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영화)/줄거리 및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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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줄거리
2.1. 시간대 #1
2.2. 시간대 #2
2.3. 시간대 #3
2.4. 결말
3. 탐구
3.1. 등장 인물들의 극중 행적과 실제 역사 비교
3.2. 작중 시대 배경, 장치들과 실제 역사 비교
4. 평론가 심층 분석과 해설영상



1. 개요[편집]


영화 오펜하이머의 줄거리와 탐구 및 실제 역사와 비교하는 문서이다.


2. 줄거리[편집]


Prometheus stole fire from the gods and gave it to man.

For this he was chained to a rock and tortured for eternity.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불을 훔쳤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에게 주었다.

이로 인해 그는 바위에 쇠사슬로 묶인 채 영원히 고문을 받아야 했다.

슬로 모션으로 보이는 핵폭발 장면과 함께 위 문구가 뜨며 영화가 시작된다.[1]

덩케르크에서 그랬듯 이 영화도 하나의 시간대가 아닌 세 개의 시간대에서 진행된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젊은 시절에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이어지는 기본 시간대, 1954년에 원자력 협회에서 벌어졌던 오펜하이머 청문회, 그리고 1959년에 있었던 루이스 스트로스 제독인사청문회가 그것이다. 이걸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하면 아래와 같다.

또한 오펜하이머의 이야기인 컬러 파트는 'Fission(핵분열)', 스트로스의 관점에서 본 이야기인 흑백 파트는 'Fusion(핵융합)'이라는 제목 하에 서로 번갈아가며 마치 메멘토처럼 영화가 진행된다. 핵분열은 원자폭탄의 원리로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계획을 통해 원자폭탄의 아버지가 된 이야기를 반영하고, 핵융합은 수소폭탄의 원리로 오펜하이머가 수소폭탄의 개발을 적극반대했다가 매카시즘스트로스의 희생양이 되어 몰락하는 과정을 반영하는 제목이다.

2.1. 시간대 #1[편집]


학창 시절부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까지. 컬러로 묘사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대학원 유학 시절 실험물리학에 서툴러서 고생하던[2] 22살의 청년 오펜하이머가 지도교수 패트릭 블래킷을 독살하려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3] 오펜하이머는 지도교수였던 블래킷과의 불화 및 적성에 맞지 않는 실험물리학 공부 때문에 지독한 향수병우울증에 시달리던 와중, 다행히도 닐스 보어의 권유로 괴팅겐 대학교로 학적을 옮긴 후 이론물리학과 양자역학을 접하게 되고,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미국 칼텍, 그리고 UC 버클리로 돌아온 오펜하이머는 실험물리학자인 어니스트 로런스와 협업하게 되고, 진 태틀록과 연인 관계가 되지만[4] 결국 그녀와는 틀어지고 유부녀였던 캐서린과 눈이 맞은 끝에 결혼하게 된다. 이 두 여인은 둘 다 공산주의자였고, 오펜하이머 역시 미국 공산당에 가입하지는 않으면서도 공산당과 교류하게 된다.

한편 독일에서 핵분열 현상이 발견되고, 1년 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해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미 육군 대령 레슬리 그로브스는 오펜하이머를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로 임명하고,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더 이상 공산당과 교류하지 않으며 따라서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답한다. 오펜하이머는 평소 자신이 좋아했던 뉴멕시코주로스앨러모스에 새로 마을에 가까운 연구소를 만들고 에드워드 텔러, 한스 베테, 리처드 파인만, 엔리코 페르미 등등 당대 물리학계의 수많은 과학자들을 영입하고 가족들까지 불러오게 해 다 함께 살게 한다. 한편 그로브스는 맨해튼 계획이 철저한 국가기밀 실험인 만큼 독일, 소련 등에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피하고자 서로간의 정보 전달을 최소화하기 위해 과학자들의 구획화를 통해 연구를 진행하도록 지시한다. 이 기간 동안 오펜하이머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만나며, 닐스 보어 교수가 나치가 점령하고 있던 덴마크에서 탈출해 미국에 입국한다. 그리고 보어는 오펜하이머에게 원자폭탄을 만듦으로써 오펜하이머는 세상은 핵무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끝내 핵무기를 만들어 인류가 자멸할 힘을 준 자인, "미국의 프로메테우스"라 불리게 될 것이며 거기서 자네의 업적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2년의 시간이 지나고, 원자폭탄이 완성되기도 전에 독일이 항복하고 만다. 하지만 일본의 저항이 계속되었기에 맨해튼 계획은 일본의 패색이 짙다는 주장에도 계속 진행되었고, 결국 포츠담 선언 직전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을 수행하게 된다. 이 장면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오펜하이머 인생의 정점이 된다.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하자, 오펜하이머와 연구원들을 비롯한 모두가 기뻐한다. 그러나 리틀 보이팻 맨이 로스앨러모스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오펜하이머와 텔러는 살짝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원자탄에 대한 모든 결정은 오펜하이머의 손을 떠나게 되고 그로브스로부터 꼭 다시 연락을 주겠단 약속과는 달리,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사실을 16시간 뒤 라디오 방송을 듣고서야 알게 된다. 오펜하이머는 당황스러워 하나 그로브스와의 통화에서는 여기도 다소 분위기가 좋다며 티를 내지 않았고, 연구원들 앞에서 이를 자화자찬하는 연설을 한다.[5] 이후 죄책감에 시달리는 오펜하이머는 해리 S. 트루먼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자신의 손에는 피가 묻은 것 같다며 불안해하나, 트루먼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사람들이 당신에게 신경이나 쓸 것 같냐고 반문한 뒤 폭탄 투하를 결정한 장본인인 자신에게나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대답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오펜하이머를 경멸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어[6][7] 원자탄에 대한 실권을 빼앗게 된다.


2.2. 시간대 #2[편집]


1954년 오펜하이머 청문회. 컬러로 연출된다.

이 시점에서 오펜하이머는 핵 확산 방지를 위해서 수소폭탄 개발을 하지 말 것을 주장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맨해튼 계획에서 같이 일했던 에드워드 텔러와 갈라서게 된다. 오펜하이머의 이런 변화는 미국 공산당과 교류했던 그의 과거와 맞물려서 미 정부의 의심을 사게 된다. 이 와중에 원자력 위원회의 루이스 스트로스는 과거에 망신을 당한 일로 오펜하이머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는데, 스트로스는 앞서 말한 정부의 의심을 이용해서 오펜하이머에게 공산주의자이자 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워서 원자력 관련한 분야에서 숙청하려 한다. 키티는 스트로스의 전략을 알고 오펜하이머에게 맞서라고 요구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불리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텔러는 오펜하이머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하고 그를 배신한다. 이 외에도 키티, 그로브스를 포함해 그간 함께 했던 사람들도 두 편으로 갈라지게 되는데, 끝까지 오펜하이머의 무고함을 알고 진실대로 진술하는 이들도 몇몇 있지만 대부분은 매카시즘 시대에 겁먹고 오펜하이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게 된다. 그리고 스트로스의 전략대로, 청문회의 결과 오펜하이머는 일부 위험 인사와 친선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보안 인가 갱신을 허락받지 못한다.[8]

영화에는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에 대해서 앙심을 품게 된 이유가 두 가지 나오는데, 이 중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관련한 오해는 영화적 창작이다. 다른 하나의 이유가 된 동위원소 논쟁은 역사적으로도 잘 알려진 일화인데, 이 논쟁에서 오펜하이머가 스트로스와 대립했던 것은 사실이며, 나중에 소련의 핵실험이 시작되자 놀랍게도 과학자도 아닌 스트로스의 주장대로의 결과가 나왔다. 과학적으로 엄밀하지 않았던 의견이 나중에 실용적인 결과를 불러오기도 하는, 일종의 아이러니. 여튼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스트로스 입장에서는 오펜하이머를 의심하고 미워할 수도 있다. 문제는 복수의 방법이 누명 씌우기라는 가장 치졸한 방식이었다는 점.


2.3. 시간대 #3[편집]


1959년 루이스 스트로스의 청문회. 흑백으로 묘사된다.

약 5년 후 스트로스 본인도 상무부 장관 임명 청문회에 임하게 된다. 보좌관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그에게 이 청문회는 단순 통과 의례일 뿐이라며 위로하고, 청문회도 순탄하게 흘러간다. 그러던 중 증인 명단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익명의 과학자가 증인으로 나선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스트로스는 다시 한번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과거 오펜하이머를 개인적인 원한으로 누명 씌운 것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였는데, 그의 보좌관도 오펜하이머 사건의 진실을 처음 접하자 상당한 실망감을 내비친다. 이후 그 과학자는 데이비드 힐이었음이 드러나며,[9] 힐은 과학자들이 스트로스에게 품은 반감을 대표해 당시 오펜하이머를 향한 공격이 스트로스의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것이었음을 고발한다.[10][11][12]

이 일로 청문회에서 공개적으로 모멸을 당한 스트로스는 대기실로 돌아와 오펜하이머는 선택적으로 후회를 하는 이기적인 인물이었다며 분노를 터뜨린다. 결국 그는 상원 인준 표결에서 불과 3표 차로 패배, 낙마하였다.[13] 스트로스는 과거 자신이 목격했던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만남을 언급하는데, 그 날 이후 아인슈타인이 자신을 무시했다며 오펜하이머가 과학자 모두를 하나둘씩 자신에게서 이간질시켰다며 분노한다. 보좌관은 그런 스트로스에게 "어쩌면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는 당신 얘기보다는 더 중요한 일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라는 말로 답하고,[14] 모든 것을 잃고 자멸한 스트로스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방 밖에 몰려든 기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나간다.[15]


2.4. 결말[편집]


영화 후반부인 1963년 12월, 오펜하이머는 린든 B. 존슨 대통령에 의해 엔리코 페르미 상을 받게 된다.[16] 비록 오펜하이머는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잃은 후였지만 그나마 그의 명예는 일정 부분 회복되었고, 행사에 찾아온 에드워드 텔러와도 화해한다.[17]

작중 오펜하이머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만나는 장면은 3번 나오는데, 놀란의 장기인 임팩트 있는 인서트와 전환, 그리고 함축적인 대사가 총 동원된 명장면이다. 아인슈타인은 끝까지 공개적으로는 오펜하이머에 대한 마녀사냥에 분개했다.[18]

변호사 개리슨: 오피, 이 청문회는 결론이 정해진 캥거루 재판[19]

일세. 자넨 이길 수 없어. 왜 이러면서까지 청문회에 계속 참여하는 건가?

오펜하이머: 나만의 이유가 있다네.

아인슈타인: (변호사들이 차를 타고 떠나자 반대편에서 나타나서 오펜하이머에게 책을 전해주며) 저 자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보이는구먼. 자네는 더 이상 자넬 사랑하지 않는 여인을 쫓는 거야. 미국 정부 말이지.

오펜하이머: 아마 이해하지 못하실 거예요, 박사님.

아인슈타인: 그런가? 난 내 조국을 떠나서 다시는 찾지 않았네. 수 년 전 독일의 재앙이 여기서도 되풀이되고 있고, 사람들은 저항 없이 묵인하고 악의 세력에 동조하고 있지. 자네는 조국을 위해 충성을 다했네. 이게 자네가 조국에게 바친 충성의 대가라면 조국이라고 생각하지도 말게.[20]

[21]

오펜하이머: 젠장, 전 당연히 이 나라를 사랑한단 말입니다.[22]

[23]

아인슈타인: 그렇다면 저들에게 가서 지옥으로 꺼져 버리라고 저주나 퍼붓게.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그 내용이 밝혀지는 아인슈타인과의 대화[24]에서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오펜하이머가 느꼈던 참담한 심정과 자괴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인슈타인: (바람에 날아간 모자를 주워주는 오펜하이머에게) 고맙네. (Thank you.)

오펜하이머: 알베르트. (Albert.)

아인슈타인: 오, 화제의 인물이시군. 자네가 예전에 버클리에서 나를 위해 리셉션을 열고 상을 준 일이 있었지. (Ah, the man of the moment. You once had a reception for me in Berkeley. You gave me an award. Umm?)

오펜하이머: 네. (Yes.)

