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밀루티노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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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밀루티노비치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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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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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대, 39대
파일:코스타리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22대
파일: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34대
파일: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2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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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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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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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뉴욕
5대







세르비아의 축구감독


파일:Milu.jpg

이름
보라 밀루티노비치
Bora Milutinović
본명
벨리보르 밀루티노비치
Велибор Милутиновић
출생
1944년 9월 7일(79세)
유고슬라비아 민주 연방 즐라티보르구역 바지나바스타 (現 세르비아)
국적
[[세르비아|

세르비아
display: none; display: 세르비아"
행정구
]]

신체
177cm
직업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파르티잔 베오그라드 (1956~1958 / 유스)
OFK 베오그라드 (1958~1960)
파르티잔 (1960~1966)
OFK 베오그라드 (1965~ 1966 / 임대)
FC 빈터투어 (1966~1967)
AS 모나코 (1967~1969)
OGC 니스 (1969~1971)
FC 루앙 (1971~1972)
UNAM (1972~1976)
감독
UNAM (1977~1983)
멕시코 대표팀 (1983~1986)
CA 산 로렌소 (1987)
우디네세 칼초 (1987)
CD 베라크루스 (1988)
테코스 UAG (1988~1989)
코스타리카 대표팀 (1990)
미국 대표팀 (1991~1995)
멕시코 대표팀 (1995~1997)
나이지리아 대표팀 (1997~1998)
뉴욕 메트로스타스 (1998~1999)
중국 대표팀 (2000~2002)

온두라스 대표팀 (2003~2004)
알 사드 SC (2004~2005)
자메이카 대표팀 (2006~2007)
이라크 대표팀 (2009)
국가대표
없음

1. 개요
2. 선수 생활
3. 지도자 생활
3.1. 클럽 경력
3.2. 국가대표 경력
3.2.1. 멕시코와 1986년 월드컵
3.2.2. 코스타리카와 1990년 월드컵
3.2.4. 나이지리아와 1998년 월드컵
3.2.6. 이후의 국가대표 경력
4. 감독 은퇴 이후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세르비아(舊 유고슬라비아 SFR)의 축구인.

현역 시절은 다소 별볼일 없었지만, 지도자로서는 '16강 제조기'라는 별명답게 1986 ~ 1998 월드컵에서 맡은 나라들(멕시코, 코스타리카, 미국, 나이지리아)을 모두 16강에 진출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FIFA 월드컵 참가 횟수가 가장 많은(5회) 감독이기도 하다.

보라의 형들인 밀로시[1]와 밀로라드[2]축구선수 출신 감독이었다.


2. 선수 생활[편집]


1958년에 OFK 베오그라드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평범한 선수 생활을 보낸 뒤에 UNAM에서 1976년은퇴하였다.


3. 지도자 생활[편집]



3.1. 클럽 경력[편집]


자신이 마지막으로 뛰었던 UNAM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86 FIFA 월드컵 이후에는 우디네세 칼초, 베라크루스, 테코스 UAG를 지휘했다. 이후 3번의 월드컵을 경험하면서 클럽 감독직을 하지 않았다. 1998 FIFA 월드컵이 끝난 뒤 뉴욕 메트로스타스의 감독을 지냈다. 그러다가 중국과 온두라스에 있다가 카타르 리그의 알 사드를 2년간 지휘했다.


3.2. 국가대표 경력[편집]



3.2.1. 멕시코와 1986년 월드컵[편집]


1983년에 부임했다. 24강 본선 B조 첫번째 자리에 배정되어 파라과이, 벨기에, 이라크와 한 조가 되었다. 본선에서는 벨기에를 2:1로 이기고 파라과이와는 1:1로 비겼다. 마지막 이라크전은 1:0으로 이겨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16강 상대인 불가리아를 2:0으로 완파하고 8강에 진출하여 서독에 0:0 무승부를 거두었으나 승부차기에서 4:1로 월드컵 6위로 마쳤다.


3.2.2. 코스타리카와 1990년 월드컵[편집]


24강 본선 C조에서 스코틀랜드를 1:0으로 깨고 브라질한테는 1:0으로 졌다. 그리고 스웨덴전은 2:1로 이겨 16강 진출해 성공했다. 16강에서 체코슬로바키아를 만나 4:1로 패배로 월드컵 13위로 마쳤다.


3.2.3. 미국과 1994년 월드컵[편집]


24강 본선 A조에 콜롬비아, 스위스, 루마니아와 한 조가 되었다. 스위스전은 1:1로 비기고 콜롬비아전은 안드레스 에스코바르의 자책골까지 합해 2:1로 승리했다. 마지막 루마니아전은 0:1로 패했고 최종 결과 3위가 되었는데, 각 조 3위팀간 순위 경쟁에서 앞선 국가 중 하나가 되면서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16강에서 브라질을 만나 1:0으로 패배하며 월드컵 14위로 마쳤다.


