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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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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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감정'''

혐일
반일
극일
지일
친일
숭일


1. 개요
2. 원인
2.1. 일본 정부의 대외팽창주의
2.2. 영토 분쟁
2.3. 일본의 우경화와 노골적인 혐한, 혐중
3. 국가별 사례
4. 일본에서의 남용
5. 관련 문서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反日 / 反日本

반일일본이나 일본의 정책·사상·문화 등에 반감을 갖거나 적대적인 성향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향은 개인에 따라 일본 정부에만 국한된 반감일 수 있으며 더 심하면 일본 문화 또는 일본인 자체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확장되기도 한다. 반일 감정이 극대화되어 일본인에 대한 혐오발언이나 인종차별적인 행위마저 정당화하려는 수준에 이르면 혐일이라고 부른다.

반일 감정은 역사적으로 일본과 끊임없이 충돌해왔던 한국북한, 중국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한국의 경우 과거 일제강점기와, 일본의 우경화, 독도 도발, 수출규제 조치 등으로 인해 반일 정서가 고조되었으며##, 중국 또한 대부분의 조사에서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최저치를 기록하는 편이다.# 반면, 아시아-태평양 권역 내 다른 국가들인 미국, 캐나다, 호주, 대만, 동남아시아나 유럽권 국가들은 이런 정서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일본에 대한 반감은 주로 한·중 양국의 일본 불매운동이나 국가 주도의 무역제재, 그리고 위안부강제징용, 난징대학살 등의 과거사 청산 문제를 둘러싼 시민 사회의 여론전과 같은 형태로 드러난다. 다만 2022년 현재까지 반일 정서가 각국의 국가 대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례는 없으며,[1] 특히 같은 서방 세계의 일원인 한국의 경우 스포츠 등 문화적인 영역에서의 라이벌리가 강한 편이다.

일본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반일 교육'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즉, 어릴 때부터 왜곡된 반일 교육을 받아서 일본이 억울하게 미움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이 일본에 대해서 배우는 역사 교육은 반일 교육이라기보단 반일제 교육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역사와 관련하여 과거 피해국 입장에서 추축국에 반감을 가지는 건 당연한 현상이며,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나 유럽 국가들도 반나치 교육을 받으며 나치의 만행에 분노한다. 그런데 독일은 철저한 역사 교육을 통해 스스로 반성을 해왔고, 나치와 현 독일을 명확하게 구분짓기 때문에[2] 반나치 교육을 받은 피해국 국민들의 반나치 성향이 반독일 성향으로까지 이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일본은 우익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및 전쟁범죄 부인, 역사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적반하장경제 보복과거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반일제 교육을 받은 주변국 국민들의 반일제 성향을 반일 성향으로 이어지게끔 일본 스스로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과 그때의 전쟁범죄에 대한 독일의 철저한 역사 교육과 대비되는 일본의 부실한 역사 교육 등, 일본 정치계와 교육계의 행보가 주변국의 반일 감정을 불러일으켜 왔고, 그런 역사 교육의 차이로 인해서 주변국들의 반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인들 또한 한국이나 중국을 혐오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2. 원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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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중적 표현"(예컨대 비난하다-힐난하다, 맞다-쳐맞다 관계가 해당하며, 이 중 힐난하다는 '비난하는 정도가 거북할 정도'라는 부분을 비난하다에서 추가한 용례로 사용하므로 이에 해당합니다)에 대한 분쟁이 있는 경우 그 부분에 대한 사람들의 공감 정도가 크다는 점이 토론을 통하여 입증되지 않은 이상 가장 기본적 의미를 담은 표현으로 존치합니다. 이 경우 가중적 표현을 사용한 3개 이상의 제도권 언론사의 기사나 국민적 공분이 크다는 점이 입증되는 여론조사 결과가 근거자료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3. 사실관계상 그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입증되는 경우(예컨대 '고의'와 같은 단어)에 다중관점으로 존치합니다.
4. 3번과 그 외의 경우를 포함하여, 다중관점이 적용된 문단을 생성하는 경우에는 2번 항목의 예외를 적용합니다.


대표적 한·일 문제로는 위안부 등 역사 문제, 독도 등 영토 문제,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 문제를 들 수 있다. ..(중략).. 대표적 한·일 문제에서 해결되지 않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일본 시민보다 우리나라 시민이 훨씬 높았다. 특히 영토 문제와 역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보는 우리나라 시민은 90%를 상회했다.

한·일 갈등에 대한 양국 시민 인식 조사, (한국 언론 재단)


2012년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논란, 일본의 지속적인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인한 영토갈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아베 총리의 고노 담화 수정 발언 등과 더불어 심화되는 일본의 우경화 및 군사대국화 시도는 한국인의 대일감정을 악화시킨 주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대일본 감정에 미치는 요인에 대한 경험적 분석,(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2.1. 일본 정부의 대외팽창주의[편집]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과의 협력이 불가능한 이유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보통국가화 시도, 그리고 궁극적으로 과거 일본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군사대국화를 시도하려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특히 21세기 들어 동아시아 평화와 공존공영의 질서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역행하고 있는 일본 정치 및 사회의 우경화 현상을 볼 때, 이 같은 우려에 따른 부정적 대일감정은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의 대일본 감정에 미치는 요인에 대한 경험적 분석,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일본 정부의 대외팽창주의는 일본 대내외적 사정으로 인해 날이 갈수록 논란이 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2010년경 아베의 집권 이후 이러한 흐름이 심화되었는데, 일본 경제 침체의 탓을 해외로 돌림과 동시에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러면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행동이 평화 헌법의 폐지 주장이다. 해당 법안은 일본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 다시는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교훈에 따라 만든 헌법으로 군대의 보유, 국가 교전권 등의 포기를 명목상으로 선언한 내용이다. 일본은 해당 법안을 기반으로 자위권만 가지고 교전권은 가지고 있지 않은 준군사조직인 자위대를 창설했으며,[3] 국가 최고법인 헌법상에 이러한 메시지를 남겼다는 것은 명목적인 의미가 있는 편이다. 하지만 아베의 집권 이후 헌법 개정을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는 상태이다. # #


