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리 앙리/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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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티에리 앙리의 국가대표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청소년 시절[편집]


1996년 청소년 대표로 유럽 청소년선수권대회 우승 트로피를 안겼고, 1997년 FIFA U-20 월드컵에서 맹활약하며 세계적으로도 유망한 선수로 인식된다.[1]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티에리는 96년 프랑스 풋볼에서 선정한 올해의 유망주상, 97년 프랑스 프로축구협회에서 선정한 올해의 유망주상을 수상하면서 프랑스 최고의 유망주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3.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편집]


이후 1997년 10월 남아공과의 경기에서 국가대표에 데뷔한 앙리는 계속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자국에서 열린 1998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하게 되었다. 1차전 남아공전부터 주전 오른쪽 윙포워드로 출전하였으며 후반 추가시간에 골키퍼를 넘기는 칩슛으로 골을 기록하며 3:0 승리에 기여했다. 2차전 사우디전에서도 주전으로 출전하여 2골을 넣으며 대회 2경기만에 3골을 기록했다. 3차전 덴마크전에서는 주전 선수들의 체력 안배 차원에서 교체로 출전했고 16강 파라과이전부터 다시 주전으로 출전했으며 후반전에 부상을 당하면서 교체 아웃되었다. 8강 이탈리아전부터는 교체로 출전했으며[2] 승부차기에서 4번 키커로 나와 성공시키며 4강 진출에 공헌한다. 4강 크로아티아전에서는 전반 31분에 일찌감치 교체로 들어왔으며, 결승 브라질전에서는 출전하지 못했으나 조국 프랑스는 브라질을 이기고 우승을 차지하여 월드컵을 들어올린다.

결과적으로 주전 공격수는 스테판 기바르쉬였고, 2~3옵션의 스트라이커는 크리스토프 뒤가리다비드 트레제게였지만 기바르쉬는 한 골도 넣지 못했고 뒤가리와 트레제게는 겨우 한 골만 넣은 것에 비해 앙리는 3골이나 넣어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3]

4. UEFA 유로 2000[편집]


유로 2000에서도 역시 주전으로 참가했다. 원톱 스트라이커로 니콜라 아넬카가 나올때는 왼쪽 윙포워드, 크리스토프 뒤가리가 나올때는 원톱 스트라이커로 출전했다.[4] 이 대회에서도 3골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견인했다.

1차전 덴마크전부터 폭발적인 드리블로 골을 기록했고[5] 2차전 체코와의 경기에서는 상대 수비수의 어이없는 백패스를 가로채 가볍게 마무리하며 골을 기록했다. 3차전 네덜란드전은 주전 체력 안배 차원에서 결장했으며 8강 스페인전부터 다시 선발로 출전했다. 4강 포르투갈전에서는 상대 수비수가 가로막는 상황에서 오른발 터닝슛으로 동점골을 기록했고, 결승 이탈리아전에서도 선발로 나와 풀타임 출전하며 우승에 기여했다.

5.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편집]


2002 한·일 월드컵 역시 1998 프랑스 월드컵, 유로 2000 우승 멤버에 앙리의 전성기까지 더해져 프랑스는 당연히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 예상되었다. 하지만 1차전부터 좋은 찬스들을 모조리 날리며 팀의 처참한 패배에 일조했고 2차전 우루과이에서 전반에 스터드가 보일 정도의 위험한 태클로 다이렉트 퇴장 당하며 결과는 0:0 무승부. 3차전 덴마크전은 출장 정지로 나오지 못했고 결국 팀은 0:2로 패배하며 무득점 탈락하고 말았다.[6] 대회 시작 전에는 득점왕 후보 중 1명으로 꼽혔지만,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씁쓸하게 짐을 싸야만 했다. 대부분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전성기에 남아있는 큰 오점이었다.

