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스/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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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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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담
1.1. 종교
1.2. 중국사 유물 보존
1.3. 증손
1.3.3. 증손의 병역면제
1.4. 생전 육성
1.5. 야사
2. 기타



1.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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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신 대만 달러 지폐에 나온 장제스. 밑의 건물은 타이베이 총통부다.


1.1. 종교[편집]


종교개신교(감리교)였다. 아내인 쑹메이링과 아들인 장징궈크리스천. 원래 쑨원을 포함한 중화민국 및 중국 국민당의 초기 정치적 주요 인사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았다. 사실 장제스는 본래는 크리스천이 아니라 불자였지만, 쑹메이링과 결혼하면서 개종을 한 것이다. 쑹메이링이 장제스와 결혼할 때 내건 조건 중 하나였다고...


1.2. 중국사 유물 보존[편집]


비록 대만으로 쫓겨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금성에 있던 진귀한 역사적 유물의 핵심을 보존해 대만으로 실어왔다. 이 유물들은 중국의 여러 황실에서 계속 모아온 보물 중의 보물로 지금까지도 중화민국이 가진 가장 큰 보물로 꼽힌다.

정말 문화적인 면에서는 중화민국의 유물 보존 노력이 많이 도움이 되었고 현재 유물을 전시 중인 고궁박물원을 세계 4대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장제스가 유물을 이전한 이후 자금성은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아 관광객을 맞이하기도 했는데, 이후 중국 정부가 대륙 전체에서 유물을 수집해 양적으로는 과거의 규모를 능가했지만 질적으로는 국립 고궁 박물원의 그것과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장제스가 자금성의 유물을 가져가지 않았다면 그 유물들은 문화대혁명 시기를 무사히 넘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 대만 고궁박물관과 북경 고궁박물관을 비교한다면 대만 쪽이 명, 청 및 근대시기 유물이 많고 본토에는 고대 시대 유물이 많다고 한다. 당연한 것이 장제스가 유물 들고 대만에 넘어갔을 쯤에는 전제 왕조 시절 부터 쌓여있던 오리지널 유물을 가져간 거고 그 후에 대약진 운동이야 문혁이야를 거치고 난 뒤 좀 안정됐을 때 좀 더 발전된 고고학 기술을 이용해 발견된 유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1.3. 증손[편집]



1.3.1. 증손 장여우보[편집]


증손자인 장여우보(蔣友柏, 장우백)가 매우 미남이라 한때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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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주간 - 나의 증조부 장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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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여성이 뽑은 멋진 남자 2위에 올랐던 적도 있다. 그는 장징궈의 3남 장샤오융(蔣孝勇, 장효용)의 아들로, 장징궈의 아내 장팡량(蔣芳良, 장방량)이 소련 출신이라 장제스의 손자 대부터 혼혈 외모가 나타나는 것. 장징궈에게는 비서와 사통해서 낳은 쌍둥이가 있었기 때문에 이쪽 계통 자손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장징궈 항목 참조. 장여우보는 미국 유학 후 대만에서 광고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진정한 엄친아.

반대 급부로 마오쩌둥의 유일한 손자인 마오신위후덕한 외모로 비교가 되기도 했다. 대만과 대륙의 여성 네티즌 사이에선 얼굴로 대륙을 탈환해 달라는 반응도 있다.

정치와는 큰 관련을 맺지는 않지만 장제스의 대만 통치에 대해 반성의 태도를 나타내는 등 장제스에 대해 여타 장씨 가문 인사들과 다른 인식을 보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한편 장여우보의 동생인 장여우칭(蔣友青, 장우청)은 모교인 타이베이 아메리카 스쿨에 "교사와 학생을 다 죽이겠다", "학교를 폭파하겠다"는 등의 협박을 일삼은 죄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1.3.2. 증손 장완안[편집]


장제스의 증손자 중 하나인 장완안(蔣萬安, 장만안)은 장징궈(장경국)의 비서이자 내연녀 장야뤄(章亞若, 장아약) 사이에서 난 자식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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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징궈의 본처 장팡량이 장징궈의 친자식으로 인정하는 것을 반대하는 바람에 내연녀의 성을 따라 章씨였다. 후에 장팡량이 죽고 장씨 가문에서 인정받아 2005년 3월에 蔣씨로 성을 바꿨다. 이후 2007년도에 2.28 사건의 최고 책임자가 장제스라는 주장을 담은 책이 나오자 명예 훼손이라며 저자를 고소하기도 하였다.