2.2. 영토 분쟁[편집]


일본이 영유권 분쟁에 휩싸여 있는 지역은 결국 일본의 군국주의가 19세기 말 성장했다가 20세기 중반 패망하면서 발생한 역사적 상황에 따라 전쟁의 결과로 주어진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2차대전 이후 전후 미국이 주도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에서 한중 등 관련국을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결과로 잠복되어 있던 문제들이 일본의 국내정치 우경화와 함께 과거침략역사를 부정하는 흐름 속에서 해양자원 개발에 대한 관심이 최근 영토분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우경화, 한일관계 그리고 동아시아, (비판사회학회)


일본은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국가가 (미승인국을 포함하여) 5개에 달한다.[4] 일본과 관련한 영토 분쟁 지역으로는 대표적으로 독도, 센카쿠 열도, 쿠릴 열도가 해당된다. 특히 일본과 관련한 모든 영토 분쟁 지역은 모두 일본의 과거 제국주의 시절 대외 팽창 정책과 연관된 영토들로, 이 지역들에 대해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대외 팽창정책의 일환으로 여기는 여론이 많아 반일 감정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일본 정부에서 강경책으로 대응하는 탓에 해결이 어려운 것 또한 문제. 일본은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매년 열면서도, 단 한 해도 빠짐없이 수상[5]이 거기에 참관 또는 축전을 보내고 있다 또한 센카쿠 열도의 경우 자위대를 주둔시키고 일반인의 출입을 엄금하는 상태이다. 독도에 최대한 일반인 관광을 늘리고 평화의 섬 이미지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한국 정부와는 상반된 태도.[6] 쿠릴 열도의 경우 4개 섬을 두고 영토 분쟁중인데, 양측에서는 4개의 섬 중 2개의 반환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어느 섬도 반환할 수 없다는 입장과 일본에서 4개의 섬 모두를 돌려받겠다는 입장이 대립하여 아직도 협상은 진행되지 않는 중이다.


2.3. 일본의 우경화와 노골적인 혐한, 혐중[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일본의 우경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당시 3당 합의로 무라야마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를 채택하면서 담화의 중심 내용인 과거의 '침략', '식민지 지배', 통절한 '반성'과 진심으로 '사과' 문제를 둘러싸고 자민당 우파 정치인들과 우익들의 저항이 강해졌다. 자민당 우파 정치인들은 우익적인 활동을 강화하면서 내셔널리즘을 고양하고,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새역모 등이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예를 들면, 무라야마 정권의 통산장관이었던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는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키려고 하였다”는 등의 발언을 하면서 아시아 침략의 역사를 왜곡하려고 하였다.

일본 보수정치인들의 역사인식과 역사적 전개, (동북아역사재단)


역사적 트라우마는 기억의 환기를 통해서 작동하는데, 일본은 계속 반복적인 역사왜곡을 현재까지도 이어옴으로 인해 한민족의 상처를 치유하기보다는 식민의 공포를 상기시키며, 끊임없이 상호의 유대감을 파괴하고 '실재적 불안'을 재생산하고 있다.

일본의 한국사 왜곡과 역사치유 (일본관계사학회)


아베 신조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관해 무라야마·고노담화를 부정하는 발언(#) 등을 시작으로 일본의 역사 수정은 지속되어왔다. 위와 맞물려 나타나는 것이 바로 우익의 득세이다. 일본은 모리토모 학교 비리 사건 등의 사례와 같이 초등학교에서부터 노골적인 혐한 감정을 교육시키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일본 우익 세력과 관련한 새역모가 검정에 통과되었다.# 하지만 해당 기사는 어느 정도 걸러서 들을 필요가 있는데, 실제로 일본 교육계에서 새역모 교과서의 채택률은 112만부 중 435부 정도로 굉장히 낮다. 사실상 일본 교육계는 새역모를 비롯한 역사왜곡 세력들의 입장을 철저하게 묵살하고 있는 상태.

또한 아베 정권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혐한 보도로 인해 일본에 대한 반감이 생기기도 했다. #

다만 신냉전 이후 중국의 패권주의식 외교가 심해지고 한국과 일본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게 되어 한국의 반일감정은 이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일본 역시 2020년대에 들어 자민당 내 온건파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집권한 이후로는 이러한 정치권의 우경화가 많이 옅어졌으며, 일본의 반한혐한 감정도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물론 아직도 일본의 일부 우익 정치인들이 구설수에 오를 만한 태도를 보이기는 하지만 과거사를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행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3. 국가별 사례[편집]



3.1. 아시아[편집]


