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폴트 폰 바이에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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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레오폴트는 바이에른의 왕자이자, 독일 제국의 군인이다. 최종 계급은 원수.
2. 생애[편집]
2.1. 초기[편집]
바이에른 공작 레오폴트는 1846년 2월 9일 뮌헨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바이에른 왕국의 실권자가 될 루이트폴트였다.[1]
2.2. 군생활[편집]
15세의 나이에 바이에른 왕국군에 입대하였다. 1861년 12월 28일에 소위로 임관되었다. 레오폴트는 보오전쟁에 참전하였다. 그는 키신겐과 로스브룬에서 포병을 지휘하였다. 이후 벌어진 보불전쟁에서는 레오폴트는 제3 포병연대의 일원으로 싸웠다. 1870년 12월에는 소령으로 진급하였다. 보불전쟁에서의 전과로 그는 철십자훈장 1급과 2급을 수훈받았으며, 다른 훈장들도 받았다. 이후 레오폴트는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빌헬름 1세의 즉위식에 참여하였다. 레오폴트는 영국과 아이슬란드를 여행하고 그 후에는 이집트, 콘스탄티노플, 시나이 반도를 여행하면서 지식의 범위를 넓혔다. 그는 1873년 4월 20일 비엔나에서 6촌이기도 한[2]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엘리자베트 황후의 딸 오스트리아의 기젤라 여대공과 결혼했다. 이후 1905년 1월 1일에는 원수가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913년 약 50년의 군생활을 마쳤다.
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1915년, 그는 다시 현역으로 복귀하였다. 레오폴트는 1915년 4월 17일,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을 대신해 제 9군의 사령관이 되었고, 금세 바르샤바를 점령하였다. 그는 다시 훈장세례를 받았다. 이후 에리히 폰 팔켄하인이 참모총장에서 해임당하고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참모총장이 되자 그는 힌덴부르크의 후임으로 동부전선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1916년, 레오폴트는 프로이센의 원수로 진급하였다. 레오폴트는 남쪽으로 진격하여, 발트해까지 내려갔다. 이후 제9군의 사령관은 에리히 폰 팔켄하인으로 교체되었다.
▲1916년 폴란드에서 부대를 시찰하는 레오폴트. 뒤에는 막스 폰 파베크가 있다.
1917년 레오폴트는 케렌스키 공세에 참여하였다. 이후 레오폴트는 동부전선의 끝을 알리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를 서명하고 1일 뒤에는 대철십자훈장을 수훈받았다. 그는 폴란드 섭정왕국의 국왕 후보로 선출되었으나, 패전후 폴란드 섭정왕국은 멸망하였다.
2.3. 전후[편집]
이후 다시 은퇴하였으며 뮌헨에 살다가 혁명을 피해 해외로 도피하였다. 도피한지 4개월 후에야 다시 뮌헨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며, 사후 뮌헨의 미하엘 교회에 있는 콜롬바리움에 묻혔다.
3. 자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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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국왕이었던 오토를 대신하여 루이트폴트가 실권자가 되었다.[2] 아버지 루이트폴트의 고종사촌 엘리자베트 황후의 딸.[3] 1913년 무효화[4] 카를로 알베르토의 차남 페르디난도 왕자의 손녀, 움베르토 1세의 왕비 마르게리타의 조카이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외사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