이후 장완안은 2016년 제9대 대만 입법위원 선거에서 타이베이시 3선거구(중산구, 쑹산구)에서 중국 국민당 후보로 입법위원(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입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수려한 외모와 참신한 이미지 덕분에 인기가 매우 높아 정계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민당의 차기 주자 중 하나로 예상되고 있다.

2022년 11월 26일에 열린 지방선거에서 타이베이 시장으로 나서 승리하였다. 타이베이 시장에서 총통이 된 정치인들을 생각해보면 국민당의 가장 유력한 총통 주자로 부상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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香港的學生及年輕人,無懼港警強力鎮壓,為了捍衛自由與民主,向全世界發聲及吶喊,對於這樣的勇敢,我必須要給予最高的敬意。
                          
在臺灣,一國兩制沒有存在的空間,民主自由憲政體制也不容任何破壞及妥協。政府除了要密切注意並維護在香港就讀的臺生、在港工作的臺灣民眾人身安全,必要時也該提供香港民眾人道救援。
홍콩 학생들과 젊은이들은 홍콩 경찰의 강경 진압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전 세계에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강력히 지지할 것입니다.

대만에는 일국양제가 있을 곳이 없으며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헌법 체계는 어떠한 탄압도 타협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대만 정부는 홍콩에서 유학 중인 대만 학생들과 홍콩에서 일하는 대만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함은 물론, 홍콩 주민들을 위한 인도적인 지원을 해야 합니다.

- 장완안(蔣萬安, 장만안) 중화민국 입법원 국회의원(중국국민당) 출처

그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위해 뛰쳐나온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며 일국양제를 거부하는 논평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장제스의 자손이라는 점 때문에 대만 정계에 충격을 몰고 왔고, 해당 글에 대해 중국에서 몰려온 우마오당들은 "장제스 얼굴에 먹칠할 거면 민주진보당으로 꺼져라"는 등 댓글로 각종 패드립을 치고 있고, 범록연맹 지지자들도 "진정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며 까고 있다. #


1.3.3. 증손의 병역면제[편집]



대만 정치인의 병역 관련 내용이 나온 싼리 뉴스의 영상. 38초에서 장제스 후손의 병역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장제스의 아들은 복무중 질병으로 의병전역했으며, 증손 장여우바이, 장여우창, 장여우칭, 장완완은 교포신분으로 병역이 면제되었다고 한다. 교포신분으로 병역이 면제되었다는 것은 해외 영주권자 신분으로 병역이 면제되었다고 보면 되는데, 장제스의 증손들은 1970년대에 태어났고 1990년대에 병역의무 연령이 되었다.

장완완의 경우 2002년 미국 로스쿨 유학과 변호사 근무로 2013년까지 미국에 있었는데 이게 교포신분이 되어 병역이 면제된 것이다.


1.4. 생전 육성[편집]



군사학교의 사관 후보생을 대상으로 한 연설. 2분 부터는 소련 주재 중국 공사 옌후이칭의 연설이다.


중일전쟁 승전 연설(중 일부)이다. 표준중국어로 하긴 하는데 발음이 영 좋지 않은데 저장성 지역의 방언인 오어를 오랫동안 썼기 때문이었다.

장제스는 열혈 중앙집권주의자로 표준중국어를 유일 국어로 밀었지만 본인은 국어가 어색했다. 이는 숙적인 마오쩌둥과 이 둘의 대선배인 쑨원도 마찬가지였는데 마오쩌둥도 역시 표준중국어만 유일한 공용어로 지원했지만 정작 자신은 사석에서는 고향인 후난성의 샹어를 주로 썼고 공식 석상에서 표준중국어를 쓰긴 하는데 상당히 서툴렀다. 쑨원의 경우 광동어가 모어이고 정치 활동에 쓰던 주 언어는 영어였다. 참고로 중국어 방언들은 소통이 안 되는 외국어 수준으로 각자 다르다.

타이베이에 있는 중정기념당에서 전문을 재생해 준다.


1.5. 야사[편집]


한국에서 정재계 부정부패 사건이 터질 때 가끔 언급되는 장제스에 대한 야사가 있다. 야사에서의 시점은 중일전쟁이 한창일 시기이거나, 국부천대 이후 장제스가 타이완에서 국민당 정권을 개혁할 때로 꼽힌다. 야사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장제스의 며느리가 밀수 등 심각한 부정부패에 연루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장제스는 며느리의 집을 강제 수색하라고 명하였는데, 집을 수색하자 각종 보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장제스는 며느리를 불러서 한 상자를 선물로 주었는데, 며느리가 집으로 돌아와 상자를 열자 권총이 나왔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압박을 눈치채고 그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이야기.

