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피오 바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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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피오 바실레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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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파일: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2성)엠블럼.svg

33대, 37대



클럽
파일: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로고(2017~2024).svg

79대






아르헨티나의 축구감독


파일:Basile_masterclass_2013_(cropped).jpg

이름
알피오 바실레
Alfio Basile

본명
세르히오 다니엘 바티스타
Sergio Daniel Batista
출생
1943년 11월 1일 (80세) /
아르헨티나 바이아블랑카
국적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display: none; display: 아르헨티나"
행정구
]]

직업
축구선수(센터백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라싱 클루브 (1964~1970)
CA 우라칸 (1971~1975)
감독
차카리타 후니오르스 (1975~1976)
CA 로사리오 센트랄 (1976)
라싱 클루브 (1978)
라싱 데 코르도바 (1979)
인스티투토 데 코르도바 (1980)
라싱 데 코르도바 (1981)
CA 우라칸 (1982)
클루브 나시오날 데 푸트볼 (1982)
라싱 데 코르도바 (1983)
CA 타예레스 (1983)
CA 벨레스 사르스필드 (1984~1986)
라싱 클루브 (1986~1989)
CA 벨레스 사르스필드 (1989~1990)
아르헨티나 대표팀 (1991~1994)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5)
라싱 클루브 (1996~1997)
CA 산 로렌소 (1998)
클루브 아메리카 (2000~2001)
콜론 데 산타페 (2004)
CA 보카 주니어스 (2005~2006)
아르헨티나 대표팀 (2006~2008)
CA 보카 주니어스 (2009~2010)
라싱 클루브 (2012)
국가대표
8경기 1골 (아르헨티나 / 1968~1973)

1. 개요
2. 선수 경력
3. 감독 경력
4. 수상
4.1. 선수
4.2. 감독



1. 개요[편집]


알피오 바실레는 아르헨티나의 축구감독이다.


2. 선수 경력[편집]


알피오 바실레는 바이아 블랑카 출신으로, 고향 베야 비스타의 축구단에서 입문했다. 1964년부터 1970년까지, 그는 라싱 클루브에서 활약했는데, 그는 후안 호세 피수티 감독의 취임 전까지 미드필더로 활약했는데, 피수티 감독은 그를 후방으로 보내 중앙 수비수로 기용했다. 이 위치에서, 바실레는 로베르토 페르푸모와 후방 수비진을 구성해 소속 구단의 3차례 우승에 일조했으며, 1967년에는 셀틱 FC를 이기고 인터콘티넨털컵을 우승하며, 아르헨티나 구단의 첫 국제 대회 우승 주인공이 되었다.

바실레는 CA 우라칸으로 이적하기 전까지 라싱 클루브에서 186번의 경기에 출전했는데, 그는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감독의 우라칸 소속으로 1973년 메트로폴리타노 선수권 우승을 거두었다. 그는 같은 시기에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했다.

1975년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감독 경력[편집]


현역 은퇴 후, 그는 다수의 아르헨티나 구단을 지도했는데, 로사리오 센트랄, 라싱 클루브, 우라칸, 벨레스 사르스피엘드, 우루과이의 나시오날, 그리고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지휘하였다.

그의 축구 감독 최고 커리어는 1990년대 초반이었는데, 그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1991년과 1993코파 아메리카 2연패, 그리고 1991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 자격으로 참가한 1992 킹 파드컵, 역시 1991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 자격으로 참가한 1993년 CONMEBOL-UEFA 컵 오브 챔피언스를 우승했던 시기였다.

1994 FIFA 월드컵 미국 예선에서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0-5로 안방 대패를 당하기 전까지는 순항했다. 이 충격패의 여파로 디에고 마라도나가 국가대표팀 은퇴를 번복하였고, 아르헨티나는 플옵에서 호주를 겨우 이기고고 본선에 진출했다.

월드컵 본선에서, 아르헨티나는 그리스, 나이지리아[1], 불가리아[2]와 한 조가 되어 무난한 16강 진출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였다. 마라도나가 나이지리아전 도핑 시험 결과 양성 반응이 나와 에페드린이 검출된 그는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아르헨티나는 불가리아와의 이어지는 경기에서 0-2로 패하고 16강에 올라섰지만 3위로 겨우 진출하였고, 분위기에 흔들린 선수단은 이어지는 루마니아와의 16강전에서 2-3으로 패해 탈락했다.

월드컵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사퇴한 후, 바실레는 이어 산 로렌소, 멕시코의 클루브 아메리카, 그리고 콜론 산타 페를 거쳐 명암이 엇갈리는 시기를 보낸다. 2005년 7월, 그는 보카 주니어스 감독직을 수락하여 1달 후에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을 거두었고, 이후 2005년 아페르투라 우승을 거두었다. 나흘 후, 보카는 멕시코의 UNAM 푸마스를 꺾고 코파 수다메리카나를 우승했다.

2006년 8월,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가 감독직을 수행하던 아르헨티나는 2007년 3월, 사상 처음으로 FIFA 랭킹 1위를 달성했으며, 2007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기록하였다. 이후 그가 지휘하는 아르헨티나는 2007년 10월부터, 2008년 6월까지, 9개월 동안, FIFA 랭킹 1위를 굳건히 지켰으나, 월드컵 예선 칠레 원정 0-1 패배로 국가대표 감독직에서 사임한다.

그는 2012년 라싱을 떠난 이후 그는 축구일에서 "은퇴했다"고 밝혀, 더 이상 감독직을 수행하지 않는다.


4. 수상[편집]



4.1. 선수[편집]




4.2. 감독[편집]




[1] 그리스와 나이지리아는 월드컵 첫 출전국들이었다.[2] 해당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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