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니트 브레즈네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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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평가를 작성한 문서


1.1. 영국[편집]


"매력이 있으면 당신은 정치적으로 오래 갈 수 있다."[1]


"탁월한 지성을 갖지 않고도 자신감과 능력을 발산하려는 의지가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

1973년, 영국에서 그를 만난 필립 마운트배튼의 평.#



1.2. 미국[편집]


시기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에는 데탕트를 이끈 적국의 명 지도자로 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브레즈네프가 소련의 위성국과 아프가니스탄에 폭정을 저지르자, 그에 대한 시선이 차가워지면서 급기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기에는 '적국의 수괴' 그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나마 현재 미국은 승자의 여유인지 브레즈네프를 가장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나라가 되었다.


1.3. 러시아[편집]


미하일 고르바초프보리스 옐친이 통치하는 러시아에서 혹독한 역사를 경험한 현재의 러시아인들은 브레즈네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소련이 해체되며 러시아는 벨라루스우크라이나 등 소련의 주요 구성국들이 독립하면서 모스크바를 보호할 완충지대가 순식간에 쪼그라든 것은 물론이고 초강대국이었던 소련이 순식간에 후진국 수준으로 몰락하면서 수 백만의 인구가 사망, 이민 등으로 영구 손실을 입어버렸다. 게다가 사회적 분배를 어느정도 보장하던 소련 시절과 달리 사회안전망이 완전히 붕괴된 러시아에서는 빈부격차가 급속도로 늘어나버렸고 그 결과 러시아인의 평균 수명도 급감하고 저출산까지 겪게 되었다. 사회안전망의 붕괴로 인해 범죄율이 급증하고 네오나치, 레드 마피아와 같은 막나가는 폭력조직들도 늘어난 것은 덤이다. 결국 현대 러시아인들, 특히 브레즈네프 시기를 보낸 사람들 입장에서는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해나가며 살기도 편했던 당시가 좋아 보일 수 밖에 없다.[2]

하지만 상술했듯 장기간의 집권 과정에서 결정한 막대한 군사비 증강은 경제에 악영향을 끼쳤고, 자원 수출 위주로 경제 구조를 결정지어 버린 것은 소련은 물론 후임 러시아에 있어서도 두고두고 큰 우환이 되어버렸으며, 결정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한 것은 소련 멸망의 단초가 되었다. 여기에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적기에 퇴임하지 않아 후임 서기장이 될만한 인물들도 다같이 늙어버리는 결과를 낳아, 결국 통치 스타일이 안정적인 노선만 추구하며 보수적인 노선만 탄 결과 브레즈네프 시절 말기에 이르러서 젊은 세대들은 보수적인 늙은 세대들을 혐오하며 깊은 변화의 욕구가 쌓여버리고 만다.[3] 이 쌓인 불만을 고르바초프가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로 폭발 시켜버리자 소련은 폭주하며 통제불능 상태가 되며 멸망해버린다. 종합적으로 그는 소련의 운명을 알게 모르게 종말로 가게 했다. 다만 젊은 세대의 불만을 브레즈네프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어폐가 있을 것이다. 이 불만을 폭주로 만들고 통제하지 않아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사태로 만든 것은 고르바초프이기 때문이다.[4]

그럼에도 분명한 공도 있는데, 소련 공산당 정치국 내부에 득실거리는 매파들을 견제하면서 그로미코, 안드로포프를 지원하여 프랑스, 서독, 미국과의 데탕트를 이끈 것은 오로지 브레즈네프의 부드러운 리더십이 아니었으면 절대로 불가능했다는 것이 당시 독-소 데탕트를 이끌었던 에곤 바르나 역사학자 블라디슬라프 주보크 등의 평가이다. 브레즈네프는 정치국 내부의 무능한 매파들을 실각시키고 똘똘하고 젊은 국제부 간부들을 중용하였는데, 대놓고 자신의 외교 보좌관들에게 "저들이 자네들을 먹어치우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두진 않을걸세."라고 그들이 자신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을 분명히 했다. 젊고 실용적인 개혁파 관료들은 브레즈네프의 보호 덕분에 중진으로 성장하여 이후 고르바초프의 측근들로 자리잡게 되는데 문제는 소련이 망하면서 딱히 브레즈네프가 이들을 지켜준 것이 고평가받긴 힘들게 됐다.


1.4. 우크라이나[편집]


고향인 우크라이나에서도 평가가 엇갈리지만 제법 괜찮게 나오는 편인데 우크라이나가 경제적으로 가장 번영했을 때가 브레즈네프 때였다는 역설적인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긍정평가가 우크라이나의 다른 위인들처럼 아주 압도적인 수준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고 긍정률 자체는 40~50%대를 오가는 수준이다.


