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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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의 반일
2. 중화권의 반일
3. 미국의 반일
4. 러시아의 반일
5. 동남아시아의 반일
6. 그 외 나라의 반일


1. 북한의 반일[편집]


북한은 1945년 해방 및 남북 분단 이후 미국 및 서방국가에 버금갈 만큼 일본을 매우 적대시해 왔다. 일찍이 북한 지도부의 근원이 동북항일연군과 같은 항일 빨치산 세력이기도 했고[1], 해방 및 남북분단 당시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사회주의 국가 건설 및 김일성 우상화 과정에서 가장 없애야 할 잔재거리로 당시 북한에 남아있는 일본인을 지목하여 모조리 쫓아내거나 반동분자로 몰아 때려 죽이기도 하였다. 넓게는 과거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친일파매국노로 있던 인물들도 들어갔다. 이런 면에서는 친일파, 매국노 숙청에 미적지근했던 남한보다 이미지 메이킹을 확실히 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은 친일경력자를 여럿 등용한 것은 마찬가지였음에도.

특히 과거사 문제 등으로 반일성향이 깊은 편이며, 일본측의 과거사 망언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에도 반발하였던 적이 있고, 왜왕을 우리의 민중에게 고통을 주게 한 불구대천의 원흉이라고도 주장하였다. 국가의 뿌리를 항일에서 찾으니 전세계에서 반일이 가장 심하다고 한다.[2] 때문에 뉴스에서 대놓고 일본을 상대로 욕설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본도 북한을 매우 싫어한다. 일본인 납치 사건 및 영해 불법 침투 사건, 그리고 잦은 미사일 실험 및 핵실험 등으로 군사적으로는 한국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할 정도.

하지만 일본인들의 반북 감정은 북한의 반일 감정에 비하면 양반이다. 아베 신조납북 일본인 문제 해결과 박근혜 대통령의 한중 공조에 대응한 친북외교를 했었을 때 지지하던 일본인도 만만치 않았다.


2. 중화권의 반일[편집]



2.1. 중화인민공화국[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혐일/중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홍콩[편집]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또 하나의 일제 침략의 피해국. 일본이 점령했을 당시 중국인이 많이 학살당하고, 홍콩의 언어인 영어광동어 모두 사용금지되고 일본어만 쓸 것을 강요받고, 강제 지명 변경 및 창씨개명, 강제징용, 심지어 대규모 생체실험까지 겪은 엄연한 피해자인데 한국인들은 애석하게도 잘 모른다.

1941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대규모의 육군 기병, 기갑, 포병 부대를 광동 성에서 구룡반도로 남하시키고, 일본 해군홍콩 섬 코즈웨이 베이에 함포사격을 퍼부어 해안방어를 하던 영국 해군해병대를 제압한 후 대규모의 육전대를 상륙시켜서 점령해 버렸다. 당시 구룡에는 중국 대륙에서 중일전쟁을 피해 피난 온 광동과 푸젠 출신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 중엔 국부군들도 많았고 당연히 이들은 일본군이 진주하자 낭패를 봤다(...)

일본군은 침사추이에 입성한 후 페닌술라 호텔[3]에서 조용히 최후를 기다리던 총독에게 항복을 받아낸다. 문관 총독이 오던 홍콩은 전혀 전쟁 준비가 안되어 있었고 법관 출신이었던 당시 총독 역시 본국이 멀쩡히 살아 있음에도 불구 겁을 먹고 투항한다. 인도차이나가 본국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당해 비시 프랑스라는 괴뢰국으로 전락해 할수 없이 투항한 것과 다르다. 호텔을 접수한 일본의 야마시타 도모유키 장군은 호텔을 임시 육군 사령부로 만들고, 육군 병력이 보트를 타고 빅토리아 하버를 건넌 해군 육전대와 합류하며[4] 곧 이어 홍콩 경찰홍콩 소방처 그리고 주둔 영국 해군 사령부 등을 해체하고 계엄령을 내려 일본군의 헌병들이 대신 치안을 전담한다.

