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기(농구)/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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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코치 경력
3. 감독 경력
3.1.1. 15-16 시즌
3.1.2. 16-17 시즌
3.1.3. 17-18 시즌
3.1.4. 18-19 시즌
3.1.5. 19-20 시즌
3.1.6. 20-21 시즌
3.1.7. 21-22 시즌
3.2.1. 22-23 시즌
4. 통산 감독 성적
5. 감독 스타일
5.1. 장점
5.2. 단점



1. 개요[편집]


농구 감독 김승기의 지도자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코치 경력[편집]


파일:전창진 강동희 김승기.jpg
2005-2006 시즌 은퇴 후 바로 원주 동부 프로미의 코치로 지도자 인생을 시작한 김승기는 전창진 감독과 강동희 수석코치를 같이 보좌하며 2007-2008 시즌 KBL 통합우승을 함께했다.

파일:전창진 김승기 손규완.jpg
2009-2010 시즌에는 스승이었던 전창진, 후배인 손규완 코치와 함께 부산 kt 소닉붐으로 이직해 수석코치를 맡으며 2010-2011 시즌 창단 첫 KBL 정규리그 우승에 공헌했다.[1]


3. 감독 경력[편집]



3.1. 안양 KGC인삼공사[편집]



3.1.1. 15-16 시즌[편집]


파일:김승기 감독대행 원주.jpg

2015년 성적부진과 함께 부산 kt 소닉붐에서 전창진 감독과 손규완 코치와 함께 팀을 떠난 이후 전창진 감독이 안양 KGC인삼공사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수석코치를 맡게 되었다.

2015년 전창진이 안양 KGC인삼공사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그를 따라가서 안양 KGC인삼공사의 수석코치가 되었으나, 전창진이 그 해 8월 5일 2015년 프로농구 승부조작 사건으로 사임해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다.

농구계가 승부조작 및 불법도박 관련 수사로 혼돈의 카오스인 상황에서 9월 7일 프로농구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김영기 총재 및 프로팀 감독들이 하나같이 팬들을 향한 사죄의 발언을 하는 가운데 눈치없이 "그분(전창진 감독)의 피를 이어받아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발언으로 어그로를 끌었고, 며칠 전에는 "전 전 감독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나의 농구는 곧 그 분이 지금까지 하셨던 농구. 그분의 명예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라고까지 얘기한 것이 알려지면서 팬들 사이에서 험악한 여론이 형성됐다.

안양 KGC인삼공사는 전임 이상범 감독 시절 원조 탱킹이라는 비난이 있었지만 인삼신기 빅4인 박찬희-이정현-양희종-오세근 라인이 건재했고 전성현이라는 스윙맨이 있었다.

자신이 전창진 사단속에 코칭스테프에 합류한 첫해 고려대 농구부 출신 스몰 포워드인 문성곤을 1 라운드 1 순위로 지명해주면서 KGC인삼공사 왕조에 도전해보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은사인 전창진 감독만 아니라 강동희 감독 또한 프로농구 승부조작 여론으로 인해 좋지 못한 상황에서 부임하면서 선수단 장악에 대해 팬들의 시선은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3라운드 현재 인삼공사가 호성적을 내고 전 시즌과는 확 달라진 경기를 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험악한 여론은 쏙 들어가고 감독 대행 딱지를 떼 달라는 여론이 주를 이루는 중. 이에 김승기 대행도 "경기장을 찾아주는 팬들이 있었기에 선수들이 더 힘을 내는 것 같다."라면서 지금의 호성적을 팬들의 공으로 돌리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호성적 덕분인지 드디어 2015년 12월 31일, 인삼공사와 3년 계약을 맺고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정규리그 최종 성적은 30승 24패로 4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시즌 최종 성적은 4강 PO에서 마쳤다.


3.1.2. 16-17 시즌[편집]


16-17 시즌에는 슈팅이 약한 박찬희를 전자랜드 엘리펀츠로 트레이드로 내보내는 대신 한희원을 받아오게 된다.

외국인 또한 기존의 인삼 멤버들을 아는 센터 데이비드 사이먼과 포인트 가드로 슬래셔인 키퍼 사익스를 영입했다. 기량이 정점을 찍은 이정현과 신인시즌에 가장 가까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오세근을 중심으로 지난 시즌과 같이 쇼타임 농구를 보여주면서 우승후보가 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안정적인 스쿼드를 구축하면서도 지난시즌과 같이 주전-백업의 기량 차이를 줄이는 기용을 하지 못하면서 이걸로도 우승못하면 바보 아니냐 하는 비웃음을 듣고 있다. 사실 KGC는 D리그에 참가한 적이 한번도 없는 돈이 부족하면서 방만한 구단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로 인해 전임 이상범 감독 또한 우승을 했는데도 장기집권을 못한 채 시즌 중 경질이라는 비극을 당했다.

전창진 사단의 단점 중 하나인 포워드를 키워내지 못하는 건 여전해서, 갈수록 폼이 떨어져 자신감을 잃고 악순환에 빠져드는 문성곤, 존재감이 아예 없어진 한희원, 공격 포텐셜이 뛰어난 백업 빅맨인 김민욱의 더딘 성장을 보면서 타팀팬들은 연민을 느끼는 와중에 군침을 흘리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올해도 D리그를 운영하지 않는다는게 공개되면서 타팀팬들은 KGC구단과 김승기 감독에게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었다. 그러나 2라운드 8승 1패, 그리고 두 번의 6연승과 함께 문성곤, 한희원 등이 슬슬 터지는 모습을 보이며 1라운드에서 나온 이러한 비난은 쏙 들어가게 되었다.

3라운드 성적은 6승 3패. 양희종이 부상에서 복귀하여 공수밸런스가 좋아지긴 했지만 이정현의 과부하로 인한 컨디션 저하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사이먼, 오세근의 공격 부담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김기윤의 허리부상과 함께 오세근도 발목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여 여유있는 선수기용을 해야할 필요성이 생겼다. 사이먼의 컨디션은 여전하지만 일본 원정에다가 국내 빅맨진의 부상우려도 서서히 관측되고 있으니 삼성을 뛰어넘어 통합우승을 위해서는 주전들의 과부하를 최대한 줄이고 체력안배를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할 것이다. 그래놓고 그 다음 경기에 오세근을 38분이나 뛰게 하다니... 김민욱이 그리도 못 미더웠소? 이건 공산 농구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시는 그 분에게서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2][3]

2월 4일 기준 4라운드 성적은 6승 2패로 여전히 순항중이다. 다만 사이먼, 오세근, 이정현의 과부하가 슬슬 시작되고 있어 이기는 경기나 지는 경기 모두 제발 백업 좀 돌리라고 성토를 하고 있다.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로테이션을 돌려도 지나치게 못 돌린다는 것. 이 말은 현 안양 KGC인삼공사의 2017년 팀 뎁스 기준으로 보면 가용된 뎁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볼 수 있다.[4] 그나마 지켜볼 수 있는 것은 2016-17 시즌 5라운드에 들어서면서 김민욱, 김철욱과 문성곤의 활용 시간을 점차 늘려가면서 조금이나마 피드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허나 5라운드에 있었던 백투백 경기를 치르는 와중에 KBL 최고의 금강불괴라는 소리를 듣던 이정현이 기어이 과부하되면서, 1위 싸움을 하는 오리온과 탈꼴찌를 노리는 kt에게 일격을 당해 정규리그 우승을 안심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김승기가 kt를 맡는다면 10승도 못할거 같다. 정말 잘라야 하는거 아니냐?' 라면서 4라운드때 나왔던 비판이 계속 쏟아져나오고 있다. 다만 이정현은 팀내 존재감이 김주성급으로 올라와 있어서, 대체전력을 꾸리려고 해도 기량차이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하다. 시즌 초중반처럼 경기 초반에 압도적으로 치고나가면 이정현의 체력 안배도 가능하겠지만 그게 아니기 때문에 출전시간 배분에도 매우 큰 걸림돌이 되는 셈. 이후 6라운드에서 큰 고비였던 오리온-동부-삼성-모비스 4연전을 모두 싹쓸이하는 데에 성공하면서 한시름을 놓긴 했다. 현재까지의 가장 큰 변화는 4쿼터에도 사이먼이 아닌 사익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전술의 변화를 찾으려고 계속 시도를 하고 있는 점이다.[5] 이러한 5라운드 시기 체력 부담을 이겨내고 선수 기용을 유연하게 가져간 결과 6라운드에서 전승을 달성하여 함께 팀을 구단 통산 첫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경기 운영의 변화에 대하여 정지욱 기자가 김승기 감독을 평가한 말에 따르면 팬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드한다고 한다. 네이버 댓글과 구단 페이스북 덧글 등을 쉴 때마다 일일이 다 읽어볼 정도라고... 그 결과가 5라운드 이후에서나마 로테이션을 적극적으로 돌리면서 4쿼터에도 사익스를 적극적으로 써먹는 등의 시도로 보인다.

