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세리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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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세리스 1세
Viserys I Targaryen


이름
비세리스 타르가르옌 1세 (Viserys I Targaryen)
가문
타르가르옌 가문
생몰년
AC 77 ~ AC 129
재위
AC 103 ~ AC 129
부모
아버지 바엘론 타르가르옌, 어머니 알리사 타르가르옌
형제
다에몬 타르가르옌[1]
배우자
아에마 아린[2]
알리센트 하이타워
아들
아에곤 2세, 아에몬드 타르가르옌, 다에론 타르가르옌[3]

라에니라 타르가르옌[4], 헬라에나 타르가르옌[5]
별명
젊은 왕 (The Young KIng)
드래곤
발레리온[6]

1. 개요
2. 행적
2.1. 왕자 시절
2.2. 집권 초중기
2.3. 두번째 결혼
2.4. 후기
4. 평가 및 기타



1. 개요[편집]


타르가르옌 왕조의 5대 왕이자 재해리스 1세의 손자. 아버지는 재해리스 1세의 삼남 바엘론 타르가르옌, 모친은 재해리스 1세의 차녀 알리사 타르가르옌.

젊은 시절에 즉위해 젊은 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현명한 정치로 타르가르옌 왕조의 최전성기를 통치하여 칠왕국을 번영시킨 왕이었지만, 동시에 의도치 않게 실책을 연달아 저질러[7] 몰락의 길을 마련한 왕이기도 하다.


2. 행적[편집]



2.1. 왕자 시절[편집]


비세리스는 재해리스 1세의 삼남[8] 바엘론 왕자와 차녀 알리사 공주의 세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9] 이후 4살 때 동생 다에몬 타르가르옌이 태어났다. 그러나 고작 7살 때 어머니 알리사가 둘째 동생 아에곤을 낳고 산욕열로 사망했으며, 동생 아에곤마저 1년도 되지않아 요절하는 슬픔을 겪었다. 이에 아버지 바엘론은 평생동안 재혼하지도 않고 남은 아들들인 비세리스와 다에몬을 애지중지하며 홀로 키웠다.

이후 원래 할아버지의 후계자였던 백부 아에몬 왕자타스로 쳐들어온 해적들을 진압하던 중 석궁에 맞아 전사한 후, 안달족의 전통적인 계승법을 따르자면 아에몬 왕자의 외동딸인 라에니스 타르가르옌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후계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재해리스 1세는 라에니스 대신 바엘론을 후계자로 선택했으며 나중에는 칠왕국수관으로 임명하기까지 했다. 이에 할머니 알리산느 왕비가 라에니스의 후계자 박탈에 분노하며 재해리스 1세와 후계 문제로 다투는 등,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비세리스는 후계자의 장남이라는 위치에 있게 되어 바엘론이 무사히 즉위한다면 차기 국왕이 될 것으로 확실시되었다.

하지만 바엘론 왕자는 사냥 도중 입은 상처가 도져 아버지 재해리스 1세보다 이른 죽음을 맞이했다. 남은 재해리스 1세의 아들들은 모조리 죽거나 계승권을 잃거나 아예 관심이 없어져버려[10] 분명한 후계자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계승법의 원칙으로 돌아가자면 장남부터 아래로 맏이에 해당하는 라에니스가 왕위를 이어받는 것이 합당하지만, 후계자로서의 입지가 확고했던 바엘론의 맏아들 비세리스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재해리스 1세는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 주는 대신 AC 101년 대협의회를 열어 온 나라의 영주들과 함께 후계자를 결정하려 했다. 주요 후보는 비세리스 왕자, 그리고 라에니스가 코를리스 벨라리온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인 라에노르 벨라리온이었다. 대협의회에서 비세리스는 참석한 영주들 대다수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재해리스는 이를 받아들여 비세리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공표한다. 이후 재해리스는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하고 비세리스는 칠왕국의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한다.

왕자 시절이였던 AC 93인 16살 때 사촌인 아린 가문아에마 아린[11] 첫번째 결혼을 하고, AC 97년에 딸 라에니라 타르가르옌 공주를 얻는다.


2.2. 집권 초중기[편집]


비세리스가 재임할 때 타르가르옌 왕조의 칠왕국은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비세리스는 자신의 할아버지의 정책과 모토를 그대로 잘 계승하여 선정을 베풀어 나라를 번영시켜 귀족과 백성들에게 사랑받는 왕이 되었다. 이때 칠왕국의 귀족들과 백성들은 앞날을 두려워하지 않고, 밝은 미래를 꿈꾸었으며 발리리아 멸망 이후 개체수가 급감했던 드래곤들도 그 수가 스물을 넘었을 정도였다.