파일:39B55A80-D52F-432D-8CD6-1323A971C241.png
아시아는 대한민국과 북한, 중국 본토를 제외하면 일본을 매우 좋아하는 편인 지역이다. 전쟁 당시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을 침공했다지만 전후 일본은 막대한 배상을 했으며 또 천문학적인 금액을 꾸준히 원조하고, 투자 또한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 하지만 한국과 중국에서는 일본이 사죄와 배상을 하기는 했지만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등의 역사 왜곡을 일삼고 있어 일본의 사죄가 진정성이 없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반일감정이 매우 크다.[7] 그나마 한국은 2020년대에 들어 신냉전 시대가 도래한 이후 반일감정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한국과 중국뿐 아니라 타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반일 감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이는 아래 글에 후술.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의 반일은 대체적으로 그다지 격하지 않다. 그저 역사적으로 '일본이 잘못했다' 정도만 알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한국, 중국과는 달리 다른 서양 국가에게 오랫동안 식민지배를 받았고 일본의 직접적인 점령이 매우 짧아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경향도 고려해야 한다. 국민적인 정서상 한국이나 중국에서 보여주는 극단적인 반일감정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의 보통국가화와 재무장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데 여기에는 중국의 영토분쟁 문제 때문에 중국이라는 공동의 적을 함께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단순히 친일적이라고 볼 순 없다. 동남아시아의 민족 구성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집권 정치층과 일반 대중을 나눠서 봐야 이해할 만한데,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동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국민국가라는 개념이 근대까지 없었으며, 부족 중심의 복잡한 정치 타협체이다. 다르게 얘기하면 일본의 동아시아 진출은 일본인 대 한국인, 일본인 대 중국인 식의 민족 대립 양상을 띠었지만, 이 지역에서는 몽 vs 크메르 vs 일본인 vs 화교 vs 베트남인... 이런 상황에서 비록 엄청난 병크를 저질렀지만, 현재 당장 국내 정치적으로 심각한 갈등은 국내의 다른 여러 제 민족이 일으킬 때가 훨씬 더 많다. 따라서 한국이나 중국 등에서 보이는 극명한 반일 양상이 없다. 특히 동남아시아 몇몇 국가의 지도층은 서양의 식민지를 벗어나러 의도적으로 친일에 끼었다가 전쟁 후반부에 반일로 돌아선 때도 있어서 대놓고 반일이 아닌 때도 있다. 놀랍게도 그 유명한 아웅산 수 치 여사가 이끄는 계열이 여기에 들어간다. 이들 국가에서 정치층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특정 부족을 위해, 그리고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이 지역의 자원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투자와 지원을 하는 일본 정부와의 협력을 전략적으로 강화하려고 든다.

중국과 한국은 동아시아 특유의 민족주의 성향이 크며, 두 나라는 과거 일본이 독주하다시피하던 1980~2000년대와 현저히 달라진 현재 높은 국력까지 더해 일본의 정치적 행보를 반대하거나 직접적으로 견제할 만큼의 입지까지 있어 현재까지도 국가 차원이나 국민 차원의 마찰이 잦다. 그 일과 달리 이젠 한중일이 경제적으로 탄탄히 얽혀서, 서로 반발과 견제는 할지언정 경제적으로 서로의 관계가 끊어지기는 매우 힘들다. 반면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일본과 티격태격할 만큼의 국력이 부족하다. 요약해서 정리하자면 동남아시아의 반일은 동아시아보다 약한데, 식민 지배가 짧았기도 하지만 민족국가 구성이 느렸고, 지난 20년간 일본이 이곳에 끊임없이 투자로 구애했다는 게 그 요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런 모습은 정서와는 관련없이 실익을 위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3.1.1. 대한민국[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반일/대한민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2. 북한[편집]


북한남한보다 반일감정이 압도적으로 강한 편이며, 1945년 해방 및 남북 분단 이후 미국 및 서방국가에 버금갈 만큼 일본을 매우 적대시해 왔다. 일찍이 북한 지도부의 근원이 동북항일연군과 같은 항일 빨치산 세력이기도 했고[8], 해방 및 남북분단 당시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사회주의 국가 건설 및 김일성 우상화 과정에서 가장 없애야 할 잔재거리로 당시 북한에 남아있는 일본인을 지목하여 모조리 쫓아내거나 반동분자로 몰아 때려 죽이기도 하였다. 넓게는 과거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친일파매국노로 있던 인물들도 들어갔다. 이런 면에서는 친일파, 매국노 숙청에 미적지근했던 남한보다 이미지 메이킹을 확실히 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은 친일경력자를 여럿 등용한 것은 마찬가지였음에도.

특히 과거사 문제 등으로 반일성향이 깊은 편이며, 일본측의 과거사 망언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에도 반발하였던 적이 있고, 왜왕을 우리의 민중에게 고통을 주게 한 불구대천의 원흉이라고도 주장하였다. 국가의 뿌리를 항일에서 찾으니 전 세계에서 반일이 가장 심하다고 한다.[9] 때문에 뉴스에서 대놓고 일본을 상대로 욕설을 하기도 한다.


3.1.3. 중국[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반일/중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4. 홍콩[편집]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또 하나의 일제 침략의 피해국. 일본이 점령했을 당시 중국인이 많이 학살당하고, 홍콩의 언어인 영어광동어 모두 사용금지되고 일본어만 쓸 것을 강요받고, 강제 지명 변경 및 창씨개명, 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대규모 생체실험까지 겪은 엄연한 피해자인데 한국인들은 잘 모른다.

1941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대규모의 육군 기병, 기갑, 포병 부대를 광둥성에서 구룡반도로 남하시키고, 일본 해군홍콩 섬 코즈웨이 베이에 함포사격을 퍼부어 해안방어를 하던 영국 해군해병대를 제압한 후 대규모의 육전대를 상륙시켜서 점령해 버렸다. 당시 구룡에는 중국 대륙에서 중일전쟁을 피해 피난 온 광동과 푸젠 출신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 중엔 국부군들도 많았고 당연히 이들은 일본군이 진주하자 낭패를 봤다(...)

일본군은 침사추이에 입성한 후 페닌술라 호텔[10]에서 조용히 최후를 기다리던 총독에게 항복을 받아낸다. 문관 총독이 오던 홍콩은 전혀 전쟁 준비가 안되어 있었고 법관 출신이었던 당시 총독 역시 본국이 멀쩡히 살아 있음에도 불구 겁을 먹고 투항한다. 인도차이나가 본국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당해 비시 프랑스라는 괴뢰국으로 전락해 할수 없이 투항한 것과 다르다. 호텔을 접수한 일본의 야마시타 도모유키 장군은 호텔을 임시 육군 사령부로 만들고, 육군 병력이 보트를 타고 빅토리아 하버를 건넌 해군 육전대와 합류하며[11] 곧 이어 홍콩 경찰홍콩 소방처 그리고 주둔 영국 해군 사령부 등을 해체하고 계엄령을 내려 일본 제국 육군헌병들이 대신 치안을 전담한다.

