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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변천 : 합동참모회의의장(초대) ▸ 연합참모본부총장(초대~6대) ▸ 연합참모회의의장(7대) ▸ 합동참모의장(~현임)

※ 초대~현재: 대장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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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35대 합동참모의장
이상의
李相宜 | Lee Sang-ui

파일:/news/200910/26/yonhap/20091026102807985.jpg
출생
1951년 9월 23일 (72세)
경상남도 사천군 용현면 온정리[1]#
재임기간
제22대 제3야전군사령관
2008년 3월 21일 ~ 2009년 9월 17일
제35대 합동참모의장
2009년 9월 17일 ~ 2010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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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내 황문향
슬하 1남 1녀
학력
용현초등학교 (졸업)
진주중학교 (졸업)
진주고등학교 (졸업)
군사 경력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74년 ~ 2010년
임관
육군사관학교 (30기)
최종 계급
대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합동참모의장
주요보직
제3야전군사령관
국군의 날 행사단장 (제60주년)
제8군단
제1야전군사령부 참모장
제39보병사단
육군사관학교 참모장
육군본부 작전과장
제1군단 작전참모
제3야전군사령부 작전과장
수도방위사령부 제30경비단
수도방위사령부 정보처장

1. 개요
2. 생애
2.1. 경력
3. 상훈
4.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육군군인. 예비역 대장. 제3야전군사령관합동참모의장을 역임했다.


2. 생애[편집]


1951년 9월 23일 경상남도 사천군 용현면 온정리에서 태어났다. 용현초등학교, 진주중학교,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4년 육군사관학교 30기로 임관했다. 근무경력에서 볼 수 있듯이 보병 - 작전 직능으로 전방 부대에서 보낸 경력이 상당히 길다.

1999년 11월에 준장에 진급하며 장성급 장교에 오른 이후 육사 참모장, 제39보병사단, 제1야전군사령부 참모장, 제8군단을 지냈다. 이후 한직인 건군 제 60주년 기념사업단장으로 좌천되었으나 정권교체와 함께 구사일생하여[2] 요직인 3군사령관에 올랐다. 2009년 9월에 합참의장 출신인 이상희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이 갑작스럽게 퇴임하게 되면서 당시 합참의장인 김태영 대장이 전역하고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으로 취임하면서 공석이 된 합참의장에 올랐다.[3]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피격사건 당시 자운대에서 특강 후 서대전역에서 지인을 만나 술을 포함한 식사를 하고 KTX에 탑승했던 터라 합참 지휘통제실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 당시 기무사령관(김종태 중장)은 폭침이전 북한의 공격징후를 합참의장에게 보고했으나 합참의장이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추후 문서가 공개된 바 있다. 그 때문에 기차에서 내린 다음에 소식을 확인했고 이미 청와대까지 보고가 들어가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소집된 상태였다. 그때문에 국방장관보다 청와대가 먼저 상황을 파악했다. 당시 합참 대한민국 해군 중령이 합참의장에게 보고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자 청와대에 근무하던 해군 대령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했고 해당 대령이 저녁을 먹던 중에 상황실로 가서 외교안보수석 등에게 전파한 탓에 청와대가 합참 수뇌부보다 먼저 알았던 것. 당시 합참이 육군 출신들이 대거 차지하고 있던 것도 이러한 현상에 영향을 줬던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되고 있다. 관련기사 당시 합참 건물에 있었느나 없었느냐가 장성들의 인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결국 이게 문제가 되어 이상의 의장은 2010년 7월에 물러났다. 통상적인 임기가 2년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책임을 물어 경질시킨 것에 가깝다.

이상의 의장의 경질 원인이 된 천안함 사건은 합참의장부터 작전본부 수뇌부가 죄다 육군 야전통들로 도배되어 벌어진 비극[4]이었던 이 일 이후로, 합참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들인 이른바 합동작전통들이 중용되는 결과를 낳았다.[5] 2013년 같은 경우엔 한미연합군사령부 출신의 연합통들이 대거 영전하는 일도 있었다.

전역 후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사천시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선거구 통폐합 등으로 인해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후 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로 옮겼다.


2.1. 경력[편집]




3. 상훈[편집]


  • 1997. 10. 보국훈장 삼일장
  • 2000. 10. 대통령 표창
  • 2004. 10. 보국훈장 천수장


4. 여담[편집]


  • 청문회에서 당시 이진삼 의원한테 군번줄을 안맸다고 호되게 털린 적이 있다. (참고로 이진삼은 육사 15기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육사 30기인 이상의 대장과는 무려 15기수나 차이 나는 대선배이다.)
  • 육군훈련소 인분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허평환 육군 소장과 진주고(40회), 육사(30기) 동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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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주 이씨 집성촌이다.[2]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이상희는 강한 국방을 강조하며 육군 인사에서 유독 보병 - 작전 직능을 우대했는데 그 과정에서 구제되었다.[3] 합참의장에 내정되었을 당시에 합참 경력이 전무한 것이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었다. 2009년 당시 대장급 동기들 중에서도 김근태 前 1군사령관이나 이성출 前 연합사 부사령관 같이 합참 근무 경험이 많은 장군들이 있었는데 3군사령관이라는 대장급 최요직 직책에 있었기 때문에 내정된 것으로 보인다.[4] 이건 이명박 정부 초기에 군 인사를 물갈이하며 전 정권에서 중용된 합동작전 라인 장교들을 배제해버린 데에서 기인한다. 천안함 사건 당시 합참 작전라인 경험자는 황중선 작전본부장뿐이었고, 의장과 작전부장, 작전처장, 합동작전과장이 죄다 육군 야전통이었다.[5] 역시 합참 근무 경력이 중령 시절 방위기획과 1년 근무에 불과했던 천안함 사건 당시 합동작전과장의 후임으로 들어온 것이, 중령 시절 합참 전략기획본부에서 3년간 근무했던 김승겸(육사 42기) 현 합동참모의장이다. 김 의장은 합동작전과장으로 2년간 근무하고 준장 1차 진급했다.[6] 당시만 해도 작전처와 교훈처가 하나로 묶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