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창민/선수 경력/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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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입단
1.2. 2011 시즌
1.3. 2012 시즌
1.5. 2014 시즌
1.6. 2015 시즌
1.9. 2018 시즌
1.10. 군복무
1.10.1. 2019년
1.10.2. 2020년
1.11. 2020 시즌
2. 삼성에서의 성적


1. 개요[편집]


2011~2021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핵심 불펜이었던 시절의 문서이다.


1.1. 입단[편집]


2011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로부터 1라운드(전체 4번) 지명된 심창민은 9월 9일 계약금 2억원, 연봉 2천400만원에 입단 체결했다. 당시 구단에서는 "신장 182cm, 체중 77kg의 체격을 갖춘 우투 우타 사이드암 투수로서 유연성이 뛰어나고 최고 구속 146km의 직구와 슬라이더 싱커 등 다양한 구질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심창민 본인 역시 "명문구단 삼성에 입단해 매우 기쁘며 뛰어난 선배투수들이 많기 때문에 기량을 좀더 갈고 닦아서 프로에서도 성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당당히 포부를 밝혔었다.#


1.2. 2011 시즌[편집]


하지만 입단 후 어깨 통증으로 인해 삼성 트레이닝 센터에 입소해 치료와 훈련을 병행했다[1]. 그리고 4월달에야 삼성 2군에 합류했다. 7월 26일에 2군 경기에 등판했다. 이후로 계투로 등판 중인데, 아직 통증이 다 사라진 건 아니라고 한다. 결국 어깨 통증 재발로 2군에서 5경기 등판하고 시즌을 마감했다.


1.3. 2012 시즌[편집]


2012 시즌에는 2군에서 마무리로 6경기 등판해 4세이브를 기록했고 5⅔이닝 동안 피안타 0개에 탈삼진 8개를 잡는 등, 삼성에 입단한 후 심창민에 대한 평가 중에 '부상에서만 회복한다면 임창용-권오준의 재림이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딱 그런 모습을 보였다.

2군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4월 28일 부진한 차우찬을 대신해 1군으로 올라왔다. 같은 날 SK전에서 5회 무사 1,3루 상황에서 브라이언 고든을 구원등판해 첫 1군 데뷔전을 가졌다. 최고 147km/h의 속구를 던지며 2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삼진 4개 등 무실점을 기록했다.

4월 29일 배영수의 뒤를이어 2번째 투수로 올라왔다. 선두타자 이호준을 삼진으로 잡았으나 박재홍안치용에게 2루타와 볼넷을 허용하지만 박정권을 삼진으로 잡으며 경기를 끝냈다. 그 경기 이후로 삼성팬들과 코칭스태프의 사랑을 듬뿍 받고 꾸준히 1군에서 등판하고 있다.

6월 2일 난타당한 미치 탈보트[2]와 한방에 역전당한 차우찬[3]의 다음으로 등판하여 2이닝을 깔끔하게 3자범퇴로 처리[4]하여 역전의 발판을 만들고 그사이 타선이 역전에 성공하여 시즌 첫 승을 기록했다.

6월 7일 KIA 타이거즈전에는 자신과 같이 신인왕 후보인 박지훈과 맞대결을 펼쳐, 1.1이닝 2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며 2.2이닝 2실점을 한 박지훈에 판정패.

10월 6일 시즌 마지막 KIA 타이거즈전에서 4:3으로 1점차로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9회말 등판하여 3타자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후덜덜한 마무리를 해 주었다. 특히 마지막 아웃카운트는 3연속 볼 이후에 3연속 스트라이크(…)를 꽂아넣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본인의 1군 첫 세이브를 기록하며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1이닝 무피안타 2볼넷 무실점, 2홀드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우승하여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연봉협상에서 500만원을 더 받아냈다. 기사가 약간 개그스럽다. 5000만원 정도를 예상하고 500만원만 더 올려달라고 요구하기로 결심하고 회사에 갔는데, 프런트 직원이 냅다 5500을 불러버리자 당황해서 본인이 외운대로 500을 더 달라고 했고, 직원은 또 아무렇지 않게 그걸 수긍하고 요구대로 6000만원을 받아줬다는 황당한 이야기. 어쨌든 최종 연봉 6천만원으로 직전 연봉 2400만원보다 150% 인상된 연봉을 받게 되었다.