당시에 일본군은 빅토리아 피크에 홍콩신사, 라이언 락에 구룡신사를 짓고 홍콩인들에게 참배를 강요했으며 홍콩 섬 코즈웨이 베이나 구룡반도 홍함 등에선 민간인 학살을 저지르기도 했고[12] 수많은 화인들을 카이탁 공항 활주로 확장공사에 강제 징용해 원성을 산다. 그러나 카이탁 공항은 차라리 나았던 것이 화인들이 징용으로 끌려간 곳은 카이탁 공항뿐만이 아니었고, 당시 광둥 성의 일부였던 하이난 섬으로 2만여 명의 화인들이 2만여 명의 본토인들과 함께 징용으로 끌려갔는데 이들 4만여 명 가운데 살아온 사람들은 겨우 5천 명이었다고 한다.

흔히들 일뽕이나 일본 우익들이 홍콩이 대만처럼 친일 성향이 강하다는 말을 해서 홍콩이 친일 성향이 강한 줄 아는 경우가 많으나, 홍콩의 경우에도 본토 못지않게 반일감정이 심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4년간 일본에게 점령되었던 역사가 있고[13] 그 사이 현지인에게 한 잔학 행위가 꽤 많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이 시기에는 일본의 수탈이 극심해 사람들이 대규모로 아사하거나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기까지 했고(이 시기에 굶어죽거나 병으로 죽은 사람만 5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수많은 화인들이 광동 성으로 추방당해 일본의 점령 이전 160만 명이던 홍콩의 인구가 해방 직후 60만 명으로 쪼그라들었으며, 전술했다시피 화인들이 학살당하거나 징용을 끌려가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문제나 역사 교과서 왜곡 등이 터지면 홍콩 내에서 홍콩 극우들이 반일 시위도 한다. 그리고 본토계 피난민들이 많은 구룡반도에선 일본어를 쓰고 다니면 좋은 시선을 못 받는다. 몇몇 노인들은 대놓고 일본어를 쓰면 고함을 치며 욕을 할 정도다. 가끔 구룡에선 일본인 택시 승차거부도 일어나기도 한다. 대만에서는 "대만을 근대화시켜주신 일본인들께 감사드립니다"라는 팻말을 건 택시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완전히 다른 수준. 홍콩에서 이러면 집단다굴당할 가능성이 높다. 2017년에는 홍콩의 반일단체가 홍콩 주재 일본총영사관이 입주한 빌딩 인근의 육교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상징하는 소녀상 2개를 설치했다. 중국서 이틀째 격렬한 반일시위…50여개 도시 8만명 거리로

그렇지만 평범한 일본인이나 일본 문화에게는 우호적이다. 특히 젊은층으로 갈수록, 본토파일수록 반일 의식이 약한 편이다. 사실 이건 젊은층의 본토 중국인한국인들도 마찬가지로, 그렇다고 해서 일본 우익이나 정치인,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3.1.5. 대만[편집]


대만에서는 정치권과 달리 민중들 사이에서는 반일감정이 그리 심하지는 않고 오히려 친일에 가깝다. 대만-일본 관계 참고.

그렇다고 해서, 대만에서도 우서 사건이나 모란사 사건은 부정하지 않는다. 영토 문제에는 강경해서, 전임 총통 마잉주댜오위타이를 ICJ에 제소하자라며 역제안도 했고 특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대만을 비롯해서 한국과 중국 등 일본에게 피해를 입은 아시아 국가들 입장에서 매우 분노할 점이다. 게다가 야스쿠니 신사에는 일본의 전쟁범죄에 강제징용 된 대만 원주민도 무단으로 합사되어있어서 대만 원주민 출신의 가오진 쑤메이는 10차례 일본을 방문해 야스쿠니를 반대하는 활동을 벌인 바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집권 1주년을 기념한답시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자 대만에서는 항의시위가 벌어졌고 전임 총통 마잉주는 야스쿠니 참배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짓이라고 비난했다.

일본은 바다에 오키노토리시마라는 콘크리트 방파제를 설치해 섬이라며 오키노토리시마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주장한다. 그런데 오키노토리시마 근방에서 대만 어선이 고기를 잡다가 일본 해상보안청이 대만 어선을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침범했다는 명목으로 나포하자 결국 대만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마잉주 대만 총통은 직접 항의했다. 또 마잉주 대만 총통은 대만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방문하여 일본 극우들을 당황하게 했으며, 대만에도 일본군 위안부 동상이 설치되어있다. 일본의 한 우익인사는 대만의 위안부 동상에 발길질을 해서 대만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인사는 몸이 뻣뻣해서 스트레칭을 한 것이라는 변명을 내놔 대만에서 반일감정이 폭발했고 수백 명의 시민들이 대만 내 일본대사관 격인 일본대만교류협회로 몰려가 페인트와 계란을 던지며 거세게 항의했다.


3.1.6. 인도네시아[편집]


다른 동남아 나라처럼 식민통치를 겪어 수카르노, 수디르만 등 독립 투사 등이 일본과 네덜란드의 점령에 저항했다. 다만 현재 인도네시아는 일본을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일 정도로 친일 성향을 띤다.


