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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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동현
코치
수석 코치
양동근 ·
코치
김도수 · 맥클린 · >

D리그 감독 겸 스카우트
박구영
스태프
전력 분석팀장
박상현 ·
총괄 트레이너 정태중 ·

수석 트레이너
이상선 ·

트레이너
이재빈 · 한동우 ·

통역
이주윤

매니저
오인준 ·

기사
장두수
가드
3 박재한 · 5 김지완 · 7 서명진 파일:부상 아이콘.svg · 8 박무빈 · 9 김현수 · 21 김태완 · # 옥존
포워드
2 신민석 파일:부상 아이콘.svg· 4 알루마 · 11 이우석 · 12 함지훈 [[주장|

C
]] · 17 전준우 · 20 박준은 · 23 최진수 · 24 김영훈 · 25 박상우 · 30 김국찬
센터
1 김준일 · 13 김현민 · 31 장재석 · 44 프림
군 입대
2023년 입대}}} 김동준 파일:국군체육부대 부대마크.svg · 조한진 파일:국군체육부대 부대마크.svg
타 한국프로농구 구단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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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학의 수상 및 감독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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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07
2010
2013
2014
2015
2019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총감독

ULSAN HYUNDAI MOBIS PHOEBUS

파일:유재학2020-21.png

유재학
兪載學

출생
1963년 3월 20일 (61세)
파일:서울특별시 휘장.svg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80cm|체중 80kg
직업
농구선수(포인트 가드 / 은퇴)
농구감독
실업입단
1986년 기아자동차 농구단
소속
선수
파일:기아 로고(1986-1994).svg 기아자동차 (1986~1991)
감독
파일:부천 대우 제우스.jpg파일:부천 신세기 빅스.jpg파일:external/sportsmuseum.co.kr/skbigs03.gif파일:부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jpg
부천 대우-신세기-SK빅스-전자랜드 (1998~2004)
파일: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엠블럼.svg 울산 모비스-현대모비스 피버스 (2004~2022)
파일:Korea Basketball National Team.png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2010~2014)
코치
파일:연세대학교 문장.svg 연세대학교 (1993~1997)
파일:부천 대우증권 제우스.jpg 부천 대우증권 제우스 (1997~1998)
프런트
파일: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엠블럼.svg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2022~ / 총감독)
행정
파일:대한민국농구협회 엠블럼.svg KBA (2018 / 경기력향상위원회 기술위원장)
파일:대한민국농구협회 엠블럼.svg KBA (2018~2021 / 기술이사[1])
파일:대한민국농구협회 엠블럼.svg KBA (2021 / 이사)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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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기계 유씨
종교
개신교
학력
상명초등학교(졸업)[1]
용산중학교 (졸업)
경복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경영학 / 학사)
가족
아내 김주연, 아들 유선호, 딸 유선아

1. 개요
2. 선수 시절
3. 감독 생활
3.1. 퇴진 및 총감독 이동
4. 100승 단위 달성 경기
4.1. 통산 감독 성적
4.2. 감독 스타일
5. 논란 및 비판
6. 이야깃거리
6.1. 징크스
6.2. 신인 드래프트에서
6.4. 전준범 욕설 사건
6.5. 기록원 퇴장 사건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농구인. 선수 시절에는 대한민국 농구를 대표하는 천재 포인트 가드였고, 은퇴한 후에는 지도자로서 KBL을 대표하는 명장으로 자리잡은 인물이다. 2021년 기준 KBL 감독 통산 승수 1위에 KBL 단일 구단 최장수 감독[2][3]으로 그야말로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의 훌륭한 반례라고 할 만 하다. 현대모비스와 3년 재계약에 성공해 2023년 5월 31일까지 임기를 마치면 19개 시즌 동안 한팀을 이끌어 신치용 진천선수촌장에 이어 역대 프로스포츠 단일팀 역임 2위 기록을 세우게 되었는데 2022년 6월 20일 감독용퇴를 선언해 20여년간의 감독생활을 마무리지었다.

별명은 현역 시절에는 코트의 여우[4], 감독 시절에는 만 가지의 수를 가지고 있다 해서 만수, 최근에는 배우 송일국의 둘째 아들인 송민국을 닮았다고 해서 민국이 추가되었다.민국이 닮았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다. 또 개그맨 박규선, 배우 배도환을 닮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2. 선수 시절[편집]


상명국민학교[5] 3학년 때 처음 농구에 입문했다. 농구를 좋아하던 유재학이 매일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튀기고 노는 것을 보고 농구부에서 그를 입문시킨 것이었다. 이 때 같이 들어간 친구가 지금도 절친한 벗인 전창진. 국민학교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모교의 소년체전 3연패라는 위업 달성을 이끌었다. 소년체전은 5학년부터 참가가 가능한데, 유재학의 재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4학년인 그를 5학년으로 속여서 출전시켰다고 한다.

파일:external/www.basketkorea.com/bb.jpg
절친인 전창진과 함께

용산중학교에 들어갈 때, 워낙 실력이 좋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농구를 못 하게 될 뻔했다. 결국 용산중 관계자가 아버지가 내건 조건을 수락하고 농구를 다시하게 되었는데, 그 조건은 체벌 금지, 공부 시간 보장이었다. 그래서 유재학은 맞지도 않고, 남들 훈련할 때 나가서 공부도 했다. 대개는 저러면 선배들이 싫어했겠지만, 유재학이 나가면 이기는데 싫어할 수가 없었다. 중학교 때, 전국대회 39연승을 하면서 중학농구를 씹어먹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로 진학을 해야 했는데, 정상적인 경로라면 용산고등학교로 가야 했지만,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고 싶었고, 또 만난 사람들과 계속 농구를 해야 한다는 지겨움 때문에 선배들이 거의 없던 경복고등학교 진학을 우겨서 결국 진학하게 된다. 그리고 경복고에 가서는 또 다시 경복고를 이끌고 고교 대회를 모조리 제패하면서 당시 흔들렸던 경복고 농구를 완전히 재건시켰다.

이제 대학에 갈 때가 되자, 이 천재 가드의 진로는 경복고의 후원자였던 고려대학교였다. 하지만 유재학은 "난 어릴 때부터 연세대의 파란색 유니폼이 맘에 들었다." 라면서 고교 졸업과 동시에 군 입대도 불사하며 고집을 부린 끝에 연세대학교 입학을 할 수 있었고, 김동원 감독에게 농구 수업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연세대는 유재학의 입학과 함께 날개를 달았다. 이 때도 역시 유재학은 천재 가드의 명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파일:대통령배 1986년 농구대잔치 기아자동차 농구단 창단 후 첫 경기.jpg

대학도 졸업할 때가 되자 실업팀으로 가게 되었는데, 당시 막 창단한 기아자동차로 진로가 결정되었다. 농구대잔치의 끝물까지 이어진 신생팀에 대한 특혜로, 기아자동차는 그해 한 대학교의 졸업생 전부와 다른 대학의 졸업생 2명을 우선지명할 수 있었는데, 그들의 선택은 중앙대의 졸업생 전부와 연세대 졸업생 중 유재학, 정덕화였다. 처음에는 호흡이 맞지 않았지만, 당시 1급 선수들을 다 모았던 기아자동차가 농구대잔치의 주역이 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87-88 시즌 준우승을 시작으로, 1988-89 시즌 마침내 우승의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재학은 이 시즌의 MVP에 올랐다.

