전 부인과 재결합하고 싶어하던 제안대군이 자작극[6]까지 벌이자 결국 자신에게 불손하다는 핑계로 쫓아내게 된다.[7]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제안대군은 끝내 자식을 보지 못하면서 결국 예종계의 혈통은 여기서 끊기게 된다.

  • 슬하에 2남 2녀를 낳았지만 왕자 1명과 혜순공주는 일찍 요절했고 남은 1남 1녀인 제안대군이나 현숙공주는 배우자와 관계가 좋지 않아서 둘 다 끝내 자식을 낳지 못하는 바람에 안순왕후는 평생 손주를 보지 못한다.

  • 여걸이었던 시어머니 정희왕후와 손윗 동서 소혜왕후에 비하여 조용하고 유순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성종 대 왕실 어른들 중에선 가장 존재감이 덜한 편이나, 자식 문제를 제외하면 아무런 논란이 없었고 왕족들과도 별 탈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는 점에서 조용하게 처신을 잘 하여 비교적 무탈한 궁 생활을 보낸 편이다. 아들 제안대군 또한 한때는 속을 썩이긴 했지만 오랜 세월을 과부로 살았던 모후에게는 누구보다 효성이 지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대중매체에서[편집]


사극에서 인수대비에 밀려나 찬밥신세다.[8] 안순왕후를 주인공으로 하는 사극도 없지만, 거의 머릿수 채워넣는 수준.



6. 참고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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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종이 차남이기 때문이며 또한 안순왕후는 예종의 2번째 부인이다. 예종세자 시절에 들인 첫번째 부인 장순왕후세자빈일 때 요절했다.[2] 대신 연산군 즉위 4년만에 승하했기에 법적 손자인 연산군이 자기 아들의 노비인 장녹수를 후궁으로 들이는 꼴을 보지 않은데다 갑자사화로 피해를 입지도 않았다. 물론 안순왕후는 폐비 윤씨를 가장 크게 지지한 전적이 있지만, 연산군이 제안대군과 친했던 만큼 안순왕후가 장수했어도 갑자사화 때 패륜의 피해자가 되진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3] 연산군 대에 간신이자 권신으로 활약한 임사홍의 장남으로 임숭재의 맏형이다.[4] 제안대군은 어엿한 국왕적자이면서 왕위는커녕 왕세자 자리에도 못가 본 인물로, 아버지 예종승하 당시 나이(4~5세)가 어리다고 사촌형인 성종에게 왕위 계승권을 빼앗겼다. 더군다나, 사촌형 성종왕위를 아버지 예종의 양자로서 입적하게 되었는데 제안대군(齊安大君)으로 봉군되자 마자, 아버지가 아닌 세종대왕의 7남이자 제안대군 자신에게는 작은할아버지였던 평원대군에게 양자로 봉사손에 입적되었다.[5] 예종의 전 부인 장순왕후의 동생으로 장순왕후성종은 작은어머니-시조카 사이이다. 그래서 예종과는 각별한 사이다.[6] 몸종이 몰래 이불 속으로 들어가 동성애자로 모함했다.[7] 이렇게 내쫓긴 박씨는 얼마 뒤에 으로 사망했다고 한다.[8] 예종의 재위 기간도 짧아서 그다지 다룰 만한 내용이 없는 탓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