이 야사는 의외로 오래되었는데, 한때 중화민국 주재 대사를 지냈던 김신의 회고록에서 이 내용의 기반이 된 썰이 나오며, 김영삼도 대통령 시절 금융실명제를 시행하면서 김현철에게 이를 언급한 적도 있다. 장제스의 며느리 중 한 명인 스징이(石靜宜, 장웨이궈의 첫 번째 부인)는 실제로 사치와 밀수 등의 행위 때문에 장제스가 매우 싫어했다. 스징이는 1953년에 사망했는데, 이때 전후 사정이 석연치 않아서 장제스가 스징이를 암살, 혹은 비밀리에 처형했다는 설이 크게 나돌았다. 김신은 아예 회고록에서 이 설을 사실이라고 소개했다. 이 살해설이 앞서 언급한 부정부패 야사로 발전한 것.


2.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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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항복 직후인 1945년 12월 3일에 걸린 것으로, 지금의 마오쩌둥 초상보다 컸는데, 고작 3년 1개월 만에 내려지게 되었다.

  • 장제스의 사진이 톈안먼에서 내려진 것과 달리 난징 총통부 안의 옛 집무실에는 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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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옛 총통부 건물은 한국으로 치면 도청(道廳)에 해당하는 장쑤 성 정부 청사 등으로 쓰여왔다. 따라서 건물을 제외하면 장제스 및 국민당과 관련된 상징물이 지속적으로 남아있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던 정부 기관을 다른 곳으로 이전시키고 옛 총통부 건물을 사적으로 지정했다. 1990년대 후반 옛 총통부는 태평천국 및 근대 역사 박물관이 되었고, 2003년에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이 초상화는 박물관으로 재개장할 때 만든 것으로 장제스가 집권하던 시기에 저 초상화가 걸려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여기가 그의 집무실이었다는 상징적 의미가 강한 물건이다. 가끔가다 대만의 젊은이들이 난징 국민당 청사로 가 청천백일기를 들고 인증샷을 찍기도 한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도와주던 시절, 김규식에게 절강성은 당신들의 조상들의 땅이었는데 모르고 있었냐고 하고, 그러니 나라를 빼앗긴 게 아니냐고 이야기했다.

  • 타이베이 북부의 스린(士林)에는 그와 부인 쑹메이링이 국공 내전 직후 후퇴한 1949년부터 26년 동안 거주했던 총통 관저가 있다. 한국에는 청와대 안에 대통령의 살림집(공관)이 있으나, 중화민국은 밖에 있으며, 거기에서 총통부로 출근한다. 현임 차이잉원의 관저는 리덩후이 집권기 때부터 쓰이는 곳으로 총통부와 약 1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총통 관저는 1975년 그가 타계한 곳이기도 하다. 2000년대부터 일반에 공원 및 사적지로 개방되어 관광객을 맞고 있다. 공원은 무료지만 관저는 NTD 100달러를 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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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구조로 장제스 부부가 사용했던 서재, 침실, 각종 사진, 소장품, 그리고 외국 귀빈과의 접견실 등이 마련되어 중국 현대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가볼 만한 곳이다. 아쉽게도 내부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관저 2층에는 장제스와 쑹메이링 여사의 침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이는 군인 출신인 장제스가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몸에 배어 기상과 취침 시간이 빨랐던 반면, 쑹메이링은 올빼미 스타일로 밤에도 독서와 취미 활동을 했다. 주로 자수, 그림을 했으며, 관저에 걸린 미술품의 상당수가 쑹 여사의 작품이다. 그래서 서로 취침 시간이 맞지 않았던 점을 반영한 결과다.

  • 오늘날 대만에서는 쑨원과 장제스, 장징궈의 캐리커처 인형을 과거의 적수였던 공산당의 마오쩌둥, 덩샤오핑 인형과 함께 만들어 기념품으로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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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 기념당을 포함한 장제스 관련 사적지에서 이런 인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엔 마잉주시진핑의 인형도 추가되었다.


