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 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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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수행하는 역할과 요구되는 역량
3. 유명한 선수들
4. 파이널에 약하다?
5. 창작물에서


1. 개요[편집]


Point Guard

포인트 가드(영어: Point guard, PG)는 농구의 포지션 중 하나이다. 슈팅 가드와 함께 기본 가드를 이룬다. 통상적으로 1번이라고도 불리는데, 포인트 가드의 "포인트"는 점수가 아닌 분위기(포인트)를 의미한다.

2. 수행하는 역할과 요구되는 역량[편집]


  • 팀의 사령탑: 보통 팀에서 가장 전술적 이해가 좋은 선수가 포인트 가드를 맡는다. 감독의 전술적 지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식축구의 쿼터백과 비교되기도 한다. 이때문에 높은 BQ와 리더십,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감독이 계획한 작전에 따라 볼 순환을 매끄럽게 하는 역할이면서 볼을 제일 오래 가지고 있는 포지션이기 때문에 코트 상황과 전술에 대한 이해, 수행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드리블과 패스를 잘한다고 좋은 포인트 가드라고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볼 핸들러: 포인트 가드는 센터 혹은 포워드의 스크린 지원을 받아가며 공을 지켜야 한다. 따라서 공을 손으로 다루는 스킬이 뛰어나야 한다. 공격에 실패하고 공을 빼앗겼을 때 공을 빼내는 역할도 자주 수행한다. 가드라는 포지션 명칭 자체가 공격쪽이 가진 공을 상대 수비수에게서 지켜내는 포지션이란데서 유래했다.

  • 볼 배급: 포인트 가드는 아군에게 전술을 지시하며 패스로 공을 전달한다.

동네 농구하면서 풀 코트를 뛰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볼 운반이라는 임무를 과소평가하기 쉬운데, 28m의 길이에 달하는 풀 코트에서 공격을 시작할때 포인트 가드는 하프코트 바이얼레이션 룰에 따라 24초 중, 8초 안에 14m에 달하는 상대방의 코트 안까지 공을 들고 와야 한다. 당연히 상대방이 적극적인 전진수비로 방해할 수 있으며,[1] 이에 밀려서 하프코트를 넘지 못하거나 공이 뒤로 밀려나면 공격권을 빼앗긴다. 정식 경기에서 포인트 가드는 이런 볼운반만 4~50번 이상 하기 때문에 절대 작고 사소한 일이 아니다. 포인트 가드가 볼 운반과 볼 통제가 안된다면 그건 이미 포인트 가드가 아니다. 아무리 개인기가 좋은 선수라도 이게 안 되면 포인트 가드 역할을 할 수 없다.[2] 체구가 작은 선수들이 고질적인 부상이 적고, 포지션 특성상 주력만 어느 정도 갖추면, 나머지 운동능력은 그다지 큰 상관이 없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베테랑들이 많다.[3]


  • 체격 조건: 센터와 포워드와는 달리 장신 선수가 많지 않다. 큰 체격보단 스피드, 방향 전환, 손끝 감각과 같은 부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키가 작아야 더 유리한 부분도 있다. 키가 작은, 그러니까 농구 선수 평균 키에 못 미치는 선수가 자세를 낮추고 드리블하면 수비수가 공을 빼앗는 것이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균신장이 2m 내외인 NBA에서도 2m를 넘는 포인트가드는 많지 않고 190cm를 겨우 넘기거나 그보다 작은 선수들이 더 많이 보이는 포지션이다.

3. 유명한 선수들[편집]


분류:포인트 가드 분류 참조.

유명한 포인트 가드로는 역대 최고의 1번으로 꼽히는 쇼타임 레이커스의 주역 매직 존슨, 포인트 가드 스타의 원조 밥 쿠지, 트리플 더블 제조기 오스카 로버트슨, 뉴욕 닉스 황금기의 주역인 월트 프레이저, 배드 보이즈의 선봉장 아이제아 토마스, 통산 어시스트/스틸 1위 존 스탁턴[4], 케빈 존슨, 최초의 포인트 가드 출신 DPOY인 게리 페이튼, 앤퍼니 하더웨이, 통산 어시스트/스틸 2위에 뉴저지 네츠에서 백투백 파이널에 진출하고 댈러스에서 파이널 우승을 거머쥔 제이슨 키드[5], 백투백 시엠 수상자이자 피닉스의 세븐세컨즈 런앤건 농구를 이끈 스티브 내시 등이 있다.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에는 Point God라는 별명을 가진 크리스 폴이 NBA 최고의 포인트 가드 자리를 지켰으며, 그밖에 최연소 MVP 수상자인 흑장미 데릭 로즈,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전설 토니 파커, 보스턴 셀틱스 빅3와 함께한 라존 론도 등이 손꼽히는 포인트 가드였다. 2000년대 상반기가 슈팅 가드의 전성시대, 2000년대 하반기가 스몰 포워드의 전성시대였다면 2010년대에는 포인트 가드 춘추전국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난 선수들이 넘쳐났다.

