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1999)/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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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아마추어 시절
3. 프로 경력



1. 개요[편집]


김형준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아마추어 시절[편집]


초등학교 4학년부터 야구를 시작했고, 원래는 투수와 내야수를 겸업하다가 중학교 2학년 때 포수 마스크를 처음 썼다. 지금의 덩치를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지만 휘문중 1년 선배인 이정후증언에 따르면 중학교 시절에는 이정후와 함께 유격수를 보기도 했다.[1] 장학금을 받고 세광중학교 야구부로 전학을 갔다.

세광고 2학년 때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3학년 성적은 20경기 82타석 68타수 18안타(3홈런) 12타점 11득점 2도루 14볼넷 타율 0.265 출루율 0.390 장타율 0.412로 준수한 수비능력과 선구안, 장타비율 등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등 포수 최대어로 평가받았다.[2]

3. 프로 경력[편집]


201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9번으로 NC 다이노스에 지명되었다. NC 다이노스는 김형준에 대해 "우수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포수로서 안정적인 포구 능력과 프레이밍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타자로서도 밀어치기에 능해 강한 타구를 생산하고 변화구에 잘 대처한다"고 설명했다. #



2017년 새롭게 제정된 이만수 포수상의 첫 번째 주인공이 되었다.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포수인 이만수 전 감독이 헐크파운데이션 재단을 통해 새롭게 만든 상으로, 아마추어 선수들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상이다. 이 상의 수상자가 되면서 100만원과 400만원 상당의 야구용품을 받게 되었다.[3]


3.1. NC 다이노스[편집]



3.1.1. 2018 시즌[편집]


팀에 입단하자마자 주전 포수 김태군이 군입대를 하면서 본인에게는 기회가 주어지기 쉬운 상황이 되었다. 데뷔 시즌부터 1군 스프링캠프에 합류했다.

6월 28일 정범모를 대신해 1군으로 콜업되었다. 그동안의 2군 기록은 35경기 출전 타출장 .207/.313/.314 1홈런 7타점 13볼넷 27삼진. 팀이 꼴찌까지 떨어지면서 빠르게 리빌딩 기조로 들어섰고, 입단 동기인 오영수, 이인혁, 김재균에 이어 1군으로 올라왔다. 어느 포수든 공격에서는 도움 안되는 건 마찬가지이니 수비적인 부분에서 얼마나 써먹을 만한 지가 관건.

그리고 당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경기가 6:0으로 크게 기운 2회부터 대수비로 출전했다. 3회에는 데뷔 첫 타석에 들어서 이용찬을 상대로 데뷔 첫 안타를 쳐냈다. 이후에는 모두 범타로 물러나며 4타수 1안타를 기록. 팀은 9:0으로 패배했다.


2018년 6월 28일 홈 두산전 데뷔 첫 안타

6월 30일 kt wiz전에서는 9번 타자로 나서며 데뷔 첫 선발 출전을 했다. 하지만 3회에는 병살타를 치고 5회에는 미숙한 글러브질로 폭투를 내주기도 했다. 6회에는 2사 이후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했지만 그 직후 우천으로 경기가 중단되었고, 0: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강우 콜드 선언이 되면서 팀은 패배.

7월 6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대수비로 나서 9회 볼넷 하나를 얻어냈다.

7월 7일 경기에서는 김재균과 함께 선발 배터리를 이루었다. 수비적인 면에서는 한 차례의 도루 저지를 포함해 안정된 모습을 보였으나 타석에서는 병살타 하나를 포함해 3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팀은 4:6 패배.

7월 10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9번 포수로 선발 출전했다. 안타는 없었지만 볼넷 두 개와 1득점을 기록. 팀은 6:8로 승리했다.

7월 12일 경기에서도 선발 출전하여 7회 데뷔 두 번째 안타를 쳐냈다. 팀은 3:4 승리.

7월 20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팀은 8:10으로 승리.

7월 22일 경기에서는 7회부터 대수비로 출전하여 2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팀은 6:3 패배.

7월 26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3타수 1안타와 함께 노답 투수진을 상대로 좋은 블로킹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홈플레이트 위에 높이 뜬 파울 타구를 처리하지 못하는 실책을 한 차례 범했고, 결국 실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팀은 1:13으로 완패.