그런데 이 거칠것 없던 천재 가드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부상이었다. 무릎을 다치면서 고생하기 시작한 것. 당시 스포츠 의학의 개념이 없던 대한민국에서는 일단 경기가 중요하다고 스테로이드 주사(일명 대포주사. 데포메드롤)를 맞춰서 임시로 뛰게 했다. 그리고 2차례 무릎 수술을 대한민국에서 받았는데,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무릎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다. 결국 일본에 건너가 다시 수술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에서 받았던 두 차례 수술은 한 마디로 엉뚱한 곳을 잘라낸 오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다시 받은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유재학을 괴롭히던 무릎 통증도 멎게 된다. 하지만 이 때 유재학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 일본 병원에서 짜준 재활 프로그램을 끝까지 이행하지 않고 조기에 종결시킨 것. 통증이 사라지자 다 나았다고 생각하고 조기 복귀하면서 무릎이 다시 탈이 나 버렸다. 여기에 당시 기아자동차의 연세대와 중앙대 출신 선수들 간의 갈등과 그로 인한 그의 평생의 스승인 방열 감독의 퇴진, 그리고 아픈 무릎 상태와 그의 빈 자리를 차지하던 후배 강모 씨의 존재는 결국 유재학의 조기 은퇴를 가져왔다. 결국 유재학은 28세의 젊은 나이에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모교인 연세대학교의 코치로 부임했다.

이때문에 유재학은 허재,강동희,김유택,한기범등 기아자동차 실업농구 최전성기를 이끈 선수였음에도 하필 마지막 승부세대라 불리는 90년 농구대잔치 시작 직전에 은퇴했기 때문에 유독 농구팬들에게 선수로써의 이미지가 옅은 편이다. 유재학이 커리어를 조금만 연장할 수 있었다면 강동희의 실업농구 커리어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며 올드 농구팬들이 알고 있는 허동택 트리오도 그 이전에 강동희가 아니라 유재학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3. 감독 생활[편집]


스타플레이어로 명성이 높아서 그런지, 연세대학교는 유재학을 정식으로 교직원에 임명해 주며 신분을 보장해 줬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대우와는 상관없이 의외로 이 시절은 고달팠던 듯한데 천재 가드이자 스타선수에서 초보 코치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했기 때문.[6] 그렇게 연세대에서 4년을 코치로 일하다가 연세대학교를 연고 학교로 하여 새로 창단되는 대우증권 팀의 코치로 들어갔다.

이미 연세대 코치 시절에 지도자로서 공부도 충실히 했고, 현역 시절 워낙 뛰어난 포인트가드였던 유재학은 곧바로 사실상의 감독 역할을 했다. 최종규 감독의 지원 아래 훈련 지도나 전술을 관장하기 시작한 것. 그렇게 2년을 또 다시 감독 수업을 받다가 마침내 1998-1999 시즌, 34세의 나이에 정식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모기업이 신세기통신으로, SK텔레콤(신세기와 합병)으로, 전자랜드로 바뀌는 와중에도 감독직을 계속 지켰다. 그런데 인천에서의 세월은 엄밀히 말하면 성공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다. 6강 PO에는 종종 들었지만, 4강 PO에는 든 것은 딱 한 번뿐이었고 꼴찌도 한 차례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 인천 팀은 유재학이 떠난 후 더 막장으로 흐르면서 유재학이 명장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는 했다. 후술할 "유재학 다음은 유도훈"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

2004년 충격적인 뉴스가 나오는데, 당시 전자랜드와의 계약이 만료된 유재학을 울산 모비스가 2억 3천만원의 연봉을 주고 감독으로 영입했다는 것. 전자랜드 시절에 4강 이상의 경력이 거의 없었던 그가 일약 감독 최고 연봉자가 되자 오버페이라는 평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유재학은 이를 실력으로 잠재웠다. 박수교-최희암을 거치면서 막장이 되어 버렸던 모비스를 단숨에 재건한 것이다. 그리고 박수교-최희암은 유재학이 떠난 전자랜드를 차례로 맡으면서 [7] 그리고 박종천 때 또 한 번 개그랜드를 찍은 후 2010년에 취임한 유도훈 감독이 다잡았다. 그래서 전자랜드 팬들은 유재학 다음 감독이 유도훈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첫 시즌은 쉬어간 후, 2005-06 시즌에 크리스 윌리엄스양동근을 앞세워 정규시즌 1위라는 이변을 연출했다. 5라운드까지는 삼성, 동부는 27승 18패, 모비스가 28승 17패로 역대급 평준화가 이루어진 시즌이었는데 6라운드에서 8승 1패를 하면서 삼성과 공동 1위 상황에서 삼성을 밀어내고 남은 6경기를 모두 이겼다. 참고로 모비스는 6연승 이전에 최다연승이 겨우 4였는데도 1위를 기록했었다. 비록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서울 삼성 썬더스에게 간발의 차로 4게임을 모두 지면서 시즌을 끝냈지만, 모비스의 변화는 모두가 주목했다.[8] 그리고 2006-07 시즌에 다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고, 이번에는 챔피언결정전에서 패하지 않고, KTF와의 접전 끝에 4승 3패로 첫 통합 우승에 성공했다.어쨌든 KBL 공식 기록상으로 모비스의 10년만의 우승이었다.[9]

양동근의 군 입대와 외국인 선수 제도 변경으로 인한 크리스 윌리엄스의 이탈, 그리고 대체 외국인 선수 선발 실패로 2007-08 시즌에는 6강 PO에 들지 못하며 실패하는가 싶었지만,[10] 2008-09 시즌에 주목받지 못하던 김현중, 함지훈 같은 선수들을 조련하며 정규시즌 1위라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2005-06 시즌에 자신들의 발목을 잡았던 안준호 감독의 서울 삼성 썬더스에게 지며 정규시즌 1위팀이 사상 처음으로 챔피언 결정전에 오르지 못하는 흑역사가 되고 말았다.

절치부심한 유재학은 2009-10 시즌에 다시금 전력을 재정비하며, KT와의 치열한 접전 끝에 정규시즌 1위를 지키고,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전주 KCC 이지스를 누르고 2번째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 때의 우승으로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그러나 본인과 양동근의 아시안게임 차출 및 함지훈의 입대로 2010-11 시즌은 8위에 그쳤지만, 2011-12 시즌은 2연승이 최다임에도 연패도 3으로 짧게 마무리하여 18승 24패 6위로 나름 잘 버텼다. 결국 함지훈 전역 이후 7연승 포함 막판 11승 1패 를 하며 5위를 기록하였고 KCC를 3:0으로 박살내면서 4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기록했다. 2012-13 시즌에는 우승후보로 평가받았음에도 같은 상위권 팀 SK, 전자랜드에 덜미를 잡혔지만 서울 SK 나이츠에 가려서 그렇지 41승의 성적으로(막판 13연승) 정규시즌 준우승을 차지했고, 4강 플레이오프에서 전자랜드를 3대 0으로, 챔피언결정전에서 정규시즌 1위 SK의 드랍 존을 완벽하게 박살내면서 4:0의 전적을 기록하며 KBL 역사상 두 번째로 전승우승 챔피언이 되었다.

