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나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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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나우두의 수상 이력

파일:FIFA 로고.svg

1996 · 1997 · 2002
파일:발롱도르 트로피.png

1997 · 2002
파일:World Soccer.png

1996 · 1997 · 2002
파일:옹즈도르.png

1997 · 2002
파일:라리가 심볼(2016~2023).svg

1996-97 · 2003-04
파일:에레디비시 로고.svg

파일:European_Golden_shoe_Trophy.png

파일: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트로피.png

파일:AIC_logo.png

파일:골든볼.png

1998 FIFA 월드컵 골든볼

파일:실버볼.png

2002 FIFA 월드컵 실버볼

파일:골든슈.png

2002 FIFA 월드컵 골든슈

파일:브론즈슈.png

2006 FIFA 월드컵 브론즈슈

베스트팀
파일:ESM.png

1996-97 · 1997-98
파일: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로고.svg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심볼.svg

파일:유럽 축구 연맹 로고.svg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1868D6; font-size: 0.9em"
2002 UEFA 올해의 팀
파일:Ballon d'Or.png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ffffdd; font-size: 0.9em"
발롱도르 드림팀

1998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호나우두
3위
다보르 슈케르
2003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티에리 앙리
3위
호나우두
1996 Ballond'or
수상
마티아스 자머
2위
호나우두
3위
앨런 시어러
1998 Ballond'or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다보르 슈케르
3위
호나우두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Player of the Year 1998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마이클 오언

3위
호나우두

1997 코파 아메리카 MVP
호나우두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호나우두의 기타 정보

연도별 전 세계 축구 이적료 1위
1996
앨런 시어러
(2100만 유로)

1997
호나우두
(2800만 유로)


1998
데니우송
(3150만 유로)








레알 바야돌리드 CF
Real Valladolid Club de Fútbol
크루제이루 EC
Cruzeiro Esporte Clube

이름
호나우두
Ronaldo
본명
호나우두[1] 루이스 나자리우 지 리마
Ronaldo Luís Nazário de Lima
출생
1976년 9월 18일 (47세)[2]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적
[[브라질|

브라질
display: none; display: 브라질"
행정구
]]
| [[스페인|

스페인
display: none; display: 스페인"
행정구
]]

신체
183cm / 체중 100kg[3]
주발
오른발 (양발)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경영인
소속
선수
크루제이루 EC (1993~1994)
PSV 에인트호번 (1994~1996)
FC 바르셀로나 (1996~1997)
인테르나치오날레 (1997~2002)
레알 마드리드 CF (2002~2007)
AC 밀란 (2007~2008)
SC 코린치안스 (2009~2011)
경영
레알 바야돌리드 CF (2018~ / 회장 겸임)
크루제이루 EC (2021~ )
국가대표
98경기 62골[4] (브라질 / 1994~2011)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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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득점
414골
종교
가톨릭[1]
등번호
9번[2]


1. 개요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평가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6.3. 클럽 통계
7. 호나우두에 대한 말, 말, 말
8. 극성 팬덤과 비판
9. 선수 은퇴 후
10. 여담
11.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브라질의 前 축구 선수이자 現 레알 바야돌리드 CF, 크루제이루 EC의 구단주.[5]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현역 시절 브라질 대표팀에서 두 번의 월드컵[6]을 포함해 다섯 번의 국제 대회 우승[7]을 달성하고, 클럽에서는 바르셀로나,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를 거치며 각각 UEFA 컵위너스컵, UEFA컵, 라리가 우승을 1차례씩 차지했다.

또한 발롱도르 2회, FIFA 올해의 선수 3회, 라리가 득점왕 2회,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월드컵 골든볼 · 골든슈, 코파 아메리카 MVP · 득점왕 등의 개인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호나우두/클럽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호나우두/국가대표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바르셀로나, 인테르 시절

2001년 CNN 스포츠 과학자들이 평가한 전성기의 호나우두

전형적인 센터 포워드로, 183cm의 건장한 체형과 단단한 체격을 가진 선수가 스피드와 발재간, 드리블 실력, 정교한 슈팅을 양발로 날리는 기술까지 가지고 있었다.[8] 쉽게 말하자면 엄청나게 빠른데 드리블도 엄청나게 잘하고 슛도 엄청나게 잘 차며 피지컬도 상당히 좋고 양발도 잘쓰며 개인기까지 뛰어났다. 그리고 전성기 그를 대표하는 압도적으로 빠른 주력과 볼 컨트롤을 살려서 오프사이드 라인을 순간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에도 능했다. 스트라이커임에도 불구하고, 신기에 가까운 발재간으로 수비수들을 제쳐버리는 경이적인 드리블 능력도 그의 장점 중 하나. 후술할 부상과 자기관리 문제로 기량이 크게 하락한 이후에도 골 결정력은 상당해서,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7경기 동안 28회의 슈팅을 때려 8골을 넣는 탁월한 골 결정력을 보여주었다.[9]

이른바 개인의 축구력이 전술이 될 수 있었던 극소수의 선수 중 한명이었다. 축구 역사상 호나우두 정도로 무식할 정도로 순수하게 혼자서 '팀 전술을 상회하는 수준의 개인기량'을 뽐낸 선수도 거의 없다. 영상 비교가 그래도 수월한 선수 중에선 메시마라도나 정도가 비교대상이 될 수 있지만, 호나우두는 좀 더 '혼자서' 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메시와 마라도나는 10번으로서 플레이메이킹에도 능해 연계플레이도 하는 등 경기 자체를 지배하면서 개인기량을 뽐냈다면[10], 호나우두는 9번 정통스트라이커로써 그러한 미드필드적인 기능 없이, 진짜 문자 그대로 혼자서 중앙공격수의 기능만으로 공격을 한 측면이 있었다. 물론 이런 스타일은 개인의 파괴력은 둘째치고 공격작업 전반을 놓고 보면 메시나 마라도나의 방식에 비해 부담이 심하고 장기적으로 볼 때 비효율적인 것은 사실이다. 굳이 모든 공격 과정을 너무 대놓고 본인의 신체기능만으로 땜빵하는 스타일이기 때문. 물론 한편으론 본인이 할 만 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런 스타일은 이후 그의 유리몸 특성과 결합되어 주기적인 부상에도 영향을 아예 안줬다고 보긴 힘들 것이다.

전성기 호나우두는 경기 내용과 상관없이 그냥 공 잡으면 앞뒤 안 재고 '혼자서 돌격하여' 골을 넣는 스타일이라 상대 수비 입장에서는 공격루트도 단순해 예상이 쉬웠다. 그런데도 알고도 못 막았다. 이게 가능하려면 드리블만 잘해서도 안 되고, 피지컬만 좋아서도, 운동능력만 좋아서도, 센스만 있어서도, 슛팅만 좋아서도 안 되는, 말 그대로 중앙공격수로서 육각형이 꽉 차야만 겨우 가능할까 말까한 이야기다. 즉, 호나우두는, 한 명의 선수가 팀전술의 한 파츠로서 얼마나 잘 기능하느냐의 측면이 아닌, 한 명의 선수가 홀로 어느 정도까지 상대 진영에 파괴적일 수 있는가[11]를 논할 때 거의 반드시 거론되는 선수이며[12] 호나우두(R9)의 플레이스타일을 세부적으로 논하기 이전에, 먼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런 탈전술적 개인능력이다. 참고로 당연히 이 때 거론되는 호나우두는 99년도 부상 이전의 호나우두를 말한다. 부상 이후엔, 호나우두에게도 비로소 팀 전술이라는게 필요해졌다. 물론 팀 전술이야 언제나 필요하지만 그만큼 부상 이전의 호나우두는 공격에 있어서 팀 전술 의존도가 낮은 선수였다. 게다가 호나우두가 활약할 당시는 어느정도 현대적인 수비 전술(압박축구 등)이 정착된 시점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호나우두의 그러한 플레이는 더욱 놀라운 일이다.[13]

한준희, 장지현의 원투펀치에서 호나우두에 대해 고전적인 스타일, 클래식한 스타일의 스트라이커라는 평가를 내렸는데 이는 그가 시대에 뒤처진 스타일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스트라이커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모습에 너무나도 완벽하게 부합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발재간으로 수비수를 여럿 제치고 강한 슈팅으로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의 대표적인 이미지에 호나우두는 누구보다 어울리는 선수였다.

전성기 시절 그의 플레이의 가장 큰 특징은 완벽한 바디 밸런스와 폭발적인 순간 가속력, 페인팅, 테크닉을 활용한 드리블, 절륜한 슈팅 테크닉, 그리고 비교적 고른 양발 능력이었다. 전성기 때는 100m를 무려 10초 대에 주파하였고, 살이 찌면서 스피드가 떨어진 레알 마드리드 때도 팀 내에서 30m 달리기 1위였으며, 100m를 11초 내에 주파하였고 은퇴하기 직전에도 시속 36km/h를 찍을 정도로 폭발적인 순간 가속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어마어마한 순간 가속력을 바탕으로 공을 몰고 다니는 것이 호나우두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 여기에 볼을 소유하고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속도의 변화가 없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온 더 볼 상황에서의 스피드가 어마어마하였으며, 단순히 속도만 빠른 게 아니라 뛰어난 볼 컨트롤 능력과 탁월한 바디 밸런스, 수비수와의 경합 상황에서 압도할 수 있는 뛰어난 몸빵과 피지컬을 갖췄고 헛다리 짚기, 플립 플랩, 라 크로케타, 마르세유 턴, 스쿱 턴 등 다양한 개인기를 잘 구사하였다. 이를 이용해 엄청난 스피드로 드리블을 하면서도 동시에 화려한 개인기를 섞거나, 급격하게 방향전환을 하거나 턴을 할 수 있었다.

특히 헛다리 짚기는 그를 대표하는 전매특허 기술로 그가 굉장히 애용하고 잘 썼는데, 대부분의 선수들이 주로 교란용으로 이를 쓰는 반면 호나우두는 헛다리를 이용해 수비수는 물론 골키퍼마저 휙휙 따돌리고 지나가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헛다리 특성상 속도를 늦추거나 정지해야 하는데 호나우두는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도 그 속도를 온전히 유지하면서 잘 썼다. 수비수 다리 사이로 볼을 빼내는 영어로는 nutmeg, 한국어로는 소위 '알까기'에도 능했다. 이렇듯 2, 3명의 선수들을 제치는 장면은 허다하게 나왔으며, 스페셜 영상으로 보면 6명까지도 단번에 제치는 어마어마한 드리블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축구 역사상 최고의 드리블러를 꼽을 때 반드시 언급되는 선수이기도 하다.

물론 인테르 특히 부상 이후부턴 안 좋은 모습을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몇몇 팬들이 개화 가능성이 보였다면서 오히려 더 고평가를 하지만 지나치게 호나우두의 매력에 빠져버린 평가고, 냉정하게 말하면 그냥 그런 플레이를 시도했거나 시도해야 하는 환경에 놓여졌는데 그런 능력이 부족해서 기대치보다 잘 안 됐던 것이다.[14] 바르셀로나 시절보다 턴오버가 훨씬 더 늘어나고, 좀 더 낮은 위치에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떨어지는 특성이 도드라지고, 그래서 파괴력이 바르셀로나 시절보다는 떨어졌던 것이다. 리그나 팀을 바꾸면 헤매는 선수들은 몹시 많으며 호나우두라고 굳이 예외가 될 이유는 없다.

일부 팬들이 호나우두를 찬양할 때 논리적 오류가 있는데, 호나우두는 애초에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으니 패스 능력도 뛰어나다고 말을 하는 것은 뛰어나다는 말의 이중적인 의미를 이용하는 약간의 논리적 오류다. 인테르 시절 좀 더 내려와서, 측면에서 플레이할 때는 재능이 개화할 조짐도 있었고 팀 지원이 없어서 턴오버가 많았다고 말을 하는데 호나우두 개인 기량의 파괴력에 압도되어서 판단이 잘못된 모순이다. 호나우두의 놀라운 방향전환과 가속능력, 공을 컨트롤하는 능력과 슈팅 파괴력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패스할 장면이 많아지고 패스의 난이도가 낮아졌을 뿐이다. 그나마 인테르 시절은 신체 능력이 살아있을 시절이라 그 신체 능력으로 나름대로 주목할 만한 패스도 하고 이런 모습이 있었으나 레알 마드리드 시절의 모습을 보면 전성기 시절의 드리블, 가속, 슈팅력에 비해 패스 능력이나 공격지휘능력은 상당히 못 따라온다는 것은 명백하다. 물론 대단한 공격수고 강인한 육체, 볼 컨트롤과 킥능력을 가지고 있었던건 맞으니 아예 그 능력이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거나 서술되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한편으로는 상식적으로 호나우두가 그 능력까지 최상위 리그 일류급으로 뛰어나게 가지고 있었으면 축구란 게임과 호나우두가 만나는 순간 매경기마다 축구가 파괴되었어야 하며 지단과의 라이벌리 따위가 거론될 이유 자체가 사라졌을 것이다.[15]

이렇게 전성기의 호나우두는 볼컨트롤 능력, 드리블 능력, 슈팅력, 신체능력을 다 갖춘 만능 스트라이커였지만, 그 역시 굳이 단점을 찾자면 공중전 능력이 부족했다는 점[16]과 패스나 그를 통한 경기 운영 능력은 그저 그랬다는 점이 있다.