7월 31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우측 담장을 원바운드로 때리는 단타를 하나 생산했다. 팀은 4:4로 무승부.

8월 11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3타수 1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팀은 7:1로 승리.

9월 15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6회부터 대수비로 출전하여 1타수 1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팀은 13:7로 승리.

9월 21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선발 출전해 2타수 1안타를 기록한 이후 6회 대주자 이상호와 교체되었다.

9월 26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4:10으로 뒤진 9회 2사 1, 2루에서 좌측 펜스를 직격하는 2타점 2루타를 쳐내며 데뷔 첫 장타와 타점을 신고했다. 그러나 팀은 7:10으로 패배.


2018년 9월 26일 사직 롯데전 데뷔 첫 타점

시즌 최종 성적은 60경기 출전 81타수 13안타 2타점 타출장 .160/.236/.173. 딱 18살 짜리 고졸 포수 자원이 할 수 있는 수준의 타격이었으며 수비에서도 잔실수가 있긴 했지만 나름 보여줄 만큼은 보여주었다. 특히 박광열, 신진호, 정범모 등이 답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가운데 팬들은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는 평. 이제 동 나이대 포수 중에서는 역대 최고 수준의 출전 기회를 받았다는 점을 바탕으로 다음 시즌부터는 조금 더 성장하길 바라야 할 상황.

시즌 종료 후 오영수와 함께 아시아 윈터 베이스볼 리그에 출전했다. 대회 기록은 10경기 14타수 4안타 2홈런 4타점 2득점 타출장 .286/.375/.714. 대회 내내 뛰어난 타격을 보여주지는 못했으나 한 경기에서만 홈런 두 개를 몰아치며 장타의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3.1.2. 2019 시즌[편집]


양의지의 영입으로 1군에서 볼 기회가 줄어들었고, 실제로 시범경기와 개막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다. 팀에서는 아직 나이가 젊으니 1군에 바로 올리기보다는 2군 주전 포수를 맡기면서 육성에 전념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세 번째 포수로 생각했던 크리스티안 베탄코트가 3월 말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지고 4월에는 양의지가 담 증세로 인해 휴식이 필요해진 상황이 오게 되면서 4월 12일부로 1군으로 콜업되었다.

5월 30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8회 대타로 들어서 시즌 첫 안타를 쳐냈다. 팀은 10-2로 패배했다.

6월 8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9번 포수로 나서며 약 보름 만에 선발 출전을 했다. 첫 타석부터 좌측 라인을 따라 흐르는 2루타를 쳐내며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더니 4회에는 2사 만루에서 침착하게 볼넷을 골라내 밀어내기 타점을 올렸다. 6회에도 안타를 쳐내며 데뷔 첫 멀티 히트를 달성하더니 8회 다시 2루타를 쳐내며 무려 3안타 경기를 만들었다. 6월 들어 크리스티안 베탄코트가 6푼에 그치는 심각한 타격 부진을 겪고 있음에도 꼬박꼬박 포수로 나와 팬들의 스트레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김형준의 이런 활약은 너무나도 반가운 일이었다. 팀은 비록 원종현의 블론세이브가 나왔지만 손시헌의 끝내기 안타가 터지며 4-5로 승리했다.


엔튜브 수훈인터뷰

6월 14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다시 9번 포수로 선발 출전했으나 3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하지만 한 차례 도루 저지에 성공하는 등 수비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팀은 3-7로 패배.

6월 20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3회 한 이닝에만 10점을 내주면서 완전히 승패의 추가 기울자 4회부터 양의지를 대신해 출전했다. 첫 타석에서는 삼진을 당했지만 이후 두 타석에서는 모두 안타를 쳐내며 3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하지만 팀은 2-14로 패배했다.

이후 선발 출전 없이 간간히 대타 및 대수비로만 출전하다가 7월 4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8번 포수로 선발 출전했다. 그리고 2루타 두 방을 포함해 5타수 3안타 2득점을 기록하면서 맹타를 휘둘렀다. 팀은 9-3으로 승리.