그 뒤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울산 모비스 피버스를 3전 전승으로 꺾었으며 챔피언 결정전에서 서울 삼성 썬더스에 4승 2패를 거두며 팀의 통산 두 번째 우승이자 안양 KGC인삼공사 역사상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이끌면서 유재학 이후 KBL 통합우승 감독의 이력에 오르게 된다. 유재학이 06-07 시즌 통합우승을 했는데 10년뒤 해낸 대단한 업적이다. 아울러 KBL에서 사상 처음으로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KBL 출신 농구인이 되었다.[6]


3.1.3. 17-18 시즌[편집]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맞는 세번째 시즌이 기다리고 있다.

인삼신기의 주역이었던 이정현은 끝내 오세근의 잔류를 위해 포기를 하면서 추승균 감독이 있는 전주 KCC 이지스로 떠나보냈다. 이정현은 FA 최고액인 총액 9억 2천만원과 함께 인삼공사를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오세근을 FA 총액 7억 5천만원에 잔류하면서 디펜딩 챔피언의 전력을 그나마 유지를 했다.

외국인으로 키퍼 사익스를 떠나보내는 대신 QJ 피터슨을 영입했다.

17-18 시즌 중 KBL 드래프트에서 kt 소닉붐이 조동현 암흑기와 함께 1순위로 허훈과 2순위로 양홍석을 연달아 지명하면서 포지션 중복으로 인해 김기윤을 kt로 떠나보내는 대신 kt 시절 전창진 감독과 직접 가르쳤던 이재도를 영입하면서 이정현의 공백을 메꾸게 된다.

하지만, 17-18 시즌 들어서 주목받는 건 바로 혹사.

부상이나 체력 등 과거의 전적이 있는 선수들을 +35분씩 굴려대고 있다. 오세근은 백투백 경기를 40분, 34분 출장하는등 혹사에 조금씩 컨디션이 내려오는게 보이는데도 '선수가 뛰고 싶어한다' 라며 혹사를 정당화하는 인터뷰를 했다. 그러다가 3라운드에 들어서는 kt전에서 오세근 대신 김승원을 스타팅 빅맨으로 써먹고 오세근의 출전 시간을 30분만 소화시키고 데이비드 사이먼을 4쿼터 풀로 쉬게 하거나[7], 또 피드는 빠른 모습을 보여주는 등, 그야말로 들었다 놨다를 하고 있다. 이는 전술한 대로 기사 내용과 팬들의 의견을 빠르게 피드하는 매니징 스타일이 또 드러난 모습. 결국 이번에도 4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며 재계약 가능성이 커졌다.

그리고 2018년 4월 18일, 진짜로 안양 KGC인삼공사와 3년 재계약에 합의했다. 기사.

구단의 창단 첫 KBL 통합우승의 공을 인정받으면서 리빌딩-리모델링-리툴링을 책임지게 되면서 전임 사령탑이었던 DB 이상범 감독을 넘을 장기집권을 예고했다.


3.1.4. 18-19 시즌[편집]


비시즌 상무에 입대하게 된 91년생 동갑인 가드 이재도와 가드-포워드 전성현의 공백을 커버할 선수를 찾지 못하면서 고전하고 있다.

LG와 2대2 트레이드로 아킬레스 건 부상을 당하면서 폼을 잃어버린 강병현과 적응을 못한 이원대현주엽이 있는 창원 LG 세이커스로 내보내는 대신 기승호배병준을 데리고 왔다.

2018 KBL 드래프트에서도 1 라운드 2 순위로 동국대 돌격대장인 가드 변준형을 뽑게 되면서 가드 열세를 그나마 만회를 했다. 당초 1 라운드 1 순위의 부산 kt 소닉붐 루머가 있었지만 새로 부임한 서동철 감독은 포지션 밸런스와 빅 라인업을 목표로 고려대 포워드 박준영을 픽하면서 안도를 했다.

하지만, 이미 주축들이 상무 입대와 폼을 잃은 바람에 역시 승보다 패를 더 겪고 있다.

그러던 중 2018-19 시즌 홈에서 2연패 뒤 원정에서 2연승을 챙겨 현역 KBL 감독 중 7번째로 100승을 달성한 감독이 되었다.[8]

2018년 11월 8일 안양에서 열린 부산 kt 소닉붐과의 홈경기에서 100승 시상식을 했다.

2019년 2월 18일 관상동맥 확장 시술을 받게 되어[9] 2월 17일 울산 현대모비스전에는 손규완 수석코치가 임시로 지휘봉을 잡았다. 기사 수술을 받았지만 첫 번째 수술 실패 때 손상된 혈관이 너무 많아 시도도 못하고 실패해 약물로 치료한 후 7~8월경 재수술한다고 밝혔다.[10] 경기 출장에는 어려움이 없어 2019년 3월 2일 창원 LG 세이커스와의 경기부터 지휘를 한다. 그렇지만 훈련은 당분간 손규완 코치가 지휘할 것이라고 구단 사무국장이 밝혔다. 기사.

식스맨에서 새 얼굴 등이 나타나는 등의 수확 등도 분명히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8-19 시즌은 본인이 가장 우려한 부분에서 문제가 드러나면서 최종 순위 7위를 기록하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한 끗 차이로 실패하고 말았다. 본인의 건강 문제가 가장 컸겠지만, 시즌 전부터 성적보다는 리빌딩에 초점을 맞춘 이유가 가장 잘 드러난 시즌이 되고 만 것은 덤. 더불어서 감독 부임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결석한 시즌이 되기도 했다.

그나마 잘한 건 자신의 수석코치 시절 친정팀이었던 서동철 감독이 부임한 부산 kt 소닉붐에 자신이 2016 KBL 드래프트 시절부터 그토록 원했던 가드 박지훈을 영입한 것이다. 반대로, 적응을 못한 김윤태한희원을 내보내면서 향후 상무에서 돌아올 이재도를 기다리는 준비를 한 것이다.

농구 팬들은 kt 출신인지 이재도도 모잘라 박지훈까지 동시에 데리고 온 김승기 감독을 가드 거래를 잘해서 거래공사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물론 kt 팬들에게는 변거박이라는 큰 재앙과 함께 일부 팬들은 서동철 감독과 능력없은 kt 프런트에 분노를 표시했지만 역시 kt 출신이 kt를 잘 안다고 김승기 감독에게 극찬을 보낸다. 물론 변거박은 kt 역대 최악의 감독인 조동현도 포함되어 있다.