당시에 일본군은 빅토리아 피크에 홍콩신사, 라이언 락에 구룡신사를 짓고 홍콩인들에게 참배를 강요했으며 홍콩 섬 코즈웨이 베이나 구룡반도 홍함 등에선 민간인 학살을 저지르기도 했고[5] 수 많은 화인들을 카이탁 공항 활주로 확장공사에 강제 징용해 원성을 산다. 그러나 카이탁 공항은 차라리 나았던 것이 화인들이 징용으로 끌려간 곳은 카이탁 공항뿐만이 아니었고, 당시 광둥 성의 일부였던 하이난 섬으로 2만여 명의 화인들이 2만여명의 본토인들과 함께 징용으로 끌려갔는데 이들 4만여명 가운데 살아온 사람들은 겨우 5천명이었다고 한다.

흔히들 일뽕이나 일본 우익들이 홍콩이 대만처럼 친일 성향이 강하다는 말을 해서 홍콩이 친일 성향이 강한 줄 아는 경우가 많으나, 홍콩의 경우에도 본토 못지않게 반일감정이 심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4년간 일본에게 점령되었던 역사가 있고[6] 그 사이 현지인에게 한 잔학 행위가 꽤 많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이 시기에는 일본의 수탈이 극심해 사람들이 대규모로 아사하거나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기까지 했고(이 시기에 굶어죽거나 병으로 죽은 사람만 5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수많은 화인들이 광동 성으로 추방당해 일본의 점령 이전 160만 명이던 홍콩의 인구가 해방 직후 60만 명으로 쪼그라들었으며, 전술했다시피 화인들이 학살당하거나 징용을 끌려가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문제나 역사 교과서 왜곡 등이 터지면 홍콩 내에서 홍콩 극우들이 반일 시위도 한다. 그리고 본토계 피난민들이 많은 구룡반도에선 일본어를 쓰고 다니면 좋은 시선을 못 받는다. 몇몇 노인들은 대놓고 일본어를 쓰면 고함을 치며 욕을 할 정도다. 가끔 구룡에선 일본인 택시 승차거부도 일어나기도 한다. 대만에서는 "대만을 근대화시켜주신 일본인들께 감사드립니다"라는 팻말을 건 택시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완전히 다른 수준. 홍콩에서 이러면 집단다굴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평범한 일본사람이나 일본 문화에게는 우호적이다. 특히 젊은 층으로 갈수록, 본토파일수록 반일의식이 약한 편이다. 사실 이건 젊은층의 본토 중국인한국인들도 마찬가지로, 그렇다고 해서 일본 우익이나 정치인,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2.3. 대만[편집]


대만에선 정치권과 달리 민중들 사이에서는 반일 감정이 그리 심하지는 않고 오히려 친일에 가깝다. 대만-일본 관계 참고.

그렇다고 해서, 대만에서도 난징 대학살 사건은 절대로 부정하지 않는다. 당장 현 중화민국이 피해 당사국 중 하나고, 난징은 당시 중화민국의 수도였으니. 중화민국 정통주의자의 경우 중화인민공화국이 자신들의 공과를 뺏어갔다고 분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격한 독립주의자 대만인의 경우 중일전쟁이니 난징 대학살이니 남의 나라 역사로 치부하고, 누가 추모하면 욕설을 퍼붓고 오히려 중국놈들 잘 죽었다고 고인드립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7][8] 영토 문제에는 강경해서, 전임 총통 마잉주센카쿠 열도를 ICJ에 제소하자라며 역제안도 했고 대만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방문하여 일본 극우들을 당황하게 했다. 다만 당시 정권이 본토에서 넘어온 중국 국민당이고 일본과 직접 싸운 당사자라서, 역설적으로 일본 극우들이 국민당 정권을 안 좋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미국이나 일본 주류 정계는 중국 본토가 대만을 합병하지 않고 대만정부가 독립을 시도하지 않는, 즉 현상 유지를 원하는 경우가 많으나 극우들은 대만을 완전히 독립시켜 반중국 동맹 체결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동조하는 대만인 일부가 위안부 등 일본의 전쟁범죄중국 공산당(+ 중국 국민당)의 날조라고 주장하기도.

본토 출신 외성인들은 중화민국의 구성원으로 항일 전쟁을 치룬 것은 물론 일본군 만행의 직접적 피해자니 기본적으로 일본에 적대적이고 실제로 일본에 협력한/협력했다고 간주된 집단을 매우 가혹하게 탄압했다. 한간이야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고 만주족과 대만 본성인은 집단 전체를 도매금으로 묶어서 짓밟았다. 특히 한간의 경우는 국민당이 워낙 가혹하게 탄압하니까 중국 공산당의 편이 되었는데, 이게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지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그 이전에 타이완 민주국[9] 설립 때 일본군이 잔학한 토벌을 펼치기도 했었다.