  • 장제스는 살아생전 자신에 대해 교장 선생님이란 호칭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황푸 군관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는데, 이 황푸 군관 학교 시절이 애착이 강했다는 것. 이 호칭에 따라 그는 직계 / 방계를 구분했었다고 한다. 국부천대 이후에도 국립정치대학의 총장(중국어로는 '교장'이라고 한다) 직을 죽을 때까지 겸임했다. 그러니까 장제스는 국립 정치 대학의 '교장 선생님'이기도 했던 셈(물론 실제 업무를 하는 총장은 따로 있었다). 장제스가 아직 기력이 남아있었을 시절에는 국립 정치 대학에 때때로 강연을 나가기도 했던 모양이다. 쑹추위2016년 총통 선거 출마 선언 직후에 대만 TV와의 인터뷰에서 국립 정치 대학에 다니던 리즈시절에 장제스를 강단에서 처음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 여러모로 말투가 굉장히 험해서, 외국 외교관들과의 대화를 아내인 쑹메이링(송미령)이 번역하는 데 상당히 힘들었다고 한다. 장징궈가 사실상 후계자가 된 후 쑹메이링은 찬밥 먹는 신세가 되어, 국부천대 이후엔 미국에 거주하게 된다.

  • 유명한 카이로 회담에서 담소하는 장제스 사진은 연출이다. 장제스는 영어를 전혀 못 했고 회담 내내 본국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던 창더 전투의 불리한 전황과 이를 자꾸 캐묻는 미국과 영국 때문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다만 쑹메이링의 활약으로 회담 자체는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 1940~1960년대의 전설적인 여배우 이려화(李麗華)의 팬이었다고 한다.

파일:이려화,엄준,장제스.jpg
이려화가 출연했던 영화 <양산백과 축영태(梁山伯與祝英台 1964년)를 측근들과 함께 여러 번 반복해서 보기도 했었다고 한다. 사진은 1957년 12월 10일에 신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려화 - 엄준(嚴俊) 부부를 초청하여 찍은 것이다.

  • 장징궈의 동생인 장웨이궈(장위국, 蔣緯國)는 원래 장제스의 아이가 아니라 손문의 동지이자 신해 혁명에 참가하였던 다이지타오(戴季陶)가 일본 여자와 관계해서 낳고 키울 수 없어서 맡은 아이로 알려져 있다. 이 아이에게 자기의 성과 항렬까지 준 대인배였고 장웨이궈는 독일 유학파 장교로 강하엽병 장교로 오스트리아 병합에 참가한 바 있다. 일설에는 폴란드 침공 때도 있었다고 한다. 장웨이궈의 혈통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고 장제스의 친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 장제스가 고자였다는 것은 확실하나 언제 생식 기능을 상실했는지에 대해선 말이 많다. 까지 둔 걸로 봐서는 성관계는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장징궈는 장제스의 아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씨라는 말도 있는데, 이게 장웨이궈의 일방적 주장이고 장징궈를 엿 먹이려는 의도가 강해서 신빙성이 없는 걸로 판단된다. 장제스가 고자가 된 시기에 대한 가장 유력한 설은 장제스의 두 번째 부인인 천제루(陳潔如)의 회고록에 나와있는 대로 장제스가 30대 초반에 상하이의 윤락가들을 들락거리다 성병을 옮아 부고환염에 걸려 고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제스는 자신의 성병을 아내에게 옮겨서 천제루까지 불임의 몸이 되었다. 다만 천제루도 장제스가 장제스의 모친인 왕차이위의 불륜의 결과물이라고 하는 등 신빙성이 없는 주장을 하기도 해서 수상쩍기도 하다. 어렸을 때 고환을 화로에 데어 그 여파로 고자가 되었다는 말도 있다.


  • 무척이나 무뚝뚝하고 웃지도 않고 과묵한 성격으로 젊은 시절 이후로 술, 담배를 끊었다. 중일전쟁 중에는 담배를 조금 피우기도 했다. 마오쩌둥은 "내가 살다살다 담배 안 피우고도 오래 사는 인간은 장제스 말고 본 일이 없다"고 50년대에 장제스를 까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런 말이 나올 만한 게 그때는 담배가 건강에 안 좋다는 것이 잘 알려지지 않기도 했고, 마오쩌둥은 장제스와는 대조적으로 하루 50개비씩(2갑 반) 꼬박꼬박 피운 골초였다.

  • 하지만 그와 별개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이 유명하다.

  • 술, 담배는 물론 차조차도 사치라고 즐기지 않았지만 고향인 저장 성 특유의 생선 요리를 무척 좋아하여 대만에 가서도 저장성 생선 요리를 먹을 때면 생선의 풍미에 대해 얘기하며 어린 시절을 회상하곤 했다 한다.