3.1.5. 19-20 시즌[편집]


한편, 작년 시즌 건강문제였던 위에서 말한 확장 시술 수술은 2019년 8월 1일에 3차 시도 끝에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지만 지난 시즌 끝나고 최현민 선수와 김승원 선수가 FA로 다른 팀에 가게 되면서 높이가 더욱더 약해지면서 과연 KGC가 작년의 아쉬움을 털어낼 수 있을지라는 궁금증이 시즌 시작 전부터 생긴다. 그렇지만 11월 4일에 열린 2019 KBL 드래프트에서 당초 원했던 고려대 센터 박정현을 놓쳤지만 대신 1 라운드 2 순위로 연세대 센터 김경원을 뽑으며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 거기다 크리스 맥컬러의 적응이 끝나고 로테이션 수비가 자리를 잡으면서 팀을 2위까지 끌어올렸다. 더룩이 고무적인 것은 오세근이 12월 어깨 탈골 부상으로 사실상 정규시즌 말미에나 복귀 할 수 있고 직전 시즌 신인왕 변준형이 손목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해 위기를 맞았음에 불구 17승 10패로 서울 SK 나이츠에 이어 가장 높은 순위에 자리했다. 특히 주전급 선수가 빠졌을 때 선수를 돌려가며 로테이션으로 쓰는 전술이 들어맞고 있다.

1월 7일 홈에서 삼성에게 승리를 거두며 SK를 제치고 통합우승을 차지했던 2016-17 시즌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 2017년 3월 26일 이후 1018일 만에 단독 선두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31경기만에 가장 늦게 기록했지만 팀 역사상 최초로 20승 고지에 먼저 선점했다. 역대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우승팀이 22번중 13번 기록한 만큼 60% 가까운 확률을 갖고 있는 중요한 기록이다.

여기에 1월 11일부터 이재도전성현이 상무에서 제대해 복귀 전력이 강화되어 직전 시즌 7위로 6강 플레이오프에 아깝게 실패했던 것을 만회, 챔피언결정전까지 갈 것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2020년 1월 27일, 공동 1위팀 SK를 잠실 원정에서 76:70으로 물리치면서 20일만에 단독 1위로 올라섰다. 김승기 감독 본인은 250경기만에 통산 145승을 거두며 150승 기록에 5승차로 다가섰다. 이는 역대 12번째 기록이며, 현역으로는 7번째 기록이고 다른 현역 감독들 중 246경기만에 기록한 전창진 KCC 감독에 이어 2번째로 150승을 빨리 기록할 수 있는 감독이 된다. 그렇게 잘 나가던 도중 코로나-19 때문에 시즌 진행의 어려움이 생겼고, 결국 연맹에서 2020년 3월 24일, 시즌 조기 종료를 선언해 KGC의 19-20 시즌 최종 성적은 26승 17패에 3위로 마쳐지게 되었다. 통산 148승을 기록해 150승 기록은 20-21 시즌에서 볼수 있게 되었다. 통산 정규리그 257경기 148승 109패로 승률이 0.576이다.[11] 현역 감독중 그 보다 승률이 높은 감독은 전창진 감독뿐이다. 그 마저 불과 4리 차이라 차기 시즌에 승률을 올려 순위가 상승되면 250경기 이상 감독들 중에 역대 정규리그 최고 승률 감독이 된다.[12]


3.1.6. 20-21 시즌[편집]


코로나 19로 시즌이 조기종료 되면서 KBL 챔피언의 꿈을 놓치면서 마지막 기회라는 평을 받게 된다.

애정을 가지고 키울려 했던 박지훈은 상무에 입대하면서 다음을 기약했다.

전력이 조금 더 처진 평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래도, 20-21 시즌 KBL 미디어데이에서 SK 나이츠와 함께 우승후보로 평가를 받았다.

언급된 KBL 감독 통산 150승 달성을 2020년 10월 17일 원주 DB전에서 99:81로 승리해 150승을 올렸다.

11월 10일 안양 홈에서 열린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와 경기에 얼 클락의 22점 활약과 변준형의 10어시스트 전성현의 3점슛 5개 포함 17점으로 승리했는데 14/31(46%)의 3점 성공률로 30%로 꼴찌였던 성공률을 끌어올려 이겼다. 주장 양희종이 복귀할때 승수를 더 많이 쌓는다는 계획이다.

11월 23일 10%의 확률로 5순위로 걸려 연세대 MVP 출신 한승희와 성균관대 가드 양승면을 뽑아 백업을 더 강화했다. 말에 따르면 원래는 전자랜드가 양준우를 뽑지 않았으면 가드진 강화를 위해 뽑으려고 했지만 유도훈 감독이 먼저 지명한 바람에 오세근의 백업이고 상대적으로 스트레치 빅맨이 없었던 팀 사정상 한승희를 지명한 것이다. 양승면은 전체 25순위로 입단해 이재도의 백업 장신 퓨어 포인트 가드로 뛸 전망이다.

이후 6강권에서 꾸준히 버티다 외국인 선수 문제로 골치를 앓으면서 주춤했다. 그러다 대체영입한 맥컬러를 또다시 퇴출시키고 새로운 외국인 선수로 제러드 설린저를 영입했다. 설린저가 점차 리그에 적응하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결국 오리온을 제치고 리그 3위를 기록하면서 6강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 kt를 상대해서 설린저의 엄청난 활약을 앞세워 스윕승을 거두었고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또다시 스윕승을 거두면서 2016-17 시즌 이후 4년만에 챔피언결정전에 올라갔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자신이 예전에 모시던 전창진 감독이 지휘하고 있는 올시즌 1위팀 KCC이다. 결국 KCC를 누르고 4전 전승으로 플레이오프 10연승 달성과 함께 우승을 차지했다. 더불어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10승을 거두면서 역대 플레이오프 승률 1위의 감독이 되었다.(24승 10패 승률.706)

2021년 5월 13일, KGC와 2년 재계약을 체결하였다. 다만 우승팀 감독 치고 길지 않은 계약기간과 장기비전이 없는 구단운영문제 때문에 뒷말들이 나오고 있는데 계약이 끝나면 다른 팀과 계약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본인도 사실 제러드 설린저를 못 만났으면 타구단 이적을 준비할 정도로 힘들었음을 고백했다. 구단부터 신인을 키우지 않으면서 장기계획이 없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장기간 성적부진의 이상민이 있는 삼성 썬더스와 현주엽 강점기와 조성원 암흑기의 LG 세이커스만 해도 영입전을 준비중이고 서동철이 있는 kt 소닉붐도 우선 2년 재계약을 했으나 자신의 전 소속팀이었는지 차기 시즌 부산에서 수원으로 연고이전을 하면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친정인 DB 프로미 또한 이상범이 이상한 로테이션으로 인해 성적이 복불복으로 나오더니 이런저런 말들이 오고 있다. 추가로 자신이 키운 이재도마저 구단의 재계약 의지가 없는 걸 눈치챘는지 이적을 허락한 썰도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3.1.7. 21-22 시즌[편집]


재계약 문제로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는데 시즌초반 부진했다.

21 KBL 컵에서는 이미 조별예선 탈락을 했다.

21-22 시즌 개막과 함께 중위권에서 고전하고 있다.

캡틴 양희종의 부상까지 겹쳤다.

자신이 뚝심있게 키울려는 변준형 또한 기복이 심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제러드 설린저 대신 오마리 스펠맨을 영입했지만 기복심한 모습으로 인해 등락이 큰 편이다.

하지만, 12월 박지훈이 전역복귀하면서 대반전을 꿈꾸고 있다.

참고로, 자신의 수석코치 시절 팀이었던 kt 소닉붐은 부산에서 수원으로 야반도주를 하면서 수원에서 대결했는데 수원 어웨이에서 첫번째는 대패였고 두번째는 석패였다.

2022년 1월 27일 안양 홈에서 열린 고양 오리온전에서 78:65로 승리해 KBL 통산 12번째 200승 감독이 되었고 현역 감독중에서는 전창진 유재학 유도훈 이상범에 이어 5번째 감독이 되었다. 더욱 대단한 점은 347경기에서 200승을 기록해 승률이 0.574로 그보다 더 적은 경기만에 200승을 거둔 감독은 신선우 감독과 전창진 감독뿐이다. 그만큼 선수 코치 감독으로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나갔다는 뜻이다.

2월 7일 코로나19에 확진되어 격리되고 2월 12일 전주 KCC전 13일 안양 홈에서 현대모비스전에 결장했는데 KGC는 그 경기들 모두 졌다.