아인슈타인: 그때 자네들 모두는[25]

나 때문에 시작된 이론[26]을 정작 나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 그러니까 그 상은 사실 날 위한 게 아니라 자네들 모두를 위한 것이었어. (You all thought that I had lost the ability to understand what I'd started. So that award really wasn't for me. It was for all of you.)

오펜하이머: ...

아인슈타인: 이제 자네 차례야. 자네가 이룬 성취의 결과를 직면해야 해. 그리고 자네가 충분히 벌을 받고 난 뒤에는, 세상은 자네에게 연어감자 샐러드를 대접하고, 연설을 해주며, 메달도 줄 거야. 등을 두들기면서 모든 게 용서받았다고 하겠지.[27]

하지만 기억하게, 그건 자네를 위한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을 위한 거야.(Now it's your turn to deal with the consequences of your achievement. And one day, when they've punished you enough, they'll serve you salmon and potato salad, make speeches, give you a medal. Pat you on the back, tell you all is forgiven. Just remember, it won't be for you. It will be for them.)

(아인슈타인이 뒤로 돌아서 떠나려 할 때 오펜하이머가 불러 멈춰 세운다.)

오펜하이머: 알베르트. 제가 그 계산식을 가지고 박사님께 갔을 때[28]

, 우리들이 연쇄반응을 일으켜서 전세계를 멸망시키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같이 했었죠. (Albert, when I came to you with those calculations, we thought we might start a chain reaction that would destroy the entire world.)

아인슈타인: 나도 기억하네. 그건 왜? (I remember it well. What of it?)

오펜하이머: 시작된 것 같아요.(I believe we did.)[29]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거대한 연쇄반응을 가져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그의 말을 듣고 창백해진 아인슈타인은 마침 다가오던 스트로스를 무시하고 지나치며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을 끌어들일 또 하나의 연쇄반응도 시작된다. 그곳에서 오펜하이머가 수없이 많은 핵무기가 온 세상을 뒤덮는 환영을 보고 두 눈을 질끈 감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30][31]


3. 탐구[편집]



영화 속에 등장한 주요 인물들과 실제 행적을 담은 영상.

3.1. 등장 인물들의 극중 행적과 실제 역사 비교[편집]


  • 주인공 J. 로버트 오펜하이머 역의 킬리언 머피의 신들린 연기에 대한 높은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놀란 감독의 각본이 처음으로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지는 영화라는 점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머피에게 더욱 부담을 안겨주었겠지만, 멋지게 이겨내고 열연을 펼쳤다. 일찌감치 미 연예 대중 매체, 영화 매체들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는 따놓은 당상이라며 호평 일색이다.

  • 오펜하이머가 독일 괴팅겐 대학교 유학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해 미 서부 UC 버클리칼텍에서 교직을 시작하는 부분은 당시 실화를 그대로 살렸다는 평가다. 당시 미국에서 양자역학이라는 게 드물어서 오펜하이머가 외국으로 학위를 따려고 나간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정말 미국에서는 척박한, 맨땅에서 시작해야 하는 학문이었다. 그런데 독일에서도 인정받는 석학이 돌아와서 신식 학문을 소개하고 발전시켜 나갈려고 하니 성공은 따놓은 셈. 그러나 출연한 킬리언 머피의 외모는 좀 논쟁이 있는 게, 그때 당시 증언이 약간 엇갈리기는 해도 버클리와 칼텍 당시의 오펜하이머의 행색은 장발을 치렁치렁 휘날리며 8자 걸음을 휘적휘적 걸으며 캠퍼스를 활보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시종일관 단정한 머리에 정장 차림이어서 맞지 않는 연출이라는 주장도 있다.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에 따르면 중절모, 파이프 담배, 정장 차림의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계획이 시작되고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소장시절부터 바뀐 모습이라는 게 정설이다. 당시 맨해튼 계획에 불려온 미국 전역의 과학자들이 그동안 학회에서 보아온 오펜하이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카리스마 넘치는 말끔한 차림새의 오펜하이머를 보고 "누구?"라는 반응을 보였는데, 프로젝트 총책임자가 되어 이미지 관리를 할 필요성을 자각하고 신경을 쓰기 시작한 듯하다.

  • 영화에서는 깊이 있는 설명이 없지만 오펜하이머가 단기간 내에 버클리와 칼텍에서 기존 물리학 학계에 무시못할 인맥과 자기 학파 세력을 구축했다는 것은 그의 조직 운영이나 개인 카리스마가 대단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이다. 거기다가 맨해튼 계획으로 로스앨러모스 연구소는 단숨에 기존 시카고 학파 및 미 동부의 물리학계와 대등하거나 혹은 더 큰 입지를 구축했다.[32] 여기서 오펜하이머는 정점에 서 있는 연구소장직을 맡아서 그 큰 조직을 꾸려나갔으며 밖으로는 미 육군의 끊임없는 간섭질과 맞서 싸워가며 핵폭탄 제조 및 개발에 성공했다. 어니스트 로런스에드워드 텔러는 수소폭탄 제조에 있어 엄청난 공헌을 하지만, 오펜하이머의 이러한 자기 사람을 만드는 용병술을 평생 부러워하고 시기, 질투했다. 특히 "원자폭탄의 아버지"와 맞먹는 "수소폭탄의 아버지"란 타이틀을 얻었던 에드워드 텔러는 매카시즘 광풍에 일조하면서 자기도 오펜하이머를 흉내내겠다며, 오펜하이머를 포함한 그의 사람들을 모함하고 파멸에 몰아넣었고 이 더러운 인간성 때문에 결국 미 서부 물리학계에서는(적어도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는) 평생을 배척당한다. 후술되지만 이 행적 때문에 오펜하이머의 친우인 라비 박사는 물론 아내 키티마저 그를 용서하지 않고 경멸했다.

  • 오펜하이머에게는 많은 친구들과 그를 지지해주는 동료 물리학자들이 있었지만 여기 영화에서는 데이비드 크럼홀츠가 연기하는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 박사가 거의 유일한 친구로 등장한다. 물론 라비 박사는 실제로도 오펜하이머의 매우 가까운 친구였으며 괴팅겐 대학 유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막역지우이기도 했다. 유대인 출신이었지만 무신론자였으며 오펜하이머 역시도 유대인 혈통 출신에다가 초기 해외 유학 시절에 적응하지 못했던 터에 두 사람의 우정이 싹트고 자라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한다.

  • 극중에서 라비 박사는 "이지(Izzy)"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데,[33] 라비 박사는 공식적으로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T-2 핵폭탄 개발 조직에 몸담지는 않았다. 영화에서는 오펜하이머가 이지에게 이론 개발 부서장을 맡기려고 하지만 이지는 자신의 양심이 물리학과 대량살상무기가 결합되는 것을 용인하지 못하겠다며 맨해튼 계획을 거부하는 말을 한다. 그러자 오펜하이머가 핵을 가진 미국이 미래에 전세계에 신뢰받을지는 모르겠지만 핵을 가진 나치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겠다며 이지에게 호소한다. 이지는 이에 동의하는 뜻을 보이는데 실제로는 라비 박사는 공식적으로는 맨해튼 계획 정식 일원이 아니라 맨해튼 계획의 일종의 하청직인 컨설턴트 직함을 가졌다. 역할도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 소장 오펜하이머의 개인 컨설턴트 역할을 맡았다. 그렇다고 그가 맨해튼 계획에 기여한 게 보잘것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론 개발 부서와 계산 부서에서 핵폭탄 제조에 매우 큰 공헌을 했으며 또한 그가 맨해튼 계획에 합류하기 이전에 그가 연구하던 것은 바로 "레이더"였다. 라비 박사가 연구하던 마그네트론[34]은 당시 미 전투기에 시범 장착되어 테스트할 정도로 소형화 및 기술 성숙도가 높았다고 한다.

  • 트리니티 핵실험 당일 라비 박사는 그의 학교(컬럼비아 대학교) 연구실에서 뒤늦게 실험장에 헐레벌떡 합류했다고 한다. 그때 이미 오펜하이머를 비롯하여, 텔러, 한스 베테, 어니스트 로런스, 엔리코 페르미, 리처드 파인만 등 맨해튼 계획 주요 연구진들은 과연 트리니티 핵실험에서 폭발할 원자폭탄의 위력이 어느 정도나 되려나 내기를 했다. 영화에서도 소개되듯이 오펜하이머는 3킬로톤의 폭발력을, 텔러는 45킬로톤으로 예측하며 내기에 걸었는데 라비 박사가 도착할 즈음엔 대부분 다 베팅을 하고 남은 선택은 18킬로톤밖에 없었다. 라비는 울며 겨자먹기로 18킬로톤의 폭발력에다 내기를 걸었는데 실험 직후 실제 측정해 본 파괴력은 18.6킬로톤이었다.

  • 영화의 청문회 장면에서 나온 증인들의 발언들은 대부분 실제 속기록 내용을 그대로 대본에 옮긴 것이다. 오펜하이머 일생의 가장 암울하고 절망적이었던 시간은 미 원자력 위원회(AEC/US Atomic Energy Commision) 보안 인가 처분 권고 위원회 - 일명 오펜하이머 청문회였다. 이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를 공격하는 증언이나 기록들도 많이 나왔지만 오펜하이머를 옹호하며 보안 인가를 연장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오펜하이머를 지지해 주는 증인들도 20명이나 참석해서 옹호해 주었다. 이후 속기록이 기밀해제되면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을 때 가장 강경하고 단호하게 오펜하이머를 지지한 사람 역시 이지 라비 박사였음이 실제로 밝혀졌다. 역사학자들은 그 오펜하이머 청문회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오펜하이머를 변호했던 이들로 라비 박사와 버니바 부시를 꼽았으며 결국 이 두 사람들은 과학자로서의 소신과 지조, 그리고 친구에 대한 의리를 지킨 인물로서 미국 과학계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라비와 부시 두 박사의 소신발언 역시 영화 내에서 등장한다.

"오펜하이머 박사의 비밀 취급 인가 등급을 취소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입니다. 오펜하이머 박사는 미 원자력 위원회(AEC)의 자문 역할을 해왔을 뿐입니다. 그의 자문을 받기 싫다고요? 그럼 그의 자문을 무시하세요. 간단한 일 아닙니까? 도대체 왜 이런 쓸데없는 절차를 벌이고 일을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오펜하이머 박사는 엄청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핵분열 원자폭탄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련의 슈퍼 폭탄[35]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만족이 안 됩니까? 이것들 말고 대체 뭘 더 개발하길 원한다는 말입니까? 인어공주(Mermaids)라도 개발해서 갖다 바쳐야 합니까? 이런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 당해야 하는 결과가 이런 청문회라니, 참으로 잘못된 처사입니다."