1.4. 2013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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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2014 시즌[편집]


뒤늦은 소포모어 징크스 시즌. 몸쪽 공을 제대로 꽂지 못하면서 그 좋은 구속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면모를 보이고 있다. 특히 시즌 초중반에는 방어율이 8점대까지 치솟는 등, 삼성팬들에게 아쉬운 점을 남기고 있는 시즌이다. 6월 현재 구속도 3~4km/h 이상 떨어졌고 구위도 위력적이지 못하며 올라올 때마다 실점하는 중. 삼성 불펜의 불안요소로 작용중이며 안지만과 더불어 결정적일 때 점수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삼성 팬들에게 그야말로 미칠 듯이 까이는 중. 대다수는 경산 가든지 아니면 입대 준비나 하라고 까고 있다.

모두까기인형께서 해설 중 무려 10분동안 신명나게 깠다. # 주로 2년간 좋은 성적을 거둔 뒤 자만에 빠져 노력을 게을리 했다는 내용.

8월 8일 롯데전에서 8회초 1이닝 2실점을 하면서 '2스트후 결정구가 없다' 라며 여전히 까이고 있었다. 하지만 9회초 구속을 낮추고 제구에 집중한 결과 KKK 삼자범퇴로 이닝을 틀어막았다. 이후 팬들은 '진작에 이렇게 하지' 라던가 '인생이닝 피칭을 했다' 라면서 호평중. 혹자는 부진을 딛고 역투한 이유는 뒤에 임창용이 대기해서 자신이 해결했던건 아니었을까 라고 하면서 임창용을 까고 있다. 다만 임창용이 삼성 복귀 전에도 심창민은 답없는 투구로 일관했기 때문에 별로 설득력은 없다. 그나마 임창용은 퐁당퐁당이라도 하지만 심창민은 꾸준히 못하기 때문에...

이후로도 나오기만 하면 핵을 떨구는 처참한 피칭으로 삼팬들의 혈압을 제대로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일찌감치 2군으로 버로우한 정형식과 비교하면 아직도 1군에 붙어 있는게 용한 수준 삼팬들은 "쟤 왜 아직도 1군에 붙어 있냐", "군대나 가라" "KT로 갔으면 좋겠다", "류 감독 심창민한테 19금 비디오를 얻었냐"라고 격하게 까고 있다.

8월 26일 사직 롯데전에서도 10:5로 여유있는 상황에서 등판했음에도 강민호에게 홈런을 맞고 이후 1사 1루 상황에서 황재균의 평범한 투수 땅볼 타구를 잡고 2루로 송구했는데 이게 악송구가 되어 2루를 벗어난 악송구가 되었고, 결국 병살로 끝날 수 있었던 상황을 1사 1, 3루라는 어이없는 상황을 만들고 강판되고 말았다. 결국 안지만의 희생 플라이 허용으로 인한 분식으로 자책점은 한 점 더 늘었다. 삼성팬들은 "배팅볼을 던지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송구도 제대로 못하냐"라고 엄청나게 깠다. 진작에 2군 내려갈 상황에서도 끝까지 1군에 머물게 한 류중일 감독도 어이없는 실책에 제대로 빡쳤는지 얼굴이 급격하게 굳은 모습이 나왔다.[5] 결국 경기 후 류중일 감독은 인터뷰에서 조동찬과 심창민의 실책을 지적하고, 심창민을 2군에 내리는 대신에 박근홍을 1군에 올릴 것이라고 답하였다[6]. 이에 삼성팬들 반응의 대부분은 풍악, 풍악을 울려라!!! 그래도 아끼는 몇몇 팬들은 차라리 2군에서 카턱 형님의 조련을 받고 다시 올라오길 바란다는 반응도 있었다.

9월 9일 1군에 복귀했다. 9월 말 부상 치료차 일본으로 가면서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 1,4,6차전에 등판해 2.2이닝동안 실점없이 삼진4개를 잡고 볼넷 1개를 내주었다. 특히 6차전에서는 속구를 던질때 마치 팀선배처럼 팔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며 최고구속 148km까지 나왔다.


