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러/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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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공산군 병사들은 로서아를 위한 전쟁에 강제로 끌려나왔다.[1]

1. 개요
2. 역사
2.1. 조선 ~ 일제강점기
2.2. 광복 이후 ~ 냉전
2.3. 탈냉전 ~ 21세기
3. 원인
3.1. 러시아(소련)와의 역사적 악연
3.2. 러시아의 반서방과 친북, 친중적인 태도
3.4. 블라디미르 푸틴의 독재와 인권 탄압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반러 감정에 대한 문서이다.

소련 시절인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러시아와의 적대관계가 두드러졌고 반공 정서가 강했던 한국 내 반소 감정도 상당했다.[2] 이후 한러수교와 탈냉전 기조에 의해 한러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반러 감정도 상대적으로 옅어졌지만,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사건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반러 감정이 부활했다.


2. 역사[편집]



2.1. 조선 ~ 일제강점기[편집]


러시아 제국과 국경을 맞댄 조선시대부터 친러와 더불어 생겨났다. '애원성'이라는 함경도의 민요 중에는 이별할 때는 울면서 떠난 님이 러시아 여인을 첩으로 둔다며 좋지 않게 보는 인식의 가사도 있다. #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은 그 거사의 수년 전까지만 해도 러일전쟁에서 일본을 응원할 정도였다. 동양평화론 문서를 보면 감옥에서도 유럽의 국가 중 러시아를 가장 나쁘게 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세기 초반에는 러시아 내전 당시 러시아 적군이 독립군과 교전한 사건도 있어서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가 아닌 이상 독립운동가들도 소련을 좋게 보지 않았다. 굳이 독립운동가가 아니더라도 일제강점기 당시 반공을 표방하던 일본 제국의 영향으로 공산주의 국가였던 소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다.#

이오시프 스탈린고려인 강제 이주도 반러 감정을 불러왔다.[3]


2.2. 광복 이후 ~ 냉전[편집]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분단이 일어나며 소련이 한반도 북부에 소련군정을 세우자 제정 러시아와 소련을 동일시 하는 민족주의적인 반소 감정이 존재하였다. 실향민의 경우 시계를 빼앗는 식으로 약탈을 일삼는 이들을 '로스케'라고 부르며 경멸하는 경우가 많았다.# # 한설야, 춘원 이광수 같은 경우 해방 전에도 소련군이 아닌 러시아군으로 평안도, 함경도의 사람들을 겁탈하고 러시아 군인의 아이를 밴 여자가 자결을 하는 등의 증언을 전하기도 하였다. #

한국의 민주화 운동가인 함석헌조차 정치적 강요를 않겠다는 소련군 사령관의 말과 달리 북한 땅이 소련 일색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보았고, 이에 동조하며 권력을 얻어가는 김일성을 위시한 공산주의자들을 "소련 세력에 등을 대고 하는 비양심적인 무리"라고 칭할 정도였다. #

하지만 2021년만 해도 40대 이하의 세대를 중심으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한국인 상대의 강간에 대한 증언 등 이런 비극을 두고 예쁜 여군 누나가 '남자 사냥'의 일환으로 범해주신다느니 좋은 러시아의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느니 남자에게 좋은 거 아니냐며 희화화 되는 수준이었다.

독소전쟁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떠올리고 실제로는 있을 수는 있겠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한반도에서 일어난 사건인데도 굉장히 인지도가 낮았다. #1#2#3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사건 때문에 신의주에서는 돌과 몽둥이를 들고 반소 시위가 일어날 지경이었으나 탱크와 비행기, 기관총이 동원되어 진압당했다. 이 사건을 신의주 반공학생의거라고 하며, 70년대 초반까지 이를 한국에서 기념하였다.

당시 소련군정 사령관이던 이반 치스차코프는 조선인들이 저항하면 조선인의 반을 교수형으로 죽이겠다고 한 적도 있다. 그래서인지 평양 탈환작전 이후 대한민국이 평양을 탈환하자, 평양 시민들이 김일성과 이오시프 스탈린의 사진을 마구 짓밟는 영상도 남아있다.#[4]

미군정의 통치 아래 있던 38도선 이남도 반소감정이 있었는데, 이는 이승만정읍발언에서 살펴볼 수 있다. 신탁통치 오보사건 역시 반소 감정에 영향을 주었다.