7월 5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양의지의 무릎 부상으로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 타격에서는 1볼넷 무안타로 부진했으나 도루저지와 블로킹에서 선발 이재학, 구원투수 노성호와 호흡을 맞춰서 도루저지 및 블로킹에서 탁월함을 보이며 팀의 7-3 승리를 이끌었다. 활약상 모음


2019년 7월 5일 홈 삼성전 도루저지

7월 6일 경기에서도 선발 출전했다. 역시 타격은 무안타로 부진했으나, 구원투수로 등판한 노성호의 불안정한 투구에도 안정적인 포구능력과 정확한 도루저지를 보여주며 역시 수비면에서 호평받았다. 팀은 2-2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7월 11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선발로 예정되었던 양의지가 훈련 도중 부상을 당하면서 대신 8번 포수로 선발 출전했다. 그리고 2회 2사 2루에서 1타점 적시타를 쳐내더니 4회 2사 1, 3루에서도 1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그리고 7회에는 좌측 담장을 넘기는 데뷔 첫 홈런까지 쏘아올렸다. 김형준의 활약에 힘입어 팀은 4-0으로 승리했다.


2019년 7월 11일 사직 롯데전 데뷔 첫 홈런


엔튜브 수훈인터뷰

그리고 양의지가 7월 12일부터 부상으로 장기 결장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정범모마저 이미 7월 9일자로 1군에서 말소되었기에 일단 주전 포수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주전 포수가 된 이후에는 다시 나사가 빠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7월 13일 경기에서는 1사 만루에서 스윙 한 번 안하고 삼진을 당하는가 하면 타구질조차 좋은 것들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14일까지 이어진 kt wiz와의 3연전에서는 10타수 무안타 1득점 4삼진에 그쳤다.

16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도 1회 1사 1, 3루 위기에서 상대의 2루 도루 때 성급하게 2루로 송구를 하다 3루 주자의 득점을 그대로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타석에서는 3타수 2안타 1볼넷 1타점을 기록했고, 팀은 3-2로 승리했다.

27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서는 9번 포수로 나와 3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팀은 1-4로 패배.

31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3타수 2안타 1볼넷 1득점을 기록했다. 도루 저지도 한 차례 기록했지만 2-8로 앞선 9회 1사 만루에서는 원종현의 홈 송구를 잡지 못하는 실책으로 실점을 내주기도 했다. 다행히 팀은 4-8로 승리했다.


2019년 7월 31일 홈 두산전 도루저지

8월 11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5회 정성종을 상대로 투런포를 터뜨렸다. 총 3타수 1안타 2타점 2득점. 팀은 1-9로 승리했다.

김태군이 팀에 복귀하면서 2군으로 내려갔다가 9월 확대 엔트리가 시행되면서 다시 1군으로 콜업되었다. 1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서는 9번 포수로 선발 출전했지만 별다른 활약은 보이지 못했다. 팀은 2-4로 승리.

와일드카드 결정전 엔트리에 포함되면서 데뷔 첫 포스트시즌을 경험했지만 아쉽게도 출전 기회는 없었다. 팀은 1차전에서 패배하면서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최종 성적은 55경기 107타수 24안타 2홈런 9타점 13득점 8볼넷 24삼진 타출장 .224/.278/.327. 허수아비 수준에 그쳤던 지난 시즌에 비해 상당히 향상된 타격을 보여주었다. 수비에서도 백업으로서 좋은 안정감을 보여주었고 도루 저지에서는 30시도 가운데 13개를 잡아내며 도루 저지율 43.3%로 200이닝 이상 포수 가운데 가장 좋은 기록을 남겼다.


3.1.3. 2020 시즌[편집]


스프링캠프 출국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타격 부분을 강화하기 위해 겨울동안 벌크업보다는 체지방을 근육으로 바꾸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또, 같은 팀 선배이자 올 시즌 주장인 양의지에게 좀 더 살갑게 다가가는 것이 새로운 목표라고 밝혔다.[4]#

개막전 엔트리에는 아쉽게 들지 못했는데 허리 부상으로 재활군에 있다고 한다. 팀 간 연습경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가 이것이었다.#

6월 19일 양의지가 10일 부상자 명단에 등록되면서 1군에 합류했다. 21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9번 포수로 시즌 첫 선발 출전을 했고, 2회 2사 2루에서 적시타를 쳐내며 시즌 첫 안타를 신고했다. 팀은 7-9로 승리.