6. 200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편집]


그래도 1년 후 조국 프랑스에서 개최된 200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에서 앙리는 조별리그 1차전 콜롬비아전 1골, 조별리그 3차전 1골 1어시스트, 준결승 터키전 1골 1어시스트, 결승 카메룬전 1골을 기록하는 등 대회 내내 총 4골 2어시스트로 조국 프랑스의 2연속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을 이끌고, 앙리 본인은 대회 골든볼과 득점왕을 동시에 수상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클럽팀에서의 압도적인 활약과 이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앙리는 2003년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 모두 2위를 기록하였다.

7. UEFA 유로 2004[편집]


UEFA 유로 2004에도 참가했으며, 잉글랜드와의 1차전에서 앙리는 후반 추가시간 페널티킥을 얻어내어 역전승에 기여하는 나쁘지 않은 출발을 했으나, 크로아티아의 2차전에서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 3차전 스위스전에서는 두 골을 때려 박으며 팀 승리의 크게 기여하는 등 프랑스가 조 1위로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8강전에서 이 대회 최고 돌풍의 팀 그리스를 만나 0:1 충격패를 당하며 팀은 8강에서 탈락했다. 앙리를 비롯한 트레제게·사하 등 공격진의 부진과 비에라-마케렐레의 부조화, 수비진의 노쇠화가 명확히 드러난 대회였다.

8. 2006 FIFA 월드컵 독일[편집]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다시 한번 앙리가 어떠한 스트라이커인지를 보여주었다. 1라운드에서 프랑스의 답답한 경기력 속에 한국[7]토고를 상대로 각각 한 골을 기록, 8강 브라질전에서는 지네딘 지단의 세트피스 크로스를 논스톱 다이렉트 슛으로 득점[8]에 연결하여 호나우두의 커리어 마지막 월드컵을 종료시켰고, 4강 포르투갈전은 문전상황에서 PK를 유발하여 결승골을 유도하였다. 이에 대한 공헌으로 인해 대회 득점왕이었던 클로제와 함께 월드컵 베스트 XI에 뽑혔다. 클럽 커리어에 비해 비교적 아쉽다고 평가받는 앙리의 국가대표 커리어에서 이름값을 해낸 몇 안 되는 대회. 그러나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선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으나 연장전에서도 승부가 나지 않고 실뱅 윌토르와 교체되었으며 승부차기 끝에 프랑스가 패배하며 아쉽게 두 번째 우승을 놓쳤다.

9. UEFA 유로 2008[편집]


2007년에는 미셸 플라티니가 가지고 있던 국가대표 최다골 타이틀을 경신해버렸다. 그리고 참가한 유로 2008에서는 프랑스의 대회 유일한 득점을 기록했고 프랑스는 1무 2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광탈했다. 그리고 대회 직후,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새로운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10.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편집]


2010 남아공 월드컵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 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 프랑스의 결승골을 만드는 과정에서 핸들링을 했는데, 심판이 이걸 골로 인정하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프랑스는 이렇게 본선에 진출하고도 A조에서 우루과이와 비겼을 뿐 나머지 두 팀[9]에게 연달아 패배하면서 조 꼴찌로 탈락했다. 이에 아일랜드 언론은 일제히 쌤통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쌤통 항목에 이 문단의 글귀가 그대로 적혀 있다.

앙리 본인은 경기 후에 핸들링임을 인정하긴 했지만 해결책은 재경기밖에 없다라 말하면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얼렁뚱땅 넘어가는 듯한 태도를 보여 전 세계적으로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한동안 아일랜드에서는 후덜덜한 분위기가 계속되었으며 급기야 수상까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재경기를 요청하는 사태까지 가고 말았다.

