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섭/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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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입단 전
2.1. 2013 시즌
2.2. 2014 시즌
2.3. 2015 시즌
3.1. 2015 시즌
3.2. 2016 시즌
3.3. 2018 시즌
3.4. 2019 시즌
3.5. 2020 시즌
3.6. 2021 시즌
3.7. 2022 시즌


1. 입단 전[편집]


대학 졸업반 시절 기사

201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박지훈에 이어 2라운드(전체 15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계약금은 1억 1,000만원.


2. KIA 타이거즈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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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입단하자마자 팔꿈치 수술을 받고 신고선수로 전환되었으며, KIA 팬들은 왼손잡이인 것만 보고 상위 픽으로 뽑았냐며 스카우터들을 욕했다. 당연히 재활로 2012 시즌은 1, 2군 등판기록이 전무.[1]


2.1. 2013 시즌[편집]


2012년 시즌이 끝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캠프에 합류, KIA의 고질적인 좌완 불펜 문제를 해결할 열쇠로 기대받았다.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선동열 감독의 주목을 받았고, 오키나와 캠프 연습경기에서 선발 및 롱릴리프로 나와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다.

3월 12일 시범경기 광주 SK전에서 선발로 등판, 3회초 무사 2, 3루의 위기에서 1실점으로 막아내면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 날 성적은 4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2K 1실점으로 롱 릴리프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3월 19일 시범경기 마산 NC전에서 2번째 선발로 등판해 5⅓이닝 4피안타 무사사구 4K 1실점의 호투를 보여주면서 시범경기 2승째를 거두었다.

윤석민김진우가 재활로 정규시즌 개막에 맟춰서 출전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고심중인 KIA 마운드에 임준섭의 호투가 더 빛을 발하였다. 윤석민김진우가 정규시즌 개막에 맞춰 나오지 못할 경우 소사, 서재응, 양현종에 이어서 4, 5선발로 투입될 가능성도 높았다.

4월 3일 대전 한화전에서 선발로 등판하였다. 초반에 제구가 약간 불안정했지만 수비의 도움을 어느 정도 받으면서 안정감을 찾았고, 6이닝 2피안타 1사사구 2K 무실점으로 호투하면서 시즌 첫 승이자 동시에 데뷔 첫 승을 거두었다. 선동열 감독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 날 김주찬이 1회초 유창식의 공에 손등을 맞아 부상 당하는 일이 생기면서 임준섭의 데뷔 첫 승이자 11년만의 구단 내 첫 등판 승리투수 기록이란 쾌거가 묻히고 말았다. 임준섭 바로 이전의 구단 내 첫 등판 승리 투수 주인공은 바로 김진우.

4월 9일 무등 두산전에서 깜짝 선발로 등판. 원래대로의 선발 로테이션이라면 양현종이 올라왔겠지만, 신인 투수 공략에 약한 두산 타선을 감안하여[2] 이와 같은 결정이 난 듯. 하지만 두산 타선을 상대로 볼넷을 많이 기록하는 등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다가 이종욱의 역전 3점 홈런과 홍성흔의 추가 적시타로 인해 1⅓이닝 4실점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조기 강판당하고 말았다.

4월 18일 LG 트윈스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 타선이 1회초부터 득점지원을 빵빵하게 해주고 LG 타선도 힘을 못쓰는듯 하여서 쉽게 승리를 챙길것으로 생각되었으나 3회초에 문제가 터졌다. 2아웃까지는 무난하게 잡아내었으나 이진영에게 2루타를 내준것이 화근이 되어 이후 7타자를 연속출루 시키며 7실점, 경기를 막장으로 만드는데에 일조하였다. 자세한 경기내용은 문서를 참조.

4월 28일 무등 삼성전에서 선발 등판, 7이닝 4피안타 3볼넷 무실점의 호투를 보여주고 팀이 3회 1득점을 내주며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고 내려갔다. 하지만 뒤이어 올라온 휘발유동훈, 진해수소폭탄뽜이아! 결국 본인은 노 디시전에 그쳤고, 팀은 4:1로 역전패하고 말았다. 패전 투수는 진해수.