시즌을 3위로 마친 뒤, 6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가스공사를 상대로 스윕승을 거두면서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 과정에서 오마리 스펠맨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대릴 먼로 1명으로 kt를 상대했는데, 1차전에서 패배를 당하며 우려가 나타나는 듯했으나 내리 3경기를 모두 이기면서 2년 연속으로 KBL 챔피언 결정전 진출에 성공하게 된다. 당초 전력이 kt는 선수층이 두터운 반면 KGC는 백업이 고작 양희종,박지훈이 그나마 버티는 수준이었고 오마리 스펠맨이 부상인 점을 감안해볼때 이변 중의 대이변이었다. 이로써 기존의 전창진 감독(44경기)이 갖고 있던 플레이오프 기준 최단 경기 30승 기록을 뛰어넘는 최고 승률을 올린 감독이 되었다.

상대는 이제 전희철 감독의 서울 SK 나이츠이다. 아쉽게도 체력적 한계를 이겨내지 못한채 챔피언결정전 1승 4패로 패배 커리어 첫 준우승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3.2. 고양 캐롯-데이원 점퍼스[편집]


챔피언 결정전이 끝난 다음 날인 2022년 5월 11일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가 공식적으로 데이원자산운용에 매각되었으며, 5월 19일 데이원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13]

지난 시즌 2년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애초에 KGC와의 재계약이 2년이 아니라 벌금 500만원 이상 받지 않는 조건부 1+1 계약이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적이 가능했던 것. 일각에서는 프런트와 갈등이 있어 팀을 떠난 것 아니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14] 용산고- 중앙대 출신으로 TG삼보 시절 자신의 팀메이트이기도 했던 허재가 데이원자산운용 구단의 최고책임자가 되면서 팀을 이적할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이 무렵 강을준 감독과 김병철 수석코치와의 재계약 포기와 상관없이 KGC는 재계약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계약기간 등 여러가지 사항에 대한 이견이 커서 재계약 성사가 힘든 상황이었고, 결국 5월 13일 KGC와 남은계약 1년을 해지한 후 결별을 선언했으며 곧바로 데이원으로 이적했다.

이적한 이유가 “소극적인 투자를 하는 팀에서 나와, 이제는 적극적인 투자를 해주는 팀으로 가고 싶었다"고 밝히면서 데이원 자산운용에서 나에게 너무 좋은 대우를 해주셔서, 거기에 무조건 보답할려고 간 것이라 말했다.

이적과 동시에 소위 김승기 사단이라 불리면서 6년간 코칭스태프로 활약해 온 손규완 코치와 손창환 코치가 김승기 감독을 따라 캐롯으로 옮겨서 코치 생활을 함께 한다.


3.2.1. 22-23 시즌[편집]


이승현의 잔류와 허웅의 영입은 실패했지만[15], 대신 안양 KGC인삼공사 감독 시절 애제자였던 전성현과 창원 LG에서 뛰었던 정해원을 데리고와서 팀의 약점이던 슈터를 보강했다. 또 안양 KGC 시절 사제지간이였던 박건호와 임기웅을 매니저와 전력분석관으로 내정했다

6월 2일, 캐롯 점퍼스 감독으로써 첫 팀미팅을 갖게 되는데 구단과 합의를 통해 이대성을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가스공사로 내주고 다음 시즌 FA 대어급 선수를 잡기 위해 치중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결국 6월 9일, 이대성을 트레이드로 내보내는데 성공했다. 기사에 따르면 애초부터 트레이드 시킬 생각이었다고 한다. 전성현에게 알맞은 가드로써 이대성보다 이정현과 한호빈이 더 낫다고 판단했었다고 한다.

7월 초 외국인 선수 물색 차 미국으로 출국해 외국인 선수를 알아보는데 2020-21시즌 고양 오리온에서 뛰었던 디드릭 로슨과 계약을 합의 했으며 2옵션 외국인 선수는 키 크고 힘 좋은 빅맨을 뽑는다고 했는데 그가 바로 2016-17시즌과 2017-18시즌에 안양 KGC인삼공사에서 뛰었던 데이비드 사이먼이다. 현재 모기업의 재정악화와 자본잠식으로 구단이 어려운 상태라 그런지 허재대표와 함께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다.

10월 16일, 안양 원정을 와서 친정 KGC와 대결을 펼쳤으나 패배를 당했다. 이후 인터뷰에서 그 흔한 홍삼 하나도 주지 않고, 거지같다며 "고생하고 나간 사람이 다시 찾아왔는데, 흔한 홍삼 드링크라도 하나 주면서 다독여주면 어디 덧나냐"라는 격한 인터뷰를 하며 전 있었던 KGC의 미비했던 지원을 대놓고 드러냈다.

그러나 연이어 2,3라운드까지도 KGC를 한번도 못이기면서 자존심을 구기게 되었다.

확실히 시즌이 가면 팀의 약점으로 지적된 뎁스 문제와 포워드 문제 때문에 큰 해결책을 못 놓고 있는 상황이다. KGC시절부터 단점으로 지적된 주전 의존도가 더 높아진 상태인데 교체해줄 선수는 없어서 결국 선수들의 체력이 고갈되면서 부상자가 속출되는 등 그대로 성적으로 직결되는 상황이다.

2023년 1월 21일, KGC와의 4라운드 맞대결에서 85-65로 20점차 대승을 거두면서 드디어 KGC전 첫승을 수확했다.

그러나 12일 후 5라운드 KGC전에는 변준형에게 26점 스펠맨에게 22점을 허용해 65:82 대패를 기록한 후 열세가 확정되어 한번 이긴걸로 만족한다는 발언을 했다.

구단이 경기 외적으로 풍파를 겪음에도 불구하고 28승 26패를 기록하며 5위로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이후 만난 4위팀 현대모비스를 3승 2패로 꺾고 4강 플레이오프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게 된다.[16]

이후 오른 4강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친정팀 KGC에게 1차전 대패를 당하며 자존심을 구겼지만, 2차전을 승리로 장식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전력차와 체력차를 극복해내지 못한채 1승 3패로 탈락해 시즌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3:0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1승을 기록한건 분명 선전한 결과이다. [17]

하지만 이후 구단은 인수대금 미납 등 여러 트러블을 거친 끝에 팀은 제명을 당해 해체해버리면서 그렇게 캐롯-데이원의 처음이자 마지막 감독으로 남게되었다. 하지만 이후 대명소노그룹이 데이원을 인수한다는 소식과 선수단을 인계한다고 함에 따라 다음 시즌에도 감독생활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3.3.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편집]


2023년 7월 11일 대명소노 측에서 김승기 감독을 초대 감독에 내정함에 따라 외인을 제외한[18] 데이원 해체 당시 선수단을 그대로 유지한채[19] 감독 커리어를 이어가게 되었다. 7월 21일 KBL의 고양 소노 창단 승인 기자회견에서 하늘색 넥타이를 착용한채 회견에 참석하며 고양 소노 감독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외국인 선수로는 지난 시즌 kt에서 뛰었던 제로드 존스와 2013년 NBA 전체 1순위로 지명됐으나 계속된 추락으로 아시아로 넘어온 앤서니 베넷을 영입했으나 베넷이 메디컬 테스트에서 불합격판정을 받아 새로운 외국인 선수인 디욘타 데이비스를 영입했다.

