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공설운동장 압사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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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기인 1959년 7월 17일 경상남도 부산시 부산공설운동장(현 구덕운동장)에서 67명이 압사하고 150여명이 부상을 당한 사고다.
국제신문[2] 주최로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시민 위안 잔치 도중인 오후 8시 반경 갑자기 소나기[3] 가 내리자 관중 30,000여명이 소나기를 피하려고 폭이 7~8m 밖에 안 되는 좁은 출입구를 향해 한꺼번에 몰려 조명도 없는 경사진 언덕길에 넘어지며 참사가 일어났다. 설상가상으로 경찰이 노도처럼 밀려드는 군중을 통제한답시고 20여 발의 공포탄을 발사하자 앞쪽의 군중들은 멈칫하였으나 뒤쪽의 군중들은 공황을 일으켜 덮치고 밀치는 바람에 참사를 더 악화시켰다. #
참사 당일의 중간 보고에 따르면 현장에서 26명이 즉사하고 20여명은 병원에서 절명하였다고 한다. # 참사 당일에는 사망자가 62명으로 파악되었으나 다음날 사망자가 5명이 늘어 67명이 되었다. #
2. 기타[편집]
- 부산에서는 같은 해 2월 10일에도 영화관에서 압사 사건이 일어났다. 치마끝에 담뱃불이 붙는 것을 본 관객이 지른 "불이야!" 소리에 패닉이 일어나 3명이 압사하고 18명이 부상하였다.#
- 본 사건은 대한민국 최악의 압사 사고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로부터 63년이 지난 2022년에 그때보다 무려 2배 이상 많은 인명피해가 난 이태원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도 경사지고 좁은 골목길에 넘어져서 발생한 참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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