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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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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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
安賢洙 | Ahn Hyun-soo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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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빅토르 안 (Victor An, Виктор Ан)[2]
출생
1985년 11월 23일 (38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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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1985~2011)
[[러시아|

러시아
display: none; display: 러시아"
행정구
]]
(2011~현재)
신체
172cm, 70kg[3], O형
학력
명지초등학교 (졸업)
명지중학교 (졸업)
신목고등학교 (졸업)
한국체육대학교 (체육학 / 학사)
종목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주종목: 1000m, 1500m → 500m, 1000m[4]
소속
성남시청 (2007~2010)
CSKA 모스크바 (2011~2020)
종교
불교
수훈
러시아 대조국공훈훈장 (2014)
현직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코치[5]
가족
아버지 안기원(1957년생)
3남 1녀 중 첫째[6]
배우자 우나리(1983년생)[7]
안제인(2015년 12월 29일생)[8]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선수 시절
2.2. 빙상 연맹과의 갈등과 관계
2.3. 쇼트트랙 파벌 갈등
2.4. 귀화
3. 지도자 시절
3.1. 2020-22 중국 국가대표팀 지도자
3.2. 2022
3.3. 2023 한국체육대학교 지도자
4. 평가
4.1. 관련 어록
6. 논란
7. 수상 기록
7.1. 주요 국제대회 성적[9]
7.2. 올림픽 결과
7.3. 세계선수권 성적
7.4. 월드컵 성적
8. 개인 기록
9. 수훈과 명예 대사
10. 방송 활동
11. 광고와 화보
12. 그 외 활동
13. 여담



1. 개요[편집]



파일:안현수 토리노.jp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시절
2001-02~2007-08 (7시즌)

파일:빅토르 안 소치.jpg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쇼트트랙 국가대표 시절
2011-12~2014-15, 2016-17~2017-18, 2019-20 (7시즌)
대한민국, 러시아의 前 남자 쇼트트랙 선수이자 現 쇼트트랙 지도자다. 쇼트트랙 역사상 유일하게 올림픽 전종목에서 금메달을 땄고, 최초로 한번의 올림픽에서 전종목 메달을 땄으며[10], 세계선수권 최다 우승 기록(6회)과 남자부 최다 연속 우승 기록[11]을 가지고 있다. 2001-02 시즌 솔트레이크 시티 동계올림픽 대표팀에 특별 차출된 이후 2007-08 시즌까지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이후 러시아로 귀화하여 2011-12 시즌부터 러시아 국가대표로 활동[12]하다가 2020년 4월 27일, 고질적인 무릎 부상과 추가적으로 이어진 부상으로 은퇴를 선언했고 지도자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13] 은퇴 후 2020년 10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중국 국가대표팀의 테크니컬 코치 및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수석코치로 활동했다.


2. 선수 시절[편집]



2.1. 대한민국 선수 시절[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안현수/대한민국 선수 시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빙상 연맹과의 갈등과 관계[편집]


안현수는 2022년 3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한 빙상연맹과의 불화설과 불이익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그의 귀화 원인으로 국내외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언급된것은 빙상연맹과의 갈등이다.[14] 하지만, 현재까지 빙상연맹과의 갈등이 계속된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의 귀화에 2001~2011년까지의 빙상계의 양대 파벌의 상황과 갈등이 작용되었다 할지라도 그 이후 안현수와 대한 빙상계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선수들이나 관계자들하고도 대체적으로 잘 지냈다. 2017년 10월 러시아 빙상 연맹은 안현수의 한국빙상연맹과의 관계 덕분에 한국에서 훈련이 수월했다고 러시아 매체 스포츠 익스프레스(Sport-Express) 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또한, 은퇴를 앞두었을 2018년 전후로 국가대표 지도자 논의[15]도 잠시 있기도 했다.

하지만, 2023년 1월 빙상지도자 연맹이 그의 국내지도자 활동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어 여론으로 낙마시켰던 것으로 보아 파벌간의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성남시청 코치 채용과정에서 그의 한국 지도자 활동을 반대한 빙상지도자 연맹에 대해 2월 9일 한겨례는 한국 빙상 지도자 전체의 의견이 아니며,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폐쇄적인 단체라고 지적하고 있다. KBS 및 일부 언론에서는 파벌갈등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파일:201505121527194866_99_20150512152807.jpg

파벌 갈등의 대표적 일화는 2006년 토리노 올림픽 전후의 한체대 비한체대 파벌 싸움과 2006년 세계선수권 3000 m 이호석과의 출동과 그 이후 안현수 부친 안기원씨와 빙상연맹 부회장의 공항 폭행 사건이다.[16]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때 안현수는 계주에서 막판 대 역전극을 보여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당시 비 한체대의 다른 선수들은 따로 모여 그들의 지도자 이준호 해설위원에게 절을 하는 세레모니를 했고, 안현수 혼자 박세우 코치에게 가있는 장면이 그대로 중계되고 뉴스로 보도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안현수는 2011년 4월 귀화 직전 인터뷰 (이영미의 헤럴드 칼럼) 로 언급 했다.

토리노 올림픽 때가 최고로 심했어요. 외국 선수들은 한국팀 상황이 너무 이상하다고 수군거리더라고요.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였던 제가 1위로 들어오니까 아주 '잠시' 대표팀 선수들이 부둥켜안고 환호성을 질렀었죠. 그러다 슬며시 머쓱해진 거예요. 말도 안 했던 선수들끼리 부둥켜안고 있으니 웃긴 거였죠. 결국 전 박 코치님한테로 가고 나머지 선수들은 송 선생님과 기쁨을 나눴어요. 솔직히 선수들과는 악감정이 없어요. 우리가 무슨 죄인가요? 모두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줄 긋기에서 선수들만 희생하는 거죠.


토리노 올림픽 때 당시 상황은 2015년 5월 박세우 감독 인터뷰에서도 확인된다.

"그 때 당시만 해도 현수가 본인은 금메달을 땄고 군면제도 받았기 때문에 '계주는 열심히 안 탈 것이다', '메달 따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는 얘기가 있었다"며 이로 인해 안현수가 괴로워했다고 밝혔다. - (2015, MBC 휴먼다큐사랑, 파이낸셜 뉴스)


당시의 파벌 갈등은 선수들의 사이까지 이간질 시켰고, 집단 견제로 이어졌다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던 사건들이고 안현수가 당시 대한 빙상 연맹 지도자들과 대립을 했던 사건은 2005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폭행 사건이후 였다.

직접적 갈등은 2005년 7월 폭행 사건 이후 승부조작과 폭행 방조로 물러났던 감독의 재선임 문제였다. 당시 윤재명 감독 선임을 반대했던 선수와 학부모는 안현수, 최은경[17], 성시백[18] 이었고 코치는 전재수, 박세우였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대한 빙상 연맹 지도자들의 총 사퇴를 요구 했고, 안현수와 최은경은 토리노 올림픽 불참을 선언했다. 결국 윤재명 감독의 임명은 취소되었지만 전재수 코치는 여자 팀 코치직에서 해고되고 6개월 자격정지를 당했다. 이로 인해 송재근 코치가 남자 팀 감독에, 남자 팀 감독이 었던 박세우 코치가 여자 팀 감독을 맡았다. 전재수 코치의 해임에 반대한 안현수는 당시 한국 체육대학교에 자퇴서까지 제출하고 캐나다 유학을 간다고 할 정도로 갈등은 최악으로 향한다. 당시 안현수와 최은경은 전지 훈련까지 거부했다.

이 사건의 핵심은 폭행 문제빙상연맹 지도자들의 부도덕함 이었다. 하지만, 파벌 갈등으로 평가되었다.

이후 성남시청 실업팀을 택하면서 전명규 교수와의 불화 또한 겪은 것으로 확인된다. 아래 글은 당시 빙상계의 반응이다.

쇼트트랙계의 한 관계자는 "전 교수가 실업 팀을 창단하고 스카우트한다고 해서 안현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실업 팀이 잘 진행이 안 돼 대학원 다니면서 잠깐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 사이 성남시청이 좋은 조건에 꾸준히 입단 제안을 한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안현수의 성남시청 입단은 곧 전명규 라인에서 본인 스스로 '이탈' 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번 말을 듣지 않으면 등을 돌려버린다"가 철칙인 전 부회장에게 안현수의 행동은 '하극상' 처럼 여겨졌을 것이라는 평이 빙상계 안팎에서 자자했다. - 2014년 2월 일요신문


또한, 2010년에는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가 벤쿠버 승부담합 사건을 폭로하면서, 안현수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빙상계 파장을 일으킨 내부고발자 입장이 되었다. 당시 빙상연맹 임원진들이 모두 사퇴해야했고, 관련된 지도자들과 선수들은 모두 징계를 먹었다. 이 파장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이 연기되었고, 기초 군사훈련 시기와 겹쳤던 안현수는 훈련 계획에 차질을 빚었다. 그리고 선발전 연기 결정이 안현수를 견제하기위해, 혹은 안기원씨가 폭로한 승부조작 사건 보복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의혹들이 제기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한국 쇼트트랙 역린을 건드렸던 사건이기도 하다. 즉, 안현수가 한국에서 선수로서 설자리가 좁아지게 만들었음이 분명했고, 실제로 성남 시청 해체 된후 안현수는 어떤 실업팀에서도 스카웃 제의를 받지 못했다. 이는 결국 그가 러시아 귀화를 선택하게 된 과정 중 하나가 된다.

2018년 2월 28일 미디어스 임재훈의 스포토픽

사실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를 결심하게 되는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있었다. 부상과 재활 문제도 있었고, 소속팀이던 성남시청이 해체되기도 했고,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는 방식과 관련, 논란도 있었다.


귀화이후 안현수는 당시 제기되고, 이후 언급되었던 '대한빙상연맹과의 불화설', '불이익'과 관련된 논란들을 부정했으나 2015년 MBC '휴먼 다큐 사랑'에서 러시아 귀화 직전, "이 선수는 한국에서 문제가 많은 선수이니 절대로 받아들이시면 안된다." 는 전화를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이 받아 귀화당시 한국에서의 압력이 있었다는 것을 밝히면서, 당시 그가 실제적으로 은퇴를 권유 혹은 강요 받았고, 스포츠를 할수 없게 만든 상황을 만들었던 이들이 있었음은 간접적으로 내비치기도 했다.

2011년 4월 귀화직전 안현수의 인터뷰 (이영미의 헤럴드 칼럼)

선배한테 맞는 것보다 더 아팠던 건, 그렇게 강요하는 선배의 상황과 그런 강요가 허락되는 현실이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러시아로 떠나는데 과연 1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대표팀 선발전을 잘 치를 수 있을까요?

연맹과 오랫동안 잡음을 일으키는 바람에 저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거 잘 알고 있거든요. 전 이제 눈치 안 보고 살고 싶어요.


2020년 4월 안현수의 은퇴 성명 러시아 국영 매체 (리아 노보스티)

그 당시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성취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를 그만 둘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말이 너무 거슬렸고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만 컸습니다.


2.3. 쇼트트랙 파벌 갈등 [편집]


안현수가 2002년 한국 국가대표가 되기 직전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빙상사건들과 쇼트트랙 파벌 관련 사건들을 시간 순대로 정리 하면 다음과 같다. 빙상계의 파벌갈등은 상당히 복잡하게 오랫동안 인과관계로 이어져왔으며, 파벌갈등에 대한 이분법적인 판단은 모순에 가깝다고 할수 있겠다.

이 당시의 파벌갈등에 대해 언론 논평들을 보자면 (J씨와 Y씨는 전명규와 유태욱으로 추정된다.)

스포츠 발전을 위해 싸우면 좋은데, (선배들이) 밥그릇 싸움을 하니 화가 나죠. 2006년 4월 한겨례

파벌싸움은 외형적으로 한국체대와 비(非)한국체대의 양상으로 보이지만 속내는 훨씬 복잡하다. 과거 한국 쇼트트랙을 이끌던 J씨와 Y씨의 끊임없는 알력이 그들의 제자들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번졌다는 게 빙상계 정설이다. 2006년 4월 헤럴드경제

과거 쇼트트랙계를 이끈 실력자들과 그의 제자들, 한국체대와 비한국체대 등 인맥과 학맥이 얽힌 데다 학부모들까지 가세해 첨예한 경쟁구도를 형성해왔다. 이 때문에 코칭스태프 선임, 대표선수 선발을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선수들의 선수촌 이탈, 비방과 투서가 난무하기도 했다. 2006년 4월 경향신문


단, 이시기 선수들을 폭행했거나 구타를 방조했던 일련의 사건들은 파벌이라는 프레임에 선수들은 피해자였다는 본질이 묻혀버린다. 또한 항의와 폭로를 한 선수들은 '선수와 학부모의 유난', '파벌 에이스 선수의 갑질 시위' 정도로 치부되었다.

2001년 - 2004년 까지

2001년 2월 28일, 70년대 빙상스타 이영하 교수, 체육특기생 선발과정에서 학부모들로부터 모두 1억 2천5백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매일경제, 당시 뉴스 영상은 MBC 뉴스)

2001년 5월 24일, 빙상스타 이영하 교수 특기생비리 3년 선고 (중앙일보)

2002년 2월 전명규 감독 안현수를 히든카드로 개인전 특별 차출[19]

(파이낸셜뉴스)

2002년 3월, 한체대 빙상부 학생들 전명규 교수 임용 반대 시위 "선배 이영하 교수를 구속시킨 전 감독을 교수로 받아들일 수 없다."
(오마이뉴스)

2002년 7월, 전명규 감독 사퇴, 전명규의 후임으로 남자팀에는 김기훈, 여자팀에는 이준호가 지도자로 임명 (연합뉴스)

2003년 4월 김동성, 김기훈과의 국가대표 자격 선발 갈등 (연합뉴스)

- 김기훈 : 국가대표 선발전에는 안나오면서 다른 행사에는 참석하는 등 문제가 있다.
- 편해강 빙상연맹 부회장: "김동성이 열심히 운동을 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으며 각서까지 받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2003년 4월, 국가 대표선발전때 권기덕(경신고)과 강윤미 (과천여고)가 부당한 판정에 의해 실격 처리돼 국가대표에서 제외됐다고 주장하면서 그 배후로 장철수 심판이사와 유태욱 경기이사를 지목. 이 밖에도 이유리(세화여고)가 이준호 대표팀 코치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대표팀에서 나왔다는 주장 등의 의혹들 조사 (연합뉴스)

2003년 6월 25일, 이준호 사임. 여자팀 코치로 김소희 선임, 김소희, 최광복 체제 (연합뉴스)

2003년 6월 27일, 안현수 한국체대 입학 확정,

- 한체대는 2003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남자 쇼트트랙 3관왕에 오른 안현수가 수시전형으로 입학하게 됐다고 27일 밝혔다.[20]

2004년 9월 10일, 김기훈 남자 쇼트트랙 코치 사임. 비한체대 파의 스케이트 날 강매 폭로
- 단 김기훈은 꾸준히 비한체대 쪽 선수들의 억지주장이라고 했고, 억울하다며, 사임을 종용했다고 하였다. (국민일보, 한겨례)


2004년 여자 쇼트트랙 구타 사건

2004년 11월 3일, 최은경, 여수연, 변천사, 허희빈, 강윤미, 진선유 여자대표팀 선수 6명, 선수촌 무단 이탈 사건 (SBS 뉴스)

2004년 11월 10일, 여자 선수 6명 비한체대 최광복, 김소희 코치의 구타 상황 자술서 공개 (동아일보)

2004년 11월 15일, 박세우(한체대), 전재목(단국대)로 여자 쇼트트랙 팀 교체 (SBS 뉴스)


파일:6932903.1.jpg

2005년부터 2006년 올림픽 직전까지

2005년 1월,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안현수 구타 사건 (한겨례)

2005년 2월, 폭행 선수 퇴출 이후, 복귀 (노컷뉴스)

2005년 3월, 윤재명 감독 해임

2005년 4월 5일,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남자팀 코치에 김기훈, 여자팀 코치에 전재수 임명 (연합뉴스)

2005년 4월 11일, 안현수 제외, 비한체대 선수 7명 김기훈 코치 불만, 집단 입촌 거부 사건, 특정 선수를 편애하는 감독은 믿을 수 없다.
- 김기훈은 이에 대해 2018년 인터뷰에서 안현수만 특별히 더 가르친 건 아니다. 대표팀에서 모든 선수를 똑같이 지도했는데 안현수가 더 자주 나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YTN, 국민일보)

2005년 4월 13일, 비한체대 선수들 7명 선수촌에 재입촌, 선수 부모들 김기훈 사퇴 요구하며 소란 (한겨례)

2005년 4월 14일, 김기훈 코치 "더이상 이런 선수들을 가르칠 수 없다" 사임 (한겨례)

2005년 5월 13일, 박세우 코치를 수석코치로 임명하고 송재근 전 남자대표팀 코치를 유임 (프레시안)

2005년 5월 26일, 쇼트트랙선발 뒷거래 빙상연맹 부회장 편아무개씨 입건 (한겨례)

2005년 7월 13일, 2006년 토리노 올림픽 윤재명 감독을 총감독으로 재선임 (조선일보)

2005년 7월 14일, 폭행 방조 감독 거부, 안현수, 최은경 등 기자회견 감독 안바꾸면 올림픽 불참, 연맹 집행부 총 사퇴 주장 (조선일보)

2005년 7월 26일, 윤재명 감독의 임명 취소, 전재수 코치 해임 및 자격정지 6개월
남자팀 감독 송재근, 여자팀 감독 박세우로 변경 (연합뉴스)

2005년 7월 29일, 안현수 전재수 코치 해임 반대로 인한 전지훈련 불참 및 한체대 자퇴서 제출 사건 (SBS)

2005년 11월, 박세우 코치 한체대 여자 선수들에게 나의 지시를 거부한 진선유를 막아라 집단 견제 지시. 변천사의 폭로 (국민일보)

안현수는 여자팀 박세우 코치 팀에서 훈련, 진선유와 변천사는 남자팀 송재근 코치 팀에서 훈련 비한체대, 한체대 파벌 훈련 (서울신문)


파일:2005-2006 쇼트트랙 대표팀 파벌훈련.jpg

2006년 토리노 올림픽과 2006년 쇼트트랙 세계 선수권

올림픽 당시 이준호 해설위원의 양보드립아름다운 양보라는 언론보도'(KBS 유튜브, 동아일보)

'양보드립' 으로 인한 안현수와 이호석의 갈등

안현수) 운동 선수로서 저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도 많은 비난을 받고, 양보했다는 말을 듣고...누가 4년에 한번 열리는 올림픽에서...인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하는 경기에서 양보를 합니까'

그는 또 "양보라는 말로 2위 한 선수에게 모두가 관심을 가질 때 저는 금메달을 따고도 속상해 했고 양보가 아니란 걸 보여주기 위해 남은 경기 열심히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2006년 4월 3일, 안현수와 오세종 이호석의 세계선수권 3000m 충돌, 안현수의 실격 (세계일보)

2006년 4월 4일, 안현수 아버지의 1000m와 3000m에서 코치의 지시로 다른 파벌선수들이 안현수를 막게 했다. 주장 및 빙상연맹 부회장 폭행 사건 (세계일보, SBS, YTN)

2006년 4월 5일, 빙상연맹 상벌위원회 선수단 징계 검토 (노컷뉴스)

2006년 4월 26일, 빙상연맹 상벌 위원회 : 안현수, 이호석, 오세종 모두 고의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 3,000m 결승 당시 이호석과 안현수의 충돌장면에 대해 "100여 번 이상 비디오를 재생한 결과 고의적인 충돌이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안현수의 스케이트 앞날이 빙판에 걸리면서 이호석과 부딪혔고, 오세종 역시 캐나다 선수의 반칙으로 밀리면서 안현수와 충돌했다" (연합뉴스)

2006년 5월 18일, 빙상연맹, 안현수 아버지에 1년 간 빙상연맹 주최 대회 출입금지 근신 처분 학부모 징계 (노컷뉴스)

2006년 10월 파벌해소를 위한 쇼트트랙 대표팀의 개인코치제 실시, 전명규 : 전지수, 안현수, 송재근·윤재명 : 김민정, 변천사, 진선유, 송경택, 김현곤, 이호석, 김병준, 박세우 : 정은주 (시사저널, 한겨례)


2010년 2월 21일, 2010년 벤쿠버 올림픽 이호석 "토리노, 오늘 모두 양보 없었다"'(동아일보)


그러나 이런 양대 파벌싸움 속에서도 안현수와 진선유의 사이는 좋았다.