5월 10일 포항 삼성전에서 선발 등판, 6이닝 3피안타 3볼넷 7K 3실점 3자책점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 삼나쌩 기질이 보인다[3] 하지만 팀은 장원삼 공략에 실패하고 0:3으로 패배했다. 이 날 경기 중, 심판과 포수가 동시에 투수에게 공을 던져 당황하는 임준섭의 표정이 명짤로 남았다.

5월 16일 경기부터 윤석민이 선발 로테이션에 복귀하면서, 보직이 좌완 롱 릴리프로 변경되었다. 5월 16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의 구원등판에서는 2⅔이닝 5실점 5자책점으로 탈탈 털렸으나, 이후 3경기 등판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특히 5월 24일 NC 다이노스전에 4이닝 10실점으로 탈탈 털려버린 서재응 다음으로 구원 등판하여 3이닝 동안 3피안타를 맞았으나 3K 무실점으로 호투하여 KIA 팬들로부터 서재응 대신 임준섭을 선발로 다시 올리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

결국 서재응이 2군으로 내려가면서, 6월 11일 무등 NC전부터 다시 선발로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6월 11일 무등 NC전에 선발 출전하여 6이닝 동안 95투구수 4피안타 1피홈런 2사사구 3K 2실점 2자책점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며 호투하였으며, 팀도 7:2로 승리하게 되어 4월 3일 한화 이글스전에서의 데뷔 첫 승리 이후 오랜만에 다시 승리를 챙기며 시즌 2승째를 올렸다.

7~8월에는 불펜과 선발을 오갔다. 하지만 선발로 나서면 실점을 많이 해서 팬들의 걱정을 자아냈다.

그러다가 8월 25일 목동 넥센전에 선발 출전하여 1회부터 2실점하고 4개나 사사구를 내주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으나 5이닝 동안 98투구수 4피안타 4사사구 4K 2실점 2자책점으로 앞선 선발 경기보다는 비교적 호투를 했으며, 팀도 9:6으로 참 오랜만에 승리를 지켜내면서 시즌 3번째 선발승을 올렸다.

8월 25일 넥센전 이후로 또다시 4경기 연속으로 패를 적립하다가 9월 25일 무등 롯데전에 선발 출전하여 5⅔이닝 동안 106투구수 5피안타 2사사구 2K 1실점 1자책점으로 앞선 경기보다 비교적 좋은 투구를 보여 주었으며, 뒤이어 등판한 듀웨인 빌로우가 남은 이닝을 무실점으로 잘 막아내고 팀 타선도 오랜만에 폭발하여 7:1로 승리를 하여 1달만에 다시 시즌 4번째 선발승을 올렸다. 특히 이번 롯데전 승리는 자신의 선발 4연패와 팀의 6연패를 끊어낸 승리라 더더욱 뜻깊었다.

2013 시즌 최종 성적은 36경기 105이닝 4승 8패 2홀드 116피안타 10피홈런 67사사구 55K에 평균자책점 5.23으로 마무리하였다.


2.2. 2014 시즌[편집]


KIA 타이거즈 선발진에서 송은범, 박경태와 함께 초반 상태가 굉장히 좋지 못하다. 팬덤 사이에서는 유비의 간손미같이 엮여서 송임박으로 언급된다. 구속도 안나오면서 제구도 잘 안되는 총체적 난국. 오죽하면 별명이 임똥볼일 정도.

4월 8일 목동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5.1이닝 6실점을 하고도 타선이 대폭발하면서 승리를 챙겼다(...)

4월 27일 LG 트윈스전에서 6이닝 103구 투구 6피안타 3볼넷 4K 0실점으로 의외의 호투를 하였다. 시즌 첫 퀄리티스타트. 특히 2회 1사만루, 4회 무사 1, 2루에서 실점하지 않는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KIA 빠따들은 호투하는 선발 대접을 제대로 하며 1점도 제대로 못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5월 4일 넥센 히어로즈전 5이닝 동안 109구 투구 1피홈런 5볼넷 3자책점을 기록하였다. 팀은 김주찬의 끝내기 안타로 역전승을 했다.