3.1.7. 말레이시아[편집]


외교부 인사가 일본에 대하여 2차 대전 당시 동남아를 쳐들어와 학살과 약탈을 벌였다면서 차라리 영국이 조금은 낫다는 말까지 대놓고 하여 일본인들을 무안하게 만든 일이 있다.(일본은 없다에 나오는 이야기). 실제로 민간인을 8만 명이나 학살했고, 특히 중국계들의 피해가 막심해 화교들 사이에서는 반일감정이 매우 깊다. 당시의 말레이시아는 지리상으로 중국과 가까워서 화교들이 많이 이주해서 살았는데, 말레이계와 중국계 사이를 이간질해서 서로 죽이게 했다고. 말레이계나 인도계들한테는 일본군은 해를 거의 가하지 않았지만 중국계는 닥치는 대로 죽였다고 한다.


3.1.8. 베트남[편집]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를 일시적으로 뭉개고 쳐들어온 일본을 환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국부 호치민조선을 예로 들며 일본도 프랑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제국주의 침략자라고 견제했고, 베트남 교과서에서도 일본의 식민지배를 비난하고 있다. 이렇게 강력하게 규탄하게 된 이유는 태평양 전쟁 시절 베트남을 점령한 일본은 조선에게 그러했듯 베트남에게도 일본군의 각종 민폐 세트와 더불어서 당연히 을 강제로 수탈해서였다. 그러다가 1945년, 수탈과 더불어 대기근이 일어났다. 일본군의 쌀 공출과 홍수 - 가뭄으로 온 흉년, 미군 잠수함 공격에 남베트남에서 쌀 수송의 난항은 기록적인 대기근으로 돌아왔다. 당시 북베트남의 인구는 1,000만 정도였는데, 이 대기근에서 아사자만 200여만 명.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의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상당히 커졌다. 때문에 베트민은 세력을 크게 늘릴 수 있었고, 일본 항복 직후 일시적이나마 베트남 전토를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인구 1/5이 굶어 죽었는데 강제적인 쌀 공출을 하면 당연히 분노했을 것이다. 참고로,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베트남인의 체험문학작품을 보면, "쌀을 가져가면 안 돼! 가져가지 마라!"라고 울부짖는 여인을 칼로 베어 죽이고 어거지로 쌀을 공출하는 일본군의 모습이 보인다.


3.1.9. 라오스[편집]


선생으로 봉사하는 한국 봉사단체 KOICA 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라오스 세계사 교과서도 '일본은 2차 대전 침략국가로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하여 학살을 벌였다'고 집필했다고 한다.


3.1.10. 필리핀[편집]


2차 세계 대전 때 태평양의 이탈리아 전선 소리 들으며 학계의 추산으로 70만~100만, 인구의 5~9%가 2차 대전으로 인한 파괴, 학살, 기아로 죽으며, 수도인 마닐라만 하더라도 유서 깊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보존 되었던 구시가지가 가루가 되어 버리는 등 물질적으로 태평양 전선의 핵심 중 하나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당장 바탄 죽음 행진 같은 전범 행위가 대거 발생한 곳인 만큼, 정치적 상황이 혼잡하서 대립이 극심한 나라임에도 항일 투쟁만은 공산당이나 신인민군 같은 좌익, 막사이사이 같은 우익, 모로 해방 전선 같은 소수 민족 분리주의 계열 마저도 협력하며 공유하는 역사이다. 라몬 막사이사이는 자신의 반일 투쟁 경력이 정치적으로 큰 도움이 됐고,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도 엉터리지만 자신이 전쟁 도중 항일 투쟁에 나섰다고 말했다. 다만 21세기 들어서는 반일감정이 매우 옅어진 상태인데, 스페인과 미국의 지배와 비교해 보면 일본 치하에서 고통받은 기간은 상대적으로 매우 짧은 데다가, 전쟁 중 입은 피해에 대해서 대놓고 일본에 항의하기에는 이미 종전 이래 시간도 너무 오래 지났고, 국력도 충분하지 못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3.1.11. 싱가포르[편집]


2차 대전 당시 일본에게 겨우 4년 지배당했음에도 무수한 중국화교들이 일본군에게 학살당하거나 살아남아도 특별세금에 시달렸으며, 말레이계와 이간질시켜 일본군이 물러나고 골머리를 앓아서인지 교과서가 꽤 반일적이다. 그렇지만 일본문화에 대해서는 굉장히 우호적이며 일본인 이민도 많다. 당장 싱가포르에서 영어표준중국어 외에 메이저 언어로는 일본어가 있을 정도이다.[14]정부 대 정부로 볼 때 싱가포르일본은 경제 및 군사적 협력관계이며 최근 중국 견제를 위해 싱가포르와 일본의 양국이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 아베 신조싱가포르를 방문해 집단적 자위권 지지를 호소한 바 있다. 물론 정부 대 정부 차원이나 일반 일본인, 문화에 대한 우호감정과 별개로 제국주의 일본이나 일본 극우는 철저히 까인다. 중국계들은 일본을 역사적으로 매우 안 좋게 보는 편이다.


3.1.12. 캄보디아[편집]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점령하고 캄보디아 왕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우며 캄보디아인들을 학살 및 탄압했기 때문에 캄보디아에서도 반일감정이 남아있다. 그래서 역사적인 갈등이 일부 존재하나, 앙국 간 경제·문화적인 교류는 활발한 편이다.