또한 비세리스 1세의 궁전인 레드 킵은 매우 호화롭고 아릅답기로 유명했다. 특히 비세리스는 자신의 하나뿐인 딸 라에니라를 매우 총애했다. 라에니라가 8살이 되던 해에 그녀를 왕실 술 담당관[12]에 임명하고, 토너먼트와 축제 연회 등에 항상 자신의 딸을 옆에 두고 같이 참석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때 라에니라 공주는 칠왕국을 '행복의 나라'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비세리스가 총애하는 동생 다에몬 왕자가 형에겐 아들이 없으니, 자신에게 후계자 지위를 내려 왕위를 물려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평소 동생이 원하는건 뭐든지 들어주던 상냥한 형이던 비세리스도 이 요구에는 심히 당혹해하였다고 전해진다. 결국 비세리스는 이 요구를 무마시킬 겸 다에몬에게 소협의회 참석 권한과 킹스랜딩 도시경비대 지휘관직을 하사한다. 동시에 왕으로서 다에몬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선왕 재해리스의 수관이었던 오토 하이타워 경을 자신의 수관으로 임명해 서로 견제하게 한다.

이때문에 비세리스는 후계 논란을 종식시킬 아들을 갈구하게 되었고, 다행히 아에마 왕비가 AC 105년 아들 바엘론 왕자를 출산하였다. 하지만 아에마는 난산 도중 목숨을 잃었고 바로 다음날 바엘론 왕자마저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다에몬이 술자리에서 죽은 아들을 '하루살이 후계자'라며 패드립을 지껄인 사실을 보고받자[13] 격노하여 다에몬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그러나 문제는 비세리스가 선례와 신하들의 조언들도 끝까지 무시하고, 자신의 딸인 라에니라 공주를 후계자인 드래곤스톤 여공(Princess of Dragonstone)으로 공표하였다.

이에 다에몬은 반발하였지만 그가 워낙 인망이 없기에 다에몬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다에몬의 반발은 아무 소용없었다. 특히 건달 왕자로 악명 높던 다에몬보다는 선군인 비세리스의 딸이 낫다고 판단한 영주들과 기사들은 공주를 지지했다. 그래서 별다른 지지기반도 없던[14] 다에몬 왕자는 미친듯이 분노를 토해내며 수도를 떠났다. 어찌되었건 비세리스는 그녀를 자신의 후계로 성심성의껏 교육했으며 소협의회에도 참석시켜 정치를 배우게 하였다.


2.3. 두번째 결혼[편집]


아에마 아린이 산고로 인해 사망했을 때 비세리스 1세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는 젊은 나이었기에 주변의 권유로 재혼 상대를 물색한다. 이에 소협의회에서는 라에니스 공주의 딸 라에나 벨라리온과의 결혼을 조언하였다.

보통 비세리스는 소협의회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는 편이였지만 이번 일만큼은 본인이 주도하길 원했다. 라에나와의 결혼은 정치적으로 옳은 선택으로 여겨졌지만, 비세리스는 그간 눈여겨봤던 왕의 수관 오토 하이타워 경의 딸인 알리센트 하이타워와 결혼한다. 그리고 AC 106년 성대한 결혼식이 거행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라에니라 공주와 그녀의 계모가 된 알리센트 하이타워의 사이도 좋았고 모든 것이 잘 돌아갈 것처럼 보였다. 오직 동생 다에몬만이 불만을 가져 격렬한 항의를 담은 편지를 보내 반발하였으며 이로 인해 비세리스의 총애를 잃은 다에몬은 삼두정과 벌인 징검돌 군도 쟁탈전에서 비세리스 1세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얼마 안가 행복해 보였던 가정도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바로 알리센트가 AC 107년엔 아에곤 왕자를, 109년엔 헬라에나 공주를, 그리고 110년엔 아에몬드 왕자를, 114년엔 다에론 왕자를 연달아 낳은 것이다.

이에 왕의 장인이자 수관인 오토는 비세리스 1세에게 자신의 외손자인 아에곤 왕자가 후계가 되어야한다고 여러 차례 강력히 주장하였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왕위 계승에서 적이 된 라에니라와 알리센트의 관계는 파국을 맞이했다. 그러나 비세리스 1세는 후계를 바꾼다는 조칙을 내리지 않고 여전히 법적인 상속자는 아에곤 왕자가 아닌 라에니라 공주였다.[15]

외손자를 왕위에 올리고 후환을 막고자 수관 오토는 이를 강력히 추진했지만 왕이 자신의 말을 전혀 듣지 않자 화가 나서 협박까지 해대가며 왕을 겁박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에 분노한 비세리스는 오토를 파면하여, 올드타운으로 돌려보내고 새로이 라이오넬 스트롱 경을 수관으로 임명해버리고 만다. 덕분에 한동안은 후계 문제가 잠잠해질 것이라 보였으나 오히려 문제는 계속해서 심화되어가고 있었다.

남부의 명문가 출신 왕비인 알리센트는 자신의 세력을 동원해 아에곤 왕자를 지원하는 "왕자파"를 결성해 아에곤 왕자가 정당한 후계자라고 주장하고 다녔고, 이에 라에니라 공주는 "공주파"를 만들어 그녀 또한 자신의 세력을 동원해 왕비파와 치열하게 대립하였다. 이때 칠왕국에 대사를 파견한 브라보스, 볼란티스, 펜토스에는 궁정 내부의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한지에 대한 서신을 자국으로 보낸 기록이 있다.