5월 13일 NC 다이노스전에서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며 토미존 수술 회복 이후 찾아오는 구속 증가 버전, 즉 묵직한 속구를 던지며 땅볼을 유도하는 임준섭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피칭 내용을 보자면 1회에 평소때의 똥볼과는 다른 최고 구속 146km/h의 속구를 던져대며 얘가 갑자기 왜이러는지 팬들을 놀라게 하는 예상 외의 호투를 하였다. 2회까지 무실점으로 잘 막았지만 3회 2사 1, 2루에서 이호준에게 역전 3점 홈런을 맞았다. 그 이후로도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특유의 땅볼 유도능력으로 큰 위기를 벗어나며 5⅔이닝 3실점 + 2명의 주자를 놔두고 교체되었다. 총 투구내용은 5⅔이닝 97투구수 1피홈런 6사사구 1K 5실점 4자책. 한승혁이 2점 분식회계하셨다. 실점의 여파로 평균자책점은 6.35까지 올랐다.

5월 24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5⅔이닝 101투구수 2사사구 3K 비자책 1실점으로 나름 호투를 하였으며, 팀도 4:1로 승리를 하면서 시즌 2승째를 따냈다.

희대의 막장경기 6월 10일 경기가 있던 다음날 6월 11일 한화 이글스전 선발로 등판하여 6⅓이닝 동안 107투구수 6피안타 2사사구 4K 2실점 2자책점으로 호투를 하며 한화 타선을 잘 틀어막았으며, 팀도 9:2로 승리를 하면서 시즌 3승째를 따내며 어제 경기에서의 대굴욕을 설욕하였다.

6월 22일엔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등판해 5이닝 2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자마자 6회초 중간에 비가 쏟아져 첫 완봉승을 챙기고 두산 시리즈 스윕을 완성했다. 참고로 이게 2014년 프로야구에서 나온 제 1호 완봉이다. 더불어 본인의 첫 완봉승. 또한 전날 경기에서 김병현이 5이닝 2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둬 두산전 스윕을 가져갔다.

여담으로 기아 타이거즈는 우승 시즌인 17시즌에도 위닝 시리즈 확보는 있었으나 유일하게 두산전 스윕은 하지 못했으며 상대전적 또한 7승 1무 8패로 열세 구단이었다. 이전 두산전 스윕은 2009년 8월 KBO 역사상 월간 최다승인 20승을 가져갈 때 당시 2009년 8월 28일부터 8월 30일까지 잠실 두산전. 그 유명한 김상현의 데뷔 첫 시즌 30호 홈런으로 시작해 마지막 경기에서 장성호의 대타 만루홈런이 나온 그 시리즈이다. KIA 타이거즈/2009년 참고.

6월 26일에는 SK 와이번스를 상대해 중간계투로 등판해 2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내려갔다. 임똥볼이라고 불리는 별명이 무색하게 이날 최고 구속은 148km/h가 찍혔고, 대부분의 속구가 140km/h가 넘는 등 파이어볼러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8월 8일 SK 와이번스전에서 에이스 김광현과 맞대결을 펼쳐 그야말로 인생투를 던졌다. 기록은 8이닝 1볼넷 5K 2실점으로 QS+. 8회를 마칠때까지 투구수가 91개로 투구수 관리도 훌륭했다. 그러나 정작 팀의 득점권에서의 범타로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다. 다행히 팀은 브렛 필의 10회 초 결승타로 승리했다. 항상 5회가 되면 볼넷으로 투구수가 100개를 넘겨 강판되었으나 이날 볼넷은 단 1개뿐이었다. 시즌 방어율은 5.40. 내려간거 맞다(...).

참고로 이 날까지의 경기로 임준섭은 토종 투수 중 이재학을 제치고 병살 유도 1위에 올랐다.

