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월드컵 지역예선/북중미카리브

덤프버전 :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FIFA 월드컵 지역예선


1. 개요
2. 역대 지역예선 연표
3. 변천사
3.1. 본선 16개국 체제 시절 (1934 ~ 1978)
3.2. 본선 24개국 체제 시절 (1982 ~ 1994)
3.3. 본선 32개국 체제 시절 (1998 ~ 2022)
3.4. 현행 본선 48개국 체제 (2026 ~ )
4. 역대 참가국



1. 개요[편집]


역대 FIFA 월드컵의 북중미카리브 지역 예선 결과와 방식을 따로 분류해 서술하는 문서.

아시아 예선과 더불어, 어찌보면 아시아보다 더더욱 특정 국가가 티켓을 독식하고 있는 지역이다. 과거 멕시코의 독주가 펼쳐진 지역예선이었으며, 1970년대 들어서야 엘살바도르, 아이티, 온두라스 등 중미, 카리브 국가들도 본선진출을 경험하게 된다.

아시아와 더불어 대륙연맹 가입국들의 축구실력 격차가 큰 곳이라 여러 단계의 예선을 걸친다. 아시아와 마찬가지로 최종예선 개념이 고착화된 곳이며, 2018년까지 6개국이 경쟁하는 구도가 오래간 펼쳐져 최종예선을 이른바 Hexagonal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지칭할 정도였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최종예선이 8개국으로 늘었고, 2026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최종예선이 12개국으로 늘어났다.

2. 역대 지역예선 연표[편집]


연도
티켓
대륙간 PO
참가국
(경쟁률)

예선방식
예선 면제국
징계 국가
특징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1930년 우루과이
지역예선 없음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1934년 이탈리아
1장
-
4개국
(4 : 1)
계단식 토너먼트
없음
-
[1]
파일:프랑스 국기.svg
1938년 프랑스
1장
-
7개국
(7 : 1)
풀리그
없음
-
[2]
파일:브라질 국기(1889-1960).svg
1950년 브라질
2장
-
3개국
(1.5 : 1)
풀리그
없음
-
[3]
파일:스위스 국기.svg
1954년 스위스
1장
-
5개국
(5 : 1)
풀리그
없음
-
[4]
파일:스웨덴 국기.svg
1958년 스웨덴
1장
-
6개국
(6 : 1)
조별리그 (2개조)
최종 플레이오프
없음
-
[5]
파일:칠레 국기.svg
1962년 칠레
0.5장
파일:멕시코 국기.svg 멕시코
7개국
(7 : 1)
1차예선 조별리그 (3개조)
최종예선 풀리그
없음
-
[6]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966년 잉글랜드
1장
-
9개국
(9 : 1)
1차예선 조별리그 (3개조)
최종예선 풀리그
없음
파일:과테말라 국기.svg 과테말라[7]
[8]
파일:멕시코 국기.svg
1970년 멕시코
1장
-
12개국
(12 : 1)
1차예선 (4개조)
2차예선 (2개조)
최종 플레이오프
파일:멕시코 국기.svg 멕시코[H]
-
[9]
파일:독일 국기.svg
1974년 서독
1장
-
14개국
(14 : 1)
1차예선 (6개조)
최종예선 풀리그
없음
-
[10]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1978년 아르헨티나
1장
-
16개국
(16 : 1)
권역별 예선 (3개권역)
최종예선 풀리그
없음
-
[11]
파일:스페인 국기.svg
1982년 스페인
2장
-
15개국
(7.5 : 1)
권역별 예선 (3개권역)
최종예선 풀리그
없음
-
[12]
파일:멕시코 국기.svg
1986년 멕시코
2장
-
18개국
(9 : 1)
1차예선 토너먼트
2차예선 조별리그 (3개조)
최종예선 풀리그
없음
-
[13]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1990년 이탈리아
2장
-
16개국
(8 : 1)
1차예선 토너먼트
2차예선 토너먼트
최종예선 풀리그
없음
파일:벨리즈 국기.svg 벨리즈
파일:멕시코 국기.svg 멕시코
[14][15]
파일:미국 국기.svg
1994년 미국
1장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나다
24개국
(12 : 1)
권역별 예선 (2개권역)
2차예선 조별리그 (2개조)
최종예선 풀리그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H]
-
[16]
파일:프랑스 국기.svg
1998년 프랑스
3장
-
30개국
(10 : 1)
예비예선 토너먼트
1차예선 토너먼트
2차예선 토너먼트
3차예선 조별리그 (3개조)
최종예선 풀리그
없음
-
[17]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2002년 한일
3장
-
35개국
(11.67 : 1)
권역별 예선 (2개권역)
권역별 플레이오프
3차예선 조별리그 (3개조)
최종예선 풀리그
없음
파일:가이아나 국기.svg 가이아나[18]
[19]
파일:독일 국기.svg
2006년 독일
3장
파일:트리니다드 토바고 국기.svg 트리나다드 토바고
34개국
(11.33 : 1)
1차예선 토너먼트
2차예선 토너먼트
3차예선 조별리그 (3개조)
최종예선 풀리그
없음
-
[20]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2010년 남아공
3장
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 코스타리카
35개국
(11.67 : 1)
1차예선 토너먼트
2차예선 토너먼트
3차예선 조별리그 (3개조)
최종예선 풀리그
없음
-
[21]
파일:브라질 국기.svg
2014년 브라질
3장
파일:멕시코 국기.svg 멕시코
35개국
(11.67 : 1)
1차예선 토너먼트
2차예선 조별리그 (6개조)
3차예선 조별리그 (3개조)
최종예선 풀리그
없음
-
[22]
파일:러시아 국기.svg
2018년 러시아
3장
파일:온두라스 국기.svg 온두라스
35개국
(11.67 : 1)
1차예선 토너먼트
2차예선 토너먼트
3차예선 토너먼트
4차예선 조별리그 (3개조)
최종예선 풀리그
없음
-
[23][24]
파일:카타르 국기.svg
2022년 카타르
3장
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 코스타리카
35개국
(11.67 : 1)
1차예선 조별리그 (6개조)
2차 플레이오프 (3개조)
최종예선 풀리그
없음
-
[25]
파일:캐나다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멕시코 국기.svg
2026년 북미
3장
?
32개국
(10.67 : 1)
1차 예선 토너먼트
2차 예선 조별리그 (6개조)
최종 예선 조별리그 (3개조)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나다[H]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H]
파일:멕시코 국기.svg 멕시코[H]
-
[26]