3.2.4. 나이지리아와 1998년 월드컵[편집]


32강 본선 D조에 배정되어 스페인, 파라과이, 불가리아와 한 조가 되었다. 본선에서 스페인을 3:2로 잡는 이변을 일으켰으며 불가리아를 1:0으로 잡고 파라과이에 1:3으로 졌지만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16강에서는 덴마크를 만나 1:4로 패배하며, 월드컵 12위로 마쳤다.


3.2.5. 중국과 한일 월드컵[편집]


2000년에 부임했다. 부임 후 참가한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에서 4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한일 월드컵 예선에서는 대한민국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해 예선에서 빠진 상황에서 최종 예선에서 이란사우디아라비아를 피하는 행운[3]까지 겹쳐서 무난하게 통과하여 중국 대표팀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키게 된다. 이 덕택에 한동안 인민영웅 취급을 받았고, 광고 모델로도 인기가 많아서 출연료를 많이 벌었다. 32강 본선에서는 C조에 미리 배정 받는 것으로 사전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 이유는 중국이 일본에서 경기를 하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월드컵에 첫 출전한 중국이 C조에서 만난 팀들이 너무 강한 상대들이라는 것.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이 필요없는 브라질, 코스타리카는 파울로 완초페 - 고메스 - 폰세카라는 코스타리카 축구의 전설 3인방을 필두로 한 북중미의 강호였으며, 터키는 1999 - 2000 유로파 리그와 2000 UEFA 슈퍼컵을 제패한 갈라타사라이 소속 선수들 중심으로 그 이전 대회인 UEFA 유로 2000에서 8강 6위에 올랐을 정도로 터키 역사상 최고의 전력을 자랑했다. 중국도 하오하이둥이나 판쯔이, 순지하이, 리웨이펑을 비롯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뛴 양첸 등 지금보다 더 우수한 선수들이 즐비했지만, 다른 C조에 비빌 수준은 못 되었다. 결국 코스타리카, 브라질, 터키에게 각각 0:2, 0:4, 0:3으로 완패를 당하면서 "3전 전패 0득 9실"이라는 처참한 기록을 남겨 전체 순위 31위로 뒤에서 2등을 하고 말았다.[4]

밀루티노비치가 그 전에 맡았던 팀들은 축구 강국이 아님에도 모두 16강 진출에 성공했기에 중국 또한 기대를 했지만, 밀루티노비치의 월드컵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중국만 16강을 가보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아시안컵 4위와 중국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첫 본선 진출(31위)만으로도 밀루티노비치는 충분히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때 이후로 중국은 지금까지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3.2.6. 이후의 국가대표 경력[편집]


중국에서의 실패의 후유증 때문인지 이후로는 국대고 프로팀이고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2003년 8월에 온두라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에 임명됐지만, 성적 부진과 그로 인한 연봉 문제로 온두라스 축구 연맹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이듬해 6월에 자진사퇴했다. 이후 2006년 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한다는 떡밥이 돌았지만, 사우디 측에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면서 말 그대로 떡밥으로 일단락됐고, 대신 그 해 가을에 자메이카 축구 국가대표팀과 4년 계약을 맺었으며, 2007년 2월에는 칼스버그컵에서 우승하는 등 성과도 냈지만, 같은 해 가을에 1년만에 경질당했다. 2009년에는 잠시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아서 그 해 2009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남아프리카공화국[5]에 진출하기도 하였다.

이라크 대표팀을 끝으로 감독직에서는 사실상 은퇴하였다.


4. 감독 은퇴 이후[편집]


2009년 12월에 세르비아 축구협회 정보분석관을 지냈다.

2018년 1월 12일중국축구협회의 고문으로 영입되어 청소년 경기력 향상을 전담하였다.

2022년 4월 2일[6] 열린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조 추첨식에 추첨자 중 한 명으로 나왔다.


5. 둘러보기[편집]












[1] 1933 ~ 2003.[2] 1935 ~ 2015.[3] 중동에서는 FIFA가 중국 돈줄을 노리고 조편성을 조작했다고 믿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우즈벡, 카타르, 오만을 만났던 것. 우습게도 이 월드컵 이후에 이 팀들이랑 월드컵 지역 예선이나 아시안컵에서 만나 중국이 연이어 지고 있다.2010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카타르가 중국을 뭉개버렸고 2022 월드컵 최종예선에선 그동안 약체 소리 듣던 오만이 중국을 1승 1무로 앞서버리며 중국의 탈락에 기여했다.[4] 게다가 C조의 순위도 "중국을 상대로 기록한 득점 수"대로 줄서기가 되면서 중국에 2골밖에 넣지 못한 코스타리카는 조 3위 월드컵 19위로 마쳐야 했다.[5] 월드컵 우승국, 각 대륙 우승국, 개최국이 진출한 8개국 대회[6] 한국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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