시즌 최종 성적은 29경기 130⅔이닝 5승 11패 54K 평균자책점 6.06으로 마무리하였다.


2.3. 2015 시즌[편집]


3월 28일 광주 LG전에 7회초 등판하였다. 1이닝 동안 3타자을 상대하고 위력있고 제구잡힌 공으로 3타자 연속삼진이라는 저력을 보여준다. 이날 불펜으로 등판한 임준섭이 개막전 첫경기 승리투수가 된다. 사실 매 이닝 주자를 내보내놓고 양현종이 승리를 가져갔다면 도둑놈이다

3월 29일 광주 LG전에 4:2로 앞선 6회초 1사 1루에서 LG는 대타로 이진영을 기용하자, 임준혁을 대신해 등판하였다. 임준섭은 이진영에게 중전 적시타를 맞고 한 점을 허용했다. 이어 손주인에게는 우익수 앞 안타를 허용했고 오지환에게 좌월 2루타를 맞고 추가 1실점했다. 임준섭은 결국 아웃카운트 1개도 잡지 못한 채 박준표로 교체되고 말았다. 바통을 받은 박준표도 정성훈에게 중전 적시타를 맞고 승계주자 2명을 모두 홈인시켰다. 임준섭은 3실점으로 불어났다. 6회초 4:6으로 지고 있었지만 7회말 최희섭의 솔로 홈런과 그리고 브렛 필의 끝내기 2점 홈런으로 패전의 수모를 면하였다.


3. 한화 이글스 시절[편집]


이후로 그럭저럭 하다가 유창식 외 3명을 상대로 한 트레이드에 포함되어 5월 6일 자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여러 선수들이 고생 중인 한화 불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골골거리던 유창식 대신 4월부터 페이스를 엄청나게 끌어올린 한화의 맥을 뚫어줄 수 있을지가 관심사. 한편 등번호는 트레이드 상대 중 자신과 번호가 같은 김광수와 번호를 맞 바꾼셈이 되어 한화에서도 계속 11번을 달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대졸 군미필로 서비스 기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점이 걸린다.[4]

한화에 이적하면서 김성근 감독의 원포인트 레슨을 받는 장면이 목격되었고, 트레이드 당시 예측된 대로 김성근 감독은 좌완 송창식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선발과 구원이 가능한 올라운드형 투수로 눈여겨본 것.


3.1. 2015 시즌[편집]


이적 후 6번의 등판에서 많이 던지지 않았지만 무실점으로 한화 팬들에게 기대를 받았으나[5] , 돌연 1군에서 말소됐다. 이 때 부상이라기보단 선발로 전환을 위한 투구 폼 수정이 아닌가? 라고 팬들이 기대했지만, 오피셜로는 수정 예전에 수술받은 적이 있었던 팔꿈치가 또 말썽이라고 한다. 시즌 중에도 임준섭의 복귀를 바라는 팬들이 많았지만, 시즌 끝까지 콜업은 없었다.

임준섭이 엔트리에 제외되고 나서 "잘 던지던 투수를 오버 트레이닝에 의한 시즌아웃이라"는 썰이 엠팍이나 디시에서 카더라 통신으로는 나돌았다. 임준섭이 KIA 시절부터 약점인 제구력 수정을 위해서 폼을 고쳤다가 팔꿈치 통증으로 원래 폼으로 던졌는데 한화 이적 후 다시 폼 교정을 하려다 팔꿈치를 다쳤다는 소리. 그러나 한화로 와서 감독의 무리한 폼 수정으로 잡아먹었다고 보기엔 KIA 시절에도 팔꿈치 통증으로 수술을 받고 다시 몇 번 통증이 재발한 적이 있기 때문에[6] 원래 부상이 시즌 중 재발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즉전을 위해 미래를 포기하고 데려온 20대 후반 투수가 시즌 아웃이며 KIA에서는 트레이드의 핵심이던 유창식고향으로 와서도 잔부상으로 제 기량을 못 찾고 있지만 김광수불펜에서 뜬금 활약이라 한화가 손해를 보고 KIA가 이득을 많이 봤다는 평이 많다.