파일:2006 토리노 올림픽 안현수 진선유.jpg
파일:34921853.1.jpg
2006년 안현수와 진선유
2011년 진선유와 안현수

진선유> 나보다 부상이 심했는데 재기한 걸 보면 현수 오빠는 정말 대단해요.

안현수> 저도 하는데. 선유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전성기로 돌아갈 수 있어요. 아직 은퇴할 때가 아니죠.

- 2011년 동아일보 2월 16일 안현수와 진선유


2.4. 귀화[편집]


안현수는 2014년 당시, 그리고 여러번, 파벌은 귀화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며 국가대표 선발전에 떨어져서 올림픽을 출전하기 위해 러시아로 귀화했다고 인터뷰를 했다.[21] 그러나 전명규 반대편에 선 빙상계의 인물들 이준호 감독, 아시아 빙상연맹 장명희 회장, 일부 언론 보도들은 파벌 빙상연맹전명규 교수의 책임론에 대한 반론을 강조했다. 그리고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는 이게 전부다 전명규 때문이다" 라는 인터뷰를 했다.

당시 SBS가 보도한 아시아빙상경기연맹(ASU) 장명희 회장의 인터뷰는 다음과 같다.

장회장은 이날 빙상연맹의 한 고위 임원을 '원흉'으로 지적하며 추종하는 세력은 잘못도 용서해주고, 눈 밖에 나면 출전 선수를 수시로 바꾸는 등 불이익을 준다면서 제왕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선수가 불이익을 당해도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강하게 성토했습니다. 장회장은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의 사례 등을 거론하며 이 임원이 전횡을 부렸다는 다른 의혹을 줄줄이 제기했습니다.



2014년 2월 당시 이준호 감독의 인터뷰 (JTBC)

이준호> 안현수와 연맹이 등을 돌렸던 가장 기본적인 것이 실업팀을 들어가면서부터일 거예요. 성남시청에 들어가게 되는데 연맹과 약간 집행부에 계시는 그 분 파벌이 아니었죠. 거기를 가길 원치 않으셨죠.

기자> 현재 빙상연맹 최고 실세로 꼽히는 인물과 안현수가 서로 등을 돌리게 됐다는 겁니다.

이준호> 한 분의 너무나 강한, 그 분의 천하가 돼버리니까 누구도 그 분의 눈 밖에 벗어나면은 큰일나죠.


2010년 4월 당시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의 인터뷰 (일요신문)

현수가 성남시청에 입단하게 되면서 전명규 부회장과 거리가 멀어졌다. 전 부회장은 현수가 계속해서 자기 밑에 있길 바랬다. 하지만 성남시청이 현수를 강하게 원했고, 전 부회장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 대안없이 성남시청에 가지 말라고 하는 전 부회장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우린 전 부회장이 어떤 대안을 제시해주길 기다렸지만 끝내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성남시청에 입단하게 됐는데 전 부회장은 그때 현수에게 인연을 끝내자는 소리까지 했다.

한체대파라는 이유로 가장 심하게 고생한 선수가 현수인데, 실업팀 입단 문제로 스승과 인연이 끝난 것이다.


2014년 1월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의 김현정의 CBS 뉴스쇼 (노컷뉴스)

안기원> 옛날에 국가대표 선발전도 (안)현수가, 우리 아들이 다쳤을 때, 두 번 하던 걸 한 번으로 바꿔버리고. 대표코치 선발전 이런 내용들도 수시로 자기네들이 마음만 먹으면 다 바꿀 수 있다는 얘기죠.

김현정> 룰을 막 바꿔요?

안기원> 네, 룰을 바꾸죠.



2019년 1월 안기원씨의 인터뷰 (일요신문)

안 씨는 "(안)현수가 성남시청 빙상단 입단을 결정했을 때 전 교수가 제게 엄포를 놓았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번 가 보세요. 어떻게 되나 봅시다'란 말이었다.

그런데 현수가 2008년 성남시청에 입단하자마자 큰 부상을 입었다. 부상을 회복한 뒤 한국 빙상계엔 더 이상 현수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귀화 과정을 살펴보면, 2010년 12월에 성남시청 쇼트트랙팀이 해체된다. 안현수는 소속팀도 없어지고, 새로운 팀을 구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부상여파가 있다 하더라도 국내대회에서 꾸준히 성적을 내고 있었는데, 팀을 구할수 없었다. 그는 2022년 3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을 둘러싼 시끄러운 이슈때문에 원하는 실업팀이 없다고 간접적으로 밝히었다.

안현수는 홀로 훈련을 하면서 2011년 2월 평창 동계체전[22] 일반부에 경기도대표로 출전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를 획득했다. 2011년 4월 16일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한 종합선수권에 출전했으나 5위에[23] 그치면서 4위까지 주어지는 국가대표에는 선발되지 못했다. 참고로 만약 이때 러시아에 안가고 한국에 머물렀으면 대표팀에 뽑혔을 것이다. 이정수가 2차 월드컵에서 부상당하면서 선발전 차순위자였던 안현수가 대체 선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러시아 행은 이미 결정된 터라 무의미한 가정이었다.[24] 이 때 이미 결정된 러시아 진출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면서 2011년 6월 러시아로 출국했다. 이 당시만 해도 러시아에 간 건 1년 일정이었다고 대외적으로 발표했지만 러시아 측이 원한 건 처음부터 귀화였고 결국 안현수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2011년 8월 17일부로 러시아 귀화 신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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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의 안현수

당초 러시아에서 안현수에 러브콜[25]을 보낸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쇼트트랙에서 우월한 실력을 내고 있는 한국 스케이트 장비 기법과 쇼트트랙 훈련 기술이었다. 그 대가로 파격적인 보상을 마련한 셈이다.

12만 달러 (당시 환율 기준 한화 1억 8,000만원)[26]연봉 그리고 통역사 등을 제공했다. (참고로 2007년 안현수가 성남시청 입단할 당시 연봉은 3년간 5억원이었다.)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성장한 국력을 보여주려는 러시아는 그를 스카웃하려고 끊임없이 세계 최정상급 선수의 실력이 필요하다고 러브콜을 함과 동시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27] 모스크바 시청에서는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와 같은 보상 때문에 국내 언론과 일부 빙상계에서는 한국의 기술을 유출 한다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28]

실제로 러시아가 올림픽을 위해 안현수를 매매했다는 이야기는 올림픽 당시 외신 혹은 해외 SNS와 인터넷에서도 말들이 돌았다.[29]

단, 2013년 12월 21일 러시아매체 스포츠 익스프레스 (Sport-Express) 크라프초프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안현수는 이때까지 노보고르스크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다. 즉, 2015년 MBC '휴먼다큐사랑'에서 보도된 안현수와 우나리의 이야기는 사실이다. 이후 실적에 따라 러시아 빙상연맹과 러시아 연방 정부로부터 포상금과, 차량, 세차례 저택을 지급 받았다.

2011년 한 해가 저물기 직전인 12월 28일에 러시아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안현수에게 직접 러시아 국적을 부여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고 안현수는 러시아 이름을 소련 시절 명성을 떨친 고려인 출신의 록 가수 빅토르 초이의 이름을 따 빅토르 안으로 정했다. 이후 미니 홈피에다가 '러시아 국적을 획득하면 우리나라 국적은 자동 소멸된다고 들었다. 이중국적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신중하지 못했다' 고 마치 한국 국적이 상실되는 걸 모르고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것처럼 적었다.

2011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언론에서는 당시 그가 연금을 일시불로 신청 수령한후에 러시아로 귀화한 것으로 기사를 보도했고, 이후 안현수가 이중국적이 안되는것을 알면서도 계획적으로 수령해서 귀화한 후 언론플레이를 했던것으로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2023년 1월 성남 시청 코치직을 지원했을 때 빙상지도자 연맹에서는 성명서를 내어서 올림픽 메달 연금 일시불 수령으로 안현수의 '도덕성'을 지적하면서 비난했고, 성남 시청 코치직에서 낙마했다. 하지만, 2023년 2월 7일 계속되는 비난과 이슈로 인해 12년만에 이중국적 발언 논란과 연금과 관련에 대해 밝혔다.

그의 SNS을 요악하면 다음과 같다. 2011년 6월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으로부터 귀화제안을 받았고, 러시아 팀에 있는 러시아,호주 이중국적자 타티아나 보루돌리나와 같은 이중국적이 가능한 줄 알아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해당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된 이후 7월에 귀화 결정을 했다. 그리고 일시금으로 받았던 연금은 돌려드리는게 맞다 판단되어 <심장수술이 필요한 아이와 재활 및 치료가 필요한 운동선수 후배>에게 기부를 했다고 했다.[30]

귀화 직전 안현수는 2011년 4월 인터뷰 (이영미의 헤럴드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31]

전 제 가슴에 어느 나라 국기가 달리든 크게 상관 안 해요.


또한 2011년 8월 안현수는 자신의 미니홈피 (제주의 소리)에 이런 글을 남겼다.

좋아하고, 하고 싶어하는 운동을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마음 편히 집중해서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다.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각오하고 있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주셔서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짐들을 덜 수 있었다. 내 선택에 대해 후회가 없도록 하겠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쇼트트랙 선수가 되겠다.


안현수는 귀화 이후 여러 차례 인터뷰를 했다. 아래는 2013년 5월 인터뷰 JTBC 인터뷰 이다.

아무래도 제가 훈련할 수 있는 공간들이나 환경적인 부분들이 힘들었죠. 어떻게든 여기서 해보고 싶었고 그런 결정을 하고 나서는 여기에 대한 미련을 많이, 빨리 버렸던 것 같아요.


2014년 2월 10일 1500m 동메달 수상 직후 인터뷰 (한겨례)

한국 선수들과 불편할 게 없는데 자꾸 언론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다.


2014년 2월 15일 1000m 금메달 수상 직후 인터뷰 (동아일보)

기자> 러시아 귀화 과정에 대해 한국에서는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안현수> 짧게 말씀드리자면 제가 정말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저를 위해서, 운동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다. 예전에 어떤 일이 있었던 다 잊고 내가 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서 귀화를 했다. 이로 인해 (한국 빙상에 대해) 안 좋은 기사가 나는 걸 원치 않는다. 한국 후배들에게도 좋지 않다. 경기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이런 일 때문에 후배들한테도 많이 미안하다. 앞으로 제가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그런 기사들이 안 났으면 좋겠다. 경기에만 집중하고 싶다.


2014년 올림픽 모든 쇼트트랙 경기를 끝마친 후 2월 22일 기자회견에서 안현수는 파벌이 귀화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라고 밝혔다.

아래는 당시 기자회견들의 일부 내용들이다. 2014년 스포츠 경향신문, 2014년 경향신문

아버지가 너무 많은 인터뷰를 했다. 그런 부분에 대해 나와 의견충돌이 있었다. 내가 말하지 않은 게 자꾸 부풀려졌다. 아버지가 나를 너무 아끼는 마음으로 한 것 같다. 그러나 내가 피해를 보는 부분도 있었다.

파벌은 있었지만 그게 내가 귀화를 결정한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내가 분명히 말했듯이 제가 정말 좋아하는 운동을 하고 싶었고 나를 믿어주는 곳에서 마음 편히 운동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한국에서 나 때문에 시끄러워지는 거 나도 원치 않는다. 한국선수들과 부딪히는 기사가 나가는 것도 아쉽다.

2010년 12월 성남시청이 해체된 뒤 내가 부상을 당한 상태라서 나를 원하는 국내 팀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올림픽에 나가고 싶었고, 러시아행은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의 기자회견 내용을 종합해보면 마음 편히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고 러시아는 그를 믿고 기다려줄 수 있는 환경[32]과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기에 귀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는 연합뉴스와의 2022년 3월 인터뷰에서도 언급된다.

난 항상 쇼트트랙을 생각하며 내 앞길을 선택했다. 2011년 러시아 귀화 과정도 그랬고, 2020년 중국 대표팀 코치로 부임했을 때도 그랬다

당시 소속팀인 성남시청 빙상팀이 재정 문제로 해체됐고, 난 부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당시 이런 나를 받아줄 팀은 없었다. 성적이 안 좋았고, 나를 둘러싼 시끄러운 이슈가 많았기 때문

이때 러시아에서 좋은 제안을 했고, 진정성을 느껴 선택했다.


당시 안현수와 성남시청 빙상팀에서 그를 지도했던 황익환 감독의 말의 따르면 귀화의 원인을 성남시청 해체로 인한 실업자인 현실, 훈련을 할 곳이 없어서라고 했다.

아래는 성남 시청 해체 당시 2011년 4월 황익환 감독의 인터뷰 (동아일보) 이다.

직장운동부 1명이면 가난한 아이 3명을 도울 수 있다, 나는 인권변호사 출신이라 이런 데 돈 못 쓴다. 아무리 그 분이 운동을 모르시는 분이지만, 안현수 같은 선수를 잘라내서 뭘 얻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안현수 같은 선수가 하루아침에 청년실업자가 된 거예요. 대회에서는 계속 성적을 내고, 해외에서는 계속 연락이 오는데. 정 국내에서 더 이상 뛸 수 없다면 나를 불러주는 곳으로 가겠다는 거죠.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세요.


2015년 5월 황익환 감독의 인터뷰 (휴먼 다큐 사랑, 뉴스 1)이다.

운동선수가 운동을 하고 싶은데 운동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안현수가 떠나기 전날 저와 같이 부둥켜 안고 울면서 한 말이 그거다. '가지 않을 수 있다면 가고 싶지 않다'는 거다


2022년 2월 성백유[33] 언론중재위원의 페이스 북 (한국일보) 글이다.

그(안 코치)가 러시아로 가게 된 이유는 타의에 의해서다. 당시 성남시장에 취임한 이재명 전 시장이 성적이 시원치 않았던 성남시청팀을 해체했던 까닭이다.


단, 안현수의 부친인 안기원씨의 입장은 이와 반대이다. 안기원씨는 성남시 빙상팀이 해체가 안되었어도 러시아 가기로 벌써 결정이 되어 있었다. 귀화의 원인은 전명규 교수와 교수가 자리 잡고 있던 빙상연맹과 그로인한 전횡과 불이익 때문이다.라면서 2010년과 2014년에 기자들에게 밝혔다.[34] 여기서 확실히 해야할 것은 아버지의 뜻과 당시 안현수의 생각은 완전히 동일하게 일치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안현수는 2022년 3월 인터뷰에서 성남시청 빙상팀 해체가 원인중 하나이며, 자신을 둘러싼 여러 시끄러운 이슈들로 인해 자신을 불러주는 소속팀이 없었고, 이때 러시아가 좋은 제안을 해왔다. 그들의 제안이 진심으로 느껴져서 귀화를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정리해보면 실업팀 해체상황은 그 이전에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이미 알고 있으며, 안현수가 당시 SBS 방송사 해설을 하고 있었던 점, 국내 경기에 계속 출전했고,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하고 나왔던 것, 그리고 안현수와 황익환 감독의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가장 마지막 순간 러시아 행을 최종 결정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즉, 물론 최종 선택은 안현수가 했다. 당시 안현수를 둘러싼 이슈는 파벌 이슈들과 2010년 당시 안기원씨의 승부조작 폭로였다.

2014년 2월 올림픽 당시 성백유는 자신의 페이스 북에 이렇게 적었다.

안현수의 러시아 선택은 최선이었다. 안현수는 한체대 출신이다. 빙상연맹 집행부는 다수가 한체대 출신이다. 그렇다면 안현수가 성남시청팀 해체로 오도 가도 못가는 신세가 됐을 때 한체대파 출신이 감독으로 있는 실업팀 어디라도 갔어야 했다. 그런데 안현수를 데려간 팀이 없다. 이유는 안현수 아버지가 알 것이다.


당시 2010년 안기원씨는 빙상 연맹의 두 파벌 쇼트트랙 계를 움직이는 유라인과 전라인 모두를 언론에 공개했고, 성남시청으로 실업 팀을 옮긴 이후에 안현수가 전명규나 한체대 쪽과 사이가 멀어진 상황에서 당시 빙상계를 완전하게 뒤집어 엎어놓은 승부조작 사건을 그의 아버지가 터트렸다. 2005년 안현수가 폭행당했던 사건과 감독 선임문제로 인한 빙상연맹 지도부와의 직접적 갈등 2006년 세계선수권이후 그의 아버지와 빙상연맹 부회장과의 공항 폭행 사건, 급기야는 2010년 빙상계의 역린이나 다름없는 양대 라인과 승부조작의 폭로까지 2000년대빙상계의 굴곡진 사건에는 안현수가 있었다.[35] 2010년 승부조작 사건으로 빙상계의 상황은 최악의 상황으로 향한다. 연관된 선수들은 징계를 먹었고, 코치들은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그리고 영구적으로 자격을 금지당한 코치도 있었다. 선수들과 코치들은 올림픽 포상금도 지급받지 못했다.[36] 빙상연맹 임원들은 모두 사퇴해야했다. 당시 안현수는 빙상계 양쪽 모두에게 껄끄러운 존재로 인식되어 불이익을 받았을 수도 있다.단, 이와 관련 해서는 이후 안현수도 빙상계도 모두 계속 불이익과 관련된 언급은 일축했다.

