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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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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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종의 후궁
숙의 기씨 | 淑儀 奇氏

사망
1457년 7월 13일(음력 6월 13일)
본관
행주(幸州)

자재(自在)
부모
부친 - 기면(奇勉)
모친 - 청풍 김씨
배우자
정종
자녀
슬하 4남 2녀 [ 펼치기 · 접기 ]
장남 - 순평군(順平君, 1392 ~ 1456)
차남 - 금평군(錦平君, ? ~ 1435)
3남 - 정석군(貞石君, 1409 ~ 1464)
4남 - 무림군(茂林君, 1419 ~ 1475)
장녀 - 숙신옹주(淑愼翁主)
차녀 - 상원옹주(祥原翁主)

봉작
숙의(淑儀)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조선 정종후궁이다. 본관은 행주이며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기면(奇勉)의 딸이다. 정무공(貞武公) 기건(奇虔)의 누이로, 이름은 기자재(奇自在)이다. 슬하에 순평군 이군생, 금평군 이의생, 정석군 이융생, 무림군 이선생을 비롯해 숙신옹주상원옹주를 낳아 4남 2녀를 두었다.[1]

본래 공안부(恭安府)[2] 궁인 출신으로 태종이 영구히 양인(良人)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3]

상왕(上王)의 궁인(宮人) 가운데 이름이 자재(自在)라는 자가 있는데, 공안부(恭安府) 여종이었다. 상왕이 불쌍히 여겨 임금에게 부탁하여 왕패(王牌)를 주어 영구히 양인(良人)으로 방면(放免)하도록 하였다. 대개 상왕에게 총애를 받아 자녀 여덟을 낳았는데, 이군생(李群生)이 그 맏이다.

태종실록》 태종 9년 4월 7일


숙의 기씨(淑儀 奇氏)의 부친(父親)인 기면(奇勉)은 고려조(高麗朝) 권문세족인 기중평(奇仲平)의 아들이며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냈다. 기면(奇勉)의 외조모(外祖母)는 고려조(高麗朝) 태자태사(太子太師)를 지낸 진위 이씨(振威 李氏) 이중육(李仲育)의 딸이다.


2. 생애[편집]


정종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정종이 특별히 태종에게 부탁한 덕분에 면천된 데다가 《선원록》에 실린 정종의 15남 8녀 중 4남 2녀를 낳아 가장 많은 자식을 낳았다.

1457년(세조 3)에 죽었는데, 당시 세조는 쌀과 콩 20석과 종이 70권(卷)과 관곽(棺槨)을 부조하였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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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앞서 《태종실록》에서는 자녀가 여덟이라고 하였으나 밝혀진 4남 2녀 외의 다른 자녀들은 어린 나이에 요절한 것으로 보인다. [2] 상왕 정종에 대한 공봉(供奉)과 그 밖의 모든 사무를 맡아 보게 한 부서. [3] 행주 기씨 측의 기록을 따르면, 기면(奇勉)의 딸이자 정무공(貞武公) 기건(奇虔)의 누이라고 한다. 양인으로 삼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정실 부인의 딸이 아니라 추정된다. [4] 세조실록 8권, 세조 3년 6월 13일 을사 3번째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