  • 통치에 있어서는 실정을 저질렀을지언정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지극한 효자였다. 그의 어머니는 남편이 죽고 거의 홀몸으로 온갖 고생을 해가며 장제스와 형제들을 키웠는데 장제스가 군인으로서 이제 겨우 자리를 잡던 1921년에 사망하였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도 장제스를 배려하여 남편과 합장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장제스는 유명한 풍수학자들을 불러다가 고향 땅의 가장 좋은 명당을 찾아내서 장사 지냈으며 이후 총통의 자리에 오르자 묫자리를 크게 넓히고 아무리 바빠도 매년 어머니의 기일마다 찾아와 제사를 올렸다. 내전에서 패하고 대만으로 가기 직전에도 찾아와 꽤 오랜 시간을 머물다 떠났다고 하는데 이 소식을 들은 마오쩌둥은 묘소를 건들지 말고 보존하라 명령을 내렸다. 문화대혁명 때 묘소는 박살 나고 시신은 꺼내져서 불탔지만, 현재는 대륙에서 장제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묘소도 다시 복원되어 있으며 관광 명소가 되었다. 이곳에 가면 '항일 영웅이자 마오쩌둥 주석의 위대한 맞수'라고 그를 표현한 글귀들이 있다.

  • 환빠들 중 상태가 특히 안좋은 일부 환빠들은 장제스가 중일 전쟁 종전 후에 만주족의 본거지인 만주에 치를 떤 나머지 만주를 조선에 양도하려 했지만 마오쩌둥이 국공 내전에서 승리하는 바람에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장쉐량을 천하의 개쌍놈으로 매도하기도 한다.[1]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주요 연합국 지도자 중에 장제스는 마지막 생존 인물이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1945년 졸), 조지 6세(1952년 졸), 이오시프 스탈린(1953년 졸), 윈스턴 처칠(1965년 졸), 클레멘트 애틀리(1967년 졸), 해리 트루먼(1972년 졸)에 이은 마지막 사망자. 하지만 중화민국의 몰락으로 인하여 대개 고려되는 경우가 크게 적다. A.J.P 테일러의 2차 세계 대전의 기원에서도 주요 연합국 지도자들을 언급하면서 당시 생존해 있던 그를 빼고 당시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지도자들 중에 살아있는 것은 드골과 처칠뿐이며 그중에서 현역에서 정치를 하는 건 드골뿐이라고만 한다.

  • 대만의 고등학교인 젠궈중학(建國中學)이란 학교에선 매년 졸업식 때 학생들이 교내에 있는 장제스 동상을 우스꽝스럽게 꾸미는 전통이 있는데 2019년에는 타노스로 꾸며서 대만에서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이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한 것일 뿐'이라며 학생들을 옹호했다.

  • 국내 남성 잡지 맥심 2020년 9월호 168쪽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방부는 중화민국의 장제스(蔣介石)를 중화인민공화국 사람으로 바꿔버렸다.

같은 해 6월, 국방부의 관리를 받는 전쟁기념관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도왔던 '중화민국'(현 대만)에 엄청난 외교 결례를 범했다. 당시 중화민국의 총통이던 장제스를 '광복군의 든든한 후원자'로 소개하면서 국적을 중국으로 홀라당 바꿔버린 것. 중화민국의 국기 '청천백일기' 대신 그들의 적이자 1945년 광복 전까지 건국되지도 않았던 중화인민공화국(현 중국)의 '오성홍기'를 때려 박았거든. 우리로 치면 이순신 장군 사진에 일장기를 박아넣고 "위대한 일본인 이순신!"을 외친 수준이다. 온라인 게임하다 만난 중국인에게 "타이완 넘버원!"을 외쳤을 때 분노하는 중국인을 만나본 독자라면 대만과 중국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반감을 품는지 잘 알 거다. 그런 대만에 중국 국기를 들이밀었으니... 이 사건으로 국방부는 중화권 언론에서 신나게 조롱을 받야야 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국방부가 이와 흡사한 사건을 불과 1년 전에 겪어놓고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거다. 2018년, 국방부는 국군 창설 7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국군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웹툰 홍보물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근데 이 게시물에서 중화민국의 국기를 중공의 국기처럼 보이도록 색을 입혀놨던 사건이었다. 이 게시물의 원안인 1940년 광복군 창설식 사진이 흑백이라서 깃발의 색을 몰랐대도 그렇지, 인터넷으로 몇 초만 찾아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정보를 그대로 베껴 그리는 것도 못 한다는 말인가?

  • 키는 169cm 정도로 추정된다.

  • 중국 칭다오에 장제스의 별장이 있다.

[1] 후술하겠지만 장제스는 한국을 독립시킨 뒤 중화민국의 위성국으로 만들거나 아예 병합하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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