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최근 편집일시 :
분류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현대사회에서 친일파는 일반적으로 매국노,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의미로 쓰인다. 단 친일 행위를 옹호하기 위해 용례에 따른 그 외의 담론이 존재한다.
2. 상세[편집]
한국은 조선 말부터 일본 제국에게 협조하여 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도와주고 반민족행위를 벌여서 혜택을 독점하거나 위안부, 정신대를 독려하여 민족을 팔아넘긴[6] 사람들이 많았고, 이들을 친일파라 부르며 멸시의 대상으로 삼았다. 게다가 해방 후 친일파 집단이 정치적 힘을 잃고 몰락하면서 그들의 행위를 옹호해줄 그 어떤 것도 남지 않았고, 현대 한국에서 친일파는 매국노, 친일반민족행위자와 동의어가 됐다.
친일파란 단어는 사전적으로 볼 때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가치중립적 단어이긴 하나, 역사적으로 한국인이 이해하고 사용해왔던 친일파라는 단어는 일본 제국을 좋아하거나 수혜를 받은 자 혹은 그의 후손이라는 뜻이며, 사회적으로 누가 자기를 친일파라 부르는 것은 말 그대로 욕이다. 때문에 단순히 현대 일본, 일본인이나 일본 문화를 좋아하거나 일본에 연이 있다는 뜻은 '지일파'란 단어로 대체된다. 6.25 전쟁 후 '동무'라는 단어가 '친구'에 그 지위를 넘겨주고 사어(死語)가 된 것과 같은 사례. (일뽕이라는 속어는 지일파를 낮춰부르는 단어 정도이지 친일파란 단어의 역사적 무게감은 없다.)현재 한국의 친일이라 하는 이들은 일뽕으로 그 명칭이 계승되었으며, 일뽕들은 일본을 맹목적 추종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일본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 동조하고 때로는 집단적 움직임을 보일 기미도 있다.디시인사이드의 역사 갤러리, 제식갤, 실시간 베스트 등지에서 주로 서식하며 댓글이나 남기지만, 부산 소녀상 설치 때같이 한일 우호를 외치며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서양인의 경우 오리엔탈리즘에 빠진 경우가 있고 일본뿐만 아니라 동양이라면 다 좋아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와패니즈, 자포네스크 문서로. 일본에 출장오거나 일본으로 유학 또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오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일본 사회에서 살면서 친근감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백인들은 지금도 양산되고 있다.
'친일파'라고 함은 지나친 일본 추종이란 의미가 강하므로, 단순히 건전한 수준으로 일본에 우호적인 감정에 대해서 찾는다면 친일 문서로.
3. 역사[편집]
일본은 1867년 메이지 덴노가 즉위한 후 근대 서양의 시스템으로 국가를 개조했다. 중국이 정점에 서는 수천 년 간의 조공 제도로 고착된 동아시아 국제 질서를 깨고 천황의 이름으로 대등하게 청나라와 조선에 외교 문서를 보냈다. 특히 이듬해인 1868년 조선을 향해 자신들이 '왕정 복고'를 이뤘음을 국서로 통보했는데, 그동안 형님 정도로 자신을 생각하던 조선 조정에 황제를 참칭(?)하는 민감한 언어 선택으로 큰 충격을 줬다. 자연히 '왕'인 조선은 일본에 격이 한 등급 내려간다. 당연히 조선은 국서 접수를 거부하고 일본도 1872년 외교 사절단이 철수하는 등 갈등은 점점 고조됐다.
그러나 1876년 운요호 사건 때 이양선으로 일본이 무력 시위를 하자 조선 조정은 격론 끝에 문호를 제한적으로 개방하기로 했다. 당연히 일본과 통상은 텄다고 해도 조선 조정의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국론 역시 존왕양이의 외세 배척 여론은 더욱 강해졌고, 흥선대원군과 위정척사파는 이런 여론을 잘 이용했다. 이 때만 해도 우의정 박규수와 영의정 이유원 정도가 외세를 이용하자는 의견이었는데 실상 그마저도 동도서기론, 즉 "서양 문명은 기술 면에서 앞서 있을지는 모르나 동양의 정신 문화를 존중하고 배울 점이 있다"는 식의 이상론이었지 일본을 좋아한다는 커녕 최소한 일본에게 뭘 배운다거나 가까이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었다. 아예 안중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친일파는 이 때까지 제로.