3. 변천사[편집]



3.1. 본선 16개국 체제 시절 (1934 ~ 1978)[편집]


1930년 초대 월드컵에서 미국이 4강에 올라가는 예상 외의 호성적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북중미 지역은 1장의 진출권만을 얻게 된다. 1934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에서 멕시코와 미국이 북중미 최종예선에서 맞붙었고, 예선 일정의 촉박함으로 인해 이 예선 경기는 본선 개최지 이탈리아에서 대회 개막 3일 전에서야 펼쳐지게 되었다. 당시 미국이 도넬리의 4골에 힘입어 멕시코를 4-2로 누르고 마지막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진출국이 되었다.

그러나 치열했던 2회 대회 예선과 달리, 1938 프랑스 월드컵 예선은 쿠바 이외의 모든 국가들이 기권하며 쿠바가 자동적으로 본선에 진출했다. 이 쿠바가 월드컵 본선에서 8강까지 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2차 대전 전후 재개된 1950 브라질 월드컵 예선은 CONCACAF 출범 전 지역 축구연맹이었던 NAFC가 주관하는 대륙 챔피언십인 NAFC 챔피언십을 월드컵 예선으로 인정하여 대회 우승국과 준우승국에게 본선 진출권을 주었다. 당시 북중미는 북미 지역만 주관하는 북미 축구연맹 (NAFC)와 중미,카리브 지역을 주관하는 중미카리브 축구연맹 (CCCF)가 따로 있었기 때문인데, 1950 브라질 월드컵 예선은 이 CCCF의 가맹국들이 참가를 한 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1954 스위스 월드컵부터 CCCF 가맹국들이 다시 예선에 참가해 자체 지역예선을 실시했으며, 이들의 본선 진출권도 1장으로 줄었다. 1958 스웨덴 월드컵 예선에서도 1장만을 부여받았고, 1962 칠레 월드컵 예선에선 아예 0.5장의 티켓만을 부여받은 차별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1위 멕시코가 남미 지역의 파라과이를 누르는 선전을 하며 이 월드컵 본선 대회의 유일한 비유럽, 비남미 국가가 되었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예선에서도 최종예선에서 코스타리카, 자메이카를 누르고 멕시코가 또 다시 본선에 진출했다. 또한 이 시기부터 NAFC와 CCCF가 통합해 CONCACAF로 재출범했다.

이 시기부터 멕시코는 지역 강호의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1950 브라질 월드컵부터 1966 잉글랜드 월드컵까지 5회 연속으로 예선을 뚫어내면서 북중미에 걸린 1장의 티켓을 독식했다. 물론 이 시기 본선에서는 조별리그에서 모두 탈락하는 등 부진했지만, 이 성적 덕분에 1970 월드컵을 유치할 명분이 생겼고, 1970 월드컵에서 사상 첫 8강에 올라가는 자국 축구의 터닝 포인트를 마련하게 된다.