대만에도 극우가 존재해서 반중공, 반일을 동시에 하며 자신(중화민국)들이 중국의 합법 정부라고 주장한다.


3. 미국의 반일[편집]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반일 정서가 강했지만,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공산국가 북한과 중국을 막자는 차원에서 한-미-일 삼각동맹 라인을 구축해내 정책적으로 반일 의식이 점차 희석됐으며 현재는 전쟁이 끝난 지 오래여서 그 정서가 약하거나 거의 없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에 관련이 있는 노년층 세대 중엔 일본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참전용사들이 그런 경우로 "잽(Jap, 일본인 비하 명칭)" 등의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또 1970~1980년대 대일 무역 적자로 인해 일본에 대한 감정이 매우 악화되기도 했었다. 현재 미국은 일본에 대해 친일 성향을 띠는데, 2017년 미국의 언론인 WashingtonExaminer는 미국이 가장 좋아하는 국가들 중에서 일본이 캐나다, 영국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10][11]


4. 러시아의 반일[편집]


러일전쟁에 관한 문제로 인해 러시아에도 반일이 있는 편. 물론 할힌골 전투에서는 관동군만주군을 상대로 완승하였고, 2차대전 말기에 다시 소련군일본군과 붙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그 감정은 아직도 남았고,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쿠릴 열도 분쟁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러시아 대표팀이 일본에 졌을 때 화난 러시아인들, 특히 쿠릴 열도가 있는 극동 거주민들은 대규모 폭동을 일으켜 일본차를 불태우고 심지어 대사관 의전차량을 공격했을 정도다.

쿠릴 열도에 러시아해군 및 산하 육전사단, 그리고 공군 등 군대를 주둔시킴과 동시에 중국군과 연합 훈련을 하기로 결정했기에 러일관계도 얼어붙는다. 몇 차례 걸쳐 내무군 소속 해양경찰대가 일본인 어부를 사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 밖에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한국/미국/중국/러시아가 일본과 갈등이 많은 상태였어도 많은 도움과 지원을 보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런 도움을 받고도 영토 주장을 계속함도 모자라 태평양에 방사능 오염수를 무단으로 버리고, 일본 정부가 자국의 방사능 오염 물건들을 계속 수출하려는 모습을 보여 일본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가 급격히 싸늘해졌다.

2014년에는 러시아 부총리인 드미트리 로고진이 문제의 쿠릴 열도를 방문했을 때 일본에서 항의하자 "일본인은 할복 자살하라"고 발언했다. 당연하지만 이에 대해 당사국인 일본 네티즌들은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간간이 터지는 쿠릴 열도 이슈때를 제외하면 반일 감정이 아주 큰 편은 아니다. 러시아는 일본보다는 전통적인 라이벌 미국과 자국의 중심부와 가깝고 오랫동안 적대 관계였던 폴란드, 독일, 발트3국, 터키등을 더 싫어하며 이 국가들과의 갈등과 비교하면 일본과의 갈등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크지 않다. 오히려 다른 서양 국가들처럼 일본 요리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경향도 있어 일본에 우호적인 시선도 많은 편이다. 물론 쿠릴 열도 분쟁이 커지면 역정을 내는 반응도 그때마다 커지긴 한다.

5. 동남아시아의 반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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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동남아시아는 일본을 매우 좋아하는 편인 지역이다. 전쟁 당시 일본이 동남아 국가들을 침공했다지만, 동남아 국가들을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오랫동안 괴롭힌 것은 서구의 식민제국들이었으며, 전후 일본은 막대한 배상을 했고 또 천문학적인 금액을 꾸준히 원조하고, 투자 또한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 다만 반일 감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이는 후술.

