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r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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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혈연적 동포로 조선족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서 간도 및 중국 각지로 이주해 정착한 한민족을 이르는 말이다.
조선족(朝鲜族; 챠오센주)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공인한 한족 외 56개 민족 가운데 하나로, 한민족(조선반도) 혈통을 가진 중국인이다.
중국에서 조선족은 /한(韓)민족계(Korean)이라는 뜻이다. 애초에 특정 정체(政體)의 국가가 아닌, 일반적인 'Korea'로서의 한국을 중국에서는 '조선'이라고 부른다.[4] 즉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국어로는 조선족이다. 때문에 중국어 위키위키인 바이두 백과에 달랑 '조선족'이라 하면 아래와 같이 사용자들이 달아놓은 설명이 나온다.
그렇다면 중국과 한국의 표준 언어 사전에서는 이 '조선족'단어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朝鲜族(cháo xiǎn zú)
朝鲜族(조선족)又称韩民族(한민족)、高丽族等,是东亚主要民族之一。朝鲜族主要分布在朝鲜半岛(又称:韩半岛)的朝鲜、韩国、中国和俄罗斯远东地区及其他原属苏联的加盟共和国。其余散居美国、日本等世界各地。
조선족(차오셴쭈)
조선족 또는 한민족, 고려족이라고도 부르며 동아시아 주요 민족 중의 하나다. 조선족의 주요분포는 조선반도(혹은 한반도)의 조선, 한국, 중국과 러시아 극동지방 및 독립국가연합이다. 그 외 미국, 일본 등 세계각지에 흩어져 산다.
중국의 <현대한어규범사전>의 설명이다.
1. 조선반도의 주요 민족, 2. 중국내 소수민족의 하나.
대한민국의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이다.
1. 중국에 사는 우리 겨레, 2. ‘한족(韓族)’의 북한어.
원래 한국인, 북한인, 조선족 3개 집단 모두 조선왕조나 일제치하의 조선인(朝鮮人)이었으나, 정치체제나 국적의 차이로 1949년 이후 각 집단이 구분된 것이다. 국적이 가장 중요한 3개 집단의 구별요소이다.
이렇게 Korean 전체를 가리키던 '조선족'이란 단어가 현재는 중국동포만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이는 경향이 있다. 중국 국내에서 굳이 중국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중국동포의 사정과, 해방 후 한국인, 한민족이 익숙해져 '조선'이 조선왕조나 북한을 가리키는 이질적인 단어가 되어버린 한국인의 습관이 어우러진 것. 게다가 중국에서도 한중수교 이후 한국이란 단어가 중국에 정착하면서 한중 모두 통상적으로 중국동포만을 가리키게 되었다.
따라서 당연히 동북공정과도 연관이 없다. 일단 '조선족'이라는 명칭 자체가 동북공정의 본격화 이전은 물론 대한민국이 수립되기 이전부터 써오던 표현이었다. 게다가 중국인 입장에서는 조선반도에 살거나 조선반도에서 유래한 민족이기 때문에 민족적 개념에서 한국계 민족을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중국인들의 입장에서는 한반도에서 거주하는 민족이나 한반도에서 유래한 민족을 '조선족' 외에는 달리 부를 만한 명칭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인들은 한반도를 묶어서 부를 때 '한(韓)'이라는 이름이 중국의 주류 민족인 '한(漢)'과 발음상 겹칠 뿐더러 정치•외교적으로도 남북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대신 더 오래 전부터 쓰여온 '조선'을 선호하며, 이를 지명인 한반도에도 '조선반도'로 반영한다. 따라서 한민족을 '조선족'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이들의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 휴전 상황에서는 남/북한이 모두 국제적으로는 정전국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어차피 2배 이상의 인구나 정치적규모, 경제적규모, 문화적규모가 넘사벽이기 때문에 역사적 이유만 들어서 조선이라는 이름을 고수할수 있으나...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무역대국 한국을 우선시하기에 경제력이나 문화적으로 한국은 강대국들의 입장에서 중요하다.
2. 기원[편집]
과거 역사기록들을 살펴보면 고려 말 요동에 가서 살던 사람들(동녕부), 병자호란 때 중국에 정착한 사람들도 넓게는 재중동포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청나라에 살던 조선인들의 후예들이 나온다.
현대적인 재중동포인 조선족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에서 살기가 점차 힘들어지자 일부 사람들은 중국 국경지대 지역이 막연하게 상대적으로 나을 것이라 여겼고 국경지대로 이주한 사람들이 시초가 되었다. 간도의 조선인 거주지역은 독립군의 은신처 및 보급 역할을 하였고 봉오동 전투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에 의해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간도 참변 참조). 독립운동가 중 일부가 중국에 눌러앉아 조선족으로 남은 경우도 있다(김학철 참조) .