아래는 '2010년 당시 안현수의 국가대표 선발전과 관련하여 언론과 방송에서 보도된 안현수를 배제시키기 위해 불이익을 준다는 논란'들과 '2014년 전후 다시 재기된 의혹', 2014년 2022년 이를 일축한 안현수의 인터뷰들이다.

2010년 3월 중앙일보 기사

2010년 당시 다수 빙상인들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10년 2월 올림픽에 나설 선수들을 10개월 전인 2009년 4월에 뽑은 이유가 석연치 않다" 실제 미국과 중국은 2009년 12월에 선발전을 치렀다.

한국이 지난해 4월에 서둘러, 그것도 단 한 차례 선발전으로 끝낸 것은 안현수(25)와 진선유(22)를 배제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빙상인들은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이 부상 중에 선발전을 치르는 바람에 둘은 태극마크를 다는 데 실패했다.

실업팀 진출을 두고 빙상연맹 핵심 인사가 희망하는 팀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미운털이 박혔다는 수군거림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2010년 4월 경인일보 기사[37]

안현수(성남시청)와 이정수(단국대) 등 일부 선수들과 코치들은 선발전 연기를 철회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안현수가 내달 기초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한 달 동안 입영해야 하는 상황에서 9월로 대표선발전이 미뤄지면 훈련 시간과 컨디션 회복 시간이 부족해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용인시청의 소속 선수가 발목을 다쳐 대표선발전에 제대로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대표선발전 연기는 용인시청 선수들을 봐주려는 빙상연맹 수뇌부의 의도가 깔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 당시 용인시청 감독 유태욱은 빙상연맹 부회장이자 한국실업빙상경기연맹 회장이었다.

2010년 4월 시사 IN 기사

빙상연빙상경기연맹이 이번 사태에 대한 조사를 이유로 4월23~24일로 예정된 2010~ 2011국가대표 선발전을 9월 이후로 미뤄 새로운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빙상연맹이 선발전을 미룬 조치는 짬짜미 의혹을 처음 제기한 안현수 선수(안현수 아버지)나 이정수 선수 등 특정 선수에 대한 보복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안현수의 팬들도 9월 선발전은 다음 달 기초 군사훈련을 받는 안현수의 컨디션을 흐트러뜨려 대표팀에서 탈락시키려는 의도이다라고 반발했다.


2010년 4월 MBN 뉴스

토리노올림픽 3관왕인 안현수는 파벌 수장의 뜻을 어겨 밴쿠버올림픽 출전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는 뒷말이 무성했습니다.


2014년 2월 시사저널 기사

대다수 종목은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여러 차례 치르고 마지막 선발전의 배점을 가장 높게 매겨 평가한다. 쇼트트랙 역시 과거 올림픽 선발전을 두 차례 치렀다. 그러나 당시 대한빙상연맹은 올림픽을 10개월 앞둔 4월, 단 한 차례의 선발전만으로 출전 선수를 확정지었다. 안현수 선수가 부상에서 미처 회복되기 전이었다. 선발된 대표 선수들은 모두 비한체대 출신이거나 재학생이었다.


2014년 2월 안현수 기자회견 (스포츠 경향신문)

2008년 무릎을 다쳤고 그 부상 여파로 1년 동안 4번 수술을 받았다. 밴쿠버올림픽 선발전에 앞서 한 달 밖에 운동하지 못했다. 한국 룰에 맞춰 준비하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특혜를 누릴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22년 3월 안현수 연합뉴스 인터뷰

"난 국내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지 않았고, 대한빙상경기연맹과 불편한 관계도 아니었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파벌 논란으로 귀화를 선택한 것도 절대 아니다"


그리고 2010년 당시 안기원씨의 승부조작 폭로사건은 안현수의 의지와는 다른 것이 그의 아버지 인터뷰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안현수의 팬들도 안현수가 이로 인해 받을 불이익을 걱정했으며, 심지어는 당시 기자조차 이 점을 지적했다.

기자> 이정수 건은 안기원씨가 제기했다. 안현수 선수가 또 불이익을 당하지 않겠느냐는 팬들의 염려도 있다. 솔직히 당사자도 아니고 왜 나섰나.

안기원> 빙상인들이 직접 나서야지 부모들이 이래서 될 문제는 아니다. 선수들은 공감하지만 불이익 생각해 나서기가 쉽지 않다. 현수도 불만이 있어도 그래서 잘 얘기 안한다. 현수도 왜 나서냐고 했다. 가만히 있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됐다. 누군가는 나서야 제대로 바로 잡히지 않겠느냐.


귀화 이후에도 안현수와 안기원씨의 입장은 서로 상반된다. 2014년 소치 올림픽 당시 안현수는 아버지가 없는 말을 했다며, 아버지의 말을 수습하는 기자회견을 한다. 안기원씨는 2019년에 자신의 아들을 비난하는 기사를 한 언론에 직접적으로 인터뷰로 내보내기까지 했다. 왜 아들보고 왜 한국체대로 돌아왔냐고 자신의 동생의 경쟁자가 될 체대 학생들의 날을 손질해주고 있냐고 왜 러시아에서 코치를 하지 않고, 한국체대에서 코치를 하려 하냐고 서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18년 국회의원 안민석은 이러한 부자간의 관계를 지적한 적이 있다.

2018년 2월 22일 안민석 CBS 김현정의 뉴스쇼 (노컷뉴스)

안민석> 안현수 부친의 이야기에 대한 어떤 신뢰성은 저는 좀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안현수와 전명규 부회장은 서로가 신뢰하는 그런 사제지간이고 지금도 관계가 좋아요. 최근에 안현수 선수가 한국에 와서 훈련을 했을 때 한체대 빙상장에서 했거든요. 한체대 빙상장에서 했다는 거는 전명규 감독 부회장의 허락이 있었다는 얘기거든요.

김현정> 지금 안현수 선수와 전명규 부회장 사이가 좋다?

안민석> 좋죠. 그래서 이 문제는 안현수 선수가 직접, 직접 이야기를 해야 되는 겁니다.


2018년 2월 28일 안민석 CBS 김현정의 뉴스쇼 (연합뉴스)

안민석> 안현수 선수한테 직접 문자가 왔다"면서 '전 교수(전 부회장) 때문에 귀화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 어떻게 해명했으면 좋겠냐'는 안현수의 문자 내용을 소개했다.


2018년 2월 28일 미디어스 임재훈의 스포토픽

사실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를 결심하게 되는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있었다. 부상과 재활 문제도 있었고, 소속팀이던 성남시청이 해체되기도 했고,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는 방식과 관련, 논란도 있었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을 안현수에게 구원의 손을 내민 곳이 러시아였던 셈이다.

문제는 러시아로 가는 과정에서 안현수 본인이 직접 한 말은 한 마디도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그의 거취에 관한 정보는 아버지 안기원 씨가 '독점공급' 하다시피 했다는 것. 그 부분이 어딘지 석연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의 귀화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말과 논란들이 많이 나왔지만 원인이 어찌되었든 물론 귀화를 마지막에 결정한 것은 안현수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안현수의 귀화는 당시 빙상 스포츠의 상황 우리나라 쇼트트랙, 아니 빙상 스포츠의 어두운 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38]

선수가 선수촌에서 훈련 도중 훈련 시설의 부실 문제로 인해 부상을 당했음에도, 빙상 연맹 측으로서는 그 어떤 지원도 없었다. 재기하고 싶어 하는 선수의 의지는 무시 되었다. 한 선수가 망가지면 또 다른 선수로 교체하면 된다는 것이 당시 빙상계 지도자들의 입장이었고 언론들도 그런 식으로 기사를 내었다. 또한, 선수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빙상계 어른들의 싸움에 어린 선수들이 휘말렸고, 그 책임과 비난은 모두 선수들에게 향했다. 그리고 실업 팀의 해체 이후 길을 잃었다.'

2014년 2월 정용철/서강대 스포츠심리학 교수의 인터뷰 (JTBC)

부상만 해도 안현수 다치면 안되는 거에요. 미끄러질 수 있잖아요. 미끄러지는 걸 대비해서 펜스에 쿠션을 해야 하는데 그게 다 얼어 있었어요. 그럼 당연히 (무릎이) 나가죠.


당시 안현수는 빙상연맹이 아닌 성남 시청과 한체대의 도움을 각각 받았다.[39]

2014년 2월 황익환 감독의 인터뷰 (조선일보)

현수가 2008년 1월 성남시청 빙상팀에 입단한 뒤 보름 뒤 국가대표팀에서 훈련하다 부상 당했다"며 "그럼에도 빙상연맹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있을 때 성남시가 현수의 병원치료비와 급여 등 재활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2019년 2월 안현수의 인터뷰 (경향신문)

안현수> 저는 전 교수님과 사이가 나빴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2008년 한체대 대학원에도 입학해 한 한기 다녔고요.성남시청 소속이 된 것은 같은 해 1월1일부터였는데, 보름 만에 부상을 당했어요. 전 교수님이 병원도 알아봐주시고 재활이나 훈련 여건이 한체대에서 하는 게 나으면 그렇게 하라고도 말씀하셨어요.

기자> 그러면 전 교수와는 줄곧 연락을 주고받았던 건가요.

안현수> 성남시청 소속일 때는 제 입장이 애매해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원래 친형제처럼 가까웠던 성남시청 손세원 감독님과 전 감독님 사이에 오해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다가 2013년 3월 헝가리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을 때 교수님이 오셨고, 아내와 같이 인사 드렸어요. 이후 한국에 올 때마다 교수님을 찾아뵀어요.


2019년 1월 안기원씨의 인터뷰 (일요신문)

안현수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한 2011년, 전명규 교수가 안현수에게 코치직을 제의했다. 하지만 선수 생활을 향한 안현수의 의지가 강했다.


즉, 당시 빙상계와 아버지의 말들 처럼 성남시청 소속일 당시 전명규 교수와 사이가 멀어졌던건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완전한 결별은 아니었다. 재활에 한체대와 전명규 교수의 도움을 받기도 했으며, 귀화 직전 코치직을 전명규 교수는 안현수에게 제안했었다. 그리고 러시아로 귀화한 이후 소원했던 사이가 회복된 것으로 추정된다.[40]

2019년 11월 안현수는 스포츠 서울과 인터뷰 하면서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언급했다.

"아버지가 언론을 상대로 자신의 귀화 이유를 왜곡해서 알리는 등 특정한 파벌의 편에 서 있어 만나지 않고 있다"


2022년 빙상 관계자들은 당시 빙상계의 파벌 논란 속에 부상과 팀 해체까지 겹친 상황에서 어느 하나를 꼭 집어 원인을 찾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 빙상연맹 관계자(익명)> 국적을 옮긴다는 게 단 한 가지 이유로 옮길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 이유가 한 가지가 있지 않을 까라는 생각을 하죠. 왜냐하면 그 당시에 제가 알기에는 현수한테 이렇게 우호적이었던 팀들은 없는 걸로 알고 있었거든요.

2022년 2월 9일 YTN


2.5. 러시아 선수 시절[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안현수/러시아 선수 시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지도자 시절[편집]


은퇴를 번복하다가 2020년 4월, 은퇴를 선언했다. 2018년 복귀 당시 국내에서 지도자 생활을 준비했지만 환경이 여의치 않았다.[41]

안현수는 한국에서 복귀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18-19년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플레잉코치를 하면서 지도자 수업에 들어갔다는 언론보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안현수의 한국 복귀를 돕던, 전명규 교수가 여러 일련의 사태들[42] 인해 한국체대서 안식년이 취소되는 등, 전명규 교수와 한국체대가 정부 조사를 받게되면서, 안현수는 한체대 빙상장에 남아있기보단, 2019-20 시즌 선수로 러시아 팀에 복귀했다.


3.1. 2020-22 중국 국가대표팀 지도자[편집]


그가 완전히 은퇴를 결심했을 때는 결정적으로 국가대표 지도자 응시자격 지도자 경력 조항에 해당이 안되었다. 2019년 2018년부터 안현수에게 지도자 제안을 해왔던 중국러브콜을 받아들였고,[43] 2020년 8월, 중국행을 결정한다.[44]
파일:NISI20220205_0018413431_web.jpg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코치로 활동 중인 안현수는 베이징 올림픽내내 언론에 이슈로 떠올랐다, 오성홍기 마스크를 쓴 채 중국 팀의 1위에 환호하는 사진이 찍히기도 했다. 중국과 한국의 반응은 완전히 극과 극으로 갈렸다.

중국은 안현수를 전설의 거성이라 하면서, 그의 삶은 소설보다 더 찬란하고 흥미진진하다고 찬사했다. 또한, 우다징 과 안현수를 경쟁자에서 제자와 스승으로 다시 만났다면서 집중조명했다. 올림픽 당시 안현수는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영웅이 되어 있었다.[45]

안현수 소속 레이블이 많아 찬사와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쇼트트랙의 레전드이자 빙판에서 수많은 메달을 휩쓴 선수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2022년 2월 중국매체 ysln.ycwb.com

안현수는 위대한 운동선수입니다. 두번째 안현수는 없습니다. - 2022년 2월 베이징 올림픽 당시 왕멍의 인터뷰


타고난 재능이 정말 뛰어나다. 평소엔 상냥하지만, 진지함을 잊고 소극적으로 훈련하면 따끔하게 혼을 냈다. 부정적인 한국 여론에 압박감을 많이 느낄 땐 안타까웠다. - (베이징올림픽 중국쇼트트랙 선수단)

안현수 코치는 2년 동안 제자들과 무난한 관계 수준을 넘어 '좋은 친분' 을 쌓았다.- (중국빙상연맹)

- 2022년 3월 중국 방송 위러촨바과메이


그러나 한국의 미디어와 여론은 좋지 않았다. 안 그래도 중국의 한국 문화 예속화 시도와 갖은 중국의 도발 따른 반중 정서가 극히 심화된 상태인데다 안현수에게 코치직 제의를 한 사람이 왕멍이라 알려지고, 그 왕멍이 "한국은 안현수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나는 그를 러시아에서 데려왔다." 라고 한국을 대놓고 저격하면서 여론은 더욱 안 좋아졌다.[46] 또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편파 판정 논란 건까지 더해지면서 본인의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본인의 SNS에 심경글을 올렸으나 여론은 좋지 않았다.[47] 현재 해당 글은 삭제되었다.

"소설보다 찬란한 삶" 中 열광한 코치, 안셴주의 씁쓸한 정체성 2022년 2월 중앙일보

이젠 중국 영웅 안현수 향해 '분노와 연민' 동시에... 안현수→안현수→안셴주 3개국 소속 챔피언 2022년 2월 국민일보

안현수→안현수→안셴주 '금메달 유랑자' 2022년 2월 동아일보


혼성 계주에서 최종적으로 중국이 금메달을 따자 러시아 또한 안현수 코치와 중국 대표팀을 향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안현수가 원하면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고, 지도자 자리도 제안했는데 거절당했다며, 특정 국가에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세계인이라 평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중국 빙상연맹으로부터 '지금까지 대표팀 지도자 중 가장 유능하다'고 칭찬받았다 라는 언급도 하면서 러시아 쇼트트랙에 다시 활력을 주려면 안현수가 필요하다고 분석하기도 했고, 2026년 밀라노 올림픽을 위해 다시금 지도자 영입을 제안할 거라는 의사를 밝혔다.

선수 시절 대표팀에 매우 확실하고 유익한 도움을 줬다. 그는 중국을 지도하고 있고, 우리가 그의 관심을 끌 수 없었다는 것은 유감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유인이며 의심할 여지 없이 그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2022년 2월 스베틀라나 추로바[48]


베이징올림픽이 막바지에 이르러 계약 만료가 임박하자 중국빙상연맹에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통보했다. 그리고 당분간 가족들과 휴식을 취하면서 천천히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계획을 중국 매체를 통해 밝혔다.


3.2. 2022[편집]


한국 입국 이후 3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을 선택한 이유, 러시아를 선택한 이유, 대한빙상연맹과의 관계, 황대헌과의 관계[49], 도핑 논란 등에 대해 해명했고, 휴식을 취하면서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1년의 휴식기에 들어갔고, 2022년 6월부터 중국 웨이보 활동을 하며 인플루언서로 활동했다. 2022년 7월 8일 중국 웨이보에 따르면 한달만에 1억뷰를 돌파했을 정도로 중국 웨이보에서 활동하는 스포츠 인들 중에서 최상위권 셀럽 인기를 누렸다.[50]

2022년 7월, 러시아 정부매체 타스는 안현수가 러시아 빙상연맹 고문을 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이 된 Nikolai Gulyaev는 타스와의 인터뷰에서 안현수를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2022년 11월 3일, 러시아 스케이팅 유니온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딴, 안현수 컵 «Кубок Виктора Ана» 참가 선수들에게 영상인사를 했다. 러시아는 이를 뉴스와 기사들을 통해 보도했다.[51]

2023년 4월 JTBC 보도에 따르면 2022년 외국인 신분으로 한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3.3. 2023 한국체육대학교 지도자[편집]


2023년 1월 9일, 올라온 기사에 따르면, 성남시 쇼트트랙 팀 코치에 지원한 사실이 알려졌다. 타 국가 대표팀에서도 장기 계약을 제안 받았지만 거절하고 성남시청 코치직에 지원한 것이라고 한다.[52] 중국 대표팀 코치 시절 여론과 이미지가 악화되었기 때문에 반응은 좋지 못한 편이다. 특히 빙상지도자 연맹은 그의 '도덕성'을 지적하며 성명서를 내었는데, 이중국적이 되는줄 알았다고 했으나 연금을 일시불로 수령하자 마자 귀화를 선택했다며, 귀화 과정 중에 거짓말을 하고 한국을 버린 것이라면서 맹비난했고, 한국에서 지도자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이슈가 확산되었다.