3.1.13. 인도[편집]


인도의 세계사 교과서도 일본을 침략국가라고 규정한다. 인도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1889~1964)가 영국의 단속으로 구속 수감됐을 때 딸인 인디라 간디(1917~1984)에게 보낸 편지를 봐도 3.1 운동을 찬양하며 한국을 억누르는 일본도 영국과 똑같은 제국주의 침략자라고 비난했다. 특히 러일전쟁 때는 '동양의 한 나라'가 열강을 꺾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희망을 가졌던 그이기에 배신감이 더욱 컸을 것이다. 그런 그가 초대 총리였으니 인도 세계사 교과서에선 일본은 영국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침략자인 것이다. 일본 극우들은 반일파(?) 네루가 아니라 찬드라 보스가 인도 총리였다면 일본과 인도는 사이가 더 좋아졌겠다란 헛소리를 이야기하는데, 어차피 찬드라 보스는 친일파가 아니라 일본이나 심지어는 나치 독일의 힘을 빌려서라도 영국에 맞서려던 것뿐이었다. 그가 일본을 환장하게 좋아했다는 근거는 없다. 좋아했든 싫어했든 결과적으로는 통수로 되돌아왔고 어차피 연합국 소속 국가 식민지라도 추축국인들 딱히 더 좋게 보지는 않는다. 2차 대전은 선과 악의 전쟁으로 보기 어려웠고 연합국, 심지어 중화민국도 별로 좋은 놈들은 아니었다. 단, 추축국이 더 미친 놈들이었을 뿐. 결론은 캐나다와 노르웨이가 제일 깨끗하다. 현재 인도는 친일 국가로 분류된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인도 관계 문서 참고.


3.1.14. 이스라엘[편집]


좀 애매하긴 한데,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 등에 대해서는 반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피해를 홀로코스트와 동일시하려는 일본의 피해자 행세를 불편하게 보는 편이다.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유일무이성을 강조하는데, 더군다나 2차 대전 시기 일본은 유대인을 잔인하게 학살한 나치 독일과 동맹국이였기 때문에 더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하아레츠 등 이스라엘의 자유주의 좌파 언론들은 일본의 혐한 현상이나 국수주의에 대해 조명하며 비판하는 보도를 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나치 독일과 대놓고 동맹이자 추축국의 일부였었던 일본을 완전히 좋게 보기만은 힘든지라, OECD 국가 중 슬로베니아와 더불어 독도를 단독표기하는 나라로도 알려져 있다.[15]

다만 일본 제국이 나치 독일과 달리 유대인들에게 직접적으로 큰 피해를 준 것은 많지 않은 데다가, 이스라엘과 일본 모두 같은 친미국가이고, 시리아에 무기 지원을 이유로 이스라엘 또한 반북 기조가 있어 기본적으로는 상당히 우방국에 가깝다.

역사 문제와 무관한 이슈로는 골판지 침대와 관련해서 양국 간에 갈등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1#2

그나마 한국의 반일 감정과 비교할 만한 사례라면 이스라엘 내의 반독 감정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독일은 아무래도 과거사 반성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현대 이스라엘에서 반독 감정은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으나, 이스라엘 초에는 반독 감정이 상당했었다. 특히 나치 패망 이후 유대계 좌파민족주의자들은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이 주축이 되어 독일인 무차별 살해를 지지한 테러단체인 나캄(נקם)[16]을 부분 지원하기도 하였다. 다만 21세기에 와서는 노골적 반독 정서는 거의 사라졌으나 스포츠 등에서 한일전 비슷하게 독일에 대한 민족주의적 정서는 일부 나타나기도 하는데, 가령 현대 이스라엘인들은 이스라엘이 독일과 축구경기를 하면 다른 국가들보다 더 열광적으로 자국을 응원하며, 독일이 타국과 축구경기를 붙으면 이스라엘인들은 타국을 응원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3.2. 미국[편집]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반일 정서가 극한에 달했지만, 1950년은 6.25 전쟁이 터지자 공산국가 북한과 중국을 막자는 차원에서 한-미-일 삼각동맹 라인을 구축해내 정책적으로 반일 의식이 점차 희석됐으며, 현재는 전쟁이 어느 정도로 잊어진 지 오래돼서 반일 정서가 약하거나 거의 없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에 관련이 있는 노년층 세대 중엔 일본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참전용사들이 그런 경우로 '잽(Jap, 일본인 비하 명칭)' 등의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며, 진주만 공습 당시 자식을 잃은 부모들 또한 마찬가지다. 또 1970~1980년대 대일 무역 적자로 인해 일본에 대한 감정이 매우 악화되기도 했었다. 현재 미국은 일본에 친일 성향을 띠는데, 2017년 미국의 언론인 WashingtonExaminer는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국가들 중에서 일본이 캐나다, 영국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17][18]


3.3. 러시아[편집]


러일전쟁에 관한 문제로 인해 러시아에도 반일이 있는 편. 물론 할힌골 전투에서는 관동군만주군을 상대로 완승하였고, 2차대전 말기에 다시 소련군일본군붙어 승리를 거뒀지만 그 감정은 아직도 남았고,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쿠릴 열도 분쟁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러시아 대표팀이 일본에 졌을 때 화난 러시아인들, 특히 쿠릴 열도가 있는 극동 거주민들은 대규모 폭동을 일으켜 일본차를 불태우고 심지어 대사관 의전차량을 공격했을 정도다.

쿠릴 열도에 러시아해군 및 산하 육전사단, 그리고 공군 등 군대를 주둔시킴과 동시에 중국군과 연합 훈련을 하기로 결정했기에 러일관계도 얼어붙는다. 몇 차례 걸쳐 내무군 소속 해양경찰대가 일본인 어부를 사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 밖에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한국/미국/중국/러시아가 일본과 갈등이 많은 상태였어도 많은 도움과 지원을 보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런 도움을 받고도 영토 주장을 계속함도 모자라 태평양에 방사능 오염수를 무단으로 버리고, 일본 정부가 자국의 방사능 오염 물건들을 계속 수출하려는 모습을 보여 일본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가 급격히 싸늘해졌다.