이지도어 라비 박사가 오펜하이머 청문회에서 반박하며 항의한 발언 속기록 중
"한 사람이 정직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조국에 봉사할 자격이 있느니 없느니, 애국자냐 소련 스파이냐 등등을 고민하는 것은 너무나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걸 문제 삼으려거든 당장 저부터 재판정에 세우세요. 저도 때로는 다수 의견이 아닌, 별로 인기도 없는 의견들을 강력하게 주장해 온 바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한 사람에게 오명을 씌운다면 이 나라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버니바 부시 박사가 오펜하이머 청문회에서 한 발언 속기록 중

  • 영화에서 라비와 오펜하이머의 첫 만남과 청문회장에서 라비가 오펜하이머에게 오렌지를 건내주며 "요기라도 좀 해."라고 위로해주는 장면은 영화적 허구이다. 오펜하이머 인생 최대의 암흑기이자 시련기 때 옆을 지켜주는 친구 이지의 존재를 영화 내부 서사에 장치시켜 놓은 놀란의 따뜻한 의도이다. 그러면서 청문회에 오펜하이머의 반대측 증인으로 출석하려던 어니스트 로런스[36]가 등장하자 이지가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당장 자리를 뜨라는 의미로 고개를 젓는 내용도 역시 영화적 허구이다. 실제로 로런스는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기로 하고 출석할 예정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당일 '급성대장염'에 걸렸다며 출석을 취소했다. 따라서 청문회장에서 로런스가 이지와 오펜하이머와 마주치는 일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절망의 시간 속에서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고개를 숙이며 괴로워하는 오펜하이머와 그런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라곤 오렌지 하나 건네며 요기라도 좀 하라고 권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라비의 안타까움, 그리고 변절한 옛 동료 로런스가 등장하자 "네가 감히 어딜..."이라고 말하듯이 매서운 눈빛만으로 일갈하고 이에 스스로도 부끄러워하며 말없이 뒤돌아서는 로런스의 장면은 놀란 감독이 등장 인물들의 감정선을 얼마나 영화적 서사를 통해 능수능란하게 풀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 영화에서도 라비 박사가 오펜하이머의 편에서 친구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며 우정을 보여주지만 실제는 이보다 더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청문회 전후로 어떻게든 오펜하이머를 지키고 파국을 면하게 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한다. 라비는 오펜하이머와 부시 등이 미 원자력 위원회 산하 일반 권고 위원회(GAC)에서 쫓겨나다시피 연임을 못하게 되는데 오펜하이머의 뒤를 이어 GAC의 의장직을 맡으며 어떻게든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가 장악한 미 원자력 위원회 중간에서 서로의 충돌을 막아보려 애썼다. 결국 미 원자력 위원회가 오펜하이머 청문회를 열기로 하면서 형식적인 의례 절차를 만들어 오펜하이머에게 보안 인가 취급을 취소하려고 할 때 라비 박사는 중간에서 협상안을 들고 중재하는데 협상안은 아래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 오펜하이머는 미 원자력 위원회(AEC/US Atomic Energy Commision) 상임 고문직을 사퇴하고 더 이상 AEC의 활동을 하지 않기로 공식 발표한다.
* 오펜하이머는 대언론 발표를 통해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공개 사과한다.
* 미 원자력 위원회(AEC)는 청문회를 개최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 오펜하이머와 AEC는 상호 간에 비난과 비판을 중지하고 일정 기간(추후 상호 논의 뒤 결정) 후 오펜하이머는 기밀 취급 인가 허가를 자진 반납한다.
라비 박사는 어떻게든 청문회만큼은 열리지 않게 하려고 애썼는데, 청문회를 통해 과거 오펜하이머의 행적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면 마녀사냥을 당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과거 공산주의자인 진 태틀록과의 열애 및 키티와 결혼한 후에도 지속된 태틀록과의 불륜 관계부터 아내 키티 오펜하이머가 과거 공산당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했던 사실 등이 공개적으로 밝혀지면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던 당대 시점에서 오펜하이머에게 어떤 심적 고통이 가해질지도 뻔했기 때문에 오펜하이머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라비 박사는 어떻게든 친구를 지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 위 협상안에 대해 오펜하이머는 결국 따르기로 하고 라비 박사는 루이스 스트로스에게 가서 오펜하이머 청문회만 막아주면 사실상 항복선언을 하겠다며 파국만은 피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이러한 간청을 스트로스와 미 원자력 워원회는 일언지하에 거부하고 청문회를 강행했다. 스트로스 입장에서는 청문회를 열어서 오펜하이머에게 공개 망신과 굴욕감을 주면 알아서 항복할 텐데 왜 자기가 양보를 해야 하냐는 지극히 치졸하고 개인적인 사적 감정을 드러낸 셈이었다. 라비는 이후 그 당시를 자신의 인생 중 가장 무력감과 친구에 대한 연민, 동정, 안타까움을 느낀 순간이라고 회고록에 쓴 바 있다.

  • 영화 내에서 다소 부정적으로 묘사된 에드워드 텔러(베니 사프디 분)가 한 청문회 증언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다. 텔러의 증언 내용이 미 과학계, 특히 오펜하이머 학파라고 일컫는 미 서부 지역 물리학계와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 알려지면서 학계는 일대 경악에 휩싸였다고 한다. 어느 학계가 다 그렇겠지만, 공개적으로 어느 한 명의 학자가 다른 학자의 등 뒤에 칼을 꽂는 행위를 하는 것은 비신사적인 행위를 넘어 금기시된다. 이 경우에는 매카시즘이라고 하는 희대의 정치적 마녀사냥에 한 학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행위로 판단되기에 그 충격은 더했다.[37]
위에서 설명했지만 에드워드 텔러가 평생 오펜하이머에게 가진 개인적인 의견은 의견일 뿐이고 오펜하이머의 정치적 공과는 충분히 학계 내에서 토론과 비판과 자정 노력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행동을 학계 외부에서, 그것도 온갖 암중모략이 판치는 정치 무대에서 한 교수가 정치 플레이를 통해 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오펜하이머를 싫어하는 학자들에게도 부정적으로 비춰졌다. 더군다나 영화에서도 표현되지만 텔러는 핵분열을 이용한 핵폭탄보다는 계속해서 중수소를 이용한 핵융합을 응용한 수소폭탄을 개발하는 데 더 관심을 쏟았다. 그러자 텔러가 속해 있는 T-1/T-2 그룹[38]의 부서장인 한스 베테가 폭발하며 텔러를 팀에서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에도 오펜하이머는 텔러에게 자유롭게 핵융합 연구를 하라고 배려해 주는 등, 끝까지 텔러를 감싸주었다. 로스앨러모스 연구소를 넘어 웬만한 미 서부 물리학자들 중 맨해튼 계획에 관여했던 이들은 다 아는 사실인데 오펜하이머에게 고마워해도 모자랄 텔러가 오펜하이머의 등 뒤에 칼을 꽂는 배신행위를 한 것이다.
  • 영화에서 첫 등장하는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첫 만남 역시도 에드워드 텔러와 관련이 있다. 로스앨러모스에서 한장 연구시설이 건설되는 동안 맨해튼 계획 이론개발부서 T-1/T-2는 캘리포니아 버클리와 칼텍 대학교 내의 한 건문에서 비밀리에 연구 모임을 갖는데 이 모임에서도 에드워드 텔러는 자기 자신이 발견안 핵분열이 연쇄반응하여 멈추지 않고 아예 지구 전체가 폭발해버릴거라는 가설식을 들이밀면서 논의 분위기를 흐려 놓는다. 그러나 텔러의 가설이 아예 허무맹랑하다고도 보기도 어려워서 오펜하이머는 연구원들의 갑론을박이 일자 이 가설을 아인슈타인에게 가져가서 그의 의견을 들어보고 정리하자고 주장하는데 주위에서는 "뭣하러 고전 물리학의 대가에게 의견을 물어보냐?"라는 회의적인 반응을 얻는다.

  • 사실 그 자리에서 텔러의 주장에 대해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다수의 이론 물리학자들이 숫자로 밀여붙여 텔러를 침묵시키거나 혹은 면박을 주며 텔러의 주장을 깔아뭉개버릴 수도 있었다. 그 당시 이론 물리학자들의 자존심은 학자의 자존심을 넘어 학자의 존재 이유 그 자체였다. 더군다나 맨해튼 계획 이론개발부서 T-1/T-2에 모인 이론물리학자들은 미국의 물리학자들 중에서는 날고 긴다는 천재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이론에 대해 인민재판식의 토론으로 결론이 나면 자존심 강한 에드워드 텔러가 어떤 상처를 입고 계속 맨해튼 계획에 존속할지도 알수 없었다. 때문에 오펜하이머는 텔러의 핵분열 연쇄반응 가설을 아예 명망있고 텔러도 수긍할 만한, 물리학의 신이라 불릴만한 아인슈타인의 이름값을 빌려 에드워드 텔러를 누르려고 했던 것이다. 동료 물리학자들의 비판에는 텔러는 수긍 못하겠지만(자신이 그들보다 뛰어나다는 자의식 때문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비판에는 고개를 숙일 것이라고 오펜하이머는 생각했기에 텔러의 가설을 아인슈타인에게 검증받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었던 것이다.

오펜하이머 : 알베르트? (Albert?)
아인슈타인 : 응? 아, 오펜하이머 박사! (Hmm? Ah, Dr. Oppenheimer.)[39]
아인슈타인 : 자네 쿠르트 괴델 박사[40]와 안면이 있었던가? 우린 여기서 거의 매일 같이 산책을 한다네. (Have you met Dr. Gödel? We walk here most days.)
쿠르트 괴델 : 나무는 가장 영감을 주는 구조체이니까요. (Trees have the most inspiring structures.)
오펜하이머 : 알베르트, 잠시 말씀을 나눌 수 있을까요?(Albert, might I have a word?)
아인슈타인 : 물론이지. 잠시 실례하네, 쿠르트. (Of course. Excuse me, Kurt.)
그거 아는가? 쿠르트는 나치 독일에서 탈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 가끔은 아예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는다네. 심지어 이 프린스턴 내부에도 나치 첩자들이 있어서 음식에 독을 탈 거라는 망상 때문이지. (Some days Kurt refuses to eat. Even in Princeton, he's convinced that the Nazis can poison his food.)
(오펜하이머가 에드워드 텔러가 쓴 가설식을 아인슈타인에게 건네준다.)

아인슈타인 : 이게 대체... 이건, 이건 누가 쓴 가설인가? (What.... Whose, whose work is this?)
오펜하이머 : 텔러입니다. (Teller's.)
아인슈타인 : 자네는 이 이론의 뜻을 이해했나? (What do you take it to mean?)
오펜하이머 : 중성자가 핵에 충돌하여 또다른 중성자가 방출되며 이는 다른 핵에 충돌하겠죠. 되돌릴 수도 없는,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는 임계점에 닿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이 가설에는 중성자와 핵의 충돌이 불러오는 연쇄반응이 멈추지 않는다고 주장해요. (Neutrons smash into the nucleus, releasing neutrons to smash into other nuclei. Criticality. Point of no return. Massive explosive force. But this time, the chain reaction doesn't stop.)
아인슈타인 : (연쇄반응이) 지구 대기를 발화시켜 버릴 수도 있겠구먼. (It would ignite the atmosphere.)
오펜하이머 : 만약 우리가 원자 폭탄을 폭발시키면 연쇄 반응이 일어나... 세상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When we detonate an atomic device, we might start a chain reaction that… destroys the world.)
아인슈타인 : 결국 우린 올 데까지 왔군. 그러니까 자네는 불확정한 양자 역학의 세상에서 길을 잃었고, 단 한가지의 확신이 필요한 게로구먼. (Lost in your quantum world of probabilities, and needing certainty.)
오펜하이머 : 박사님이 다시 한 번 가설에 대해 검증식을 직접 계산해 보시겠어요?(Can you run the calculations yourself?)
아인슈타인 : 자네도 알다시피, 자네와 나의 유일한 공통점은 수학을 무척이나 싫어하는것 아니겠나. 버클리에서 이 가설식에 대해 (수학적) 검증계산을 할 만한 이는 누가 있나? (About the only thing you and I have in common is a disdain for mathematics. Who's working on this in Berkeley?)
오펜하이머 : 한스 베테입니다. (Hans Bethe.)
아인슈타인 : 그의 계산이라면 정확한 결과가 나오겠군. (Well, he’ll get to the truth.)
오펜하이머 : 만약... 결과가 파국이라면요? (And if the truth is catastrophic?)
아인슈타인 : 그렇다면, 자네는 연구를 당장 중단하고 이때까지의 모든 연구 결과를 나치와 공유해야겠지. 그래야 그들이나 우리가 세상의 멸망시키지 않을것 아닌가. (Then you stop, and you share your findings with the Nazis. So neither side destroys the world.)
(오펜하이머가 망연자실한 표정[41]으로 프린스턴 연구소를 떠나려 할 때 아인슈타인이 불러세운다. 그리고 오펜하이머가 아인슈타인에게 준 가설식을 다시 돌려준다.)
아인슈타인 : 로버트. 이건 자네의 가설이지 나의 가설이 아니네. (Robert. This is yours, not mine.)[42]

  • 영화에서는 에드워드 텔러가 이런 배신행위를 오펜하이머가 있는 자리에서 한 후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자의식의 발호로, 심지어 청문회에서 퇴장하면서 뻔뻔하다 못해 후안무치하게도 오펜하이머에게 악수까지 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텔러의 악수를 받아들이는 오펜하이머의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다. 주변 사람들의 비난과 공격에도 끝까지 텔러를 감싸주며 맨해튼 계획에서 제외시키지 않았는데, 정작 그 텔러는 태연하게 청문회 증언에서 자신의 등 뒤에 칼을 꽂는 배신행위를 해놓고 자신에게 "유감이네.(I'm sorry.)"이라며 악수까지 청하는 이 참담한 상황에 온갖 상념과 고통에 휩싸이는 오펜하이머를 킬리언 머피는 클로즈업 하나로 완벽하게 표현했다. 다만 실제 당시 청문회 현장에서는 영화에서처럼 오펜하이머가 그냥 악수만 한 게 아니었다. 텔러가 악수를 청하자 이를 받아들이면서도, 오펜하이머는 나지막하게 "나는 방금 자네가 한 증언이 도무지 이해도 안 가고 무슨 말을 한 건지 당최 모르겠네."라고 쏘아붙였다고 한다. 결국 텔러는 이때의 일을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오펜하이머의 엔리코 페르미 수상식에서 오펜하이머의 아내인 키티에게 대놓고 악수를 거부당하는 굴욕으로 돌려받는다.