2020년 6월 21일 홈 한화전 적시타

이석증이 아직 완치되지 않은 양의지 때문에 1군에 올라오긴 했지만, 6월 23일~28일 간 활약상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게다가 팬들은 다른 팀에서도 충분히 주전 포수로 뛸 수 있는 김태군이 백업으로 있는데도 굳이 1군에 포수를 3명이나 두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5] 심지어 6월 28일 기준으로 김형준의 포수 방어율은 10.00에 달한다. 몰론 포수 리드가 효과가 있는 지는 계속 논란이 되고 있지만, 양의지가 같은 날 기준으로 3.69, 김태군이 5.50인걸 감안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는 셈. 팬들은 아예 김태진, 김찬형과 묶어서 3김이라 부르며 까고 있다.[6]

결국 6월 30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양의지가 허리 통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자 22일 1군에 등록되었다.

8월 1일, 7번 타자 김성욱을 대신해 대타로 10회말 12:10 상황에서 유격수 라인드라이브를 치며, 안타인 줄 알고 3루로 진루하던 2루 주자 박석민도 자연스럽게 아웃되며 병살타가 되었다.

9월 3일 LG전에서 8회 포일 및 1루 송구실책으로 스노우볼을 굴려 패배의 단초를 제공했고, 이후 팬과의 인스타그램 대화에서 부적절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 공개되어 비난받았다.[7]

이후 별명 자체가 '텔미'로 고정됐고, 졸지에 트레이드로 이적해온 윤형준도 덩달아 '윤텔미'가 되었다.

9월 16일 두산전에서 3타수 3삼진을 기록.

9월 23일 삼성전에서는 양의지의 부상때문에 급히 교체출전하였다. 하지만 나오자마자 공의 위치를 놓쳐 주자를 한 베이스씩 진루시켰고, 희생플라이로 실점하였다.

9월 24일 LG전에서 추격의 솔로포를 쳤으며 이는 12대 7로 역전하는 데 소소한 발판이 되었다.

9월 25일 LG전에서 장외 홈런을 쳤다. 본인의 장타력을 입증하는 데 성공.

9월 30일 SK전에 선발출장해 1회에 넉넉하게 홈에서 아웃시킬 수 있는 송구를 놓치며 포수 포구실책을 기록해 2실점 무자책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 후에 동점 2타점 적시타를 치면서 자신의 실수를 많이하는데 성공했다. 그 후 6회와 7회에 각각 볼을 빠트려 한경기 1실책 2폭투포일이라는 아쉬운 기록을 만들었다.

10월 13일 3점 홈런을 쳤다.


2020년 10월 13일 홈 KIA전 3점 홈런

2020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었으나 1경기도 뛰지 못했다. 그래도 팀이 우승을 차지하며 송명기 등과 함께 비교적 어린 나이에 반지를 얻어갔다.

시즌 최종 기록은 72타수 22안타 3홈런 11타점 12득점 10볼넷 21삼진 타출장 .306/.390/.444. 적은 타석수이지만 타/출/장 전부 예년에 비해 또한번 크게 개선되었고 클래식 스탯 뿐만 아니라 BB/K도 2018년 0.22 → 2020년 0.48, BABIP도 0.396으로 향상되었으며 wRC+ 역시 124.2를 기록하면서 잠재력을 유감없이 뽐냈다.

수비에서는 CR/9(포수 출장 시 투수 평균 실점), Pass/9(9이닝당 포일+폭투)에서 리그 포수 중 딱히 인상적인 수치를 기록하지 못했으나 도루저지율이 66.7%로 굉장히 높았고, 도루 시도(2.2%) 억제도 좋았다.