4. 통산 감독 성적[편집]


시즌
소속팀
경기수


정규시즌
플레이오프
2015-16[20]
안양 KGC인삼공사
54
30
24
4위
4강 PO
2016-17
54
39
15
1위
우승
2017-18
54
29
25
5위
4강 PO
2018-19
54
25
29
7위
-
2019-20
43
26
17
3위
[코로나-19]
2020-21
54
30
24
3위
우승
2021-22
54
32
22
3위
준우승
통산
367
211
156
0.575
V2
시즌
소속팀
경기수


정규시즌
플레이오프
2022-23
고양 캐롯 점퍼스
54
28
26
5위
4강 PO
통산
54
28
26
0.519

총계
421
239
182
0.568
V2


5. 감독 스타일[편집]



5.1. 장점[편집]


김승기 감독의 장점은 수비과 공격 전술을 모두 상당히 잘 짠다는 것이다. 감독 1년차인 2015-16 시즌에는 외인 선수들의 기복 때문에 다실점을 하는 경기를 보이며, 4강 PO에서 탈락했었다. 2년차인 2016-17 시즌에는 저런 단점마저 최소화시키며, 공수전환이 매우 빠른 쇼타임 농구를 선보였다. BQ가 높은 이정현, 양희종, 오세근을 중심축으로 순간적인 압박을 통한 스틸을 하거나, 패스 루트를 끊는 가로채기에 연계된 속공을 통해 쉬운 득점을 올리면서 이기는 경기를 하고 있다. 예전 창원 LG 시절 김태환 감독식 런앤건 농구를 떠올리면 쉽다.

수비에서 2-3 존 디펜스와 맨투맨 디펜스도 모자라 트랩 디펜스까지 수비를 다양한 방법으로 인해 상대 가드들을 무력화한다. 특히 자신이 가드 출신인지 포인트 가드들의 프레스 디펜스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비록 슈팅이 약하나 리그 최고의 대도였던 박찬희를 과감하게 포기했지만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트레이드로 이재도박지훈을 영입한 뒤 이들을 중심으로 스틸 이후 속공으로 분위기를 180도 바꾸는 팀 스타일을 확립했다.

토종에서의 투맨 게임을 이정현이재도를 기준으로 투맨 게임이 약한 박지훈변준형도 적극적으로 주문하면서 외국인 또한 외국인 가드 조련에도 역대급으로 키퍼 사익스와 QJ 피터슨에게도 아이솔레이션을 포함해서 투맨 게임까지 모두 재미를 본다.

뿐만 아니라 치밀한 투맨 게임을 시키는 척 하면서도 자유이용권 즉 아이솔레이션 오펜스도 기가 막히게 쓴다. 농구는 결국 가드 놀이라는 정설을 증명한 감독이다.

추가로 슈터 활용도 상당히 좋은데 과거 강대협오용준의 회춘에 이어 KBL 최고 슈터인 조성민이정현에 이어 전성현까지 키우면서 혹독한 육성까지 이루어냈다.

명장이었던 전창진과 자신보다 위의 수석코치였던 강동희 밑에서 혹독한 지도자 수업을 받으면서 수비 전술에 이어 공격 전술도 상당하며 포인트 가드 중심의 공수 경기를 펼치는 점이 김승기 감독의 최대 장점이다.

가드 출신답게 가드 자원을 상당히 잘 키우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건 포인트 가드슈팅 가드든 열외는 없다.

원주 동부 프로미 코치 시절에는 전창진 감독에게 수비와 체력 강화를 배웠으며 자신도 동부의 선수-코치 출신인지 슈팅 가드인 강대협이광재에게 투맨 게임과 3점슛을 조련했다. 또한 부산 kt 소닉붐 수석코치 시절부터 키웠던 포인트 가드였던 이재도김우람 등도 있으며, KGC인삼공사에 와서는 포인트 가드인 김기윤박재한이 있다. 김기윤은 1년간의 폐관수련을 통해 믿고 쓰는 가드가 되었으며, 루키 시즌임에도 플레이오프의 주전 포인트 가드를 맡으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 2라운드 출신의 단신인 박재한을 발굴한 점이다.

그래도 역시 자신이 직접 키운 포인트 가드로는 이재도박지훈인데 이들은 모두 김승기 감독의 혹독한 조련 속에 투맨 게임에 대한 지도를 포함해서 슈팅과 속공에 강점을 보이면서 KBL 올스타 레벨로 성장하면서 리그를 대표하는 듀얼 가드로 등극했다. 슈팅 가드 또한 원래부터 정상급 선수라는 평을 들었던 이정현을 KBL 최고 수준으로 만들었고 FA로 인해 떠나보내기는 했지만, 대학 시절 슈팅이 약하다는 평을 들었던 변준형도 혹독한 슈팅연습과 함께 조련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전창진과는 다른 면모도 보이는데, 선수단 구성도 원활하게 잘 꾸린다. 즉, 로스터의 판을 짜는 능력도 과거 안준호에 버금간다.

결과적으로 로스터에 대한 전면경쟁을 포함해서 특히 자신이 포인트 가드 출신인지 다양한 가드 라인을 수집하는 능력은 역대급이다.[21] 특히 코치와 감독이 가장 컨트롤하기 어려운 단신 외국인 가드들을 기가막히게 잘 뽑으면서도 잘 써먹는데, 마리오 리틀을 시작으로 16-17 시즌 통합우승의 주역이었던 슬래셔이자 듀얼 가드였던 키퍼 사익스와 부상으로 인해 KBL 파이널 1경기지만 인상적이었던 마이클 테일러로 교체하면서 대권을 가져갔으며 다음해인 17-18 시즌에는 마치 키퍼 사익스와 같은 QJ 피터슨으로 3년 연속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추가로 외국인 빅맨인 데이비드 사이먼브랜든 브라운을 통해 골밑마저 지배하는 모습도 강점이다.

이렇게 볼 때 KGC인삼공사의 역대 구단사를 보면 안양의 프랜차이저 출신이었던 전임 이상범 감독보다도 한 수 위다. [22]

본격적으로 감독 생활을 시작한 KGC에서는 샐러리캡 확보 차원에서 박찬희와 지난해 2순위인 한희원을 트레이드했고, 부상으로 저평가된 김철욱을 지명하여 오세근의 백업으로 쏠쏠하게 기용했으며, 단신이라는 이유로 저평가를 받아 2라운드까지 밀린 박재한을 중용해 신인 가드를 주전으로 쓰면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2017-18 시즌에 김기윤김민욱을 트레이드하는 강수를 두며, 이재도김승원을 영입하면서 수비 보강을 노렸고 그것이 적중하며 3라운드에서 6연승을 달린 것도 보면 트레이드를 하는 눈도 나쁘지 않다.

2018-2019 시즌에는 한희원을 내주는 대신 KBL 드래프트에서 이미 원했던 박지훈을 kt 소닉붐에서 트레이드로 데리고 왔고 변준형을 드래프트로 뽑으면서 가드 컬렉션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2016-2017 시즌 안양 연고팀 사상 첫 KBL 통합우승을 달성하면서 같은 농구대잔치 세대 감독 중 최고라는 평을 얻었고 KBL 사상 첫 선수(2002-2003 TG 삼보 선수/플레이오프 우승)-코치(2007-2008 동부 프로미 코치/통합우승)-감독(2016-2017 KGC인삼공사 감독/통합우승)으로서 모두 우승한 첫번째 농구인이 되었다. 그 공으로 2016-2017 시즌 KBL 감독상을 수상하며 명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고, 전임 이상범 감독을 뛰어넘으며 구단과 팬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계기가 된다.

현재 KBL에 1965년생 이후 명장이 거의 없는데 1969년생의 이상범보다 뛰어난 1970년대 출신 중 명장이 바로 1972년생의 김승기다.[23]

안양 연고팀 사상 최장연임 감독과 최고 승률의 감독이다.[24] 특히 플레이오프에서 상당히 강하고 정규시즌 때 잘 보여주지 않는 임기응변도 보여주는 등 작전구사능력과 승부사 기질을 갖춘 감독. 정규리그 때 변화를 잘 주지 않는 것이 플레이오프를 대비한 연막이라는 견해도 팬들 사이에서 존재할 정도니 말 다했다. 덕분에 감독 7년차에 7할대 플레이오프 승률과 2번의 우승 등 빅게임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기에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오세근한승희 등 빅맨들에게 3점슛을 던지라고 주문을 많이 한다. 실전에서 내 외곽 플레이를 모두 했으면 바람에서 인 듯. 이제 빅맨들도 3점슛을 던져야 하는 현대 농구의 트렌드와 더불어 내외곽을 모두 살리는 그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도 데이비드 사이먼에게 3점슛을 자신있게 던지라고 주문한 적이 있었다.