1.6. 2015 시즌[편집]


초중반엔 잘하다 후반-한국시리즈에서 망하고 프리미어에서 잘한다.

2월 13일 한신과의 경기에서 9회 말 5-2 상황에 등판해 3실점해서 5-5 무승부로 끝내 삼팬들의 욕을 먹었다. 한신이 재팬시리즈 준우승팀이고 한국과 일본의 야구 수준 차이 때문에 설령 1.5군이라도 강팀이라고 하더라도 상당히 아쉬운 투구였다. 그나마 그전 삼성 청백전에서 1이닝 무안타 무실점, 2월 15일 라쿠텐전에서 1이닝 무실점으로 그럭저럭 잘 막았다. 다만 2월 24일 인터뷰에서 지난해 5월 10일 잃어버린 투구 밸런스를 아직까지 되찾고 있지 못하단 걸 밝혀 시범경기전까지 투구 밸런스를 찾냐 못 찾냐가 관건일 듯. 하지만 오키나와 기상상황으로 2월 24일 있었던 넥센 연습경기도 취소되면서 불안감을 사고 있다. 이도저도 안되면 시즌 초반 추격조나 패전조에서 계속 던지면서라도 밸런스를 찾아야 할듯.

팔꿈치 통증 때문에 개막전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이후 미세한 햄스트링 때문에 계속 재활을 했다. 4월 5일부터 2군 경기에 등판하기 시작해, 빠르면 18~19일에 1군 콜업이 가능할거라고 류중일 감독은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21일에 1군에 올라왔다. 1군에 올라온 뒤 김현우와 함께 필승조에 가담해 불펜의 부담을 줄여주면 삼성은 적어도 정규시즌 1위는 거의 확정으로 보인다.
5월 30일 기준으로 0승3패 5.29에다가 20K 5BB로 중계로선 영 좋지 못하다.

그러나 6월 23일 사직 롯데전에서 불펜 문을 열다 왼손이 찢어져서 이튿날인 24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다행히 다친 부위가 왼손인지라 실밥만 풀면 1군에 올라올 예정이었는데, 7월 8일 실밥을 제거했고 14일 1군에 복귀했다.

2015년 8월 15일과 16일에 열린 포항 한화전에서 구원으로만 2연승을 기록했다. 그 뒷면에는 친정 팀을 상대로 제대로 불을 지른 권혁 때문에.....

8월 19일 잠실 두산전에서 또 다시 팀이 역전승을 거두며 또 구원승을 기록했다.

중간에 휴식일이 있었다고는 하나 8월 15일 경기부터 8월 22일 경기까지 6경기 연속 등판중이다. 이에 팬들은 약간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7]

8월 26일 대전 한화전에서 6회말 등판하여 이시찬에게 1루타, 이용규에게 볼넷을 허용하고 김회성에게 쓰리런을 맞아 역전패의 발판을 제공했다. 오랜만에 대차게 까인 것은 덤. 가끔씩 맞을때도 있지만 작년보다는 낫다.

9월 24일 KT전에서 5이닝 소화하고 내려온 정인욱의 뒤를 이어 등판해 2이닝 무실점 2K 2BB으로 역투했다.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이 2015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에 휩싸이면서 한국시리즈 엔트리와 프리미어 12 최종 엔트리에 제외되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안지만과 임창용의 자리를 차우찬과 함께 메울 예정이며, 프리미어 12에 임창용 대신 사이드암 불펜으로 승선하였다.(대부분들의 야구팬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10월 26일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안타만 두 번 맞고 나오는 바람에 까였으나, 차우찬이 아웃카운트를 잡아 실점을 막으면서 조금 덜 까였다. (잘 던지던 백정현을 내리고 심창민을 올린 투수코치가 신나게 까였다)

10원 27일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무사 1루 상황에서 등판하였으나 허경민의 번트를 2루에 던져 야수선택으로 모두 살았다.그 뒤에 박건우에게 볼넷을 주고 무사 만루 상황에서 우익수 플라이 아웃으로 0.1이닝 1실점을 하였다. 다행히 백정현과 권오준이 승계주자를 막아내면서 추가실점은 없었다.