1998 월드컵 결승전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작[17]으로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준[18] 호나우두는[19] 이후 슬럼프에 빠져서 예전만한 경기력이 안 나오더니[20] 상술했듯이 1999년과 2000년 두 번의 무릎 부상과 2년의 공백기로 운동 능력과 역동성, 체력 등등 예전의 기량을 크게 잃어버리면서 전성기가 끝나 버린다. 복귀한 후인 2002년부터는 드리블을 줄이고 포처에 가깝게 변하면서 전방위적인 경기 영향력보다는 전방에서 골을 넣는 역할에 집중하는 성향의 스트라이커가 되었다. 물론 원체 기량이 타고난 선수였기 때문에 호나우두의 수많은 장점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아직 남아있던 발기술, 가속력, 오프 더 볼 감각, 골 결정력은 여전히 무서운 수준이라 포쳐 역할을 하기에는 충분했고, 기록적으로 봐도 레알 마드리드에서 세 시즌 연속으로 리그 20득점 이상[21]을 했다. 하지만 2005-06 시즌 AT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루이스 페레아의 백태클에 의한 발목 부상 이후로는 폼이 더 하락하였다. 2006-07 시즌 후반기 AC 밀란에서는 여전히 수준급 실력을 보여주긴 했으나 다시는 우리가 아는 페노메노의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호나우두의 가장 큰 단점은 뭐니뭐니 해도 유리몸이라는 것. 1999년과 2000년에 연이은 두 번의 무릎 부상과 2년간의 공백기로 인해 전성기 시절의 운동 능력이 실종되고 바디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전성기가 끝나버리고,[22] 이후에도 수차례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면서 기량이 하락했다. 즉 아직 한창인, 누군가에게는 처음으로 월드컵을 나가게 되는 나이일 수도 있는 만 24세에 불과한 나이에 전성기가 끝나버린 것. 이런 호나우두를 가리켜 국내의 팬들은 "신의 능력을 인간의 몸이 견디지 못했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타고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무리한 플레이 스타일이 잦은 부상을 초래한 측면도 있다. 1996년 생애 첫 무릎 수술을 받을 당시 의료진에 의하면 그의 허벅지 근육이 지나치게 발달된 탓에 무릎에 하중과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부상이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23] 호나우두의 플레이스타일은 위의 움짤에서 보듯이 굉장히 빠르면서도 역동적이고 현란한 움직임과 페인트를 애용하면서 상체 전체의 무게를 무릎에 집중시키는 드리블링을 구사하는, 즉 허벅지 근육과 무릎을 혹사시키는 플레이 스타일에 기인하여 선수 생활 내내 고질적인 부상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경기 도중 슬개건이 끊어져 실려나간 것만 두 번이고 양쪽이 전부 차례대로 끊어진 사실은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몸에 굉장한 무리를 주는 움직임을 동반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20대 후반부터 발병한 것으로 추정되는 갑상선 기능 저하증은 체중 증가까지 겹치며 이후 대중에게 익숙한 호뚱호돈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호나우두의 부상 원인 중 하나로 국대와 클럽을 가리지 않은 지나친 혹사는 빼놓을 수 없다. # 특히 90년대 축구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나이키와 브라질 국가대표의 가장 큰 돈벌이이자 흥행 수표였던 호나우두는 전성기 기간동안 쉼없이 장거리 대륙 이동을 하며 경기에 투입됐고 이 과정에서 몸이 말그대로 갈렸다. 수 십년이 흐른 현대의 발달된 영양학, 의술의 발달에도 과도한 혹사에는 별 도리가 없는데 이 당시 호나우두의 스케쥴은 가히 살인적이었던 것이다.

또한 큰 부상을 여러 번 당한 탓에 잘 거론되지 않는 호나우두의 또다른 문제점은 바로 게으른 천재라는 것이다. 게으르기만 하면 모를까, 자기 관리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체중 문제로 인해 부상이 초래됐고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 제일 아팠을텐데도 고칼로리 음식을 끊임없이 먹었던 것은 수많은 사진과 증언들이 증명하고 있다. 갑상선 질환 때문이라는 변명이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는데 갑상선이 막타를 쳐서 축구선수로서 도저히 간주할 수 없는 뚱보가 된 것이지 이미 그 훨씬 전부터 축구선수로서는 몹시 과체중이었다.

뿐만 아니라 축구선수에게는 체력적으로 좋을 게 전혀 없는 술과 담배도 즐겼다.[24] 게다가 식습관이나 기호품에 대한 무절제한 태도 뿐이었다면 모를까, 인테르 시절 친하게 지냈던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인터뷰나 카를로 안첼로티의 자서전, 동료 선수들의 증언 등에서 호나우두의 게으르고 방종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비에리의 자서전에 따르면 호나우두는 인테르 시절 매일 같이 저녁에 자신의 집에 찾아와 문을 열 때까지 차의 클락션을 빵빵거리고, 비에리가 어떤 날은 가기 싫었지만 결국 매일같이 호나우두랑 클럽에서 새벽까지 놀았다고 한다.[25] 그래도 비에리는 눈이라도 조금 붙이고 훈련하러 나갔는데 호나우두는 바로 출근했다고 한다. 몸에 무리가 많이 가는 플레이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브라질리언 공격수 계보답게(?) 호나우두도 술, 담배, 섹스, 폭식, 심야파티 등 상당히 방탕한 사생활을 이어갔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전성기를 단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26] 근데 방종과는 거리가 있던 카카는 왜.. 반대로 말하면 그러는데도 다른 2000년대 몇몇 브라질 특급스타들처럼 폭망까지 가진 않고 고점이 지난 이후에도 체면치레할 정도의 활약은 하며 지냈다는데서 역설적으로 호나우두의 재능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호나우두는 고질적인 큰 부상과 자기관리 부족으로 인해 에 비견되던 그 독보적인 기량을 온전히 보여준 기간이 짧았다. 최전성기는 바르사에서의 1996-97 시즌과 인테르에서의 1997-98 시즌, 그리고 1998 월드컵 결승 직전까지로 2년 정도였고[27], 좀 더 넓게 잡아도 무릎 부상이 터지기 전인 1999년까지였다. 이후엔 플레이 스타일을 바꿔 2002 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이런 스타일로 레알에서도 3~4년 간 활약하긴 했지만 흔히 말하는 전성기의 스타일은 아니었다. 허나 이 짧은 전성기 동안 발롱도르 2회, FIFA 올해의 선수 3회, 월드컵 2회 우승[28] · 1회 준우승, 코파 아메리카 2회 우승, 월드컵 골든볼 · 실버볼 · 골든슈 · 브론즈슈, 코파 아메리카 MVP · 득점왕 등 어지간한 월드클래스 선수들조차 평생 경험도 못할 커리어를 쌓았다. 특히 국가대표 커리어는 월드컵 우승만 세 번을 차지한 펠레가 아닌 이상 호나우두보다 확실히 낫다고 단언할 수 있는 선수는 세계 축구사를 통틀어 존재하지 않는다.[29][30] 국가대표 커리어 끝판왕.


4. 평가[편집]


호나우두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와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 2020 발롱도르 드림팀 센터포워드 부문 1위 링크[1]
  • 2020 스페인 마르카 주관 역대 최고의 선수 투표 3위 링크
  • 2019 마르카 주관 1990년대 최고의 선수 투표 1위
  • 2019 영국 인디펜던트 선정 21세기 최고의 선수 6위 링크
  • 2019 영국 포포투 선정 지난 25년간 최고의 선수 4위 링크
  • 2018 골닷컴 선정 1990년대 최고의 선수 1위
  • 2017 영국 포포투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0위 링크
  • 2017 네덜란드 SportWereld 선정 에레디비지 역대 용병 2위 링크
  • 2017 네덜란드 부트발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6위 링크
  • 2017 스페인 카데나세르 선정 지난 25년간 베스트 11 링크
  • 2017 브라질 글로부 주관 '호나우두 vs 호마리우' 투표 승리 (16년 투표와 다른 것) 링크[2]
  • 2017 아스날 '호나우두 vs 호날두' 투표에서 승리 링크[3]
  • 2016 유로스포르트 주관 '호나우두 vs 호날두' 투표 승리 링크[4]
  • 2016 골닷컴 기자단 '호나우두 vs 호날두' 투표 승리 링크[5]
  • 2016 파시온리베르타도레스 주관 '호나우두 vs 호마리우' 투표 승리 링크
  • 2016 브라질 글로부 주관 최고 대 최고 투표 '호나우두 vs 호마리우' 승리 링크
  • 2016 프랑스 풋볼 주관 역대 최고의 선수 투표 3위 링크
  • 2016 프랑스 풋볼 주관 '호나우두vs호날두' 투표 승리 링크
  • 2016 전 세계 전문가 71명을 대상으로 한 '호나우두 vs 호날두 vs 호나우지뉴' 조사에서 1위 링크
  • 2016 유로스포르트 기자단 선정 역대 최고 레전드 종합 5위 링크[6]
  • 2015 이탈리아 칼치오메르카토 주관 '호나우두 vs 호날두' 투표 승리 링크
  • 2015 스페인 문도 데포르티보 주관 역대 최고의 선수 투표 6위 링크
  • 2015 프랑스 레퀴프 선정 역대 최고의 남미 선수 5위 링크
  • 2015 코린치안스 구단 역대 레전드 21인 선정[7]
  • 2014 독일 브라보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TOP 9(랭킹 없음) 링크
  • 2014 골닷컴 명예의 전당 입성(5인) 링크
  • 2014 브라질 ME 선정 역대 베스트 11 링크
  • 2014 영국 데일리 메일 스포츠 명예의 전당 입성 링크
  • 2014 브라질 글로부에서 도시 상파울루에서 조사한 '자국 역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 투표 3위[8][9]
  • 2014 브라질 글로부 선정 '역대 브라질 베스트 11 선정' 투표 전체 3위[10]
  • 2014 프랑스 레퀴프 선정 월드컵 역대 최고의 선수 3위[11]
  • 2014 스페인 마르카 선정 '1982–2010년 월드컵 역대 베스트 11 선정' 투표 전체 1위 링크
  • 2014 영국 가디언 선정 월드컵 역대 최고의 선수 4위
  • 2014 영국 월드 사커 선정 월드컵 역대 최고의 선수 6위
  • 2014 영국 데일리 메일 선정 월드컵 역대 최고의 선수 3위
  • 2013 영국 월드 사커 주관 역대 베스트 11 공격수 4위(베스트 11 제외) 링크
  • 2012 브라질 플라카르 주관 역대 베스트 11 선정 링크
  • 2012 브라질 현역 선수들이 뽑은 최고의 우상 1위[12]
  • 2012 스페인 골닷컴 주관 역대 최고의 선수 투표 1위 링크
  • 2012 이탈리아 가제타 주관 역대 최고의 선수 투표 4위 링크
  • 2012 미국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주관 역대 최고의 선수 투표 19위 링크
  • 2012 영국 타임즈 선정 월드컵 역대 최고의 선수 8위 링크
  • 2011 브라질 글로부 주관 자국 역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 1위[13]
  • 2011 스페인 마르카 스포츠 명예의 전당 입성 링크
  • 2011 스페인 마르카 투표 '호나우두는 역대 최고의 공격수입니까? Yes 75%' (09년 투표와 다른 것) 링크
  • 2010 ESPN 사커넷 선정 역대 최고의 레전드 TOP 20(랭킹 없음) 링크
  • 2010 영국 가디언 주관 역대 베스트 11 투표 공격수 부분 1위 링크
  • 2010 독일 빌트 주관 역대 최고의 선수 투표 9위
  • 2010 피파 캐스트롤 인덱스 선정 월드컵 역대 최고의 선수
  • 2010 영국 더 선 선정 월드컵 역대 베스트 11 링크
  • 골닷컴 선정 2000년대 최고의 선수 링크
  • 2009 스페인 마르카 역대 최고의 공격수 투표 1위링크
  • 2009 피파 공홈 '역대 가장 위대한 월드컵 득점왕은?' 투표 1위[14]
  • 2007 AFS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2위
  • 2007 프랑스 풋볼 선정 지난 60년간 베스트 11
  • 2005 브라질 플라카르 선정 월드컵 역대 최고의 선수 5위
  • 2005 경제 매체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72위[15]
  • 스페인 AS 선정 지난 40년간 라리가 최고의 공격수
  • 1999 영국 월드 사커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13위
  • 1999 이탈리아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19위
  • 1999 브라질 플라카르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83위(1999년 기준)
  • 1999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72위[16]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동포지션의 게르트 뮐러, 에우제비우, 마르코 반 바스텐과 함께 최일선에서 거론된다.[31] 멀리 갈 것 없이 2020년 발롱도르 드림팀 퍼스트 스쿼드의 센터 포워드 자리를 차지하면서 그 위상을 입증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축구계는 정말 춘추전국시대라 불릴 만큼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호나우두는 지단과 더불어 동시대 최고의 선수로 여겨졌고 특히 부상 이전 고점의 활약은 가히 GOAT 논쟁까지 불러올 정도였기에 당시 해외축구를 지켜보던 팬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축구의 왕[32]
역대 최고?[33]




인테르 첫 시즌 호나우두와 나폴리 첫 시즌 마라도나의 비교[34]

이처럼 그의 선수 생활을 통틀어 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무릎 부상 이전의 그는 이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 전성기 시절의 그는 고작 20대 초반의 나이로 펠레, 마라도나에 비교되고 있었으며 아예 이들을 넘어서 역대 최고가 될 수도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35] 국대대표 활약이 거의 없는 상태[36]에서 바르사 데뷔시즌 전반기만 보내고도 월드 사커, 프랑스 풋볼과 같은 축구 전문지에서는 고작 20살의 나이인 그가 이미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아니냐는 평가까지 내렸으며, 전 세계 언론들이 '축구의 왕', '갈락티코', '마라도나 이후 최고의 카리스마'와 같은 수식어를 붙여가며 펠레, 마라도나, 크루이프 등 역대 최고 반열의 선수들과 직접적으로 비교했을 정도였다.[37] 원투펀치에서 한준희와 장지현은 이 시기 최전성기 호나우두의 기량을 최전성기 호나우지뉴와 호날두보다 높게 평가하기도 하였다.[38]

상기했듯이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을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르지만, 무릎 부상 이전의 호나우두는 비록 96-98의 짧은 시기일지언정 당대에 적수가 없는 독보적인 1인자로 평가받았고[39] 단순 클럽에서의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국가대표 경기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활약을 보여주며[40] 고작 20대 초반의 나이로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펠레, 마라도나를 소환할 정도의 임팩트를 자랑했다. 이러니 세계 축구 팬들과 전문가들은 앞다투어 호나우두가 펠레, 마라도나를 넘어서 All-Time No.1이 될 것이라 예상했으며, 이 기대치가 최고조에 다다른 1998 월드컵은 호나우두의 대관식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41]

하지만 결승전을 앞두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작을 일으킨 호나우두는[42] 결승전 명단에 제외되었다가 본인의 간절한 의지로 간신히 선발 명단에 포함되어 출전했으나 튀랑에게 집중마크 당하며 극도로 부진했고, 결국 지단이 원맨쇼를 펼친 프랑스에 우승을 내주고 만다. 이후 월드컵 결승전 패배의 충격으로 인한 슬럼프에 빠지면서 예전만한 경기력이 안나오기 시작하더니[43] 1999년 11월 21일 레체와의 경기에서 입은 치명적 무릎 부상으로 인한 수술과 재활 이후 코파 이탈리아 결승 1차전에서 복귀했지만 또다시 무릎 부상이 재발하면서 전성기가 완전히 끝나버리고, 이 날의 쇼크에 전 세계 뉴스가 호나우두의 이 장면을 보도하면서 이제 축구의 신은 끝났다고 애도하는 특집방송들까지 내보내기도 하였다. 이 공백기 동안 월드 사커가 선정한 20세기 축구 선수 순위에서는 역대 13위로 평가받았다. 당시 호나우두의 공백기 동안 1인자에 오른 지단은 호나우두와 달리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28위로 호나우두와는 꽤 차이가 있었다.