그리고 2013년 아시아 농구선수권 대회에서 만가지 수를 맘껏 펼치면서 국가대표팀을 4강까지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당초 입상에 비관적인 의견이 많았으나 경기마다 절묘한 작전과 엔트리 선수들을 전원 적절히 기용해 다른 나라들을 경악하게 만들며 승승장구. 4강에서 홈팀 필리핀에게 패했으나 3·4위전에서 대만을 꺾고 3위에 입상하며 대한민국을 16년만에 세계선수권 대회로 이끌었다.

2013-14 시즌에도 모비스의 상승세는 여전해서 정규시즌 17연승이란 대기록을 세웠고, 양동근과 김시래의 공백을 당시 무명이던 이대성이 잘 메우면서 괜찮은 성적을 기록하였지만, 시즌 53호 경기이자 마지막 LG전을 놓치면서 득실차에 밀리는 바람에 10연승도 끊기고 다시 2위가 되었다. 그러나 2013-14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LG를 상대로 4승 2패로 우승, 역대 두 번째로 2년 연속 챔피언 자리에 오르며 감독 개인 통산 4회 우승을 달성하며 최다 우승 감독이 되었다.

시즌 후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다시 맡았는데 2014 FIBA 농구 월드컵 스페인에서는 리투아니아 등 세계적인 강호에게 연달아 털렸다. "세계의 벽을 실감했다. 선수들이나 지도자들이 새로운 것을 느끼고 경험했다. 충격적일 정도"라고 인터뷰했다.## 본인에게도 엄청난 충격이었던 듯. 그러나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이란을 꺾고 남녀 동반 금메달을 차지하며 4년 전의 아쉬움을 씻어낼 수 있었다.

2014-15 시즌은 서울 SK 나이츠, 원주 동부 프로미와 마지막 접전 끝에 5년만의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였고, 시즌 종료 후 모비스와 5년 재계약에 합의하였다. 플레이오프 4강에서 창원 LG 세이커스를 3승 2패로 눌렀고 결승에서는 원주 동부를 4:0으로 이기며 3연패의 업적을 쌓았다.

2016-17 시즌을 앞두고 진행된 드래프트에서는 전년도 정규리그 2위, 승률 1위[11]를 찍고도 변경된 제도[12] 덕에 로터리픽 추첨에 참여하여 무려 1픽을 뽑아버렸다! 역대급 대어인 이종현을 잡을 수 있게 된 것. 유재학 감독은 팀 우승, 국가대표팀감독 우승때보다 더욱 더 큰 제스처를 보이며 기쁨을 나타냈다.[13]

파일:유재학감독 400승달성.jpg

그리고 2016년 12월 17일[14] 부산 kt전을 승리하면서 단일팀 400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되었다.

2018년 3월 3일 서울 삼성 썬더스와의 경기에서 97대93으로 승리하면서 KBL 최초로 600승 감독이란 타이틀을 얻는데 성공한다.[15] 그것도 14년간 모비스 한팀에서 450승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였다. 통산 600승까지 연도별 기록과 구단별 상대전적 [16]

파일:만수 유재학 감독 모비스 V7.jpg

2018-19 시즌 팀의 통합우승과 동시에 감독 통산 여섯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2019년 11월 10일에 원주 DB전에서 승리하면서 현대모비스에서만 500승을 올리는 기록을 달성했다. 총 823경기에서 500승 323패로 승률이 0.608이다. 2004-05 시즌부터 2019-20 시즌까지 16개 시즌 동안 평균 32.8승을 올린 셈이다. 한 팀을 이끌며 이만큼 성적을 낸 감독은 없으며 상술되어있듯이 단일팀 최장기 역임 감독이다.

2020년 4월 21일 공식적으로 현대모비스와 3년 재계약에 성공해 오는 2023년 5월 31일까지 현대모비스의 지휘봉을 잡을 예정이다. 3년의 임기까지 추가로 마칠 경우 유 감독은 프로농구 최초로 한 팀에서 19개 시즌을 보내는 감독이 된다. 기사

2004년 부임 후 16년간 동안 모비스 왕조를 이끌며 여섯 차례 챔피언을 합작했던 양동근이 은퇴를 선언해 그 공백을 어떻게 메꾸느냐가 관건으로 보인다. 외국인 선발부터 공격력이 좋은 선수를 뽑았는데 NBA 출신 숀 롱과 10개 구단 중 가장 먼저 계약을 했다.

5월 11일 고양 오리온에서 FA로 풀린 장재석을 5년 연봉 5억 2천만원의 조건으로 영입했다. 직전 19-20 시즌에 이대성과 라건아를 전주 KCC에 내주고 김국찬과 박지훈을 영입해 리빌딩에 들어갔는데, 함지훈이 노쇠화로 오랜 시간 뛸 수 없게 되자 FA로 장재석을 영입했다. 높이 보강과 동시에 이종현의 내구성까지 커버하는 안성맞춤의 영입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 오리온의 이현민, KGC의 기승호, DB의 김민구를 한꺼번에 영입해 양동근의 은퇴 공백을 메우고 전 포지션 보강을 해 알찬 오프시즌을 보냈다.

2020년 11월 11일에 다시 빅딜을 단행했는데, 본인이 1순위로 뽑은 이종현을 김세창과 함께 오리온으로 보내고 최진수와 강병현을 영입했다. 또한 신인 1라운드 우선지명권을 받았다. 그리고 김상규를 KCC에 내주었다. 장재석이 활약하면서 출전 시간을 얻지 못했던 이종현으로 장신 포워드 최진수를 영입해 현대모비스 팬들의 평가는 좋은 편. 그리고 시즌을 2위로 마친 뒤 4강에서 KGC에게 3전 전패를 당하면서 마감하고 말았다.

2021-22 시즌 2라운드 초반인 11월 12일에 개최되었던 창원 LG 세이커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700승 달성에 성공했다.


3.1. 퇴진 및 총감독 이동[편집]


파일:유재학 모비스 감독의 성적.jpg
2022-23 시즌을 앞두고 감독 자리를 수석코치인 조동현에게 넘기고 본인은 총감독 자리를 맡게 된다. “앞으로 선수 육성보다 차기 감독 및 코칭스태프 육성과 지원을 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지금까지 지원해준 구단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총감독을 맡겠다” 고 하면서 경기 운영, 선수단 운영 관련 코치 육성 역할을 맡는다.