그리고 AC 111년 토너먼트가 열리고, 이 토너먼트에 두 세력이 참가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런데 정작 우승한 사람은 왕비파도 공주파도 아닌 건달 왕자 다에몬이었다. 다에몬은 우승을 거머쥐고선 그 명예와 징검돌 군도의 왕관을 자신의 형제 비세리스와 새 아내인 알리센트에게 바쳤다. 그러나 그로부터 6개월 뒤 비세리스1세는 다에몬을 칠왕국에서 추방시켜버렸는데, 그랜드 마에스터 룬시터에 의하면 왕과의 대화 도중 다툼으로 인해 그리 된 것이라 하지만 몇몇 소문에 따르자면 다에몬이 라에니라의 처녀성을 앗아가서라는 얘기도 있다. 둘 중 뭐가 맞았던 간에 다에몬이 최악의 사고를 친 것은 맞으며 비세리스도 더는 참을수가 없어 처음엔 다에몬을 처형시키려고까지 했으나, 셉톤 유스테스가 친족살해의 죄는 그 무엇으로도 무마시킬 수 없다고 권고하자 결국 그냥 추방형으로 끝내고 만다[16]

그 후 비세리스 1세는 왕실 내부의 정쟁을 심각히 받아들이고 그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탕평책을 내놓는다. 모든 자식과 아내를 공평하게 사랑하여 서로 사이좋게 만들어 모두 윈윈해보자는 건데 안타깝게도 잘 먹히지 않았다.[17] 그리고 AC 113년 라에니라 공주가 16살이 되어 나이가 차자 왕과 소협의회는 라에니라와 결혼할 만한 신랑감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이때 알리센트 왕비가 아에곤 왕자와 라에니라 공주를 서로 결혼시켜야 한다며 압력을 넣는다. 알리센트의 제안은 대대로 남매가 혼인하는 타르가르옌 가문의 근친혼 전통과도 부합했고[18], 얼핏 공주파와 왕자파가 화합할 방법이기도 했지만 결국 이 계획은 비세리스 1세의 반대로 기각된다. 당시 아에곤 왕자는 라에니라 공주보다 10살이나 어린 6살밖에 안된 어린아이였고 두 이복남매는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았던데다가, 수관 라이오넬 스트롱이 이 혼인을 주장하는 알리센트 왕비의 목적이 바로 라에니라를 제치고 친아들인 아에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서라는 걸 알아냈기 때문이다.

결국 이 계획은 무산되고 소협의회는 라에니라와 드리프트마크의 후계자인 라에노르 벨라리온과의 결혼을 추진한다. 라에노르는 당대의 실력자 코를리스 벨라리온의 아들이자 재해리스 1세의 손녀인 라에니스 타르가르옌[19]의 아들이기도 했으며, 이 결혼은 비세리스로 인해 후계자에서 밀려난 라에니스 및 벨라리온 가문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는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라에노르는 어릴 때부터 여성에겐 별달리 관심이 없었고 결혼 얘기가 나돌기 훨씬 전부터 어린 나이의 종자와 연애질이나 하고있었던 등, 동성애자임이 거의 확실했다. 이 점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결혼을 추진한 그랜드 마에스터 멜로스는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나는 생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단 차려지면 먹는다"는 말로 우려를 일축했다. 라에니라 공주 또한 라에노르와의 결혼을 완강히 반대하여 이 일로 아버지와 크게 다투었으나[20] 결혼하지 않으면 후계자의 지위를 박탈하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결국 굴복한다. 하지만 결혼 후에도 라에니라 공주는 드래곤스톤에, 라에노르는 드리프트마크에 계속 머무르면서 서로를 소와 닭 보듯이 했고, 이 결혼에서 라에니라가 낳은 삼형제는 사생아라는 의혹이 당대에도 끊임없이 제기되었으며 실제로도 부부사이가 나쁜것을 감안하면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라에니라의 첫째 아들 자캐리스 벨라리온이 태어나던 시기에 비세리스는 알리센트로부터 막내아들 다에론을 얻는다. 비세리스는 공주파와 왕비파 사이의 대립을 어떻게든 완화시키기 위해 두 아기를 젖형제로 키운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동생인 다에몬도 라에노르의 누나 라에나 벨라리온과 결혼해[21] 쌍둥이 딸들인 바엘라라에나를 얻었다. 다에몬은 비세리스에게 쌍둥이들을 궁정으로 데려가 왕의 축복을 받게 해주고 싶다는 편지를 보낸다. 이에 라이오넬 스트롱과 소협의회는 반대했지만 비세리스는 다에몬도 아버지가 되었으니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이를 받아들였다.