동남아시아의 반일은 대체적으로 그다지 격하지 않다. 그저 역사적으로 '일본이 잘못했다' 정도만 알고 가는 때가 대부분이며, 한국과는 달리 다른 서양 국가에게 오랫동안 식민지배를 받았고 일본의 직접적인 점령이 매우 짧아서이며 과거는 과거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고려해야 한다. 국민적인 정서상 한국이나 중국에서 보여주는 극단적인 반일감정은 없다고 봐야 옳다. 게다가 피해 당사국들이 일본의 보통국가화와 재무장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여기에는 남중국해 영토 분쟁 문제 때문에 중국이라는 공동의 적을 함께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현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친일적이라고 해석하면 곤란하다. 이 지역의 민족 구성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집권 정치층과 일반 대중을 나눠서 봐야 이해할 만한데,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동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국민국가라는 개념이 근대까지 없었으며, 부족 중심의 복잡한 정치 타협체이다. 다르게 얘기하면 일본의 동아시아 진출은 일본인 대 한국인, 일본인 대 중국인 식의 민족 대립 양상을 띠었지만, 이 지역에서는 몽 vs 크메르 vs 일본인 vs 화교 vs 베트남인... 이런 상황에서 비록 엄청난 병크를 저질렀지만, 현재 당장 국내 정치적으로 심각한 갈등은 국내의 다른 여러 제 민족이 일으킬 때가 훨씬 더 많다. 따라서 한국이나 중국 등에서 보이는 극명한 반일 양상이 없다. 특히 동남아시아 몇몇 국가의 지도층은 서양의 식민지를 벗어나러 의도적으로 친일에 끼었다가 전쟁 후반부에 반일로 돌아선 때도 있어서 대놓고 반일이 아닌 때도 있다. 놀랍게도 그 유명한 아웅산 수 치 여사가 이끄는 계열이 여기에 들어간다. 이들 국가에서 정치층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특정 부족을 위해, 그리고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이 지역의 자원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투자와 지원을 하는 일본 정부와의 협력을 전략적으로 강화하려고 든다.

중국과 한국은 동아시아 특유의 민족주의 성향이 크며, 두 나라는 과거 일본이 독주하다시피하던 1980~2000년대와 현저히 달라진 현재 높은 국력까지 더해 일본이 하는 행동에 따라 반대/방해하거나 앞길을 가로막을 만큼의 입지까지 있어 현재까지도 국가 차원이나 국민 차원의 마찰이 잦다. 그 일과 달리 이젠 한중일이 경제적으로 탄탄히 얽혀서, 서로 반발과 견제는 할지언정 경제적으로 서로의 관계가 끊어지기는 매우 힘들다. 반면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일본과 티격태격할 만큼의 국력이 부족하다. 요약해서 정리하자면 동남아시아의 반일은 동아시아보다 약한데, 식민 지배가 짧았기도 하지만 민족국가 구성이 느렸고, 지난 20년 간 일본이 이곳에 끊임없이 투자로 구애해서였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런 모습은 정서와는 관련없이 실익을 위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봐야 옳다.



5.1. 인도네시아[편집]


다른 동남아 나라처럼 식민통치를 겪어 수카르노, 수디르만 등 독립 투사 등이 일본과 네덜란드의 점령에 저항했다. 다만 현재 인도네시아는 일본을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일 정도로 친일 성향을 띤다.


5.2. 말레이시아[편집]


외교부 인사가 일본에 대하여 2차 대전 당시 동남아를 쳐들어와 학살과 약탈을 벌였다면서 차라리 영국이 조금은 낫다는 말까지 대놓고 하여 일본인들을 무안하게 만든 일이 있다.(일본은 없다에 나오는 이야기). 실제로 민간인을 8만 명이나 학살했고, 특히 중국계들의 피해가 막심해 화교들 사이에서는 반일감정이 매우 깊다. 당시의 말레이시아는 지리상으로 중국과 가까워서 화교들이 많이 이주해서 살았는데, 말레이계와 중국계사이를 이간질해서 서로 죽이게 했다고. 말레이계나 인도계들한테는 일본군은 해를 거의 가하지 않았지만 중국계는 닥치는대로 죽였다 한다.