이후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우승과 월드컵 득점왕, 실버볼,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상을 휩쓸며[44]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회복되었어도 다시는 예전과 같은 플레이를 할 수 없는 무릎과 2년간의 공백기, 자기관리 실패와 갑상선 기능 저하가 겹쳐 일어난 비만으로 호나우두는 다시는 예전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고, 과거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라는 평가에서 당대의 월드 클래스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라는 평가 정도로 떨어졌다.[45] 이 때 호나우두의 공백기 동안 1인자의 자리를 차지했던 지단은 2006 독일 월드컵에서의 화려한 라스트 댄스로 결국 위상을 역전시키기에 이른다. 특히 98 결승전의 복수를 끝내 하지 못하고 8강에서 또 다시 지단에게 침몰하여 프랑스는 브라질의 천적이라는 인식이 생긴게 컸다. 호나우두는 현역 시절이나 은퇴 직후의 평가들, 예를 들면 2007년 프랑스 풋볼에서 실시한 지난 60년간 세계 베스트 11 투표에서도 펠레에 이은 역대 공격수 2위에 선정됐고, 2009년 스페인 마르카 역대 최고의 공격수 투표 1위, 2012년 스페인 골닷컴 역대 최고의 선수 1위를 차지하는 등 현역 버프가 존재했던 시절에는 매우 높은 위상을 자랑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량이 만개하기도 전에 끝나버린 짧은 전성기와 말년의 기량 하락으로 인한 부족한 누적 커리어 때문인지 평가가 점점 내려오고 있고, 역대 TOP 10 수문장으로 굳어졌다.

이처럼 전성기의 엄청난 임팩트와 롱런하지 못한 짧은 퍼포먼스 때문에 평가에서도 명과 암이 명확히 갈리는데, 그의 역대 최고 수준의 재능과 고점에서의 임팩트, 기량을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고평가를 받지만, 반대로 너무나 짧은 전성기로 인해 많이 떨어지는 클럽 커리어와 특히 최상위 클럽대항전인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저조한 기록(40경기 14골) 때문에 꾸준함과 챔스 활약도를 중시하는 이들에게 저평가를 받는 편이다. 특히 국내에서 호불호가 엄청 갈리는 감이 있는데, 최전성기였던 인테르 첫 시즌까지는 아예 뛰지도 못했던 챔스 기록으로 인해 전성기까지 폄하되기도 한다.[46][47] 또한 그의 전성기를 직접 본 축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더욱 고평가받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2002 월드컵으로 인해 국내에서만 신격화된 선수라는 다소 무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48]

어쨌거나 이처럼 짧은 전성기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팀에서는 펠레, 마라도나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쳤으며, 그 기간 동안 발롱도르 2회, FIFA 올해의 선수 3회, 월드컵 2회 우승[49] · 1회 준우승, 코파 아메리카 2회 우승, 월드컵 골든볼 · 실버볼 · 골든슈 · 브론즈슈, 코파 아메리카 MVP · 득점왕 등 절대 다수의 선수들은 평생 경험도 못할 커리어를 쌓았다. 또한 잘 부각되지 않는 기록도 있는데 바로 국대 메이저 대회 토너먼트 최다 공격포인트 2위(14골 3어시스트)의 소유자로, 비록 전체로 따졌을 땐 메시에게 밀렸으나 득점 한정으로는 여전히 압도적으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의 조국인 브라질에서의 평가는 가린샤, 지쿠와 함께 펠레 바로 다음가는 대단한 선수로 평가받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비록 너무 짧은 전성기로 인해 동시대의 지단에게 위상이 역전당하며 종합적으로 약간 밀리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골닷컴이 선정한 1990년대 최고의 선수와 공격수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였고 마르카의 시대별 최고의 선수 투표에서 65%를 득표하면서 28%를 득표한 지단을 크게 따돌리고 1990년대의 1인자로 선정되는 등 짧고 굵은 전성기를 보낸 1990년대의 1인자로 평가받고 있다. 역대 축구 선수 순위를 정할 때도 평가 기관마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무리 못해도 보통 15위 이내이며,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은데, 2017 부트발 인터내셔널, 포포투 선정 역대 랭킹에서는 각각 역대 6위와 역대 10위에 선정되었다.[50] 보통 역대급으로 평가받는 선수들이 오랜 기간 동안 기량을 유지하며 활약해온 것을 생각하면, 짧은 전성기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축구 전문가와 언론사에서 이 정도의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그 전성기의 기량이 웬만한 역대급 선수의 전성기를 능가하는 임팩트를 던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7년 각국 축구 전문지에서 매긴 순위 합산 2020년 각국 축구 전문지에서 매긴 순위 합산 2022 월드컵 직후 각국 축구 전문지에서 매긴 순위


5. vs 지네딘 지단[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지네딘 지단 vs 호나우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기록[편집]



6.1. 대회 기록[편집]









  • 브라질 U-23 축구 국가대표팀


6.2. 개인 수상[편집]


  • 발롱도르: 1997, 2002
  • 발롱도르 드림팀: 2020[51]
  • FIFA 올해의 선수: 1996, 1997, 2002
  •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1996, 1997, 2002
  •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1997-98
  • UEFA 올해의 공격수: 1997-98
  • UEFA 올해의 팀: 2002
  • FIFA 100: 2004
  • 유러피언 골든슈: 1996-97
  • FIFA 월드컵 골든볼: 1998
  • FIFA 월드컵 실버볼: 2002
  • FIFA 월드컵 골든슈: 2002
  • FIFA 월드컵 브론즈슈: 2006
  • FIFA 월드컵 도움왕: 1998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98, 2002
  • FIFA 월드컵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02
  • FIFA 월드컵 올타임 드림팀: 2002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론즈슈: 1997
  • 코파 아메리카 MVP: 1997
  •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 1999
  • UEFA컵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1998
  • UEFA 컵위너스컵 득점왕: 1996-97
  • UEFA 컵위너스컵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1997
  • 인터컨티넨탈컵 맨 오브 더 매치: 2002
  • 에레디비시 득점왕: 1994-95
  • 라리가 득점왕: 1996-97, 2003-04
  • 라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52]: 1996-97
  •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1997-98
  •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 1997-98
  • 세리에 A 올타임 XI: 2017
  •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득점왕: 1994
  •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올해의 팀: 1994
  •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득점왕: 1994
  •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올해의 팀: 1994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MVP: 2010
  • 옹즈도르: 1997, 2002
  • 옹즈 드 옹즈: 1997, 1998, 2002, 2003
  • 유니세프 유럽 올해의 축구 선수: 1996-97
  •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2006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2015
  • 레알 마드리드 명예의 전당: 2011
  • 인테르 올해의 선수: 1998
  • 인테르 명예의 전당: 2018
  • BBC 올해의 해외 스포츠인: 2002
  • 프랑스 풋볼 60년간 베스트 XI: 2007
  • ESM 올해의 팀: 1996-97, 1997-98
  • 라우레우스 스포츠 어워드 올해의 컴백: 2003
  • lFFHS 세계 최고 득점자: 1997
  • lFFHS 최고의 골: 1997
  • IFFHS 레전드: 2016
  • IFFHS 올타임 월드 드림팀[53]: 2021
  • IFFHS 올타임 남아메리카 드림팀[54]: 2021
  • IFFHS 올타임 브라질 드림팀: 2021
  • 골든풋: 2006
  • 마르카 레전드: 2011
  • 브라보 상: 1997, 1998
  • 트로페오 EFE: 1996-97, 2003-04
  • FIFA XI: 1997, 1998
  • 글로브 사커 어워즈 플레이어 커리어 어워드: 2018
  •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10년의 팀: 2009
  • 돈 발롱 21세기 드림팀: 2010[55]


6.3. 클럽 통계[편집]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지역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3
크루제이루 EC
브라질 세리 A
14
12
2
0
-
-
4
8
1994
-
-
18
22
-
-
8
2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4-95
에인트호번
에레디비시
33
30
1
2
2
3
1995-96
13
12
3
1
5
6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 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6-97
바르셀로나
라리가
37
34
4
6
7
5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 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7-98
인터 밀란
세리에 A
32
25
4
3
11
6
1998-99
19
14
2
0
6
1
1999-00
7
3
1
0
-
-
2000-01
-
-
-
-
-
-
2001-02
10
7
1
0
5
0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2002-03
레알 마드리드
라리가
31
23
1
0
11
6
2003-04
32
24
5
2
9
4
2004-05
34
21
1
0
10
3
2005-06
23
14
2
1
2
0
2006-07
7
1
2
0
4
2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2006-07
AC 밀란
세리에 A
14
7
-
-
-
-
2007-08
6
2
-
-
-
-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지역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2009
코린치안스
브라질 세리 A
20
12
10
8
8
3
-
-
2010
11
6
9
3
-
-
7
3
2011
-
-
2
0
-
-
2
0


7. 호나우두에 대한 말, 말, 말[편집]



''호나우두가 곧 전술이다.''[56]

''옛날, 바르셀로나 시절의 호나우두가 5, 6인을 제치고 득점하는 것을 보았다. 방금 전에도 말한 것처럼 그는 경이적이었다. 호마리우도 발군이었지만, 전성기의 디에고 마라도나가 내가 본 중 최고였지. 초일류의 선수다. 그리고 호나우두가 조금의 차이로 2위다 (웃음).''

''공과 함께 움직이는 것 중에서는 호나우두가 제일 빠르다. 부상만 없었다면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57]

''그는 볼을 갖고 현란한 기술을 구사하며 폭발적인 속도로 달릴 수 있습니다. 내 축구 인생 45년간 그처럼 뛰어난 선수를 보지 못했습니다.''

''글쎄...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대단했지! 해트트릭이라니! 근데, 사실 호나우두는 완전하게 갖춰진 모습은 아니야. 혹은 적어도 부상당하기 전 모습은 아니야... 그는 내가 바르셀로나 시절에 봤던 모습의 20%가 부족해! 내 말을 믿으라구! 그런데도 호나우두는 여전히 그렇게 환상적이란 말이야! 20%가 채 부족한 그런 모습을 갖고 펠레만큼의 플레이를 하고 있단 말이지.''[58]

''당신은 아마 호나우두와 같은 선수를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언제 슛을 하고 패스를 해야 할지를 아는 아주 감각적인 선수이다. 또한 그는 40야드(약 37미터)를 뒤쳐져 있을 때에도,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어 볼을 낚아채 수비진을 무너뜨리며, 상대문전으로 대쉬한다. 반면 조직적인 플레이도 할 줄 아는 현명한 선수다.''

바비 롭슨[59]


''호나우두는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이다. 부상만 없었다면 그는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였겠지. 난 한 번도 이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어. 그가 부상만 입지 않았다면 세상은 나와 펠레를 잊었을 거야.''[60]

"호나우두는 마치 왕년의 나를 보는 것 같은 베스트 플레이어다."

''나와 펠레를 비교하지 마라. 나랑 유일하게 비교될 수 있는 선수는 호나우두 뿐이다."

디에고 마라도나


"우선 호나우두를 발굴한 지쿠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 시대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라도나 이상의 선수와 같은 호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뻐해야 한다.[61]

호나우두의 실력은 1974년 게르트 뮐러의 3배 정도의 기량이라 생각하면 된다. 나는 후한 사람이 아니다. 그가 죽지 않는 한 브라질은 최소한 두 번 이상 월드컵에서 우승할 것이다.''

''그를 감히 아무에게나 비교하지 말라.''

요한 크루이프


"내가 여태까지 본 최고의 선수. 호나우두가 이뤄낸 것과 같은 수준으로 올라서고 싶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호나우두는 나의 영웅이었다. 그는 내가 여태까지 본 공격수 중에서 최고의 공격수였다. 엄청난 스피드를 자랑했고,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골을 넣을 수 있었다. 지금껏 지네딘 지단, 호나우지뉴, 히바우두 등 좋은 선수들을 접했지만, 호나우두는 차원이 달랐다. 여태껏 내가 만났던 선수들 중 누구보다도 뛰어난 슈팅을 할 수 있었던 선수가 바로 호나우두였다."