2010년대 중후반 기준 역사상 최고의 3점 슈터 스테판 커리와 역사상 최고의 트리플더블러 러셀 웨스트브룩을 필두로 데미안 릴라드, 카이리 어빙, 카일 라우리, 마이크 콘리 등이 유명하며, 존 월, 아이제아 토마스 등의 선수들 또한 부상 전까진 올스타급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독보적인 No.1 슈팅 가드인 제임스 하든이 2016-17 시즌부터 사실상 포인트 가드 롤을 수행했지만 이후로는 듀얼 가드로 전향했으며, 2019년부터 MVP 컨텐더급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루카 돈치치도 2년차부터는 온전히 포인트 가드 롤을 맡고 있다[6]. 그밖에 켐바 워커, 벤 시몬스, 자말 머레이 등이 괜찮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상술했듯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스타급 선수가 가장 많은 포지션이며, 계속해서 가드 포지션 유망주들이 상위픽을 차지하고 있다. 2017년 이후 드래프트에서도 트레이 영, 자 모란트, 타이리스 할리버튼, 디애런 팍스, 라멜로 볼, 다리우스 갈랜드, 셰이 길저스알렉산더 등 유망한 포인트 가드들이 다수 배출되었다.[7]

대한민국에 프로농구가 출범하기 이전 시절은 남자농구의 사상 최초 아시아선수권(1969년 / 현재 FIBA 아시아컵)의 우승과 아시안게임(1970년) 금메달에 기여한 김인건, 1981년까지 국가대표팀 주전이었던 김동광,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 중 1명인 신동찬이 뛰어난 리딩가드였으며, KBL에서는 과거의 강동희, 이상민, 주희정, 신기성, 김승현, 양동근, 전태풍, 김태술, 현역으로는 박찬희, 김선형, 김시래, 이재도, 허훈, 이정현이 대표적인 포인트 가드이다.

여자농구는 프로농구 출범 이전에는 원조 '컴퓨터 가드' 박양계, 1984년 LA올림픽 은메달과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금메달의 주역 중 1명인 이형숙, WKBL에서는 과거의 전주원, 이미선, 김지윤, 최윤아, 이승아 현역으로는 박지현, 안혜지, 허예은 등이 있다.


4. 파이널에 약하다?[편집]


NBA에서 2010년대 듀얼 가드의 전성기가 열리며 슈퍼스타들이 넘쳐나는 포지션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파이널에서 토니 파커가 MVP를 수상한 이후로 오랫동안 파이널 MVP를 배출하지 못했고, 그 기간 동안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카와이 레너드 등 주로 스몰 포워드들이 이를 독식했다. 그로 인해, 포인트 가드는 파이널의 강한 수비 압박 속에서 제 기량을 펼치기 힘들다, 미드레인지 샷을 갖춘 포워드들이 그와 같은 무대에서 더 유리하다는 식의 주장이 한국의 NBA 팬 커뮤니티에서 횡행하기도 했으나, 이는 단지 파엠 수상자만을 살펴보고 성급히 내린 결론일 뿐이다.

이러한 주장의 가장 주된 근거는 21세기 최고의 포인트 가드인 스테픈 커리의 '3우승 노파엠'이었으나, 22년 파이널에서 끝내 파엠을 수상하며 이를 보기 좋게 깨뜨린 상태다. 애초에 커리의 역대 파이널 시리즈 평균 득점은 27.3점에 달하므로 파엠 수상과 상관 없이 커리는 파이널에서 강하면 강했지 결코 약하다고는 할 수 없는 선수다.

커리가 우승을 달성하고도 파엠 수상에 실패하여 특히 체면을 구긴 것이 파엠 투표에서 단 1표도 득표하지 못한 채 롤플레이어인 안드레 이궈달라에게 파엠을 빼앗긴 15 파이널이라 할 수 있는데, 막상 당시 커리의 기록을 살펴보면 평균 26.0득점, 5.2리바운드, 6.3어시스트로 상당히 준수한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이궈달라의 파엠 수상은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으며, 그러한 결과가 정당했는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적어도 '체구가 작은 포인트 가드 선수는 파이널에서 정규 시즌과는 차원이 다른 강한 수비를 만나게 되면 득점을 제대로 올리기 힘들다'는 식의 주장은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 파이널 MVP 수상자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몰 포워드 이궈달라의 평균 득점은 16.3점에 불과했으며, 상대 팀 1옵션이자 역시 당시 스몰 포워드로 뛰었던 르브론은 평균 35.8득점을 올렸으나 야투율은 39.8%로 매우 낮았다.