감독 자리를 물러난 것에 대해 본인은 잠시 숨을 좀 돌리고 싶었다고 언급했고 99즈 선수들이 단체로 군대를 가는 23-24 시즌부터 후임 감독에게 맡기면 곤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22-23 시즌 직전에 물러났다고 밝혔다. # 다만 인터뷰에 따르면 당분간 1년 정도 가족들이 있는 미국에서 휴식을 가진뒤 이후 거취 문제에 대해서 가족들과 상의하겠다고 하였으나 구단의 지속된 요청에 따라 7월 NBA 서머리그 관전 이후 7월 말 한국으로 돌아와서 당분간 모비스 구단 총감독으로 근무하면서 안식년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4. 100승 단위 달성 경기[편집]


소속팀
시즌
승리
상대팀
날짜
경기장
파일:external/sportsmuseum.co.kr/skbigs03.gif 인천 SK 빅스
2002-03
100승
파일:서울 삼성 썬더스 엠블럼(2004~2011).svg 서울 삼성 썬더스
2002년 12월 7일
잠실실내체육관
파일:울산 모비스 피버스 엠블럼.svg
파일: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엠블럼.svg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2005-06
200승
파일:대구 오리온스 엠블럼.svg 대구 오리온스
2006년 2월 15일
대구실내체육관
2009-10
300승
파일: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영문 엠블럼.svg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2009년 11월 4일
울산동천체육관
2012-13
400승
파일: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엠블럼.svg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2012년 12월 18일
2014-15
500승
파일:서울 SK 나이츠 엠블럼.svg 서울 SK 나이츠
2015년 2월 15일
2017-18
600승
파일:서울 삼성 썬더스 엠블럼.svg 서울 삼성 썬더스
2018년 3월 3일
잠실실내체육관
2021-22
700승
파일:emblem-sakers@2x.png 창원 LG 세이커스
2021년 11월 12일
창원실내체육관


4.1. 통산 감독 성적[편집]


시즌
소속팀
경기수


정규시즌
플레이오프
1998-99
인천 대우-신세기-SK빅스-전자랜드
45
27
18
3위
6강 PO
1999-00
45
15
30
10위
-
2000-01
45
23
22
5위
6강 PO
2001-02
54
30
24
4위
6강 PO
2002-03
54
23
31
7위
-
2003-04
54
32
22
4위
4강 PO
통산
297
150
147
0.505
-
시즌
소속팀
경기수


정규시즌
플레이오프
2004-05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54
24
30
7위
-
2005-06
54
36
18
1위
준우승
2006-07
54
36
18
1위
우승
2007-08
54
14
40
9위
-
2008-09
54
35
19
1위
4강 PO
2009-10
54
40
14
1위
우승
2010-11
54
20
34
8위
-
2011-12
54
29
25
5위
4강 PO
2012-13
54
41
13
2위
우승
2013-14
54
40
14
2위
우승
2014-15
54
39
15
1위
우승
2015-16
54
36
18
2위
4강 PO
2016-17
54
28
26
4위
4강 PO
2017-18
54
33
21
4위
6강 PO
2018-19
54
43
11
1위
우승
2019-20
42[코로나-19]
18
24
8위
-
2020-21
54
32
22
2위
4강 PO
2021-22
54
30
24
4위
6강 PO
통산
960
574
386
0.598
V6
총계
1257
724
533
0.576
V6


4.2. 감독 스타일[편집]


개인보다 팀을 중요시하는 팀 시스템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팀 내 자체적인 규율도 엄격한 편이며 이를 어기는 선수는 국내선수고 외국선수고 구분없이 얄짤없게 처리한다.

강력한 규율과 함께 농구계의 거스 히딩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 유래는 혈연-지연-학연으로 이어지는 한국 스포츠계의 현주소를 감안하면 파격적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대학 대선배격인 허정무와도 같다.

이러한 팀의 엄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져오고 있기 때문에 튀는 성향의 선수들이 입단하면 마찰도 상당한데 적응하는 경우도 있지만 퇴출 등 나쁜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 훈련시간은 짧지만 고강도로 집중력 있게 진행하는 편이다. 팬들에게 욕을 많이 먹는 국내농구 특유의 산악훈련에 매우 비판적이다. 산을 뛰는 시간에 차라리 코트를 뛰게 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17]

다양한 전략과 상황에 맞춰서 전략을 짜는 것 때문에 '만가지 수를 가지고 있다'는 뜻에서 만수(萬手), 또한 유재학 감독은 학연을 잘 안 본다. 유 감독과 10년간 호흡을 맞췄던 임근배 코치는 경희대학교 출신으로 유재학과는 학연이나 일면식이 원래는 없었다.[18] 선수들도 마찬가지라서 특별히 명문대를 선호하는 편도 아니다. 드래프트에서 상명대, 조선대, 목포대와 같은 비주류 대학 선수들을 선택하는데에 거침없는 편이다.

유기적인 공격과 수비를 지향하다보니 선수들 한 두 명이 교체되거나 부상당하더라도 전력 누수가 없게 2진급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도 상당히 비중을 두는 듯 하다. 비시즌에 패스나 드리블 훈련을 시키는 것은 유명하고, 스텝백 3점까지 연습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팀이 오랫동안 상위권에 머물다 보니, 상대적으로 드래프트에서 하위픽을 자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관계로, 강제로라도 선수들의 기량을 올려야 지향하는 농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인 듯 하다. 사실, 아무리 하위픽 선수들이라고 해도 명색이 프로인데, 그런 기본기조차 갖추지 못한 선수들이 대부분인 게 국내 대학농구의 현실인 것이 더 문제지만.

다만 2016-17 시즌부터 부각되는 단점이라고 한다면 주전들의 체력관리이다. 팀 순위 측면으로만 보면 크게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이전부터 양동근의 출장시간이 어마어마해 김종근, 김수찬으로 비견되는 백업 가드진의 성장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여, 말그대로 개막장이 되어버릴뻔했다. 그나마 중위권 순위 싸움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찰스 로드, 마커스 블레이클리, 함지훈이 멱살을 잡고 끌어줬기에 망정이지 물론 이것은 동부, 전랜의 삽질이 훨씬 더 크긴 했다 가드진은 말그대로 처참함 그 자체였다.