그러다 1880년 대, 우의정 박규수의 제자들인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이 일본 책과 문물을 접하고 일본의 발전상을 흠모하게 된다. 물론 김옥균의 '일본은 동양의 영국을 자처하니, 우리는 프랑스 같은 문화 군사 강국을 이루자'는 언급을 볼 때, 일본과 동급으로 조선을 생각했지, 결코 부하가 된다는 생각은 그들 역시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당시 청나라의 도움으로 임오군란 당시 전권을 잡은 대원군을 숙청하고 정권을 잡은 명성황후와 민씨들이 청나라식 근대화, 양무운동을 개화 모델로 삼고 국정을 장악하면서, 상대적으로 일본식 급진 개혁을 바랐던 김옥균의 개화당은 친일파란 누명을 쓰고 권좌에서 밀려났다.
서양에 쓰러지기 직전인 청나라 모델로는 미래가 없다는 건 확실했던 개화파는 초조했다. 1884년 우리 나라 최초의 우체국인 우정국 완공 축하연에 난을 일으켰다. 고종의 신병도 확보하고 서울 요지를 선점한 그들의 난은 성공하는 듯 했으나 압록강 근처에 주둔했던 청나라 군대가 삽시간에 반격을 가하면서 실패한다. 갑신정변이다. 역적이 된 개화파는 일본으로 탈출했고, 조선에 일본식 개혁을 말하는 사람은 없어졌다. 친일파가 처음 매국노의 멍에를 쓴 건 한일 강제 합병이 아닌 이 때가 최초다.
그러다 일본이 1894년 청일전쟁에,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한일 합병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그 전만 해도 친일 세력을 발본 색원할 것같이 굴었던 수구파(개화당을 제외한 민씨 쪽 친청파 + 이완용)들은 얼굴을 싹 바꿨다. 1905년 외교권을 뺏긴 을사늑약을 시작으로 정미 7조약 등등 대한제국을 해체할 치명적인 조약들마다 수구파들은 누구보다 일본을 위해 열심히 일했으며, 이완용, 송병준 등 매국노들은 각기 무리를 짓고 친일 충성 경쟁을 벌일 정도였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났지만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맨 앞에서 길 안내를 맡은 것은 친일파들이 심어놓은 헌병 보조원, 즉 조선인
그 후로도 일본 제국이 35년 간 한반도를 강점하면서 제국주의의 양상도 같은 듯 같지 않게 계속 변모했는데, 친일파들의 친일 부역 행위 역시 변모해 갔다. 조선이 점점 제국주의 일본에 동화되고 식민 지배의 정도도 깊어지고 점차 더 많은 조선인들이 시스템에 편입되면서, 일부 권세를 가진 집안들이 저질렀던 친일 부역 행위 역시 그 범위를 넓히고 곳곳에 스며들었다. 이런 시대를 시각적으로 리얼하게 잘 그려낸 작품이 옛 MBC의 불멸의 명작 여명의 눈동자. 친일파의 출신 성분은 조선 귀족들에서 점차 일반 서민 출신들까지 범위가 확대된다.