또, 시간이 갈수록 덕장의 면모도 보여가고 있다. 부임 초기 때만 해도 팬들 사이에서 가끔 꼰대가 아닌가 할 정도로 작전타임에서 선수를 심하게 질책하는 면모를 보일 때도 있었으나 18-19 시즌 도중에 발생한 건강 악화 때문인지 그 이후부터는 작전타임 때 차분하게 작전 지시를 하며 선수들과 팬들의 피드백을 귀담아 듣거나 선수의 플레이를 많이 믿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현일 해설위원이 라이브 방송에서 밝히기를 플로어 위에서 선수들의 창의성을 상당히 존중해주는 감독이라고 하며 많은 팬들은 이에 공감하고 있다.


5.2. 단점[편집]


주전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단점이 있다. 사실 이건 전창진 사단[25] 모두에게 해당되는 공통적인 약점이다.

프로 감독이 되면서 이런 비판이 꾸준하게 제기 되었는데, 연차가 쌓여감에 따라 피해자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특히 포워드 라인은 체력부담에 이은 부상자가 늘어나고 있다.

전임 이상범 감독 시절부터 양희종오세근은 매시즌 부상병동이었는데 계속 출전하는 모습이 간간히 나오는 편이다.

1년차때는 문성곤, 2년차부터는 한희원, 김민욱, 김철욱이 그 대상이 되더니, 3년차엔 비주전 전체로 그 대상이 늘어났다. 자세히 예를 들자면, 15-16 시즌 양희종이 공격에서 커리어 로우를 찍을때에도 문성곤을 기용하지 않아 경기감각을 익히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는 16-17 시즌 양희종의 부상 당시 저 두 명이 맹활약을 함에 따라 포워드에 대한 적극적인 로테이션 기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본인의 손으로 입증하고야 말았다. 문성곤과 비슷한 조건을 갖춘 송교창이[26] 팀 내 소년가장을 맡으며 긴 출장시간을 가져가면서 차곡차곡 경험치를 쌓아 두 자릿수 득점, 기량발전상은 물론이요 20-21시즌 현재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스몰 포워드가 된 것과는 다르게 차세대 국대 3번을 벤치에만 썩혀둔다면서 시즌이 끝날 때까지 타팀팬들은 김승기 감독에게 십자포화를 쏟아부었다. 문성곤의 상무 입대 결정 기사에서도 대부분의 팬들이 '인삼을 탈출해라'라고 할 정도였으니... 결국 1년차때의 경험부족이 현재 두 선수의 평가를 최고의 스몰 포워드와 기복 심한 평범한 3&D 3번으로 완전히 갈라버린 것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단점은 앞서 서술한 포워드에만 국한되는 편은 아니라서, 공격 포텐셜이 터지기 시작한 김민욱과 좋은 피지컬을 갖춘 빅맨인 김철욱에 대한 기용시간이 적어져 시즌 중반 주전 센터진인 오세근, 사이먼이 과부하에 걸리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렇게 주전 몰빵이 모든 포지션에 걸쳐 이루어지다보니 2017-18 시즌에는 가드부터 센터까지 주전 몰빵농구만 줄기차게 나오면서 각 포지션별로 백업들은 사실상 기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선수들만 나열해도 스쿼드 1개가 충분히 나온다는걸 감안할 때 가뜩이나 올해도 또 D리그에 불참하는 상황이라 백업 선수들의 경기력 하락을 막을 수 없어 장기적인 관점에선 팀 전력의 크나큰 손실을 초래한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27] 그렇게 백업선수들을 제대로 육성하지 못한 결과로 오세근 시즌아웃 이후 5연패를 당하면서 PO 진출에 노란불이 켜지게 되었다.[28]

이러한 단점 때문에 농구 갤러리에서 2016-17 시즌까지만 해도 안티 팬들은 김승기는 선수빨로 운 좋게 우승한 감독일 뿐 명장이 아니다[29]라는 평가를 하고 있었다. 시즌 중반 키퍼 사익스 교체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팀플레이와 수비가 안되면 그걸 지도력과 전술로 극복할 생각을 해야지 기량 좋은 선수만 데리고 농구하려 한다는 의미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17 동아시아 챔피언스 대회에서도 선수들의 부족한 경기감각과 기본기와 근본없는 패스로 인한 턴오버가 발목을 잡아 홈에서 광삼패를 당하자 전략따윈 찾아볼 수 없는 선수빨 감독이라는 비난은 더욱 거세지는 중이며,[30] 주전 몰빵 그만시키고 제발 플랜 B 좀 만들라고 안양 팬이건 타팀 팬이건 이를 줄기차게 요구를 하고 있다. 특히 20-21시즌인 현재에도 양희종 부상의 여파로 3번 문성곤의 백업이 전무하다는 현실은 가드진의 외곽슛 저하와 역시너지를 일으켜 2라운드가 진행중인 현재 5할 승률이라는 스쿼드 대비 좋지 못한 성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2016-17 시즌 후반기부터는 식스맨들의 출전량을 늘리는 모습으로 피드를 조금씩 해 주는 같은 모습을 보여주더니[31] 또한 2017-18 시즌을 기점으로는 백업 선수에게 기회를 줄 수 있을 땐 확실히 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FA 당시 샐러리 캡 문제로 떠나보내야 했던 이정현전주 KCC 이지스 이적으로 전성현을 주전 슈터로 기용하여 성공했고, 2018-19 시즌에는 LG에서 연봉 높고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않았던 선수를 내주고 배병준을 영입해 군입대한 전성현의 공백을 메우는 슈터로 1라운드까지는 쏠쏠하게 잘 써먹고 있다. 특히 이 배병준이 1라운드가 종료된 시점에서 국내 선수 중 3점슛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신흥 타짜에 거상 기질까지 갖춘 듯.[32] 여하튼 몰빵농구라 비아냥을 들었던 과거와는 다르게 18-19 시즌부터는 꾸준히 수집해온 선수들로 로테이션을 적극적으로 돌리면서 상위권의 순위를 기록하고 있어, 선수빨에 대한 논란은 많이 줄어들었다.

2018-19 시즌 식물용병 취급 받던 미카엘 매킨토시를 지켜보았지만, 역시 달라진 것 없이 공격은 돌파로만 득점을 올리고 수비는 완전 꽝이라 외국인 선수를 2017-18 시즌 현대모비스에서 활약한 레이션 테리로 교체했다. 이어 단신 용병으로 좋은 활약을 보이던 랜디 컬페퍼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8주 진단을 받아 사실상 시즌 아웃되어,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서 뛰던 저스틴 에드워즈를 영입했다. 2018년 11월 26일 5%의 확률로 2순위에 당첨되어 변준형을 영입해 이재도의 군입대로 마땅한 가드가 없었던 팀에 큰 힘이 될 것이라 믿고 있고, 부산 kt와의 드래프트 후 1:2 트레이드로 박지훈을 영입해 가드진의 깊이를 더했다.

3라운드부터는 새로운 팀으로 다시 팀을 구성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작 그러면서도 18-19 시즌에는 성적 욕심보다는 식스맨 육성이 목적이라면서 말을 아꼈지만 오세근이 시즌아웃을 당해 그게 사실이 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오세근 의존도가 높았던 팀 구조를 이미 시즌 전부터 예측했고, 이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식스맨 육성을 그렇게 목놓아 외쳤던 듯하다.[33]

그리고 2019-20 시즌 초반 변준형은 주전 포인트 가드로 기용하고 있으며, 오세근의 체력안배를 해주면서 중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생각했던 것보다 가드진에서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지 않아 성적이 떨어졌었는데, 오히려 포워드진에서 강세를 보이고 오세근 부상 이후 연승을 달리며 애지중지하던 박지훈도 서서히 터질 기미가 보이면서 과거 오세근 의존도가 높았던 안양의 팀 체질을 개선시키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는 셈이니 다행. 상술되어 있듯이 오세근이 부상으로 이탈했지만 문성곤, 기승호, 양희종이 빈자리를 메워주고 김철욱이 센터로 수비에서 협력해 큰 어려움 없이 선두경쟁을 하고 있으며 이 기간 동안 변준형이 부상을 당하는 변수가 생겼으나 2020년 1월 8일부로 상무에서 이재도전성현이 전역해 약점이었던 볼 핸들러와 3점슈터 부재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전력 누수 또한 최소화할 수 있다. 특히 팀의 3점슛 성공률이 꼴찌 수준이라 상대팀이 지역방어를 쓰는데 이제는 그것을 깰 수 있어 걱정이 없다고 한다.