2경기까지 6타자를 상대로 2안타 1볼넷 1사구 1야수선택 1희플을 허용하며, 희생플라이 하나로 아웃카운트를 잡은 것을 제외하고는 탈탈탈 털렸다. 아예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는 상태. 3차전에도 볼넷-안타-볼넷으로 만루를 만들며 자멸했다. 그나마 나바로의 실책이 없었으면 1실점으로 막을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된 게 위안이지만... 한 마디로 1군 데뷔 첫해가 가장 잘하고 몇년째 발전은 커녕 점점 못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애초에 삼팬입장에서 몇경기 잘던진것 말고는 안정감을 준 적이 거의 없다. 특히 박빙상황에서 올라오면 마냥 흔들리는 새가슴을 보여준다.

시즌 후 2015 WBSC 프리미어 12 국가대표팀에 선발됐다. 평가전은 물론이고 본 대회가 시작된 후에도 4차전까지 등판하지 않으며 삼성팬들은 대표팀에 폐만 된다면서 질타했다. 그러다가 11월 15일 미국과의 5차전에서 2대2 동점인 7회초 2사에 등판해 2이닝 1피안타 4삼진 무실점으로 한국시리즈 때와는 정반대의 투구 내용을 보여줬다.[8]


1.7. 2016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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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017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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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2018 시즌[편집]


전반기때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아시안게임 엔트리 승선 여부가 갈릴것으로 보인다.

3월 24일 개막전 두산과의 경기에서 9회 말을 1이닝 무실점(박건우 3루수땅볼-김재환 삼진-양의지 3루수땅볼)으로 막으며 시즌 첫 세이브를 올렸다. 작년에 자신을 대신해 마무리를 수행했던 장필준이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해서 다시 마무리를 맡게 되었다. 이날 윤성환이 팀 프렌차이즈 통산 123승을 거두었으니 더 의미있는 세이브였을지도.

3월 28일 KIA와의 경기에서 9회 말 6: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으로 막았다.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등판하게 되었다고...

3월 30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9회말 8:8 동점인 상황에서 등판해 2이닝 4탈삼진 무실점을 선보였다. 하지만 팀은 10:8로 결국 패배했다. 그래도 장필준이 없는 상황에서 굉장한 호투를 보여주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4월 1일 넥센과의 경기에 9회초 4:6 상황에서 등판하자마자 고종욱에게 선두타자 홈런을 허용하였다. 하지만 그 후에 박병호, 김하성, 장영석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4월 18일 롯데와의 경기에 8회말 6:3 상황에서 등판하여 이대호에게 쓰리런을 허용하여 장원삼의 승리를 날렸다. 더불어 이날 점심 부산 지역 전직 조폭과 인터넷 방송을 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방송 캡처 방송 캡처2[9] 하지만 이 중 둘은 심창민의 고등학교 선배이다. 안지만 방송에서 밝히길 친구가 밥먹자고 해서 단지 밥먹으러 왔는데 친구 매형이 방송을 찍어서 생긴 일이었다고 해명했다.

5월 4일 8회 1사에 등판했으나 아웃카운트 하나 잡는 동안 장작 두개를 쌓아댔고 결국 장필준이 8회 2사부터 등판해야 했다. 팀은 멀티이닝 세이브에 지친 장필준이 2피홈런으로 무너져 역전패. 팬들은 새가슴 고치게 AG 대신 상무를 알아보라며 맹렬히 까였다.

5월 15일 땐 8회에 나와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8회말에 팀이 2점을 내서 승을 챙겼다. 16일은 8회에 올라와 1이닝 무실점으로 막았으나 9회 장필준이 실점해서 팀은 패배했다.

5월 20일 넥센전 4:3으로 이기고 있던 9회말 1사 2,3루에 올라와서[10] 이택근에게 볼넷[11]을 주었지만 박정음박동원을 각각 플라이로 잡아내서 승리를 지켰다. 심창민은 이날 갓창민이라고 불렸다.[12] 작년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심창민은 4~5월 평자 5~6점대를 기록했다가 그 이후 서서히 올라오다 팀내 불펜 평균자책점 1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니 이맘때는 심창민이 원래 못하던 때였다. 그러니 심창민에 대한 평가는 최소 전반기가 끝날때쯤 하자.

