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브 연합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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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브라질과 알가르브의 연합왕국
Reino Unido de Portugal, Brasil e Algarves

파일: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브 연합왕국 국기.svg
파일:포르투갈 브라질 알가르브 연합왕국 국장.svg
국기
국장
Vis Unita Maior Nunc et Semper
단결은 이제와 항상 영원히 가장 강력한 힘이다
상징
국가
애국의 찬가
(Hymno Patriótico)

지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Portuguese_empire_1800.png

1815년~1822년(1825년[1])
성립 이전
브라질 독립 이후
포르투갈 왕국
포르투갈 왕국
브라질 식민지
브라질 제국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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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포르투갈 브라질 알가르브 연합 왕국 성립
1822년 브라질 독립 전쟁 발발
1825년 연합왕국 해체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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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현재의 포르투갈과 브라질의 대부분, 과거 포르투갈의 식민지
수도
리우데자네이루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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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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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
전제군주제(1815~1822)
입헌군주제(1822)
국가원수
국왕
역대 국왕
마리아 1세(1815~1816)
주앙 6세(1816~1825)


1. 개요
2. 역사
3. 역대 군주
4. 구성국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1815년부터 1822년까지 포르투갈브라질, 포르투갈의 옛 식민지들에 존재했던 국가이다.


2. 역사[편집]


나폴레옹이 포르투갈 본토를 점령하자 포르투갈의 브라간사 왕가는 대서양을 건너 포르투갈 제국의 가장 거대하고 부유했던 식민지 브라질로 망명하게 되었다. 이때 식민지였던 브라질은 포르투갈 본토와 가치를 가진 포르투갈-브라질 연합왕국의 새로운 본토로 격상되면서 포르투갈의 새로운 중심지로 성장한다. 또 브라질 식민지의 중심지였던 리우데자네이루는 포르투갈의 수도로 선포됐는데, 여담으로 이는 유럽 식민국가들의 식민지 도시가 수도로 선포된 유일한 사례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자 브라간사 왕가는1821년 다시 포르투갈로 귀환했지만[2] 이미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단순한 식민지로 남아있을 의사가 없을 정도로 정치적 입지, 경제적 입지가 성장했고 그에 따라 막강한 발언권을 가지게 되었으며 자치권도 폭넓게 확대되었다. 결국 상술했듯이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단순한 식민지에서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브 연합왕국을 선포할 정도로 성장했으며, 리스본의 본국 정부는 브라질 자치 정부에 대해 간섭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포르투갈 본국 정부가 위협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결국 포르투갈 의회는 연합왕국을 해체하고 브라질을 포르투갈 왕국의 단순 식민지로 격하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당연히 브라질인들은 격분했고 결국 포르투갈 국왕 주앙 6세의 아들인 페드루 1세가 브라질인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1822년 9월 7일 독립을 선포하고 10월 17일 브라질 제국을 선언했다. 그리하여 브라질은 피흘리지 않고 독립하고 1825년 리스본 정부에서 브라질 제국을 인정하면서 연합왕국은 해체되었다.


3. 역대 군주[편집]





4. 구성국[편집]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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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반적으로는 브라질이 독립을 선포한 1822년을 멸망으로 보지만 공식적으로 멸망한 것은 포르투갈 정부에서 브라질의 독립을 승인하고 브라질 독립 전쟁이 종결된 1825년이다.[2] 사실 주앙 6세가 브라질에서 사는 것도 나름 괜찮았는지 밍기적거리다가 자유주의자들의 시위가 거세지던 때 쯤에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