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용 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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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 연산군의 후궁. 연산군의 총애를 받았으며, 또한 연산군의 많은 여자들 중 그를 이해한 후궁이었다. 중종반정이 일어나기 열흘 전에 연산군이 후원에서 노닐다가 "인생은 초로와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는 것"이라고 읊자 장녹수와 더불어 유일하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2. 생애[편집]
1505년(연산군 11) 숙원에서 숙용(淑容)으로 품계가 올랐다. 이러한 기록으로 볼 때, 이미 그 전에 연산군의 후궁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1]
연산군 재위 기간 동안 다른 후궁들과 마찬가지로 부정부패의 온상이었다. 달성군 서거정의 서자 서복경(徐福慶)[2] 은 그녀에게 뇌물을 주고 벼슬을 얻었고[3] , 외삼촌인 전동(田同)은 조카딸의 권력을 믿고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고 횡포를 부리는데 오히려 지방 수령들은 전동을 접대하며 잘 보이려고 노력하였다.[4] 그러나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이 일어나면서 연산군이 폐위되자 권세를 잃고 몰락하여 장녹수, 김귀비 등과 함께 군기시 앞에서 참수되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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