스토브리그에서 김태군이 NC와 FA 계약을 하면서 75경기 335⅓이닝을 뛰었고, 김형준은 38경기 164⅓이닝을 소화하며 제3포수로서 시즌을 치렀다. 특이한 점으로 시즌 후반기 구창모와 이재학이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면서 송명기, 김영규가 선발 자리를 꿰차자 벤치에서 김형준이 이들과 배터리 호흡을 많이 맞추도록 의도적으로 스타팅 라인업에 자주 편성하며 기회를 줬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이러한 의도적인 배터리 편성은 순위싸움이 치열한 마당에 그나마 안정감이 있는 김태군을 왜 쓰지 않고 2군에 내리느냐는 둥, 김형준이 감독 양아들이냐는 둥 팬들의 맹비난을 불러왔으나, NC가 해당 시즌 통합우승을 달성하면서 결과적으로는 김형준에게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되었다.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쓰지도 않을 제3포수로 김형준을 엔트리에 포함시킨 것도 아마 같은 맥락일 듯.

시즌 종료 후 병역 해결을 위해 상무에 지원했고, 최종 합격함에 따라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입대하게 되었다.


3.1.4. 상무 피닉스 야구단[편집]


입대 일주일 전까지 창원에서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김형준은 입대전 인터뷰[8]에서 "단점을 지우겠다"고 팬들에게 약속했다. 그는 "타격 감을 잘 유지하고, 블로킹에서도 좀 더 여유를 찾고 나면 전역 이후에 주어진 기회를 잘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집중력을 잃지 않고 상무에서도 열심히 야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2021년 7월 23일 도쿄 올림픽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상무 주전 포수로 출장해 시작부터 끝까지 9이닝 내내 안방을 지켰다. 상무는 0-9로 완패했지만 김형준은 4번타자 겸 포수로 나서 4타수 1안타를 기록했고 안정적인 플레이로 야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상 움짤

경기 후 스포츠동아 최익래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상무 소속으로 국가대표팀을 상대해 영광이었다. 아쉬움을 달래는 것 이상의 의미”라며,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규칙적인 스케줄로 생활하다보니 확실히 몸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경기에서 양의지와의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김형준은 “(양)의지 선배가 이전에 택배로 배팅 장갑을 보내주셨다. 그 장갑을 낀 채 경기에 나가 선배에게 보여드렸다. 의지 선배가 웃으시더니 '장갑이 해지면 언제든 얘기해라. 바로바로 보내주겠다'고 하셨다. 늘 감사한 선배”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빠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일찌감치 야구팬들 사이에서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차출 후보로 김형준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9] 이번 아시안 게임부터는 KBO가 아시안게임 브레이크를 폐지하기 때문에 순위싸움이 치열한 9월에 각 팀의 주전 포수들을 순순히 대표팀에 내줄 구단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무 야구단 소속인 김형준이 1순위 카드로 언급되고 있는 것. 이후 예상대로 예비 엔트리 명단에 무난히 이름을 올렸지만 아시안게임이 연기되면서 무산되었다.

2022년 7월 엔튜브 영상을 통해 오랜만에 근황을 전했는데 전역 전까지 아프지 않고 최대한 많은 경기, 많은 타석에 나서서 전역 후에도 좋은 모습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강인권 NC 감독대행은 8월 2일 경기전 인터뷰에서 김형준에 대해 "(전역하면) 바로 합류시켜서 경기에 나서게 해야 된다. 지금도 상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8월 하순까지 60경기 222타수 60안타 5홈런 48타점 43득점 타출장 0.270/0.393/0.432로 나쁘지않은 성적을 기록중이다. 특히 타점은 퓨처스리그 전체 3위.[10] 5월과 7월에 부진했지만 전역을 코앞에 두고 좋은 타격감으로 타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2022년 9월 21일 전역 예정이었는데, 전역을 20일 가량 앞두고 8월 28일 전방 십자인대 파열로 수술을 받았다.# 이로써 상무에서의 커리어는 마감되었으며 재활 및 복귀에 최소 6개월 이상 소요될 예정이다.[11] NC 관계자는 "김형준은 평소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았다"며 "2군 경기 중 다치진 않은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설명했다.[12]


3.1.5. 2023 시즌[편집]



파일:김형준2023와일드카드.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형준(1999)/선수 경력/202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월 말 재활을 끝내고 1군에 합류하여 6홈런을 기록하는 등 여전한 펀치력을 보였다. 이후 항저우 아시안 게임 주전포수로 활약하며 금메달을 획득했고 포스트시즌에서도 부상 회복이 더딘 박세혁을 대신해 선발 포수 마스크를 쓰며 투수들을 잘 이끌면서 팀의 가을야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3.2. 국가대표 경력[편집]



3.2.1.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편집]



파일:김형준231008AG결승2회초득점.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 2.svg


경기
타석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5
19
18
3
0
0
0
0
3
사사구
삼진
도루
희비
병살타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1
9
0
0
0
.167
.211
.167
0.378

김주원, 김영규와 함께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등번호는 25번.