  • 영화에서는 키티 오펜하이머가 에드워드 텔러와 악수를 거부하는 하나의 장면으로 압축해서 표현하지만 텔러는 실제로는 이 같은 수모를 꽤 자주 당하며 자기 행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치렀다. 청문회 증언 이후 텔러가 학회 일로 로스앨러모스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에도 (텔러 입장에서는 친정집을 방문하는 듯한) 연구소 분위기는 싸한 공기에 휩싸였으며 연구원들 너도나도 텔러가 연구소를 방문했다고 수군대기 시작했으며 더 큰 사건은 연구소 구내 식당에서 터졌다. 텔러와 함께 수소폭탄 개발을 했던 로버트 프레더릭 크리스티를 식당에서 발견한 텔러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자 반가운 나머지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크리스티 박사는 천천히 일어나 뒤로 돌아서서 팔짱을 끼고 텔러를 아예 무시해 버렸다. 옆 테이블에서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나머지 얼굴이 붉게 변한 채로 씩씩거리는 이지도어 라비 박사가 텔러를 노려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라비 박사는 텔러에게 이 한 문장을 내뱉었다고 한다. "자네하고는 악수할 생각이 없네. 에드워드.". 주위를 둘러보는 텔러는 깜짝 놀랐다. 당시 거기 있던 연구원들 대부분이 차갑게 텔러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텔러는 바로 연구소를 뛰쳐나와 숙소로 가서 짐을 챙겨 떠나버렸다.

  • 영화 엔딩에서 플래시로 인서트되는 장면에서 오펜하이머는 에드워드 텔러와 악수를 하지만 아내 키티는 팔짱을 끼며 경멸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손을 내민 텔러와의 악수를 거부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이 장면은 실제 백악관에서 열린 엔리코 페르미상 수상식에서 뉴스위크 기자가 촬영한 사진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키티 오펜하이머는 행사가 끝나는 순간까지 텔러를 외면했다. 당시 행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텔러를 향한 키티의 노골적인 경멸과 외면을 눈치채고 어쩔 줄 몰라 할 정도로 분위기는 어색했다고 한다.

  •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 중 실제 인물과 가장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 이들중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 역의 맷 데이먼의 연기도 호평받았는데, 그로브스 장군의 오펜하이머 청문회 등장 신에서는 약간 영화적 창작이 데이먼의 제안으로 추가되었다고 한다. 실제 역사에서 그로브스가 청문회에 불려나왔을 때는 그는 현역에서 퇴역한 상태였다. 그러나 스트로스가 뒤에서 FBI를 움직여 그로브스에게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도록 유도하고 만일 뜻대로 하지 않으면 맨해튼 계획 당시 일명 "슈발리에 사건"이라는 스파이 음모 계획에 대한 재조사를 해서 그로브스까지 증인 소환 및 당시 책임자로서 관리 소홀 과실을 물어 처벌할 수도 있다고 협박하였다고 한다.[43] 결국 그로브스 장군은 청문회에서 "만약 지금 오펜하이머에게 보안 취급 인가를 내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오늘날의 규정 하에서는 보안 취급 인가를 내줄 수 없다"라는, 오펜하이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고 만다. 그럼에도 오펜하이머는 당시 변호사들을 통해 스트로스 및 원자력 위원회 측의 처사를 들어서 알았기 때문에 이런 진술에도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해당 발언 이후, "오늘날의 규정 하에서는 나는 오펜하이머가 아닌 다른 그 어떤 이가 와도 보안 허가를 내줄 수 없다"라며 완곡하게 스트로스 및 원자력 위원회를 비판하는 대사가 추가되었다.

  •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이 연기한 윌리엄 보든이 상당히 수동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오펜하이머가 소련의 스파이라고 고발한 편지를 작성한 그의 행동이 영화상에서는 단순히 스트로스의 복수를 대행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실제로는 윌리엄 보든 또한 오펜하이머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심과 악감정을 가지고 수년에 걸쳐서 그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진행한 인물이었다. 군과 오펜하이머 간의 대립이 과거 공군이었던 그의 의심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그는 오펜하이머 사건 이후 수소폭탄 개발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한 인물이기도 하다. 오펜하이머 평전의 저자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은 그를 두고 전형적인 음모론자라고 평했다.

  • 영화 배경 및 주제가 오펜하이머 전기라는 특징 때문인지 여성의 비중이 거의 없다. 오펜하이머의 아내와 애인인 키티 오펜하이머(에밀리 블런트 분), 진 태틀록(플로렌스 퓨 분), 단 2명이 사실상 전부. 이외엔 영화 내내 비중 있는 여성배우 출연이 없으며 심지어 대사도 단어 이상급이 나오지 않는다. 유일하게 의미있는 여성 배역이 바로 릴리 호니그(Lilli Hornig) 인데 영화 드레드로도 알려진 여배우 올리비아 썰비가 연기했다. 호니그는 당시 맨해튼 계획에 참가한 극소수의 여성 과학자들 중 하나로 브린마 칼리지에서 화학을 전공한 대졸자였는데, 당시 맨해튼 계획 내 플루토늄 내파장치를 연구하는 그룹 리더인 도널드 호니그의 아내였다. 남편 때문에 로스앨러모스로 이사온 릴리 호니그은 맨해튼 계획에서 일자리를 얻을려고 지원했는데, 인사과에서는 타자수로 임명해버린다. 당시 교육평균 수준을 감안하면 대학교 화학 전공 졸업이 아주 하찮은 것은 아니지만, 그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바로 타자수로 발령내 버리는 성차별이 이 시대의 일상이었다. 릴리 호니그는 이런 처사를 오펜하이머에게 편지를 써서 직접 항의하고 당연히 남편 도널드의 도움도 얻었다. 오펜하이머는 곧바로 릴리 호니그를 플루토늄 화학 처리 부서로 발령내고 해당 팀에서 정식 팀원으로 일하게 했는데, 나중에 플루토늄의 화학적 독성이 여성에게 위협적이라는 평가 때문에 기폭 개발부서인 폭축렌즈 및 기폭제 개발부서로 옮겨진다. 영화에서는 이 내용이 썰비와 머피의 대화 4줄로 줄여서 화면에 나왔다.
릴리 호니그 :(검문소를 통과 못 해 멀리 있는 오펜하이머를 향해 소리지르며) 오펜하이머 박사님! 인사과에 가보니 저보고 타자수로 발령났다는데요?
오펜하이머 : 타자 칠 줄 몰라요?
릴리 호니그 : (한숨을 쉬며) 아마 제가 하버드에서 화학 학부과정을 가르치느라 너무 바빠서 타자 치는 법이 가물가물해서 그런지 모르죠.
오펜하이머 : (빙긋이 웃으며 옆에 있는 에드워드 콘던[44]에게) 릴리를 당장 플루토늄 처리반으로 발령 내게. 업무는 바로 시작하도록 하고.

  • 이 배경 때문인지 영화에서 그것(The Gadget)을 개발하고 준비하는 신에 은근히 자주 걸려 출연하는 모습이 보인다. 또한 영화에서는 독일이 항복했는데 왜 원자폭탄 연구를 계속하느냐며 항의하는 연구소 직원들을 규합해 토론회도 열고, 대표로 오펜하이머에게 자신들의 논리를 설파하는 당당한 여성의 모습도 보인다. 실제로 릴리 호니그는 페미니스트였으며 전쟁이 끝나자 다시 공부를 준비하여 하버드 대학교에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위해 당당히 입학한다. 이후로도 여성의 권리 신장 및 직장/산업에서의 여성 인권 문제 등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주장하는 페미니즘 운동을 보급한다. 키티 오펜하이머, 진 태틀록의 배역이 가지는 무게 때문에 릴리 호니그 역의 올리비아 썰비의 영화 내 대사량이나 화면 비중은 적지만 실제 릴리 호니그는 여성으로서 맨해튼 계획에 원자폭탄 개발 및 실제 제조 과정에 참여한 몆 안 되는 여성 과학자임은 분명하다.

  • 오펜하이머와 해리 S. 트루먼(게리 올드먼 분)이 독대하는 장면 및 발언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의 기록을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실제 트루먼과 오펜하이머, 그리고 제임스 번스 국무장관[45]이 1945년 10월 25일 오전 10시 30분에 백악관 집무실에서 독대[46]하였으며 이 자리는 원자폭탄 개발 총 책임자이자 타임지 1면 커버 스토리에 나온 오펜하이머를 트루먼 대통령이 만나보고 싶어해서 마련된 자리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만남을 계기로 트루먼의 오펜하이머에 대한 인상은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바뀌었으며 트루먼 재임 기간은 오펜하이머에게 결코 유리하게 돌아간 세월이 아니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주변 인물들에게 오펜하이머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받았음을 토로했으며 심지어 애치슨에게 보낸 서신에서 "징징거리머 보채는 그 울보(오펜하이머)를 다시는 내 집무실에서 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라고 썼다. 또한 그 당시 미 원자력 위원회(AEC) 의장인 릴리언솔 의장에게 "오펜하이머가 그러는데 자기 손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가 묻어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는 근래 들어 처음 들어봅니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전하기도 했다. 참고로 트루먼은 성격이 과격하기로 유명했고, 입도 거칠기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상술했듯 트루먼은 더 이상의 미국인의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개발된 원자폭탄을 실제로 투하할 것을 지시, 20만 명을 살상하게 한 최종적인 책임자였다. 즉 오펜하이머가 칼을 만드는 대장장이라면, 그걸 실제로 뽑아 휘두른 건 트루먼 본인인 셈이다. 근데 오펜하이머가 이렇게 이야기하니 트루먼 입장에선 '실제로 피를 손에 묻힌 건 난데 왜 네가 징징대냐' 생각할 법도 하다. 특히나 그의 거친 성격을 생각한다면. 실제로 영화 내에서 이 대사를 할 때, 트루먼은 몹시 굳은 얼굴로 기분 상한 듯이 응대한다.

  • 오펜하이머도 나중에 지인들에게 "그 자리에서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라고 후회하는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평소의 오펜하이머라면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소련의 핵무장 가능성에 대해 과소평가할게 아니고 진지한 정보판단을 해서 국제 핵무기 감축 협약이라던가 미-소 군축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을 차근차근 펼쳐나갔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펜하이머는 트루먼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감정적이고 연약한 과학자로서의 부정적인 선입견만을 심어준 셈이 되어 버렸다. 영화에서 트루먼 대통령이 대화 초기에 끊임없이 오펜하이머의 심기를 살피며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지만 오펜하이머는 무뚝뚝하게 사람 속을 긁는 대답을 하는 것도 당시의 만남 분위기 그대로였다고 한다. 트루먼 대통령이 로스 앨러모스 소장직을 사직하려는 오펜하이머에게 "어떻게 해주면 사직하려는 박사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요?" 라고 물었는데 눈치도 없이 오펜하이머는 그냥 "(원래 로스 앨러모스에 살고 있었던) 인디언 원주민들에게 로스 앨러모스를 되돌려줘야겠죠."[47]라며 눈치라고는 밥 말아먹는 대답을 하니 트루먼 대통령으로서는 기분이 상해 버릴 수도 있었다. 역사가들은 이 예를 들어 오펜하이머가 정치적 야망은 분명 있는 사람이었지만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는 법을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 영화에서 오펜하이머의 스승이기도 했던 닐스 보어가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를 방문하는 장면에서 레슬리 그로브스가 독일에서 탈출한 보어를 오펜하이머 연구진들에게 소개해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시 실제 상황과 비교해 보면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첫 번째로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은 닐스 보어가 맨해튼 계획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꺼렸다.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 방문도 반대했으며 닐스 보어가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로스 앨러모스에 있는 그의 제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로브스 장군은 닐스 보어가 스웨덴으로 무사히 탈출하고 난 후 영국을 거쳐 미국에 오기까지 윗선에다 닐스 보어를 워싱턴 혹은 시카고에 어떻게든 묶어두고 결코 로스 앨러모스를 방문하지 못하도록 온갖 노력을 다했다고 한다. 그러나 닐스 보어는 일개 미 육군 장군이 쉽게 다룰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한 위인이 아니었다. 노벨상 수상자에, 세계적으로도 저명한 덴마크 국적의 이 과학자는 자신이 덴마크 국왕을 만나고 싶으면 그냥 궁으로 가서 왕을 만나러 왔다고 말한 다음 정말로 왕을 접견했던 사람이었다. 결국 로스 앨러모스 방문 허가가 떨어지고도 뉴욕-시카고를 거쳐 로스 앨러모스까지의 기차를 함께 타고 오는 동안 그로브스는 보어에게 계속해서 정보 보안 설명을 하며 함구령을 하도록 신신당부했으나 영화에서처럼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에 도착하는 바로 그 시간부터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제자들, 과학자들에게 핵분열 관련 극비 사항들을 줄줄 읆다시피 하며 신나게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는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을 비롯한 미 육군 방첩, 첩보 당국 요원들은 억장이 무너지다 못해 속이 뒤집힐 정도로 화가 났었다고 한다.