5월 23일 롯데전 7회 1사 1,2루에 등판해 정훈채태인을 각각 중견수 플라이, 2루수 플라이로 잡아내고 8회 김문호를 중견수 플라이, 나경민에게 볼넷, 전준우를 좌익수 플라이, 문규현을 포수 플라이로 잡아내면서 시즌 4번째 홀드와 함께 3.00이었던 평자를 2.83까지 내렸다.

5월 30일 KT전 6회에 올라와서 7회까지 2이닝 1피안타 1볼넷(사구) 5삼진 무실점으로 막았고 팀은 7회말 점수를 내면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시즌4승째 2.83이였던 방어율은 2.64까지 내렸다. 짬뽕 먹방 직후만 하더라도 가열차게 까였으나 5월 들어서 장필준이 부진한 반면 심창민은 2016년 때 못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짬뽕 좀 먹을 수 있지' 하는 식으로 삼팬들의 반응도 바뀌었다.

6월 11일 발표된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에서 빠졌다. 미필 배려를 제외하더라도 심창민은 당연히 대표팀에 승선하리라 예상했기에 충격이라는 반응이 대다수다[13]. 선동열 감독이 밝힌 바로는 WAR도 낮고 연투도 안 돼서 뺐다고.[14] 더군다나 2015 프리미어 12,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등 각종 대표팀에 차출해놓고 정작 선수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가는 아시안게임 대표팀에는 차출하지 않은 것이 황당하다는 반응들이 다수다. 그렇게 못하는 선수를 왜 2015년부터 계속 국대로 뽑았을까?

더 큰 문제는 신인 때부터 1군에서 뛰었던데다가 국가대표 혜택까지 받았기 때문에 2020시즌 뒤에 FA로 풀린다는 것. 군입대를 미룬 상태에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메달을 못 따면 미필 FA가 되며, 이 상태에서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까지 또 미뤘는데 승선을 못하거나 메달을 못 따면 군경팀 입단조차 못하고 꼼짝없이 국방부 퀘스트행이다. 다만 무리해서 차기 대회를 노리기 보다 상무나 경찰청 지원을 통해 군입대를 선택할 가능성도 높다.

6월 12일 롯데전에서 4대 2로 앞선 9회말 등판해 1이닝 무실점 7세이브를 거두었고 6월 14일 롯데전에서 11대 9로 앞선 9회말 등판해 1이닝 무실점 8세이브째를 거두었다. 이닝당 피출루율이 리그 최강의 마무리 정우람의 0.96보다 낮은 0.93을 기록중이다. 이닝당 피출루율이 0점대인 투수는 이 둘뿐.

6월 14일 롯데전에서 11대 9로 앞선 9회초 등판해 1이닝 무실점, 2삼진으로 8세이브를 기록했다.

6월 20일 SK전에서 장필준이 신나게 방화해 놓은 그라운드를 정리하고 1이닝 퍼펙트 3K로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이런 투수를 안 데려간다고??

6월 22일 두산전에서 9대 16에서 13대 16까지 상대가 쫓아오자 부랴부랴 올라와 3루타를 맞아 주자를 분식했지만, 대타 박건우를 초구 유땅으로 돌려세우며 세이브를 기록했다. 농구 1쿼터 끝

7월 1일 넥센전 0대 3으로 지고있는 상황에서 8회초 1사 상황에 등판해 1.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8회는 KK, 9회도 출루를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끝마쳤다.

7월 5일 kt전 2대 2 무승부 상황에서 9회말에 등판해 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이 경기는 결국 타선이 터지지 않아 삼성의 두번째 무승부 경기가 되었다.

7월 8일 두산전 11대 1로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9회말에 등판해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안타와 볼넷을 한번 허용하며 잠깐 흔들렸지만,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7월 10일 롯데전 6대 3으로 앞선 상황에서 9회초에 등판해 삼자범퇴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세이브투수가 되면서 이번 시즌 11번째 세이브를 올렸다.