2014년에는 러시아 부총리인 드미트리 로고진이 문제의 쿠릴 열도를 방문했을 때 일본에서 항의하자 "일본인은 할복 자살하라"고 발언했다. 당연하지만 이에 대해 당사국인 일본 네티즌들은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간간이 터지는 쿠릴 열도 이슈 때를 제외하면 반일 감정이 아주 큰 편은 아니다. 러시아는 일본보다는 전통적인 라이벌 미국영국,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적대 관계였던 독일, 폴란드, 터키, 발트3국 등을 더 싫어하며 이 국가들과의 갈등[19]과 비교하면 일본과의 갈등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크지 않다. 오히려 다른 서양 국가들처럼 일본 요리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경향도 있어 일본에 우호적인 시선도 많은 편이다.#[20] 물론 쿠릴 열도 분쟁이 커지면 역정을 내는 반응도 그때마다 커지긴 한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본도 대러시아 재제에 참여하고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하면서 러시아는 쿠릴 열도 관련 평화협상을 또 파투내면서 다시 반일 감정이 커진 상황이다.[21]


3.4. 서유럽[편집]


현재는 반일 정서가 거의 없지만 태평양 전쟁에 관련이 있는 장년층 세대들은 일본을 결코 좋게 보지 않는다. 특히 네덜란드에서 심했는데 일단 나치한테 제일 크게 당한 나라가 네덜란드기도 하고 일본은 나치의 동맹국이면서 바타비아 식민지를 침략해 많은 네덜란드인이 죽고 많은 숫자의 네덜란드 여자들이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가 된 역사가 있어 아직 2차대전 참전세대가 많이 살아있던 1970년대에 쇼와 덴노고준 황후 내외가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테러를 당할 뻔 했다. 다만 지금은 전쟁이 끝난 지 오래라 반일감정이 많이 사라진 편이다. 때문에 보수주의자나 우익 같은 사람들을 빼면, 전쟁과 관련이 없는 현 세대는 반일정서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래도 역사는 절대로 잊지 않고 일본을 독일과 세트로 외교적 차원에서 현재까지 압박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두 나라(독일과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늘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것. 반대로 북유럽, 동유럽에는 반일감정이 전혀 없으며 중국에 대한 반발심리로 일본의 논리를 대부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태평양 전쟁 때는 반 독일, 반 이탈리아 정서처럼 반 일본 프로파간다 역시 유행했고, 월트 디즈니의 단편 애니메이션들, 뽀빠이배트맨등의 만화 작품에도 이런 정서가 많이 반영된 것을 볼 수 있다.[22] 당시 히틀러 때려잡는 모습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캡틴 아메리카는 당연하게도 일본군 역시 때려잡았다.


3.5. 오세아니아[편집]


오세아니아, 즉 태평양 군도의 여러 나라들에도 동남아시아와 마찬가지로 반일감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일본에게 점령당했던 오세아니아의 여러 섬나라들도 일본의 침략, 지배를 받았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어를 강요하며 원주민들을 패거나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고 한다.[23] 점령은 안 당했지만 투발루인들의 경우는 일본군들이 멜라네시아나 미크로네시아 등 점령지에 거주하거나 일하던 투발루 노동자들을 감옥에 가두기도 했다. 나중에 미군, 영국군의 도움으로 풀려났지만. 주로 오세아니아 지역은 노인세대들의 반일 감정이 심하며 물론 젊은층들은 노인들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의 잘못을 모르는 것도 아니며, 비판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동남아시아의 반일감정보다 낮을 뿐이지, 아주 없다고 볼 수는 없다.


3.5.1. 호주[편집]


포경 반대 시위나 포스터가 수시로 보이는 나라로서 그 타겟은 물론 일본이다. 일본 어선이 불법으로 영해에 칩입해 고래를 잡아가는 일이 수도 없이 터진 후 분노한 호주는 일본 어선이 자국의 해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미 해군중국 해군과 연합하여 군사 훈련을 통해 일본 어선을 견제한다. 강력히 조치하며, 맬버른 같은 도시에 가면 이러한 광경을 상당히 자주 볼 수 있다. 또한 과거에 호주는 일본 어선을 무자비하게 격침시켜 일본의 불법 조업을 막고자 노력한 바 있으며, 자국에서 필리핀인 살인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죽은 필리핀인을 일본인으로 착각해서였다. 역사적으로도 호주는 건국 이후 유일하게 일본군에게 본토를 침략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감정의 골이 꽤 깊은 편이다.


3.6. 기타 국가[편집]


흔히 사람들은, 위안부 문제가 동아시아권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위에 언급한 나라들은 다 명백히 일본에게 피해를 입은 나라들이다. 단지 가까운 나라들이 더 심했을 뿐이다. 인원이 적었을 뿐, 백인 위안부도 존재했다. 특히 네덜란드는 현 인도네시아의 중요성 때문에 꽤 심하게 타격받았고, 그 피해사례도 한국이나 중국과 비슷하다.

일본군의 잔인함이 동양인들에게만 발휘된 건 아니다. 미군들과 영국군들도 일본과 전쟁을 치르며 자국의 포로들이 숱하게 고문을 받았고 네덜란드 위안부 피해자도 많다. 드 골이 괜히 일본 총리보고 외판원 같다고 깐 게 아니다. 때문에 국가 차원으로 일본을 괴롭히는 네덜란드는 물론이고, 당시 일본에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피해를 입은 국가들은 어느 정도 일본을 좋지 않게 보거나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압박하는 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2014년 프랑스 국제 만화 전시전에서 프랑스 정부가 한국의 위안부 문제 관련 작품들을 전시하는 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이에 반발한 일본 작가들의 역사왜곡 전시물들을 강제 철거했던 일이 있었다. 이건 단순히 일본에 대한 반감보다는 일본이 게시한 작품들이 제3국의 입장에서도 상식적으로 봐주기 어려웠던 원인도 있지만.

물론 전쟁 세대만큼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국가들에서는 일본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일본의 절친인 미국이라고 해서 결코 예외가 아니며, 심지어 일본 문화와 오타쿠 문화가 꽤 성행한 독일프랑스 또한 마찬가지다.