1970 멕시코 월드컵 예선은 멕시코가 빠졌기 때문에 그래서 더더욱 치열했다. 절대 강자가 없기 때문에 예선이 치열했고, 최종예선 진출권도 한 장 더 늘려 4강 플레이오프제를 도입했다. 미국과 아이티,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가 4강에 진출, 엘살바도르가 최후의 승자가 되어 중미 지역 첫 월드컵 본선진출국이 되었다. 당시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의 4강 플레이오프가 과열되어 축구 전쟁이 일어난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대회
팀수
진출 국가
특이사항
1962
3
파일:멕시코 국기.svg
아이티
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
코스타리카
파일:네덜란드령 안틸레스 국기(1959-1986).svg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홈 앤드 어웨이 풀리그

1966
3
파일:멕시코 국기.svg
아이티
파일:자메이카 국기.svg
자메이카
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
코스타리카

홈 앤드 어웨이 풀리그

1970
4
파일:아이티 국기(1964-1986).svg
아이티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파일:온두라스 국기.svg
온두라스
파일:엘살바도르 국기.svg
엘살바도르
홈 앤드 어웨이 토너먼트


1974 서독 월드컵부터 자체 예선 제도를 폐기하고, CONCACAF 선수권 대회의 우승팀에게 본선 진출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대륙 챔피언십을 월드컵 예선과 연계한 최초의 사례다. 1973년 아이티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개최국 아이티가 4승 1패의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해 첫 월드컵 본선에 나가게 되었다. 또한 카리브 지역 첫 월드컵 본선진출국의 타이틀도 가져갔다. 월드컵 터줏대감 멕시코는 이 대회에서 트리니다드 토바고에게 0-4로 패하는 등 부진한 끝에 탈락하고 말았다. 어이없이 연속 진출 기록이 끊긴 멕시코는 이후 절치부심해 1977년 CONCACAF 챔피언십 개최권을 가져왔고, 홈에서 열린 대회에서 전승 우승으로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3.2. 본선 24개국 체제 시절 (1982 ~ 1994)[편집]


월드컵 본선진출국이 24개국을 확대되어 북중미에게도 2장의 직행권이 생기게 되었다. 기회가 더 넓어져 월드컵 예선은 더욱 치열해졌다. 특히 이 시기 멕시코가 1982 월드컵 진출 실패, 1990 월드컵 참가 자격 박탈 등 어이없이 미끄러지면서 북중미 지역 예선은 유래 없는 혼돈의 시기를 맞이했다.

1982 스페인 월드컵 지역예선을 대체하는 1981 CONCACAF 챔피언십이 온두라스에서 개최되었다. 멕시코, 아이티, 엘살바도르 등 최근의 월드컵 본선 유경험팀들이 모두 올라와 가장 치열한 대회가 되었는데 여기서 온두라스가 우승, 엘살바도르가 준우승을 하며 나란히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특히 엘살바도르는 멕시코를 1-0으로 잡고 멕시코를 3위로 밀어내며 월드컵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1986 멕시코 월드컵 지역예선 또한 CONCACAF 챔피언십으로 대체되었다. 개최국이 멕시코였기 때문에 이 때 북중미에 배정된 진출권은 단 한장이었다. 챔피언십이 기존 6개국에서 9개국으로 본선 진출국이 늘었고, 홈빨이 너무 심하게 작용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전체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의 대회로 전환되었다. 또한 풀리그 대신 조별리그 제도를 도입했다. 캐나다가 해당 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5승 3무의 무패 우승을 달성해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지역예선은 CONCACAF 챔피언십이 대체한 마지막 예선이었다. 멕시코가 1988년 CONCACA U-20 선수권에서 연령 초과 선수를 기용한 게 적발되어 FIFA 주관 대회 자격 정지를 받아 이 대회에 참여하지 못했다. 멕시코가 없다는 것은 모든 국가들에게 크나큰 기회였고, 이 기회를 코스타리카, 미국이 잘 받아먹었다. 코스타리카는 마지막 CONCACAF 챔피언십의 챔피언이 되었고, 미국도 준우승을 차지해 1950년 대회 이후 40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1994 미국 월드컵 지역예선부터 다시 자체예선을 치르기 시작했다. 개최국 미국이 직행권을 가져갔기 때문에 북중미에는 1장의 직행 티켓과 1장의 대륙간 플레이오프 티켓이 부여되었다. 32개국 체제에서 쓰이게 되는 3차 조별리그 예선 - 최종예선 풀리그 제도가 이 시기 처음 도입되었다. 먼저 권역별로 1~3라운드의 토너먼트 라운드를 거쳐 중미 3팀, 카리브 3팀의 3차예선 진출팀을 가렸고, 북미의 멕시코, 캐나다가 자동으로 3차예선에 합류해 8개국이 2개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치렀다. 각 조의 1위와 2위가 최종예선에 진출해 다시 풀리그를 벌여 1위는 본선에 직행, 2위는 대륙간 플레이오프로 향했다. 멕시코가 무난히 최종 1위를 차지했고 캐나다가 선전하며 2위를 차지해 대륙간 플레이오프에 나섰다.