  • 두 번째로 레슬리 그로브스를 비롯한 미 육군 지도부는 닐스 보어의 행적에 대해 오펜하이머 못지않은 의구심을 품고 있었는데, 닐스 보어는 핵폭탄 제조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핵무기 시대 이후의 질서에 대해 공공연하게 발언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심지어 닐스 보어는 핵무기 개발 이후 소련에게 어느 정도 핵무기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소련에게 미국이 핵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소련이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당연히 이 주장은 미국의 대소련 강경파들에게 경악을 일으키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아무리 닐스 보어가 핵무기 개발에 필수적인 인사라 하더라도, 또한 보어가 독일의 핵무기 개발 진척 상황에 대한 고급 정보를 가져왔었더라도 미국 강경파 군인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 인물이었다.

  • 맨해튼 계획 당시 로스 앨러모스 내에서 금고털이로 악명 높았던 리처드 파인만의 경우 영화 내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들은 전부 생략되고 당시 파인만은 물리학자가 된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기에 비중 역시 적다. 다만 크리스마스 파티와 트리니티 실험의 성공 직후 봉고 드럼을 연주하거나[48] 차 유리를 통해 맨눈으로 트리니티 실험을 지켜보는 등 누가봐도 파인만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가 차 유리를 통해 맨눈으로 트리니티 실험을 지켜본 것은 매우 유명한 일화이지만 영화에서는 약간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 영화에서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약 9km 떨어진 관측소에서 텔러를 비롯한 다른 과학자들과 함께 실험을 지켜보나 현실에서의 그는 30km 밖에서 실험을 구경했다. 애초에 이런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있던 위치가 그라운드 제로와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며 만약 영화에서처럼 그라운드 제로에서 9km 밖에 안 떨어진 곳에서 똑같은 시도를 했다면 결과는 영 좋지 못했을 것이다.

  • 작중 스트로스 청문회에서 언급되거나 등장한 상원의원들은 모두 실존인물들이다. 스트로스에게 '장관 지명과정은 통과의례일뿐'이라고 조언한 스트롬 서먼드(데이비드 파이퍼 분)는 당대 거물급 남부 정치인으로서 스트로스 지명인준에 찬성했다.* 스트로스에게 가장 공격적으로 질문하던 게일 W. 맥기(해리 그뢰너 분) 상원의원은 현실에서도 스트로스 인준을 막는데 가장 앞장선 정치인이었다. 그외에도 당시 상무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워런 매그너슨(그레고리 즈바라 분), 존 패스토어(팀 디케이 분), 밥 바틀렛(테드 킹 분), 휴 스콧(스티븐 후스카 분) 출처 다만 맥기와 함께 스트로스 인준에 반대했던 클린턴 앤더슨 상원의원은 출연하지않았다.

  • 오펜하이머가 슈발리에 사건과 연관해서 보리스 패시에게 증언을 한 것도 사실이다. 오펜하이머는 적당히 둘러대서 슈발리에를 보호할 생각이었지만 이는 순진한 판단이었다. 이는 이후 진술 번복으로 인해 오펜하이머가 공격받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보리스 패시는 초강경 반공주의자로, 작중에서도 언급하듯이 아버지가 망명한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였으며 적백내전에 직접 참전한 인물이었다. 보리스 패시는 오펜하이머가 증언할 때 한번 등장하는데, 오펜하이머에게 예의를 갖추며 매우 침착하게 대응하지만 그 와중에도 공산주의 혐의를 날카롭게 캐는 등 만만치 않은 인사임을 보여준다. 오펜하이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던 그로브스도 패시와 만났다는 말을 듣자 '당신 제정신이냐. 저런 작자와 만난다고?'라며 크게 우려한다.


3.2. 작중 시대 배경, 장치들과 실제 역사 비교[편집]


  • 영화에 나오는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의 재현을 두고 일찍이 논쟁이 되었다. 성조기의 디자인은 여러 차례 바뀌었는데, 현용 디자인은 적백 가로줄 13줄과 좌측 상단 파란 바탕에는 50개의 별이 그려져 있다. 이는 각각 미합중국 건국 초기 13개 주와 현재의 미국 50개 주를 의미한다. 문제는 해당 현용 디자인은 1960년 7월 4일부터 사용된 것인데, 본작의 배경인 1930년에서 1954년 사이에는 아직 별이 48개 그려진 성조기가 현용이었다. 당시에는 알래스카하와이가 미국의 정식 주로 편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영화에서는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될 원자폭탄 리틀 보이(우라늄-235 사용)와 팻 맨(플루토늄 사용)이 나무 상자에 담긴 채 미 육군 군용 트럭 스튜드베이커 2대로 로스앨러모스 연구소를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리틀보이와 팻맨 이 두 원자폭탄은 당시 미 국가의 운명이 걸려 있는 전략 무기임에도 호송 병력 하나 없이 달랑 트럭 2대에 실려 로스앨러모스를 떠나 사막길을 통해 샌프란시스코로 운송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USS 인디애나폴리스(포틀랜드급 중순양함)에 실려 티니안 기지까지 운반된다는 것을 가정한 것인데 사실 출발부터 영화에서 보여지는 리틀 보이, 팻 맨의 모습은 기본적으로 영화적 허구이다. 극중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장면이 직접 등장하지 않으므로, 관객들에게 두 원자폭탄의 모양을 어떤 식으로든 보여주기 위해 넣은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 당시 트리니티 실험 이전에 실제 핵실험이 필요없는 포신형 원자폭탄인 리틀보이의 일부 부품들은 이미 티니안 기지에 건너가 있었다. 단지 최종 조립이 안 되어 있을 뿐이었다. 리틀 보이와 팻 맨 둘다 오펜하이머 영화처럼 완제품으로 최종 조립되어 로스앨러모스를 떠난 적이 실제로는 없었다. 이들 두 원폭은 대부분 중요 부품으로 분리되어서 운송되었으며, 이후 티니안 섬 기지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실제 투하되기 직전에야 조립된 것이었다. 특히 원자폭탄의 단연 핵심 요소인 우라늄-235, 플루토늄은 아예 격납 용기를 따로 제작해 그것도 여러 차례에 걸쳐 나눠서(소분 용기에 나눠 보관하듯) 티니안 기지로 옮겼다. 우라늄-235와 플루토늄 운반이 그 어떤 호송 작전보다 더 엄중하고 철저하게 보호되어 건너갔음은 물론이다. 실험 직후 로스앨러모스를 떠난 것은 영화처럼 완성되어 있는 리틀보이, 팻 맨 원자폭탄이 아니라 우라늄-235의 절반 용량과 일부 리틀보이 구성 부품들이 로스앨러모스를 떠났다. 그리고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팻 맨의 플루토늄, 부품들도 나눠 반출되어 티니안 기지로 운송되었다.

  • 영화에 오펜하이머의 상상에서 조종석에 앉아 있는 비행기는 보잉 B-24 폭격기이다.[49] 레딧에서는 조종석에서 오펜하이머가 V2 로켓을 보는 환영과 수십 기의 핵미사일이 날아가는 환영을 보는 장면을 두고 논쟁이 일고 있다. 실제 V2 로켓과 B-24 폭격기를 타본 적이 없는 오펜하이머가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는가를 두고 "핵무기에 대한 책임감을 표현하기 위한 영화적 표현이다"와 "그래도 오펜하이머가 본 적이 없어 상상하기 어려운 B-24와 미사일[50]을 상상의 대상으로 사용한 것은 부적절했다"로 나뉜다. 이 폭격기는 윌리엄 보든이 탑승해 있던 장면이 먼저 나오고, 이를 오펜하이머가 자기 자신에 대입하는 장면이 뒤이어 나온다.

  • V2 로켓의 추진체 화염이 왜 푸른색이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놀란 감독은 재현을 정확히 해냈다. 독일의 V2 로켓은 추진연료로 액화산소와 알코올/물 혼합재를 쓴다. V2 로켓의 최대 도달 고도가 88Km~206Km[51]이므로 지구 공기층이 희박해지는 100Km 이상에도 V2는 도달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 영국을 목표로 쏘아올린 V2 들이 독일 본토에서 발사된 것을 감안하면 대부분 150Km 이내까지가 V2 로켓의 탄도 운동 최대 도달 고도였다고 평가된다. 그 정도 고도라면 액체 연료를 쓰는 로켓을 하늘에서 관찰하는 경우에는 푸른 화염이 관측될 수 있다.

  • 논란은 영화에서 보여지는 이 V2 로켓들의 움직임이 탄도탄 미사일이 아닌 순항미사일처럼 보여진다는 점이다. 이 장면들은 B-24 조종석에서의 오펜하이머 환영이 두 번 나오는데 첫 번째는 V2 로켓 하나지만 두 번째 환영에서는 여러 발의 핵미사일이 보인다. 이 미사일들을 보는 환영에서도 순항 미사일처럼 보여진다. 순항미사일들은 로켓 모터 혹은 제트 엔진 둘 다 채용할 수 있지만 대부분 사거리를 이유로 제트엔진을 채용한다.[52] B-24에서 이러한 순항미사일을 볼수 있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따라서 재현 논란보다는 극에서 오펜하이머가 두려워했던 핵폭탄의 투발 방식이 폭격기를 이용한 폭격이 아니라 아예 미사일같이 날개를 달아서 날아가는 미래에 대한 절망과 자신이 이런 비극의 단초를 제공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가 되었다는 죄의식의 표현이 영화에서 그려졌다고 이해해야 한다.

  • 실제 오펜하이머와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의 주요 의견차이 중 하나는 정보구획화(Compartmentalization)이었다. 영화에서는 이 문제로 두 사람간의 갈등도 심각한 것으로 묘사하는데 실제로도 오펜하이머는 정보구획화 및 높은 보안 규정때문에 연구 효율이 낮을 거라고 우려했고, 그로브스는 정보구획화가 실패하면 보안이 새고 결국 핵개발 정보가 미국의 적들에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을 걱정했다. 결론적으로는 두 사람 다 틀렸다. 오펜하이머가 딱히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보구획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차츰 느슨해져서 트리니티 실험까지 가면 아예 미국에서 웬만큼 지명도 있는 물리학자, 수학자들은 이미 웬만큼 맨해튼 계획에 대한 "목적"을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다만 그들 대부분이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애국심에 서로서로 쉬쉬하며 널리 퍼지지 않은 것뿐이다. 각 분야별로 과학자들을 나눠서 몰아넣고 그들 구획에서만 연구 활동을 보장해 주고, 이것들을 취합하여 단시간 내에 핵폭탄과 같은 결과물을 내겠다는 맨해튼 계획의 목표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 대목. 처음 로스앨러모스가 탄생되고 초기의 정보구획화는 매우 엄격해서 심지어 같은 건물의 연구자들도 서로 교환해야 하는 정보가 많이 없었으며 서부의 UC 버클리어니스트 로런스, 시카고 대학교엔리코 페르미, 테네시의 우라늄/플로토늄 농축시설 등은 서로 전화, 서신 교환조차 허용이 안 되었으며 서로 간의 통신은 아예 미 육군이 모두 도감청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작은 방사성 동위원소의 임곗값 계산식을 검증하는 절차도 몇 달이 걸릴 판이었으니 맨해튼 계획을 총괄하는 오펜하이머나 나중에 그로브스까지도 이러한 정보구획화가 원자폭탄 개발을 발목 잡는 장애물임을 서로가 인정할 정도였다.