1.5. 구 공산권[편집]


프라하의 봄을 겪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선 당연히 원수 취급이다. 자국의 민주화 의지를 짓밟고, 민주 투사를 억류했으니 그럴 만하다.

폴란드에서도 야루젤스키를 압박하여 민주화 세력을 간접 탄압한 이력 탓에 결코 좋게 보지 않는다.

알바니아 또한 부정적인 시선이 다수이다. 엔베르 호자가 브레즈네프의 체코슬로바키아 탄압을 이유로[5] 소련과 거의 모든 관계를 끊어버렸는데, 이 때문에 개혁 개방이 늦어진 것이 엄청난 경제난을 부른 탓이다.


1.6. 남유럽[편집]


그리스키프로스는 북키프로스 건국으로 인해 그를 고깝게 보고 있다. 특히 키프로스는 브레즈네프를 자국의 그리스계와 튀르키예계를 이간질한 악당으로 평가한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북키프로스는 브레즈네프를 독립의 은인으로 여긴다.

튀르키예는 북키프로스를 독립시킬 때 잠깐 협력했던 탓에, 그를 딱히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물론 어디까지나 적의 적은 쓸만한 동맹이라는 예시로 보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도 않고 있다. 애초에 튀르키예는 어디까지나 아타튀르크를 위해 세속주의를 표방할 뿐, 철저한 이슬람 중심의 나라라 무신론 국가의 지도자들을 좋게 봐준 적이 거의 없다.


1.7. 북한[편집]


애매모호하다. 애초에 김씨네 제외하고는 다른 역사적 인물들을 주목하는 나라가 아니기도 하고, 미국과 마찬가지로 시기마다 그와의 관계가 개선되었다가 틀어지기를 반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8. 아프가니스탄[편집]


민주 세력[6]이나 탈레반이나 결국엔 소련-아프간전에서 싸운 무자헤딘의 후예를 자처하기 때문에, 당연히 해당 전쟁을 일으킨 브레즈네프를 부정적으로 본다. 다만 구 공산권과 다르게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비웃고 있는데, 아프가니스탄을 우습게 보았다가 국제적 늪에 제대로 빠진 머저리로 취급하고 있다.


1.9. 중국[편집]


중소국경분쟁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아직까지도 그에게 이를 갈고 있다.


1.10. 베트남[편집]


베트남 전쟁 당시의 공로를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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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탈린과 흐루쇼프 치하에서 경력을 쌓는 동안 브레즈네프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에 들 수 있는지를 배웠다. 특히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온화하고 사교적이고 소박한 습관을 갖고 있으면서 권력의 오만이 전혀 없는, 대화에 아주 능한 사람"이었다. 다만 훈장 욕심은 소박하지 못했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줄은 알았지만 매우 잔인했던 스탈린이나 호탕하고 지나칠정도로 과격한 흐루쇼프와 달리 성격이 온화했다는 점은 장점이 되어 권력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2] 이 뒤에 취임한 블라디미르 푸틴은 옛 러시아의 영광을 부활시킨다고 남오세티야 전쟁, 돈바스 전쟁, 시리아 내전 등에 개입하며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려 하였지만, 소련 시절의 복지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워졌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도 평화와 멀어지고 있다.[3] 일례로 1981년 레흐 바웬사의 폴란드 노조 사태로 서방과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도 브레즈네프는 해결책으로 정치국에 데탕트를 주문할 정도였다!! 당연히 이 시기는 소련 아프간 전쟁과 미국의 공격적인 반공 선전으로 데탕트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음에도 브레즈네프는 과거 자신에게 영광을 안겨준 데탕트라는 보수적인 해결책을 찾을 정도였다.[4] 고르바초프 시기 말기에 이르면 소련은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로 인해 경제 붕괴, 민족주의 대두 등 수많은 문제가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각 공화국 도시들에서 대규모 시위 사태도 일어났다. 그 때문에 계엄군이 투입되는 사태도 생겼는데 고르바초프는 이들의 무력 사용을 금지 해서 계엄군은 분노한 인민들과 미디어에 그대로 노출되며, 정치국은 소련군에 대한 통제력 자체가 흔들리게 되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비슷한 시기 8월 쿠데타 세력도 이런 고르바초프의 행동을 반복했다.[5] 물론 실제 이유는 브레즈네프의 데탕트 탓에 자신의 쇄국 정책에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었다.[6] 혹은 그 잔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