참고로 6월 11일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엔트리 발표 이후, 9.0이닝 ERA 0.00 WHIP 0.44라는 분노의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날인 7월 11일 롯데전에서도 4대 2로 앞선 9회초에 등판해 단 10구로 깔끔하게 삼자범퇴로 마무리하며 시즌 12번째 세이브를 올렸다.

전반기 마지막경기인 7월 12일 롯데전에는 8회까지 8대 3으로 앞서며 등판하지 않을것 같았으나 9회초 한기주의 방화로 인해 8대 4 2아웃 주자 13루로 세이브상황이 되자 등판하여 3연투를 하게 되었다. 결과는 채태인을 6구승부끝에 잡아내며 시즌 13세이브. 다만 오늘경기가 끝나면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으로 휴식이기 때문에 이해할만한 등판이였다. 전반기 최종성적은 45.0이닝 4승 0패 13세이브 4홀드 ERA2.20 으로 특급 활약을 해주었다.

후반기 2번째 경기인 7월 19일 6:2 상황에서 9회에 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줬다. ERA는 2.15로 더 낮아졌으며, 잘하면 1점대 방어율까지 노려볼 수 있다.

7월 25일 잠실 LG전에서 1:0 리드상황에 1사 2,3루상황의 8회말에 등판하여 무실점을 하며 완벽한 모습으로 국대에 뽑히지 못한 원한을 풀고 있다. 시즌 14세이브를 달성하였다.

7월 26일 잠실 LG전에서 볼넷, 김상수의 실책성 플레이로 인한 안타 이후 오지환에게 끝내기 쓰리런을 맞았다. 정말 오랜만에 블론을 얻었다. 그러나 심창민에게 가해지는 비판은 적은데 그 이유는 김상수가 실책을 하여 1사 1,2루라는 기회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역시 류상수는 어디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경기부터 심창민은 흔들리며 개박살나기 시작한다.선수마저 지배하는 오지배

그 이후 평균자책점이 6점대이다.
8월 8일 경기 0.2이닝 2실점으로 터졌으나 다행히 크게 이기고 있어서 승부에 영향은 없었다.

8월 13일 국대 추가 멤버 선정에서 같은 처지였던 이정후, 최원태와 달리 고영표와 같이 또 물 먹으면서 시즌후 입대를 해야할 듯하다. 오죽하면 STC는 왜 구라안쳤냐고 까인다

8월 14일 넥센과의 5강을 위한 경기에서 1이닝 2실점으로 말아먹으며 다린 러프의 멀티홈런을 의미없게 만들어버렸다.이쯤되면 마무리 교체도 할만하다
객관적으로 심창민의 현재 멘탈은 매우 나쁘며 원래 2를 바라보던 WAR는 1점대 초반으로 급하락했다. 심지어 평균자책점은 3점대 중반으로 1점대를 바라보던 7월 말과는 너무 다르다.

9월 19일 기아전에서 9회초 6대 1로 이기는 상황에서 장작쌓고 최형우에게 동점 만루포를 맞았다. 이후 나온 우규민이 박준태에게 안타맞고 김주찬에게 홈런맞아서 6대 8이 되었다. 경기는 9회 말 김상수의 끝내기 투런으로 승리. 승리해서 망정이지

9월 22일 롯데전에서는 1:1로 비기고있는 7회의 1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해 민병헌에게 2타점 적시타를 허용했다. 이후 8회에도 채태인과 신본기에게 백투백 홈런을 맞으며 무너졌다. 자책점은 2점이었지만 홈런을 2방이나 맞으며 부진한 모습을 이어나갔다.

이날 경기 이후로 평균자책점이 4점대를 돌파했다. 2점대 초반을 찍던 전반기와 비교해서 2배 가까이 올랐으며 3점대를 기록중인 최충연보다도 확실히 높아졌다.

9월 30일 팔꿈치 통증으로 1군에서 제외됐다. 후반기 들어 안 좋았던 게 이 때문일 수도 있다.

10월 6일 팔꿈치 부상으로 김한수 감독이 시즌을 이대로 마치고 휴식을 주겠다고 하며 시즌을 마쳤다.