1월 12일에 진행된 면접에 참석했다. 최종 합격자는 31일 발표 예정이지만 1월 29일에 최종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고 탈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같이 코치직에 지원해 이슈가 되었던 김선태도 탈락했다. 둘이 탈락한지 얼마 안되어 최민정을 비롯한 성남시청 선수들이 코치 채용 과정 관련해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선수들은 '역량있는 지도자를 원한다' 성명을 내며 논란이 커졌고, 결국 성남시청은 합격자 없이 이번 채용을 무효화 했다. 이후 빙상지도자연맹은 특정 후보자의 측근으로 알려지면서 특정 후보자의 징계 이력은 밝히지 않았다는것이 알려졌다. 일부 언론은 빙상계에 파벌 권력싸움정치적 개입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한편 러시아는 성남시 코치 채용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1월 30일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은 타스를 통해 러시아에는 안현수가 필요하다고 했고, 러시아의 주요언론 스포츠 익스프레스는 지도자로서 러시아로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안현수는 2월 7일 자신의 SNS 인스타그램에 빙상지도자연맹이 도덕적 문제로 지적한 "선수연금 일시금을 받고" 러시아 귀화 논란과 이중국적 발언에 대한 입장을 귀화 이후 12년만에 밝혔다. 또한 귀화직전 연금 전액은 모두 기부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 귀화 선택을 했든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이지만 오해들은 쌓이지 않도록 최대한 목소리를 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했다.

4월 13일자 언론 보도를 통해 2023-2024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 개인 코치 자격으로 참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그가 국내에서 지도자로 공식 활동하는 것은 이번 대회가 처음이다. 그는 베이징 올림픽 이후 자신의 모교인 한국체대에서 훈련을 도왔고, 선수들의 요청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에 고등부와 일반부 7명의 지도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1#2

2023년 현재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한체대 선수들 지도 및 해외전지훈련 외국선수들의 코치를 하고 있다.#1, #2


4. 평가[편집]


두 번의 올림픽에서 3관왕을 달성하며 메달 스윕을 실현한 선수이자 세계선수권 최다 우승기록과 5연패 기록 보유자로 쇼트트랙 역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다. 쓸데없는 움직임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경우가 없고 가볍게 기술로만 스피드를 끌어올려 앞에 있는 선수들을 쉽게 따돌린다. 가장 이상적인 스케이팅 자세와 어렸을 때부터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며 쌓은 노련함, 그리고 같이 완성됐던 인코스, 아웃코스, 코너링 기술뿐만 아니라 순발력, 스퍼트, 그리고 안정성, 지능적인 경기 운영과 시야, 지구력도 모두 최정상급이라 선두 자리를 지키는 것에도 굉장히 능하다. 유일한 약점은 스타트와 초반 가속이 약했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한국 선수 시절에는 상대적으로 단거리 종목과 인연이 없었다. 러시아로 귀화한 이후부터는 기존 본인의 스타일에 더해 약점이었던 스타트를 개선하며 단거리 종목 기량을 향상시켰지만 대신 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지구력을 포함한 전체적인 능력치는 전성기였던 한국 시절보다는 떨어졌다. 시기별로 요약하면 대한민국 대표 시절에는 역대 최고의 중장거리 기량과 준수한 단거리 기량을, 러시아 대표 시절은 준수한 중단거리 기량과 나쁘지 않은 장거리 기량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 스피드
성시백, 이호석과 함께 2000년대 중후반은 물론 한국 역대 최고의 스피드스터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순발력이 뛰어나 피치를 올리는 속도나 스퍼트 능력에서 이호석과 쌍벽을 이뤘다. 중장거리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고, 500m에서는 스타트와 초반 가속이 약해 다른 종목에 비해 큰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최고 스피드는 그 어느 단거리 스프린터보다도 뛰어났다. 계속해서 속도가 붙어서 진행되는 5,000m 계주에서는 외국의 가장 빠른 에이스들에게도 공포 그 자체였던 선수다. 특히나 계주에서 한국의 가장 큰 라이벌이었던 캐나다는 안현수를 의식해 수년 간 다양한 작전들을 써가며 그를 상대했지만 앞서 있는 상황에서는 번번이 추월을 당하거나 추격을 하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거리도 좁혀보지 못하고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며 그가 2008년 부상으로 이탈하기 직전까지도 해법을 찾지 못한 채 1위를 내주기 일수였다. 한국 선수 시절에도 순간 속도가 좋았지만, 러시아 귀화 이후에는 발목 힘을 강화해 스타트 능력과 초반 가속에서 엄청난 발전을 보여주었음은 물론 순간 속도마저 한국 시절보다도 더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크로스 기술을 사용할 때 코너 진입 구간에서의 스피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만 최대 스피드는 전성기 때보다 떨어졌다.

  • 지구력
그의 전성기 시절에는 노진규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지구력도 역대 최강이라고 평가받았다. 체력 자체만을 놓고 보자면 노진규가 위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지만, 안현수는 기술과 경기 운영이 워낙 뛰어났기에 체력적인 효율이 더 뛰어났다는 차이점이 있다. 전성기에는 그가 레이스 중반에 1위로 치고 나오면 사실상 승패가 결정되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선두 자리를 지키는데 능했고, 엄청난 체력을 자랑하며 빠른 스피드를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유지하는데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동시대에 가장 강력한 라이벌들이었던 이호석아폴로 안톤 오노를 상대로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으며 이런 운영을 여러 차례 성공시켰다. 러시아 귀화 이후로는 지구력이 많이 약해졌고 체력과 연관이 큰 스퍼트 능력이 약화된 만큼 1,500m에서 한국 시절만큼의 강력함은 보이지 못했다.

  • 기술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역대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데 이견이 없을 정도로 테크니컬 스케이팅의 정점을 보여줬으며, 그가 롱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그의 기술에 있다. 불필요한 움직임으로 인해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 없는 가장 이상적인 스케이팅 자세를 가졌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자세가 좋으면 좋을수록 공기에 대한 저항을 줄일 수 있으며 속도를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전이경 해설위원도 그의 레이스를 보며 '자세가 완벽해 체력이나 속도가 새는 일이 없다'라고 코멘트 한 적이 있다.

추월 기술도 아웃코스와 인코스 모두 최정상급이다. 순간 가속이 좋아서 아웃코스를 추월할 때 빠르게 스피드를 끌어올리고 속도가 붙은 상태로도 깔끔하고 안정적으로 코너를 돈다. 당연히 아웃코스로 선수를 추월하는 것은 인코스로 추월하는 것보다 몇 배로 힘이 들며 잘하지 않는 이상 안 하느니만 못하다. 굳이 언급하자면 세계 무대에서 안현수 정도의 아웃코스 추월 기술을 갖췄다 할 수 있는 선수는 이호석 밖에 없다. 러시아로 귀화한 이후로는 체력이 전성기 시절만큼 강력하지 않아 중장거리에서 보여주던 아웃코스 추월을 예전만큼 많이 선보이지 못했다. 또한 무릎부상의 후유증으로 체력훈련을 과거 한국 시절처럼 소화할 수 없는 몸상태이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지구력이 안현수의 약점이 되었다.[53]

인코스 기술도 모든 패턴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가장 흔한 추월 패턴인 코너를 돌아나오며 직선 구간에서 추월하는 기술은 말할 것도 없고, 코너 진입 구간에서 탄력을 받아 추월하는 크로스 기술은 그를 대표하는 기술이라 칭할 만하다. 러시아 귀화 후 아웃코스보다는 인코스를 훨씬 많이 사용하다보니 더 잘 알려진 기술이긴 하지만 그가 한국 선수 시절에도 자주 사용하던 기술일 뿐만 아니라, 사실 크로스기술 자체가 원래부터 쇼트트랙에 존재하던 개념이다. 물론 안현수가 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안정적이고 정석적인 움직임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사실이고, 제대로 구사하기에는 고난이도의 기술이기에 스케이터의 실력 또한 출중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다른 선수들이 코너 진입 직전에 추월을 시도할 때는 보통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지만 안현수는 다른 선수들보다 2번 정도 더 많은 스텝을 쳐서 코너를 깔끔하게 빠져나온다.[54]

대부분의 가속이나 추월등이 코너를 도는 구간에서 일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쇼트트랙에서는 코너링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할 정도로 과장이 아닌 가장 기본기이자 중요한 기술이다. 그의 코너링이 특히나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전속력으로 아웃코스를 달리면서 원심력을 이겨내고 안정적으로 돌 수 있다는 것이며 원하는 코스를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강력한 코너링 능력이 그의 추월 기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같은 최정상급 스케이터였던 이호석이나 곽윤기의 추월 기술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55] 크로스기술이 주로 인코스에 바짝붙어서 코너링을 하다보니 코너를 돌고 나서 원심력 때문에 바깥으로 세어나갈 수 있는 확률이 높은데, 안현수는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코너를 돈 후에도 인코스 쪽에 붙어있는게 가능했던 선수다.

  • 경기 운영
지능적인 경기 운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경쟁하는 상대 선수들의 장단점과 스타일을 모두 파악하는 것은 물론 경기 흐름을 읽어 어떤식으로 레이스를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도 뛰어나며, 긴박한 상황에서도 순간마다 빙판 컨디션을 외운다던지 선수 견제를 위해 앞뒤로 시야를 수시로 체크할 정도로 꼼꼼하다. 견제 능력이나 코스방어가 뛰어났던 것도 그에게 도전했던 주 경쟁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해준 중요 요소이기도 했다. 특히 전략을 잘 생각하고 들어가야 하는 세계선수권 슈퍼파이널에서 그의 경기 운영 능력이 더욱 잘 드러난다.[56]

  • 안정성
빠른 스피드로 고난도 추월 기술을 구사하면서도 최정상급 안정감을 갖춘 스케이팅을 선보였다. 화려한 스케이팅 기술이나 스피드에 비해 잘 언급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안현수가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되는데 굉장히 중요했던 분야로, 그가 스케이팅 도중 불안한 모습을 보이거나 넘어지는 장면은 손에 꼽을 정도이며 이마저도 대부분이 본인 실수가 아닌 다른 선수에 의한 것이다.[57] 이호석이나 성시백 같이 고평가받는 선수들도 안현수와 비교했을 때 가장 쳐지는게 안정성으로 언급될 정도로 안현수는 그 긴 선수 경력 동안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장면을 찾아보기 굉장히 힘들다. 또한 다른 선수와 접촉하는 것도 드물고 순간 판단력이 뛰어나서 기회를 확실하게 포착하는데 능해 무리하거나 위험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빌미 자체를 제공을 안하는 편이었다.

  • 단점
한국 선수로 뛰던 시절에는 압도적이던 1000m와 1500m 기량에 비해 500m 활약상은 부족한 편이었다. 그가 갖췄던 스피드는 당연 세계 최강이 맞았지만 문제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에는 스타트 능력이 너무 떨어졌다. 물론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전관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500m에 꽤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고 월드컵에서는 4번의 결승에 모두 진출해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따내어 랭킹 1위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성시백이 등장하기 전까진 500m 종목에서 대한민국 선수 중에서는 강자에 속했다. 안현수가 500m를 공략하던 방식은 스타트에서 좋은 자리를 거의 반쯤 포기하고 레이스 후반 추월로 승부를 뒤집는 식의 레이스였다.[58][59]

러시아로 귀화하고 나서는 발목 힘을 강화해 단거리 능력에서 큰 발전을 이뤘고 2013-14시즌 기준 500m 종목에서 세계랭킹 1위에 오를 정도가 되었다.[60] 그러나 앞서 언급되었든 지구력이 한국 시절보다 현저히 떨어진 것이 보였으며 2012-13시즌 1500m 경기에서 선두에서 끄는 작전을 많이 시도해보기도 했으나 경기 후반에 뒤처지거나 스피드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1500m는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아웃코스 추월이 상당히 중요한데, 문제는 아웃코스 추월은 체력 소모가 심해서 1500m에서 한국 시절급의 압도적인 경기를 펼친적은 거의 없다. 결론적으로 장거리 종목에서 경쟁력은 있었지만 전성기만큼의 퍼포먼스를 기대할 수는 없었으며 파워를 제외한 전반적인 신체 능력치도 최전성기였던 한국 대표 시절보다는 떨어졌다.

파일:Ahn hyun-soo_2006.jpg
파일:shorttrack.sportresult_com.jpg 복사.jpg
2006년 토리노 올림픽과 ISU shorttrack.sportresult.com 상단 화면
여러 논란이 있는 인물이다. 한국 쇼트트랙 부흥기 빙상판의 영광의 정점에 서있었으며, 한국에서는 '쇼트트랙의 황제' 외신들로 부터는 '쇼트트랙의 마이클 조던이라' 불리었다. 그러나 어두운 면 또한 극단적으로 경험한 인물이며 그것을 국적까지 바꾸면서 한국을 벗어나 전세계에 그대로 노출시켰기 때문에 평가는 상당히 엇갈릴 수밖에 없다. 빙상판의 수혜자이자 피해자, 한국과 러시아를 모두 품고 세계를 정복한 영웅, 배신자라는 논란, 하지만 오랜 선수생활 동안 쇼트트랙 역사에 있어 국내외로 발전에 공헌한 바는 상당히 크며 전설이라 평가 받는다. 관련 업계외신도 쇼트트랙 역대 최고의 선수로 인정하고 있다.

파일:올림픽 채널 쇼트트랙.jpg
IOC 공식 웹사이트 캡쳐화면


4.1. 관련 어록[편집]


"존경의 대상이면서 가끔은 화가 나기도 한다. 김동성이 없으니 안현수 거기다 안현수는 김동성보다 더 강하고 꾸준하다. 나에겐 재앙이면서도 축복이다. 그로 인해 수많은 골드를 놓쳤지만 또 그와 같은 시대에 경기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 프랑수아루이 트랑블레


"그는 마치 제트기 같다. 그가 바깥쪽으로 날 추월할 때면 머리가 하얘진다. 항상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그의 스케이팅에서는 아름다운 오로라가 나오는 것 같다."[61]

"기술과 스케이팅적인 부분에서 봤을때 안현수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트트랙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아직 데뷔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한번은 페이스가 느린 3000m 경기에서 그를 관찰하기 위해 그의 뒤에서 스케이팅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생각했습니다. '정말 엄청난 재능을 타고 났다. 만약 내 약점을 모두 파악하게 된다면 이 선수를 레이스에서 이기는건 정말 어렵겠군.' 이라고 말이죠."

"만약 쇼트트랙을 위해 태어난 운동선수가 있다면 안현수일 것이다. 안현수가 뛰는 자세를 보면 골반이 약간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스케이터로서 완벽한 자세다. 안현수는 엄청난 기술과 경험을 겸비했다."

"전설적인 안현수, 그는 2006년 최고였고, 2014년에 무적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날은 우리의 날이었다고 합시다. "

- 아폴로 안톤 오노


"특히 1500m에서는 그는 앞에서 뒷짐을 지고 타고 있는데 나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은 양손을 흔들어도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몰랐었지만 이젠 그를 따라잡는 걸 체념했다. 선배인 마르크가 안현수가 어떠냐고 묻길래 그에게 복귀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고 말했다."

- 에릭 베다르


"2002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한국에) 패했을 때 난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강할 리가 없다고 단언했었다. 그러나 안현수를 보고 난 후엔 그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보고 있으면 편하지가 않다. 무언가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 생긴다. 굳이 말하자면 아마 존경심일 것이다."

- 니콜라 로디가리


"가장 존경하는 선수는 안현수 선수다. 최고의 위치에 있을 때도 굉장히 열심히 했고 그런 걸 보면서 '최고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구나' 라는 걸 생각하게 됐다."

- 성시백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아쉬웠던 건 안현수 같은 해결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안현수는 쇼트트랙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전 속력 아웃코스로 달리다 밖으로 흐르지 않고 안으로 탈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선수이다."

"꼭 현수가 나가면 앞에 있는 선수들이 알아서 비켜주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하죠. 레벨 자체가 아예 한두 수 이상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 이런 모습들이 흉내 낼 수 있는 것들도 아니고 어떤 안정감이 있고 자기 자신을 믿어야겠죠. 한마디로 얘기하면 결승에서 타는 모습을 보면 그 경기의 지배자입니다."

- 이준호


"현수는 누가 가르쳤다고 주장하기도 뭐할 만큼 천재적인 선수다. 지도자 생활을 하다보니 선수 무릎 구조나 무릎 각, 발목 각 등 뼈대를 많이 보게 되는데 현수는 그런 면에서도 쇼트트랙에 타고 났다"

- 모지수


"안현수는 쇼트트랙을 위해 타고난 선수. 타고난 천재인데 노력도 남들보다 배로 한다."

- 손세원 (前 성남시청 쇼트트랙 감독)


저는 2002년부터 안현수를 알고 있었고 어떤 코치에게 물어봐도 저와 같은 모든 사람들이 그에 대해 가장 높은 평가를 내릴 것입니다. 그가 러시아 팀과 보낸 첫 달에 이미 우리는 큰 진전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들은 그의 기술, 그의 태도를 모방하려고합니다.

나는 안현수를 러시아 팀의 진정한 "롤 모델"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 장권옥


"안현수의 천부적인 재능 뒤에 성실함이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1년 6개월을 보내며 현수에 대해 나쁜 말, 싫은 소리하는 선수들을 본 적이 없다. "모두가 현수를 좋아하고 존경하면서 같은 선수임에도 현수에게 사인을 받고 사진 찍기를 청한다. 만약 현수가 불평 불만을 늘어놓고, 잘난 척 하면서 불성실하게 생활했다면 그들도 현수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의 말 하기 좋아 하는 사람들은 러시아가 안현수의 기술만 빼먹고 버릴 거라는 얘기를 하더라. 물론 현수의 기술을 알려준 부분이 있지만, 그 기술들이 특별히 비밀스런, 현수만 하는 기술이 아니다. 현수가 하기 때문에 특별하게 보일 뿐이다."

- 황익환 (前 성남시청 쇼트트랙 감독)


"안현수는 지금까지 내가 본 선수 중 가장 아름다운 스케이팅 을 구사하는 스타다. ."

- 채지훈


"안현수를 보는 순간 그만 입이 딱 벌어졌다. 그의 스케이팅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테크닉이 뛰어나다 ."

"안현수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이다."

"군더더기 없는 스케이팅 기술을 가졌다. 역대 최고."

- 전이경


"내가 점찍은 선수들 중 가장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사람은 안현수이다."

"큰 대회에 나가도 오히려 나를 안심시킬 정도로 흔들리지 않는 선수가 안현수 이다."

- 전명규


"현수는 테크닉이 있고 화려하다. 하지만 체력이 월등한 것은 아니고, 인코스와 아웃코스로 모두 추월이 가능한 스케이팅을 한다. 그런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며 "현수는 스케이팅은 물론 축구 등 다른 운동도 잘 한다. 그런 운동 신경도 기술과 많은 연관을 맺었을 것."