2.4. 후기[편집]


AC 120년은 칠왕국의 많은 주요 인물들이 사망하여 붉은 봄의 해로 불렸다. 연초에는 다에몬 타르가르옌의 아내 라에나 벨라리온이 유산의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라에나의 장례식에서 아에몬드 타르가르옌 왕자는 강력한 드래곤 바가르를 얻었지만 라에니라의 세 아들들과 충돌해서, 한쪽 눈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로 라에니라 공주와 알리센트 왕비는 사이가 크게 나빠져 격렬하게 대립하였으며, 비세리스 왕은 둘 사이에서 애매한 태도를 보였고 손자들도 끝까지 처벌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비세리스는 라에니라의 아들들에게 제기된 사생아 의혹을 알게 되고 이와 관련된 하윈 스트롱 경을 드래곤스톤에서 쫓아내 하렌홀로 보내버린다. 이후 하렌홀의 원인불명의 화재 사고로 하윈 스트롱 경과 그의 아버지이자 수관인 라이오넬 스트롱 공이 사망한다. 그래서 비세리스는 새로운 수관으로 장인인 오토 하이타워를 다시 소환하였으며, 이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알리센트와 왕비파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라에니라의 남편 라에노르 벨라리온 또한 이 해에 사고로 사망하였으며, 이후 1년도 지나기 전에 라에니라 공주와 다에몬 타르가르옌은 비세리스 몰래 결혼하였다. 라에니라와 다에몬의 갑작스러운 재혼을 알게 된 비세리스 1세는 라에니라를 불러내서 두 사람의 남편과 부인이 세상을 떠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일찍 재혼하는 것은 고인들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크게 화를 내며 질책했다. 이로써 다에몬은 완전히 라에니라파로 자리잡았으며 조정 역시 두 쪽으로 갈라졌다.

AC 127년에 라에니라는 자신의 둘째 아들 루세리스를 드리프트마크의 후계자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고[22], 벨라리온 가문의 일부는 라에니라의 벨라리온 삼 형제들의 사생아 의혹을 제기하며 국왕인 비세리스에게 항의했다. 이때 비세리스는 침묵을 하며 듣고만 있다가 라에니라의 요구를 거부했고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의 혀를 자를 것을 명령하는 폭군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 직후 비세리스는 철왕좌에 손을 베이며, 상처가 덧나 손가락 두 개를 잘라야만 했다. 비세리스는 이때 이후로 건강이 악화되어 병석에 눕게 되면서[23] 다시는 철왕좌에 앉지 못했다.

비세리스 1세는 죽기 전인 마지막 해에 딸이자 며느리인 헬라에나[24]가 자식 3명[25]과 궁전으로 찾아오자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곤 의자에 앉아 딸과 얘기하며 손주들에게 아에곤 1세부터 재해리스 1세까지의 선왕들, 자유민, 거인, 스킨체인저에 대해 얘기해준다.



비세리스 1세의 죽음[26]

그리고 AC 129년 3월 3일에 비세리스1세는 레드 킵에서 낮잠을 자다가 52세의 나이로 편안하게 사망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 직후 공주파와 왕비파 사이에 거대한 내전이 시작되었고 이로 인해 타르가르옌 가문과 칠왕국은 큰 피해를 입는다.

사후에 일어난 용들의 춤에서 알리센트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들은 모두 끔찍하게 죽고[27], 그들이 낳은 손자녀들도 전부 요절하거나 생사가 불분명해지면서[28] 비세리스의 남계 후손은 완전히 끊기게 된다. 결국 용들의 춤이 끝난 이후 살아남은 비세리스 1세의 후손이라곤 장녀 라에니라가 낳은 외손자이자 조카들[29]아에곤 3세비세리스 2세 형제 뿐이었고, 결국 비세리스 1세가 살아생전 원하던대로 타르가르옌 가문은 라에니라의 두 아들들을 통해 비세리스 1세의 여계 후손으로 이어지게 된다.


3. 하우스 오브 드래곤[편집]


본 캐릭터를 각색한 실사 드라마의 등장인물.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비세리스 1세(하우스 오브 드래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평가 및 기타[편집]


할아버지인 늙은 왕 재해리스 1세를 계승해 젊은 왕으로 불렸으며, 온화한 성격과 선정으로 영주들과 백성들에게 사랑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타르가르옌의 최전성기를 통치한 왕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못난 자식들과 동생[30], 자신의 오판으로 인해 타르가르옌 왕조 몰락의 씨를 뿌린 왕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존재한다. 비세리스 본인은 왕으로서 그럭저럭 유능하여 조부인 재해리스 1세가 번영시킨 왕국을 더욱 발전시켜 황금기로 만드는 업적을 이루었지만 후계자이자 맏딸인 라에니라와 두번째 왕비 알리센트, 아들 아에곤 2세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용들의 춤의 불씨를 지피고 말았다. 특히 딸 라에니라 공주를 후계자로 삼았으면서 수관 자리에는 알리센트의 아버지인 오토 하이타워를 앉히는 등, 본의 아니게 두 진영의 대립을 부추기기도 했다.

재밌는 건 동생 다에몬은 여자 문제로 형과 다투다가 형 비세리스 1세에게 홧김에 소협의회의 배치를 이따위로 하냐고 그의 정치력에 대해 대놓고 비판하며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었는데[31], 비세리스 입장에선 소협의회의 파워 게임이 어느 한쪽도 크게 치우치게 되지 않게 나름 고심하여 구성한 거였고 나름 평화로운 시대에 걸맞는 올바른 정치적인 판단이긴 했다. 문제는 후계자 문제가 커지면서 역으로 어느쪽도 철왕좌에 앉을 수 있는 정통성까지 만들어져 결국 내전의 단초가 된다.