시즌 후 상무 입대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상무는 만 27세까지 입대가 가능해 나이상으로는 현역을 불사하고 2020 도쿄 올림픽에 도전해도 되지만 결국 안전한 길로 가기로 결정했다. 강한울, 권정웅과 함께 지원하여 3명 모두 합격, 상무에서 군 생활을 하게 된다.


1.10. 군복무[편집]



1.10.1. 2019년[편집]


상무의 투수 운용이 예전보다 나아진 탓에 귀족 마무리 대우를 받았다[15]. 입대 첫 해 시즌 성적은 40경기 38⅔이닝 4패 21세이브 ERA 2.33. 퓨처스 전체 세이브 1위인데 승리 없이 4패만 있다는 게 옥의 티라 하겠지만, 상무에 있는 동안에는 이전까지는 안 던졌던 구종도 연습해본다고 한다. 그럼에도 삼성 2군과의 경기에서는 최고 구속이 149km/h까지 찍히기도 했으며, K/9(9이닝당 탈삼진율)은 무려 13.73이었다.


1.10.2. 2020년[편집]


한편 도쿄 올림픽이 2021년으로 미뤄지면서 상무 입대가 심창민 본인에게는 어찌됐건 좋은 선택이 되었다. 코로나 19로 리그 개막이 늦춰지며 1군에서 활약 가능한 일수도 더 늘어난데다 삼성 불펜이 8월 들어 흔들리는 상황이라 팬들의 기대가 큰 상황이다.

2년차 성적은 18경기 18이닝 11세이브 ERA 0.50.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귀족 마무리 대우를 받았다.

코로나19로 인해 휴가을 쓰지 않아 8월 24일 조기 전역했는데, 원래 전역일인 27일까지는 군인 신분이 유지되기 때문에 28일부터 1군에 등록이 가능하다.


1.11. 2020 시즌[편집]


전역 후 8월 29일 키움전에서 3대 4로 지고 있던 8회말 등판해 2루수 라인드라이브와 내야 땅볼 2개로 이닝을 끝냈는데 타선이 의외로 조상우 상대로 역전에 성공한 뒤 오승환의 호투로 전역 후 복귀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9월 1일 기아전에서 0대 2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4회 말 2사 상황에 등판해 나지완을 볼넷으로 출루시켜 2사 1,3루가 되었다. 하지만 그 후 황대인을 유격수 라인드라이브 아웃으로 잡아내 이닝을 끝냈다. 이어 5회말에도 등판하여 한승택김호령을 뜬공으로 잡아내기는 했으나 황윤호에게 볼넷을 허용하면서 이닝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이승현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다행히 구속은 직구 최고구속 147km, 슬라이더 139km까지 찍혀 과거보다는 구속을 찾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아직까지 삼진이 없고 계속해서 제구가 안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경기감각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9월 22일 1:0으로 앞선 8회말 2사에 올라와서 동점을 내주며 포수 김도환과 함께 역적이 되었다. 구속이 떨어지지는 않고 있으나 릴리스 포인트가 일정하지 않아 밸런스가 계속 깨지는 모습.

9월 26일 SK전에서 8회 동점 상황에 등판해 무실점 후 내려왔는데, 팀이 8회에만 6득점을 하면서 얼떨결에 승리를 거두었다.

9월 29일 KT전에서 6회 1사 1루 상황에서 등판해 6회에는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7회 2사 만루를 만들고 내려갔는데, 이상민이 분식을 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10월 18일 대전 한화전에서 선발 이승민에 이어 2번째 투수로 등판했으나, 1실점을 기록해 이승민데뷔 첫 승리를 날릴 뻔했다.

현재까지 ERA가 무려 7점대다. 내년에 경기 감각을 되찾는것이 매우 중요해보인다.


1.12. 2021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심창민/선수 경력/2021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삼성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자 1군급 선수로 활약한 마지막 시즌.