- 박세우 (전북도청 감독)


"현수는 경기 운영 능력과 순간 스퍼트가 뛰어나다"

"나나 현수나 힘으로 하는 게 아니고 테크닉 쪽으로 스케이팅을 했다 작전이나 순간적인 공간 지각이 유연했다. 적재적소 원하는 위치에 가 있었고, 힘보다는 기술이나 작전 쪽으로 생각을 많이 했다. 운동도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안현수의 기량은 정말 뛰어났다. 하나를 가르치면 정말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안현수만 특별히 더 가르친 건 아니다. 대표팀에서 모든 선수를 똑같이 지도했는데 안현수가 더 자주 나를 찾아와 많은 얘기를 나눴고 다독여줬다."

- 김기훈


"세계에서 제2의 안현수는 없다. 이 아이스링크에는 많은 전설이 있을 수 있지만, 쇼트트랙을 이끌고 쇼트트랙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안현수의 시대였다."

- 왕멍


"안현수는 쇼트트랙의 달인이다. 경기중 트랙을 지배하는데 능숙하다. 그는 항상 최고의 순간을 포착하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추월할 수 있다."

- 우다징


"쇼트트랙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 안카이 (An Kai)


"개인적으로 쇼트트랙에서 이런 선수는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그는 독특한 근육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안은 쇼트트랙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멀리서 보면 날아가는 것 같다."

"저는 그가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평생 빅토르 안에게 감사할 것이다. 올바르게 훈련하고, 문제에 접근하고, 추론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등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 루슬란 자하로프 (Ruslan Zakharov)


"빅토르 안은 나의 멘토이자 스타다. 그는 우리의 리더임이 분명하다."

"빅토르 안은 세계 쇼트트랙 역사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에 대해 아무도 논쟁하지 않을 것입니다."

- 세묜 옐리스트라토프


"엄청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각 전술을 미묘하게 계산합니다. 전술을 결정할 때 그와 세계에서 대등한 사람은 없습니다."

"빅토르 안은 은퇴를 선언할 때까지 훈련 계획과 주행 전술 수립 등 선수단 내부에서 황제 같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 블라디미르 그리고리에프


"그는 한 사람이지만 모든 사람을 정상으로 끌어들입니다." "선수들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어하며, 논쟁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쇼트트랙 테크니션입니다."

- 세바스티앵 크로 (Sebastien Cros) [62]


"그가 경기를 할 때 항상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을 보면서 너무 신기했어요. 스케이팅 선수로서 완벽 그 자체였죠. 훌륭한 기술과 기교를 갖췄지만 동시에 폭발적이었고 거의 자유자재로 추월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선행과 후행에도 모두 뛰어났습니다. 토리노 올림픽 당시 나는 겨우 여덟, 아홉 살이었지만 아직도 5000m 계주 결승전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한국팀은 마지막 바퀴까지 2위였는데, 갑자기 안현수가 격차를 줄이고 순식간에 캐나다를 제치고 자신의 3관왕을 달성했습니다."

- 토머스 홍


"그 토리노 계주 결승전은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안현수는 마지막 두 바퀴에서 캐나다 선수를 바깥쪽으로 추월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뒤쳐진 중국 선수까지 피해갔어야 했는데 그 공간의 간격이 굉장히 작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가 본 추월 중 최고의 추월이었습니다."

- 처버 부리안


" 2006년 토리노 계주의 마지막 주자,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았었다."

- 마르크 타위터르트 (Mark Tuitert)[63]


"현수형은 여러 논란과 일들을 겪고도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현수 형을 보고 많은 힘을 얻는다. "

- 이정수


" 노진규 선수와 안현수 선수를 존경한다. 그들은 훌륭한 테크닉과, 강한 신체적 조건, 빠른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며 경기를 어떻게 다룰지 아는 선수들이다 "

- 황대헌


" 함께 훈련할 때 현수형이 형이 토리노 때 했던 것처럼 너도 충분히 잘할 수 있어.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고 용기를 많이 주었다. 토리노 올림픽 때 현수형의 경기를 보면서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꿈을 키웠다."

- 임효준


"안현수 코치가 와서 우리 대표팀에 여러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특히 정신적으로 자신감이 확실히 생겼다."

- 장위팅


"안현수 코치와 김선태 감독의 지도 덕에 과거에 비해서 자세가 좋아지고 근육 단련 등의 효과가 생겼다. 안현수 코치는 나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목표를 잃으면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 런쯔웨이


"빅토르 안은 우리의 스타다. 그는 쇼트트랙의 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했다."

- 유리 무라토프 (Yury Muratov|Муратов Юрий Алексеевич)[64]


"그는 독특하고 뛰어난 운동 선수이며 이미 인생에서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65]

"빅토르 안은 영원히 세계 역사와 러시아 쇼트트랙의 역사에 들어섰고, 쇼트트랙의 인기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과대평가라 할수 없다. 우리는 이 공헌에 감사하며 우리 팀과 코치들이 그렇게 뛰어난 선수와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

알렉세이 크랍초프 (Алексей Кравцов) [66]


"빅토르 안은 실제로 '선수 겸 코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선수들에게 전하고 자신의 전술을 그들과 공유했습니다. 우리 쇼트트랙 역사에 큰 흔적을 남겼습니다."[67]

그는 러시아의 코치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그가 코치로서 자신을 실현할 100% 기회가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2018년 9월)[68]

"많은 이들이 그를 쇼트트랙의 신이라 기억한다. 그는 러시아에서 쇼트트랙이란 스포츠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 스베틀라나 주로바 (Svetlana Zhurova)[69]


" 그는 언제나 스포츠의 영웅이자 아이돌이었다. 그로부터 축하한다와 잘했다는 말을 들은 것을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70]

- 아리안나 폰타나


" 많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억해야할 단 하나GOAT."

- 폴 마케이지[71]





5. 루머[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안현수/루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안현수의 한국 국가대표 선발 논란에 대한 2010년, 2014년, 2018년, 2022년 공식 보도자료들
2. 안현수이 2014년 2022년 밝힌 공식입장
3. 당시 빙상연맹이 밝힌 해명들과 선발방식 논란에 대한 반박 주장
4. 그리고 안현수와 이호석 선수와의 사이에 대한 오해와 루머들을 정리 한다.


6. 논란[편집]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었던 선수 생활 막바지에는 러시아 도핑 스캔들에 연루되며 올림픽 출전 불허 처분을 받아 코칭 스태프로서의 참가까지 영구 금지된다고 언론을 통해 알려졌었다. 그러나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는 문제 없이 중국 국가대표 테크니컬 코치로 참가했고, 그가 중국 코치직을 제의 받은 것은 2018년이었다. 또한 한국과 러시아의 언론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언론을 통해 2018년 안현수가 한국과 러시아의 국가대표 지도자 제안 논의가 있었던 것을 확인 할수 있다. 당시 국제빙상연맹 회장은 네덜란드 인이었던것으로 볼때 그가 당시 올림픽에 출전이 허락되지는 않았으나 공식적인 징계를 받은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할수 있다.[72]

안현수는 금지약물 검사에 단 한 번도 적발되지 않은, '의심되는 대상'으로 올라간 맥라렌 보고서 기재자이다. 2018년 1월 당시 한국의 한 언론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맥라렌 보고서는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어도, 고발, 증언 등 정황 증거만 있는 선수도 이름이 올라가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특수한 상황 이었고, IOC는 맥라렌 보고서에 거론된 선수는 당시 전원 올림픽 출전을 불허했다. 2018년 9월 은퇴했을 당시 AP 통신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러시아의 특수 상황으로 그가 반드시 클린한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출전이 허락되지 않았다.

2018년 출전불허를 결정한 IOC가 이유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1,#2 당시 한국과 외신의 언론에서는 많은 기사가 있었고 추측성 보도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가 도핑과 공개적으로 연결된 점이 없었고 이유가 공개되지 않았던 것은 2018년 7월 인사이드 더 게임즈(insidethegames.biz) 의 편집장 던컨맥케이가 "우리는 빅토르 안이 왜 평창 올림픽에 거부당했는지 알수 있을까요?" 라고 한 트위터의 언급과 그의 기사에서 확인된다.

이는 2020년 그의 은퇴기사를 다룬 조선일보 영문판에서도 확인가능하다. 2020년 올림픽 기사를 다루는 NBC는 greatest라 언급한 안현수의 은퇴기사에서 2018년 1월 러시아 선수단에 대한 참가명단을 결정한 IOC의 입장을 인용하면서 명시했다. 당시 IOC 의장 발레리 푸르네이론은 '참여 가능 명단에 없다고 해서 반드시 그 선수가 도핑을 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처분이 그들이 자동으로 의심돼서는 안됩니다.'라고 밝힌바있으며 참가가 허락되지 않은 선수들에 대한 추가 조사가 있을 것임을 언급했다.

2018년 올림픽당시 IOC 위원장인 토마스 바흐는 안현수의 출전금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선수 개개인에 대한 데이터와 여러 방법으로 조사한 자료를 검토해 내린 결정이다"라고 답변했고 이후 IOC와 WADA는 러시아 선수단의 모스크바 연구소 데이터 (LIMS) 조사를 2019년 1월부터 시작했는데, 이후 그에 대한 추가적인 공식 징계가 일어나지 않았던 점, 그리고 선수 복귀를 결정했을 당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을 준비한다는 것이 한국 러시아와 공식 외신들을 통해 공개가 되었던 점, 2022년 올림픽 당시 러시아가 안현수가 원했으면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면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던 것 중국 국가대표 팀 코치로 문제 없이 참가가 가능했던 것으로 볼때 추가 조사가 끝난이후 올림픽 참가불허 처분은 2018년 평창올림픽 출전불발로 끝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2월 그가 복귀를 결정했을 때 NBC 스포츠 해설자인 아폴로 오노는 인스타그램에서 전설적인 안현수, 그는 2006년 최고였고, 2014년에 무적이었다고 언급하면서 그와 자신의 2월의 승리를 언급했는데, 시기로 짐작컨데 그에 대한 조사는 이시기 끝났던 것으로 추정할수 있다.

2016년 러시아 선수단의 도핑 이슈가 시작되었을 때 그는 이탈리아와 러시아 언론이 공개한 명단과 2017년 12월까지 기소여부를 확인했던 46명의 명단에 없었다. 그에 대한 샘플조사는 이루어졌지만 2016년 12월 보고서 샘플 분석 검사표를 확인해본다면 당시 샘플훼손 표시가 없으며 나트륨 수치 정상이며, DNA 훼손도 없다.[73] 또한, 당시 안현수 본인도 2016년 말 ISU로부터 명단에 없음을 직접 확인 받았다. 2017년 12월 오스왈드 에도 위원회가 샘플 재분석이후 확인한 명단 #pdf 에도 없다. 하지만, 올림픽을 앞둔 직전에 보고서에 추가되었고, CAS 제소에서 항소가 기각되었다. 그는 공식적으로 기소된적은 없고, 다른 러시아 선수단들 처럼 징계절차는 없었다.[74] 하지만 결백입증을 받지 못했고 이는 '도핑의혹'으로 남게되었다.

IOC-WADA는 당시 추가 조사를 위해,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러시아 선수들의 모스크바 연구소 데이터 (LIMS)를 2019년 1월과 4월에 넘겨받았다.#1#2 2022년 6월에 ISU는 조사를 종결했다. 2021년 11월 러시아 정부매체 타스에 따르면 2018년 올림픽에 참가가 허락되지 않은 선수들에 대해서 WADA는 LIMS 데이터를 통해, 2022년 베이징 올림픽 참가가능여부롤 결정한 것이 확인된다.#1 [75] 2023년 5월까지 4년동안 WADA가 조사한 모스크바 연구소 데이터 조사에서 무려 200명이 넘는 러시아인들이 확인되었고 자격정지와 기록박탈이 이루어졌다. 이 조사로 소치올림픽 메달 및 메달리스트들도 추가로 적발되어#1#2 징계를 받고 박탈되었으나#1 안현수에 대한 것은 그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안현수는 IOC가 관리하는 olympedia 리스트[76] #1,#2와 산하기관인 국제 빙상연맹 ISU #1 리스트에 없다.

이와 관련해서 안현수의 인터뷰들은 다음과 같다.

2019년 인터뷰

IOC에서 제시한 도핑 규정 리스트도 굉장히 까다로웠는데, 내가 어떤 조항에 걸려서 통과하지 못했는지도 아직까지 모른다 실제로 그 대회 메달리스트 중 따로 징계를 받은 선수도 있는데, 그들은 미리 제소되고 앞서 메달까지 박탈당했다. 나도 실제로 문제가 있었다고 하면 대회 기간을 포함해 성적이 없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난 거기에 포함도 안 됐는데 평창 대회 직전 출전 불가가 결정됐다.


그리고 2022년 3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도핑 문제를 일으켰다면, 그동안의 쌓아온 국제대회 입상 기록이 모두 무효화 되었을것이라고 단정지어 말했다.

2023년 러시아 매체와 이를 다룬 올림픽 해외 보고서에 따르면 빅토르 안(안현수)은 왜 자신이 평창 올림픽에 거부당했는지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되어 있다.



7. 수상 기록[편집]


  • 쇼트트랙 종목 최다 올림픽 금메달(6개) 보유자[77](2회 3관왕 달성)
  • 쇼트트랙 종목 올림픽 메달 수 역대 2위(8개)[78] 보유자(2개 동메달)
  •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3관왕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3관왕
  • 세계선수권 5연패+6회 우승[79]
  • 2003-04, 2005-06 시즌 월드컵 챔피언|세계랭킹 1위
  • 유럽선수권 1회 우승[80](쇼트트랙 역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 및 유럽선수권 종합 우승 타이틀 획득)
  • 쇼트트랙 최다 메달 수(55개) 보유자[81]


7.1. 주요 국제대회 성적[82][편집]


대회



포디움
올림픽
6
0
2
8
세계선수권
18
7
3
28
세계 팀선수권
2
3
1
6
유럽선수권
7
5
2
14
아시안 게임
5
1
0
6
유니버시아드
3
0
1
4
주니어 세계선수권
4
0
0
4
총 합계
45
16
9
70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월드컵 시리즈 수상성적
월드컵 랭킹
8
12
4
24
월드컵 메달
67
37
25
129
합계
75
49
29
153
공인 국제대회 + 월드컵 합계
총 합계
120
65
38
223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대표

파일:오륜기(여백X).svg 올림픽
금메달
2006 토리노
5000m 계주
금메달
2006 토리노
1000m
금메달
2006 토리노
1500m
동메달
2006 토리노
5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2 몬트리올
5000m 계주
금메달
2003 바르샤바
5000m 계주
금메달
2003 바르샤바
종합
금메달
2003 바르샤바
1500m
1위
2003 바르샤바
3000m S.F
금메달
2004 예테보리
5000m 계주
금메달
2004 예테보리
종합
금메달
2004 예테보리
1000m
금메달
2004 예테보리
1500m
1위
2004 예테보리
3000m S.F
금메달
2005 베이징
종합
금메달
2005 베이징
1500m
금메달
2006 미니애폴리스
종합
금메달
2006 미니애폴리스
1000m
금메달
2006 미니애폴리스
1500m
금메달
2007 밀라노
5000m 계주
금메달
2007 밀라노
종합
금메달
2007 밀라노
1000m
은메달
2002 몬트리올
종합
은메달
2002 몬트리올
1000m
2위
2002 몬트리올
3000m S.F
은메달
2003 바르샤바
1000m
은메달
2005 베이징
5000m 계주
은메달
2005 베이징
1000m
2위
2005 베이징
3000m S.F
2위
2007 밀라노
3000m S.F
동메달
2005 베이징
500m
동메달
2007 밀라노
500m
동메달
2007 밀라노
15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 팀선수권
금메달
2004 상트페테르부르크
단체전
금메달
2006 몬트리올
단체전
은메달
2003 소피아
단체전
은메달
2005 춘천
단체전
은메달
2007 부다페스트
단체전
동메달
2002 밀워키
단체전
파일:아시안 게임 로고.svg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3 아오모리
5000m 계주
금메달
2003 아오모리
1000m
금메달
2003 아오모리
1500m
금메달
2007 창춘
5000m 계주
금메달
2007 창춘
1000m
은메달
2007 창춘
1500m
파일:FISU 로고.svg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2005 인스브루크
5000m 계주
금메달
2005 인스브루크
1500m
금메달
2005 인스브루크
3000m
동메달
2005 인스브루크
10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2 춘천
종합
금메달
2002 춘천
1000m
금메달
2002 춘천
1500m
금메달
2002 춘천
2000m 계주
동메달
2002 춘천
1500m S.F
[[러시아|
러시아
display: none; display: 러시아"
행정구
]]
대표

파일:오륜기(여백X).svg 올림픽
금메달
2014 소치
5000m 계주
금메달
2014 소치
1000m
금메달
2014 소치
500m
동메달
2014 소치
15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
금메달
2014 몬트리올
종합
금메달
2014 몬트리올
1000m
은메달
2013 데브레첸
5000m 계주
은메달
2013 데브레첸
500m
3위
2014 몬트리올
3000m
3위
2017 로테르담
30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유럽선수권
금메달
2013 말뫼
5000m 계주
금메달
2014 드레스덴
5000m 계주
금메달
2014 드레스덴
종합
금메달
2014 드레스덴
500m
금메달
2014 드레스덴
1000m
1위
2014 드레스덴
3000m
금메달
2015 도르드레흐트
5000m 계주
금메달
2015 도르드레흐트
500m
은메달
2015 도르드레흐트
종합
은메달
2013 말뫼
1000m
2위
2015 도르드레흐트
3000m
은메달
2017 토리노
5000m 계주
은메달
2018 드레스덴
5000m 계주
은메달
2018 드레스덴
500m
동메달
2013 말뫼
500m
동메달
2017 토리노
500m

7.2. 올림픽 결과[편집]



파일:오륜기(여백X).svg올림픽 수상 성적
대회



포디움
올림픽 개인 메달
4
0
2
6
올림픽 계주 메달
2
0
0
2
합계
6
0
2
8

파일:오륜기(여백X).svg 올림픽 상세결과
대회
날짜
종목
랭킹
기록
2002 솔트레이크시티
2002년 2월 13일 ~ 23일
1500m
13위
2:23,287 분
1000m
4위
1:32,519 분
2006 토리노
2006년 2월 13일
1500m
금메달
2:25,341 분
2006년 2월 19일
1000m
금메달
1:26,739 분 전,
OR

2006년 2월 26일
500m
동메달
42,089 초
2006년 2월 26일
5000m 계주
금메달
6:43,376 분 전,
OR

2014 소치
2014년 2월 10일
1500m
동메달
2:15,062 분
2014년 2월 15일
1000m
금메달
1:25,325 분
2014년 2월 22일
500m
금메달
41,312 초
2014년 2월 22일
5000m 계주
금메달
6:42,100 분 전,
OR