가장 반소 감정이 심했던 때는 소련의 남침 승인과 지원으로 6.25 전쟁이 일어났던 50년대이다. '적색제국주의'를 앞세운 소련이 중공을 앞세워 침략을 감행케 하여 통일을 방해했다는 시각마저 있었다.# 6.25 전쟁은 한반도 전역을 차지하려는 소련이 북한 공산주의자들을 사주하여 일으킨 전쟁이라는 것이 냉전기 한국에 퍼져 있던 통설이었다.제4차 교육과정 당시 국사 교과서

이를 바탕으로 추후 5~60년대의 동유럽의 반소 봉기를 지지하는 시각도 있었다. 《꽃》으로 유명한 시인 김춘수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 이런 시각을 바탕으로 쓰인 시이다. 바르샤바 조약군의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봄 무력 진압 당시 전국적으로 이를 규탄하는 궐기 대회가 열렸는데, 무려 50만명이 참여했다.#

1980년에는 대한민국이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항의로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했고, 1983년에는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까지 일어나면서 반러 감정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북방정책을 추진하던 당시에는 소련도 페레스트로이카 등으로 온건한 모습을 보였기에 국민적 인식이 나쁘지 않았다. 1988 서울 올림픽 때는 미국과 소련의 경기에서 대학생 응원단들이 소련을 응원했던 일화도 있었다.


2.3. 탈냉전 ~ 21세기[편집]


소련이 붕괴되며 한국전쟁의 내막이 구소련 기밀문서를 통해 공개되는 등 반소·반러 감정의 원인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사건도 있었다. 소련이 무너지고 집권한 보리스 옐친은 친서방 성향[5]의 인물이었고 한국과의 관계도 중시하던 인물이었다. 옐친은 6.25 전쟁, KAL기 격추 사건 등 소련 시절 저질러진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또한 6.25 관련 문서들을 대거 공개하여 과거 소련이 주장하던 북침설을 전면 부정했다. 1995년 러시아는 북한과의 조소동맹조약을 폐기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까지의 상황을 보면, 공산정권 때보다는 한러관계는 정상화되었다. 2015년 BBC Pew Research Center의 여론조사 자료에선 한국 국민들의 러시아의 대한 감정은 긍정 46%, 부정 46%, 중립 11%로 긍정과 부정이 같게 나왔다. 한국은 조사 대상국 40개국 중 러시아에 대해 베트남(75%)·가나(56%)·중국(51%)에 이어 4번째로 호의적인 의견이 많은 나라로 조사되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안현수빅토르 안이 된 뒤 좋은 성적 및 국가적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자 한국 대신 러시아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피겨 스케이팅 여성 종목에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김연아의 금메달을 강탈해갔다!"는 소리가 나온 판정 논란이 일어나서 러시아를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러시아 국가대표팀 도핑 스캔들이 폭로되고 러시아 체육계 자체에 부정적인 인상을 가진 사람이 늘었으며 빅토르 안 역시 스캔들에 연루되어 신뢰를 잃었다.

2019년 러시아 군용기 독도 영공 무단 침범 사건으로 반러 감정이 생기기도 했다.

특히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카밀라 발리예바 도핑 의혹과 관련해 소트니코바가 발리예바를 두둔하는 망언을 하자 한국인들로부터 반러 정서와 소트니코바를 향한 분노가 다시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터지면서 반러가 주류로 잡혔다. 2022년 민주주의 연합 재단(alliance of democracies)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대러 감정을 조사한 결과, 긍정적 감정이 10%, 부정적 감정이 73%로 나왔다. 일본(72%)·미국(71%)·독일(71%)보다도 부정으로 응답한 비율이 높고 심지어는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긍정적 감정(9%), 부정적 감정(75%)과도 그다지 차이가 없다.#

친러 성향을 가진 인물들도 이 일로 인해 반러로 돌아선 경우가 있을 정도다. 그 영향으로 재한 러시아인들은 한국인들의 증오범죄를 우려하여 대다수가 반푸틴 성향이 된 상황이다. 재한 중국인들이 반중공 성향인 구화교와 친중공 성향인 신화교 및 재한 조선족으로 나뉘어 서로 팽팽히 대립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6]

다만 한국인들의 반러 감정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 및 통합 러시아당에 한하고 있으며, 러시아인들이 전쟁 반대 시위 및 동원령 반대 시위를 벌이는 모습을 언론에 많이 접했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와 국민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이 강하다. 러시아 정부 또한 한국을 비우호 국가로 지정한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제재를 취하지 않고 있으며, 한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전쟁범죄가 나날이 드러나고, 전쟁 이후에도 푸틴 지지율이 80%가 넘어간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한국의 혐중처럼 일반 러시아인들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지고 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이는 대부분의 독재국가에서 내는 통계가 그렇듯 곧이곧대로 믿으면 곤란하다. 당장 그 전쟁의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국가 간에는 사이가 최악일지언정 국민들은 대다수가 상대 국가의 국민들에게 호감을 표했다. 러시아인들은 79%가 우크라이나인에 대해 호감을 표했고, 우크라이나인들 역시 83%가 러시아인에 대해 호감을 표했을 정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국 인터넷 상에는 반러 감정이 보편화 된 편이나, 그중에서 반러 성향이 유독 강한 사이트로는 밀덕치고는 의외로 군사 마이너 갤러리, 에펨코리아가 있다.