2019-20 시즌 종료 시점에서 볼 때, 로테이션을 통해 선수 출전시간을 분배해주는 것과 강한 압박 수비에 이은 스틸과 속공을 펼치는것은 좋지만 여전히 팀의 3점 성공률과 자유투 성공률이 많이 저조하다는 건 많이 아쉬운 점이다. 또한 2020-21 시즌에는 주로 이재도와 변준형으로 가드라인을 꾸리고 있으나 공격적으로 돌파와 득점에 치중해 상대 맨투맨 수비에 개인 능력이 농락당했다.

11월 8일 잠실에서 열린 서울 삼성과의 경기에서 여실히 보여줬는데, 자신들이 볼을 계속 끌기만 하다 죽은 패스를 내주고, 상대 압박에 스틸을 당하는 등 전혀 경기를 풀어내지 못했다. 앞으로 다른 팀들이 KGC를 상대로 더욱 적극적인 지역 방어를 사용할 빌미를 제공했다. 가드진에서 패스와 리딩을 더 가다듬어야겠다. 또한 얼클락한테 의존할 때 패했다. 그가 20득점이상 올렸을때 이긴적이 없고 10득점대를 올렸고 국내 선수들이 득점에 분발할때 이겼다.[34]

2021-22 시즌에도 주전 의존도에 대해서는 안양 팬들 사이에서도마 위에 오르던 문제이기도 했다. 특히 3라운드쯤부터 주축 선수들의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하면서 20점 차 이상의 리드를 4쿼터에 어이없이 역전패당하는 빈도가 많아지면서[35] 팬들도 김승기 감독을 성토하기도. 다행히 국가대표 브레이크 이후에는 1, 2라운드 때 보여주었던 활화산 같은 공격력이 다시 살아나면서 해결되긴 했고 식스맨들의 출전시간이 확연히 늘어난 만큼 D리그도 못 뛰는 팀 사정상 앞으로 식스맨의 집중 육성을 통해 주축 선수들의 부담을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2022-23시즌 고양 캐롯 점퍼스의 감독이 된 후 문제가 되는게 포워드진의 층이 다른 구단에 비해 얇다보니 이정현, 전성현, 디드릭 로슨 3명을 과도히 쓰면서 정작 성장해 주어야 할 조한진, 문시윤, 정해원 같은 백업선수들의 활약상이 미비한데 있다. 그나마 조한진이 두자릿수 이상의 득점을 기록해 주었지만 확실한 득점원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실정이다. 22-23시즌은 대기만성이라면서 6강에 올라가면 좋은 성적을 올리겠다고 한들 시즌 후 FA선수를 잡아 포워드 보강이 필수적이다.

전체적으로 지도하는데 있어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KGC 시절에도 팀을 2번이나 우승시켰고 모두가 최하위권을 예상했던 고양 캐롯도 4강이나 진출시켰기에 명장인 건 변함없다는 평가가 많다.