  • 이렇게 레슬리 그로브스를 비롯한 미 육군에서 보안을 강조하며 연구 인력, 조직의 구획화를 부르짖었으나 결국 소련에게 핵폭탄 개발의 기밀이 넘어간 것은 클라우스 푹스와 같은 맨해튼 계획의 핵심 연구자들 때문이었다. 아무리 과학자, 연구자들을 구획으로 나눠보았자 이를 총괄하는 고위층에 스파이가 침투해 버리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맨해튼 계획에 클라우스 푹스를 비롯해서 최소 2명 이상의 소련 스파이가 침투해 있었을 거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심지어 푹스는 소련에서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간첩도 아니었다. 원래부터 뛰어난 물리학자역던 푹스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맨해튼 계획에 동원되었고 로스앨러모스로 와서 연구를 시작하다 보니 내용이 "핵폭탄 개발"이었다. 푹스는 이 핵폭탄 제조 능력이 미국에게만 있으면 미국-소련의 힘의 균형이 무너져 핵 억지력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해 뉴욕의 소련 무역 대표부로 자기 발로 걸어들어가 기밀 정보를 갖다바친 셈이었다. 그로브스를 비롯한 미국의 수뇌부들이 보안을 부르짖으며 보안을 위한 온갖 장치를 만들어뒀다 한들 푹스 같은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지식인에게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던 것이다. 다소 성격은 다르고 동기도 달랐지만 리처드 파인만이 로스앨러모스에서 권위에 도전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자물쇠, 금고를 따는 것은 애교이고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의 온갖 보안 장치, 절차를 다 피해 가며 장난을 치며 미 육군 군인들을 비웃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정보 보안이 가지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곱씹어보게 된다.

  • 영화에서 오펜하이머가 받은 엔리코 페르미상은 미 합중국 에너지부(DOE, Department of Energy)에서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를 기념[53]하고, 에너지의 사용 및 생산에서 전세계에 걸친 업적을 쌓은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페르미의 타계(1954년) 이후로 제정을 결정하고 1956년도에 첫 수상자(존 폰 노이만)을 선정, 수여했다. 문제는 이 상이 오펜하이머에 수여하는 시기에는 정치적 논쟁에 휘말렸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는 언듯 보기에는 오펜하이머의 복권[54]을 의미하는 듯 하지만, 영화 엔딩에서 보여지는 아인슈타인의 대사, 그리고 키티 오펜하이머의 에드워드 텔러에 대한 태도는 놀란 감독이 복선으로 관객에게 결코 오펜하이머는 복권되지 않았다는 암시를 보낸 것일 수도 있다.[55]

  • 오펜하이머의 페르미상 전년도 수상자# 에드워드 텔러였다. 그리고 오펜하이머에게 페르미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한 존 F. 케네디 정권은 선정 전부터 공화당의 간을 보느라 바빴다고 한다. 민주당 정권이었던 케네디 집권기는 미국을 뒤엎었던 매카시즘의 광기 어린 시절을 겨우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극우 반공 세력들이 아예 몰락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백악관은 공화당 반공 성향의 의원들에게 "오펜하이머가 만약 페르미 상을 받고 백악관에서 직접 수여식을 열면 어떨까?" 라고 은근히 떠보면서 공화당 눈치를 보았으며,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오펜하이머에게 이 상을 수여하는 것이 복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언질까지 공화당 측에 확인해 주었다. 실제로 오펜하이머의 페르미상 수상 발표가 나자마자 공화당은 반발하고 나섰으며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오펜하이머의 과거 공산주의 세력 연루와 관련된 정보 문서들을 회람시키기까지 했다. 또한 공화당은 오펜하이머 수상 직후부터 페르미상에 대한 공신력을 깎아내리려 애썼으며 민주당 정권은 어이없게도 공화당에게 굴복, 오펜하이머 수상까지 5만 달러로 책정되어 있던 페르미상의 상금을 오펜하이머 수상 이후부터는 절반 깎은 2만 5천 달러로 책정하기로 합의해 주었다. 결국 미국 정치계는 결코 오펜하이머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고 당연히 그가 요청했던 복권도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저 당시에 이름 있는 상 하나를 오펜하이머에게 시상한 것뿐이었으며 그나마 그 상의 권위마저도 이후 깎아내리기 바빴다. 이같은 미 정치권의 행태는 아인슈타인의 예언이 적중한 셈이었다.

  • 오펜하이머 사후 오랜 시간이 지난 2022년 12월 16일에 와서야 미 에너지부는 제니퍼 그랜홈 에너지부 장관 명의 공식 성명#을 통해 오펜하이머의 기밀 정보 취급 인가를 취소시킨 미 원자력 위원회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며 오펜하이머는 미국에 충성한 애국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발표했다. 성명은 또한 미국 정부가 미국을 위해 헌신한 애국자를 (매카시즘의 광기속에) 어떻게 가혹하게 대우했는지 기억하고 반성하며 결코 이와 같은 잘못이 반복되어야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후로 실제 오펜하이머 가족의 비극은 잘 알려진 바는 없다. 청문회를 통해 원자력 기밀 취급 허가를 박탈당한 이후로 오펜하이머는 미 정부의 공식적인 프로젝트나 국가 사업에 관여할 자격이 없게 되었다. 그 주체가 미 에너지부, 국방과학, 미 원자력 위원회(AEC)라면 더더욱 오펜하이머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위 서술에서도 밝혔지만 엔리코 페르미 상 하나 받은 것이 정치적 복권이나 사면은 아니었다. 그나마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IAS/Institue of Advanced Study)직이 그의 유일한 공식 타이틀이었다. 물론 오펜하이머 부부의 괴팍하고 비정상적인 정서도 큰 이유였기도 했지만,[56][57] 오펜하이머의 가족(부인, 아들, 딸)은 모두 청문회 이후 평탄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 오히려 마지막은 비극적이기까지 했다.

  • 오펜하이머는 1967년 2월 18일 자택에서 사망했다. 사인은 후두암이었다. 추모식 이후 시신은 화장되어서 오펜하이머의 아내 키티 오펜하이머와 딸 토니 오펜하이머만이 아는 섬 근처 바다에 안치되었다.[58] 오늘날 오펜하이머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20세기 세계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사람의 최후 치고는 너무 기이하고 초라한 일이었다. 부인인 키티 오펜하이머는 남편 사후 이후 버지니아 제도에서 요트를 타고 여행을 하다 색전증에 걸려 사망했다. 오펜하이머가 죽은 지 5년 뒤었다. 키티 역시도 시신은 화장해서 남편의 화장한 시신이 가라앉은 바다에서 재로 뿌려졌다. 역시 그 위치도 알려진 바가 없다.

  • 오펜하이머의 큰아들 피터 오펜하이머는 부모와는 담을 쌓은 채 오펜하이머가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뉴멕시코의 목장을 이어받아 살고 있다. 또한 트리니티 실험 및 뉴멕시코에 매립되어 있는 핵폐기물 청소를 위한 환경운동에도 투신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에 "오펜하이머"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걸 굳이 알리고 다니진 않는다고 한다.
오펜하이머의 딸 토니 오펜하이머는 일찍이 아버지를 닮아 언어 능력이 뛰어나서 책의 번역, 서술 등과 관련한 일을 했다. 이후 뉴욕에 자리를 잡으면서 UN에 임시 번역가로 일을 하기로 하였으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과거 공산주의 연루 의혹으로 인한 연좌제로 서너 번의 신원 조회를 거쳐야 했다. 그 신원 조회에서도 결국 토니 오펜하이머는 통과하지 못했고 UN에서의 일도 얻지 못했다. 이후 토니는 부모들이 휴가 때 사용하던 카리브해 세인트섬의 별장에서 잠시 지내다 1977년 1월 별장 안 침실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죽은 1967년 이후 10년 안에 부인 키티, 딸 토니 모두가 사망했으며 무덤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한때 '미국의 프로메테우스'라고 불리기까지 했던 거인의 말로는, 애국자의 운명치고는 너무나 초라한 결말이었다.

  • 영화 막바지 루이스 스트로스의 상무부 장관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참여해 그의 명성에 결정타를 날린 데이비드 힐은 미국 과학자 연맹(FAS: 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의 회장으로,[59] 당시 그가 대표하는 과학자 그룹은 오펜하이머 청문회에서 보여준 스트로스의 행적으로 인해 분노하여 스트로스의 이름을 언어유희 시킨 'Last Straws Committe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장관 임명 반대를 위한 로비를 적극적으로 하였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스트로스는 1925년 이후 최초로 장관 인준에 실패한 지명자라는 엄청난 불명예 타이틀을 얻게 되었으며 결국 정계를 은퇴했다. 말년에 자신이 운영하는 브랜디 록 농장에서 목축업을 하다가 1974년 림프육종으로 사망하였다.

  • 스트로스가 영화에서 오펜하이머를 파멸로 몰아넣는 악인의 역할로 등장하지만 실제 역사가들은 자신의 출세를 위한 정치 공작에 오펜하이머를 희생한 것 이상으로 사적 복수를 가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영화에서 스트로스가 가진 권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미 원자력 위원회(AEC) 의장이고 다른 하나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이사회 상임이사였다. 1945년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전까지는 이렇다 할 두 사람의 접점이 없는 게, 당시의 오펜하이머는 원폭을 개발해 미국을 전쟁에서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이었고, 스트로스는 미 원자력 위원회 일개 위원일 뿐이었다. 이후 오펜하이머가 로스앨러모스 소장직을 사직하고 칼텍과 버클리 대학으로 복귀하자 오펜하이머를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으로 스카우트하려고 한 것도 사실 스트로스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당시 프린스턴 상황이 오펜하이머를 더 선호했을 뿐이었다.
    • 당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차기 소장 선출 위원회를 구성하는데 스트로스는 그 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스트로스는 자기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직에 욕심을 냈는데 그 위원회는 당시 고등연구소 소속 박사, 교수들의 입김이 더 셌고 오펜하이머가 1순위, 스트로스는 5순위로 이미 대세는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자 스트로스가 재빠르게 분위기를 읽고 자기 자신이 노력해서 오펜하이머를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으로 모셔왔다는 생색을 내려 한 것이다.

  • 그러나 이후 두 사람의 정치적 위상은 뒤바뀌는데, 루이스 스트로스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임명으로 일개 위원에서 AEC 의장으로 승진한다. 또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이사회에서도 세력을 확대해서 절반 이상의 이사들이 스트로스 영향력을 받는 이사진으로 교체가 된다. 여기서 스트로스가 비판받는 점은 사적 복수에 공적 권력을 동원했다는 점이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원(IAS/Institute of Advanced Study)의 특징은 공적 기관, 정부 기관과의 완벽한 독립을 추구하는 사립 연구소이다. 연구소 창립부터가 백만장자들이 출연금을 내서 설립했고 운영도 내부 연구소 기금으로만 운영되고 절대 정부 자금이 포함된 외부 출연금은 쓸 수 없게 장치가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은 개인, 단체들에게서 기부금 모금 활동을 해도 절대로 미국 정부를 상대로 보조금, 운영기금, 정부 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해 놓았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는 공적 영역이 아니라 사적 영역의 기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차라리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를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직에서 해고해 버렸다면 치졸하고 소인배라는 평가는 받을지언정, 사적으로 주어진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는 것이니까 문제가 덜했을 텐데, 오펜하이머에게서 원자력 기밀 취급 인가 권한(Q-Classification)을 박탈하면서 미 정부의 공적 기관인 AEC의 의장직을 이용해 사적 복수에 공적 권력을 남용한 것이다.