3.3. 본선 32개국 체제 시절 (1998 ~ 2022)[편집]


32개국 체제가 되면서 북중미의 직행 티켓은 3장으로 늘어났다. 그러면서 예선 체제도 다시 손보게 되는데, 이 때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쓰였던 3차예선 12강 조별리그 - 최종예선 6강 풀리그 체제가 처음 도입되었다. 매 대회 1차, 2차예선은 조금씩 방식이 달라졌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까지 3차예선-최종예선 뼈대는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2022 카타르 월드컵 지역예선에는 새 방식을 도입했고, 거기에 코로나 범유행이라는 조건까지 겹치면서 3차 12강 예선이 폐지되고 최종예선 전 단계의 예선이 상당히 간소화되었다. 대신 최종예선은 6개국에서 8개국으로 늘었다.

여기도 아시아 못지않게 지역 강호들과 다른 국가들의 실력차가 매우 크다. 때문에 북중미카리브 지역에서도 최종예선 진출국은 어느 정도 지역 강호만 올라갈 수 있는 빡센 자리이며, 멕시코, 미국 두 양대 강호와 중미의 터줏대감 코스타리카는 최종예선부터가 곧 월드컵 예선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할 만큼 거의 빼먹지 않고 올라온다.

1998 프랑스 대회 예선부터 2022 카타르 대회 예선까지 최종예선 진출국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3.4. 현행 본선 48개국 체제 (2026 ~ )[편집]


2026년 대회는 개최국인 캐나다, 멕시코, 미국은 제외하고, 러시아 월드컵 이전 체제 예선과 비슷하게 3차 예선 12강 체제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대신 3차 예선이 최종 예선으로 변경되었고, 조 1위팀은 본선 진출하고 조 2위 팀 중 2팀이 대륙간 플레이오프로 진출하기로 결정하였다.

4. 역대 참가국[편집]