이후 양동근과 이종현이 복귀하긴 했지만, 양동근은 부상 후유증과 노쇠화로 인해 득점력의 기복과 대인 수비 약화 등의 단점이 생겨났으며, 아직 프로 경기 체력은 모자라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종현이 풀타임으로 내내 혹사당하는 와중에도 팀컬러를 해친다는 이유로 전반기에 팀을 먹여살려준 찰스 로드를 버린 결과 이종현은 스탯이 점차 까이게 되어 시즌 블록 기록도 데이비드 사이먼에게 1위를 내주고 말았다. 결국 4강 PO에서도 안양 KGC에게 3연패로 스윕을 당해 최근 2년간 4강 PO 6연패라는 평소 이미지에 걸맞지 않은 단기전 성적을 보여주고 말았다. 함지훈도 미칠듯한 혹사로 인해 스탯이 점점 까이고 있는걸 생각하면 팀 전력의 꾸준한 유지를 위해선 신인 육성과 기용을 충실히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근 몇 년간 KBL 전체에서 포워드 특히 3번 포지션에 대한 기근이 상당히 심해졌고, 모비스는 송창용천대현타팀으로 보내버렸기 때문에 군입대가 머지않은 전준범 외에는 대안이 전혀 없다시피 하다. 이러다보니 양동근의 경기력 저하와 이종현, 이대성의 성장이 더딜 경우 암흑기까진 아니더라도 정체기를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15년차인데 성공한 외국인 선수를 다섯손가락(앨버트 화이트, 크리스 윌리엄스, 브라이언 던스톤, 리카르도 라틀리프)으로 꼽기 힘들 정도로 외국인 선수를 고르는 안목이 좋지 않다. 유재학의 외인 선발 잔혹사 3연패를 달성했던 시즌에는 1인 출전 제도를 바탕으로 한번 잘 뽑은 외국인 선수를 계속 재계약하며 성적을 냈기에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2015-16 시즌부터 다시 2인 출전으로 제도가 바뀌고 국내선수 구성은 나쁘지 않은데 팀 성적은 정체되는 현상이 나타나자 모비스 팬들 사이에서 외국인 선수 고르는 안목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중이다. 다만 단기 1년 풀시즌으로 성공한 케이스는 크리스 버지스라거나, 섀넌 쇼터같은 경우가 있으며, 이 경우 모두 최종 우승까지 거머쥐긴 했다. 또한 본인도 그걸 아는지 대체 외인으론 주로 이미 KBL에서 뛰어서 탑급은 아닐지라도 어느정도 준수한 활약을 보여줘서 견적이 나오는 선수들을 데려오는 편. 던스톤의 백업으로 애런 헤인즈를 대체로 데려와서 우승했고, 쓰리핏 마지막해와 2018/19 시즌은 아이라 클라크를 데려와서 우승했다.

사실 기량이 뛰어난 선수를 뽑고도 활용을 못하거나 유재학 본인과의 마찰로 결과가 나쁜 경우도 많다. 로드나 벤슨 사건이 대표적인 케이스.

여담으로 아침식사를 다같이 하는것을 규칙으로 정했다고 한다.


5. 논란 및 비판[편집]


2004년 3월 7일에 일어난 우지원, 문경은 3점슛과 김주성 블록슛 밀어주기 사건과 관련되어있다. 전자랜드 감독이던 당시, 전날 모비스 우지원이 KCC전에서 3점슛 12개를 넣으며 3점 밀어주기 의심이 되자 TG삼보 전창진 감독과의 사실상의 담합인 주고 받기로 전자랜드 문경은의 3점 슛을 푸쉬받는 대신 TG삼보 김주성이 블록슛을 올릴 수 있도록 김주성 앞에서 전자랜드 선수들이 대충 레이업을 띄우는 방식으로 블록슛을 당해주도록 하였다. 이후 논란이 되자 "모비스의 우지원 선수도 정상적이지 않은 플레이를 했는데, 자제 하자"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인터뷰를 하면서 더 논란이 되었다. 우지원은 3년 전까지 본인이 가르쳤던 선수였으며 절묘하게도 유재학 본인이 2달 뒤 모비스의 신임 감독으로 취임해 우지원과 재회하게 된다.

2014년 2월 16일 안양 KGC와의 경기에서 작전타임 도중 함지훈에게 한 언행이 논란이 되었다. 과격하게 말하면서 입에 테이프를 붙이라고 강요했는데 영상에서 보이다시피 한 선수의 인격을 완전히 짓밟은 실드가 불가능한 짓. 이는 중계화면으로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기사 선수 표정을 보면 진짜 이걸 해야하나 하고 붙이는 시늉만 하고 끝내려다가 감독의 욕설 섞인 명령에 고개 숙이고 대충 입에 테이프를 붙인다. 다른 선수들 표정도 다들 나빠졌다.

참고로 당사자인 함지훈은 “신경도 안 썼는데… 테이핑 논란이 더 황당해” 라고 인터뷰 하였고 유재학 감독도 ‘함지훈 테이프’ 인격모독 논란…유재학 감독 “내 잘못이다” 라고 사과 인터뷰를 하였다.

단, 이 일은 모비스 팬들이나 일부 농구 기자들에게는 그냥 별 일 아닌 걸로 치부되고 있는데, 함지훈과 유재학 감독의 평소 관계는 톰과 제리와 같다고(...) 관련 일화중 하나로 함지훈이 연습을 설렁설렁 하다가 화가 난 유재학 감독이 쌍욕과 함께 "그렇게 할려면 기어다녀라"라고 했는데 진짜 기어다니면서 훈련했다. 정작 함지훈은 그 연습이 끝나고 기자들에게 "기어다니니까 너무 편하던데요"라고 얘기해서 이걸 들은 유재학 감독이 뒷목을 잡았다고(...). 워낙 이런 에피소드가 하도 많아서 해당 팀 팬들은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다.

그러나 해당 팬들은 그러려니 해도, 기자들이나 타 팀 팬들은 물론 현대인의 상식선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잘못임은 분명하다. 팟캐스트나 인터넷방송을 진행하는 기자들의 발언만 들어도 이 사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별 일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 기자는 없다. 초등학생에게 비슷한 짓을 했어도 엄청난 비판을 들을텐데, 해당 선수는 한 가정의 가장에 자식까지 있는 30대의 성인 남성이다. 오히려 별 일 아니라고 묻고 지나가려는 팬이나 당사자들의 태도가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감이 있음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고 욕하는데 있어서는 그 어떤 변명도 소용이 없다. 폭행이나 욕설은 우리나라 법률에 규정된다.

본인도 이 잘못을 인지하고는 있는 지, 인터뷰에서 악플읽기가 질문으로 나오자 "입에 테이프 붙인 거 이런 게 나오나요?"라고 하기는 했다.#

2015년 12월 5일. 부산 kt 소닉붐과의 경기 작전타임 도중에는 김수찬에게 꿀밤 때리는 폭행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결국 KBL은 유재학 감독에게 벌금 300만원을 부과하였다. 월간 농구잡지 점프볼의 편집장인 손대범은 네이버라디오 파울아웃에서 이 일에 관해 "유재학은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지만, 그 행동은 정말 품위 없었다."며 독하게 말하기도 했다.