1000 m 2006년 올림픽 기록 OR 보유자

5000 m 계주 2006년 올림픽 기록 OR 보유자

5000 m 계주 2014년 올림픽 기록 OR 보유자


2002년 1500 m Semifinal DSQ, 13위

7.3. 세계선수권 성적[편집]


  • 6회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 챔피언
  • 세계선수권 타이틀 20개 (3000 m 2개 포함)
  • 세계선수권 금메달 18개 (개인종목 금메달 14개, 계주 금메달 4개)
  • 세계선수권 개인종목 10승 (3000 m 포함)
  • 팀 세계선수권 타이틀 2개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 수상성적
대회



포디움
세계선수권 개인 메달
14
5
3
22
세계선수권 계주 메달
4
2
0
6
합계
18
7
3
28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 성적 기록
시즌
종합랭킹
포인트
500 m
1000 m
1500 m
3000 m
계주
2002

42
-

-


2위
-
21
-
21
-
2003

89
7위




우승
PEN
21
34
34
-
2004

102
4위




우승
PEN
34
34
34
-
2005

89





우승
13
21
34
21
-
2006

68
4위


8위
-
우승
PEN
34
34
PEN
-
2007

81





우승
13
34
13
21
-
2013
6위
23

-
-
7위

21
-
-
2
-
2014

63
4위

4위

-
우승
8
34
8
13
-
2017
7위
23
7위
-
4위

-
2
-
8
13
-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 성적 종목 통계
메달
종합
500 m
1000 m
1500 m
3000 m
계주
합계

6
-
4
4
2
4
20

1
1
3
-
3
2
10

-
2
-
1
2
-
5
합계
7
3
7
5
7
6
35

  • 수상기록이 없는 시즌 결과는 제외, 8위까지의 종목 순위 결과와 포인트의 기록. 2023년 세계선수권 부터는 종합제와 3000 m 슈퍼파이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순위결과만 기재


7.4. 월드컵 성적[편집]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월드컵 우승 기록
종합 우승
2003-04 시즌, 2005-06 시즌
500 m 1위
2005-06 시즌, 2013-14 시즌
1000 m 1위
2003-04 시즌, 2007-08 시즌
1500 m 1위
2003-04 시즌, 2005-06 시즌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월드컵 수상 기록
월드컵 랭킹
우승
2위
3위
포디움
종합
2
3
1
6
500 m 랭킹
2
1
1
4
1000 m 랭킹
2
4
1
7
1500 m 랭킹
2
4
1
7
합계
8
12
4
24

월드컵 메달



포디움
종합
7
3
5
15
500 m
6
4
2
12
1000 m
13
10
5
28
1500 m
16
7
5
28
3000 m
6
6
2
14
개인전 합계
48
30
19
97
5000 m 계주
18
6
6
30
2000 m 혼성계주
1
1
0
2
계주 합계
19
7
6
32
메달합계
67
37
25
129

랭킹 + 메달 합계
75
49
29
153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월드컵 랭킹[83]
시즌
종합
500 m
1000 m
1500 m
2002-03
2위
3위
3위
2위
2003-04
1위
2위
1위
1위
2004-05
3위
10위
2위
2위
2005-06
1위
1위
2위
1위
2006-07
-
-
19위
12위
2007-08
2위
-
1위
2위
2012-13
-
-
2위
2위
2013-14
2위
1위
2위
3위
2014-15
-
-
5위
18위
2016-17
-
7위
-
-
2019-20
-
14위
18위
-
랭킹 20위까지 표기[84]


  • 월드컵 메달 상세 목록은 (2002-2019년까지) ISU 프로필 이나 위키피디아 에서 확인 가능하다.
  • ISU 웹사이트 누락사항 : 월드컵 시즌 랭킹 포디움 2회 (2위) 누락[85], 월드컵 금메달 타이틀 3개 누락[86], 동메달 1개 누락

8. 개인 기록[편집]


안현수에게 유일하게 없는 것은 세계선수권 500m 금메달이다. 한국 선수들 중에서는 500m 강자였고, 2005-06 시즌에는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기 까지 했으나, 가장 약한 종목도 역시 500m 종목이었다.[87] 러시아 국가대표가 된 이후 과거에 수많은 메달을 따냈던 1500m[88] 보다는 한국 대표 시절 성과가 가장 적었던 500m와 체력적 부담이 1500m보다는 적고 자신의 최대 장점인 기술과 경기 운영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1000m에 더 집중했다. 2013-14시즌 기준 500m 종목에서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세계선수권 은메달과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게된다. 이후 선수로서 노쇠해져가는 과정에서도 기록을 유지 혹은 향상시켰던 것은 안현수가 얼마나 꾸준하고 성실하게 훈련을 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89]

500 m 최고 기록
개인 기록
500 m
대회
개최지
메달
PB

39.961 초
2019-20 월드컵
파일:미국 국기.svg 솔트레이크시티

2.
40.334 초
2016-17 월드컵
파일:캐나다 국기.svg 캘거리

1000 m 최고 기록
PB

1:23.487 분
2013-14 월드컵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토리노

2.
1:24.134 분
2019-20 월드컵
파일:미국 국기.svg 솔트레이크시티

1500 m 세계기록 WR 보유자

전,
WR

2:10.639 분
2003-04 월드컵
파일:미국 국기.svg 미시간

2.
2:11.586 분
2003-04 월드컵
파일:중국 국기.svg 베이징

3000 m 세계기록 WR 보유자

전,
WR

4:32.646 분
2003-04 월드컵
파일:중국 국기.svg 베이징

2.
4:39.485 분
2005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인스브루크


1000 m 올림픽 기록 OR 보유자

전,
OR

1:26,739 분
2006년 동계 올림픽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토리노

5000 m 계주 올림픽 기록 OR 보유자

전,
OR

6:43,376 분
2006년 동계 올림픽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토리노

전,
OR

6:42,100 분
2014년 동계 올림픽
파일:러시아 국기.svg 소치



9. 수훈과 명예 대사[편집]


  • 2016년 7월 러시아 올림픽 챔피언, 19번째 별로 명예의 전당 입성
  • 2016년 3월 자랑스런 한국체대 인 상을 받았다.[90]
  • 2014년 9월 GQ 러시아판 올해의 선수 선정
  • 2014년 6월, 2014 - 2015년 한국-러시아 상호 방문의 해 명예홍보대사에 위촉
  • 2014년 2월 블라디미르 푸틴으로부터 대조국공훈훈장 4급 수훈.[91]
  • 2014년 2월 러시아 연방 국방부 로부터 '군사 협력 강화' 메달 수훈[92]
  • 2014년 2월 NBC 로부터 MVP 선정
  • 2013년 3월 러시아 연방으로부터 명예 러시아 체육 명장 타이틀 수여[93]
  • 2009년 3월 국민체육진흥공단 홍보대사로 위촉
  • 2008년 8월 2008 베이징 올림픽, 웹사이트 명예의 전당 입성[94]
  • 2008년 3월 아시아체육기자상 남자 단체상 수상
  • 2008년 1월 대한빙상연맹 으로부터 MVP 선정
  • 2006년 10월 진선유와 2014년 평창 동계 올림픽 명예 홍보 대사로 위촉[95]
  • 2006년 2월 미국 스포츠 아카데미 이달의 선수 선정
  • 2006년 1월 스포츠조선 코카콜라 체육대상 시상식 우수선수상

  • 한국체대 빙상장 명예의 전당[96]에 기념되어 있다. 단 러시아 빅토르 안이 아닌 한국 국가대표였었던 안현수로 기념하고 있다.[97]


10. 방송 활동[편집]


  • 2006년 3월 5일 SBS TV <한수진의 선데이클릭> 49회, 진선유와 함께 게스트 출연했다.
  • 2007년 경향신문 인터뷰에 따르면,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광고나 방송출연 이야기가 있었으나 운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모두 거절했다.
  • 2010-2011 시즌, SBS 스포츠 쇼트트랙 해설위원으로 활동 했다.
  • 2015년 5월 11일-18일, MBC <휴먼다큐사랑> 44-45회, 부인 우나리와 함께 출연했다.
  • 2015년 5월 11일, MBC 휴먼 다큐 사랑에서 자신과 후배가 선배로부터 2005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폭행 당했다는 것을 직접 밝혔다.
  • 2014년 - 2016년, 러시아 심야 토크쇼 Evening Urgant(Вечерний Ургант) S3.E90, S4.E104, S5.E157 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 2017년 7월 26일 현장토크쇼 TAXI 488회, 부인 우나리와 함께 출연했다.
  • 2017년 10월 15일부터, 2018년까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제인이 아빠로 특별 게스트로 출연했다. (202~204회, 237회, 241회)
  • 은퇴 이후[98] 2018년 9월 21일부터 2019년 1월 25일까지 MBC 예능 진짜 사나이 300 멤버로 출연했다.
파일:Ahn2.jpg
진짜사나이 300에서의 안현수


11. 광고와 화보[편집]




12. 그 외 활동[편집]


  • 2020년 8월 : 한-러 수교 30주년 축하 메세지 영상에 참여했다.
  • 2019/20 시즌 러시아로 복귀했을때 루슬란 자하로프(Ruslan Zakharov)와 러시아 매체들은 안현수에게 정치를 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안현수는 아니라고 했다.
  • 2019년 2월 소치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 포토세션에 참가했다.
  • 2018년 9월 명지 초등학교 모교를 방문했다.
  • 2018년 7월 사하 공화국 초청 마스터 클래스 행사에 참여했다.
  • 2018년 6월 블라디미르 푸틴문재인 대통령과의 크렘린 대궁전에 있는 그라노비타야홀 만찬 자리에 참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안현수를 초대 시키고, 나의 빅토르 안이라 껴안으며, 애정과시를 했다.
  • 2016년 6월 28일 선배이자 토리노 동계올림픽 계주 팀 메이트였던 오세종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으며, 한국으로 들어와 빈소를 찾아 명복을 빌었다.
  • 2016년 4월 3일 후배인 노진규의 죽음이 알려지자, 아내 우나리와 함께 애도를 표했다.
  • 2016년 3월 12일 세계선수권은 무릎 통증으로 불참 한 대신 부인 우나리와 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던 것이 포착되었다.
  • 2015년 9월 투바 공화국 정부 쇼트트랙 학교 프로젝트의 메인 코디네이터로 참여했다.
  • 2014년 12월 모스크바 유치원 어린이 행사에 산타클로스 역할을 했다.
  • 2014년 9월, 12월 모스크바 학교 수업 행사에 참여했다.
  • 2014년 8월 21일 신우철과 변천사의 지목으로 러시아에서 아이스버킷 챌린지동참했고, 아내 우나리가 좋아하는 김연우를 지목했다.
  • 2014년 6월 안타 스포츠 러시아 진출 행사에 참석했다.
  • 2014년 5월 러시아 쇼트트랙 자선경매 팬들과 만남 행사에 참석했다.
  • 2010년 1월 22일 올림픽공원에서 소외계층 어린이를 대상으로한 스케이팅 지도 체험행사에 참여했다.
  • 2008년 4월 정몽준 선거유세에 지원 나온 적이 있다.[99]
  • 2007년 9월 07/08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자동선발되어 경기를 관전하러 왔고, 관중석에서 포착되어 인터뷰를 했다.
  • 2006년 12월 1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공원 야외 아이스 링크장에서 안현수와 진선유가 함께하는 팬 사인회기념행사가 열렸다.
  • 2006년 4월 22일 수협은행 주최로 소년소녀가장 등 태릉선수촌에 초청하여 사인회 및 스케이트 강습 체험 행사를 했다.
  • 2006년 4월 9일 기아 쏘렌토 마케팅 지원 행사와 사인회 행사에 참여했다.
  • 2006년 3월 12일 K리그 개막전 시축을 했다.
  • 2006년 3월 9일 조흥-신한은행, 일일지점장 행사, 사인회 및 경매 기부 행사에 참여했다.
  • 2006년 3월 8일 한라대 팬 사인회 행사에 참여했다.
  • 2006년 1월 태릉선수촌 훈련 개시식에서 선수 대표로 선서를 했다.
  • 2004년 안현수는 한국체육대학교 입학식 때 신입생 선서를 했다.


13. 여담[편집]


  • ISU는 result 사이트에서 토리노 안현수를 선수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다.





  • 검은 장갑을 선호하기로 유명하며 국가대표 초창기에는 종종 고글을 미착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 빅토르는 승리자란 뜻의 라틴어 Victorius가 어원이다.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은 소련 시절에 활동했던 고려인 록가수 빅토르 초이에서 비롯되었다.[100]

  • 안현수는 ISU 쇼트트랙 선수들 ISU 프로필 Hero / Idol과 영향력을 받은 사람으로 압도적인 수치로 가장 많이 언급이 되어 있다.
(2023년 기준 94명으로 1위이다.)



  • 등에는 오륜기 문신이 쇄골엔 '나리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그녀는 날 완성시킨다' 라는 영문으로 새겨져있다.


  • 왼쪽 옆구리에 '初心不忘 磨斧作針' 초심불망 마부작침(초심을 잃지말고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 이라는 한자 문신이 있다.

  • 배우자가 있으며 러시아와 한국에서 모두 혼인신고를 마쳤다.[101] 올림픽이 끝나고 결혼했다. 우나리는 안현수의 뒷바라지를 위해 러시아어를 공부하며 한국과 러시아를 오갔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러시아 측의 배려로 공식으로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어 AD 카드까지 발급 받고 안 선수의 서포터로 활동했으며, 안현수는 그녀에게 금메달을 걸어주었다.

  • 롯데 자이언츠이다. 빈말이 아닌 게 실제 한국에 있을 당시에도 롯데 자이언츠 모자를 썼다. 러시아로 귀화한 이후에도 2015년 4월 10일 사직구장에서 포착되었다. 사실 그의 출생지는 서울인 데다가 부산이나 롯데 자이언츠와는 아무런 접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롯데 팬이 된 것은, 어렸을 때 우연히 마주친 마해영에게 사인을 요청했더니 그 선수가 웃음 띤 얼굴로 친절하게 사인해 줘서 감동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2015년 12월 29일에 딸 안제인이 한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러시아 국적과 어머니의 대한민국 국적을 물려받은 이중국적자이다. 한국 여권과 러시아 여권상으로 모두 아버지의 성씨를 따랐다.[102]

  • 2016년 러시아 모스크바 지하철에는 안현수가 서울 광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국과 러시아 국가대표 선수라는 독특한 그의 이력과 위치 때문에 양국간의 민간 외교사절 역할을 했다. 2017년 슈돌에서는 딸 제인이 한복을 입고 붉은 광장에서 러시아 사람들의 귀여움과 인기를 얻는것을 알수있다. 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시작하면서 이미지가 나빠지고, 러시아가 한국을 비우호국가로 올려놓으며 한국-러시아의 사이가 급 멀어져서서 계속 이어질수 있을지는 미지수.

  • 2019년 2월 동계체전에서 막내동생 안현준이 짬짜미를 당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103]



  • 사실 안현수 이전에도 한국 선수로서 올림픽 메달리스트로서 귀화하여 외국 대표팀으로 나온 경우는 여러 번 있었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최민경이 있다. 특이하게도 2003년 프랑스 관광을 갔다가 프랑스 빙상연맹에서 뜻밖의 귀화 제의를 받았다. 솔트레이크 대회에서 개인전에 출전하지 못한 그녀는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개인전 출전의 꿈을 이루기 위해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최민경은 프랑스 대표로 토리노 대회에 출전 했지만 1000m는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3000m 계주에서도 파이널 B 진출에 그치며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고 이 때문인지 한국에선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 밖에도 2000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 출신 신미경 등 6명이 국내 실업팀에서 열악한 환경 속에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가 2008년 아제르바이잔으로 귀화한 일, 세계 최강 한국답게 양궁에선 더 많은데 2006년 호주 국적을 취득한 김하늘은 호주 남자대표팀의 간판으로 2008 베이징 올림픽2012 런던 올림픽에서 2회 연속 올림픽에 참가했고 일본 여자대표 팀에는 2006년 귀화를 선택한 엄혜랑 & 엄혜련 자매가 베이징과 런던 대회에 출전했던 일이 있다.[104][105]

  • 2020년 4월, 안현수를 정치에 입문시키려는 움직임에 대해 러시아 연방 국회의원이자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인 스베틀라나 추로바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그러나 안현수가 여기서 영원히 살 생각은 없는 것 같고, 그의 마음이 떠났다면 여기에 남을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그는 한국에 돌아가길 원하는 것 같다. 그는 결국 '러시아인'보다는 '한국인'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106]

  • 과거 인터뷰에서 '제가 한국에서 가족과 자리를 잡으려면 국적회복 문제도 생각해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딸 제인은 한국에서 교육받게 할 생각이에요. 제가 만약 베이징 올림픽까지 마친다면 제인이 딱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예요.' 라며, 올림픽 이후 한국 국적을 회복하고 싶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당시 2019년 2월 인터뷰에서는 중국행을 부정했으나, 이후 은퇴를 결심하고 중국행을 택한다.

  • 김선태 감독 & 임효준 등과 함께 중국행을 갔다고 의혹이 제기되었다.[107] 임효준은 언론 인터뷰들 에서 안현수를 롤모델로 삼았다고 말했고, 평창올림픽 땐 김선태 감독 지도를 받았다. 그러나 2021년 3월 조선일보 기사에서 빙상계 관계자들은 "김 감독과 안 코치도 언론 보도를 보고 임효준의 중국 귀화를 알았다". "중국 귀화는 김 감독와 안 코치의 재량을 넘어서는 이슈로 개입할 수 없는 문제다."라고 의혹을 일축했다.[108]


  • 2022년 3월 14일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안현수가 부인 우나라씨의 화장품 회사 사이트에서 중국대만을 따로 병기를 하면서 국가로 표기한 점에 대해서 중국인들에게 사과하며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는 게시물을 작성했다. 기사가 올라온 직후 국내 네티즌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안현수 본인이 직접 웨이보에 사과했으나 이 때문에 중국의 유제품기업 쥔러바오(君乐宝) 광고모델 계약마저도 강제로 해지당했다.[109]

  • 러시아가 2022년 러시아 동원령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서울에서 반신욕을 즐기면서 생활하는 모습을 SNS에 올렸다. #[110][111]

  • 러시아로 귀화한 이후 중국 대표팀 코치를 맡은 것을 중국으로 다시 귀화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중국 대표팀은 그냥 코치직을 맡았을 뿐 국적은 여전히 러시아이다.