4. 주의할 점[편집]
그냥 일본 문화를 좋아하면서 우리 문화도 아끼는 사람들이 욕먹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 극우 컨텐츠를 옹호하거나 우리 것을 망가트리며 비웃는 식으로 윤리적 공분을 불러와서 비난을 받을 뿐이다. 실제로 초밥 좋아한다고 욕한다면 도리어 욕한 사람이 욕 먹는게 현실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문화에 대한 선호와 일본의 죄악에 대한 맹목적 묵인은 구분하고 있다 말할 수 있겠다.[7]
애초에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어릴 때 보고 자란 문화 매체는 자유로운 문화 교류가 허용되기 이전까지도 제대로 번안이 안 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것에 영향을 받아서 선호도가 높아진 것도 있다. 어떻게 보면 아직까지도 지나치게 영향력이 남아있는 것같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만 이야기 할 수는 없는 문제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뜻으로 쓰이고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의 의미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친한파의 단어 쓰임과 완전히 반대된다.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친일파보다 오타쿠로 불린다. 그냥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어도 한일관계가 악화된 시기에는 왠지 모르게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오해받는 일이 다반사. 상대국과 사이가 안 좋은 시기에 눈치 없이 상대국 문화를 대놓고 즐기면 적대적으로 보이는게 사실이다. 실제 사례로 미국 뉴욕의 '러시안 티 룸'은 100년 가까이 사교의 장으로 손님들을 받았고 현재 소유주가 러시아인도 아니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반러감정이 확산되어 이용이 매우 감소하였다. # 사실 이 때문에 친미파나 친러파 같은 친◯파도 어감이 안 좋아졌다. 그런데 반대로 친한파는 어감이 더 좋아졌다. 보통 지일파(知日派) 등 지◯파로 대체하는 듯하다.
그런데 지◯파와 친◯파는 사실 다른 의미로, 후자와는 달리 전자는 대상국에 관심을 갖고 잘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지한파는 한국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감정적이거나 무리한 주장을 하지 않을 뿐, 한국에 반드시 우호적이라거나 적대적일 이유는 없다. 예컨대 일제강점기에 극일(克日)을 외치며 일본으로 유학했던 독립운동가들은 지일파이지만 친일파는 당연히 아니며, 반대로 조선을 반드시 정복해야겠다는 의지를 갖고 조선에 대해 공부했던 옛 일본의 정한론자들은 지한파이지만 친한파는 아니다. 실제로 산케이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 편집장은 지한파를 자칭하면서도 "한국은 일본에 재정복 당해야 잘사는 나라가 된다" 따위의 혐한에 가까운 망언을 내뱉기도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디시인사이드 등)에 친일 세력이 광복 후 한민당이라는 전라도 대지주가 이끄는 보수정당으로 거듭났다는 주장이 있으나[예시] 전라도 혐오감정에 기반한 썰일 뿐 사실이 아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우리역사넷의 관련 설명을 보자.
미군의 상륙을 앞두고 동년 9월 6일 건준이 朝鮮人民共和國(이하 인공)으로 개편되자, 송진우는 9월 7일 ‘國民大會準備會’를 결성하였다.≪동아일보≫사옥에서 결성된 국민대회준비회에는 송진우(위원장), 김성수, 徐相日(부위원장), 元世勳(부위원장), 金俊淵(총무부), 張澤相(외교부), 薛義植(정보부), 尹致暎(경호부) 등이 참여하였다. 국민대회준비회는 重慶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였으며, 이 조직이 모체가 되어 미군이 진주한 직후인 9월 16일 韓國民主黨(이하 한민당)을 결성하였다.
한민당 창당대회는 천도교 기념관에서 1,600여 명의 발기인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창당대회에서 300명의 중앙집행위원을 선출하고 이승만·徐載弼·김구·李始榮·文昌範·權東鎭·吳世昌 등 7인을 당의 영수로 추대하였다. 송진우가 당의 수석총무로 선출되어 당수 격으로 당을 대표하였으며, 지역 안배에 따라 원세훈·白寬洙·서상일·金度演·許政·趙炳玉·白南薰·金東元이 총무에 선출되었다.
초기 한민당은 ‘지주·자본가 및 친일파’들의 정당이라는 좌익 정치세력의 비난과는 달리 다양한 정치세력이 참여하였다. 연해주·상해·북경 등에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복역한 이후 국내에서 활동했던 원세훈은 1945년 8월 18일 高麗民主黨을 결성하였으며, 한민당에 참여하였다. 식민지시기 유명한 항일변호사였던 金炳魯와 李仁 등도 초기에는 건준에 참여한 安在鴻과의 합작을 추진하였지만, 건준의 조직개편으로 안재홍이 건준에서 탈퇴하자, 백관수·조병옥·金若水 등과 함께 한민당에 참여하였다. 식민지시기 친일을 하지 않았던 국내의 우익인사들이 8·15 직후 한민당에 모두 참여하게 된 데에는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이념적 동질성과 함께 민족통일전선을 표방한 건준이 인공으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좌익세력들에 의해 독선적으로 운영되었다는 점이 중요한 이유로 작용하였다.