다음 왕인 아에곤 2세에게 노골적으로 유리한 타이밍에 죽었기 때문에[32] 자기 부인이나 아들에게 당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33]

참고로 최강의 드래곤인 발레리온의 마지막 주인이었다. 물론 발레리온은 그 당시에 이미 200살이 된 고령인데다가 평화로웠던 시기라[34] 딱히 활약할 일도 없었고, 얼마 뒤에 수명이 다해 죽는다. 비세리스는 발레리온이 죽고 난 이후에도 다른 드래곤을 길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모친 알리사 타르가르옌은 비세리스가 태어난 직후 갓난아기였던 그를 가슴에 안고 자신의 드래곤 멜레이스에 탑승해 함께 비행을 했는데, 알리사의 말에 따르면 비세리스는 드래곤이나 하늘을 나는 것을 무서워하기는 커녕 계속 웃었다고 한다. 이는 동생 다에몬도 마찬가지. 아마 다에몬과 함께 최연소 드래곤 라이더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비록 타르가르옌 왕조 치하에 재해리스 1세가 만들어 낸 칠왕국의 최전성기를 통치했고 나라도 그럭저럭 잘 다스렸지만, 독선적인 일처리와 잘못된 후계자 선정 방식으로 인해 나라 전체를 혼란스럽게 만든 암군이다. 이미 지난 대협의회에서 압도적인 수의 영주들이 남계계승을 여계계승보다 지지한다고 밝혔다.[35] 드라마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서 당시 스타크 가문의 가주인 리콘 스타크는 아예 똥씹은 표정으로 라에니라에게 충성 서약을 한다.[36] 장남보다 장녀를 우선 순위에 두는 방식은 당시 별개의 독립국이었던 도르네를 제외한 칠왕국의 나머지 지역에서는 비상식적인 계승이였다.[37] 그리고 라에니라 타르가르옌의 후계자들인 벨라리온 형제는 사생아 의혹이 짙게 있었으며, 이는 라에니라뿐만 아니라 라에니라의 다음 세대도 계승 분쟁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이 컸다. 이는 현실이 되었는데 당장 본편 이전에 계승 문제로 블랙파이어 반란이 일어났으며 본편에서도 조프리의 사생아 의혹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갈라져 싸운 대전쟁이 일어난 걸 생각해보자. 하지만 비세리스 1세는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힘과 지위가 있었음에도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결국 이는 칠왕국 사상 최대의 내전인 용들의 춤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비세리스 1세도 본편의 로버트 바라테온처럼 가족들과 후계자 관리를 실패하고 위험한 불씨를 방관한 최악의 암군이었다.[38] 이미 재위 후반부에 폭군스러운 행보를 보이다 철왕좌에게 거부당했으니, 좀 더 오래 살았다면 평가가 기존보다 더욱 나빠졌을지도 모른다.