리오넬 메시[62]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라질 축구선수는 호나우두다. 나는 운이 좋아서 여러 번 그와 경기를 했고, 그가 그의 경력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기 전에 그와 경기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어마어마한 선수였고, 센세이셔널한 선수였다. 그는 경기장에서 할 수 있는 일 때문에 일종의 외계인 같았다. 그와 같은 축구선수가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기억되지 않는 것은 내 생각에는 큰 비극이다. 그는 역사상 최고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63]

"인테르에서 보았던 호나우두는 정말 인크레더블 그 자체였어. 힘, 스피드, 테크닉에다 그런 몸뚱아리를 가진 선수를 보기는 어려웠지. 오늘날 메시는 많은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 정도의 강도는 아니야. 호나우두는 마치 인간을 상대하는 외계인처럼 보였다구!"

''공격수들은 늘 많은 문제점을 내게 안겨준다. 그러나 그 중 가장 내게 치명적인 데미지를 줬던 놈은 단연 Ronaldo지. 그 브라질리언 말야.[64]

호나우두는 퍼펙트하거든. 힘, 스피드, 직관력, 기술을 가진 이 선수는 당신의 입을 자연스럽게 벌어지게 만들 거다. 그는 마치 과학연구소에서 만들어낸 것 같아. 이런 모든 재능이 한 인간의 안에 전부 다 들어가 있다는 걸 당신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테니까.''

"나는 엄청난 선수들을 수 없이 겪었지만 아무 고민 없이 최고를 뽑을 수 있다. "호나우두다." 그는 다른 행성에서 온 것 같은 존재였다. 나는 호나우두가 전성기를 달리던 인터 밀란 시절 그를 만났다. 당시 그는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내곤 했다. 누구와도 견줄 수 없었다! 호나우두는 축구의 역사에서 마라도나, 펠레와 함께 신전에 들어가야 할 거대 존재다. 하지만 본인은 분명히 아쉬울 것이다. 부상만 아니었으면 앞의 2명을 제치고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될 수도 있었을 테니까..."[65]

"오늘날 메시는 많은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 정도의 강도는 아니야. 호나우두는 마치 인간을 상대하는 외계인처럼 보였다구. 인테르에서 보았던 호나우두는 정말 인크레더블 그 자체였어. 힘, 스피드, 테크닉에다 그런 몸뚱아리를 가진 선수를 보기는 어려웠지."

잔루이지 부폰


''호나우두를 보면 드는 생각이... "만약 네가 그러려고 노력만 했다면... 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가 될 수 있었을거다"예요.''

시드 로우(영국의 축구 칼럼니스트)[66]


"넘버0, 호나우두. 그는 다른 행성에서 온 선수이며, 내 선수 생활 중 단연 최고의 선수였다."

"파올로 말디니는 역대 최고의 수비수였습니다. 한때는 라이언 긱스를 막을 자가 없었습니다. 메시의 플레이는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라울 역시 챔피언스 리그의 전설 중 한 명이죠. 호나우두는 제가 본 최고의 선수입니다."

클라렌스 세도르프 자신이 경험한 최고의 선수들을 뽑으며


''메시는 그의 시대에서는 최고이나 역사상 최고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 호나우두가 있기 때문입니다."

호나우지뉴


''Ronaldo(호날두)는 훈련 때 돋보이는 선수였습니다. 그는 최고였습니다. 또 다른 Ronaldo 'Fenomeno'는 앞으로 절대로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네이마르도, 호날두도, 메시도 아닙니다. 호나우두는 특별합니다. 우리 세대에서는 득점하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그 당시는 지금보다 더 거칠었고, 공격수들은 보호받지 못했지만 호나우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67]

''호나우두는 디에고 마라도나 이후 최고의 스펙타클을 지닌 선수이며, 축구계에서 우상입니다.''

호베르투 카를루스


''1996년의 호나우두. 난 마라도나, 에우제비우, 지단 그리고 굴리트를 봤습니다. 하지만 1996년의 호나우두는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선수였죠. 매일 난 호나우두와 일했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50m 거리를 단독으로 수비수 5명을 제치고 골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굉장히 놀랐습니다. 그런 플레이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죠.''[68]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15년이라는 긴 시간 내내 정상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엄밀히 재능과 기술만 놓고 보자면 그 누구도 호나우두를 넘을 수 없다. 그가 바비 롭슨과 함께 바르셀로나에 있을 때 난 그가 내가 본 필드 위 최고의 선수임을 깨달았다. 더욱 대단할 수 있었던 그의 커리어를 부상이 망쳤으나, 당시 19세 소년이었던 그의 재능은 정말 놀라웠다.''[69]

"호나우두가 지난 20년(1994–2014) 동안 최고의 선수였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는 지난 20년 동안 최고라는 타이틀을 놓지 않았던 선수다."

주제 무리뉴


"단 70%만 예전으로 돌아온다 해도 축구사에 비교 대상이 없습니다.''

''호나우두는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다.''

마시모 모라티


''호나우두는 unstoppable이다. 우리는 그를 ‘El Fenomeno’라고 불렀다. 나는 메시를 상대해봤고, 맨유에서는 Ronaldo와 같이 뛰었다. 그러나 브라질리언 Ronaldo는 스피드의 관점에서 뭔가 달랐다. 모든 면이 탑 레벨이었다. 크리스티아누는 선수 시절 내내 활용한 서너 개의 기술이 있다. 그러나 호나우두는 모든 면에서 항상 달랐다. 그는 어떤 지점과 순간에서도 뭔가를 창조해냈고, 그래서 수비수들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몰아보려고 해도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다 벗어났다. 또한 호나우두는 어떤 위치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골을 넣었다. 그는 언제부턴가 한쪽 발만 썼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유럽의 모든 수비수를 때려눕혔다.''[70]

''둘 다 휼륭했고, 둘 다 좋은 팀메이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호나우두는 이 세계 밖에 있었습니다. 그는 경이적이었죠. No.9을 윙어와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스타일과 다른 포지션에서 플레이했습니다. 하지만 호나우두는 내가 같이 뛰어본 선수 중에 가장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그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가 부상을 당하고 살쪘을 때도 그는 여전히 좋았죠.''[71]

미카엘 실베스트르


''1999년 인터밀란 원정 경기 직전 터널에서 호나우두를 만났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오줌을 지릴 뻔했다. 저게 바로 내가 수년 간 지켜봐온 바로 그 남자다. 나는 '축구의 신'에 대해 얘기하는 거다. 다 뚫고 나가는 '축구의 신' 말이다. 인터밀란 산시로 터널에서 호나우두가 경기를 준비하는 걸 봤다. 믿기지 않았다. 내가 이런 레벨의 선수와 같은 곳에 있다니. 이젠 내가 이런 레벨이 됐어'라고 생각했다. 이건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말이다. 요즘 아이들은 호나우두에 대해 말하면 잘 모를 수 있다. 만약 호나우두가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수없이 많은 골을 넣으며 매년 발롱도르를 수상했을 것이다. 왜냐면 그는 '축구의 신'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축구의 신' 말이다. 물론 우리는 크리스티아누 또한 R9(호나우두)와 같은 레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건 우리도 보고 아이들도 본 것들이다. 그러나 호나우두에게는 부상으로 빼앗겨버린 것들이 있었다. 부상이 호나우두를 그저 적당히 좋은 선수로 만들어버린 것이다.''[72]

앤디 콜


''그 누구도 호나우두의 레벨에 도달하지 못했다. 무브먼트의 아름다움과 수비수들을 제칠 때의 창의성에서 말이다. 이런 것들 중 어떤 것도 후속으로 성취한 게 아니다. 호날두는 믿을 수 없는 방식으로 커리어를 성취했지만, 페노메논의 창의성은 가지지 못했다. 호날두와 메시는 서로 끌어준다는 면에서 행운이 있었다. 서로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관계였다. 나의 시대에서 호나우두는 달랐다. 우리들은 호나우두의 지속적인 성장에 필수적인 동기부여를 해 주지 못했다.''

에르난 크레스포[73]


"그가 월드컵에서 우승했다면 나와 비교될 수 있었을 것이다." (1998 월드컵 결승전 패배 직후)

"호나우두는 네덜란드,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브라질 축구의 위상을 드높였다. 브라질 사람들은 그가 우리 축구에 행한 것들에 대해 감사해야 하며, 역시 나의 진정한 후계자이다."

펠레


''의심할 여지없이 내가 같이 일해본 선수 중에 호나우두는 최고의 재능이었다. 동시에 그는 드레싱룸에 많은 문제를 가져왔다. 팬티를 아무 곳에나 던지지를 않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더라. 언제는 반 니스텔루이가 나한테 한탄하러 왔다. 드레싱룸에 술 냄새가 너무 난다고. 호나우두가 밀란으로 떠나니 우리는 승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최고의 재능에 대해 대화할 때마다 당연히 호나우두라고 말을 모았다.''

파비오 카펠로[74]

[75]


''호나우두는 믿기 힘든 능력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특히 세 번째 골은 그가 왜 '축구황제'라고 불리는지를 증명하는 멋진 골이었다. 역시 그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올레 군나르 솔샤르, 호나우두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드에서 40년만에 원정팀선수가 해트트릭을 하는 기록을 세우고 올드 트래포드에 7만여 맨유팬들에게 기립박수를 받는 진기명기한 기록을 세운 뒤


''결코 쉽지 않을 일이었지만, 우리가 4번째 득점을 한다면 승리의 기대를 충분히 가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호나우두의 플레이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알렉스 퍼거슨, 호나우두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드에서 40년만에 원정팀선수가 해트트릭을 하는 기록을 세우고 올드 트래포드에 7만여 맨유 홈팬들에게 기립박수를 받는 진기명기한 기록을 세운 뒤


"호나우두는 박스 안이든 밖이든 볼을 찾을 위치를 금새 찾아냈다. 그와 플레이하는 건 정말 쉬웠다. 그는 내가 뭘 할지 항상 알고 있었다."

히바우두


''제가 펠레의 현역 시절을 보지는 못했지만 호나우두는 볼 수 있었어요. 호나우두는 한 명이예요. 그의 플레이는 그 누구보다 앞섰어요. 그는 공을 갖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했어요. 골을 넣고 싶으면 골을 넣었어요.''

''제 생각에 호나우두는 가끔 다른 선수들만큼 본인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남들은 10일 동안 배워야 할 것을 본인은 2일이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실제로 그는 그렇게 할 수 있었어요.''

에메르송[76]


''내가 지금까지 함께 뛴 선수들 중에서 호나우두가 최고였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경우에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겠지만, 호나우두는 다른 선수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플레이를 보여줬었다.''[77]

"내게 호나우두는 당신들이 함부로 거론할 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축구 역사상 가장 환상적인 선수입니다."

''제가 프로가 되었을 때 플레이했던 선수들 중에서는 지단, 호나우두, 호나우지뉴에요. 그 중 넘버원은 역시 호나우두에요. 요 15년간 그 이상의 실적을 남긴 선수는 없죠. 내가 알고 있는 선수 중에서도 최고의 선수에요.''[78]

''스피드 넘치는 플레이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무척 브라질스러운 플레이에요. 브라질 선수 중 상당수는 테크닉만이 아니고 높은 수준의 신체 능력도 겸비하고 있으니까요. 가장 좋은 예가 호나우두에요. 그의 가속력은 정말 대단하죠. 처음 두 걸음으로 상대를 완전히 앞질러버리곤 해요. 그의 스피디한 드리블은 마치 TV게임과 같아요. 호나우지뉴의 드리블도 빠르지만, 호나우두에 비할 바는 아니죠.''

''후세에 역대 최고의 선수로 기록될 선수? 그건 호나우두에요. 특히 바르셀로나 시절, 그리고 인테르에서의 첫 시즌의 그는 누구도 멈출 수 없는 공격수였죠. 많은 사람들이 펠레가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말하고 있어요. 펠레의 플레이를 직접 보진 못했기 때문에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어쩌면 그 무렵의 호나우두는 펠레보다 좋은 플레이를 펼쳤을지도 몰라요. 우리 세대에서는 역시 그가 세계에서 No.1이라고 생각해요.'

카카


''호나우두를 수비하는 것은 내 생애 가장 어려운 임무였다. 그것은 마치 내가 500분 동안 뛰어다닌 것처럼 느껴졌다. 당신이 호나우두가 골을 넣는 것을 막으려면 그를 질식시키고, 심판을 매수하거나 신에게 간절히 빌고 또 빌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는 골을 넣을 것이다.''

ー 세자르 고메스


''저는 호나우두를 제일 존경하고 있어요. 그는 내가 보아왔던 선수 중 최고입니다.''

해리 큐얼


'난 메시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보다 골 감각이 없다고 생각치 않는다. 하지만 이런 점에서 이 둘보다 한 수 위였던 건 사실 호나우두였다. 그는 기적 그 자체였다. 최소한을 달리고도 그 유일무이한 드리블을 할 시간을 캐치해서 상대 수비를 벗길 계산을 할 줄 알았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이 부분에서 속도가 모자라다. 반면 호나우두는 정지한 상태에서도 수비 한 명 정도는 쉽게 제칠 수 있었다.''

''카를로 안첼로티가 레알에 있을 때 만나러 간 적 있는데 훈련 1시간 반 전에 누가 와 있었는 줄 아세요? Ronaldo에요. 또 다른 Ronaldo(호나우두)인 그 브라질 선수는 좀 더 퀄리티가 있었지만, 호날두만큼 오래 가지 못했죠. 그는 특권을 원했고, 많이 뛰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79]

[80]

아리고 사키


''만일 나에게 다른 국가대표팀에서 선수를 데려올 수 있도록 한다면, 나는 맨 처음 호나우두를 선택할 것이다. 그는 환상적이다. 그는 어떤 경기에서든 그만이 가진 것으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보라 밀루티노비치


''호나우두, 그는 축구의 마스터이다.''