국가명
첫 참가
CONCACAF 예선 참가횟수
본선 진출 횟수
통산 전적
비고



득점
실점
득실차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1934
19회
10회
[USA]
84
40
44
287
191
+96
[27]
파일:멕시코 국기.svg 멕시코
1934
17회
14회
[MEX]
118
40
27
443
131
+312
[28]
파일:쿠바 국기.svg 쿠바
1934
13회
없음
[CUB]
22
20
30
92
105
-13
[29]
파일:아이티 국기.svg 아이티
1934
15회
1회
[HAI]
41
16
34
142
116
+26
[30]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나다
1958
15회
2회
[CAN]
61
38
36
212
141
+71
[31]
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 코스타리카
1958
17회
6회
[CRC]
92
46
46
307
182
+125
-
파일:과테말라 국기.svg 과테말라
1958
16회
없음
[GUA]
52
32
42
205
148
+57
[32]
파일:퀴라소 기.svg 퀴라소
1958[33]
17회
없음
[CUW]
16
20
29
69
119
-50
[34]
파일:온두라스 국기.svg 온두라스
1962
15회
3회
[HON]
69
43
50
261
199
+62
[35]
파일:수리남 국기.svg 수리남
1962
15회
없음
[SUR]
22
14
33
106
115
-9
[36]
파일:자메이카 국기.svg 자메이카
1966
12회
1회
[JAM]
37
33
46
124
143
-19
[37]
파일:트리니다드 토바고 국기.svg 트리니다드 토바고
1966
15회
1회
[TRT]
56
28
55
205
183
+24
-
파일:버뮤다 기.svg 버뮤다
1970
8회
없음
[BER]
16
10
14
83
58
+25
[38]
파일:엘살바도르 국기.svg 엘살바도르
1970
14회
2회
[SLV]
70
33
57
260
180
+80
[39]
파일:푸에르토리코 기.svg 푸에르토리코
1974
10회
없음
[PUR]
7
7
15
32
57
-25
[40]
파일:앤티가 바부다 국기.svg 앤티가 바부다
1974
11회
없음
[ATG]
15
6
25
72
98
-26
[41]
파일:파나마 국기.svg 파나마
1978
12회
1회
[PAN]
38
26
50
142
178
-36
-
파일:가이아나 국기.svg 가이아나
1978
11회
없음
[GUY]
8
6
24
40
89
-49
[42]
파일:바베이도스 국기.svg 바베이도스
1978
9회
없음
[BRB]
11
6
24
38
76
-38
[43]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도미니카 공화국
1978
9회
없음
[DOM]
12
6
15
50
54
-4
[44]
파일:그레나다 국기.svg 그레나다
1982
8회
없음
[GRN]
8
3
18
51
59
-8
[45]
파일:세인트루시아 국기.svg 세인트루시아
1994
7회
없음
[LCA]
7
1
16
32
62
-30
-
파일:니카라과 국기.svg 니카라과
1994
8회
없음
[NCA]
9
1
15
35
45
-10
-
파일: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국기.svg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1994
8회
없음
[VIN]
15
7
40
80
186
-106
-
파일:아루바 기.svg 아루바
1998
7회
없음
[ARU]
5
1
14
26
61
-35
[46]
파일:도미니카 연방 국기.svg 도미니카 연방
1998
7회
없음
[DMA]
4
5
15
20
58
-38
-
파일:케이맨 제도 기.svg 케이맨 제도
1998
7회
없음
[CAY]
0
6
14
8
53
-45
-
파일:벨리즈 국기.svg 벨리즈
1998
7회
없음
[BLZ]
8
6
15
37
59
-22
-
파일:세인트키츠 네비스 국기.svg 세인트키츠 네비스
1998
7회
없음
[SKN]
14
8
14
72
62
+10
-
파일:바하마 국기.svg 바하마
2002
6회
없음
[BAH]
4
4
10
20
58
-38
[47]
파일:영국령 버진아일랜드 기.svg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2002
6회
없음
[VGB]
0
3
11
7
53
-46
-
파일:미국령 버진아일랜드 기.svg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2002
6회
없음
[VIR]
3
0
16
8
95
-87
-
파일: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기.svg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2002
6회
없음
[TCA]
1
0
12
6
68
-62
-
파일:몬트세랫 기.svg 몬트세랫
2002
6회
없음
[MSR]
2
3
8
17
49
-32