또한 르브론 제임스, 케빈 러브와 함께 2010년대 후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빅 3를 구성한 선수이자 리그의 대표적인 듀얼 가드형 포인트 가드인 카이리 어빙의 경우 자신이 경험한 두 번의 파이널에서 각각 평균 27.1점, 29.4점을 기록하며 큰 무대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는 득점 능력을 뽐낸 바 있다. 특히 2016년의 파이널 시리즈에서는 시리즈 전적 1-3로 뒤지게 된 다음의 엘리미네이션 게임 3경기에서 무려 평균 30점을 퍼부은데다가, 7차전에서는 상대 에이스 커리 위로 위닝 샷을 꽂아넣으며 당시 파엠 르브론 못지 않게 우승에 혁혁한 공헌을 하기도 했다.

2021년 드디어 파이널에 진출한 크리스 폴의 경우도, 비록 우승과 파엠 수상은 실패했으나, 평균 8.2어시스트에 더해 야투율 55%라는 높은 효율로 평균 21.8점을 기록하며 전성기 못지 않은 기량을 과시한 바 있다. 22 파이널 준우승 팀 보스턴 셀틱스의 주전 포인트 가드 마커스 스마트만 해도 비록 커리를 제어하는 데는 실패했으나, 공수 양면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15.2점 5.0어시스트 1.5스틸을 기록했다. 이와 같이 듀얼 가드 전성기에 펼쳐진 역대 NBA 파이널 시리즈의 실제 기록와 흐름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포인트 가드들이 파이널에서 실력 발휘를 못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함을 알 수 있다.


5. 창작물에서[편집]


  • 슬램덩크
    • 북산
    • 능남
      • 백정태
      • 윤대협[스윙맨][8]
    • 상양
    • 해남대부속고
    • 풍전
    • 산왕공고
      • 이명헌
      • 정우성[스윙맨][9]





포지션 파괴가 일어난 시대적 배경상 일부 선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슈팅 가드도 병행하는 듀얼 가드들이 많다.
  • 지상고등학교
    • 진재유
    • 정희찬[듀얼가드][10]
    • 이현성 감독[듀얼가드][선]
    • 서인진 코치[듀얼가드][선]
  • 조형고등학교
    • 박병찬[듀얼가드]
    • 이초원[듀얼가드]
    • 이규후 감독[선]
  • 원중고등학교
    • 조재석[듀얼가드]
    • 박교진[듀얼가드]
  • 신유고등학교
  • 진훈정보산업고등학교
  • 장도고등학교
    • 이규[스윙맨]
    • 최종수[스윙맨]
    • 주찬양[듀얼가드]

[1] 슬램덩크에서 산왕공고의 존 프레스가 바로 이 상대 포인트 가드를 적극적으로 압박하는 수비법이다.[2] 상대를 제치는 드리블과 볼을 뺏기지 않고 간수하는 드리블은 또 다른 문제다.[3] 실제로 리딩 위주 포인트 가드 중 운동능력이 처지는 선수들도 많다. 초창기엔 패트릭 유잉과, 이후 레지 밀러와 함께 했던 191cm 포인트 가드 마크 잭슨은 가드치고 거북이처럼 느린 선수였는데, 가드치고 좋은 덩치를 이용해 포스트업을 적극 활용, 쏠쏠히 재미를 봤다. 다만 불스 시리즈에서 필 잭슨 감독이 201cm에 달하는 피펜을 붙히는 통에 피를 봤다.[4] 그의 별명부터 "The Point Guard". 현역 당시 포인트 가드 그 자체 였다고 평가를 받았다.[5] 그는 현역 당시 퓨어 포인트 가드 그 자체 였다고 평가를 받았다.[6] 사이즈로는 스몰 포워드급 이지만, 공격에서는 완전히 포인트 가드 롤을 수행하고 있다.[7] 자 모란트는 2년차 플레이오프에서 컨퍼런스 1위인 유타 재즈와 대등하게 싸웠을 정도이고, 트레이 영은 뛰어난 활약으로 팀을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이끌었다.[스윙맨] A B C D 이규와 최종수 둘 다 슈팅 가드스몰 포워드도 병행하는 올라운더다.[8] 포워드였지만 이정환을 상대했을 때 전술적인 이유로 포인트 가드를 본 케이스이다. 그래서 작중에서도 윤대협의 재능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가 아닐까 하는 말이 나왔고, 슈퍼슬램 게임에서는 아예 포인트 가드로 설정되었다.[9] 미국 진출 이후 포인트 가드로 출전해 송태섭을 상대한다.[듀얼가드] A B C D E F G H 슈팅 가드 병행[10] 중학생 때는 포인트 가드만 했다.[선] A B C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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