  • '빅토르'가 러시아에만 있는 이름은 아니지만 빅토르 안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그런지 러시아랑 좀 엮인다 싶으면 죄다 빅토르 뭐시기로 별명이 붙는다.

  • 안현수의 막내 남동생 안현준[112]은 2023 레이크플래시드 세계대학경기대회 스피드 스케이팅 혼성 계주에서 김민선과 팀을 이뤄 금메달을 획득했다.

  • 러시아 정부로부터 받은 최고급 아파트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

[1] 러시아로 귀화한 후 개명했으므로 한국명은 소멸되었기에 법적인 이름은 아니다. 다만 ISU 웹사이트에서는 한국 Ahn Hyun-soo 와 러시아 명 Victor An을 같이 사용하고, 한국과 러시아 선수 명단에 같이 등재되어 있다. 업계에선 두 이름을 모두 동시에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 중국 언론들은 안현수를 안셴주 (An Xianzhu)라 불렀는데, 때문에 안현수가 중국으로 또 국적을 바꾼것이 아니냐는 말이 돌았으나 이는 안현수의 중국어 발음이다. 중국 미디어들은 한국 국적일때도 러시아 국적일때도 안현수의 중국어 발음인 안셴주 安贤洙 라고 불렀다.[2] 공식적인 대회 등록명은 Victor An 이다. ISU olympics.com 하지만, 실제로는 Viktor An이 더 통용되는 듯 하다. olympedia.org, ISU 홈페이지 기사들에서는 Viktor An, Victor An, Ahn hyun-soo 이름이 모두 사용된다. 단, 외신들은 Viktor Ahn으로 기사들을 내고 있다. nbcsports.com, olympics.com, insidethegames.biz, sportbetting-odds.com insider.com[3] 진짜 사나이 300 1화에서 신체검사를 했다. 현역 기준 한국 시절에는 60kg대 초반, 러시아 시절에는 60kg대 중반을 유지했다.[4] 한국 선수 시절에는 1000m와 1500m가 주 종목이었지만 러시아 선수 시절에는 나이와 체력적인 부담을 이유로 1500m보다는 스타트와 순발력 훈련에 초점을 맞춰 500m와 1000m로 주종목을 변경했다.[5] 2022년 2월 말 중국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기술 코치직 계약이 만료되었다.[6] 여동생 안현숙은 동복 동생이고, 2명의 남동생은 이복동생이다.[7] 2022년 SNS에서 자신은 대한민국 국적이며, 러시아로 귀화했다가 다시 대한민국으로 국적회복을 했다는 루머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2014년 러시아에서 그동안 비자를 받아 거주했으며 러시아 영주권도 아직 없다고 언급했다. 2015년 MBC 휴먼 다큐에서 남편을 따라 귀화했다고 발언했다는 언론 오보도 있었지만, 역시 해당 다큐에서 그런 발언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러시아 언론도 У На Ри(우나리) 또는 Ю На Ри(유나리, U라는 글자만 보고 '유'로 오기한 것으로 추측)라는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쓴다. 참고로 화가 우나리(본명 이은나)는 다른 사람이다.[8] 어머니의 인스타그램 스토리 Q&A에 따르면 대한민국러시아이중국적이다. 만 22세 전까지 국적을 선택하거나, 또는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하고 복수국적을 유지할 수 있다.[9] 선수권 대회에서 시행되었던 슈퍼파이널은 메달수여는 없으나 순위와 타이틀 기록은 남는다.[10]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2014 소치 동계올림픽 각각에서 3개의 금메달과 1개의 동메달을 땄다. 이 기록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쉬자너 스휠팅이 여자 선수 최초로 달성하게 된다.[11]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연패를 달성했다. 최다 연승 기록은 중국양양(A)(6연패)가 가지고 있다.[12] 2011-12 시즌은 계주 멤버로만 출전했고 2015-16 시즌은 부인의 출산과 무릎 통증을 이유로 스킵했다. 2017-18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으나 2019-20 시즌에 은퇴를 번복하고 선수로 복귀했다.[13] 2019년 러시아는 안현수의 복귀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위한 복귀로 보고는 정말로 반겼던 것으로 확인되지만, 당시 안현수의 인터뷰나 이후 중국 국가대표팀 코치직을 수락한것을 본다면 자신의 몸상태를 체크 하면서 추후 활동방향을 계산해보는 시기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2019년 11월 인터뷰에 따르면, 2020년 한국에서 열릴 세계선수권에 참여하려고 했던 것이 보이고, 세계선수권을 은퇴무대로 하려고 했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하지만, COVID-19로 인해 대회가 취소되어 불발되었다.[14] 빙상계의 파벌 갈등은 1990년대 김기훈 이준호의 갈등, 1990년대 김기훈 유태욱 코치의 갈등 부터 시작하고, 짧게 잡아도 안현수의 국대시작 2002년 바로 직전 전명규 교수 이전 한체대 교수였던 2001년 이영하 교수의 구속전명규 교수의 한체대 임용과 반대 시위로 확인되는 빙상계의 분리와 2002년 전명규 교수 부임이후의 한체대와 그리고 반대 세력인 비 한체대 파벌의 시작 2003년 김기훈과 김동성의 갈등, 이준호 코치 2003년 폭행 폭로와 사임, 2004년 김기훈 코치의 스케이트날 사건, 2004년 여자쇼트트랙 팀 구타 사건, 2005년 안현수 구타사건, 파벌의 문제를 그대로 여과없이 보여준 2006년 토리노 올림픽, 2006년 세계선수권 대회 공항사건, 안현수 러시아 귀화직전 안현수 부친 안기원씨의 2010년 벤쿠버 승부조작 폭로 사건 까지 빙상계의 굵직한 사건들이 오랜세월 길게 얽혀있다.[15] 2018년 2월 대한 빙상연맹은 러시아 매체 '이즈베스티야' 와의 인터뷰에서 "안현수는 우리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그는 여전히 우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공식적으로는 이미 협력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아직 공식 협상까지는 가지 않았다. 결정은 안현수에게 달려있다." 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보도한 한국 매체는 '쿠키뉴스' 이후 안현수가 선수생활을 지속하려 했던 점, 은퇴를 결정한 2019/2020 시기에는 지도자경력이 없어 국가대표 지도자 지원 자격이 되지 않았던 점, 그리고 당시 빙상계와 스승인 전명규 교수의 상황으로 인해 흐지부지 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16] 2006년 세계선수권이후 안기원씨와 빙상연맹 관계자와의 폭행사건은 IOC 올림픽 사이트 안현수 2018년 은퇴 기사에도 언급된다.[17] 윤재명 감독은 2004년 여자 쇼트트랙 구타 사건때 남자 대표팀 감독으로 당시 최광복, 김소희 코치의 폭행이 가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것을 방조했다.[18] 당시 성시백 아버지는 2005년 기사 타이틀에 나오지 않지만, 기사 영상에서 확인된다.[19] 2018년부터 전명규 교수가 한체대 출신 일부 에이스 선수들의 특별 훈련을 지도하고 혜택을 준다고 언론에서 보도되면서, 일부 몇몇 인터넷 사용자들은 2018년 이후부터 수년 동안 일부 한체대 출신 에이스 선수들을 향해 교수에게 여러 특정 상납을 해서 개인전이나 특혜를 받는다. 그렇게 댓글을 달거나 글을 쓰는데, 그것은 특정 미디어 보도들에 노출되어 잘못된 판단 오류를 하고 선수들을 근거없이 모욕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전명규 교수의 업적 중 하나는 빙상판에 만연했던 학부모와 지도자들 간의 촌지문제를 끊어낸것이다. 한체대 출신 선수들이 특혜나 특별한 훈련을 따로 받았다 해도 그리고 또한 그들 때문에 소외되고 빛을 못 보고 그대로 사라진 선수들도 있지만, 그것이 금전이나 특정상납에 의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들이 받은 특혜가 문제가 있으며, 혹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전 교수의 판단에 따른 그들의 재능에 기여한 것이라 봐야할 것이다. 또한, 한체대던 아니던 서로의 라인과 각자의 족벌정치 속에서 서로간에 혜택을 주고 자신의 라인이 아닌 상대를 배척하는 뿌리깊은 빙상판의 서로간의 카르텔에서는 또 다른 악을 정의라 선택하여 지지하면서 다른 한쪽을 배척하는 마녀사냥이 아주 쉽게 일어날수 있으며, 일어나고 있다. 이분법에 익숙한 대중은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질타하는 여론 쏠림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20] 안현수는 교수직 보장 등 다른 대학의 파격적인 조건제시에 고민했지만 결국 은사인 전명규 전 대표팀 감독이 교수로 재직 중인 한체대를 선택했다.[21] 2011년 인터뷰에서도 선수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후 진행된 인터뷰마다 선수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계속 말했지만, 당시 네티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선수들에게 악성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이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이젠 파벌 때문이 아니라고 하네?' 라는 식으로 댓글을 다는 것을 보면, 그냥 4년마다 악플을 옮겨다니면서 편한대로 기억망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2년 한 기자는 2014년 소치 올림픽 당시 파벌싸움에 희생당한 동정론과 2022년 반중감정의 인터넷 공격의 대상이 된 안현수에 대해 당시 안현수는 파벌싸움에 희생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그는 솔직하게 올림픽 출전을 위해 러시아를 선택했다.고 말했다면서 안현수는 죄가 없다고 기사를 써서 기자 또한 인터넷 광기 분풀이의 대상이 되었다.[22] 동계 체전 결과 확인 대한 체육회 국내종합경기 결과 사이트[23] 국가대표 선발전 공동 4위, 하지만 3000m 슈퍼파이널에서 우승한 이정수에 밀려 선발되지 못했다.[24] 결국 선발전에서 안현수 다음으로 6위를 한 서이라가 대신 뽑혔다.[25] 러시아는 안현수에게 2009년부터 러브콜을 보냈다.[26] 쇼트트랙 같이 프로구단이 없는 마이너 종목의 선수로서는 상당히 고액의 연봉, 하지만 안현수의 커리어를 생각해보면 러시아는 그의 가치를 인정해준 것이다.[27] 안현수만을 위한 전용 팀(코치, 스태프, 연습 상대 등), 연봉은 한국의 10배에 심지어는 전용 트랙(안현수 혼자 쓸 수 있음)까지 준다고 했고 선수 은퇴 후에 코치직까지 보장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안현수에게 2018년, 2019-2020년, 2022년 총괄 고문직 혹은 감독직을 제안했다.[28] 빙상계에서 안현수에 대해 비난을 공개적으로 한것은 김동성이었는데, 당시 김동성은 러시아는 안현수의 기술을 뽑아먹을 것이며, 올림픽에 나설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2013년 10월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안현수를 포옹 하며 격려해주기도 했고, 2014년 2월 KBS 방송에서 안현수를 응원할것이라고 언급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KBS 해설당시 애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2012년 김동성의 발언과 오버랩되는 건 2020년 8월 안현수가 중국 코치직을 결정했을 때의 한 언론매체 기사이다. 당시 한국 지도자들의 기술과 노하우를 빼먹고 올림픽 무대에선 리옌이나 왕멍이 지휘봉을 쥐면서 매정하게 버릴수도 있다고 예상했으나 2022년, 중국은 김선태에게 올림픽 사령탑을 안현수에게 지휘봉을 쥐어주었다.[29] 특히 미국과의 흥정이 있었냐는 질문들이 이어졌고 러시아는 불쾌해했다. 러시아 정부매체 타스, 실제로 러시아 귀화 전 또 다른 후보지는 미국이었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보다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는 것은 아주 쉬웠다.뉴욕타임스[30] 그의 입장문이 나온다음. 한국빙상연맹 관계자가 기부한 금액의 일부가 고 노진규 가족에게 전달되었다고 언급했다. 조선일보 보도로 확인된다.[31] 그러나 안현수는 국적을 변경하기 전 올림픽 때문에 국적을 바꾸는 건 비겁하다고 직접 언급을 하기도 했다.[32] 인터뷰마다 언급하는 환경은 여러 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 경쟁자이자 동료인 선수들, 코칭 스탭, 훈련장, 훈련 프로그램, 러시아에서도 한국인 코치들의 강압적 훈련에서 벗어나자 실력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본인의 정신적 안정, 미래 진로, 돈 문제, 생활비+훈련 비용이며, 먹고 살아야 한다. 행정적인 지원, 국민들의 기대감, 언론의 취재 등등이다.[33]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관리위원, 중앙일보 등에서 스포츠 담당 기자로 20여 년 일했다. JTBC 골프본부장 등을 지낸 후 대한빙상경기연맹 관리위원,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대변인으로 활약했다.[34] 2022년에 이 이야기가 대선 정국 때문에 뜬금없이 정치권에서 다시 튀어나왔는데, 원희룡은 안현수가 귀화를 하게 된 게 이재명이 팀을 해체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고, 이재명 측에서는 그 두 가지는 서로 무관하다며 반발했다.[35] 안현수의 귀화 직전 러시아 빙상연맹이 받은 전화처럼 이 선수는 문제가 많은 선수였나? 그러나 안현수는 러시아 선수들과 러시아 빙상계는 그를 신뢰했다. 코치직을 할때도 중국 빙상 연맹의 평가와 호감도는 단순한 호감을 넘어 극도의 신뢰를 보였다.[36] 2013년 김기훈 감독은 포상금 소송서 승소해서 받아냈다.[37] 단 이당시 빙상연맹 관계자는 "대표선발전 연기는 일부에서 제기되는 특정 선수 '봐주기'나 '죽이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결정이다. 라면서 일축했다.[38] 예시로 박승희도 소속팀인 화성시청이 제대로 지원하지 못했고 시청은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팀을 해체해 버렸다. 그리고 화성시청 소속 선수들은 완전히 길을 잃은 상황이었다. [39] 단, 안현수의 2019년 인터뷰와 2014년 황익환 감독의 인터뷰로 인해 모든 것이 전명규 교수 때문이다라는 안기원씨의 주장과 완전 엇갈리고 있다. 또한, 황익환 감독님의 인터뷰에 빙상연맹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안현수는 한국체대의 도움을 받았다. 라는것은 무조건 빙상연맹 = 한체대 라는 이 공식이 깨진다. 안현수의 부상 직후 2008년~2010년 빙상연맹 부회장은 유태욱이었다. 단 전명규는 2009년부터 기획 부회장 자리에 있었다.[40] 소원했던 안현수와 전명규와의 관계 회복에 가장 큰 역할을 한것은 부인 우나리라고 일부 빙상계의 관계자들과 안기원씨는 주장한다. 안현수는 우나리의 출산을 앞두고 한국에 귀국했으며, 러시아로 귀화한 이후 처음으로 2015년 12월 한국체대 빙상장 훈련을 재개했다. 2017/18 시즌에는 안현수의 배우자인 우나리씨가 운영하는 마스크팩 회사 나리팩과 관련하여 특혜 논란이 제기되었다. 러시아 또한 안현수가 한국으로의 돌아온것은 부인의 영향이 정말로 컸다는 러시아 매체 보도가 있다.[41] 안현수는 은퇴를 선언했을 때 한국과 러시아 양측으로부터 코치직 제안을 받았다.[42]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제기되었던 김보름, 노선영 팀추월 논란, 노선영의 그것이 알고싶다 폭로와 전명규 교수의 고소, 이승훈의 특혜 논란, 전명규 직속 제자 조재범 사건들의 사태들 등등[43] 베이징 올림픽 당시 한국의 익명 빙상관계자에 따르면 "김선태 현 중국대표팀 총감독이 처음 중국에 갔을 때는 정식 감독이 아니었다. 김 감독을 데려간 쪽이 주도해 안현수 코치까지 무난하게 영입할 수 있었다"며 "안현수는 러시아에서 감독 제의가 있었지만, 중국 코치를 받아 들였다고 들었다. 러시아가 제시한 금액이 적지 않았는데 중국이 더 많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안현수의 연봉은 300만 위안(5억6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9년 당시 러시아가 제시한 안현수에 대한 보수는 월 2만 5000달러 이다.[44] 안현수는 2018년 러시아 코치직 제안을 거절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2019년 러시아 팀에 복귀했으며, 2019/2020 은퇴를 결정할 무렵 러시아로부터 총괄 고문직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45] 당시 베이징 올림픽에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러시아가 또 다른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까지 표현할정도로 와이프 웹사이트의 대만국기 사건 이전까지 중국인들의 거스 히딩크 급으로 중국 인터넷 사용자들의 사랑을 받았다.[46] 한국의 여론과는 반대로 중국의 영웅 왕멍의 지지는 올림픽 당시 안현수의 중국 인기에 상당히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선 왕멍과 20년지기라니, 정상이 아니라는 댓글도 달렸다. 러시아 매체 또한 2002년부터의 20년 지기이며, 왕멍과 안현수의 관계와 호의에 대해 보도했다., 객관적으로 한국의 여론만 제외시킨다면, 왕멍의 지지는 안현수에게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왕멍은 현재 역대 최고 여자선수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 안현수는 상당히 시끄럽고 화려한 지도자 데뷔전을 올림픽에서 선보인 것이다. 당시 한국과 중국의 네티즌들은 SNS 계정에서 격렬히 싸웠으며, 러시아 매체들과 한국을 좋아하지 않는 일본 매체들 또한 이러한 한국과 중국의 반응을 기사로 전달했다.[47] 대충 요약하자면 본인의 과오에 대해선 비판을 수용할 수 있으나 가족까지 욕하진 말아달라는 내용이다.[48] 이를 언급한 한국의 기사는 MK뉴스[49] 실제로는 박장혁인데, 언론에서 황대헌으로 오해했다.[50] 주로 육아생활, 트레이닝 운동 영상, 쇼트트랙 관련 영상이 업로드 되었다.[51] 2022년 11월 4일, 18-19세 선수들을 대상으로한 러시아 내셔널 쇼트트랙 대회가 모르도비야 공화국 사란스크에서 시작되었다. 대회 명칭은 안현수 컵[52] 안현수 이외에도 중국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김선태도 코치직에 지원했다.[53] 체력 소모가 심한 아웃코스 추월은 비교적 여유롭게 진행되는 중장거리 종목의 초반이 아니면 거의 시도를 하지 않는 편이고 철저하게 인코스의 타이밍을 포착하여 특유의 스케이팅 기술로 부딪침 없이 깔끔하게 추월하는데 집중하는 편이었다.[54] 스케이트 날로 빙판을 치는 스트로크 회수가 늘어날수록 속도가 더 많이 붙는다. 최민정의 아웃코스 추월과 안현수의 인코스 추월 기술이 뛰어난 이유는 다른 선수들보다 코너에서 스트로크를 더 많이 치기 때문이다.[55] 계주 주자 중 한명이었던 이호석이 넘어지고도 우승한 경기로 유명한 2007-08 시즌 3차 월드컵 계주 영상을 보면 마지막에 안현수가 이 기술을 사용한다. 또한 2008-09 시즌 영상을 보면 이호석과 곽윤기가 이 기술을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56] 특히나 6번째 세계선수권을 우승했던 2014년에는, 샤를 아믈랭이 기량에서 우위라고 평가받던 시즌이었고, 3000m 슈퍼파이널에서도 체력적으로도 더 강한 모습을 보이던 아믈랭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예상되었지만, 안현수가 스퍼트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잡았음은 물론, 아믈랭의 추월기술이 약함을 잘 파악하고 인코스 방어에 집중하여 결국 승리하기까지 했다.