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룽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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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행정 약칭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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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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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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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성
헤이룽장성
黑龙江(Hēilóngjiāng(Shěng | ᠰᠠᡥᠠᠯᡳᠶᠠᠨ ᡠᠯᠠ ᡤᠣᠯᠣ(Sahaliyan Ula Golo
Heilongjiang Province






지역
둥베이
면적
473,000km²
성도
하얼빈시
청사소재지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난강구 중산로 202호
黑龙江省哈尔滨市南岗区中山路202号
하위 행정구역
12지급시(1부성급시) 65구 17현급시 45현 1자치현
시간대
UTC+8[1]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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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800만명
인구밀도
82명/km²
민족 구성
한족 95.2% | 만주족 2.86%
조선족 1.07% | 몽골족 0.39%
HDI
0.755 (2014)
서기
쉬친(许勤)
성장
량후이링(梁惠玲)
GRDP
전체
$2,339억 (2021)
1인당
$7,341 (2021)[1]
행정구역 약칭

행정구역코드
230000
지역전화번호
0451 ~ 0456
0458, 0459, 0464
0467 ~ 0469
우편번호
150000 ~ 160000
ISO 3166-2
CN-HL

홈페이지


파일:하얼빈시 전경.webp

헤이룽장성 전경

1. 개요
2. 역사
3. 지형과 기후
4. 산업
5. 교통
6. 역대 영도인
7. 산하 행정구역
8. 기타
9. 출신인물



1. 개요[편집]


헤이룽장성중국의 성으로, 성도는 하얼빈시다. 약칭은 헤이((hēi), 간혹 ((lóng)이라고도 쓴다.

둥베이 3성 중 가장 북쪽과 동쪽에 위치한 성이자, 동시에 중국 전체에서도 최북단,[2] 최동단에 위치한 행정구역이다. 인구는 38,312,224명, 면적은 473,000㎢(중국 전체의 약 5%)이다. 인구는 북한보다 많고 면적은 한반도의 2배가 조금 넘는다. 서쪽으로 내몽골 자치구, 북쪽과 동쪽으로 러시아,[3] 남쪽으로 지린성과 접한다.

'헤이룽장'이라는 이름은 이 성과 러시아의 경계를 흐르는 아무르강의 중국어 이름인 헤이룽장에서 유래했다.


2. 역사[편집]


과거 부여, 실위, 숙신 등이 발흥한 곳이다. 부여, 고구려, 발해, 금나라 등을 거쳐오다가 몽골의 침략을 받고 오지로 전락하였다.

그 뒤 청나라1644년 중원 정복 이후, 중원 지역에 대해서는 '행성제(行省制)'를 적용했지만 만주 지역에 대해서는 장군부(將軍府)를 두어 통치하게 하는 '군부제(軍府制)'를 채택했다. 이에 1653년(순치 10) 지금의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닝안시(寧安市)에 '영고탑앙방장경(寧古塔昻邦章京)'이라는 벼슬을 두었다가, 1662년(강희 1) 이를 '진수영고탑등처장군(鎭守寧古塔等處將軍, 약칭 영고탑장군)'으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1671년(강희 10) 흑룡강변에 성을 쌓고 '헤이룽장성(黑龍江城)'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뒤 이 영고탑장군은 1676년(강희 15) 지금의 지린성 지린시로 주둔지가 옮겨졌고, 1683년(강희 22) 지금의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시에 흑룡강장군(黑龍江將軍)이 별도로 설치되었다. 이는 현재의 헤이룽장성의 전신이 된다.

한편 유럽에서 계속 시베리아로 진출하던 러시아가 이 부근까지 오게 되자, 청나라는 러시아와 네르친스크 조약캬흐타 조약이라는 국경 획정 조약을 맺기도 하였다. 이 조약이 체결된 후 정해진 헤이룽장성의 강역은 현재와 좀 다른데, 현재 헤이룽장의 남부가 지린성 소속이었으며 이때의 헤이룽장은 현재 헤이룽장의 북부와 러시아의 아무르 주 대부분이 속해있던 곳이었다. 현재 헤이룽장의 북부 지역이 당시 헤이룽장성의 중앙부였던 셈이다.

