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계몽주의

덤프버전 :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계몽주의




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스코틀랜드 계몽주의(Scottish Enlightenment)

18세기 스코틀랜드에서 발현된 계몽주의 사조. 당대 스코틀랜드 대학을 나온 철학자, 과학자, 예술가, 교수 등 다양한 인사들이 동참했으며 대표적인 인물로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흄[1], 조지프 블랙, 대니얼 러더퍼드, 애덤 퍼거슨 등이 있다.

보통 계몽주의라고 하면 프랑스 계몽주의를 일컫지만, 넓은 의미로는 프랑스 계몽주의로부터 지역적으로 파생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독일 계몽주의 등을 포함하기도 한다.[2]


2. 상세[편집]


18세기 스코틀랜드는 전 국민의 문맹률이 25%일 정도로 유럽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지역이었다. 또 경제도 빠르게 성장하여 18세가 초만 해도 잉글랜드에 비해 확연히 뒤떨어졌던 경제가 크게 성장하여 아메리카 및 프랑스와의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그 결과 담배 산업과 은행업 등이 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사회간접자본이 건설되었고, 이렇게 경제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또 스코틀랜드는 당시 잉글랜드에 대학이 달랑 두 개밖에 없던 데에 비해 5개의 대학을 갖추고 있었으며, 귀족과 지주 등 상류층들에게 필수적으로 학교를 다니게 했다. 이런 학교들에서는 청교도 교리에 기반한 인재를 양성시켰고, 수학, 경제학, 과학 등의 학문들을 집중적으로 교육함으로써 곳곳에서 한창 떠오르고 있던 계몽주의 서적 및 자료들이 당시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시작해 애버딘 대학교, 글래스고 대학교,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 등에 다니는 학생들과 교수들, 그리고 동문들을 통해 스코틀랜드 전역으로 자연스레 보급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읽을 수 있는 덕분에 수많은 학생들과 학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사상이 퍼져 나갈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에든버러를 중심으로 프랑스의 살롱처럼 스코틀랜드 명사회와 같이 새로운 지식과 견해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교류를 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고, 건축학, 고고학, 공학, 경제학, 의학 등 다방면의 학문적 성장을 이룩했다. 덕분에 스코틀랜드는 상호적인 교류를 주고 받으며 지대한 발전을 일구었고 유럽 여러 지역뿐만 아니라 미국과 같은 당시 신흥 국가까지 영향을 미쳤다.

[1] 데이비드 흄이 계몽운동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철학으로만 따지면 '계몽주의'에 속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철학으로서의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는데, 데이비드 흄은 철학적으로는 이성보다 정념(감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으로 분류할 때는 계몽주의보다 경험주의로 분류된다.[2] 애초에 프랑스 계몽주의 자체가 영국의 뉴턴, 로크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일어난 프랑스 엘리트들의 지적 사회 운동이고,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는 다시 프랑스 계몽주의 영향을 받아서 일어난 운동인 것. 데이비드 흄이 프랑스 계몽주의자들과 영향을 주고 받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0 05:07:01에 나무위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