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게임/한국 비디오 게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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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한국 전자 기기 게임(비디오 게임 등)의 기원에 대한 정보는 확실하지 않다.
개발이 아닌 도입부터 역사를 따지면 1975년 서울 명동에 위치한 미도파백화점 본점[1] 에서 '컴퓨터 TV'라는 이름으로 퐁 클론을 입하한게 한국에서 최초로 등장한 비디오게임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진의 모습은 퐁 캐비닛같아보이지만 설명을 보면 당시 클론이 난립했던 퐁 콘솔을 이야기하는듯 싶다. 이후 70년대말부터 오트론전자에서 퐁 클론을 생산한다. 여튼 이 시기 이후 초반에는 미국, 일본 등 해외의 게임을 들여오는 데 주력했으며 오락실 게임이나 컴퓨터 게임을 막론하고 대부분이 해외에서 들여온 게임이었다. (갤러그 같은 슈팅게임부터 팩맨 같은 게임까지 대부분이 해외산 게임) 혹은 이들 게임을 카피하거나 해킹하는 게임들이 많았다.
1983년 12월 27일, 태광전자는 동아일보를 통해 새로운 가정용 게임기 "매지컴"을 내놓았다고 홍보했다. 게임기의 가격은 95,000원, 게임 카트리지 가격은 25,000원으로, 디자인은 전화기 번호판에 패들이 달린 컨트롤러를 갖고 있는 전형적인 70년대 게임기 모습이었다. 또한 제작사는 이 게임기가 16비트의 마이크로프로세서 CPU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로 보아 마텔 사의 인텔리비전의 변형판 내지 클론으로 추측이 된다. 하지만 외형은 다른 인텔리비전 변종들과는 또 확실히 다르다. 이 콘솔은 1983년에 존재했던 게임기로 확인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출시했지만 한국 시장은 아직 그 기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고, 현재는 기체가 남아있는지 알 길이 없다.
1985년 12월 10일, 대우전자에서는 MSX를 간소화시켜 만든 게임기 재믹스를 발매했다.
1985년 12월 12일, 황선탁이 그의 아들인 황건순의 소프트 개발을 알리기 위해 스태틱소프트가 세워졌다. 1985년부터 87년까지, 황건순은 삼성전자의 8비트 컴퓨터인 SPC-1000으로 PC-6001용으로 나온 게임들을 허가를 받지 않고 컨버전해서 이식했다 (매일경제에 황건순의 모습이 나온다.). 현재도 스태틱소프트는 황건순이 2002년에 E-Wall이란 이름으로 바꿔 소프트웨어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비슷한 때 삼미 그룹도 삼미 퍼스컴을 개설하여 SPC-1000으로 제비우스, 토이야, 디즈니 랜드 등을 컨버팅했다,
한국게임으로 그 존재가 확실한 최초의 게임은 토피아가 1986년 배급한, MSX용 게임 공모 1,2집이다.[2] 그렇지만 이 게임들은 제목 그대로 공모전에서 당선된 게임들을 묶은 합팩이기 때문에 최초의 상업용 게임으로 인정하기 힘들어 잘 언급되지 않는다. 게다가 현재 게임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3][4]
이후 다시 토피아가 1986년 금성 FC-150용으로 개발했다고 하는 '인베이다 38'과 '후르츠팩'이라는 게임이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이 게임은 커버 외에는 존재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제목만 봐도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후르츠 패닉의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최초의 게임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후 2020년 8월에 '인베이다 38'을 입수한 분이 있는데, 이 분에 따르면 1985년 7월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서 실린 작품이고, 일본 전파신문사 마이컴 1984년 12월호에 실린 작품을 발췌 편역한 거라고 하는데 결론적으로는 그냥 당시에 흔했던 무단 복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후르츠팩' 역시 그럴 가능성이 크다. #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한국에서 제대로 제작된 최초의 상업게임[5] 은 1987년 애플2용으로 개발된 신검의 전설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외에 언급되는 게임으로 MSX 용으로 제작된 슈팅 게임 그날이 오면은 거의 동시기였으나 1편이 발매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비교대상에 세울 수가 없고[6] , 역시 MSX용으로 나온 대마성 녹색의 기사 편은 1988년 작이다. 