[57] 그가 넘어진 경기 중 가장 임팩트 있었던 것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1000m 결승이며, 이건 희대의 반칙왕들인 아폴로 안톤 오노리자쥔의 깽판에 말려든 게 원인이었다.[58] 이는 2010년대 중반에 등장한 최민정이 500m를 타는 방식과 굉장히 흡사하며, 곽윤기 또한 500m에서 이런식으로 꾸역승을 쏠쏠하게 챙긴 전적이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향평준화가 이뤄지면서 500m 경기에서 스타트의 중요성이 점점 커졌기 때문에 남자부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여자부의 최민정처럼 꾸준하게 성적을 낸다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그 최민정조차 2020년대에 들어서는 부상 여파가 있다지만 단거리에서의 활약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걸 생각하면 단거리에서 스타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감할 수 있다.[59] 재밌게도 스타트를 비롯한 초반 능력치가 좋아졌다는 평가를 들은 러시아 시절에도 정작 금메달을 따낸 올림픽 결승전에서는 4위로 스타트 해서 후반에 뒤집는 한국 시절의 스타일을 보여주었다.[60] 안현수가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500m에선 월드컵과 유럽선수권에서 동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한것으로 볼때 단거리 위주로 훈련했던 것이 보인다.[61] 오노는 자서전에서까지 김동성이 자신을 최고라고 인정했었다는 말을 지어낸 적이 있는 선수. 이런 선수가 안현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물론 김동성과는 자신이 조금 실력이 딸리더라도 (반칙도 조금씩 써가며) 그리 큰 차이는 아니었으나, 안현수에게는 반칙을 써볼 기회도 없이 매번 속수무책으로 당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실력을 인정하는 셈이다.[62] 2014년 소치 올림픽 러시아 쇼트트랙 감독, 2022년 베이징 올림픽 캐나다 쇼트트랙 감독[63]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2010년 벤쿠버 동메달리스트[64] CSKA 모스크바 간부이자 2017년 스케이팅 팀의 수장[65] 한국 매체는 연합뉴스[66] 2022년까지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을 했다.[67] 블라디미르 그리고리에프도 빅토르 안(안현수)가 선수이자 훈련계획과 주행전술 수립을 한 코치에 가깝다고 언급했었다.[68] 러시아 빙상계는 당시 한국 빙상계의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던 듯 보이며, 그의 지도자로서의 복귀를 원했던 것으로 보여진다.[69] 안현수에 대해 여러번 러시아 매체에 호의적인 인터뷰를 한 러시아 연방 국회의원,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금메달 리스트,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의 선수촌장[70] 외신에 따르면 안현수는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당시 아리아나 폰타나에게 다가가 축하해주었던 것으로 확인된다.[71]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부터 2006년 토리노, 2010년 벤쿠버, 2014년 소치 올림픽까지 미국 올림픽 대표팀의 스피드 스케이팅 코치를 맡은 경력이 있으며, 유명 스케이트 부츠 제작 업체인 마케이지 레이싱(Marchese Racing)의 대표이다.[72] 연맹으로부터 자격정지를 공식적으로 받았다면, 자격정지 기간동안 선수로서 뿐만 아니라 코치, 경기관련 스텝, 관계자 어떤 직책에서도 일할수 없게된다. 그리고 국가대표 훈련장소에서 훈련을 할수 없다. 하지만, 안현수는 2018년 세나라의 국가대표 지도자 논의가 있었고, 2018-2019 시즌 한국체육대학교에서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지도자 수업을 하며 선수들과 같이 훈련하고 있다는 것이 한국과 러시아 언론을 통해 알려져있었고, 2019-2020 시즌 선수로 복귀했다. 이것은 그가 잠정적인 징계상황도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징계로 자격정지가 된 선수나 코치가 공식적인이던 비 공식적이든 관련 직책으로 활동을 하는것이 밝혀지면 추가적인 징계로 이어진다. 즉, 그 어떤 직책과 관련된 활동을 할수 없다.[73] 2016년 공개된 러시아 선수 명단에는 타입1 ~ 타입4 등 명시되어 있다. 2016년 12월 샘플 분석 검사표 이 리스트 확인은 2016년 12월 전직 도핑검사 하셨던 분이 안현수 선수 샘플분석이라고 확인 시켜준 것이다. 그사람은 피겨스케이팅 갤러리에는 러시아와 이탈리아 언론에 공개된 훼손 선수 리스트에 대해서 올려놓으셨다.[74] 기소여부를 심의했었거나 기소가 된 러시아 선수들 46명에 대해서는 다음에서 #한글#영문, 확인가능하다.[75] 2018년 당시 안현수와 같이 출전불허 처분이 되었던 소치 올림픽 멤버 루슬란 자하로프, 2018년 팀 멤버 데니스 아이라페탼도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는 출전이 가능했다.[76] 2017년 오스왈드 위원회가 실격 처분을 내린 43인의 선수들에 대해서는 이후 일부의 선수들이 성적이 복원되었거나 부분적으로 제재가 무효화가 되었음에도 그들은 IOC 공식 웹사이트에서 징계처분을 받고 기소되었음이 공개되었으며, olympedia 리스트에서 확인할수 있다.[77] 남녀부 통틀어 유일하게 모든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78] 이전에는 본인, 아폴로 안톤 오노, 아리안나 폰타나가 역대 공동 최다 메달리스트였으나, 아리안나 폰타나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기록을 갱신하며 단독으로 역대 최다 메달리스트로 떠올랐다. 남자부 한정으로는 아직까지 오노와 더불어 올림픽 최다 메달(8개) 보유자다.[79] 남자부에서는 최다 연속 우승 기록이자 남녀부 통틀어 역대 2위이며, 1위는 6연패를 달성한 양양(A)다.[80] 대회 역사상 최초로 귀화 선수가 우승한 기록이다.[81] 올림픽과 세계선수권과 같은 권위 있는 국제대회 메달들만 포함되고 월드컵은 들어가지 않는다. 또한 아시안 게임이나 유럽선수권 같은 지역 대회도 포함되지 않는다. 한국 선수일 때만으로는 39개였으나 러시아 국가대표로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여 메달을 2개 따내며 마크 가뇽의 기록을 깼다. 그 이후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며 계속해서 그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총 메달 수(55개) 기록은 양양(A)와 타이를 이뤘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메달이 하나만 더 추가되면 기록이 경신 될 수 있었지만 이후 메달 추가에 실패하고 2020년에 은퇴를 선언하며 끝내 단독으로 역대 최고기록을 세우지는 못했다.[82] 선수권 대회에서 시행되었던 슈퍼파이널은 메달수여는 없으나 순위와 타이틀 기록은 남는다.[83] 월드컵 랭킹 표기는 랭킹 20위까지 표기를 기준으로 한다. 20위를 넘는 성적은 전체 커리어의 상위 80%를 기준으로 기재한다.[84] 랭킹 표기 : 20위까지 표기 (전체 랭킹기록 38개중에 85%인 32개까지 표기)[85] ISU 랭킹 통계 페이지 2위 2회 누락[86] ISU 월드컵 메달 통계 페이지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 누락, 프로필 계주 금메달 2개 누락[87] 2006-07 시즌부터 캐나다 선수들이 단거리 트렌드를 주도하며 스타트가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안현수의 500m에서의 영향력이 적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2007 세계선수권에서 500m 동메달을 따낸 것을 보면 큰 대회에서 보여주는 집중력이 엄청났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 밖에도 2005 세계선수권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고, 2006 세계선수권에서는 제임스 휴이시의 어이없는 판정이 아니었다면 500m 은메달을 따냈을 것이다.[88] 세계선수권 성적만 언급해보자면 2003년부터 2006년까지 1500m를 총 4번이나 연속 우승했으며, 한 종목을 4연패 한 기록은 남자부에서는 최다 기록이다. 여자부는 양양(A)가 1000m 종목에서 6연패를 해낸 기록이 존재한다.[89] 단, 솔트레이크시티는 세계 최고의 빙질로 유명한 만큼 최고 기록이 정말 잘나오는 곳이다. 하지만 빙질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잘 넘어지는 경우도 많으며, 이 때문에 솔트레이크시티를 좋아하지 않는 선수들도 많다.[90] 이승훈,심석희 등 후배들의 축하를 받았다. 한국체대 단체 사진을 보면 전명규 교수가 엄청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누구보다 기뻐하며 축하하고있다. 전명규 교수도 2010년 한체대인 상을 받았다.[91] 민간인으로서 받을수 있는 가장 최고위 훈장이다. 러시아 국가의 강화, 국가의 사회 경제적 발전, 연구 활동, 문화 및 예술의 발전, 뛰어난 스포츠 성과 탁월한 공헌 또는 조국 수호에 대한 상당한 공헌에 대해 수여된다. 1998년 사도 성 안드레이훈장이 설립 될 때까지 최고의 국가 훈장이었다. 4개의 클래스로 이루어져 있는 민간 및 군사 훈장으로 4급부터 1급까지차례로 수여된다. 조국공훈 1급, 2급 메달이 따로 있으며, 하위 호환이다. 보통 러시아 스포츠 훈장의 경우 세계선수권과 유럽선수권 타이틀을 획득한경우 <스포츠 명예 마스터> 타이틀, 올림픽 동메달 수상자는 <조국공훈메달 2급>, 올림픽 은메달 혹은 추가 (동)메달을 획득한 경우 <조국 공훈 메달 1급>, 올림픽 금메달 수상자는 <우애훈장>, 이후 <명예(존경)훈장> 순으로 수여 된 이후, 대조국공훈훈장 4급 차례가 된다. 즉, 스포츠인으로서 받을수 있는 가장 최상위 클라스 훈장이다. 그외 한국에서 알려진 4급 수훈자 명단 예브게니야 카나예바, 알리나 카바예바, 알렉세이 야구딘, 예브게니 플루셴코, 에테리 투트베리제이다. 1급이 보리스 옐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자크 시라크 인것을 보면 민간인이 1급까지 갈 가능성은 제로[92] <군사 협력 강화' 메달>은 러시아 연방의 국제 군사 협력 및 군사 기술 협력 분야에서 국가 정책의 형성 및 구현에 공로를 인정 받아 러시아 연방 군인 및 민간인과 외국시민에게 수여된다. 러시아 국방부 산하 메달 중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받을수 있는 최고위 메달, 메달에 대한 설명 해외 기사 (영어)[93] 가장 높은 등급의 명예로운 스포츠 타이틀로 올림픽 , 패럴림픽 , 세계 선수권 대회 1위 등 국제 수준에서 러시아 연방 및 러시아 스포츠의 권위를 높이는 데 탁월한 공헌을 한 선수에게 수여한다. 2013년 세계선수권 은메달과 유럽선수권 메달 획득이후 타이틀을 수여받았다. 러시아 위키 항목 (러시아어)[94] 전이경과 함께[95] 원래 2006년 4월 행사 예정이었으나, 세계선수권 공항 폭행 사건과 파벌논란때문에 무기한 연기되었다가 10월 위촉행사가 열렸다.[96] 다른 출처들의 개인신상정보 보호를 위해 출처는 외신 (AIPS Media)[97] 한체대는 체대 출신 국가대표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명예의 전당에 기념하고 있다.[98] 2019-20 시즌에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선수로 복귀했다.[99] 단 정몽준이 스포츠기관인으로 강한 영량력을 행사했던 것을 본다면, 이것으로 정치성향은 확인하기 힘들다. 그리고 스포츠 스타들의 정치 선거유세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100] 러시아 매체 기사는 국영 매체 RT.[101] 국적이 다른 사람끼리 하는 결혼은 각각의 나라에 모두 신고해야 한다. 그럼 우나리가 소치에서 받은 AD 카드는 뭐냐는 사람도 있는데, 이 AD 카드는 코치 자격으로 받은 것이므로 상관이 없다.[102] 2022년부터 부인의 이미지도 나빠졌다. 남편에 대한 여론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댓글을 막고 본인의 쇼핑몰 홍보를 하여 비판을 받았다.[103] 당시 KBS 뉴스 보도자료에 따르면, 논란이 일자 빙상경기연맹은 선두권이 아닌 선수들이 넘어진 건 재경기 사유가 아니라고 해명했고, 논란이 된 A 팀 코치는 2014년 성추행과 도박의혹으로 국가대표팀 지도자에서 해임된 전력이 있다고 했다.[104] 하지만 그때는 화제가 되지않다가 비로소 화제가 되는 것은 이전 선수들은 한국 대표 선수를 크게 능가하지 못했다가 안현수에게 한국 쇼트트랙이 아주 뭉개지면서 이런 반응이 나온 셈이다. 반대로 중국 국적의 화교였지만 한국으로 귀화,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금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한 후인정이나 화교 3세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의 주역 중 한 명인 공상정, 한국으로 귀화하여 한국 탁구계의 새로운 활력소가 된 곽방방, 당예서, 석하정, 전지희 같은 수많은 귀화 선수들에게 매국노라는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이들이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해 메달을 획득하면 우리는 매국노들을 앞세워 승리를 갈취한 무뢰한인가? 실제로 중국혐한 네티즌들이 탁구계의 귀화 선수들을 두고 매국노라는 비난도 서슴지 않고 있다.[105] 하지만 과거 같으면 들어먹혔을 그런 주장들이 지금은 어느 정도 비판도 많이 받는 걸 보면 확실히 점점 이런 성향이 줄어든다. 소치 동계올림픽에서의 성적이 나빴던 것이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일이랄까. 실제 언론에서도 많은 기사가 나왔다. 사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이전부터 많은 사람은 한국 선수보다 안현수를 많이 응원했다. 결국 남자 선수들이 경기를 말아먹자 '어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빙상연맹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이라는 점 또한 안현수에 대해서 호의적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비단 쇼트트랙 뿐만 아니라 김연아 vs 피겨 스케이팅 때부터 무능하고 부패한 집단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져 있었기에 국가주의, 국수주의 경향이 강한 한국에서도 그를 뒤집을 정도로 빙상연맹에 대해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선수들에게까지 쏠리는 것이 정당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호석을 제외하고 안현수와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들은 파벌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다. 이호석마저도 안현수와는 고등학교 선후배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친분까지 두텁다.(한 때 사이가 멀어진 적도 있었지만 이미 화해한 지 오래되었다.) 이들이 '빙상연맹의 앞잡이'로 찍힐 까닭은 없다. 4년 간 피땀 흘려 이 자리에 온 선수들이 부진한 성적으로 좌절을 겪고 있을 때 '꼴 좋다', '쌤통이다' 식의 조롱을 보내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신다운의 SNS 사건, 이한빈의 경기 포기가 그 이유라고 주장하는 네티즌도 있지만 "빙상연맹을 엿 먹이기 위해서 한국 대표팀이 노메달 수모를 겪길 바랍니다" 같은 댓글들은 위의 두 사건과는 아예 별개로 올림픽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포털 사이트의 베스트 댓글을 점령했다. 이에 대해선 선수들도 파벌 싸움의 공범이라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어쨌든 러시아인 안현수와 한국 선수들이 대결을 펼친다면 누구를 응원할 것인가는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안현수와 한국 선수들이 비난 받을 이유는 절대로 없다.[106] 2020년 안현수가 은퇴했을 당시 스베틀라나 추로바의 인터뷰 내용이다. 당시 다른 일부 러시아 올림픽 영웅들 처럼 안현수에게 정치인 활동 제안도 말이 나왔던 듯 하다. 실제로 2019년 안현수의 복귀 이후 루슬란 자하로프(Ruslan Zakharov)와 러시아 매체들은 안현수에게 정치를 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스베틀라나 추로바는 그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으며, 그는 운동선수이며, 다른 나라의 코치로 갈 가능성이 많다는 인터뷰를 했고, 그는 러시아를 존경하고 언어를 배웠으나, 그의 본성은 한국인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와 안현수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상당히 의미있는 언급.[107] 한국인 지도자는 5명 이상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그들 역시 전 전 교수와 무관하지 않은 인물들로 추정된다. 파면 직전 한국체대 빙상장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던 안현수도 중국에서 지도자로 활동했었다.[108] 김선태 감독도 2022년 3월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임효준의 귀화에 대해 김 감독은 "올림픽까지만 계약이 돼 있는데 어떻게 이후까지 선수의 미래를 책임지고 귀화하라고 얘기할 수 있었겠느냐"면서 "이미 윗선에서 귀화가 결정된 이후에야 임효준과 연락이 됐다"고 말했다.[109] 이 유제품기업은 중국의 유명 스포츠스타들이 광고 모델을 맡고 있는데, 안현수도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당시 중국 쇼트트랙팀 지도자를 맡게 되면서 이 유제품기업 광고모델로 발탁된 것이다.[110] 업로드는 웨이보에 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인이 한국에서 반신욕을 즐기면서 업로드는 중국 웨이보에 올렸다며 화를 내거나 자국이 전 쟁중인데 호캉스를 취하냐, 저런 몸으로 전쟁을 안 나가냐 웬만한 사람들 몇배는 역할을 해낼 것이다. 겨울에는 안현수의 주특기가 발휘된다라는 댓글들이 대다수.[111] 참고로 어지간한 나라들은 귀화한 외국인 출신들은 징집하지 않으며,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중에도 축구선수들을 군대에서 빼주고 해외 이적도 시켜준 것처럼 스포츠 스타들은 어지간하면 군대로 끌고가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국가 이미지 홍보용으로도 쓰이기 때문에 2차 대전의 일본이 프로야구 선수들을 징집한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전쟁이 일어나면 나라는 100% 실리대로 돌아간다. 평등이니 뭐니 하는 것은 없다. 무조건적으로 보호받는 것이 국가에 이득이다 싶으면 군대를 면제받고, 보호받아야만 하는 이유가 없는 순간 평시에 뭘 했든 끌려가는 것이 전쟁이다. 억울하고 화난다고 해도 일반 개인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자신의 안녕을 위해 전쟁 직전에 정세를 읽고 망명하는 것밖에 없다.[112] 2000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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