5.3. 베트남[편집]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를 일시적으로 뭉개고 쳐들어온 일본을 환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국부 호치민조선을 예로 들며 일본도 프랑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제국주의 침략자라고 견제했고, 베트남 교과서에서도 일본의 식민지배를 비난하고 있다. 이렇게 강력하게 규탄하게 된 이유는 태평양 전쟁 시절 베트남을 점령한 일본은 조선에게 그러했듯 베트남에게도 일본군의 각종 민폐 세트와 더불어서 당연히 을 강제로 수탈해서였다. 그러다가 1945년, 수탈과 더불어 대기근이 일어났다. 일본군의 쌀 공출과 홍수 - 가뭄으로 온 흉년, 미군 잠수함 공격에 남베트남에서 쌀 수송의 난항은 기록적인 대기근으로 돌아왔다. 당시 북베트남의 인구는 1,000만 정도였는데, 이 대기근에서 아사자만 200여만 명.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의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상당히 커졌다. 때문에 베트민은 세력을 크게 늘릴 수 있었고, 일본 항복 직후 일시적이나마 베트남 전토를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인구 1/5이 굶어 죽었는데 강제적인 쌀 공출을 하면 당연히 분노했을 것이다. 참고로,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베트남인의 체험문학작품을 보면, "쌀을 가져가면 안 돼! 가져가지 마라!"라고 울부짖는 여인을 칼로 베어 죽이고 어거지로 쌀을 공출하는 일본군의 모습이 보인다.


5.4. 라오스[편집]


선생으로 봉사하는 한국 봉사단체 KOICA 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라오스 세계사 교과서도 '일본은 2차대전 침략국가로 아시아 여러나라를 침략하여 학살을 벌였다'고 집필했다고 한다.


5.5. 필리핀[편집]


2차대전 때 태평양의 이탈리아 전선 소리 들으며 학계의 추산으로 70만~100만, 인구의 5~9%가 2차대전으로 인한 파괴, 학살, 기아로 죽으며, 수도인 마닐라만 하더라도 유서 깊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보존 되었던 구시가지가 가루가 되어 버리는 등 물질적으로 태평양 전선의 핵심 중 하나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당장 바탄 죽음 행진 같은 전범 행위가 대거 발생한 곳인 만큼, 정치적 상황이 혼잡하서 대립이 극심한 나라임에도 항일 투쟁 만은 공산당이나 신인민군 같은 좌익, 막사이사이 같은 우익, 모로 해방 전선 같은 소수 민족 분리주의 계열 마저도 협력하며 공유하는 역사이다. 라몬 막사이사이는 자신의 반일 투쟁 경력이 정치적으로 큰 도움이 됐고,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도 엉터리지만 자신이 전쟁 도중 항일 투쟁에 나섰다고 말했다.


5.6. 싱가포르[편집]


2차대전 당시 일본에게 겨우 4년 지배당했음에도 무수한 중국화교들이 일본군에게 학살당하거나 살아남아도 특별세금에 시달렸으며, 말레이계와 이간질시켜 일본군이 물러나고 골머리를 앓아서인지 교과서가 꽤 반일적이다. 그렇지만 일본문화에 대해서는 굉장히 우호적이며 일본인 이민도 많다. 당장 싱가포르에서 영어표준중국어 외에 메이저 언어로는 일본어가 있을 정도이다.[12]정부 대 정부로 볼때 싱가포르일본은 경제 및 군사적 협력관계이며 최근 중국견제를 위해 싱가포르와 일본의 양국이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 아베 신조싱가포르를 방문해 집단적 자위권 지지를 호소한 바 있다. 물론 정부 대 정부 차원이나 일반 일본인, 문화에 대한 우호감정과 별개로 제국주의 일본이나 일본 극우는 철저히 까인다. 중국계들은 일본을 역사적으로 매우 안좋게 보는 편.


5.7. 미얀마[편집]


초기에 일본군을 환영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영국보다 더 악랄한 민낯이 드러났다. 자세한 항목은 버마국기무라 헤이타로 참조.


5.8. 캄보디아[편집]


이쪽은 여기 왕이었던 시아누크가 상당히 친일파였다.