비세리스 1세가 진심으로 후계구도를 걱정했다면 아예 재혼을 하지 않고 라에니라의 후계자 책봉을 거행했거나 아엠마가 사망했을 당시 나이도 젊었으니 헨리 1세처럼 일단 후처를 맞아들여, 그 사이에서 아들을 낳기를 기다리다가 두번째 결혼에서도 딸만 낳거나 아예 자식이 없는 등의 상황으로 끝내 아들을 얻지 못했다면 그때서야 라에니라를 후계자로 책봉하는 게 훨씬 나았을 것이다. 물론 노골적으로 후계자 자리를 노리는 다에몬이 있긴 했지만 이 방법이었다면 왕실이 둘로 갈라지는 분란도 없었을 거고, 여계계승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신하들도 후손이 딸밖에 없는데 어떡하냐는 명분으로 설득하는데 좀 더 용이했을 것이다.[39] 즉, 인내심과 결단력 둘 중의 하나라도 발휘했어야 했는데 비세리스는 그 중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사실 비세리스 1세의 이렇게 어리석고 답답한 행보는 작품 외적으로 보면 이해가 가는데 얼음과 불의 노래 시점에서 모든 용이 전멸해야하기 때문이다. 만약 타르가르옌 가문이 여전히 용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블랙파이어 반란, 로버트의 반란, 다섯 왕의 전쟁 같은 왕실을 향한 반기가 일어날 수도 없고[40] 전반적인 갈등 자체가 일어나지도 않을 거다. 만약 비세리스 1세가 확실하게 한쪽 편을 들었더라면 무게추가 한쪽으로 쏠리고, 그 때문에 내전이 안 일어나거나 일어나도 소규모로 끝날 가능성이 컸었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용들이 전멸할 만큼 대규모 내전이 벌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흑색파와 녹색파가 서로 대등한 세력과 명분을 유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비세리스 1세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야 했다. 애초부터 웨스테로스에서 타르가르옌 가문은 외부에서 유입된 이들로 이루어진 왕조였다. 특히 이들은 세력에서 열세였고 다스리는 영토인 국왕령도 생산력이 허약하기에[41] 그들이 초월적인 힘을 가진 드래곤을 지닌 덕에 웨스테로스를 통일했고 용들의 춤 시절까지 자기 왕조 외의 다른 세력들과의 마찰은 드래곤으로 맞서고 찍어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권력의 기반인 드래곤이 용들의 춤 이후로 사라져버리자[42] 그들의 힘과 권위가 제대로 하락하며 나중에는 아예 몰락하는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1] 장녀 라에니라의 남편이니 사위이기도 하다.[2] 아린 가문 출신이자 비세리스 1세의 고모 다엘라 타르가르옌의 딸로 사촌 지간이다.[3] 아들들은 모두 알리센트 하이타워의 소생이다.[4] 아에마 아린 소생[5] 알리센트 하이타워 소생[6] 할아버지 재해리스 1세 시절에 길들였지만 이미 나이가 들대로 든 발레리온은 그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이후 비세리스 1세는 두번 다시 드래곤을 길들이지 않았다.[7] 사실 이는 비세리스 1세의 나쁜 판단력과 독선적인 일 처리가 문제였다. 특히 훗날을 염려하는 신하들의 현명한 조언을 무시하며 후계 구도를 명확히 하지않고 막장인 동생 다에몬 타르가르옌에게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않으며, 끝내 용서해준 것에서 저 두 단점이 제대로 드러나서 이러한 면모가 비세리스 사후 가히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한다.[8] 재해리스의 장남인 아에곤 왕자가 요절했고 차남인 아에몬 왕자는 타스로 쳐들어온 해적들과 싸우다가 전사.[9] 바엘론과 알리사는 타르가르옌 가문의 전통대로 친남매끼리 결혼했고 금슬도 매우 좋았다.[10] 5남 바에곤 왕자가 그 경우. 아치마에스터가 되어 왕위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고 AC 101의 대협의회에서 왕위계승후보로 나가라는 주변의 권유도 스스로 거부했다.[11] 고모 다엘라 타르가르옌의 딸. 결혼 당시 아에마는 남편 비세리스보다 다섯살 어린 11살이었다.[12] 얼음과 불의 노래 세계관에서는 높은 위치에 있는 영주의 자식들이 주로 임명되는 자리다. 후대인 아에곤 5세의 막내딸 라엘레도 같은 이유로 시집가게 될 바라테온 가문에서 시부모인 라이오넬 바라테온 부부의 술잔 담당관을 맡았다.[13]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서는 비웃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냥 본인도 기분이 안좋은 상태에서 시니컬하게 남긴 멘트로 나온다.[14] 거칠고 난폭한 언행을 일삼는데다가 킹스랜딩 경비대의 사령관을 하면서 범죄자를 잔혹하게 처벌하는 직권남용을 일삼으며(원래 범죄는 재판을 통해 처벌해야 하는데 경비대 사령관이 재판도 하지 않고 범죄자를 즉석에서 잔혹하게 처벌하는 것은 명백한 직권남용이다. 또한 국왕을 우습게 보는 반역행위에 해당된다. 게다가 범죄자를 과도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처벌하면 민중이 이를 좋아할리가 없고 민심이 나빠져 잘못하면 폭동이나 반란이 터질수있다. 이는 용들의 춤에서 라에니라가 처형을 지나칠정도로 많이 일삼다가 킹스랜딩 시민들의 대대적인 폭동이 터져 수도에서 쫓겨난것에서 알수있다.) 사귀는 친구들도 경비대와 빈민가의 질 나쁜 사람들(주로 하급 병사랑 깡패, 창녀)이니 귀족들로선 다에몬을 좋게 볼수가 없었다. 