독립운동 중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일대를 장악하자 일본이 주도한 "만주개척운동"에 의해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인이 갑자기 많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1940년대 이후 중국 내 조선인 우파 대부분은 상해, 중경 등으로 떠났고 그 뒤로 중국 내 조선인 무장세력은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의용대만 남게 되었고 다수의 좌파 단체는 중국 공산당 팔로군에 편입되었고 우파 단체는 광복군에 편입되었다.[5]
1945년 일제가 패망하고 소련 군정과 중공에 의해 중국과 한반도의 경계선은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확정되었다. 해방 후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반도로 돌아왔으나, 일부는 한반도로 귀국하지 않고 중국령이 된 만주에 남았다.
1952년에 중국 공산당은 중국 내 잔류한 조선인에 대해 시민권을 부여하고 중국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연변 조선족 자치구를 세웠었으나 1955년에 연변 조선족 자치주로 격하되었다. 중국에서 자치구는 성과 동급[6] 이나 자치주는 성에 예속된 행정구역이다. 그때 당시에만 해도 조선족들은 북한으로 가면 즉시 시민권을 얻을 수 있어, 문화혁명 전 까지 백만 명의 조선족들이 북한으로 귀국했다. 지금은 상상이 안 되겠지만, 당시에만 해도 북한은 중국보다 잘 살았다(...) 문화혁명이 일어나자중국은 북한으로 가려는 조선족들을 "조선간첩"으로 몰아 감옥에 집어 넣었기에, 사정이 있어 북한으로 가지 못한 조선족들은 중국에 쭉 눌러 앉게 되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과 북한 사이에도 이산가족이 많으며, 1990년도 전에는 조선족들이 친척방문 목적으로 북한에 자주 다녔었다.
1990년대부터는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두만강 근처에 판문점 비슷한 검문소에서 짧은 시간동안 이산가족 면회를 허용한다(
조선족과 한국 사이의 이산가족은, 없는 건 아니지만 북한에 비해 소수다. 중국으로 넘어간 조선인 대부분이 중국과 인접한 함경도/평안도 출신과 경상도 출신이 많다.
3. 중국 내의 위상[편집]
조선족은 중국 내부에서 대우가 나은 편에 속하는 민족이고, 또 생활수준도 상위권이며, 조선족자치주도 중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자치주이다. 중국에서 한국어를 교육과정에서 배우고, 대학입시인 까오카오도 한국어로 보며, 입시과정에 10점에 달하는 가산점도 있다. 연변대학교는 중국의 유일한 소수민족 중 연길시의 종합대학교이다.
그러나 중국이 70년대 이후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연길을 비롯한 조선족자치주는 고도발전에서 소외되었다. 애당초 개혁개방의 모토가 "일부가 먼저 잘 살고 일부가 나머지를 잘 살게끔 이끈다" 이다. 물론 그 일부는 바다에 인접한 지역을 말하는것이고 조선족들이 사는 지역은 "나머지"에 속한다. 북한과 인접해 있어서 북한의 경제상황이 그런대로 괜찮았다면 연변의 공업도 발전될 여지가 있지만, 북한의 경제가 너무 안 좋은데다가 라선항이나 청진항을 쓰기에는 제한이 너무 많은데다가, 러시아의 극동지역 인구도 그리 많지 않기에, 공업이 발달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 이는 연길의 기형적인 산업구조를 재생산하고 있으며 혼란상을 부추기고 있다.
4. 지역과 혈통[편집]
주로 지린성(吉林省)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 랴오닝성(遼寧省),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 분포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중국의 도시화 건설에 맞춰 경제가 발달한 베이징, 상하이 및 연해 지역으로 진출하고 있고, 대한민국에도 많이 돌아오고 있다.
한국, 북한과 대체로 동일한 문화뿌리와 혈통을 공유하지만, 한국의 서구화와 북한의 쇄국화, 그리고 이렇게 완전히 다른 발전분기 때문에 많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 같은 차이점은 중국 중앙정부의 동북공정[7] 과 남북한의 조선족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다.
5. 문화[편집]
연변 조선족들이 그나마 정체성을 제일 잘 지키고 있다. 흑룡강성이나 중국 대도시에 사는 조선족들은 한족과 통혼하거나 다른 중국 대도시들이나 한국으로 떠나는 인구들이 많아서 흑룡강성 조선족들의 언어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중국어와 많이 섞였으나 연변 조선족들은 자기들의 말을 지키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옥수수, 콩 등의 밭작물이 주를 이루는 만주지역에서 쌀농사를 고집하고 있다. 만주지역의 도로에서 몇 시간 동안 옥수수밭만 보다가 논이 나오면, 십중팔구는 조선족 농가가 그 주변에 있다[* 구한말~일제강점기 초기에 만주나 연해주 등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의 경우, 쌀농사(벼농사이면서 논농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매우 강해 집착으로까지 받아들여질 정도였다고 한다.