그 외에 한국에서 최초로 제작된 게임으로 추정되는 게임인 재미나의 형제의 모험이 1987년에 등장했으나, 이건 누가 봐도 마리오브라더스의 이미테이션 게임이었기 때문에 최초의 게임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고, 하드코어 게이밍 등의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을 볼 때 시기적으로 미세하게 신검의 전설이 앞선 것으로 알려져있다. 신검의 전설이 8월, 형제의 모험이 12월 작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반에는 실험작에 가까웠으며, 상용화에 성공하고 상업적 이익을 거둔 게임은 IBM으로 출시된 폭스 레인져가 최초라고 일컬어진다. 이후 게임 제작 붐이 일어났으며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등이 흥행을 거두는 데 성공하며 한국 게임 산업은 수입 일변도를 벗어나 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 초기 게임의 역사에 관심이 있고, 발품을 팔기 싫다면 기본적인 영어실력이 필요하다. 왜냐고? 한국 초기 게임의 역사를 가장 제대로 정리해놓은 곳은 한국 사이트가 아니라 영어권 사이트이기 때문이다. 특히 하드코어 게이밍 101[7] 사이트의 한국 게임의 역사 카테고리에서 다루고 있는 자료들의 상당수는 현재 한국의 어느 홈페이지에서도 찾을 없는 자료들이 많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사이트 내용을 작성한 사람은 Derboo라는 독일인으로 한국 게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며, 어떤 사람이 그에게 직접 받은 메일 답변에 의하면 사실 그가 연구한 자료들도 국립중앙도서관 등에서 찾은 게임 잡지 등에서 참고한 것이라고 한다.[8] 즉 자료 자체는 국내에 산재해 있지만 한국인 대부분이 이런 연구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국내 사이트 등에선 찾기 힘든 것이다. 게다가 너무 오래된 게임과 관련된 자료는 지금와선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TV광고의 경우, 하드웨어까지 포함했을때 한국 처음으로 TV전파를 탄 게임상품 광고는 80년대 후반 대우전자가 MSX를 발매하면서 내놓은 이 광고가 최초로 추정된다. 이후에도 한동안 한국TV에 송출된 게임 관련상품 광고는 주로 콘솔 하드웨어쪽 광고였다. 한국 최초의 단독 게임소프트웨어 TV광고는 현재 확인 가능한 건 1994년에 송출된 메가드라이브 용 소닉 3이다.[9]
다행히 2012년도에 '한국 게임의 역사'라는 제목의 책이 발간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도 올라가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한국 게임의 역사 다만 미출시작도 다루고 있는 하드코어 게이밍 페이지에 비하면 비교하는게 안타까워질 수준으로 자료가 적지만...
과거 국산 게임들을 전부 도매금으로 해적판으로 몰아붙이며 한국 게임업계를 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10] 8~90년대 당시 한국 게임업계의 열악한 현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당시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기 전이었던 시절이었으며 닌텐도도 한국 시장에 관심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게임회사들이 닌텐도와 라이센스를 맺기는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었으며 그로 인해 당시 제작된 콘솔 게임들은 부트렉 게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지금과는 달리 군사독재정권이었기 때문에 창의성이 억압되었던 시절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게임성이 나쁘거나 표절을 한 경우는 흑역사급이 될 수밖에 없겠지만, 지금보다 나라가 가난했으며 훨씬 게임에 대한 인식이 나쁘고 개발 환경도 열악하던 시절 게임을 만들었던 개발자들의 노고를 폄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2. 연혁[편집]
- 아래 게임들은 기본적으로 출시된 패키지 게임 위주로 언급되어 있다. 미출시작/리메이크작/동인게임/모바일 게임/온라인 게임의 경우 특기할만한 사항이 있는 경우만 언급.