[1] 하지만 4강 플레이오프에서 동부에게 져 챔피언결정전 진출에는 실패하였다. 1위팀이 패배한 두번째 사례였다.[2] 사실 추일승 감독처럼 로테이션 농구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감독이 국내에서도 손에 꼽는 것도 문제이지만, 고양 오리온이나 안양 KGC처럼 스쿼드 2개를 여유롭게 꾸릴 수 있을만큼 팀 뎁스가 그리 넉넉한 팀이 없다. 모비스도 주전 - 백업의 기량차가 심해 양동근, 함지훈이 노예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니...[3] 게다가 추일승은 KTF, 오리온스에 부임했을 당시 피폐해진 스쿼드를 재건해야 하는 임무를 맡은 만큼 몇 년간의 시행착오를 겪었고, 프런트 생활과 전술 연구, 해외리그에 대한 지식 축적으로 선수를 보는 안목이 자연스레 높아져 두꺼운 스쿼드를 타 감독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구축할 수 있었다. 물론 KTF 감독 시절 마지막 임기에는 다시 스쿼드가 얇아지면서 결국 최하위를 기록하고 박수칠 때 물러나지 못했었지만...[4] 참고로 이상범 전 감독도 결과론적이지만 가용된 팀 뎁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주전 로스터 의존도가 굉장히 높았다는 점인데, 이쯤되면 전창진 감독의 자격정지 처분이 두고두고 아쉬울 상황이다. 적어도 전창진 감독은 혹사 논란에서 이렇다할 이야기가 없었던 편이었다는 점.[5] 사실 5라운드 당시엔 이정현이 아니었더라도 누구라도 과부하가 걸릴 수가 있었던게 백투백 연전 한 번을 포함하여 일정 자체가 정신나갔던 수준의 지옥의 원정 6연전이었던지라 그럴 법했다. 당시 이정현뿐만 아니라 주전 후보 할 것 없이 모두 5라운드 후반부엔 제 경기력이 떨어져가던 마당에 이런 핵폭탄급 일정에서 4승 2패를 기록했던 것이 용했을 정도였다.[6] 허재는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했지만 코치 경력 없이 바로 감독으로 출발하면서 실패했고 강동희 또한 선수와 코치로 모두 우승을 했으나 감독으로 불명예와 함께 영구제명을 당했다.[7] 이 날 데이비드 사이먼은 팀이 대승을 거둔 영향도 있지만 23분만 출장을 했다.[8] 이는 유재학, 추일승, 이상범, 유도훈, 문경은, 이상민에 이은 기록.[9] 원래 올스타전 브레이크 때 시술할 계획이었지만 팀 사정으로 미뤘다.[10] 실패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첫번째 시도때 주삿바늘이 혈관을 뚫고 가야 성공인데 계속 어긋나면서 혈관 시술에 실패했기 때문.[11] KBL에서는 149승 110패로 나와있지만 이는 협심증 수술로 2019년 2월 17일 울산 현대모비스와의 경기에서 손규완 코치가 대신 지휘해서 이긴 것과 2020년 1월 23일 안양 홈에서 열린 원주 DB와의 경기에서 징계로 인해 패한 기록이 포함된 것으로 김승기 감독 기록이 아니다.[12] 이는 대단한 결과로, 5시즌 끝나고 6시즌 맞이 할때 150승 감독이라는 뜻은 평균 30승 이상은 꼬박꼬박 올렸다는 뜻이다. KBL 역대로 첫 부임 후 45경기 기준을 포함할 때 이 기록을 가지고 있는 감독은 신선우 前 KCC, LG, SK 감독 / 전창진 前 DB, kt, 現 KCC 감독 밖에 없다.[13] 김승기 감독은 신선우 감독에 이어 2번째로 준우승 후 공백기 없이 새로운 팀에서 감독 커리어를 이어가는 감독이 되었다.[14] 시즌 전에 챔피언결정전 우승팀 감독이었음에도 불구 2년 재계약했던 것도 우승팀 감독치고 계약기간이 짧아서 말들이 많았는데, 실제로는 조건부 1+1이었다 보니 이러한 의혹 제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15] 5월 23일 두 명 모두 전주 KCC 이지스로 이적했다.[16] 플레이오프 승률 1위답게 팀이 어려운 상황속에서 4강으로 올라갈수있는 승기매직을 보여주었다[17] 사실 3차전에서 체력차이가 심해서 진거지 체력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으면 5경기도 갈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었다.[18] 이미 디드릭 로슨이 데이원이 해체되기 전에 DB로 이적했으며, 조나단 알렛지도 계약을 하지 않았다.[19] 김승기 사단으로 불리는 손규완 코치와 손창환 코치도 그대로 잔류했다.[20] 감독 대행 시절[코로나-19] 로 인한 시즌 조기 종료 및 플레이오프 미개최[21] 이 때문에 KBL D리그를 참여하지 않아 비주전의 경기 소화를 보장할 수 없음에도 재임 기간 동안 18-19, 19-20(코로나19로 인한 중도 중단) 시즌을 제외하고 꾸준히 4강 플레이오프 이상 진출했다.[22] 이상범의 경우 과거 자신의 실업 시절 대선배였던 김진과 전창진 그리고 대학 선배인 강동희 이전 원조 탱킹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 당시 리빌딩을 추진했던 김호겸 사무국장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극복했으나 알고보면 김승기의 존재로 인해 조금 묻친것도 있다. 물론 이상범은 DB 감독이 된 이후에는 KGC 시절의 문제점을 상당히 극복해냈지만 주축 선수가 빠졌을 때 무기력해지는 부분이 있다.[23] 현역 1970년대 감독은 2020년 데뷔한 조성원 감독을 빼면 문경은과 이상민감독이 있는데 감독 데뷔가 이들보다 감독데뷔가 늦었어도 승률이 월등히 높다. 179승 134패 승률 0.572으로 문경은 감독의 288승 241패 승률 0.544보다 2푼가량 높고 이상민 감독의 153승 214패 승률 0.417보다 16% 이상 높다. 더욱이 플레이오프 실패를 반복후 플레이오프 성공을 했던 두 감독들과 달리 김승기 감독은 사실상의 리툴링 시즌이던 2018-2019시즌과 정규리그 3위를 기록했으나 코로나-19로 플레이오프를 개최 안했던 2019-2020시즌을 빼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상술되어 있듯이 FA 선수를 안해도 트레이드로 선수를 잘 키워내며 성적과 팀을 만들어나가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평가다. 일부 네티즌들이 kt가 KGC인삼공사를 도와준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지만 실상은 서로간의 부족한 점을 채우려는 트레이드 이고 딱들어 맞는다는 의견이 많다. 김기윤,김민욱->이재도,김승원 트레이드도 그렇고 김윤태 한희원->박지훈,(변준형은 kt가 1순위 지명할때 박준영을 지명해 2순위 지명권이 있던 KGC가 지명했다.)트레이드로 재미를 보았고 박지훈은 상무에 가있고 kt로 내준 한희원 또한 상무로 갔고 김윤태는 허훈의 백업 가드로 활약중이라 어느쪽이 이득이 아니라 서로 윈윈이 되는 트레이드라고 평가한다. 2017-2018시즌이 시작될 때 강병현과 이원대를 LG로 보내고 기승호와 배병준을 받아온것 또한 소득이였다. 문성곤의 성장이 더디어 양희종의 백업포워드가 부족했던 터라 기승호를 영입했고 전성현의 군입대로 3점슈터가 부족했던 KGC가 LG시절 무명이었던 배병준의 잠재력을 보고 영입해 포텐이 터진것이다. 그러나 이 두 선수는 2019-2020시즌이 끝나고 FA로 현대모비스, 트레이드를 통해 SK로 이적했다. 그렇지만 FA 함준후를 오리온으로부터 영입해 기승호의 공백을 메웠고 우동현을 영입해 박지훈의 군입대 공백을 메웠다.[24] 김동광 감독은 1997시즌에 팀을 맡았었고 2004~2005시즌 감독 역임후 2006~2007시즌 성적 부진으로 경질성의 자진사퇴를 했었다.김인건 감독은 안양 SBS 감독으로 1999-2000시즌 부터 2001~2002시즌까지 3시즌을 역임했었다.안양 KT&G 감독 이상범 감독 역시 2008-2009시즌 전임 유도훈 감독의 일신상의 사퇴로 감독대행을 맡았고 정식감독으로 활약 후 2013-2014 시즌 중 2011-2012 창단 첫 플레이오프 우승 이후 재계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부진으로 경질되었다.[25] 전창진 사단은 김승기 외에도 강동희가 있다.[26] 드래프트 당시 문성곤과 송교창 모두 스피드와 수비력, 운동능력 기반 플레이의 장점이 있었다면 외곽슛의 부재로 인한 단점 등 비슷한 평가를 받았었다. 신장은 송교창이 5cm 정도 커서 차이가 꽤 큰편.[27] 17-18 시즌 원주 DB의 사례가 있었지만 당시 이상범 감독도 KGC 시절 초기 두 시즌은 본인 스스로가 실패라고 인정했을 정도이며 이 시기에는 선수들을 많이 다그쳤었으며 선수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었다고 본인이 직접 언급을 했다. 이상범 또한 2011-12 시즌에 오세근을 혹사시킨 전적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고. 본인이 직접 밝힌 것처럼 이상범 감독에 대한 갑론을박이 심한 이유가 안양 KGC 시절과 DB 프로미 시절의 코칭 스타일이 크게 대조되기 때문. 이상범 감독은 KGC의 감독에서 물러난 뒤 일본에 인스트럭터로 잠시 다녀온 것이 본인이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코칭 스타일로 바꾸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28] 3위부터 7위까지 승차가 고작 1.5경기긴 하지만 외인 선수들의 집단 부진과 득점력 저하, 거기다 원정 5연전 첫 경기에 5연패째를 당하면서 5라운드 전망도 그리 밝지는 못하다.[29] 당시 선동열은 주전 의존이 많아 백업 선수에게 기회를 주려는 생각이 없었다.[30] 다만 오세근의 국가대표 차출, 양희종의 부상, 외국인 선수들의 개인 사정으로 인한 미소집 등으로 인해 사실상 2진급 선수로만 경기를 치렀으며,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지나친 비난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3패 모두 경기 후반부에는 접전 양상이었다는 점이 그 이유. 농구라는 종목 특성상 선수빨 없는 감독을 찾기가 정말 어렵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유재학 감독 마저도 군입대 등으로 일부 주전이 빠진 시즌은 거하게 날려먹은 적이 있었을 정도로. 이는 농구가 상위 드래프티를 먹기 위한 탱킹이 가장 빈번한 종목인 이유이기도 하다.[31] 특히 이 피드를 잘 하던 버릇 덕분에 2016-17 시즌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 이정현양희종이 제안한 그 작전을 바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그 피드가 성공한 덕분에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선수단 장악력도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32] 물론, 안양 KGC인삼공사는 SBS 시절부터 트레이드를 정말 잘하기로 유명했던 팀이긴 하다. 몇 안 되는 흑역사가 장민국을 내주고 유성호를 받은 거긴 한데 이마저도 장민국을 받을 당시에 내준 김태술이 그 이후 제대로 망하면서 거의 묻힌 편.[33] 실제로 안양 KGC인삼공사는 10개 구단 중에서도 샐러리 캡 소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15-16 시즌은 샐러리 캡을 전부 다 소진했을 정도고, 16-17 시즌 이후 FA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오세근을 잡아두는 결정을 하면서 이정현을 샐러리 캡 문제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던 사실. 그리고 이정현은 이 샐러리 캡 문제 때문에 전주 KCC 이지스 입단 첫 해부터 그 활약을 하고도 연봉이 삭감이 되었을 정도였다. 안양 KGC의 지금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 샐러리 캡 소진율이 너무 높아서 스쿼드를 외부 영입으로는 감독 입맛대로 꾸리기에 상당히 제한된다는 것인데, 그 때문에 식스맨을 내부에서 육성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34] 2020-21 시즌 플레이오프 3차전 승리 후 승장 인터뷰에서 이를 두고 김승기 감독 본인은 포워드 외국인 선수를 뽑자고 고집을 부렸다는 것을 깔끔하게 인정을 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다. 그러면서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한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자세를 보이면서 확실히 이전하곤 많이 개선된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후술될 건강 문제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35] 특히 12월 21일 한국가스공사전, 1월 9일 SK전을 예시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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