제정 러시아아이훈 조약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외만주를 빼앗고 의화단 운동에서는 20만 명의 대군을 진주시켜 만주 전체를 점령하여 극동총독부를 설치하였으며 더 나아가 동만철도가 있는 북만주와 하얼빈을 차지하고 송화강고비 사막러시아 - 의 경계로 삼으려 하였다. 제정 러시아가 실제로 북만주를 빼앗았다면 중국의 만주 국경은 명나라 초기 때로 축소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에게 패배하여 실현되지는 않았다.

1909년 10월 26일에는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저격했다.

신해혁명 이후에는 혁명당 출신의 주칭란이 지배했으나 곧 장쭤린의 부하 손열신이 장악했으며 이어 우쥔성이 흑룡강성 독군에 임명되어 1928년까지 지배했다. 허나 1931년 9·18 만주사변 이후 관동군에게 점령당했으며 1932년 만주국 수립 이후 만주국의 영토가 되었다. 일본 치하동안 하얼빈 근교에 그 악독한 731 부대의 수용소와 실험실이 다수 설치되기도 했다. 현재는 중국 정부가 기를 쓰고 발굴하려고 하는 듯하다. 일본 패망 이후에는 소련군 통치 아래 들어갔다가 얼마 안 가 국공내전을 마친 중국 산하의 성이 되었다.


3. 지형과 기후[편집]


러시아와의 국경을 이루는 동부에는 소흥안령 산맥이 솟아 있는데, 해발 1,000m 내외로 그렇게 험준한 산맥은 아니다. 만주의 일반적인 이미지에 비해 산세가 그렇게 험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남부는 둥베이 평야의 일부로서 평지를 이루고 있고, 북쪽은 구릉지에 가까운 지형을 보인다. 북쪽의 경우 울창한 침엽수림이 펼쳐져 있어 중국보다는 시베리아의 풍경에 가깝다. 취소선 드립할 게 아니라 진짜로 이 성은 원래 연해주와 같은 땅이며 하바롭스크와는 대놓고 같은 땅을 공유했기 때문에 기후 등이 비슷하다. 아이훈 조약이 없었다면 연해주는 지금도 중국이 차지했을 것이다.

기후는 냉대 동계 건조 기후. 성의 대부분이 Dwb이며 남부 일부는 Dwa이고 북부는 Dwc인 아극 기후이다.

중국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만큼, 중국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다. 겨울이 되면 -40℃ 이하로 내려가는, 가히 헬게이트급인 추위가 특징이다. 이 정도의 추위는 유럽에서는 헤이룽장성보다 고위도인 지역에서도 아예 나타나지 않으며, 러시아에서도 북아시아 쪽인 시베리아에서 나타나고 아메리카에서는 알래스카 내륙이나 캐나다 북부에서 나타난다. 동위도인 북위 50° 지역으로 한정하면 전세계에서 가장 겨울이 추운 곳이다. 특히 하얼빈 지역을 겨울에 방문할 때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4]

성의 북부는 남부보다도 더 춥다. 이곳들은 정말 시베리아와 같은 겨울 날씨를 보이는데, 헤이룽장성 최북단이자 중국 전체 최북단에 위치한 다싱안링지구 모허시의 경우 연평균 기온 -5.5℃, 최한월인 1월 평균 기온이 무려 -30.9℃에 이른다.[5] 역대 최저 기온은 2023년 1월 22일-53.0℃.[6] 한겨울이 되면 낮 기온마저도 -20℃를 밑돈다. 게다가 헤이룽장성에서 그나마 따뜻하다는 하얼빈의 1월 평균 기온마저도 -17.6℃에 육박한다.[7] 겨울에는 냉장고가 따로 필요없을 정도이며, 실외에 빨래를 널었다가는 빨래가 언다. 사실 하얼빈만 해도 북한에서 가장 추운 지역 중 하나인 삼지연과 비견될 만한 최저 기온을 보이는 곳이다.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1월 평균 기온이 하얼빈은 -17.6℃, 삼지연은 -17.2℃라고 한다. 다만 이 월평균 기온은 1981년부터 2010년까지의 평균이다. 그 이후의 기록들을 비교해보면 삼지연의 1월 평균 기온이 하얼빈보다는 낮다. 물론 위에 서술한 모허를 비롯한 성 북쪽 지역은 삼지연은 물론이고 동아시아에서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춥다.