6. 그 외 나라의 반일[편집]


인도의 세계사 교과서도 일본을 침략국가라고 규정한다. 인도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1889~1964)가 영국의 단속으로 구속 수감됐을 때 딸인 인디라 간디(1917~1984)에게 보낸 편지를 봐도 3.1 운동을 찬양하며 한국을 억누르는 일본도 영국과 똑같은 제국주의 침략자라고 비난했다. 특히 러일 전쟁 때는 '동양의 한 나라'가 열강을 꺾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희망을 가졌던 그이기에 배신감이 더욱 컸을 것이다. 그런 그가 초대 총리였으니 인도 세계사 교과서에선 일본은 영국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침략자인 것이다. 일본 극우들은 반일파(?) 네루가 아니라 찬드라 보세가 인도 총리였다면 일본과 인도는 사이가 더 좋아졌겠다란 헛소리를 이야기하는데, 어차피 찬드라 보세는 친일파가 아니라 일본이나 심지어는 나치의 힘을 빌려서라도 영국에 맞서려던 것뿐이었다. 그가 일본을 환장하게 좋아했다는 근거는 없다. 좋아했든 싫어했든 결과적으로는 통수로 되돌아왔고 어차피 연합국 소속 국가 식민지라도 추축국인들 딱히 더 좋게 보지는 않는다. 2차 대전은 선과 악의 전쟁으로 보기 어려웠고 연합국, 심지어 중화민국도 별로 좋은 놈들은 아니었다. 단, 추축국이 더 미친 놈들이었을 뿐. 결론은 캐나다와 노르웨이가 제일 깨끗하다. 현재 인도는 친일 국가로 분류된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인도 관계 문서 참고

서유럽은 현재는 반일 정서가 거의 없지만 태평양 전쟁에 관련이 있는 장년층 세대들은 일본을 결코 좋게 보지 않는다. 특히 네덜란드 에서 심했는데 일단 나치한테 제일 크게 당한 나라가 네덜란드기도 하고 일본은 나치의 동맹국이면서 바타비아 식민지를 침략해 많은 네덜란드인이 죽고 많은 숫자의 네덜란드 여자들이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가 된 역사가 있어 아직 2차대전 참전세대가 많이 살아있던 1970년대에 쇼와 덴노고준 황후 내외가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테러를 당할 뻔 했다. 다만 지금은 전쟁이 끝난 지 오래라 반일감정이 많이 사라진 편이다. 때문에 보수주의자나 우익 같은 사람들을 빼면, 전쟁과 관련이 없는 현 세대는 반일정서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래도 역사는 절대로 잊지 않고 일본을 독일과 세트로 외교적 차원에서 현재까지 압박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두 나라(독일과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늘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것. 반대로 북유럽, 동유럽에는 반일감정이 전혀 없으며 중국에 대한 반발심리로 일본의 논리를 대부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태평양 전쟁 때는 반 독일, 반 이탈리아 정서처럼 반 일본 프로파간다 역시 유행했고, 월트 디즈니의 단편 애니메이션들, 뽀빠이배트맨등의 만화 작품에도 이런 정서가 많이 반영된 것을 볼 수 있다.[13] 당시 히틀러 때려잡는 모습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캡틴 아메리카는 당연하게도 일본군 역시 때려잡았다. 닌자와 싸우는 배트맨

호주의 경우는 포경반대 시위나 포스터가 수시로 보이는 나라로서 그 타겟은 물론 일본이다. 일본 어선이 불법으로 영해에 칩입해 고래를 잡아가는 일이 수도 없이 터진후 분노한 호주는 일본 어선이 자국의 해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미 해군중국 해군과 연합하여 군사 훈련을 통해 일본 어선을 견제한다. 강력히 조치하며, 맬버른 같은 도시에 가면 이러한 광경을 상당히 자주 볼 수 있다. 또한 과거에 호주는 일본 어선을 무자비하게 격침시켜 일본의 불법 조업을 막고자 노력한 바 있으며, 자국에서 필리핀인 살인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죽은 필리핀인을 일본인으로 착각해서였다. 역사적으로도 호주는 건국 이후 유일하게 일본군에게 본토를 침략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감정의 골이 꽤 깊은 편.

물론 전쟁세대만큼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국가들에서는 일본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일본의 절친인 미국이라고 해서 결코 예외가 아니며, 심지어 일류와 오타쿠 문화가 꽤 성행한 독일프랑스 또한 마찬가지다.

흔히 사람들은, 위안부 문제가 동아시아권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위에 언급한 나라들은 다 명백히 일본에게 피해를 입은 나라들이다. 단지 가까운 나라들이 더 심했을 뿐이다. 인원이 적었을 뿐, 백인 위안부도 존재했다. 특히 네덜란드는 현 인도네시아의 중요성 때문에 꽤 심하게 타격받았고, 그 피해사례도 한국이나 중국과 비슷하다.