  • 영화 막바지에 스트로스의 장관 인준을 좌절시킨 상원의원으로 언급되는 이름이 존 F. 케네디로 나온 것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있지만, 영어 위키백과의 스트로스 항목이나 오펜하이머 평전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다. 당시 상원 표결에서 46-49의 불과 3표차로 부결되었는데, 이때 부결 표에 JFK뿐만 아니라 LBJ도 있었다고. 즉 스트로스는 향후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두 명에게서 자신의 행보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이다. 후에 에드워드 텔러의 추천을 받아 오펜하이머에게 페르미상 수여를 결정한 것도 JFK였는데, 정작 시상식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케네디가 댈러스에서 암살당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페르미상 수여식 당일에 오펜하이머 부부는 재키 케네디와 따로 만남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재키는 JFK가 생전에 오펜하이머를 높게 평가했음을 알려주었으며 이 말을 들은 오펜하이머는 매우 깊은 감동을 받았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JFK는 사실상 오펜하이머의 생전 마지막으로 그를 인정해 주었던 정계 인사였던 셈이다. 케네디처럼 스트로스에 반대표를 던졌던 린든 존슨 역시 대통령이 된 직후 오펜하이머에게 직접 페르미상을 수여하는 역할까지 했지만, 대신 이듬해부터 페르미상의 상금을 절반으로 깎아버린다.

  • 영화에서 오펜하이머가 어항같은 유리그릇에 구슬을 하나씩 채워나가는 장면이 간헐적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폭발을 일으킬 원료인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의미한다. 폭발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임계질량까지의 원자들이 필요한데 그것을 시각적 모형으로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없으므로 영화의 시각적 장치로 보면 될 것이다. #

  •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인한 현장의 모습은 묘사되지 않는다. 원폭 투하 후 모습을 담은 자료 영상을 오펜하이머와 관계자들이 시청하며 설명을 듣는 모습은 나온지만, 카메라의 포커스는 오펜하이머에게 맞춰져 있으며 설명도 '히로시마 시내에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했다' 정도로 간략하게 묘사한다.

4. 평론가 심층 분석과 해설영상[편집]


  • 이동진 평론가는 파이아키아 해설 영상과 2023년 8월 25일 열린 오펜하이머 GV에서 오펜하이머가 비범한 자에서 전쟁 이후 평범한 자로 전락하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는 컬러 장면에 해당하는 '1. 핵분열' 장면들의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핵폭발을 일으키는 원소 우라늄235에 빗댔고, '2. 핵융합' 장면의 스트로스는 수소폭탄의 핵폭발을 일으키기 위한 수소에 빗댔다. 정제가 필요한 우라늄235와 달리 수소는 우주에 널린 흔한 물질이라는 과학적 사실이 스트로스는 평범한 사람이고 반대로 오펜하이머는 비범한 자라는 메타포가 되기도 한다는 것. 즉 오펜하이머 영화는 비범한 자(오펜하이머)와 평범한 자(스트로스)의 대결과 같은데, 이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지만 놀란 감독은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의 행동방식을 유사하게 표현함으로서(청문회로 몰락하는 점 등) 같은 듯 다른 두 주인공의 대립 구도로 영화를 짜고 있다. 따라서 영화는 두 번의 청문회를 통해, 비범한 자와 평범한 자가 각자 분열의 연쇄로 핵폭발을 일으키는 과정에 비견될 수 있다고 해설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이어지는 영화의 엔딩씬은 오펜하이머가 자신이 비범한 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 순간이라고 요약했다.