이렇게 추운데도 인구는 3,185만 명이나 된다. 하지만 북방 지역의 특성상 북쪽 오지는 사람이 적어서 성 내 인구가 대부분 하얼빈같은 대도시에 모여 있기 때문에 하얼빈을 비롯한 도시 지역의 인구 밀도는 높은 반면,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북쪽 오지 지역들의 인구 밀도는 희박하다. 도심의 인구는 290만 명. 다만 그마저도 면적이 2,400㎢나 될 정도로 넓으니, 사실 면적에 비해 인구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헤이룽장성의 주요 도시로는 하얼빈을 비롯해 치치하얼, 다칭(大庆), 자무쓰(佳木斯), 무단장, 지시(鸡西), 치타이허(七台河) 등이 있다.

성의 북부[8]에서는 드물게 오로라가 관측되기도 한다.


4. 산업[편집]


만주 지역답게 중공업이 발달해 있으며, 다칭유전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너무 내륙 깊숙이 있어서 무역은 철도를 통해 거의 러시아와만 이루어진다.

일본 제국의 대륙침략 기지로 시작하여 전후 소련의 지원까지 겹쳐 개혁개방 이전까지는 중국에서 가장 발전된 지역 중 하나였으나 1980년 개혁개방 이후 경제의 중심축이 해안 지역으로 이동해 가면서 몰락했다. 개혁개방으로 동남부 연안인 최대도시 상하이를 낀 남방 장쑤성 일대와 푸젠성, 광둥성대만/홍콩/마카오와 인접한 성들로 개발축이 옮겨갔기 때문에 둥베이 3성 지역은 쇠락할 수밖에 없었다.

1984년까지만 해도 헤이룽장성은 랴오닝성에 이어 중국에서 2번째로 1인당 GRDP가 높은 성이었는데#, 이후 꾸준히 순위가 하락해서 2018년 헤이룽장성의 1인당 GRDP는 33,977위안으로 중국 평균의 약 50% 수준에 불과했고, 이는 간쑤성[9]을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치였다.#

1차 산업의 경우, 기후가 이쯤 되면 벼농사는 고사하고 랴오닝성지린성에서 곧잘 하는 옥수수 농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물론 남부 지역은 충분히 이런 농사를 지을 여건이 되지만, 하얼빈 이북 지역은 거의 임업에 의존하고 있다.

대신 헤이룽장성이 품고 있는 북만주 삼강평원은 부식토층의 두께가 수백 미터로 우크라이나 흑토 지대미국 중동부 대평원 지대와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비옥하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북저황이라고 불리던 이곳은 많은 개간이 이루어졌는데 특히 십만이 넘는 인민해방군의 목숨을 갈아서 엄청난 양의 쌀을 생산하는 곡창지대로 변했다. 그 때문에 기후 대비 곡물 생산량이 무지막지하게 많다고 한다.

스웨덴 태생의 자동차 브랜드인 볼보가 다칭에 현지공장[10]을 두고 있는데, S90을 다칭 공장 생산으로 일원화한다는 충공깽 수준의 오피셜을 냈다.

러시아 블라고베셴스크와 인접한 도시 헤이허에 자유무역시범구를 설치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5. 교통[편집]


선양시에서 하얼빈시로 뻗어나온 철도가 이 곳을 통해 러시아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연결된다. 장차 한반도가 통일을 이룩하면 이 곳의 교통 중요성도 훨씬 커질 것이다. 남북을 연결하는 철도는 잘 되어 있지만, 성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교통망은 부실한 편이다.

하얼빈의 경우 현재 지하철 공사가 진행중이다. 2012년 말에 개통 예정이었으나, 실제 1호선은 2013년 말에 개통되었다. 공사 중 특이한 점은 겨울이 매우 춥기 때문에 대신 더운 여름에 24시간 가까이 몰아서 공사를 한다. 시설은 상당히 좋다. 옅은 황금색으로 인테리어를 했고 여름에도 냉방을 빵빵하게 해서 아주 좋다.