곤살로 이과인


''내 선수 생활 역사상 가장 대단했던 건 호나우두지만, 가장 껄끄럽고 싫은 선수는 필리포 인자기였다.''

올리버 칸


''호나우두는 다방면에서 최고임을 자랑한다. 오직 신만이 호나우두가 미래에 무엇을 이룩해낼지 알 것이다.''

앨런 시어러


''같은 선수지만 예전의 호나우두가 생각난다. 당시 그는 역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환상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앨런 시어러나 나는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이라고 자부했었지만 그의 실력 앞에서는 최강이라는 벽을 실감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바르셀로나 시절 골들을 보면 펠레나 마라도나가 축구 선수로 살아돌아온다 해도 기록하지 못할 환상적인 내용의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에게 호나우두는 축구 그 자체이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그가 왼쪽으로 가든 오른쪽으로 가든 공이 안보여. 이건 마술이야.''

마르셀 드사이


''나는 호나우두가 브라질에서 이룬 것을 나도 내 커리어 안에서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호나우두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니까요.''

웨인 루니


''믿을 수 없는 신체능력의 소유자입니다. 가장 놀랐던 것이 폭발적인 스피드로 드리블을 하면서 교묘한 발 테크닉을 섞거나, 급격한 스톱&턴을 할 수 있는 것이 오로지 그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입니다. 내가 가장 인상깊은 점은 그가 폭발적인 스피드로 상대 수비수들을 너무 쉽게 압도해버린다는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 내의 어느 선수 보다도 위의 존재입니다."

라울 곤살레스[81]


''호나우두를 멈추게 하는 방법? 그런 것은 없다.''

로베르토 아얄라


''펠레, 마라도나를 능가하는 축구계의 유일신.''

마르첼로 리피


''PSV 시절의 호나우두(18살)에요.''

바우데베인 젠던, '당신과 같이 뛰었던 최고의 선수는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에


''호나우두는 경기를 스스로의 힘으로 지배하는 유일한 선수이고, 그렇기 때문에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하게 해 줄 것이다. 그는 천재이자 비교 대상이 없는 선수다.''

ー 라몬 칼데론


''당연하죠. 제가 상대하고, 겪어본 선수들 중에 최고이고 비교가 불가능한 선수에요. 팀이 자랑이던 진정한 이유입니다. 나는 호나우두의 이탈리아에서의 첫 해를 함께 보냈습니다만, 그 큰 부상을 당하기 전의 그는 어쨌든 누구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당시 호나우두는 같은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었으니까요.''

잔루카 팔리우카, '함께 플레이 했던 선수들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생각한 선수는? 역시 호나우두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모든 행성에서 유일무이한 한정된 파워를 갖고 있으며, 비교가 불가능한 선수입니다.''

이반 엘게라


''호나우두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는 이미 살아있는 축구 역사이고, 스페셜한 존재이며, 스펙타클한 선수이다.''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물론 지단은 명선수입니다. 하지만 마라도나와 비교하면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피치에서의 존재감이랄까... 예를 들어 마라도나는 단 혼자서 시합을 결정지어버리는 일이 가능하지만, 지단에게는 그 정도의 강함은 없습니다. 혼자서 시합을 결정해내지 못하죠. 마라도나와 비교할 수 있는 선수는 호나우두뿐입니다. 경기장에서 그 정도로 무서운 선수는 없습니다. 수비의 구멍을 순간 발견해 한 번에 돌파해 골을 넣는다... 정말 호나우두는 단 혼자 시합을 결정지을 수 있는 유일한 선수입니다.''

ー 프란 곤살레스


''네, 경이적이었어요. 아, 이런 선수를 '스타'라고 하는 것이구나, 하고 처음으로 실감할 수 있었던 선수가 바로 호나우두였어요. 그는 연습에서도 슈퍼 플레이를 매번 연발하였고, 당시의 저는 그것을 그저 넋 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죠.''

아이두르 구드욘센[82]


''한 사람의 아이돌이랄까... 굉장히 존경하고 있는 것은 호나우두뿐입니다. 지금 이상으로 삼고 있는 선수도 물론 호나우두이구요. 저에게 호나우두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아드리아누


''호나우두는 절대적으로 뛰어난 선수다. 그는 축구에 새로운 지평을 연 세기의 천재다.''

조 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이라는 질문에 호나우두를 꼽으며


''오직 호나우두만이 나의 위에 있을 뿐이다.''

루이스 파비아누


''그에 대해 할 말은 없다. 대체 어떻게 그를 설명할 수 있는가?''

크리스티안 비에리


''이 팀에서 최고의 점은 그런 세계 슈퍼스타들과 함께 트레이닝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호나우두를 상대로 연습을 하잖아요? 그는 공을 잡으면 정말 상상도 못할 플레이를 합니다. 그런 환경 안에서 나는 수비로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조금 적당히 해 달란 말이야~라고 말하면서요(웃음). 그는 2명 이상의 값을 해내는 선수입니다. 제가 유일하게 느낀 '차이'를 과시하는 선수이고요.''

미첼 살가도


''나는 메시와 호날두를 동일 선상에 놓지 않을 것이다. 메시가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래, 호날두는 환상적이다. 하지만 나는 더 나은 Ronaldo를 기억한다. 브라질의... 그는 역사상 최고였다.''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호나우두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다. 그는 정말 놀라웠다. 그는 마치 요즘의 플레이스테이션을 보는 것과 같다. 그는 마술사였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어떻게 그가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지 묻곤 했다. 그는 다른 선수들이 축구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냈다.''

사무엘 에투


''많은 사람들이 메시가 최고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더 뛰어난 선수를 보았는데 그것은 바로 호나우두이다.''

프랑크 더부르


''호나우두에겐 나의 머리가 이상해질만큼 괴롭힘을 당했어요. 그 다음, 마라도나, 카레카 그리고 Giordano. 그런데 클린스만은 그렇지도 않았어요. 확실히 그를 멈추게했다고 결과가 나와 있죠.''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기억나는 라이벌을 말해주겠습니까?라는 질문에


"경이적이다. 그는 공을 가지고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

뤼트 판니스텔로이


"호나우두는 나의 우상입니다. 내 모든 것이 그로부터 영감을 받았죠."

호나우지뉴


"이탈리아의 모든 축구인들은 내게 '호나우두는 이탈리아에서 뛴 선수들 중 역대 최고'라고 말한다. 내게 호나우두는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선수다."

미로슬라프 클로제


"호나우두는 내가 함께 뛰어 본 공격수 중 단연 최고였다. 단순히 공격수로서가 아니라,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서도 최고였다."

''함께 뛰어 본 선수 중 호나우두가 최고라고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다. 공을 너무나도 편안하게 다뤘고 약점이 거의 없었다.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려고 마음 먹으면 원하는 플레이는 뭐든 할 수 있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전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보통은 공이 없을 때 더 빠른데, 호나우두는 공을 가졌을 때도 빨랐다.''[83]

지네딘 지단


"어느 날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등장해, 네덜란드와 카탈루냐에서 별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우상이 되었고 스페인에서 신이 되었다."

에릭 칸토나


"언제나 호나우두와 함께 뛰어보고 싶었다. 호나우두는 챔피언이고 용감한 선수다. 호나우두는 마라도나 다음으로 내가 만난 최고의 적수였고, 언제나 공정하고 정직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이며, 그의 기술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84]

''아드리아누? 내가 무서워하는 선수는 오로지 호나우두뿐이다. 인테르 이적 첫 해의 호나우두는 정말로 굉장했다. 호나우두는 내가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스피드를 가지고 있었다. 속도를 내기 시작한 호나우두를 멈추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내 커리어에서 위대한 선수들을 상대로 플레이했지만, 마라도나와 호나우두가 그 중에서도 최고였다.''

파올로 말디니


''나와 말디니는 마라도나와 같은 위대한 선수들을 마크해왔지만 내 생각에는 내가 지금까지 본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호나우두가 역사상 최고였던 것 같다. 심지어 펠레나 반 바스텐보다도... 그는 정말 막는 것이 불가능한 선수였다.''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내 생각에는 마라도나가 역대 최고이고, 호나우두가 디에고 마라도나에게 근접한 'the only one'이다. 나는 1997년에 호나우두와 붙어봤고, 그때 그는 탑이었다. 이미 호나우두에 대한 많은 얘기들이 있었지만, 그는 정말 인상적이었다.''[85]

''내 경력에서, 디에고 마라도나가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도 더 위대할 수도 있는 선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호나우두이다.''

''호나우두는 막을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다만 할 수 있는 최대로 그의 능력을 억제할 수 있기를 바래야 했다. 왜냐하면, 그는 골을 넣길 원한다면, 정말로 넣을 수 있었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물론 브라질에는 호마리우, 호베르투 카를루스, 호나우지뉴도 있었다. 그런데 호나우두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빨랐고, 강했다.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와 함께 경기할 때마다 리스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같은 선수는 트래쉬 토크도 필요 없었고, 그의 머리 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심지어 심판이 휘슬을 불기 전에, 그는 우리를 앞서 나갔다. 그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려움 속에서 존경심이 자라났다. 그리고 호나우두와 같은 선수를 존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노력을 다해 훈련에 매진하는 것이다. 경기장 위에 오를 때, 나는 언제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내가 두려웠냐고? 당연하다. 그러나 이 두려움을 경기장 위에서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경기와 선수에게 존경심을 보내는 것이다. 호나우두를 통해, 나는 경기장 위에서 두려움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호나우두는 대단하다. 그는 내가 상대해 본 선수 중에서 가장 막기 힘든 선수였고, 내가 그와 마주서야 할 때 나는 항상 그가 나를 제치고 언제든지 골을 넣을 수 있다는 느낌을 받고는 했다."

파비오 칸나바로


"크루제이루에서 그가 처음 플레이하는 것을 봤다.당시 어렸던 호나우두는 그 경기에서 5골을 넣었다. 그의 경이로움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카푸


"호나우두를 막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의 헛다리 기술이 오른쪽으로 빠지는 걸 뻔히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를 막기 위해 집중적으로 밀착마크를 하는 순간 공은 사라질 것이다."

릴리앙 튀랑


"호나우두를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시킨 모라티의 결정이 전혀 이해되질 않는다. 나 같으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호나우두를 반드시 팀에 붙잡아 두었을 것이다. 훌륭한 감독은 언제든지 구할 수 있지만, 호나우두 같은 선수는 구할 수가 없다. 오늘날 이러한 선수를 영입하는 것은 불가능해졌고, 만약 어떤 팀이 그러한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면 그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선수를 지켜내야만 할 것이다. 호나우두는 세계 최고의 선수다. 그는 심지어 100%의 몸 상태가 아닐 경우에도 무언가 차이를 만들어 내는 선수다."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


"난 그와 에인트호벤에서 같이 뛰었었다. 그는 당시 매우 어렸지만, 그 때부터 그는 월드클래스가 될 자질을 보여줬다 ."

야프 스탐


"내가 여태까지 만나본 적이 없었던 재능의 소유자다. 아마 마라도나보다 더."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호나우두는 내가 상대한 공격수 중 가장 힘들었다. 막는 게 불가능했다."

"나는 (홀란을) 막을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호나우두를 상대해 봤기 때문이다. 홀란은 매우 좋은 선수이지만 호나우두는 뭔가 달랐다. 나는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상대해 봤지만 호나우두는 뭔가 달랐다."[출처]

알레산드로 네스타


"호나우두를 90분 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란츠 베켄바워


"부상 없는 호나우두는 펠레와 동급이다."

''호나우두는 내가 본 선수 중 최고에 속한다. 그보다 뛰어난 움직임은 보지 못 했다. 나와 함께 뛰었다면 2천 골은 넣지 않았을까 싶다. 공만 잡으면 그에게 패스했을 것이다.''

지쿠


"호나우두는 역대 최고의 선수이며,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선수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그는 나의 우상이었으며 어린 시절 나의 영웅이었다. 그는 내가 프로 축구선수가 되는 데 강한 인상을 심어 준 단 한 사람이었다."

루카스 포돌스키


"그가 나보다 위대한 선수입니다. 난 그가 PSV에서 뛰던 시절부터 나보다 더 위대한 선수라 생각했고, 심지어 그의 실력에 질투심을 느끼기까지 했죠."

마르코 반 바스텐


"난 언제나 96/97 시즌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는 내가 본 선수 중에 가장 위대한 선수였습니다."

세스크 파브레가스


''그는 신화에서 볼 법한 완벽함 그 자체였다. 나는 리오넬 메시를 좋아하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수 차례 경기를 뛰고 그를 흠모하며, 네이마르도 뛰어나고, 호나우지뉴도 특출났지만, 이를 한데 뭉뚱그리면 호나우두가 96/97 시즌에 이룬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ー 퀸턴 포춘


"호나우두는 내게 엄청 큰 우상이었다. 그래서 그의 깻잎머리를 따라한 것. 내가 그 머리를 하고 학교에 갔을 때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를 사랑했고 지금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제르단 샤키리


"어릴 때 그의 플레이는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이다. 난 언제나 그의 플레이를 보고 똑같이 하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그의 플레이를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올리비에 지루와 나? 카트와 F1을 비교하면 안 되지. (비난이 쏟아지자) 난 단지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나와 R9을 비교했다면 내가 카트고, 그가 F1이라고 말했을 거야.''