-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0-25 11:08:43에 나무위키 FIFA 월드컵 지역예선/북중미카리브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미국, 멕시코, 쿠바, 아이티가 참가했는데 실력에 따라 라운드를 차등적으로 배분하면서 쿠바와 아이티는 1라운드, 1라운드 승자와 멕시코가 2라운드를 치르고 미국과 2라운드 승자가 최종 결승전을 가지는 방식이었다. 특이하게도 예선 일정이 너무 촉박해져 미국과 멕시코의 최종 3라운드는 대회 개최지인 이탈리아 현지에서 치러졌다. 미국이 4-2로 승리했으며 멕시코는 이 한경기를 끝으로 다시 이탈리아에서 멕시코로 돌아가야 했다.[2] 7개국이 참여했으나 쿠바를 제외한 전원이 기권하며 쿠바가 자동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특이하게도 이 당시 콜롬비아가 북중미 예선 조에 배정되었는데, 콜롬비아 역시 기권하면서 의미없는 일이 되었다.[3] 당시 CONCACAF 이전 존재했던 대륙 연맹인 NAFC가 1949년 NAFC 챔피언십을 월드컵 예선으로써도 활용했다. 대회 우승국 멕시코와 준우승국 미국이 월드컵 티켓을 따냈다.[4] 다시 북중미에 1장의 티켓만이 부여되었다. 5개국 중 코스타리카, 쿠바가 중도 기권했고, 미국, 멕시코, 아이티간의 풀리그 끝에 멕시코가 1위를 차지하고 본선에 진출했다.[5] 이때만 해도 영국의 자치령이었던 캐나다가 처음 월드컵에 참여했다. 6개국은 2개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하고 각 조 1위가 최종 플레이오프에서 홈 앤드 어웨이로 맞붙었다. 멕시코가 코스타리카를 1승 1무로 누르고 또다시 본선에 진출했다.[6] 북미, 중미, 카리브지역으로 나누어 조 편성을 했다. 북미 조에서 멕시코, 중미 조에서 코스타리카, 카리브 조에서 네덜란드령 안틸레스가 올라왔고, 최종예선에서 멕시코가 접전끝에 1위를 차지해 대륙간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7] 행정 조치 위반으로 인해 실격[8] 지난 대회와 방식은 같았으나 이번엔 지역 상관없이 조를 편성했다. 멕시코, 코스타리카가 또 다시 최종예선에서 격돌해 또 멕시코가 1위를 차지했다.[H] A B C D E 개최국[9] 멕시코가 개최국으로 자동 진출을 확보해 처음으로 멕시코 없는 북중미 예선이 펼쳐졌다. 참가국의 증가로 1차예선이 4개조로 늘어났고, 각 조 1위 4팀이 4강과 결승 라운드를 통과해야 1장의 티켓을 얻는 방식이었다. 아이티와 엘살바도르가 3차전 중립지 플레이오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엘살바도르가 사상 첫 본선진출을 일궈냈다. 또한 2차예선에서 그 유명한 축구 전쟁이 일어났다.[10] CONCACAF 챔피언십을 월드컵 예선으로 고스란히 활용한 최초의 대회다. 6개국이 진출한 최종예선에서 아이티가 멕시코와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제치고 대회 우승과 함께 첫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지었다.[11] 이번에도 1977 CONCACAF 챔피언십이 월드컵 예선을 대체했다. 권역별 예선에서 코스타리카가 떨어지는 이변이 일어났고, 수리남이 처음 최종라운드에 진출했다. 그러나 챔피언십 본선에선 멕시코가 전승 우승을 달성하며 무난하게 8년만의 월드컵 복귀를 확정지었다.[12] 1981년 CONCACAF 챔피언십이 북중미 예선을 대체했다. 24개국으로 본선 진출국이 늘어나면서 북중미에도 2장의 출전권이 배정되어 챔피언십 준우승국까지 본선행 티켓을 얻게 되었고, 중미의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가 나란히 우승, 준우승을 가져가면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멕시코는 3위로 충격의 지역예선 탈락을 하고 만다. 당시 라리가에서 활약하던 우고 산체스가 있었음에도 나타난 결과라 충격은 배가 되었다.[13] 1985 CONCACAF 챔피언십이 북중미 예선을 대체했다. 그러나 방식은 많이 달라져서 따로 개최국을 정하지 않고 홈 앤드 어웨이로 모든 경기를 다 소화했다. 멕시코가 개최국의 자격을 넘겨받아 예선에 합류하지 않았고, 멕시코가 빠진 예선에서 캐나다가 돌풍을 일으키며 온두라스, 코스타리카를 제치고 사상 첫 우승과 함께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14] 1989 CONCACAF 챔피언십이 예선을 대체했다. 지난 대회 본선진출국 캐나다가 챔피언십 본선에도 올라오지 못하는 이변이 발생했고, 대신 과테말라와 미국이 선전하며 챔피언십에 올라갔다. 항상 최종예선에서 아쉽게 떨어진 코스타리카가 드디어 예선 1위로 본선에 진출했고, 미국도 2위를 차지하며 40년만의 월드컵 본선행에 성공했다.[15] 참가의향국 중 벨리즈가 협회의 재정 파탄 때문에 FIFA로부터 자격 정지를 받아 대회에서 퇴출되었다. 또한 멕시코는 U-20 대회에서 선수들의 연령을 조작한 것이 발각되어 FIFA 주관 모든 대회에 2년 자격정지를 받아 예선 참가 자격이 박탈되었다.[16] CONCACAF 챔피언십이 폐지됨에 따라 다시 자체적인 월드컵 예선이 시작되었다. 또한 미국이 본선 개최국라 직행 티켓이 한 장 줄어들었다. 대신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배정되어 예선 최종 2위에게 부여되었다. 버뮤다와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등 카리브 지역의 출전국들이 새로 참가하며 2차예선까지 진출했으나 역부족이었고 최종예선에선 멕시코가 무난하게 1위를 차지한 가운데 캐나다가 2위로 대륙간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북미 지역이 독주를 펼쳤다.[17] 1차-2차-3차-최종예선의 틀이 처음 갖춰진 예선이다. 신생 독립국들이 다수 참여하면서 하위 랭킹 팀들이 많아짐에 따라 예비예선 또한 도입되었다. 3차례의 토너먼트 예선 후 가려진 6개국과 3차예선부터 시작하는 FIFA 랭킹 상위 6개국이 조별리그로 각 조 2위까지 6개국이 최종예선에 진출하고, 6개국이 홈 앤드 어웨이로 풀리그를 가져 3위까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랭킹이 낮아 1차예선부터 시작한 자메이카가 본선에 진출하는 이변이 연출되었다.