6. 역대 영도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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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성 영도인

[ 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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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공산당 지방위원회 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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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산하 행정구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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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급행정구
지급시 12, 지구 1
현급행정구
시할구 54, 현급시 21, 45, 자치현 1
하얼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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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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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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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난
기타






8. 기타[편집]


  • 2016년 1월 2일 규모 6.4의 지진이 발생했으나, 직접적인 피해는 적었다고 한다. #

  • 참고로 중국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지역 TOP5에 드는 동네로 손꼽히며 2017년 기준으로 중국 전체 꼴지를 기록했다. 그 만큼 고령화 속도도 가파르다. 이 지역의 출산율은 가임여성 1인당 0.5명 정도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다. 헤이룽장성에서 유학온 학생의 말을 인용하면 대부분 여성은 아이를 갖지 않거나 1명 가지며 2명부터는 다자녀 취급이라고 한다.[11]


  • 여담으로 헤이룽장성(특히 하얼빈) 출신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흔히 돌아다니는 조선족 혐오 썰들을 들으면 좀 다른 의미로 굉장히 싫어한다. 물론 듣는 조선족 입장에서 혐오발언 듣고 기분좋을 리 없겠지마는, "그런 것들은 전부 남쪽 촌놈(지린성 조선족)들 얘기다"라고 치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헤이룽장성에 정착한 조선족들은 선조들이 항일운동하다가 그 곳까지 쫓겨나간 경우가 많고 연해주 한인이나 길림성 조선족은 독립운동 반, 생활고로 북으로 올라간 간도 유민 반반이다.

  • 하얼빈역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다. 2013년부터 공사를 하여 2014년 1월에 완공되었다. 중국어 설명판만 있는게 아니라, 조선어(한국어) 설명판도 설치되어 있으니 한국인이라면 꼭 가볼만한 곳이다.


9. 출신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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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은 전 지역(홍콩, 마카오, 대만 포함)이 중국 표준시를 사용한다.[2] 헤이룽장성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곳이자 중국 전체의 최북단에 위치한 다싱안링지구의 모허시는 위도가 북위 53° 33′이다.[3] 러시아 극동 연방관구아무르 주, 유대인 자치주, 하바롭스크 지방, 프리모리예 지방과 접한다.[4] 동위도에서 헤이룽장성 다음으로 추운 지역은 미국 미네소타 - 캐나다 매니토바 국경 타이가 지대다.[5] 심지어 1965년 12월 모허에서 월평균 기온이 무려 -35.3℃를 기록하여 역대 가장 낮았다. 즉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중강, 삼지연, 개마고원 일부 지방의 최저 기온에서나 볼법한 -35℃ 기록이 최저 기온도 아닌, 월평균 기온으로 기록된 것이다. 이는 한반도에서는 아무리 기록적인 한파가 올지라도 절대로 기록할 수 없는 엄청난 수치이다. 당장 한반도의 역대 최저 월평균 기온은 1922년 1월 중강의 -26.6℃이다.[6] 그전까지는 1969년 2월 13일-52.3℃를 기록한 것이 최저 기온이었다. 여담으로 해당 기사에서는 2023년 1월 22일에 -53.0℃를 기록하면서 중국 역대 최저 기온 신기록을 세웠다고 적혀있는데, 실제로는 2014년 12월 31일내몽골 자치구 건허시에서 기록된 -58.0℃가 중국의 역대 최저 기온이다.[7] 참고로 하얼빈 역대 최저 월평균 기온1922년 1월의 -27.6℃이다.[8] 북위 52~53° 33′ 부근으로 내몽골 자치구와 가까운 지역.[9] 30,797위안[10] 다칭 외에는 청두와 타이저우(台州)에 볼보의 현지공장이 있다.[11] 반대로 티베트 자치구는 중국에서 가장 출산율이 높은 지역으로 티베트 일부 현들은 출산율이 3명대에 육박한다.[12] 양양(S)는 옆 동네인 지린성 창춘 출신이다.[13] 하얼빈에서 태어났지만 5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