3.2. 2016 시즌[편집]


병원에서는 재활해도 괜찮다는 소견이 있었으나, 결국 2016년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도중 팔꿈치 통증이 재발해 조기 귀국했다. 그리고 수술 판정을 받아 2016년 3월 7일과 3월 21일에 각각 토미 존과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게 되어 2016년에도 임준섭을 볼 수 없게 됐다. 이미 신검에서 공익 판정을 받은 적이 있는 관계로, 병역과 재활을 병행해야 할 입장이 다가올 수 있다.

그리고 5월 말~6월 초 사이에 조용히 입대한 것으로 보이며, 31사단에 입소했다고 한다. 입소 당시 기사 하나도 없이 한화 홈페이지의 군입대 선수 명단으로 슬쩍 이동했다. 그가 군보류로 묶인 후 빈 자리에는 이동걸이 정식 선수로 복귀했다.

2016년 7월 부산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인 사실이 알려졌다. 기사 재활을 병행하고 있는 듯.

2017년 들어 김광수의 플루크가 끝나고, 유창식마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선택으로 써먹을 수 없게 되자 불펜이 말썽인 KIA의 일부 팬들이 임준섭을 돌려받자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트레이드가 망했어요[7]

2018년 6월에 소집 해제된다고 한다. 일단 한화 이글스금지어가 팀을 작살내놓고 튀었고 팀도 리빌딩을 선언했지만, 좌완 투수가 박정진 외에는 거의 없다시피하니 재활이 잘 되었다면, 경기 감각을 어느 정도 회복한 뒤 1군 무대로 빠르게 돌아올 수 있을 지도 모른다.


3.3. 2018 시즌[편집]


5~6월 중 제대 예정. 롱릴리프와 선발을 오갈 수 있는 투수이기 때문에 한화에 큰 단비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문제는 역시 실전감각이 부족하다는 것. 당장 등판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고 빠르면 9월 말, 그게 아니라면 아예 내년을 준비할 수도 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할만큼 몸을 잘 만들었다고 한다.

5월 29일 소집 해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등번호는 김민우가 사용했던 64번을 달았고, 바로 정식 선수로 등록되었다. 이후 재활군으로 이동했다. 어디가 아프다기보단 실전 감각을 살리기 위해 몸을 만드는 과정을 거치는 중인 듯 하다.

8월 29일, 한화 이글스 유튜브에서 서머 리그를 중계하면서 9회에 모습을 보였다. 투구폼이 전과는 달라졌고, 하체가 튼튼해져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다는 평.

9월 11일 올해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됐다.

9월 12일, 올해 첫 등판에서 1이닝을 5구로 끝마치고 안타를 맞은 후 내려갔다. 선발인 윤규진이 4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하고 내려가서 승리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이어 올라온 임준섭이 무실점으로 이닝을 막아내며 팀의 승리가 이어졌으므로 1승을 챙기게 됐다.

9월 25일 김재영이 1/3이닝만에 강판당한뒤 올라와 3 2/3이닝동안 2실점하며 버텼다. 이날 이원석을 상대로 삼중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3.4. 2019 시즌[편집]


중간계투로서 그럭저럭 던지고 있다. 유창식이 야구계에서 거의 퇴출되었음을 고려하면 트레이드는 나름 성공적이다.

후반기 대폭망만 안 한다면 내년에도 볼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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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7월 31일 수원 kt전에서 채드벨을 대신한 대체선발로 등판해 6이닝 1실점 호투와 타선의 도움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자그만치 5년만의 선발승이자 팀의 8연패를 끊어내는 귀중한 1승이었다.