6. 언어[편집]
지명 및 인명을 중국어 발음이 아닌 한국어의 한자 독음으로 읽는다. 또한 두음법칙이 무시된다. 단 소수민족 언어를 한자로 음차한 지명은 한자 독음보다는 그 민족 언어 발음에 가까운 표기를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조선족들의 사투리 분포는 다음과 같다.
- 동북 방언(함경도) 지역: 길림성 연변지구, 흑룡강성 동북부, 동남부, 두만강 연안지구 동북 6진 방언
- 서북 방언(평안도) 지역: 요녕성 다수지역(심양-안산-무순-본계), 요녕성과 접한 길림성 남부 지역
- 동남 방언(경상도) 지역: 요녕성 중부(심양), 연변지구를 제외한 길림성 기타 지방, 흑룡강성 서북부, 서남부
- 서남 방언(전라도) 지역: 요녕성 중부(심양-안산) 교차적 분포, 연변 왕청현
- 중부 방언(경기도, 충청도 등) 지역: 길림성 유하현, 연변 도문시, 기타 지역 교차적 분포
조선족들은 대개 함경도, 경상도, 평안도, 전라도 출신들이 많다. 왜냐하면 함경도, 평안도 출신들은 적어도 구한말 때부터 간도로 이주했기 때문이고 경상도, 전라도 출신들은 일제강점기 때 많이 이주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함경도 사투리(육진 방언 포함)는 연길이 있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나 길림성과 흑룡강성 동부에서 많이 쓰이고, 평안도 사투리는 요녕성이나 길림성 남부에서 쓰이고, 경상도 사투리는 요녕성 심양과 길림성 일부와 흑룡강성 서부에서 쓰인다. 그 외의 사투리들은 마을 단위로 소규모로 쓰이고 있다.
헤이룽장 성 지역의 조선족이 구사하는 말은 한국어 문법과는 뭔가 많이 달라서 잘 알아 들을 수가 없다. 문장을 구사한 걸 보면 나메크어 수준. 또한 평상시에도 중국어와 조선말을 마구 섞어서 대화하는데[8] 같은 지역의 같은 조선족이 아니라면 대체 뭐라고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한국의 영향으로 연변지역 TV나 라디오 방송의 아나운서들이'서울말화'된 우리말을 쓰며, 연변TV에서 방영하는 오락 프로그램들을 보면 아예 한국 인터넷 상에서 사용하는 유행어 등이 나오기도 한다.
조선족들이 쓰는 한국어는 엄연한 피진 겸 한국어의 한 거대한 방언군이다. 미국식 영어, 영국식 영어의 차이, 브라질 포르투갈어와 포르투갈 포르투갈어의 차이처럼 한 개의 상이한 방언군을 형성하는 것. 차이가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 브라질 포어와 유럽 포어 혹은 스페인 스페인어와 중남미 스페인어의 차이보단 좀 적은 정도다. 조선족들이 쓰는 연변식 한국어도 한국식 한국어와 어느 정도 상이한 게 사실이다.
주목할만한 것은 한국의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신분증에 호적상 주소지가 민족 자치구역에 등록되어 있는 해당 민족 대상으로 간자체 옆에 한글로 이름을 병기하기도 한다.
7. 유명 인물[편집]
8. 역사적 인물[편집]
- 고선지(高仙芝): 당나라의 장수. 서역원정을 지휘하여 토번과 사라센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를 상대로 승리한 명장이지만, 탈라스 전투에서 패배한 탓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지 않다. 비유하자면 신립처럼 경력이 상당히 화려한 명장인데 패배한 전투가 너무 유명해서 다른 경력들이 죄다 묻힌 셈.
- 이성량(李成梁): 명나라의 장수. 4대조가 명나라로 넘어갔다. 이여송의 아버지이다.
- 이여송(李如松): 명나라의 장수.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원군을 지휘하였으나, 다들 알다시피 임진왜란 때 왜군보다 명군에 의한 피해가 더 많았다는 기록 때문에 국내에서의 평가는 바닥을 긴다. 발배의 난을 제압할 때 수공으로 큰 공을 세워 촉망받았다고 하지만 그 외의 기록은 딱히 없다. 까놓고 말해서 도대체 무슨 공으로 후의 지위에 오르고 13총병을 지휘할 권한을 받은건지 이해할 수 없는 인물.
다이아몬드 수저 - 김교각(金喬覺): 신라의 승려로 당나라에서 유명한 승려였다. 지장보살의 화신이라 불렸다.
- 숙가황귀비(淑嘉皇貴妃): 건륭제의 후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