외국인 선수 찰스 로드 퇴출 과정에서 논란이 있었다. 로드 측은 허리 통증 때문에 매트를 깔고 누웠다고 밝혔으나 유재학은 아프지 않은데도 꾀병 내지 태업을 한 것으로 간주하였고 결국 퇴출시켰다. 훈련 불성실이나 경기 내적으로 태업을 했다는 사유를 들었으나 훈련 불성실에 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허리 통증으로 누운 것을 제외하면 구체적인 내용이 없으며 무엇보다 저 허리 통증이 꾀병인지 아닌지에 대해 아무 증거가 없다. 의사의 검진을 통해서 이상없음이 확인된 바가 없다. 그냥 유재학 생각에 안 아플거 같으니까 꾀병으로 몰았다는 것인데... 태업에 관해서도 로드는 모비스에 있을 당시 경기당 평균 32.3분을 뛰면서[19] 평균 23.79 득점 11.24 리바운드 1.88블록 야투율 52.15%를 기록하면서 펄펄 날고 있었다. 출장 시간을 봐도 그렇고 득점 리바운드 등 기록을 봐도 그렇고 어딜 봐도 태업이라고 보긴 힘들었고 로드가 모비스를 멱살잡고 끌고가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로드 퇴출과 동시에 모비스의 우승은 물건너 갔다. 시즌 내도록 부진했던 밀러와 언더사이즈 빅맨 와이즈로는 상위권팀 상대로 무리가 있었다.

NBA는 조직력이 떨어지고 전술이 없으며, 유럽 농구가 조직력과 전술 부분에서 더 뛰어나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심지어 NBA에서는 배울게 없다는 말도 하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NBA는 모든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리그이다. 또한 개인기를 활용하는 아이솔레이션도 분명 하나의 전술인데, 유재학은 그런 인식이 없는 듯 하다. 유재학의 지나친 팀플레이 집착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20]

첨언하자면 NBA가 유럽보다 개인플레이가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NBA에 개인플레이가 뛰어난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아이솔레이션으로 득점하기 용이할 때 1대1로 득점하는 거지 전술이나 조직력이 떨어져서가 결코 아니다. 실제로 농구는 한 선수가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큰 리그이기 때문에 한 선수가 미쳐서 득점을 퍼부으면 전술이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으며, 또한 팀내 선수 간의 기량 차이가 클 때는 전술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전자의 예를 들면 르브론 제임스가 2007년에 디트로이트와의 결전에서 팀의 마지막 30점 중 29점을 넣었을 때처럼 한 선수를 도저히 막기 어려울 때는 그냥 혼자 다 해먹게 내버려두는게 낫다. 유럽이나 KBL의 경우 아이솔레이션이 그만큼 뛰어난 선수가 적기 때문에 한 선수의 1대1에 의존하는 비중이 적은 것이다. 다만 유럽의 경우 전반적으로 기본기가 우수한 선수들이 많고, NBA처럼 기본기는 형편없는데 오직 괴물같은 운동능력 때문에 리그에 있는 선수는 더 적다. 농구는 피지컬이 절대적인 리그이기 때문에 최상위 리그인 NBA에 가려면 보통 기술보다 피지컬이 더 큰 장벽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극소수의 경우이고, 전체적으로 보면 당연히 NBA의 전술이 가장 뛰어나다. 애초에 전술에 의존하는 비중이 큰 NCAA나 유럽에서 큰 성과를 낸 감독은 NBA로 모셔간다. NBA에 실력이 가장 좋은 감독들이 모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돈을 제일 많이 주니까. NBA선수들이 세계에서 제일 뛰어난 이유와 같다.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들이 제일 실력 좋은 감독들 밑에서 뛰고 있는데 전술 수준이 떨어진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 즉, 유재학의 발언은 선후관계가 잘못됐다. NBA가 전술이 딸려서 개인플레이를 많이 하는게 아니라, 유럽 농구가 (NBA비해서) 개인플레이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전술을 이용한 공격이 많은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유럽의 스페인 리그 같은 곳은 전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리그이다. 어디까지나 NBA에 비해서 떨어진다는 소리.

그리고 유럽 리그와 KBL이 비슷하다는 농구 방식이 비슷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닌데 기본적으로 유럽은 상대방과 1대1 매치업에서 적어도 지지 않는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깐 뒤에 극강의 팀 플레이와 시스템을 이용하는 반면 KBL은 공격부문에서는 대부분이 외국인 선수 공격 몰빵[21]이며 오히려 공격 부문에서는 너무 단순하고 국내선수들의 1대1 능력도 없다는 평가가 절대적이다. 이런 시스템으로 아시아권 국가 몇 개국은 잡아낼 수 있고 강팀을 상대로도 적게 질 순 있지만 딱 거기까지라는 점이 있다.

KBL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 로드 벤슨이 은퇴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작심하고 유재학 감독을 비판했다. 유재학은 벤슨이 뒷돈을 요구했다고 하였지만 벤슨은 요구한 적이 없다고 하였으며, 유재학은 벤슨이 훈련 중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고 하였으나 구체적으로 무엇이 불성실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못하고 있다. 벤슨은 유재학이 직접 재계약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했으나 유재학측은 그당시 국가대표팀 때문에 진천에 있어서 벤슨을 만난 적이 없다며 반박하였다. 그러나 벤슨은 유재학에게 들었다고 하였지 대면해서 들었다고 말한 적은 없다. 전화나 이메일로도 이야기할 수 있으니 이건 반박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더 문제가 무엇이냐면 벤슨이 이런 내용의 인터뷰를 하자 반박 기사를 내는 것도 아니고 지금 나와있는 기사를 수정하고 벤슨의 발언을 삭제시키고 유재학 측 반박을 대신 포함 시켰다. 대통령이나 재벌을 비난하는 기사를 써도 거기에 대해서 반박을 해서 새로운 기사를 내는 경우는 있어도 지금 올라와 있는 언론 기사를 실시간으로 수정시키는 경우는 없었기에 더더욱 문제가 되었다.
언론사나 기자들과 유착관계에 있다는 뜻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6. 이야깃거리[편집]



6.1. 징크스[편집]


대우, 빅스, 전자랜드 시절을 포함하여 플레이오프에서 유재학 감독을 이긴 팀은 100% 확률로 다음 라운드에서 탈락한다는 징크스가 있었다.[22][23] 2015-16 시즌 오리온이 4강 PO에서 모비스를 3대0 스윕으로 꺾고 올라가면서 이 징크스를 깰 수 있을지 여부가 관심이었는데 오리온은 챔프전에서 KCC를 4승 2패로 무난하게 발라버리며 징크스를 깨버렸다.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에서 패배시 100% 확률로 탈락한다는 징크스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2015-16 시즌에서 오리온스에 3연패를 당하며 무려 10년만에 스윕패로 탈락한 것과 2016-17 시즌은 KGC 인삼공사, 2017-18 시즌 역시 KGC 인삼공사에 1승 3패로 탈락했다.