카림 벤제마



8. 극성 팬덤과 비판[편집]



8.1. 악성 팬덤[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호나우두/악성 팬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2. 비판과 반박[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호나우두/비판과 반박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선수 은퇴 후[편집]


파일:external/media.tumblr.com/tumblr_mf6rguuFBG1ryfaxj.jpg

그 뒤로 조용하다 12년 9월 뜬금없이 TV 쇼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런데 나온 프로가 다이어트 프로그램... 갑상선 기능 저하로 인해 선수시절부터 체중조절에 애를 먹었던 호나우두는 118kg 뚱보가 되었던 것. 어쨌든 다이어트에 성공한 모습을 보였다. 허나 그것도 잠시 2013년 여름께부터 서서히 살이 붙는 것처럼 보이더니 2013년이 끝나갈 무렵 살이 더 찌고 말았다. 갑상선 질환과 폭식습관 그리고 줄어든 운동량으로 인해 체중조절은 불가능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불어난 체중 때문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퍼거슨 감독이 호날두가 늙고 뚱뚱해진 호나우두보다 낫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에 격분한 호나우두는 2012-13시즌 챔스 16강에서 맨유가 홈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역전패하며 탈락하자[86] 퍼거슨 감독을 비웃으며 '그렇게 오랜 프로 경력에 기사 작위까지 있는 자가 상대방을 존중하는 예절도 모르는 것이 놀랍다. 난 세계 최고 중 하나였던 내 선수 시절 커리어에 더할 수 없이 만족하고, 그런 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가 지휘하는 팀이 언제나 지길 바란다는 것 빼고 말이다.'라고 반격했다. 이에 퍼거슨 감독은 '단지 농담일 뿐이었고, 자신은 호나우두를 언제나 경외해 왔다.'며 수습했다.

그 외 브라질 축구 리그 캠페인 홍보 대사&2014 월드컵 조직 위원장&축구 해설 위원을 맡았는데, 자국이 독일한테 7:1로 깨진 그 날에도 호나우두는 해설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경기에서 클로제가 득점에 성공해 자신의 기록이었던 월드컵 최다 득점(15골)을 16골로 추월당했다.(...) 잔인하게도 방송국 카메라는 경기 도중 필드 대신 자신의 기록이 깨져 착잡한 듯 한 그의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그런데 4년 후 클로제 또한 관중석에서 자국 국대가 무너지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게 되었으니, 인생사 새옹지마다.

에이전트 공부도 해서 9ine이라는 에이전시 회사를 설립했는데, 첫 고객이 브라질 국대 에이스 라인을 잇는 후배 네이마르였다고 한다. 이후로 고객 명단에 다미앙, 앤더슨 실바, 브라질 가수, 포커 세계 챔피언 등도 합류했다.

브라질 월드컵 조 추첨식 때 오래간만에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SBS 통역사에 의해 졸지에 축구공 취급을 받았다. 지금은 에이전트 회사 9ine을 운영하는 동시에 미국 NASL팀 스트라이커스 운영진으로 근무 중이다. 호나우두의 영향으로 인해 팀에는 브라질 선수들이 많다. 참고로 2015시즌 NASL MVP 역시 브라질 출신의 스트라이커스 선수 스테파누였다.

레알 마드리드의 앰버서더로 임명되었다.

2017년 2월 3일 브라질의 e스포츠팀인 CNB의 지분 절반을 인수했다는 기사가 떴다. 해당 기사 그리고 기자화견에서 공약을 내세웠는데 CNB가 브라질 리그 오브 레전드 리그 대회 즉 Circuito Brasileiro de League of Legends에서 우승을 하면 선수들을 한국에서 전지훈련을 시켜주겠단 공약을 내세움으로써 호나우두의 방한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87] 2017년 5월 21일(현지기준)에 있었던 리그 오브 레전드 MSI 2017에 깜짝 등장하여 우승팀인 SKT T1 멤버들에게 금메달 시상을 하였다.[88] 이 때 언론들이 호나우두가 페이커에게 직접 메달을 걸어주는 장면을 인용하며, '두 세계 최고가 만났다'라며 대서득필하기도 했다.

2018년 8월 10일에 휴가지(스페인)에서 감기 및 급성 폐렴이 의심되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다행히 잘 회복한 뒤 13일쯤 퇴원했다고 한다. 다만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으며 중환자실 입원도 부인했다.#

2018년 8월 28일 레알 바야돌리드를 3천만 유로에 인수하여 회장에 취임하게 되었다고 스페인의 한 일간지에 보도되었다.

2021년 친정팀인 크루제이루 EC를 인수했고, 8개월 만에 세리 A로 다시 복귀시켰다.

살을 빼기 위함인지 빠델이라는 테니스와 비슷한 운동을 즐겨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10. 여담[편집]


  • 국내 한정 별명으로 호돈(호나우두+돼지 돈(豚)), 호돈신이 있다. 그 밖에 호나우두를 찬양한다는 뜻으로 호나우두에 아멘을 합성해서 호멘이라는 별명도 있었는데, 매주 일요일 아이러브사커에는 호멘을 찬양하며 기도하는 글이 올라오던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호두가 한때는 호돈을 능가하는 범용성을 자랑하기도 했지만 전부 정리되고 어느 순간부터 호돈이 대표 별명으로 정착하고 말았다. 2000년대 호나우두의 체중 증가와 더불어 고점 대비 지지부진한 경기력에 대한 비판의식을 지닌 별명이었기 때문에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별명에 반발하는 팬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부정적인 의미 없이 호나우두를 상징하는 애칭으로 자리잡은 상황이다. 사실 은퇴 이후 살이 더 쪄서(...) 부정적인 뉘앙스로 얘기할 땐 호돈보단 호뚱으로 불리는 편이다.

  • 국내가 아닌 해외에선 오 피노메누(O Fenômeno)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뜻은 놀라운, 훌륭한, 경이로운 자 쯤 된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이름이 겹치기 때문에 호나우두 피노메누(Ronaldo Fenômeno)로 더 많이 불리기도 한다. 아님 브라질리언 Ronaldo 등. 또 다른 별명이었던 축구 황제의 경우 혹자는 한국에서만 불린다고 하지만 이는 틀린 말로, 이미 20살이었을 때부터 돈 발롱, 마르카, 프랑스 풋볼 등 여러 축구지에서 'O Rei', 축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수식어를 한국 언론들이 갖다 붙이면서 축구의 왕이 아닌 축구 황제로 통용된 것이며 진짜 축구 황제라 불리는 펠레 또한 'O Rei do Futebol', 'O Rei'라는 수식어로 불리기도 한다. 다만 호나우두는 오 피노메누(O Fenômeno)라는 별명이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이 쓰였을 뿐이다. 직역했을 때 황제라는 뜻을 별명으로 지닌 선수는 펠레[89], 프란츠 베켄바워[90], 아드리아누[91], 다니엘 파사레야[92] 정도로, 보통의 인식과 다르게 극소수에 불과하다.


  • 국내 축구 팬들 사이에서 흔히 떠돈 '2000년대 세계 4대 스트라이커' 중 1명으로, 호나우두 외에는 안드리 셰브첸코, 티에리 앙리, 뤼트 판니스텔로이가 있었다. 물론 공신력 있는 매체에서 선정한 4대라기보단 그냥 팬들이 선정한 것에 가깝다. 이 중에서도 호나우두는 선두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았고, 그 담 앙리, 셰브첸코, 반니스텔로이 순이 주된 평가였다.

  • 어렸을 때 몽유병이 있었다. 몽유병에 더해 잠꼬대까지 습관적으로 해서, 그가 어렸을 때 친형 넬리우가 베게로 얼굴을 치는 등 잠꼬대를 제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수를 써보았으나 결국 완전히 고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 몽유병은 수면 장애인 파라소니아(parassonia) 중 하나다.

  • 전매특허인 헛다리 짚기는 당시 많은 축구 꿈나무나 선수들이 따라하기도 했다. 다만 호나우두가 은퇴한 2010년대 이후엔 이전보다 빈도가 적어진 편.

  • 당시 "10번 = 에이스"였던 시대에 10번 대신 "9번"을 대유행시켰던 선수이기도 했다.

  • 지금도 치아가 많이 튀어나와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린 시절에는 심각하게 앞니가 벌어진 부정교합이었는데, 어렸을 때 집이 워낙 가난해 교정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호나우두가 크루제이루에서 뛰던 시절, 호나우두에게 에우스타키우 아라우주(Eustaquio Araujo)라는 크루제이루 광팬 치과의사가 '무상으로 교정기를 달아 줄 테니 아틀레치쿠 팀을 상대로 몇 골만 넣어달라'라는 제안을 했고, 호나우두는 승낙했다. 그리하여 지금의 치열을 가지게 되었다.

  • 은퇴 후에 민트색의 뿔테 안경을 자주 쓰며 2023년 기준 유튜브에서 자주 착용한다. 수염으로 부정교합이 가려지고 살이 오른 얼굴도 안경으로 커버가 되니 상당히 잘 어울린다.

  • 호나우두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4강전에서 깻잎머리 헤어스타일을 한 이유는 예선과 토너먼트를 치르면서 부상을 당했는데 모든 기자들이 부상에 관한 질문만 해서 기자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 였다고 밝혔다. 실제로 터키전 당시 정상적인 슈팅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상이 심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호마리우의 1994 미국 월드컵 스웨덴전 토킥을 따라해서 기습적인 슈팅을 때렸고 이는 결승골이 되었다.

  • 팬 사인회에 상당한 시간을 들이는가 하면, 훈련 일정 때도 사인 요청에 일일이 응해주느라 다음 일정에 다소 지각하는 일이 잦는 등 유독 사인에 엄청난 신경을 썼는데 이는 어렸을 적 브라질 리그를 보러 갔다가 어떤 선수에게 사인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93]

  •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 공항에서 피켓을 들고 환영하는 직원 앞에서 손가락으로 두 눈을 찢는 동양인 인종차별 행위를 한 전적이 있다. 다만 당시 사실 지금도 남미 특유의 무지(...)로 이게 인종차별이란 인식조차 못했을 가능성은 있다.

  • 월드컵 통산 골 기록을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깨는 것에 대해 불만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며 자신의 월드컵 통산 최다골 기록 경신 여부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을 안 쓴다는 태도를 보여왔으나 막상 월드컵 개최 시기가 다가오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호돈도 인간. 브라질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해설자로 독일전을 해설하는데 마르코 로이스가 부상을 당하자 "클로제였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진담 섞인 농담을 던져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어차피 클로제가 깬다 해도 의미 없다, 토마스 뮐러가 얼마 안 가 클로제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라며 옹졸함인지 토마스 뮐러 칭찬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클로제는 2014년 월드컵 직전에 14골로 15골인 호나우두 보다 한 골 뒤쳐져 있었는데 조별 예선 가나전에서 동점골을 작렬해 타이를 이뤘고 그리고 공교롭게도 브라질을 상대한 4강전에서 클로제는 자신의 월드컵 마지막 골을 넣어 호나우두의 기록을 깨버렸다.[* 심지어 이때 호나우두는 브라질 중계진으로 참여했는데 클로제가 자신의 기록을 깨는 걸 '다이렉트로 보고야 말았다'''.] 물론 4회차 출전이라 사실상 3회차 출전인[94] 호나우두에 비해 많이 뛰긴 했다.

  • 파일:external/tmtj1.tvcps.com/l_2014062301001382700085463.jpg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월드컵 15골 타이 기록 때 비교한 이미지다.



  • 2012년 SBT 선정 위대한 브라질인 순위에서 15위에 뽑혔다.



(영상 3분00초부터 등장한다)

  • 모국어인 포르투갈어를 비롯하여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3개 국어를 유창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PSV 시절 네덜란드어 인터뷰도 존재하며[95], 사업가로 탈바꿈한 이래 영어를 구사하는 영상도 찾아볼 수 있다.

  • 이탈리아 인터밀란에서 뛰던 이반 사모라노는 호나우두가 자신의 오랜 등번호인 9번을 원하자,[96] 재치를 발휘해 한때 1+8라는 등번호를 달고 활동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공식적인 등번호는 어디까지나 18번이며 1과 8 사이에 임의로 + 표시를 넣은 것 뿐이다.