지단 이후의 프랑스를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팀은 팀대로 막장의 끝을 보여주면서 조별리그 무승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가지고 귀국했다. 그나마도 앙리가 활약할 수 있는 시간도 조별리그 2경기에 교체 출전해서 53분 뛰는데 그쳤다.[10] 게다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아오안 취급도 받고 있었다. 결국 2010 남아공 월드컵 직후인 2010년 8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자신의 맨 처음 월드컵은 우승으로 화려하게 시작했지만 마지막은 결국 너무 초라하게 조별리그에서 탈락해버렸다.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로서는 여러모로 아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11. 기타[편집]


국가대표로 나가 해트트릭을 기록한 적이 없다. 그리고 국가대표로 나가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시즌도 없다.

다비드 트레제게와의 조합은 이론상 완벽했지만[11] 현실은 시궁창으로 트레제게는 앙리에게 밀려 로테이션으로 활약했으며, 투톱으로 나오는 경기에서는 둘다 부진하는 등 궁합이 영 좋지 못했다. 그러나 앙리-트레제게 투톱은 파트리크 비에라-클로드 마케렐레의 중앙 라인처럼 실제로 제대로 가동된 적이 없지만 호사가들에게 뛰어난 조합으로 평가받았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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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라운드에서 대한민국과 경기를 치뤘는데 프랑스가 4:2로 승리하였고, 앙리와 트레제게가 사이좋게 2골씩 넣었으며 특히 경기 시작 10분만에 3골을 넣었다. 드리블 치는 앙리를 막고자 한국 수비수들은 태클을 시도했으나 앙리는 가볍게 제꼈다.[2] 16강전에서 골대를 맞추는 등 여전히 괜찮은 활약을 보이긴 했으나 조별리그 때의 모습에 비하면 아쉬운 점이 많았고 토너먼트에 들어가면서 수비적인 부분이 더욱 중요해지자 에메 자케 감독은 4-3-2-1 포메이션으로 바꿨고 그 과정에서 앙리는 교체멤버로 내려왔다.[3] 심지어 이 당시 국가대표팀에서의 앙리는 스트라이커가 아니라 오른쪽 윙포워드였다.[4] 뒤가리는 주로 왼쪽 윙포워드로 출전했다.[5] 약 60미터를 폭풍같이 드리블했고 마무리는 앙리의 전매특허 오른발 인사이드 밀어넣는 슛으로 골을 기록했다.[6] 당시 프랑스 대표팀은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앙리와 세리에 A 득점왕 다비드 트레제게, 리그 1 득점왕 지브릴 시세까지 총 3명의 리그 득점왕을 보유하고도 골을 기록하지 못했다.[7] 특히 한국과의 득점은 프랑스에게 매우 중요한 득점이었는데, 왜냐 그 전까지 프랑스는 월드컵 4경기를 무득점으로 마쳤기 때문이다. 앙리의 한국전 득점은 369분만에 터진 프랑스의 월드컵 골인 셈.[8] 여담으로 지단과 앙리가 같이 선발출장한 A매치 수는 60경기인데 지단 어시스트 - 앙리 골은 이때가 유일하다.[9] 멕시코에게 0:2 패배, 남아공에게 1:2 패배[10] 사실 바르셀로나에서도 09-10 시즌부터 앙리의 폼이 점차 하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브로 내려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11] 폭발적인 스피드와 돌파 그리고 완벽한 마무리를 보여주는 앙리, 피지컬과 헤더 경합이 우수하며 골 냄새를 잘 맡는 트레제게의 조합은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빅 앤 스몰 콤비다. 앙리는 빅 앤 스몰형 조합에서의 스몰맨 스타일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오히려 10번 유형의 공격수에 가깝지, 스몰맨형식의 어드밴스 포워드로 사용할 경우 앙리의 다재다능함이 반감된다.[12] 트레제게의 영혼의 파트너로 꼽히는 공격수는 유벤투스에서의 파트너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였으며, 둘의 찰떡궁합은 역대 최고의 투톱을 뽑을 때 거론될 정도이다. 앙리와 영혼의 파트너였던 선수는 데니스 베르캄프다. 비에라-마케렐레 라인 역시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제외하면 이름값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