유재학 감독은 과거 신세기 감독시절부터 유독 안양팀 상대로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다는 징크스가 있다. 2000-01 시즌 6강 PO에서 5위였던 신세기는 당시 KGC의 전신이었던 4위 SBS 상대로 1승 2패로 탈락했고, 모비스-현대모비스 감독인 현재에도 KGC가 통합 우승을 한 2016-17 시즌 4강 PO에서 3전 전패로 무릎을 꿇었으며, 정규시즌 KGC는 5위를 기록하고 현대모비스가 4위로 순위가 더 높았던 2017-18 시즌에도 6강 PO에서 1승 3패류 패배한 바 있고, 모비스가 정규시즌 순위는 2위로 높았지만 결국 KGC가 챔피언이 된 2020-21 시즌 또한 패배를 당했다. 이상하게도 KGC의 선수 구성이 좋을 때에 만나서 이상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모비스의 전력이 좋을 때는 KGC가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24]

또 한가지 징크스가 생겼는데 유재학 감독은 플레이오프에서 양자가 들어가는 경기도 연고팀인 (KGC,오리온)을 상대로 단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과거 오리온이 대구 연고지 일때는 3전 전승으로 이긴적이 있지만 오리온이 고양으로 옮긴 이후에는 당시 3위 였던 오리온이 15-16 시즌 4강 PO에서 3전 전패 업셋을 허용하고 21-22 시즌에는 4위였던 모비스가 5위 오리온에게 또 다시 피스윕 허용하고 말았다.

앞으로도 그 징크스가 유지될지 관심을 모으는데 고양 오리온을 인수한 데이원자산운용이 창단 초대 감독으로 김승기를 선임해 유재학감독의 플레이오프 (KGC 오리온 現 데이원 자산운용) 전패 기록을 깨기는 쉽지 않을것으로 전망된다.


6.2. 신인 드래프트에서[편집]


매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권을 거의 모두 써가며 선수를 뽑아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후배 사랑, 신인 육성, 기회 창출의 세 가지를 모두 실천하는 대인배이자, 신인 드래프트 취업의 아이콘. 보통 최대어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3, 4라운드에서는 아예 지명을 하지 않는 구단들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후배들이 기회를 많이 얻으면 좋죠." 라는 이유로 끝까지 지명한 적이 많다. 2013년 드래프트에서도 4라운드까지 지명을 했고, 2016년 드래프트에서는 주긴완을 4라운드에서 뽑으면서 다시금 감탄과 감동을 선사했다.[25] 2017 드래프트에서는 추가 지명까지 하면서, 사상 최초로 5라운드 지명이 발생했다.[26] 이렇다보니 1순위 최대어로 뽑히는 선수가 아니여도 그의 품에서 스타로 성장한 선수들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함지훈, 전준범, 이대성 등이다. 이러한 유재학의 후배 사랑과 선수 육성에 힘쓰는 모습은 타 구단 팬들도 인정하는 모습이다. 2018년 드래프트에서는 고교 졸업을 할 부산 중앙고의 서명진을 깜짝 지명하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뽑은 이유를 밝혔는데 사실 빅3 중 한명으로 꼽히던 전현우를 뽑을까 생각했지만, 어차피 신인 선수는 팀에 들어오면 새로 가르쳐야 할 게 많다. 그렇다면 가르칠 여지가 많은 선수를 데려오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면서 "서명진은 기본적으로 재능이 있는 선수다. 나이도 어려서 키울 여지가 많다"고 밝혔다. 현재 잘 달리고 있는 현대모비스 미래를 내다본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1군무대에서 뛰지 못하고 방출된 선수도 많다. 하지만 프로에 입단해서 D리그에서 뛰기만 해도 경력사항에 충분히 큰 이점이 된다.


6.3. 모래반지 빵야빵야[편집]


2007-08 시즌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움짤인 일명 모래반지 빵야빵야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다만, 이 움짤은 표명일 선수의 욕설하는 장면과 유재학 감독의 당황하는 표정을 드러내는게 서로 무관한 경기에서 따로 나온 장면이다, 이를 편집해서 붙여 합성한 것이며, 실제로 표명일 선수가 유재학 감독에게 그렇게 말한 건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한민국 스포츠계에서 12살이나 차이나는 선배에게 모래반지 빵야빵야를 날릴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있는데요

그후 근 7년만에(...) 위에 버금갈 만한 움짤을 창조해냈다.


6.4. 전준범 욕설 사건[편집]








방송영상으로 보기 캐스터의 탄식이 정말 인상깊다.

2014년 12월 17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SK 나이츠와의 원정 경기에서 89:86으로 앞서 있던 모비스. 1초 남기고 골밑에서 헤인즈가 공을 잡고 2점슛을 쏘는 순간 모비스의 전준범이 쓸데없는 반칙을 하는 바람에 애런 헤인즈에게 슈팅 득점을 허용하면서 자유투까지 줘버렸다

이 앤드원이 들어가면 동점이 되는 상황. 그냥 뒀어도 1점차 리드로 승리하는 상황에서 2+1점을 내주면서 동점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당시 모비스는 SK와 한창 선두권 순위 싸움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경기를 반드시 이겨야 했고, 4쿼터 내내 역전과 재역전이 반복되며, 엎치락뒤치락하던 상황이라 한창 신경이 곤두서있던 차에 이런 병크가 터지자 열이 제대로 뻗친' 유재학 감독은 전준범에게 "야 이 병신아!!"라고 욕설을 하였고, 이 화면이 그대로 SBS 스포츠 중계방송을 타버렸다.

그런데 그 와중에 헤인즈가 자유투를 넣지 못하면서 최종 스코어는 89:88, 모비스의 승리로 경기가 마무리 되었다. 아까까지 주먹을 불끈 쥐고 있던 SK 문경은 감독은 경기 종료 후 되레 뻘쭘한 자세로 유재학 감독과 악수를 나누었고, 벤치로 들어오는 전준범에게 유재학 감독은 한 대 때리려는 기세로 달려들었다.

2015년 2월 13일 KCC전에서도 전준범이 또 기행짓을 하려 하자 또 갈구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6.5. 기록원 퇴장 사건[편집]


2015년 4월 2일, 유재학 감독과 본부 기록원석 사이에서 설전이 붙었고, 이 때 화가난 기록원이 자리를 박차고 스스로 경기장을 떠나버린 것. 유감독 말에 의하면 평소 경기에서는 통상 본부석 쪽에 상대방에게 골을 허용하고 나면 바로 작전 타임을 달라고 요청했고 본부석도 이를 받아들여 경기를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미리 요청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기 도중 상대팀인 동부는 평소대로 미리 작전 타임을 요청한 장면을 봤고, 그래서 항의했다고 한다. https://youtu.be/1VNviLINnX0 이후 기록원은 금방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27]


7. 관련 문서[편집]