3.5. 2020 시즌[편집]


팔꿈치 염좌 증세로 이탈한 채드 벨의 대체 선발로 팀의 2선발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5월 6일 인천 SK전에 청백전과 연습경기에서 흔들린 핀토와 선발 맞대결을 펼쳤으나 1.2이닝 3실점으로 조기강판되었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5월 19일 수원 KT전에서 3이닝 7실점으로 부진하며 조기강판된 장시환에 이어 마운드에 올랐으나 3이닝 9피안타 6실점이라는 목불인견급 피칭으로 경기를 터뜨려버렸다. 7회 백업 위주의 선수들이 KT의 불안한 불펜을 틈타 9점을 뽑아내며 열심히 추격한 까닭에 임준섭의 부진이 뼈아팠다. ERA는 14.29까지 치솟았다. 결국 다음날 1군 엔트리에서 말소.

이후 중간계투로만 나오고 있다.

8월 11일 키움전 2점 차로 앞선 12회말 등판해 이지영에게 안타를 맞았으나 박준태를 삼진으로 잡고, 서건창을 상대로 내야 땅볼을 유도해 선행 주자를 잡아낸 뒤 김진욱과 교체되었다. 김진욱이 실점하지 않으면서 0.2이닝 무실점 홀드를 기록했고, 포심 구속이 145~6까지 나왔다.


3.6. 2021 시즌[편집]


비시즌동안 체인지업을 장착한 것으로 보인다.

5월 8일 미세먼지로 인해 경기가 취소되면서 9일 등록되었으나 10일 DH 1차전에서 2이닝 3실점을 기록했고, 11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8월 24일 김이환에 이어서 마운드에 올랐지만 주자 하나도 못 잡고 4실점후 내려갔다

9월 1일 김이환에 이어서 마운드에 올랐지만 오늘까지 1할 8푼대로 부진하던 제라드 호잉에게 안타를 내주며 실점하고, 볼넷 보크로 실점한 이후 장성우에게 적시타를 내주며 윤호솔로 교체 되었다. 아무리 리빌딩 중인 팀이라지만 나이만 많은 좌완에게까지 기회를 줄 정도의 팀은 아니니 100% 방출될 것이다. 특히나 KIA 입단때부터 당시 선동열 감독으로부터 많은 기회를 받아왔으니 더욱이다.

9월 1일까지 최근 3경기 임준섭한테 기회를 제공하였으나 첫번째는 오늘처럼 실점하였고 두번째 경기 깔끔하게 막았으나 세번째 오늘 또 터졌다.

9월 18일 17일만의 1군 등판경기에서 팀이 7:2로 이기고있던 상황에 출전. 안치홍과 손아섭에게 연속 볼넷을 내주며 만루를 만들고 윤대경으로 교체. 팀은 방어에 성공하였다.

수베로 감독이 절레절레 하는 모습이 화면에 보여졌고 5점 차로 이기고 있는데도 연속 볼넷을 주는 것은 방출이 유력해 보인다.

10월 2일 2군으로 내려갔는데, 2군에서도 0.0이닝 2피안타 2피볼넷 3자책점(...)으로 답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즌 종료 이후 12명이 대거 웨이버 공시됐지만 좌완이 부족한 팀 사정 덕인지 살아남았다. 팀에 좌완이 부족한 것을 고려하더라도 성적이 너무 안 좋은 한 해였다. 분발할 필요가 있다.


3.7. 2022 시즌[편집]


시즌을 앞두고 등번호를 54번으로 바꿨다.

5월 8일 KIA전에서 7:4로 뒤진 9회초 등판했고 선두타자 나성범에게 내야 안타를 허용한 이후 박동원을 좌익수 뜬공으로 잡아냈으나, 이후 두 타자 연속으로 초구를 터무니없이 손에서 빠뜨리는 폭투를 범하며 주자를 3루까지 무혈 입성시키는 한심한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소크라테스 브리토를 유격수 뜬공으로 잡아내며 간신히 무실점으로 이닝을 종료했다. 결국 바로 다음 날 칼같이 1군 말소.

퓨처스에서는 7월 30일 기준 2승 2세이브 8홀드 ERA 3.32로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미 세는 나이로 34세인데다가 이미 수베로 감독도 포기한 것이 보이기 때문에 방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9월 1일 엔트리 확대로 콜업되었다.