10월 1일 홍콩전에서는 8번 포수로 선발출장하여 4타수 1안타 1볼넷을 기록했고, 다음날 대만전에서도 8번 포수로 선발출장했지만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태국전은 결장하였다.

슈퍼라운드 일본전에 8번 포수로 선발출장했으나 삼진만 3개를 당하며 타격에서 부진을 겪었다.

슈퍼라운드 중국전에 8번 포수로 선발출장해 4타수 1안타 1득점의 성적을 기록했다.

결승전 대만과의 리벤지 매치에서는 8번 포수로 선발출장해 4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에 공헌하여 금메달을 획득했다.

첫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주전 포수로서 맹활약했는데, 특히 결승전인 대만전 리턴 매치에서의 팀 완봉을 이끈 리드가 각 중계방송 해설진들의 찬사를 받았다.[13][14] 평소 티가 잘 나지 않으나 포구나 블로킹에서 실책을 하면 단연 돋보이게 되는 포수 포지션의 특성 상 타격보다는 수비의 안정감이 매우 중요했는데, 이 점에서 김형준은 첫 성인 국가대표팀 출장임에도 기본기와 경기운영 면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결승전 선발로 호투한 문동주와 마무리 고우석이 김형준에게 공을 돌렸다.[15] 타격에서는 다소 부진했으나 종종 안타와 볼넷으로 출루를 했고, 주자로서 착실하게 득점에 성공하며 특히 슈퍼라운드와 결승전에서 점수차를 벌리는 추가득점을 기록해 승리의 발판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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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31009꽃다발전달식 (2).jpg

파일:231009꽃다발전달식 (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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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후 홈 관중 앞에서 꽃다발 전달식을 가지며 수상을 축하했다.


3.2.2. 2023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편집]



파일:23APBC 프로필_김형준.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 2.svg


경기
타석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4
15
14
2
1
0
0
1
1
사사구
삼진
도루
희비
병살타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1
3
0
0
1
.143
.200
.214
.414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2023 APBC에도 차출되었다. 이변이 없다면 앞으로 WBC와 같은 대회에서도 주전 포수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팀동료 신민혁, 김영규, 김주원과 함께 차출되었다.

1경기 호주전에 8번타자 포수로 선발 출장하여 2회 동점 적시타를 기록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타석에서의 기록은 4타수 1안타 1타점.

2경기 일본전에서는 6번타자 포수로 선발 출장하였다. 타석에서는 3타수 무안타의 모습을 보였으나 수비에서는 상대의 도루 시도를 두 번이나 잡아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에 적장 [이바타 히로카즈]]감독도 인정하는 인터뷰를 남기기도 하였다.

3경기 대만전에 6번타자 포수로 선발 출장하여 5회 2루타를 포함, 4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하였다.