[18] 예선 직전 기권으로 대회 퇴출 조치[19] 지난 대회와 달리 철저하게 중미, 카리브 지역을 나눠 1차와 2차 예선을 진행했다. 또한 북미 지역 최하위 랭커 캐나다를 2차 플레이오프부터 출발시키게 했다. 3차예선부터는 이전 대회와 같은 방식이었다. 코스타리카가 예상보다 더 강력한 전력으로 예선 1위를 차지하며 본선에 진출했고 멕시코와 미국이 간발의 차로 온두라스를 제치고 본선에 합류했다.[20] 이 대회부터 북중미 지역에도 대륙간 플레이오프 티켓이 배정되어 최종예선 4위까지 기회가 생겼다. 코스타리카, 트리니다드 토바고, 과테말라의 3위 싸움이 치열했던 최종예선에서 결국 코스타리카가 본선 직행 막차를 탔고,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대륙간 플레이오프에 턱걸이했다.[21] 3차예선과 최종예선 방식은 동일했으나 1차예선의 규모가 늘어나고, 2차예선에 미국, 멕시코, 코스타리카 등 탑 랭커 팀들도 참여하게끔 룰이 살짝 바뀌었다. 온두라스가 코스타리카를 제치고 최종예선 3위를 차지해 28년만의 본선행에 성공했다.[22] 다시 예선 방식이 소폭 수정되었다. FIFA 랭킹 상위 6개국은 3차예선으로 직행하고, 2차예선에 조별리그가 도입되어 각 조 1위만 3차예선에 진출하게끔 바뀌었다. 이후 방식은 이전과 동일하다. 멕시코가 플레이오프 순위까지 떨어지는 굴욕 속에 겨우겨우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기사회생하며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23] 조별예선이 4차예선으로 올라가고, 그 사이에 한 번의 토너먼트 라운드를 더 삽입해 복잡도가 한층 올라갔다. 지난 대회 예선에서 최종예선에 진출한 6개국이 자동적으로 4차 예선에 직행했고, 자메이카, 아이티가 3차예선 직행을, 나머지 팀들은 1차와 2차 예선부터 진행해야 하는 방식이었다.[24] 지난 대회 멕시코보다도 더 부진한 끝에 미국이 플레이오프 조차 나가지 못하며 탈락했다. 반면 파나마는 3위로 본선 직행에 성공해 월드컵 본선 데뷔 무대를 가지게 되었다.[25] 대회 방식이 완전히 바뀐 첫 대회다. 코로나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예선 방식이 한 차례 전면적으로 바뀌는 등 부침을 겪었고, 1차예선부터 조별리그를 도입해 각 조 1위만 2차예선에 진출하여 단순하지만 한 번에 많은 팀을 솎아내는 방식이 되었다. 1차예선 당시 코로나가 굉장히 심했기 때문에 홈 앤드 어웨이의 원칙을 포기하고 진행했고, 2차예선부터 다시 홈 앤드 어웨이 원칙이 적용되었다. 지난 대회 FIFA랭킹 상위 5팀은 아예 최종예선 직행이라는 큰 혜택을 보며 대회를 시작했다. 대신 최종예선이 전통적인 6개국 체제에서 벗어나 8개국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정작 최종예선 1위는 1차예선부터 거친 캐나다가 차지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26] 48개국 체제로 확장됨에 따라 북중미 지역에도 6장의 직행 티켓이 배정되었다. 그러나 차기 대회가 미국, 멕시코, 캐나다 3개국 공동개최 대회라 실질적으로 2026 예선에서는 3장의 티켓을 두고 북중미 예선 참가팀들이 경쟁하게 된다. 단, 개최 대륙에게 주어지는 추가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있어서 북중미 최종예선 각조 2위 중 성적이 제일 낮은 한 팀을 제외한 두 팀이 대륙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USA] 1934, 1950, 1990, 1998, 2002, 2006, 2010, 2014, 2022[27] 역시 1930년 원년 대회 참가국으로 1934년 예선을 뚫고 2회 연속 본선진출을 했다. 그러나 1938 대회를 불참하고 전후 열린 1950 대회에서 북미 대표로 본선에 올라 잉글랜드를 잡는 대 이변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후 40년 동안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고 1990 이탈리아 대회에서 드디어 북중미카리브 예선을 통과해 월드컵 본선에 복귀했다. 이후 1994년 대회를 개최하며 예선을 면제받았고,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제외하면 매번 예선을 뚫고 있다.[MEX] 1950, 1954, 1958, 1962, 1966, 1978, 1994, 1998, 2002, 2006, 2010, 2014, 2018, 2022[28] 1930년 원년 대회 출전국으로 1934 대회에도 예선에 참가했지만 미국에게 져 본선행이 좌절되었다. 이후 1938 대회를 불참했고, 한동안 월드컵 예선에 개근하다가 1970년 대회를 개최하며 처음으로 예선을 면제받았다. 이후 1986년 대회를 한번 더 개최해 자동출전했다. 그러나 1990 대회를 앞두고 연령 조작 사건이 터져 FIFA로부터 대회 참가권 박탈 징계를 받아 예선에 참가도 못해봤다. 이 징계 이후로는 문제없이 월드컵 예선에 참가하며 매번 본선 티켓을 따내고 있다.[CUB] 최고기록 최종예선 5위
1982