2. 삼성에서의 성적[편집]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1
삼성
1군 기록 없음
2012
37
39⅓
2
2
1
5
0.500
1.83
26
0
19
41
8
8
1.09
2013
50
50⅓
1
0
2
14
1.000
2.68
35
3
23
57
15
15
1.07
2014
52
38⅓
5
2
0
8
0.714
6.81
42
7
30
38
33
29
1.77
2015
61
67⅓
6
3
0
9
0.667
4.28
54
7
29
91
32
32
1.16
2016
62
72⅔
2
6
25
5위)
4
0.250
2.97
59
6
30
76
29
24
1.17
2017
66
75⅓
4
7
6
16
0.364
4.18
55
12
51
103
36
35
1.31
2018
59
66⅓
5
2
17
5
0.714
4.07
57
12
31
68
32
30
1.19
2019
군 복무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20
23
20⅓
2
2
0
3
0.500
7.52
18
3
20
21
20
17
1.77
2021
59
51⅓
3
2
0
16
0.600
5.08
47
8
38
58
32
29
1.54
KBO 통산
(9시즌)
469
481⅓
30
26
51
80
0.536
4.09
393
58
271
553
237
219
1.29
[1] 이 때만 해도 삼성팬들의 반응은 "어깨가 싱싱하다는거 믿고 뽑았는데 바로 드러눕네?라는 평가와 함께 비관적으로 바라봤다.[2] 3이닝 투구 70개 16타수 8안타 2사사구 4실점[3] 2이닝 투구수37 7타수 1안타(홈런) 3사사구 3실점[4] 2이닝 6타자 1삼진 투구수 21개[5] 류중일 감독 항목에서도 나오지만, 류 감독은 현역 시절 유격수로 뛴 경험이 있기에 수비를 가장 중요시 하는 감독이다. 삼성 특유의 수비 시스템을 구축한 것도 류 감독의 수비코치 시절의 일. 그렇기에 아무리 2군 타격 성적이 좋아도 수비가 안되면 1군 콜업을 잘 시키지 않는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모상기.[6] 실제로는 박근홍이 아니라 김건한이 올라왔다.[7] 2연투 후 하루 휴식을 반복하며 6경기에 출장했다. 즉, 등판-등판-휴식을 반복한 셈.[8] 그거야 외국 선수들은 사이드, 언더에 익숙하지 않으니까...[9] 이 때문인지 아프리카TV에 심창민이라고 검색하면 금지어라고 뜨면서 검색이 안된다.[10] 원래 장필준이 9회말에 올라와 장영석에게 안타를 맞고 마이클 초이스에게 볼넷을 주고 김민성이 번트를 대서 1사 2,3루가 되었다.[11] 이것도 흔들려서 볼넷을 준게 아니라 1루가 비었기 때문이었다. 이택근은 타율 0.311에 득점권에서 4할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 다음은 이택근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박정음, 박동원이라서 1루가 비어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이택근과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볼넷을 줘도 상관없으니 철저히 바깥쪽으로 승부해서 내야플라이를 유도하고 있었다. 결국 거르는 투구나 마찬가지였다. 심창민이 새가슴이어서 볼넷을 준게 아니다.[12] 만약 여기서 끝내기를 맞았다면 심창민보단 1사 2,3루를 만든 장필준이 큰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13] 명단 발표 이전까지는 오지환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했지만 명단 발표 이후에는 심창민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했다.[14] KBO WAR 중 야구팬들이 가장 많이 참조하는 스탯티즈 기준 WAR는 같은 TO의 박치국보다 심창민이 더 높다. 또한 연투도 당장 6월 둘째주에 3연투를 했다. 게다가 심창민은 93년생이고 박치국은 98년생에 공익 입대 대상자라서 군문제조차 심창민이 더 급하다.[15] 한창 군경팀의 혹사 논란이 불거졌던 2010년대 초반에 비해 상무의 투수 운용은 2015년을 기점으로 나아진 편인데, 그렇다고 문제가 될만한 투수 운용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1~3선발 정도는 휴식이 보장되지만 4~5선발은 스윙맨처럼 휴식일이 보장되지 않을 때가 있고, 중간계투는 2연투가 잦은 편이다. 마무리는 그 선수가 누구냐에 따라 다소 갈린다. 보통 1군에서도 이름 있는 선수라면 휴식을 보장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상무 감독도 어느 정도 성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에 점수차가 적은 상황이면 마무리도 연투를 시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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