4. 일본에서의 남용[편집]


일본에서는 빨갱이와 비슷하게 정치적으로 자신들에 동조하지 않는 대상을 비난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만능 단어다. 일본 우익들, 그중에 특히 넷 우익들이 상당히 악용하고 있다. 일본의 잘못된 점을 지적만 해도 반일이라고 한다. 그들은 일본의 우익 정권, 정치인에 동조하지 않고 비판하면 반일분자로 낙인 찍으려 하며, 비판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주류 언론 아사히신문은 반일, 날조 신문으로 매도당하기 일쑤다.[24] 자민당 소속 정치인들조차 일본의 국익을 위해 외국인(아시아계)을 적극 활용하거나 한국, 중국과 정상적 범주 내의 교류를 하는 것도 종종 반일 정치인으로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특이하게도 넷 우익들은 기존의 용례와는 달리 일본인을 반일로 몰이질하는 사례가 많다. 거의 제국주의 시대의 비국민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수준. 재일몰이도 여전히 적지 않지만 한때 넷 우익들의 재일메이슨음모론이 일반인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된 기록이 있고,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이후엔 재일드립은 그냥 꼴통극단주의자 인증이라 상식인인 척 하고 싶어하는 넷 우익들은 반일몰이를 애용하는 듯하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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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은 일본을 적대하기보다는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거리두기는 '적성국은 아니지만 상호 신뢰도 쌓이지 않은 두 국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전략이라는 점에서 특별히 국민정서에 굴복한 결과라 보기는 어렵다. 북한중국은 국민감정과 무관하게 원래부터 일본과 적대적인 진영의 국가이고. 반대로 일본 역시 감정적 충돌과 별개로 적성국으로 상정하지는 않는다.[2] 독일의 경우 1차 세계대전의 독일 제국, 2차 세계대전의 나치당 정권 시절 독일과 현대 독일을 확실히 구분지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전쟁이 끝난 이후로 군국주의를 버리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21세기 현재까지 왕조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제국과 현대 일본을 명확하게 구분짓는 것이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래서 일본은 독일과 다르게 자신들의 전쟁범죄를 쉽사리 인정하지 못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천황 일가에 대한 모독과 자국 혐오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 자기 조상들에 대한 모독이라며 반발하는 일본인들도 있다.[3] 실질적으로는 군대에 버금가는 수준이라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이야기가 있다.[4]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국, 중화민국, 러시아[5] 한국으로 치면 정치적 위상이 대통령 정도 된다.[6] 다만 어쨌든 같은 친서방 진영에 속한 한일관계와는 달리 중일관계는 가상적국 관계임을 고려해야 한다. 일본이 대한, 대미관계 파탄을 감수하고 독도를 무력으로 점거할 가능성은 한없이 낮지만, 중국은 눈치볼 게 없으니 일본의 방비가 약해지면 센가쿠 열도 탈환이 충분히 가능하다. 비슷한 예로는 북한이 있는데, 민주당 정권이 아무리 대북 유화책을 펼친대도 휴전선에서 군대를 물리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7] 또한 한국과 중국은 일본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 독도로, 중국의 경우 센카쿠 제도로 일본과 서로 자기네 땅이라며 다투고있다.[8]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는 이와 관련하여 북한이 '항일 유격대' 국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9] 국가의 뿌리가 항일에 있는 것은 대한민국도 동일하다. 이는 일본에 맞서 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한국의 정식 정부로 계승한 것을 인정한 것에서 비롯된다.[10] 이 호텔의 이름은 동아(東亞, 일본식 발음 토야)호텔로 개명당하고 일본 육군사령부로 전락한다.[11] 해군은 대규모의 함포 공격을 완차이와 코즈웨이 베이 그리고 영국의 해군 사령부가 있는 애드미럴티에 퍼부어 영국 해병대를 제압하고 상륙한다. 당시 영국 해군의 초계함은 거의 격침당했고 현재 성공회 교회인 성 요한 교회에서 저항하던 중국인 의용군과 영국 해병대, 홍콩 경찰경찰관들은 전멸당한다. 현재 이 교회에서는 이들을 순국 선열들로 기리고 있다.[12] 주로 의용군을 비롯한 반일 인사들, 망명한 중국 피난민들, 영국령 치하에서의 경찰관이나 관리 등이 학살 대상이었다. 재판 없이 학살한 건 당연하다.[13] 홍콩에서는 이 일본의 강점기를 3년 8개월(三年零八個月)이라 부른다.[14] 당장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가면 일본어 표기가 있다.[15]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독도나 다케시마라는 표현보다는 (제3자 기준) 중립적인 '리앙쿠르 암초'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16] 히브리어로 복수라는 의미이다. 영어 발음 표기로는 Nakam.[17] 기사 원문 참고[18] Canada is the most popular. After Canada, which 92 percent of Gallup respondents said they viewed favorably, the three countries that rate the highest with Americans are England, Japan and France, which posted favorability rankings of 91, 85 and 83 percent, respectively. 해석: 캐나다가 가장 인기가 있다. 갤럽 참가자들 중 92퍼센트가 호감을 느낀다고 말한 캐나다를 뒤이어, 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세 국가들은 각각 영국(호감도 91%), 일본(호감도 85%), 프랑스(호감도 83%)다.[19] 사실 미국, 영국, 독일의 경우 러시아보다 워낙 잘살다보니 이들을 선망하는 러시아 사람들도 많다.[20] 가장 좋아하는 나라로 일본을 꼽는 응답이 여럿 나온다.[21] 그에 맞춰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 일본 분쟁 지역 쿠릴 열도에 대해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지지했다.#[22] 이중 일부는 적국인 일본제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일본인(황인)을 비하 및 희화화했기 때문에 Banned cartoon으로 분류된다.[23] 특히 파푸아뉴기니가 제일 심하게 당했다.[24] 특히, 야후 뉴스 댓글을 보면 조금만 친한 성향의 연예인들이 나오면 반일이라고 낙인을 자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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