2.1. 1980년대[편집]
2.2. 1990년대[편집]
2.3. 2000년대[편집]
2.4. 2010년대[편집]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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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의 명동 롯데영플라자.[2] 2집표지의 일러스트는 남코의 랠리X의 팩에 있는 일러스트를 도용한 것이다.[3] 1편 타이틀에 있는 제목 PONPOKO를 보면 너구리(게임)의 아류작 내지는 해적판이 있었을거라고 추측은 되지만 이 역시 제대로 알 수는 없다.[4] 일단 하드코어 게이밍 101에 따르면 국내 공모작은 맞는 듯 하다. 2집의 1위 작품인 '꿈속의 탈출'은 장창수가, '컨닝'은 안종선, '미사일시뮬레이터'는 박태현이 만든 거라고. #[5] 비상업 동인 게임까지 포함하면 감당을 할 수가 없다.[6] 일반 발매가 된 것이 확실한 그날이 오면 2는 1989년, 혹은 1990년이다.[7] 종종 매니악한 게임도 다루는등 레트로 게임을 다루는 영문권 웹사이트들에서는 영어만 된다면 읽을만한 알찬 특집기사들도 많다.[8] 그가 답변한 메일도 유창한 한국어로 작성되어 있었다고 한다.[9] 어스니아 스토리도 TV광고에 나왔을거란 추측은 되지만 이 역시 제대로 알 수는 없다.[10] 특히 일본 넷 우익들이 이러한 주장을 펴는 경향이 크다.[11] 여기 소속된 인물이 컴온 베이비의 이상헌, 킹덤 언더 파이어로 유명한 판타그램의 이상윤, 니모닉스의 이규환 등이다.[12] http://jampuri.egloos.com/4529015[13] 게임챔프 1993년 2월호.[14] 도술동자 구구(magic kid googoo)가 새한에서 출시했다고 하는데, 재미나는 새한상사의 게임 브랜드 이름이고, 애초에 열림기획이라는 회사 자체가 새한의 게임업계 철수 후에 그 개발팀이 모인 회사다.[15] 하지만 시나리오를 쓴 이문영의 회고에 의하면 사전 동의도 없이, 게임 시나리오의 태반을 수정해서 게임이 만들어졌다고.[16] 마릴린 먼로라거나, 스티븐 시걸이라거나, 마이클 잭슨, 슈바이쳐 등등. 웃긴 것은 진도개라고 나오는 개는 사실 미국 영화 빙고의 포스터를 따라한 것이다.[17] 세개의 별, 하나의 별, 마지막이 일곱개의 별이다.[18] 원래는 공동개발 형태로 트윔 직원이 대만에 파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의견충돌로 결렬.[19] 한국 최초의 MUD는 단군의 땅을 만든 KAIST 학생들이 제작한 KIT머드였으나 외국 엔진이었고, 영어였으며 비상용이었다. 쥬라기공원도 LPMUD라는 해외 MUD엔진을 한글화 한 게임이 기반.[20] 미리내 소프트의 직원들이 참여한 회사로 별개 회사인지 미리내 소프트의 다른 이름인지는 불명.[21] 한국최초의 대전액션게임인 1991년작 장군의 아들은 콘솔(패미컴)으로만 나왔다.[22] 시나리오를 만든 류재용은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다. 여담으로 저 시나리오 공모전은 정부 산하의 정보문화센터에서 주관했는데, 저곳에서 수상한 작품중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낸 작품이 이 망국전기라고 한다. 대상작은 일지매전 만파식적.당시 기사[23] 90년대 내내 영웅신화라는 게임의 광고를 게임잡지들에 게재하였으나 정작 나온 건 없었는데, 사실 히메야 소프트의 성인용 게임이던 7영웅 이야기 1편을 이리저리 삭제한 한글 정발판이었다.[24] 다만, 의외로 일본에서만은 원래 제목대로 수출되었다.[25] 주식회사 쌍용과 쌍용정보통신, 모닝글로리가 합자한 회사였다.[26] 실질적으로는 ANCO의 게임 KICK OFF 98이 기반이다.[27] ST엔터테인먼트로 이름을 바꾸고 발매했다.[28] 전형적인 애국심 마케팅인데, 일본군으로도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이 엽기적이다.[29] 오락실 아케이드 게임은 리듬게임 열풍 덕분에 2002년 초까지 하향세를 그나마 덜 받았다. 그 이후로는 온라인 게임이 대중화를 넘어 보편화 단계로 접어들면서 오락실도 패키지 게임과 함께 본격적으로 몰락되기 시작했다.[30] 원래는 1의 제작사인 트릭이 개발하고 SKC가 발매할 예정이었으나 1997년부터 2년반동안 7억 5천만원을 쏟아부었지만 게임이 엎어졌다., 결국 SKC에서 위자드 소프트가 분리되어서 이 게임을 이어받고 총제작비는 35억까지 불어난다.[31] 정확하게는 바로크의 엘리멘탈 아츠이지만, 수입명이 저랬다.[32] 한국에서는 2002년 2월 22일에 발매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늦은것도 아니었다.[33] 원래는 나래 디지털엔터테인먼트에서 개발했으나 개발도중에 제작사가 부도났고, 제작진을 유통사 트론웰이 투자를 해서 완성.[34] 월야환담 탄월야라는 이야기도 있다. 일단 동년 발매는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