결승전 일본전에는 7번타자 포수로 선발 출장하여 3타수 무안타 1볼넷 2삼진을 기록하였다. 팀은 아쉽게 준우승했지만 2023년 한 해 동안 출전한 두 번의 국제 대회를 통해 강민호양의지를 이을 국가대표 포수를 찾았다는 평.
[1] 김형준이 주변 1m 반경 수비는 너무 잘 했지만 2m부터는 뛰질 않아서 감독이 포수를 시켰다고 한다. 이 썰에 대해 아시안게임 우승 후 엔튜브 라이브에서 김형준이 직접 해명한 바에 따르면 '과장이 섞인 얘기'라며, 이정후가 휘문중학교에 전학오고 나서 첫 수비훈련 때 함께 펑고를 받은 기억이 있다고 했다.[2] 한화 이글스의 연고권인 세광고등학교 야구부 소속이었지만 타 지역 전학생이었기 때문에 1차 지명은 불가했다.[3] 프로 입단 후 이만수 전 감독의 번호인 22번을 달았던 적도 있다.[4] 서로 말이 많은 편이 아닌데다 양의지가 대선배라 말도 제대로 못 건넸는데, 이제는 1년 본 사이니까 더 친해지고 싶다고 했다.[5] 김태군은 2015년에 전 경기 출장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체력이 뛰어난 포수다. 그런 포수를 백업으로 두고 있다면 굳이 제 3의 포수가 1군에 필요가 없다.[6] 김태진, 김찬형도 공수주에서 발전없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김태진, 김찬형은 모두 이적했다.[7] 일부 몰지각한 팬이 김형준에게 인스타그램 DM으로 악플을 남겼는데, 김형준은 "슬라이더 사인 냈는데 직구잡으라면 (너같으면) 잡냐 말해봐 말해보라고"라며 당시 투수 문경찬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신경질적인 답장을 보냈기 때문. 그리고 격려성 DM을 보낸 다른 유저에게도 다를 게 없는 답변을 남겼다. 이 일로 NC 다이노스 갤러리가 불탔고 결국 다음날 오후 김형준은 SNS를 닫았다. 엔갤에서는 김텔미, 말말보 등으로 불리며 계속 까였는데, 같은 해 12월에 삼성 신인 신동수의 비공개 SNS 피드가 유출되며 큰 논란이 생기자 엔갤에서는 농담 식으로 김형준은 다시 보니 선녀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또 2021년 1월에 팀 선배 박민우가 SNS로 논란을 만들자 재평가되고, 두산 신인 안재석이 SNS로 팬이 보낸 DM을 비꼬자 또 재평가되는 식의 반복.#[8] 양의지 후계자의 빠른 입대 결심…”지금 나에게 기회 없어” [오!쎈 창원캠프\] '디펜딩챔피언' NC 미래 안방마님 김형준의 군 입대, "다녀오겠습니다!" [김배중 기자의 핫코너\][9] AG 대표팀 또 양의지? 상무의 '포스트 양의지'는 어떤가요?[10] 1위는 상무 이유찬(57타점), 2위는 상무 최준우(53타점), 3위가 김형준이다.[11] 참고로 십자인대 파열은 병역면제 사유 중 하나다. 전역이 1달도 남지 않은 말년에 안타까운 부상을 당한 것.[12] 이로 인해 본래 김형준이 전역하면 바로 1군에 등록하려는 계획이 있었던 NC는 삼성에서 방출된 권정웅을 긴급히 백업 포수로 영입했다.[13] 각 방송사 해설을 맡은 KBS 박찬호 박용택, MBC 박재홍 정민철 등이 특히 나이가 어린 항저우 AG 대표팀 투수진을 안정적으로 인도한 김형준에 대해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유독 SBS 이순철이 유일하게 '김형준의 리드가 잘못되었다'며 깐깐하게 비난을 일삼았는데, 본선 대만전 패배 당시 고우석의 실점을 제외하곤 대체로 김형준의 구종 선택과 적극적인 승부가 들어맞았고, 다른 대표팀 투수들과 배터리를 맞췄을 때는 실점도 희박했다. 특히 위기상황에서 현명한 선택들이 빛을 발했으며 대표적인 경기가 바로 결승전 대만과의 리매치이다.[14] 아시안게임 야구경기를 지켜본 김성근 전 감독도 인터뷰에서 김형준이 대회 기간 점점 진화하는 장면을 끄집어내며 "젊은 포수 하나도 찾아냈다. '가난한 집에서 효자 나온다'는 옛말이 있는데 한국야구에서도 모자람 속에 포수 하나가 나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형준은 대회 후 인터뷰를 통해 9회말 마지막 병살처리 볼배합에 대해 "타자가 빠른 직구에 맞춰 타이밍을 잡는 것 같았다. 헛스윙을 하는 것을 보고는 3구째 슬라이더를 다시 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15] 문동주는 "(포수) 형준이 형의 리드가 너무 좋았다. 형준이 형 리드대로 던졌는데 좋은 결과가 있어서 형준이 형한테 공을 돌리고 싶다"라고 말했고, 고우석은 "형준이가 볼 사인을 매우 잘해줬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잘 짚어줘서 더 냉정하게 던진 것 같다" 라며 위기상황에서 김형준의 판단을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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