특히 나중에 다에몬이 루세리스를 살해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질 나쁜 깡패 2명을 보내 무고한 재해리스를 잔혹하게 살해하면서 칠왕국의 모든 귀족들이 다에몬을 미워하게 되었다. 흑색파 영주들도 라에니라에게만 충성하지 다에몬한테 충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15] 허나 장남이 장녀보다 우선시되는 웨스테로스의 상속법에 따르면, 자녀들 중 라에니라가 가장 나이가 많지만 법적인 상속인은 아에곤으로 하는 게 맞았다. 애초에 용들의 춤 자체가 적자인 이복남동생이 셋이나 있는 라에니라의 애매한 포지션 때문에 벌어졌다. 라에니라의 유일한 명분은 비세리스가 아들들을 제치고 자신을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것 뿐이었고, 애초에 후계자로 지명된 이유도 알리센트와 재혼하기 전까지 비세리스에게 자식이 라에니라뿐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희소성이 알리센트의 자식들로 깨져버렸으니 분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토도 권력욕보다는 이를 예상하고 간언한 것이기에 그의 판단이 현명했던 것.[16] 다만 나중에 다에몬이 저지른 악행을 보면 셉톤의 의견을 받아들여 다에몬을 처형하지 않은것이 비세리스가 의도하지 않게 큰 실책이 되어버렸다. 특히 다에몬의 처형은 지혜로운 성격인 라이오넬 스트롱이 강력히 주장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받아들이지 않은것을 보면 비세리스 1세의 판단력이 최악임을 잘 말해준다.[17] 비세리스의 정치적 식견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왜냐하면 이 두 세력은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세리스의 탕평책은 라에니라 입장에서는 아에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처럼 비추어지고(라에니라에게는 동생들의 완전한 정치적 몰락만이 본인이 안전하게 즉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오히려 아버지가 본인에게 약속한 후계자 지위를 계속 흔드는 것처럼 인식할 수밖에 없다. 아에곤의 지지세력 입장에는 왕이 법적으로 보장되어있는 아에곤의 정당한 지위를 인정 안 하는 것처럼 보이며, 본인의 선례(비세리스도 사촌누나 라에니스를 건너뛰고 즉위했다.)마저 무시하며 내로남불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18] 실제로 발리리아의 귀족들은 장남과 장녀의 결혼을 당연시했으므로 나이 차이가 많을 뿐 본래대로라면 비세리스 1세의 장남과 장녀인 아에곤과 라에니라가 결혼하는 게 맞았다.[19] 재해리스 1세의 차남 아에몬 타르가르옌의 외동딸.[20] 비세리스 1세의 면전에다 "자기보다 자신의 이복 남동생들이 라에노르의 취향에 더 잘 맞을 거다"라고 일갈했다.[21] 다에몬에겐 첫번째 아내 레아 로이스와 사별한 후에 한 재혼이었다.[22] 첫째인 자캐리스는 라에니라 다음으로 칠왕국을 계승할 것이었으므로.[23] 통풍, 허리 통증, 관절염, 호흡기 질환을 않고 있었다.[24] 타르가르옌 가문의 근친혼 전통대로 친오빠 아에곤 왕자와 혼인했기 때문.[25] 재해리스 타르가르옌, 재해이라 타르가르옌, 마엘로르 타르가르옌.[26] 침대 옆에 있는 두 사람은 알리센트 왕비와 킹스가드 크리스톤 콜.[27] 장남 아에곤 2세는 패배가 확실시 된 전쟁 막바지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발악하다가 독살, 차남 아에몬드신의 눈 전투에서 다에몬 타르가르옌의 동귀어진으로 전사, 3남 다에론제2차 텀블턴 전투에서 기습 끝에 시체로 발견, 딸 헬라에나는 자기 아들들의 연이은 끔살로 완전히 미쳐버려 투신자살했다.[28] 아에곤 2세와 헬라에나의 자식들 중 장남 재해리스는 전쟁 초기 다에몬이 보낸 블러드와 치즈에게 참수당했고, 차남 마엘로르킹스 랜딩을 점령한 흑색파를 피해 도망치던 중 폭도들에게 산채로 찢겨 죽었으며, 장녀 재해이라만이 유일하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살아남아 아에곤 3세와 결혼했지만 고작 10살의 나이로 암살이 유력한 투신자살로 사망했다. 차남 아에몬드가 정부 알리스 리버스에게서 유복자 아들을 낳고 알리스가 그 아들을 왕으로 내세우며 하렌홀을 점거하긴 했지만, 훗날 하렌홀은 AC 151에 로스스톤 가문이 차지한 걸 보면 알리스와 아에몬드의 아들도 끔살 내지 불우한 결말을 맞이했을 가능성이 높다.[29] 동생 다에몬 타르가르옌의 아들이기도 하기 때문.[30] 실제로 동생 다에몬부터 자식들인 라에니라아에곤 2세 모두 인성이 하나같이 막장이었다. 특히 세 사람 모두 욕심만 많고 양보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성격이다 보니 결국 용들의 춤에서 사이좋게 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게다가 차남 아에몬드 역시 형과 누나 못지않게 오만하고 포악한 성격이었다. 비세리스 1세의 자녀들 중 그나마 선량한 성격이었던 건 차녀인 헬라에나와 막내인 다에론 뿐이었다.[31] 물론 다에몬 자신이 소협의회에 속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긴 했지만, 훗날 일어난 상황들을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다에몬의 말이 맞긴 했다. 