8·15 직후 한민당에 참여했던 주요 세력과 인물은 다음과 같다.
한국국민당:張德秀·허정·백남훈·윤치영·尹潽善 조선민족당:원세훈·김병로·백관수·조병옥·咸尙勳·김약수·이인 국민대회준비회:송진우·김성수·서상일·김준연·장택상·설의식
한국민주당, 우리역사넷#
한국민주당은 소위 '친일 전라도 대지주'로 이루어진 정당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자료에서 한민당의 주요 인물로 거론된 사람의 출신과 일제강점기 당시 활동은 다음과 같다:[장덕수][허정][백남훈][윤치영][윤보선][원세훈][김병로][백관수][조병옥][함상훈][김약수][이인][송진우][김성수][서상일][김준연][장택상][설의식]
이 인물들의 출신 지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황해도 3, 전라도 5, 경상도 5, 한성 1, 함경도 2, 충청도 2. 보면 전라도 출신만 모인게 아니라 한반도의 각 지역 출신이 총망라되었다. 게다가 대부분 독립운동가에 가깝거나[8] , 독립운동가는 아니더라도 소위 '유휴분자'에 가까웠다. 친일파로 변절한 사람들도 혹심한 고문을 견디다 못해 변절하여 적극적으로 친일을 한 사람은 거의 없다.
5. 이들이 좋아하는 대상[편집]
일본의 문화 거의 대부분
- 가부키
- 게이샤
- 기모노
- 닌자
- 도검제일주의
- 사무라이
- 스모
- 신토
- 일본 영화
- 일본 음악
- 일본 애니메이션
- 일본 자동차
- 요괴
- 일식
- 카케고에[9]
- 하이쿠
- 제로센 일뽕 밀덕의 경우에는 제로센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 야마토급 전함 제로센과 같이 일뽕 밀덕이 같이 빤다.
6. 웹 사이트[편집]
- 4chan: 일부 페이지들(예: /tv/, /pol/, /his/, /df/, /bol/, /hiz/)은 weeaboo들을 혐오한다.
- 9GAG
- 일뽕닷컴
- 일간베스트 저장소
- 디시인사이드: 주로 국내야구 갤러리, 역사 갤러리,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마이너 갤러리 같은 친일 성향 갤러리의 유저들
- 에펨코리아: 주로 베스트 댓글을 통한 친일/일뽕 여론몰이가 상당히 자주 있고, 그게 잘 먹히는 편이다.[10] 2019년 일본 불매운동 이후로 반일은 무지성이고 어리석은 짓이며, 그런 반일을 비판하는 본인은 깨어있다고 믿는 경향이 베스트 댓글들을 위주로 사이트 전반에 퍼져서 분위기나 성향이 친일/일뽕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11] 2020년대 들어 친일 성향이 더 강해져서 일본 관련 긍정적인 게시물들이 더 늘어, 추천을 많이 받은 일본 관련 게시물이 하루에 15~20개 정도 올라오는 편이다.[12] 디시인사이드처럼 자국 혐오 + 친일 성향의 글과 댓글도 많은데, 베스트 댓글 시스템이 있는 에펨코리아의 특성상 주로 '자국 혐오 (게시글)' -> '일본과 비교 (게시글 or 베스트 댓글)' -> '일본 찬양 (베스트 댓글)'과 같은 패턴으로 나타난다.[13]
- 루리웹
- 나무위키: 나무위키의 전신인 리그베다 위키때부터 오타쿠 사이트로 시작했다보니 극성친일, 일뽕문제에 대해서 자유롭지 않다. 오타쿠들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에 친화적인 유저들이 많아지면서, 문서 서술이나 토론에 있어서 일본에 사대주의적인 자세로 서술하거나, 한국과 일본과 관련된 서술에서 일본의 편을 들면서 한국을 비하하는 등, 서술에 있어서 분쟁의 소지를 많이 일으키는 편이다.