[1]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오펜하이머의 핵무기 개발 성공과 그 후의 그의 인생을 곱씹어 보면 의미심장한 말이다.[2] 물리학계에서는 이론물리학자들이 물리학 실험에 상대적으로 서투르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미지가 있다. 볼프강 에른스트 파울리의 경우 아예 그가 실험실에 들어가기만 해도 장비가 고장나거나 망가진다는 파울리 효과라는 용어까지 있었을 정도. 물론 이는 극단적인 사례이자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없는 일화에 불과하며, 대다수의 훌륭한 이론물리학자들은 실험에도 능하다. 다만 실험물리학자에게 요구되는 학자로서의 미덕이 이론물리학자와 다소 다르기에, 영화에서 묘사되는 수준의 서투름은 특히 대학원 과정 이론 전공자라면 (다소 과장이 있기는 해도) 아예 납득이 가지 않는 수준까지는 아니다.[3] 실험실에서 망신을 당하자 홧김에 교탁에 있던 사과에 시안화칼륨(청산가리)을 주사했지만 교수가 독사과를 먹기 직전 벌레가 먹은 사과라면서 사과를 잡아 쓰레기통에 넣어 독살은 발생하지 않게 된다. 다만 영화에서는 지도교수 대신 닐스 보어가 사과를 집어들면서 오펜하이머가 평생 정신적 스승으로 모시게 될 인물을 우연히 죽일 뻔한 것으로 각색되었다.[4] 이때 의무방어전에 가까운 관계를 하던 중에 진 태틀록이 오펜하이머에게 바가바드 기타의 유명한 구절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였다.'를 읽어달라고 요구하는데, 사실 이 장면은 복선이다. 오펜하이머가 인류에게 핵폭탄을 부여함으로써 죽음이자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면, 태틀록은 스스로 죽음으로써 오펜하이머의 인생에 파괴적인 고통을 부여하게 된다.[5] 이 때 밝아보여야 할 분위기와 별개로 핵폭탄이 폭발한 것처럼 주위가 매우 밝아지고, 여성 연구원 한 명의 피부가 벗겨지고, 원자폭탄의 여파가 밀려오는 듯한 묘사, 불탄 시체를 밟은 오펜하이머 자신, 슬퍼하는 사람들, 구토하는 연구원 등 공포스러운 비유적 연출을 볼 수 있다.[6] "각하, 제 손에는 피가 묻어있는 것 같습니다."라는 오펜하이머의 말에 트루먼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에 관해선 여러 설이 있는데, 영화에서는 손수건을 꺼내 손에 묻은 피나 닦으라는 듯 내미는 식으로 묘사되었다. 그 이후 화가 난 트루먼이 하는 말들은 실제 기록과 동일하다.[7] 원래 트루먼은 부통령으로 재임하다가 원폭 몇 달 전에 루스벨트의 사망으로 갑작스럽게 대통령이 된 상황인데다가 그 전까진 기밀이라서 알지도 못했던 맨해튼 계획을 보고받고 신속히 전쟁을 끝내 더 이상의 불필요한 병력 손실을 막겠다는 목적으로 원폭 투하를 명령했으며, 미국인들의 목숨을 구했다며 오펜하이머를 치켜 세워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오펜하이머의 발언이 자신의 결단을 무고한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적 학살로 비난한 것처럼 여겨져 불쾌해했던 것이다. 물론, 애국심이 강한 오펜하이머가 자국 군인들을 작정하고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트루먼 본인뿐만 아니라 트루먼의 명령에 따라 일본의 극악무도한 전쟁범죄와 테러로부터 자국인 미국과 전 세계를 구하기 위해 기어이 총대를 매고 투하 작전을 이행한 에놀라 게이의 파일럿 폴 티비츠를 비롯한 군인들까지 한낱 악랄하고 잔혹한 학살자이자 전범 집단으로 비난하는 뉘앙스로도 볼 수 있었다.[8] 이 장면은 1959년 시점 스트로스의 청문회에서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에게 패하는 장면과 교차되며 묘사된다.[9] 스트로스와 자문위원은 핵무기에 대한 입장이 달랐던 힐이 앞서 호출된 텔러와 마찬가지로 오펜하이머에 대한 불리한 증언을 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10] 영화 상에서 힐은 오펜하이머랑 2번 만나는데, 처음 만났을 때 오펜하이머는 이런 것까지 받아적지 말라고 펜과 클립보드를 치우게 하고, 두 번째로 만났을 때도 힐과 그의 스승인 레오 실라르드가 제안한 핵무기 반대 서명안을 거절하며 또 힐이 건낸 서명안을 강하게 쳐내 서명안과 펜이 떨어져 줍게 만들기까지 한다. 이런 사건들 때문에 영화상에서는 마치 힐이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를 고발할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가 가장 강하게 오펜하이머를 옹호하는 것이 소소한 반전요소. 정말 소수의 사람만이 오펜하이머를 감싸주고 대부분의 친구들마저 마지못해 중립적인 발언을 하는 등 오펜하이머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했지만, 정작 버니바 부시는 논리적이고 단호한 어조로 오펜하이머의 비공개 청문회에서 그를 변호했고 힐의 증언은 스트로스를 패배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11] 물론 힐에게는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를 공격했다는 직접적인 물증은 없었다. 하지만 스트로스가 그토록 강조했던 것처럼 법정과 달리 청문회에선 입증 책임이 없다. 스트로스를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라 몰아내려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즉 스트로스 자신이 오펜하이머를 몰락시킬 때 썼던 방법과 똑같은 방식으로 본인 역시 몰락하게 된 것이다.[12] 참고로 원작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미리 읽어보고 영화를 보았던 사람들조차 영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힐의 존재가 낯설었을 텐데, 사실 해당 책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힐 부분은 놀란 감독이 따로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나서 각본에 포함시킨 것으로, 그만큼 놀란 감독이 얼마나 방대하게 조사를 했는지를 알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놀란 감독은 데이비드 힐 박사가 스트로스의 진실을 까발리는 당시 증언 기록을 보고 나서 비로소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와 함께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13] 보좌관은 반대표 3개 중 하나가 (당시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이었던) 존 F. 케네디의 것이었다고 언급한다. 또한 영화에서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해당 반대표에는 린든 B. 존슨도 포함되어 있었다. 훗날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두 사람이 스트로스 장관 임명 반대표를 던진 셈이다.[14] 그 말은 역으로 받아들이면 "그 두 지성인이자 세기의 천재들에게 당신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로 해석할 수도 있으니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상당히 모욕적인 말이다. 보좌관도 처음엔 스트로스에게 청문회는 통과의례일 뿐이니 긴장하지 말라고 위로도 해주고 마지막까지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지만, 오펜하이머를 향한 스트로스의 치졸한 복수심과 교활한 처세술을 접하면서 점점 따져묻기도 하면서 그에게 실망해가는 모습을 보였다.[15] 이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보좌관에게 미친듯이 오펜하이머에 대한 열등감과 그에게 자신이 가한 짓에 대한 합리화를 연발해대며 울분을 쏟아내고, 이후에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가 방문을 열고 기자들을 맞이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하여 만면에 미소를 띄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연기력이 압권이다. 진정한 현실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16] 당시 오펜하이머의 페르미 상 수상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명의로 발표되었지만, 수상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케네디가 댈러스에서 암살당하면서 후임자인 존슨이 상을 전달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원작에 따르면 케네디 암살 소식을 들은 오펜하이머는 루스벨트가 죽었을 때만큼이나 큰 충격을 받고 좌절했다고 한다.[17] 텔러는 오펜하이머보다 바로 앞선 1962년에 페르미상을 받았는데, 오펜하이머를 다음 수상자로 추천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이 화해하게 된 셈. 하지만 오펜하이머와 함께 청문회에서 고초를 겪은 부인 키티는 여전히 텔러를 용서하지 못하고 대놓고 팔짱을 끼며 그와의 악수를 거부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모욕을 당한 셈이지만 텔러 본인조차 워낙 지어놓은 죄가 크다보니 화를 내거나 변명하긴커녕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이 장면에서 대사 없이 표정만으로 한껏 경멸감을 드러내는 에밀리 블런트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다.[18] 아래 두 사람의 대화는 영화적 창작이지만 역사에 대입하면 1954년 오펜하이머의 청문회 당시에 나누는 대화로, 영화 내에서 시간 대상으로 오펜하이머-아인슈타인의 3번째이자 마지막 만남이다.[19] Kangaroo court, 권위도 없고 법률 규정을 지키지도 않는 엉터리 재판의 은어. 일명 인민재판과 같은 말이다. 영화 자막에서는 마녀사냥으로 번역되었다.[20] 아인슈타인은 유대인이란 이유만으로 독일에서의 모든 직위, 재산, 명성을 빼앗기고 미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다행히 미국에서 새로운 기반은 잡았지만 기본적으로 아인슈타인은 국가, 정부, 군대 같은 집단이나 조직에 그닥 좋은 감정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 때의 상황은 매카시즘의 광풍 탓에 소위 빨갱이 사냥이 극에 달하고 있던 1950년도 중반이다. 실제 아인슈타인은 이때 곤경에 처한 오펜하이머에게 "그냥 사직서 던져버리고 버클리나 칼텍으로 돌아가서 교수직을 맡으며 기회 잘 잡아서 재기하는 것이 훨씬 낫다"라는 조언들을 해주었다고 한다. 오펜하이머에게 이런 굴욕과 모욕까지 참아가면서 국가 원자력 위원회 자리와 원자력 보안 등급은 얻는 건 크게 의미없다는 의미로, 조선 시대 같으면 사직하고 낙향하여 고향에서 후계자들을 양성하고 다시 기회를 보란 소리나 똑같다.[21] 당시 아인슈타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오펜하이머가 이런 엄청난 고초를 겪으면서 결국 스스로 무너질 거라고 걱정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은 나치들에게 당할 만큼 당해서 코끼리 가죽만큼이나 피부가 두꺼워서 저들이 공격한다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정도로 단련이 되어있지만 오펜하이머는 그렇지 못한 여린 감수성을 지녔다고 보고 걱정한 것이다.[22] 그도 그럴 것이 아인슈타인 등은 유럽에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경우지만, 오펜하이머는 태어날 때부터 미국인이었다.[23] 실제 역사에서는 오펜하이머와 친분이 있던 외교관 조지 케넌(주소련 대사를 역임했으며, 2차 대전 직후 대소련 봉쇄 정책을 주창하며 냉전기 미국 대외정책 노선 수립에 큰 영향을 준 거물급 외교관)이 "외국 대학에서는 자네를 환영할 테니 고초를 피해 외국 교수로 부임하는 게 어떠냐" 고 제안했고, 이에 대해 오펜하이머가 이 대사를 눈물과 함께 읊으며 완곡하게 거절한다.[24] 이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의 만남 역시 놀란 감독의 영화적 허구이다. 이 배경은 당시 역사적 사실로 보자면 2차 대전 이후 40년대 말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으로 오펜하이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를 프린스턴으로 초대할 때이다. 즉 프린스턴에서 아인슈타인과의 만남은 시간상으로 영화 내에서 2번째에 해당한다.[25] 양자역학의 선구자들.[26] 상대성 이론, 특히 광전효과 이론이 양자역학을 태동시킨 것을 의미한다.[27] 비록 오펜하이머가 페르미 상을 받은 시점(1963년)에서 아인슈타인은 이미 사망(1955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의 예측이 들어맞은 셈이 되었다.[28] 맨해튼 계획이 가동되려 할 때 둘은 같은 장소인 프린스턴에서 잠깐 만난 적이 있었다. 이것이 영화 내 두 사람의 첫 번째 만남.[29] 즉 단일 원자폭탄의 '핵분열의 연쇄 반응이 끝나지 않고 지구 대기가 폭발할 수도 있을까'라는 과학적 근거론의 대화에서, 원자폭탄이 일단 만들어지자 그걸 계기로 보다 많은 나라들이 원자폭탄의 개발, 보유에 연쇄적으로 뛰어드는 '핵무기 경쟁(nuclear arms race)'과 '핵확산(nuclear proliferation)'의 시대가 도래하여, 말 그대로 핵전쟁이 일어나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현실로 만들게 되었다고 오펜하이머는 말한다. 자연반응에 의한 연쇄반응은 다행히 없었지만 인간 자체가 그 연쇄반응이 되어 버린 것. 그리고 그의 말대로 냉전 때는 경쟁이 극에 달한다.[30] 오펜하이머의 마지막 말을 들은 아인슈타인은 섬뜩함을 느끼고 얼굴이 창백해져서 돌아가는데 마침 다가오는 스트로스도 무시하고 쌩 지나친다. 이것이 영화 초반부에서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에 대해 오해와 앙심을 품게 된 계기가 된다.[31] 이 장면으로 영화의 주요 서사를 담당하는 스트로스의 오펜하이머를 향한 복수와 파멸의 모든 원인이 한낱 사소한 착각자격지심에서 비롯됐음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다. 스트로스는 자신이 상무장관 상원 청문회에서 떨어진 것이 오펜하이머가 과학계를 대표하는 아인슈타인에게 자신에 대한 험담을 했다는 오해에서 기인한 것이라며 오펜하이머를 파멸로 몰아간다. 그러나 보좌관의 말대로 정작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은 스트로스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학적 발견과 연구가 상상하지도 못할 어두운 미래를 현실로 만들었다는 것에 서로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감추지 못하며 헤어졌던 것뿐이다. 스트로스는 이런 그들에 비하면 그저 출세나 영달을 바라는 소인배에 지나지 않았던 것. 다만 실존인물의 명예를 위해 첨언하자면 해당 오해는 영화의 창작이다.[32] 미국의 학문은 동부의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주요 전통적인 대학들이 이끌었고, 여기서 육성된 엘리트들이 미국을 이끌어나갔다. 이를 파고 들며 유럽의 인재를 끌어오며 성장한게 록펠러나 포드 재단 등 대기업들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시카고 대학을 비롯한 미 중부 지역. 이에 비하면 미 서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었다가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지원을 대폭적으로 받으며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40년대엔 괄목할 성장을 이루게 된다.[33] 어렸을 적 학교에 입학할 때 아버지가 입학 신청서에 이름을 그렇게 적어놔서, 그때부터 친구들에게 이 이름으로 소개했다.[34] 심지어 라비 박사는 1944년 그가 연구한 자기 공명에 대한 이론으로 노벨물리학상까지 받았다. 오늘날 MRI가 탄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라비 박사의 자기 공명 이론이 엄청난 공헌을 했다.[35] 기밀해제 이후에도 이 대목에는 검게 잉크칠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보 보호 소송 결과 해당 란에는 표현과 같이 '일련의 슈퍼 폭탄'이라고 발언했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이는 핵융합 수소폭탄을 의미한다.[36] 심지어 그는 초기 오펜하이머의 버클리 시절 친한 친구였다.[37] 비슷한 사례로 같은 시기 할리우드에서 영화감독 엘리아 카잔이 동료 영화인들을 공산주의자 혐의로 고발했던 바 있다. 이때 일로 카잔은 감독으로서 <에덴의 동쪽>, <워터프론트> 등 다수의 명작들을 남긴 업적이 있음에도 두고두고 영화계의 지탄을 받았다. 오죽하면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는데도 장내 분위기가 대체로 싸늘했을 정도였다.[38] 맨해튼 계획 내에서 이론 개발 부서.[39] 영화 내에서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의 이 만남이 시간상으로 첫 번째 만남이다.[40] 오스트리아 출신 수학, 철학 그리고 컴퓨터과학을 다른 학자였다.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조국 오스트리아에서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탈출했으며 그 과정에서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 학자들의 도음을 많이 받았다. 이를 계기로 아인슈타인과는 개인적 친분을 나눈 몇 안되는 학자였다.[41] 오펜하이머가 텔러의 지구 멸망 가설식을 현실성이 없고 아인슈타인이 오류를 지적해주기를 바랬지만 오히려 아인슈타인은 이 가설로 인해 지구가 멸망할 대재앙이 생긴다면 적에게도 알려주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것이 당연한 과학자의 해야 할 일이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오펜하이머에겐 이때까지의 자산의 연구과 업적을 부정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큰 충격을 받는 표정이었다.[42] 이때 가설식을 돌려받는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의 표정은 대비되는데 오펜하이머는 해당 가설식이 입증된다면 지금 진행하는 맨해튼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되고 인생 목적을 잃게 되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인류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핵폭탄이 아닌 다른 그 무엇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처음부터 나치가 원자폭탄을 개발한다는 이유로 미국도 원자폭탄을 개발하자고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까지 보낸 아인슈타인이지만 그 원자폭탄이 나치를 이기는 무기이기는커녕 지구상 모든 인류를 말살해 버릴지도 모르는 가능성에 주저하지 않고 원자폭탄을 포기하는 냉정한 태도가 교차되어 묘한 대비를 보여주었던 것이다.[43] 출처: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44] 당시 로스앨러모스에서 오펜하이머에 이은 2인자인 부소장직을 역임했다. 영화에서는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의 시카고 원자로(일명 "시카고 파일1")방문 금지 명령을 어기고 오펜하이머와 함께 방문하고 이 때문에 문책을 받자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사직해버리지만 실재로는 부임 초기부터 에드워드 콘던은 과거 좌익 행적에 대한 의심으로 보안 인가 허가가 나오지 않던 상태여서 정상적인 개발 업무가 불가능했다.[45] 딘 애치슨 국무부장관이 참석했다는 주장도 있다.[46] 당시 백악관 방문 기록.[47] 맨해튼 계획 초기 단계에서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 수립시 연구소 부지는 대부분 전시 체제에서 국가가 토지소유권을 전부 강제 수용하여 세워졌다. 대부분의 광활한 뉴멕시코 로스 앨러모스 지역은 그 당시에는 인디언 원주민들, 그리고 개척민들의 농장, 목장, 가축 사육장 등만이 있을 뿐이었다. 더군다나 트리니티 핵실험 날짜와 장소가 정해지고선 일주일도 안 돼 미 육군은 해당 트리니티 실험 예정지 반경 주변의 모든 목장, 농장 등으로 우르르 달려가 군사 작전 중이니 위험하다면서 아예 쫓아내다시피 해당 지역에서 이주시켜 버렸다. 그리고 나중에 토지를 국가 수용해 버리는데 이때에 생활 터전을 한순간에 잃고 길거리로 나앉는 당시 지역 주민들의 규모도 상당한 편이었다.[48] 파인만은 무용수와 함께 세계 대회에 나가서 봉고 드럼을 연주해 2위를 차지할 정도의 실력자였다.[49] 참고. 본래는 B-29라는 설이 있었는데 B-29는 유럽 전선에는 투입된 적이 없기에 사실이라면 오류가 되었을 것이다.[50] 물론 V2는 미사일이 아니라 탄도 로켓에 가깝지만, 영화 막바지에 보여주는 로켓들의 모습과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로켓운의 모습은 ICBM으로 대표되는 냉전과 군비경쟁에 대한 경계에 가깝다.[51] 저각~고각 발사 각도 조절 시.[52]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의 경우에는 산소를 추진체로 쓰는 경우도 있다.[53] 페르미는 맨해튼 계획에서 원자로 개발을 주도하여 플루토늄 생산에 기여했고,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54] 매카시즘에 의해 자행된 오펜하이머에게 가해졌던 정치적 박해로부터 오펜하이머는 죄가 없다는 정치적 사면 및 복권.[55] 다만 오펜하이머가 영화 개봉 반년 전에 사면되어 복권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메시지가 의도치 않게 빛이 바랬다.[56] 출처 :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 5부 38장》.[57] 오펜하이머 주변 인물들은 오펜하이머와 키티의 양육방식에 회의적인 평가가 많았다고 한다. 오펜하이머에게 자행된 매카시즘에 분노하고 오펜하이머 편에 섰던 전임 AEC 의장 릴리엔탈은 "오펜하이머가 자녀들의 인생을 망쳐버린 거나 다름없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소심하고 예민한 청소년기 성격을 보인 첫째 피터 오펜하이머는 유독 어머니인 키티의 간섭을 받으며 컸지만 이러한 모자 갈등을 오펜하이머는 전혀 수습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방관하였다고 한다. 또한 1958년 미국을 떠나 프랑스의 교환 교수직으로 1년간 미국을 떠나게 된 오펜하이머는 딸 토니는 데려갔지만 아들 피터 오펜하이머는 기숙학교에 놔둔 채 교환교수직으로 파리로 떠났으며, 오펜하이머의 지인들은 모두 그 결정을 만류하였으나 오펜하이머는 듣지 않았다고 한다.[58] 화장한 재를 바다에 뿌린 게 아닌 시신을 화장하여 넣은 항아리 채로 바닷속에 가라앉혔다고 한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무덤을 이렇게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생전 부인인 키티에게 부탁했다고 한다.[59] 미 FAS는 지금도 핵무기와 관련 정책 연구에서 상당한 전문성, 권위를 인정받는다. 지난 2015년 한국 핵무장론의 기술적 가능성을 제기해 주목을 받은 찰스 퍼거슨도 FAS 회장이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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