  • 모터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으며, 같은 국적의 포뮬러 원드라이버인 브루노 세나와도 친분이 잘 알려져 있다. 레이싱 경기도 종종 즐긴다고 한다. 심지어 갓 신인시절이자 아일톤 세나가 작고한 1994년에 공항에서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

  • 한편 그의 이름이 들어간 N64게임인 "Mundial Ronaldinho Soccer 64"[97]의 오프닝이 2020년의 새로운 밈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해당 오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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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라질 포르투갈어에서 l은 자음 앞이나 어말에 오는 경우에는 ‘우’로 적도록 규정함. 이 때문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는 표기와 발음이 다르다. 하지만 영어로는 호날두와 호나우두 모두 Ronaldo이므로 호나우두를 Ronaldo Brazil 또는 Ronaldo Nazario라고 검색해야 호나우두가 나온다.[2] 제임스 모슬리가 쓴 "호나우두: 천재의 모험"에 따르면 호나우두는 9월 18일생이지만, 9월 22일에 출생 신고를 한 것으로 나와 있다. Mosley, James (2006). 《Ronaldo : the journey of a genius》. Mainstream Publishing. ISBN 1-84018-964-9.[3] 선수 시절 82kg에서 체중이 계속 증가하였고, 100kg까지 증가했었다. 오죽하면 마지막 월드컵 출전이었던 2006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탈락한 후엔 한 브라질인에게 "호나우두 당신은 살부터 빼야 돼!"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 월드컵에서 당시 월드컵 역대 최다 득점을 갱신한건 함정. 은퇴 이후엔 겉모습만 봐도 알 수 있듯 체중이 더 불어났으며, 당연히 100kg 이상 나갈 것으로 추정된다.[4] 브라질 대표팀 역대 득점 3위[5] 레알 바야돌리드 회장직도 겸임하고 있다.[6] 다만 94 미국 월드컵 우승 당시에는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7] 1994ㆍ2002 월드컵, 1997ㆍ1999 코파 아메리카, 1997 컨페더레이션스컵[8] 호나우두의 슈팅은 아드리아누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구사했던 것처럼 강하고 빠른 대포알 같은 슈팅을 연상케 하면서도 그보다 정확하고 정교한, 전형적인 정통 스트라이커의 슈팅에 가깝다. 물론 강력한 중거리 슛 능력도 발군이었지만, 호나우두의 진가는 피치 위의 어떤 상황에서든 공을 때릴 수 있는 어마무시한 슈팅 기술에서 나온다. 이 슛 감각으로 다른 장점들이 쇠락한 부상 이후에도 이른바 2000년대 4대 스트라이커의 한 자리를 차지했으니..[9] 게르트 뮐러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10골을 넣은 후 2022 카타르 월드컵킬리안 음바페와 함께 월드컵 한 대회에서 8골 이상 넣은 유이한 경우. 나머지는 5~7골 선에서 정해졌고 그나마 7골은 1974 서독 월드컵그제고시 라토2022 카타르 월드컵리오넬 메시가 딱 두 번 기록했을 뿐이었다. 여담으로 한 대회 최다골은 13골을 기록한 프랑스의 쥐스트 퐁텐이다.[10] 아무래도 이렇게 여러 기능을 바탕에 두고 상대하는 편이 상대 선수에게 여러 심리전을 걸고 혼란을 주기도 유리하므로, 본인의 개인 기량을 뽐내기도 유리하다. 물론 풀컨디션 기준으로 말하는거다. 컨디션이 안좋거나 경기가 꼬일땐 이들도 혼자서 뭘 할 순 없다.[11] 공격작업 전반의 효율성과는 별개이다. 애초에 미드필드적 기능을 생략해버리고 중앙공격수의 툴만으로 공격해 나가는데, 그런 식의 공격이 통하려면 상대 선수보다 전반적인 스탯 자체가 압도적으로 뛰어나야만 가능하다. 반대로 말하면 상대와 비슷하거나 조금 앞서는 정도로는 그러한 공격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괴물같은 공격일 순 있을지언정 호나우두 개인에게 있어선 신체에 걸리는 부담이나, 에너지적 측면을 따졌을 때 효율적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12] 메시나 마라도나의 전성기 시절과 'VS'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마라도나와는 시대상이 달라 비교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치더라도, 사람에 따라선 오히려 메시보다 호나우두를 더 쳐주는 경우도 있다. 물론 사람마다 의견은 갈리겠지만, 프로 중에선 메시와 친분이 깊은 호나우지뉴도 '이에 대하여는' 호나우두의 편을 들어준 바 있었고, 무리뉴 감독 역시 이 주제에 대하여는 메시보다 호나우두(R9)의 손을 들어준 바 있었다.#[13] 여담으로 커리어 초창기 시절에 호날두가 이 스타일을 꽤 오래 벤치마킹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헤어드라이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4] 호나우두를 지나치게 신격화할 필요가 없는 게 축구선수는 한 인간일 뿐 모든 능력을 갖추고 있는 축구의 신이 아니다. 메시도 키 때문에 공중전은 약했고 전성기 호나우두 수준의 육체 능력까진 아니었다.[15] 다만 98 월드컵 결승 이전까진 지단은 당시 호나우두 위상에 비하면 많이 처지는건 사실이긴 했다.[16] 지쿠펠레와 호나우두를 비교하면서 부상 없는 호나우두는 펠레에 필적한다고 평하면서도 펠레와 동급이 되지 못하는 두 가지 이유로 유리몸인 점과 공중전 능력이 떨어지는 점을 꼽았다. 사실 90년대 183cm인 키를 생각하면 의외라면 의외인 부분인데, 초기보단 뚱뚱해지면서 더 부각된 점도 있다.[17] 후일 밝혀진 바로는 간질 발작 같은 건 아니고 호나우두가 어려서부터 지니고 있던 자면서 몸을 떠는 수면병이었다. 목숨이나 선수생명을 위협하는 그런 병은 아니고 일종의 몽유병인데 이걸 본 동료들이 간질 발작한다고 여겨 해프닝이 일어났었다. 참고로 나이키가 아픈데도 억지로 협박해서 나가게 했다는 것도 인터넷발 음모론에 불과하다.[18] 결승전 이전까지는 훨훨 날아다녔다.[19] 당시 프랑스의 수비진은 프랑스 국대 사상 손꼽히는 역대급 수비진, 그 유명한 철의 포백이었다.[20] 득점력이 감소했을뿐만 아니라 리그 평점도 100위권으로 추락했고 월드컵, 코파 아메리카,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UEFA 컵위너스컵, UEFA컵 등 클럽과 국대를 가리지 않고 큰 경기에 강했던 호나우두가 챔피언스리그에서 고작 6경기 1골밖에 넣지 못하는 등 크게 부진했다. 다만 이 기간은 잔부상이 겹쳐 교체 투입 비율이 높아지는 등 꾸준한 출장이 어렵긴 했다.[21] 02-03 시즌 라리가 23골, 03-04 시즌 라리가 24골(득점왕), 04-05 시즌 라리가 21골이었다.[22] 다만 라치오 전에서의 재발된 무릎 부상은 인테르 의료진의 판단 미스가 컸다. 호나우두의 무릎 부상이 덜 회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보냈다가 3분만에 부상이 재발했기 때문이며 이후 2년간 쉬게 되면서 다시는 예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23] 아이러니한 건 두 번의 슬개건 파열을 유발시킨 그 허벅지 근육이 사실 초인적인 가속력의 비결이있던 것이다.[24] 다만 담배의 경우 의외로 많은 스타 선수들이 피우긴 했다. 대표적으로 요한 크루이프, 디에고 마라도나, 지네딘 지단, 루이스 피구, 안정환, 웨인 루니, 라자 나잉골란, 마리오 발로텔리, 마르코 베라티 등이 있다. 당연히 좋을건 없다.[25] 사실 비에리 역시 성실함과는 거리가 한참 먼 선수였다. 다만 비에리는 불성실하긴 했어도 성추문 같은 윤리적인 이슈는 크게 없었다. 또한 호돈, 비에리뿐만 아니라 이 당시까지만 해도 슈퍼스타들 가운데 이처럼 프로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을 만큼 자기관리가 전혀 안되는 선수들이 의외로 많았다. 가령 그 시절 인테르에서 뛰던 당시 터키 최고의 재능 엠레 벨로조글루나 타고난 재능만으론 호돈이나 비에리와 비교해서도 전혀 뒤질게 없던 천재 알바로 레코바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부상 문제도 있지만 결국은 자기관리 실패로 운동 선수로 뛸만한 몸 상태를 선보이지 못하고 체중이 급격히 불어난 모습을 자주 보여준 것이 짧은 전성기의 원인이다. 이러한 축구선수들의 짧은 전성기는 2000년대 중반 넘어서야 구단 차원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식이요법 등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시스템을 도입하며 비로소 늘어나기 시작한다. 2000년대 후반~2010년대를 수놓은 메날두 장기집권 시대도 선수 개개인의 자기 관리뿐만 아니라 이런 뒷배경도 도움이 된 것.[26] 근데 정작 호마리우는 호나우두 보고 지나치게 연습을 많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이 말한 사람이 호마리우라는 것을 감안하자. 호마리우 역시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역대급 게으른 천재 중 하나다. 훈련장에서의 호마리우의 모습에 대한 증언으로는 이런 것이 있는데, 두 시간 가량의 훈련이 시작되면 다른 선수들이 땀을 뻘뻘 흘릴 때 호마리우는 사이클에 앉아서 페달을 몇 번 돌리다가 휴식하고, 잠깐 공 좀 만지다가 다시 사이클 페달을 몇 번 돌리다가 마실 것 좀 마시고 휴식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돌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스승인 요한 크루이프 속을 썩이기도 했다는데, 웃긴건 그 크루이프도 선수 시절엔 게으른 천재과로 스승 미헬스의 속을 썩였다. 운동하는 선수와 지도하는 감독의 입장은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 즉 어디까지나 게으름 GOAT의 기준으로 훈련을 지나치게 많이 한 것이다. 근데 더 웃긴건, 이런 호마리우가 물론 고점 자체는 낮지만, 전성기 기준으론 호나우두보다 롱런했다(...). 물론 호마리우의 일정한 몸매를 보면 알겠지만 팀 훈련에 게을렀다는 것이지 자기 관리는 잘하는 편이었다.[27] 에인트호번 시절까지 포함해도 3~4년 정도. 한편으론 또 아쉬운게, 보통 프로 축구 선수들의 전성기는 20대 중후반에 오는 경우가 많은데, 호나우두는 20대 초반에 전성기가 끝났다는 것이다.[28] 다만 1994 월드컵 때는 10대 시절로 엔트리에만 들고 한 경기도 뛰지 못했으므로 호나우두 개인의 평가와는 별개다.[29] 펠레는 1958 월드컵 우승과 1970 월드컵 우승때 본인이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고, 부상으로 중도 이탈한 1962 월드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하여 현재까지 유일하게 월드컵 3회 우승을 기록한 선수로 남아있다. 호나우두는 메시, 마라도나, 베켄바워, 지단과 더불어 1회 우승 · 1회 준우승에 크게 기여한 펠레 바로 아래의 전설 중 하나로 월드컵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30]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끝난 후 상당수 프랑스 선수들도 1우승 · 1준우승 반열에 올랐으며, 이 중에서 두 대회 모두 주역이었다고 할 만한 선수는 그리즈만음바페다. 특히 음바페는 나이와 지금까지의 페이스를 고려할 때 이후 펠레까지 위협할만한 월드컵 커리어를 갖게 될 가능성도 있다. 단, 두 선수 모두 개인 활약도를 따졌을때 아직 골든볼이 없다는게 흠이며, 특히 그리즈만은 2018년에는 팀에서 유일하게 브론즈볼과 실버부트를 탔으나 2022년에는 4강까지는 메시, 음바페와 골든볼 후보 3강을 형성할 정도로 잘했으나 결승에서 폭망해 아무런 개인상도 타지 못하였다.[31] 반 바스텐은 황금세대였던 네덜란드 대표팀과 당대 최고의 AC 밀란 밀란 제너레이션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만 28세까지 세 차례나 발롱도르를 수상한 레전드, 에우제비우는 60년대 유럽을 호령하여 흑인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하고 수많은 득점들을 기록하면서 당시 유럽 축구의 변방으로 여겨지던 포르투갈 리그 구단 벤피카를 UEFA 클럽 랭킹 1위까지 올리고 국가대표팀에서도 팀의 에이스로써 월드컵 3위까지 끌어올린 레전드, 그리고 뮌헨에서 압도적인 득점 기록, 우승 경력, 꾸준함,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월드컵,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등 국제무대에서도 전무후무한 활약을 펼치며 클럽과 국가대표에서 모두 정점을 찍은 명실상부 독일과 바이에른 뮌헨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게르트 뮐러 이 셋이 대등소이한 평가를 받는다.[32] 1996년의 돈 발롱. 그 유명한 축구 황제 펠레의 수식어 또한 'O Rei'이다. 국내 팬들이 호나우두를 축구 황제라 부르는 것도 이러한 해외의 수식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33] 1997년 1월판 월드사커.[34] 마라도나의 나폴리 첫 시즌은 유일무이한 구에린도르 평점 7점을 찍음으로서 구에린도르를 수상한 마라도나의 커리어하이 시즌이다.[35] 대부분의 축구 선수들이 20대 중반부터 전성기를 맞이하기 때문에 축구사 삼대장이라 평가받는 펠레, 마라도나, 메시를 제외하고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세계 최고가 된 경우는 역사상 거의 전무한데, 호나우두는 FIFA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 모두 역대 최연소로 수상하면서 21살의 나이에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발롱도르 수상연령을 보자면 역대 최연소는 21살의 호나우두이며, 그 뒤는 22살의 메시와 조지 베스트가 있고 그 뒤는 23살의 호날두가 있다. 거의 모든 선수들이 20대 중후반에 전성기를 맞이하는 상황에서 21살에 발롱도르를 탄 재능을 생각하면, 결국 IF에 불과하다 해도 '20대 중반의 호나우두는 어땠을까?'하는 안타까움이 생길 수 밖에 없다. 호나우두만큼 이른 나이에 세계 최정상에 오른 선수가 역대 최고를 다투는 삼인방인 펠레와 마라도나, 리오넬 메시 정도밖에 없음을 생각하면 커리어를 너무 일찍 불태운게 치명상으로 작용하고 만 셈이었다. 물론 역대급 재능이다 화제를 모으다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사례는 수두룩 하기 때문에 결국은 안타까운 IF에 불과하긴 하지만...[36] 1994 미국 월드컵 명단에 들어 우승멤버가 되었지만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이듬해 펼쳐진 코파 아메리카는 교체로 1경기 출전했지만 팀은 준우승에 그쳤다.[37] 바르샤 시절 호나우두를 조명하는 스페인 언론들, 마라도나, 크루이프보다 낫고 펠레와 같은 반열에 오를 것이라는 호주 조간 신문 기사, 인테르 첫 시즌의 호나우두와 전성기의 마라도나를 비교한 언론[38] 이 방송에서 한준희와 장지현은 호날두가 꾸준함과 장기간의 활약을 종합해볼 때 역대 순위에서 호나우지뉴보다 앞선다고 평가하면서 경기력으로 10/11 시즌의 메시의 활약과 대적할 만한 활약상을 보여준 선수는 호날두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04/05 시즌의 호나우지뉴라고 평가하였는데, 한준희 장지현 모두 96/97 시즌의 호나우두를 평가하면서 이 시즌의 퍼포먼스가 04/05 시즌의 호나우지뉴의 퍼포먼스보다 더 강하다고 평가하였다. 결과적으로 최전성기의 호나우두를 최전성기 호나우지뉴, 호날두보다 높게 평가한 것이다.[39] 당시 호나우두는 단순한 1인자를 넘어서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72위에 선정되는 등 거의 '펠레에 이은 차세대 축구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후대에 소위 춘추전국시대라고 불리는 이 기간의 1인자를 놓고 호나우두와 다투는 지네딘 지단은 당시 발롱도르 3위에 막 오르면서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었을 뿐 호나우두와 대등한 경쟁자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쉽게 감이 안온다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는 라이벌조차 몇 수 아래의 선수로 보이게 만들었던 발롱도르 4연패 전성기의 리오넬 메시를 생각하면 된다. 물론 단순 공격스탯은 호나우두가 호날두에게 밀리지만 당대에 던진 임팩트는 그랬다는 소리다.[40] 97 코파 아메리카와 97 컨페더레이션스컵 및 월드컵 라이벌인 독일전과 이탈리아전 등도 모두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휩쓸었다.[41] 해당 기사를 보면 호나우두가 펠레의 은퇴 경기날인 1976년 9월 22일에 태어났다고 적고 있는데, 펠레의 실제 은퇴 경기일은 1977년 10월 1일이다. 전형적인 펠레가 은퇴하자 호나우두가 태어났다는 영웅담 따위의 가십이자 잘못된 정보다.[42] 후일 밝혀진 바로는 심각한건 아니고 그냥 자다가 몸을 부르르 떠는 일종의 몽유병이었다.[43] 득점력이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평점도 100위권으로 추락하고, 이 기간에 출전한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6경기 1골밖에 넣지 못하는 등 심각한 슬럼프를 겪었다.[44] 다만 발롱도르의 경우는 호나우두가 2001-02 시즌에 공식전 16경기 밖에 뛰지 못했기 때문에 월드컵 우승뿐 아니라 챔스 우승까지 차지했던 호베르투 카를루스가 더 적절한 수상자였다는 논란이 있었다.[45] 2002 월드컵을 드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그의 천부적인 골 감각으로 8골을 넣었지만 무릎 부상으로 인해 예전과 같은 특유의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플레이 스타일도 1996-1998 시절의 폭풍 드리블보단 동료와의 연계를 통한 마무리 작업과 라인 브레이킹 위주로 바뀌었다.[46] 바르사에서는 코파 델 레이, UEFA컵 위너스컵을 연달아 제패하였으나 레알에 승점 2점차로 밀려 리그 우승이 좌절됐고, 인테르에서도 UEFA컵을 우승시키며 팀에 4년 만에 메이저 트로피를 선사했지만 역시 유벤투스에 밀려 리그 우승에 실패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호나우두를 인테르로 보내고 히바우두를 영입한 바르사는 바로 다음 시즌에 리그 우승을 이뤄 챔스에 나갔고 거기에 리그 2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때문에 팀이 수준 낮아서 챔스를 못나갔다 VS 마라도나처럼 지가 캐리해서 리그 우승 했어야지? 라는 키배가 팽팽하다. 호나우두의 첫 리그 우승은 전성기가 한참 지난 레알 마드리드 갈락티코 1기에서의 02-03 시즌.[47] 다만 최전성기인 바르샤와 인테르 첫시즌의 경우 호돈이 팀을 캐리하든 못하든 관계없이 애초에 챔스 진출권이 없는 팀으로 이적을 하는 바람에 못 나간 거라 이걸로 까이는 것은 상당히 억울할 만하다. 한편으로는 이 사실을 가지고 당시 챔스 위상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는 억지 주장을 펼치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4위 팀에게까지 출전권을 주지 않아서 정상급 선수임에도 위너스컵, 웨파컵에 나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지, 챔스가 최상위 클럽대항전인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48] 그의 짧은 전성기에도 불구하고 그를 직접 본 현지 전문가들은 역대 10위 안까지 두는 경우도 있으며, 현지로 갈 것도 없이 역대 최고 선수 논쟁 등과 같은 해외 유튜브 영상 댓글만 봐도 해외 호돈빠들이 자주 출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국내에서 유독 저평가-고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건 호나우두의 전성기였던 90년대 말 당시 라리가 중계가 KBS 위성스포츠에서 97년에 막 시작했지만 인터넷도 없고 아직 해축팬덤이 형성되기 전이라서 보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었고(인터넷에는 직접 봤는데 쩔더라/거품이던데? 하는 소리가 넘쳐나지만 실제론 양쪽 다 구라일 확률이 높다) 90년대 라리가와 세리에를 라이브 생중계로 볼 정도의 해축 매니아 자체가 극소수였다. 98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황금스쿼드를 보고도 '쟤네가 누군진 잘 모르는데 해볼만하지 않냐?', '저쪽에 베르캄프라는 애가 잘한다는데 최용수급이냐?' 이런 어이없는 반응이 당시 대중들의 인식이었고 그만큼 한국은 소수 매니아를 제외하면 2005년 박지성의 맨유 입단 좀 더 빨라도 04-05 PSV 챔스 4강 시절 이전까진 해외축구판에 대해 거의 아는게 없는 갈라파고스 우물 안 개구리였다. 결론적으로 많은 한국 축구팬들이 호나우두의 리그 플레이를 직접 볼 수 있었던(월드컵은 98년도부터 이미 생중계해줬다) 시대는 호나우두의 기량이 무릎 부상으로 대폭 하락한 말년의 모습에 불과했거나, 아니면 하이라이트와 움짤 위주로 볼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러니 극단적인 저평가와 고평가를 왔다갔다 하기 쉬운 환경이었으나, 2020년대 들어선 풋볼리아 등의 사이트에서 호나우두의 전성기 시절 풀경기들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관련 매니아들의 나름 심도있는 고찰과 토론들이 이뤄지며 이런 경향이 줄어들고 평가도 어느 정도 안정세를 찾아가는 모습이다.[49] 그런데 1994 월드컵 때는 엔트리에만 들고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으므로 어린 나이에도 우승팀의 명단에 포함될 만큼 뛰어난 기량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다.[50] 부트발에서 선정한 6위는 호나우두가 네덜란드에서 뛰었기 때문에 다소 고평가받은 측면이 있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51] CF 1위[52] 돈 발롱 어워드[53] B팀[54] B팀[55] 링크[56] 전술이 없다며 비판하는 기자들을 향해[57] 출처[58] 호나우두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드에서 40년만에 원정팀선수가 해트트릭을 하는 기록을 세우고 올드 트래포드에 7만여 맨유팬들에게 기립박수를 받는 진기명기한 기록을 세운 뒤 James Mosley란 축구 칼럼니스트에게[59] 호나우두가 바르셀로나 소속 시절 감독. 호나우두를 끝까지 잡으려 했으나 구단이 인터 밀란으로 보내면서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만다.[60] 출처[61]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크루이프도 마라도나에게 선수로서는 대적할 수 없다고 발언한 적이 있었는데 호나우두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당시 호나우두의 활약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알게 해 준다.[62] 자신이 생각하는 역대 최고의 선수로 호나우두를 꼽으며.[63] 출처[64] 알파벳 철자가 같은 호날두와 구별하기 위함이다.[65] 정작 호나우두는 알렉스 퍼거슨과의 신경전에서 자신의 선수 커리어에 더할 수 없이 만족한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이는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태에서 한 말이니 진실은 본인만이 알 것이다.[66] 출처[67] 출처1, 출처2[68] '당신이 본 최고의 선수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69] 출처[70] 출처[71] '당신은 호나우두와도 호날두와도 함께 플레이해봤습니다, 누가 최고였나요?'라는 질문에[72] 출처[73] 출처[74] 출처[75] 카펠로는 수십 년의 감독 생활 동안 마르코 반 바스텐, 루드 굴리트 등의 위대한 선수를 가르쳐왔고, 호나우두를 지도한 것은 부상과 자기관리 실패, 노화 등으로 전성기에서 한참 내려온 말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나우두를 자신이 지도한 선수들 중 최고의 재능으로 꼽은 것. 다만 자신이 지도해본 선수 중 가장 위대한 센터포워드는 반 바스텐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즉 재능은 호나우두가 위였지만, 자기관리 실패 등의 이유로 포텐을 만개하지 못하여 실제 선수로서는 반 바스텐이 위였다고 생각한다고 보면 된다.[76] 출처[77] 출처[78] '어릴 적 동경했던 선수는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에[79] 출처[80] 사실 주된 내용은 호날두의 노력을 칭찬하는 것이나, 호나우두의 재능을 인정하는 대목도 있어서 항목에 포함힌다.[81] 전술된 카펠로의 지적처럼 호나우두는 레알 시절 훈련 태도와 자기 관리가 나빴으므로 라울은 팀의 주장으로서 이를 지적하며 갈등을 빚었지만, 이렇듯 호나우두의 실력만큼은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82] "PSV에서 호나우두와 함께 뛰었던 적이 있죠? 그는 당시부터 이미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선수였나요?"라는 질문에.[83] 출처[84] 말디니는 오랫동안 프로생활을 하면서 마라도나, 호나우두 이외에도 호마리우, 바조, 지단, 토티, 델 피에로, 라울, 호나우지뉴, 호날두 같은 수많은 공격수들과 맞붙었는데 이 중에서 2번째라고 하면 영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85] 출처[출처] COPA 90 인터뷰[86] 아이러니하게도 이 날 결승골을 넣으며 레알의 승리를 이끈 주역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다.[87] 해당 기사에는 언급되어있지 않으나, 호나우두가 구단주로서 본인을 포함한 선수 전원이 한국의 경기 노하우 등을 배워갈 것이라 언급했다.[88] SKT 선수들 중 호나우두의 팬인 인기 아이돌 앞 소녀팬마냥 어쩔 줄 몰라하는 태도로 메달을 받고 악수를 나누고 페이스북에서 호돈신과 직접 악수한 것 만으로도 자기 인생이 성공적이라는 들뜬 감상을 밝혔다.[89] Undisputed Emperor[90] Der Kaiser[91] Imperátor[92] El Gran Capitán(이는 아르헨티나의 독립 영웅 호세 데 산 마르틴의 별명이기도 하다.)[93]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도 비슷한 경험으로 무시당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기에 팬서비스 정신이 투철한데 재밌는 건 즐라탄이 호나우두의 광팬이라는 것이다.[94] 1994년은 10대 시절로 주전은 커녕 출전도 못해 한골도 못넣었다. 10대부터 캐리한 펠레는 논외로 하자.[95] 네덜란드의 경우 준영어권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영어만 할줄 알아도 현지에서 큰 불편함 없으며, 대다수의 네덜란드를 거쳐가는 남미 및 비유럽권 선수들이 네덜란드 리그를 빅리그로 가기 위한 교두보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기에 영어가 더 중시된다. 그래서인지 네덜란드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 선수는 거의 없고, 유튜브를 뒤져봐도 네덜란드어 인터뷰는 찾을 수 없고, 박지성 또한 네덜란드 현지에서 영어를 배웠으며 네덜란드어는 간단한 소개 빼곤 거의 못한다고 한다. 호나우두도 이 시절에 영어를 본격적으로 접했을 것이며, 영미권 언론과의 인터뷰는 오래전부터 잘 소화했다. 카카에 비해 남미식 억양이 많이 묻어나는 영어를 한다.[96] 그래도 인터 밀란 초기에는 10번을 달고 활약했다.[97] 실황 월드 사커 북미판의 브라질용 크랙 버전이다.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선수, 공격수 5인을 선정했는데, 1990년대 선수와 공격수들 중 1위에 이름을 올렸다.