일본군의 잔인함이 동양인들에게만 발휘된 건 아니다. 미군들과 영국군들도 일본과 전쟁을 치르며 자국의 포로들이 숱하게 고문을 받았고 네덜란드 위안부 피해자도 많다. 드 골이 괜히 일본 총리보고 외판원 같다고 깐 게 아니다. 때문에 국가 차원으로 일본을 괴롭히는 네덜란드는 물론이고, 당시 일본에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피해를 입은 국가들은 어느 정도 일본을 좋지 않게 보거나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압박하는 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때가 있다. 대표적으로 2014년 프랑스 국제 만화 전시전에서 프랑스 정부가 한국의 위안부 문제 관련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이에 반발한 일본 작가들의 역사왜곡 전시물들을 강제 철거했던 일이 있었다. 이건 단순히 일본에 대한 반감보다는 일본이 게시한 작품들이 제 3국의 입장에서도 상식적으로 봐주기 어려웠던 원인도 있지만.

오세아니아, 즉 태평양 군도의 여러 나라들에도 동남아시아와 마찬가지로 반일감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일본에게 점령당했던 오세아니아의 여러 섬나라들도 일본의 침략, 지배를 받았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어를 강요하며 원주민들을 패거나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고 한다.(특히 파푸아뉴기니가 제일 심하게 당했다) 점령은 안 당했지만 투발루인들의 경우는 일본군들이 멜라네시아나 미크로네시아 등 점령지에 거주하거나 일하던 투발루 노동자들을 감옥에 가두기도 했다. 나중에 미군, 영국군의 도움으로 풀려났지만. 주로 오세아니아 지역은 노인세대들의 반일 감정이 심하며 물론 젊은층들은 노인들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의 잘못을 모르는 것도 아니며, 비판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동남아시아의 반일감정보다 낮을 뿐이지, 아주 없다고 볼 수는 없다.

[1]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는 이와 관련하여 북한이 '항일 유격대' 국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2] 국가의 뿌리가 항일에 있는 것은 대한민국도 동일하다. 이는 일본에 맞서 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한국의 정식 정부로 계승한 것을 인정한 것에서 비롯된다.[3] 이 호텔의 이름은 동아(東亞, 일본식 발음 토야)호텔로 개명당하고 일본 육군사령부로 전락한다.[4] 해군은 대규모의 함포 공격을 완차이와 코즈웨이 베이 그리고 영국의 해군 사령부가 있는 애드미럴티에 퍼부어 영국 해병대를 제압하고 상륙한다. 당시 영국 해군의 초계함은 거의 격침당했고 현재 성공회 교회인 성 요한 교회에서 저항하던 중국인 의용군과 영국 해병대, 홍콩 경찰경찰관들은 전멸당한다. 현재 이 교회에서는 이들을 순국 선열들로 기리고 있다.[5] 주로 의용군을 비롯한 반일 인사들, 망명한 중국 피난민들, 영국령 치하에서의 경찰관이나 관리 등이 학살 대상이었다. 재판없이 학살한 건 당연하다![6] 홍콩에서는 이 일본의 강점기를 3년 8개월(三年零八個月)이라 부른다.[7] 유튜브에 보이는 한국인들도 난징대학살 고인드립을 치는경우가 은근 있다.[8] 실제 한 대만 연예인이 페이스북에서 난징 대학살을 추모하는 말을 했는데 자기 나라나 관심하라는 식으로 비난하는 리플들이 달렸다.[9] 영문명 The Republic of Tawian, 혹은 The Republic of Formosa라고도 불리기도 한다.[10] 기사 원문 참고[11] Canada is the most popular. After Canada, which 92 percent of Gallup respondents said they viewed favorably, the three countries that rate the highest with Americans are England, Japan and France, which posted favorability rankings of 91, 85 and 83 percent, respectively. 해석: 캐나다가 가장 인기가 있다. 갤럽 참가자들 중 92퍼센트가 호감을 느낀다고 말한 캐나다를 뒤이어, 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세 국가들은 각각 영국(호감도 91%), 일본(호감도 85%), 프랑스(호감도 83%)다.[12] 당장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가면 일본어 표기가 있다.[13] 이중 일부는 적국인 일본제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일본인(황인)을 비하 및 희화화했기 때문에 Banned cartoon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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