9월 7일 kt전에서 7회초 2사 윤호솔의 뒤를 이어 등판하여 조용호에게 우익수 앞 안타를 허용하였으나 다음 타석 강백호를 중견수 플라이 아웃을 잡아내어 0.1이닝 무실점으로 막았다.

9월 12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10월 10일 웨이버 공시되었다.


4. SSG 랜더스 시절[편집]


2022년 11월 30일, 입단 테스트를 통해 SSG에 입단했다.#

SSG가 직전 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으나 좌완 불펜이 사망 수준인 만큼[8] 임준섭에게 상당한 기회가 부여될 수 있다. 또한 2022년 팀의 주장을 맡았던 한유섬과는 같은 부산 출신인데다 경성대학교 동기라는 점에서 팀 적응에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등번호의 경우 이전에 사용했던 11번은 김주온, 54번은 최지훈[9], 64번은 박상후가 이미 사용 중이라 다른 번호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나마 한국시리즈 전후로 정리된 선수들과 타팀으로 이적한 선수들이 꽤 있어서[10] 선택할 수 있는 번호는 많은 편이다.

이후 1월 11일 SSG 랜더스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48번을 받았음이 확인되었다.


4.1. 2023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임준섭/선수 경력/202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좌완 불펜 자원으로 쏠쏠한 활약을 보였으나, 중반 이후엔 베팅볼로 전락하며 왜 한화에서 방출됐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결국 시즌이 끝난 뒤 방출 통보를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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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성대학교 야구부는 꽤 오랫동안 혹사 논란이 있는 팀이다. 이후 후배 이민우 역시 입단하자마자 팔꿈치 수술후 공익 근무로 병역 문제를 해결했다.[2] 바로 얼마 전인 4월 3일 경기에서 두산 타선은 SK의 신인 투수 여건욱을 상대로 1안타 6사사구만 얻어내고, 득점은 하나도 내지 못했다.[3] 이 날 삼성에서도 가장 타격감이 좋은 배영섭을 상대로 삼진을 두 개나 뽑아냈고, 안타를 1개도 내주지 않았다.[4] 대졸 상위 라운더라 선동열 탓을 하는 팬들이 있긴 한데, 2012년 드래프트 신인은 2010년 팀 성적을 순위로 하여 2011년에 지명한다. 즉, 조범현 감독 시절에 지명된 것이다. 당시 KIA 타이거즈 2012 전면 드래프트 1라운더는 역시 대졸 투수 박지훈.[5] 무실점 투구를 했다지만 사실 잘 던졌다고 보기엔 표본이 너무 적다. 6경기 5⅔이닝동안 6피안타 5볼넷 5탈삼진 WHIP가 1.941에 육박한다. 투구 상황이 승패와 관련없는 다소 루즈한 상황이기 때문에 부담이 적다는 것도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할 것이고 WHIP가 무실점한 것 치고 너무 높다.[6] 토미 존 수술을 해서 성공적으로 복귀해도 통증이 몇 년간 남아 있는 케이스가 많다.[7] 한편 KIA가 34억에 한화에 팔면서 받아 온 보상선수가 그야말로 신화를 쓰자 이 의견에 맞서 일부 한화 팬들은 임준섭에 34억 선수까지 그냥 돌려줄테니 김주형(...)이라도 영수증으로 달라는 개드립을 치기도 한다.[8] 고효준은 만 40세가 됐고 김택형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하는데다 김태훈은 답이 없을 정도로 망해버렸기에(...) 써먹을 수 있는 좌완 불펜요원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다.[9] 최지훈은 54번을 남는 번호로써 받았지만, 성적이 좋게 나와서 교체할 마음은 없다고 했다.[10] 1, 7, 15, 19, 24, 31, 40, 45, 49, 61, 69번 등이 2022년 12월 현재 결번된 번호다. 27번도 후안 라가레스와 결별하면서 빈 번호가 됐지만 이 번호는 구단에서 외국인 타자 전용 번호로 두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