3. 원인[편집]



3.1. 러시아(소련)와의 역사적 악연[편집]


상술했듯 대한민국과 러시아의 역사적인 관계는 결코 좋지 않다. 첫 만남부터가 나선정벌이었다.[7] 또한 러일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일본 제국에게 밀려나긴 했지만, 제정 러시아 시절에는 부동항을 차지하기 위해 한반도를 호시탐탐 노렸다.

하지만 현대 대한민국과 러시아 간의 악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소련이 한반도 북부를 점령하여 소련군정을 세우며 남북분단을 야기하고 한국인들을 상대로 약탈과 강간을 일삼으며, 북한김일성 정권 수립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면서이다. 특히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인 6.25 전쟁 당시 소련의 개입은[8] 한국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다. 또한 냉전 시기 대한민국의 주적인 북한의 후견인으로서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였고 반세기 동안 한국의 UN 가입을 방해했으며 기어코 1983년에는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을 일으켜 무고한 한국인들을 대량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그나마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적 협력을 이어갔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 한국인들도 심리상 북중일에 비해 비교적 거리가 있는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다소 완화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러시아는 동시에 대북제재를 반대하고 북한에 무기를 지원하는 등 여전히 한국 안보의 적성국으로서 행보를 이어갔다. 2022년 러우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는 친한 국가'라는 러뽕들의 사실 왜곡에 대한 반작용으로 과거 구 소련이 대한민국에 행한 만행들이 다시 재발굴됨에 따라 한국에서 반러 감정이 더욱 증폭되었다.


3.2. 러시아의 반서방과 친북, 친중적인 태도[편집]


기본적으로 제1세계에 속하여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소련 시절 외교정책을 그대로 담습하여 반서방에 기반한 외교를 하는 것은 결코 달갑지 않은 사실이다. 더군나나 최근 신냉전이 심화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커지고 있다. 현재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는 소련 때에 비해 소원해진 것은 사실이나, 아직까지 러시아는 친북적 태도가 남아있다. 북한 관련 유엔 결의안이 상임이사국인 러시아 때문에 불발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긴밀한 중러관계를 보고 반중 감정에 기반하여 반러 감정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9] 이 때문에 온라인 상에서 러시아를 옹호했다가 간첩이나 조선족, 친중으로 몰리기도 한다.


3.3. 반공주의[편집]


주로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생겨나며, 일부 젊은 층들도 이러한 관점으로 반러 감정을 가진 경우가 많다. 일부는 러시아가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라는 오해에서 기인한다. 또한 냉전 시대에 역사 교육을 받아 일단 기본적으로 편견이 생겨버린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 세계사 교육 과정의 부족으로 인해서 특별히 전쟁사나 러시아의 역사에 관심이 없는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오해는 널리 퍼져있다.[10]

물론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러시아의 뿌리는 공산주의다.'라고[11]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상술했듯 현대 러시아가 여전히 친북/친중/반서방적인 외교를 고수한다는 점, 탈공산화를 다른 동유럽 국가들만큼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다는 점,[12] 그리고 세계 각지의 친러 독재정권을 비호한다는 점[13]도 국내의 반러 감정에 불을 지핀다. 반미/반서방 국가이며 권위주의/독재 정치라는 점에서 중국, 북한과 비슷한데, 이러한 유사성이 과거 공산권의 수장이었던 소련의 역사와 맞물리면서 러시아의 공산주의 국가 이미지를 강화한다.[14]


3.4. 블라디미르 푸틴의 독재와 인권 탄압[편집]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하는 국가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언론 탄압이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지며, 2011년에는 총선 득표율도 조작했다.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부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3.5. 러시아 제국주의[편집]


대한민국은 과거 일본 제국의 식민지배를 겪었으며 러시아/소련의 제국주의/팽창주의에 의한 피해도 겪었기 때문에 한국 내에는 제국주의 사상에 대한 반감이 크다. 따라서 21세기에도 제국주의 색채를 보이며 시대착오적인 외교로 일관하는 러시아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러시아는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에 개입하여 조지아를 굴복시켰고, 2014년에는 크림반도합병하고 돈바스 분리주의자들을 사주해 돈바스 전쟁을 일으켰다. 마침내 2022년에는 우크라이나침공하면서 반러 감정이 대두되었다.[15]


3.6. 아델리나 소트니코바[편집]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올림픽 피겨 역사상 최악의 편파판정으로 김연아의 금메달(=올림픽 2연패)를 무산시킨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있어 아폴로 안톤 오노 이상으로 불구대천의 원수이다.[16] 만약 푸틴 정권이 무너진 후 푸틴 정권 차원에서 해당 편파판정을 주도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소트니코바의 금메달이 러시아의 신정부에 의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할 가능성이 있다.