  • 코로나로 취소된 2020 발롱도르 대신 프랑스 풋볼에서 선정한 올타임 발롱도르 드림팀의 퍼스트 주전 스트라이커로 선정되었다. 전체 평가에선 보통 더 높은 순위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은 요한 크루이프를 제치고[98] 호나우두가 선정되어 논쟁이 있기도 했으나, 월드컵 스탯이나 스트라이커라는 포지션만 놓고 보면 이상할 것 없다는 의견 역시 상당했다. 펠레마라도나 모두 공격형 미드필더에 배치된 탓에 반사이익을 본 것도 있을 것이다.[99]


  • 피파온라인4에서는 좋은 성능을 자랑한다. 피파4에서 몸싸움 능력은 아쉽지만 수비수를 순식간에 따돌리는 속도, 화려하고 시원시원한 드리블과 무엇보다도 양발 능력으로 박스 안 어떤 위치에서도 골을 넣어주는 고성능 스트라이커이다. 중거리 슈팅 능력은 좋지 않은 편이며 슛파워 자체가 약해서 답답한 경우가 생긴다. 공중전이 약점이었던 실제 호나우두와 달리 피파온라인4의 호나우두는 헤더 골도 어느정도 넣을 수 있으며, 온갖 개인기를 뽐내며 상대 수비수를 농락하는 플레이도 가능하지만 무엇보다도 순식간에 오프사이드 라인을 돌파하는 고속 침투가 가능하다. 아무래도 피파 엔진의 한계상 실축 호나우두를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한 측면이 있다.

2021년 겨울에는 ICON 클래스 호나우두의 출시를 예고하며 호나우두 본인이 출연한 멋진 광고도 찍었다. 아이콘 클래스의 전반적인 오버롤 버프 이후 동일 강화 기준 피파 온라인 4에서 가장 비싼 카드가 바로 아이콘 호나우두로 1강 기준 약 1조 4천억 BP이다. 당연히 5강 정도만 가도 수십 단위로 오른다.


  • 2021년 11월 개설한, RonaldoTV라는 본인의 유튜브 채널이 있다.#




11. 같이 보기[편집]




[98] 해당 조사에서 최소 표차인 576:562 14표차로 요한 크루이프는 세컨드 주전 스트라이커가 되었다.[99] 반사이익이라고 보기도 뭐한게, 애초에 마라도나는 주 포지션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스트라이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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