하지만 다에몬의 성격이 워낙 개판이다 보니 그를 소협의회에 배치시켰다가는 문제만 일으킬 것이 분명하기에 이렇게 하지 않은 비세리스의 판단이 옳았다.[32] 정식 후계자인 라에니라가 수도를 떠나 있고 임신 중이라서 움직일 수 없는 사이에 갑자기 비세리스 1세가 사망했다. 아에곤 2세는 어머니 알리센트와 외조부 오토와 함께 라에니라가 부재한 틈을 타서 수도에 있는 자기 누나의 지지세력을 숙청하고 지방세력들과의 연계를 꾀한다.[33] 비세리스 1세의 사망 직후 궁정 광대 머시룸은 왕은 독살당했다는 말을 했다. 다만 머시룸은 당시 킹스 랜딩에 있던 게 아니라 드래곤스톤에 있었기에 그의 말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34] 사실 이는 비세리스가 전쟁을 피한것도 있다.[35] 당장 비세리스 본인부터가 이 남계계승으로 사촌누나 라에니스 타르가르옌을 제치고, 아버지 바엘론의 뒤를 이어 할아버지 재해리스 1세의 후계자가 되어 왕위를 물려받은 바 있다. 남계든 여계든 상관없이 절대적 장자상속제를 따라 왕세자를 정했더라면, 나이로 보나 서열로 보나 아에몬 타르가르옌의 무남독녀인 라에니스가 왕세자가 되어야 했다.[36] 리콘의 아들인 크레간 스타크는 아버지가 선왕에게 서약한 맹세와 의무 때문에 라에니라의 흑색파를 지지했지만, 당시 리콘의 표정을 통해 그가 비세리스의 판단을 얼마나 한심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37] 세계관의 영주들조차 몇몇 가문에서 여자 영주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적자가 모조리 죽어서 마지막 남은 적녀에게 계승권이 돌아간 것에 가깝다. 아에곤 2세도 엄연히 왕비인 알리센트가 낳은 비세리스 1세의 적자였던 걸 생각하면, 라에니라만큼이나 정통성이나 혈통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던 셈.[38] 착안점이 된 헨리 1세에 비하면 비세리스 1세는 정말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헨리 1세는 여성 계승에 대한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휘하 귀족들에게 자신의 후계자인 딸 마틸다에 대한 충성 선언을 거듭시켰고, 죽는 그 순간까지 확고하게 자신의 후계자는 마틸다라라는 공언을 절대 철회하지 않으면서 후계구도를 철저히 정리했다. 여기에 마틸다와 앙쥬 백작의 정략 결혼을 성사시키고 자신의 다른 서자, 서녀들도 여러 귀족 가문과 혼사를 맺게해서 마틸다의 친위세력을 형성하게끔 했다. 덕분에 시가부터 이복동생들에게까지 확고한 지지를 받은 마틸다는 라에니라에 비해 더 좋은 조건에서 전쟁을 진행할 수 있었고, 비록 왕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대신 자신의 아들 헨리 2세가 즉위하여 잉글랜드 왕실이 자신의 혈통으로 이어졌으며 여생도 편히 보냈다. 이에 비해서 비세리스 1세는 자식들간의 내분을 막기 위해, 뭔가 확고하게 조치를 취한 것이 없었다. 특히 헨리 1세와 비세리스 1세의 가장 큰 다른 점은 바로 결단력이다. 헨리 1세도 본인의 유일한 적자인 윌리엄이 죽자 적녀인 마틸다가 살아있었지만 일단 새로 결혼하여 아들을 보려 했다. 그러나 후사를 낳을 조짐이 안보이자 그때서야 마틸다를 공식 후계자로 지정해, 그녀의 친위 세력도 양성시키면서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만들어 주었다. 아마 헨리 1세의 새 아내가 아들을 낳았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거고, 헨리 본인도 이 아들을 중심으로 후계와 정치 구도를 개편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비세리스 1세는 적법한 계승자인 아들이 셋이나 있으면서도 후계자로 딸을 고집했으며, 이를 위해 상응하는 조치를 해야 했는데 (아들들을 정계에서 배제한다는지) 아무것도 안 하면서 우유부단하게만 굴었다.[39] 이와 비슷한 실제 사례가 룩셈부르크 대공 기욤 4세다. 당시 네덜란드 국왕과 룩셈부르크 대공을 겸임하던 오라녀나사우 왕조빌럼 3세살리카법이 적용되는 룩셈부르크 대공위를 딸 빌헬미나에게 물려줄 수 없어서, 같은 나사우 가문이지만 무려 37촌 조카로서 사실상 남남이나 다름없는 아돌프에게 대공위를 상속했다. 정작 그 아돌프의 아들인 기욤 4세는 슬하에 자녀라곤 딸만 6명이었고 아들을 낳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지자, 자신과 아버지를 대공으로 만들어준 살리카법을 폐지하고 장녀차녀가 차례대로 룩셈부르크 대공위를 물려받았다. 룩셈부르크 의회 역시 후계와 관련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고, 기욤 4세의 딸 외에는 다른 계승자도 없어서 여계 계승을 찬성했다.[40] 다만 아에곤 1세부터 재해리스 1세까지 반란이 계속해서 일어난것을 보면 왕실을 향한 반란이 아예 없는것이 아니다. 그저 비세리스 1세는 운이 좋아서 그의 치세에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다.[41] 실제로 설정상 국왕령이 동원할수 있는 병력은 웨스테로스에서 가장 생산력이 허약한 도르네와 강철 군도와 비슷하다. 다만 이것은 애초부터 왕령지를 잘못 정한 시조인 아에곤 1세의 실책이다.[42] 용들의 춤 이후 태어난 마지막 드래곤은 개만한 크기의 기형이어서 쓸래야 쓸 수도 없었으며 이조차 결국엔 죽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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