[29] 1934 이탈리아 대회부터 월드컵 예선에 참가했을 정도로 그 역사는 오래되었으나 꾸준한 참가를 하지 못해 전적이 상대적으로 적게 쌓였다. 1938년 대회 본선에 진출해 8강까지 갔지만 이는 지역예선에 참여한 다른 국가들이 모조리 기권하며 어부지리로 한 경기도 치르지 않고 본선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1954, 1970 대회 예선은 FIFA에게 참가 신청을 반려당했고, 1958, 1962, 1974, 1986 대회는 불참, 1994 대회는 미국에서 열리는 이유로 인해 기권했다. 하지만 1998 대회부터는 예선에 문제없이 참가중이다.[HAI] 1974[30] 1934 대회에 처음 참여했으나 1938, 1950 대회는 참가를 거부당했고, 이후 1954 대회에 참가했으나 다시 1958, 1962, 1966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1990 대회에서 한 번 더 참가가 반려된 것을 제외하곤 이후 예선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1974 대회 본선 진출도 경험했었다.[CAN] 1986, 2022[31] 1958년 사실상의 독립국이었지만, 아직 완벽한 독립 국가의 형태가 아닐 때 처음 참여했고 이후 두 대회를 쉬었다가 1970 멕시코 대회 지역예선부터 개근중이다.[CRC] 1990, 2002, 2006, 2014, 2018, 2022[GUA] 최고기록 최종예선 5위
2006
[32] 북중미카리브 지역예선에서 본선에 오르지 못한 국가 중 가장 전적이 좋은 팀이다. 그만큼 추후 월드컵 본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기도 하다.[33] 전신 네덜란드령 앤틸레스 시절 포함[CUW] 최고기록 최종예선 3위
1962
[34] 과거 네덜란드 앤틸레스 연방으로 2010 월드컵 예선까지 참가했다가 현재는 퀴라소가 FIFA 공인 후계 지위를 받아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HON] 1982, 2010, 2014[35] 1978 아르헨티나 대회 기권을 제외하고 참가 이래 모두 개근 중이다. 1970 멕시코 대회 예선 참가 당시 축구 전쟁에 휘말린 국가였다.[SUR] 최고기록 최종예선 6위 1978[36] 1990 이탈리아 대회 기권을 제외하고 참가 이래 모두 개근중이다.[JAM] 1998[37] 첫 참가는 1966 잉글랜드 대회 예선이었고, 1974 서독 대회, 1986 멕시코 대회는 기권으로, 1982 스페인 대회는 FIFA에게 참가 거부를 당해 예선에 참여하지 못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경험이 있다.[TRT] 2006[BER] 최고기록 3라운드 1994[38] 의외로 월드컵 예선에 참여한 지는 오래됐다. 그러나 1970 대회 예선에 참여한 후 1974~1990 월드컵에 불참했고 1994 대회에 참여했다가 1998 대회에는 기권하는 등 갈지자 행보를 이어나갔다. 2002 대회부터 정규적으로 참가하고 있다.[SLV] 1970, 1982[39] 첫 참가였던 1970 멕시코 월드컵 지역예선을 뚫으며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본선에서 한계를 보이며 3전 전패를 기록했다. 이후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해 두 번째 본선 기회를 얻었으나 본선 역사상 최다점수 패배를 기록하는 등 극도로 부진한 끝에 또 3전 전패를 기록, 현재 월드컵 본선 통산 기록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기록중이다.[PUR] 최고기록 2라운드 2014[40] 1974 대회에 첫 참가를 했고, 이후 1978~1982 두 대회를 연속 불참했다. 그 이후 잘 참가하다가 2006 독일 대회 예선을 불참했으나 이후 2010, 2014, 2018, 2022 대회에 연속으로 참가하고 있다.[ATG] 최고기록 3라운드 2014[41] 1974 대회 예선 첫 참가 이후 1978, 1982 대회에 불참했다. 이후에는 개근 중이다.[PAN] 2018[GUY] 최고기록 3라운드 2014[42] 2002 한일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FIFA 징계로 인해 대회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 1978 대회 첫 참가 이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BRB] 최고기록 2라운드 2002[43] 1978 대회 첫 참가 이후 1982, 1990 대회는 불참했고, 1986 대회는 도중 기권했다. 또한 2018 대회는 출전 선수의 자격이 문제가 되어 3차예선 도중 실격처리되었다.[DOM] 최고기록 2라운드 1998, 2006, 2014[44] 1978 첫 참가 이후 1982, 1986, 1990 대회에 참가를 하지 않았다.[GRN] 최고기록 3라운드 2018[45] 1982 첫 참가 이후 1986 대회는 기권, 1990, 1994 대회는 참가를 하지 않았다.[LCA] 최고기록 2라운드 2006, 2010, 2014[NCA] 최고기록 3라운드 2018[VIN] 최고기록 3라운드 1998[ARU] 최고기록 2라운드 2018[46] 과거 퀴라소, 신트마르턴과 함께 네덜란드령 앤틸레스 제도로 출전했으나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부터 독자적으로 출전하기 시작했다.[DMA] 최고기록 2라운드 2006, 2014[CAY] 최고기록 2라운드 2014[BLZ] 최고기록 3라운드 2018[SKN] 최고기록 3라운드 2006[BAH] 최고기록 2라운드 2010[47] 1998 대회 참가를 했으나 이내 기권했고, 이후 대회인 2002 대회부터 예선에 실제로 참여하고 있다.[VGB] 최고기록 1라운드[VIR] 최고기록 2라운드 2014[TCA] 최고기록 1라운드[MSR] 최고기록 1라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