[1] 스승인 방열 회장의 영향과 함께 친후배 지도자인 위성우와 함께 맡고 있는 분야[2] 2004년부터 진행 중인 기록. 그 다음이 대전 현대-전주 KCC의 감독이었던 신선우한국여자농구연맹 총재. 아마추어 시절 포함하면 11년, 프로 한정으로 8년(1997~2005)으로 3위이며, 프로 한정 2위는 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유도훈 감독이 2009년부터 맡고 있다.[3] 국내 타 종목에서 비슷한 사례는 1995년부터 2015년까지 무려 21년간 삼성화재 배구단 감독을 역임한 신치용 진천선수촌 촌장, 1983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18개 시즌 동안 해태 타이거즈 감독을 맡았던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 2005년부터 2018년까지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을 맡았던 최강희 감독이 있다.(2012~2013 시즌 중반 대표팀 감독 부임으로 코치가 대행을 치뤘던 시즌은 제외.)이기도 하다.[4] 외모 때문인지 다람쥐로 불리기도 했다.[5] 지금의 상명초등학교[6] 현재도 그렇지만 학교에서의 지도자 생활이 그렇게 편한것만은 아니다 유망주가 있으면 스카우트하러 직접 가야할때도 잦은데 까다로운 학부모와 고교의 코치들에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고 심지어는 신발장에서 구두도 미리 꺼내놓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이게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이다 항상 당당하게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유재학으로선 매우 힘들었겠지만 누군들 이렇게 시작하지 않는 사람도 없기에 참 서러웠을듯[7] 다만 최희암은 전자랜드 시절에는 무난한 편이다. 이후 고려제강그룹에서 고려용접봉 지사장을 거쳐 창원공장 사장으로 영전했다. 현대건설 직원 근무 경력 덕이기도 했다.[8] 참고로 이 4패는 KBL 챔피언결정전 사상 첫 스윕패.[9] 울산 모비스가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첫 우승팀인 기아 엔터프라이즈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10] 꼴찌 오리온스가 워낙 막장이었던 덕분인지 14승40패, 11연패를 2번이나 하고도 꼴찌를 하지 않았다! [11] KCC에 상대전적에 2승 4패로 밀려 2위로 내려갔다. 그리고 오리온스에 3연패로 스윕패한 탓에 3위로 취급했다. 즉, 로터리픽에서 밀리면 사실상 8번이었다.[12] 창원 LG 세이커스가 역대급 탱킹을 벌이는 바람에 챔피언결정전에 가지 못한 팀까지 모두 로터리픽 추첨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심지어 8개팀 동일 확률로! 모비스는 2015-16 시즌 4강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로터리픽 추첨 참여자격이 주어진 것.[13] LG가 탱킹을 벌인 해는 2013년이고, 이때 드래프트 이후 관련제도가 개정되어 벌써 3번째 드래프트였는데 앞의 두 드래프트에 비해 이번 드래프트가 역대급 선수들이 한 번에 등장한 해여서 화제가 된 면이 있다. 이전 1순위를 먹은 오리온스와 KGC의 순위는 각각 6위, 8위였다. 이번 드래프트 빅3인 이종현-최준용-강상재는 다른 해에 나오면 그냥 1순위로 뽑힐만한 재목들인데다가 그중에서도 이종현은 대학시절에 국가대표로 뽑혀 병역면제 혜택까지 받아놓은지라 가히 2002년 김주성 드래프트에 비견할만한 인재로 꼽혔기 때문.[14] 일명 "전준범 데이"로 유명한 날인데, 전준범은 이 날 3점슛 4개를 적중시키며 승리를 견인했다.[15] 이 날 경복고 동창들이 잠실실내체육관까지 현수막을 들고 찾아와 축하해 주었다.[16] 2017-18 시즌까지 대우-빅스-전자랜드 시절 모비스전 33전 17승 16패. 모비스 부임 이후 전자랜드전 84전 48승 36패.[코로나-19] 로 인한 시즌 조기종료[17] 사실 산악훈련 자체는 미국에서도 많이 시행하는 훈련이다. 다만, 미국의 산악훈련은 잘 포장된 도로에 정해진 코스에서 체계적으로 실시하는데에 반해, 한국의 산악훈련은 전혀 체계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비포장된 산길을 무작정 뛰기만 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 실제로 정해진 코스에서 하는 힐 러닝은 코스와 프로그램만 체계적으로 잘 짜면 하체 근지구력과 활동량을 키우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한다.[18] 임근배 코치가 사임한 이유는 유재학 감독과의 불화로 갈라선 것은 아니고, 기러기 아빠였던 그가, 캐나다에 건너간 아내의 건강이 좋지 않자 아이들을 돌보고자 캐나다로 건너가기로 하면서 사임한 것이다.[19] 로드가 KBL 7개 시즌을 뛰면서 2번째로 많은 출장 시간을 소화한 시즌이다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을 뛴 2011-12 시즌에는 혹사 논란이 있었다.[20] 물론 미국 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유럽의 오펜스 전술이 NBA보다 더 유기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의견 자체는 어느정도 인정을 받곤 한다. 다만 나름대로의 저변이 있으면서 발전 방향성이 NBA와는 달랐던 유럽이기에 그런 비교가 성립이 되는거지, NBA의 전술 수준이 낮다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옛날에야 NBA나 MLB 등 미국 최상위 스포츠리그를 폄하하기 위해 조직력이나 전술이 허접하다는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해당 리그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즘 시대에 현역 감독이라는 양반이 저런소리를 하고있으니 그저 우스울 뿐...[21] 수비 역시 마찬가지다.[22] 2004년 당시 최다 승수인 40승을 찍은 TG삼보는 전자랜드에 3-0 승리 후 KCC에 패하여 준우승, 2011-12 시즌 정규리그 44승을 찍은 동부조차 모비스에 3-1 승리한 후 인삼공사에 패배하여 준우승했다.[23] 2005-06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모비스를 4:0으로 누르고 우승한 삼성은 2006-07 시즌 6강 PO에서 복수의 칼을 갈던 대구 오리온스에게 패하면서 탈락했다.[24] 유재학 감독은 현대모비스에서 통산 6회 우승(2007, 2010, 2013, 2014, 2015, 2019)을 거두었는데, 첫 우승이었던 2007년에 KGC(당시 KT&G)는 정규시즌 6위에 6강 PO에서 KTF(현 수원 kt)에게 패배했고, 2010년에는 KGC가 한창 탱킹 및 리빌딩을 하고 있을 때라 8위로 플레이오프 근처에도 못 가봤으며, 2013년에는 KGC가 4위를 기록했지만 4강 플레이오프에서 SK에게 패배, 2014년과 2015년에는 KGC가 각각 8위와 7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고 2019년에도 KGC는 7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었다.[25] 이 드래프트는 주긴완 한 명 때문에 홍콩에 중계되기도 했다. 그리고 4라운드 10순위, 가장 마지막으로 지명되면서 감동을 선사했다. 그러나 주긴완은 모비스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김진용과 함께 KCC의 박경상과 트레이드 되었다.[26] 이때 뽑은 선수는 상명대 남영길. 2018-19 시즌 1군 데뷔전을 치렀다.[27] 사실 이 사건이 중요한건 이 경기가 챔피언결정전 3차전이었다는 것. 한 시즌의 챔피언을 결정짓는 중요한 경기가 예비 기록원도 없어 해프닝 하나로 경기가 5분쯤이나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KBL의 불통과 무능을 보여준 평일 오후 5시 경기 사태(2차전)와 더불어 2015 KBL 파이널을 안좋은 쪽으로 화제가 되게 만든 사건이 되었다. 자세한 건 KBL 챔피언결정전 항목의 이모저모와 2014-15 KBL 챔피언결정전 항목 참고.

[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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