4. 관련 문서[편집]


[1] 6.25 전쟁 당시 제작된 대북전단. 그림을 살펴보면 '로서아제국주의'가 중공북한을 공산침략전에 밀어넣고 있다.[2] 1982년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국가에서 소련이 12.8%를 기록하여 일본(36.5%), 북한(34.1%)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중공(1.8%)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았다.#[3] 1937년 고려인 17만 2481명이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했고(우즈베키스탄 76,526명, 카자흐스탄 95,256명), 1938년까지 4만 명이 사망했다.[4] 덤으로 '우리의 형제 자매를 서로 보지 못하게 하고 조국을 팔아넘기려던 역적 김일성과 스탈린에 대한 시민의 분노는 폭발했다.'라는 음성도 같이 나온다.[5] 지금의 반서방 러시아를 만든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소련 붕괴 직후의 러시아는 친서방적이었다.[6] 전자는 조상이 청나라 말기나 중화민국(중국 대륙) 시절에 이주해온 경우이며, 후자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이주해온 경우다. 재한 중국계 러시아인들은 성향에 따라 전자를 지지하기도 하고 후자를 지지하기도 하며 중립을 지키기도 한다.[7] 나선정벌의 경우 병자호란에서 패배하여 청나라의 조공국이 된 조선이 청나라에 의해 억지로 러시아의 적이 된 전쟁이었지만, 만약 병자호란에서 조선이 승리하여 그 후유증으로 청나라가 조기에 멸망했다면 해당 대체역사에서는 러시아가 만주를 정복한 후 조선까지 침공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나선정벌 당시 러시아는 만주의 퉁구스계 민족들을 수탈과 탄압의 대상으로 삼았다.[8] 비록 소련군은 비공식적으로 참전했지만, 김일성에게 남침 허가를 내린 것은 스탈린이었고 소련제 무기를 지원한 것도 스탈린이었다.[9] 중소관계를 의식하여 여전히 중러관계가 적대관계나 준적대관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러시아와 중국이 사이가 좋지 못했던 것은 냉전 때 일이고, 관계가 개선된지 오래이다. 아무르 강 분쟁도 이미 해결되었고, 현재 미국에 맞서기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국민감정 역시 상대국 국민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다. 물론 푸틴 정권의 폭정을 피해 해외로 망명한 러시아인들은 중공에 대한 인식이 최악이며, 중공의 폭정을 피해 해외로 망명한 중국인들 또한 푸틴 정권에 대한 인식이 최악이다.[10] 소련은 1991년에 이미 해체되어 없고 러시아 연방 공산당 역시 야당에 불과할 뿐 푸틴을 대통령으로 한 지금 러시아 집권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은 우파 정당이므로 현 러시아는 공산주의 사상과 거리가 멀다.[11] 네이버 뉴스/댓글에서 이러한 주장을 매우 많이 볼 수 있다.[12] 우크라이나, 조지아, 발트 3국 등지에서는 공산주의 상징물을 금지하고, 공산당 고위직이나 KGB 요원이 공직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아예 법으로 막아놨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러시아에서는 KGB 요원이 대통령을 하고 있으며, 공산주의 상징물에도 딱히 거부감이 없다. 또한 역사 교과서에서 소련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삭제되는 등 러시아에서 공산주의가 완전히 청산되려면 갈 길이 멀어보인다.[13] 구 소련이 친소 사회주의 독재정권을 비호했던 것과 유사하며, 현재 반러로 돌아선 동유럽 국가들을 제외하면 과거 친소 성향이었던 나라들이 현재에도 친러 성향인 경우가 많다.[14] 사실 중국도 이미 경제적으로는 공산주의가 아니다. 한국의 반공 정서도 경제 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보다 정치 철학으로서의 공산주의에서 더욱 기인한다. 따라서 공산권 국가에서 만연했던 공산당 일당독재는 여전히 러시아 정계의 현실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15] 당연하지만 러시아가 불법적으로 합병한 크림반도 지역, 동남부 우크라이나 지역을 한국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표기한다.[16] 또한 또 다른 공범인 러시아 심판 알라 셰코브소바 역시 피겨스케이팅 판의 제임스 휴이시로 비판 받고 있어서 사실상 소트니코바와 함께 원수 취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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