다만 위의 사이트들 중 국내 사이트들의 경우, 몇몇 네이버의 블로그와 카페, 디시인사이드, 나무위키나 에펨코리아 같은 거대 웹사이트에는 친일, 일뽕 유저들이 꽤 많이 있지만 이들 웹사이트는 국내 최대 규모의 웹사이트들이고 유저수가 워낙 많다 보니 스펙트럼도 다양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친일 사이트라 부르기엔 무리가 있다.[14] 당장 나무위키만 하더라도 친일 유저가 글을 써놓은 것을 롤백하거나 토론을 거는 등, 수정전쟁이 많이 일어난다. 반윤석열 성향인 에펨코리아 '정치/시사 게시판'의 경우는 정진석 발언에 대한 식민사관 논란 이후부터 친일파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루리웹의 경우엔 다수 주제가 일본 서브컬쳐와 연관되어 있어서 자연스레 친일 성향의 유저들이 종종 보인다.
7. 관련 자료[편집]
8. 해당 인물[편집]
이하 리스트에서는 일본인이 아닌 사람 중 친일파에 대해서만 적도록 하며, 예외적으로 서양인 중 친일파의 경우는 와패니즈 문서로. 참고로 지나친 일본 추종자(일빠)가 아닌 건전한 수준으로 일본에 우호적인 인물의 경우라면 친일 문서에 기재한다.
- 구지원 - 한국 국적의 럭비 선수. 일본에서 열린 2019 럭비 월드컵에도 일본 대표로 출전하였는데 기미가요까지 따라불렀다. 어렸을때 일본으로 이주했는데 국적만 한국이지 일본인이나 다름 없는듯. 아버지도 럭비 선수 출신.
- 강한나 - 1981년생, 호리프로 소속. 한국 연예인 100명 중 99명이 성형을 한다고 망언을 했다. # 1989년생 배우 강한나와는 다른 인물이니 혼동 주의.
- 국경인 - 친일파라기 보다는 반역자이다. 함경도 회령부 아전으로, 임진왜란 때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켜, 피난와 있던 왕자 임해군 이진, 순화군 이보를 포박해 일본의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겨주었다. 이후 유생 신세준, 오윤적 등에게 참살당했다. 다만 애초에 봉기 이유가 임해군이 너무 개막장짓을 벌여서였다. 결국 임해군의 막장 행각이 그를 매국노로 만들어버린 셈. 일종의 프래깅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순왜 - 임진왜란 당시 일본 침략군에 협력한 자들. 하지만 당시 조선이 워낙 막장이었던 데다 생존을 위해 강요당한 부역들이 많아 국경인 등 일부 악질들을 빼곤 처벌이 가벼웠다고 한다.
- 고 젠카(오선화) : 친일파라기 보다는 반역자이다. 한국 출신이지만 일본에 가서 한국에 저주를 퍼붓는 현대판 매국노. 현재는 일본인이 된 상황.
- 이정호
- 이등휘
- 지만원
- 주옥순 - 엄마부대 대표(친일 극우)
- 이영훈 :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친일 극우)
- 윤서인 : 자신이 친일파라고 자처하며 일본 극우 성향을 띤다.
역대 대통령중 최악이자 최초의 친일파이다
- 황교익 : 이 사람은 역대급 한국 음식에 망언을 한 악질 친일파로 봐도 무방하다. (떡볶이, 치킨 등 비하) 이후 위 인물들처럼 일본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일뽕 성향이기도 한다. 정작 정치적으로는 놀랍게도 친민주당 성향으로 알려졌다.
- 류석춘 ; 일제강점기 옹호 및 독립운동가 폄하(친일 극우, 뉴라이트)
- 이우연 :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친일 극우)
- 김병헌 :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대표(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친일 극우)
- 변희재 : 미디어워치 대표(친일 극우)
- WWUK
- 한승조 : 본명은 한기식, 전 고려대 명예교수이며 2017년 7월 돌연사
- 브베 : 기미가요 옹호로 인하여 논란 생김
- 문창극 :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총리 후보자.
- 박보균 : 윤석열 정부 첫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중앙일보 기자로 근무하던 2014년 일본은 아시아를 지배한 경험이 있기에 일본인들은 시민 의식이 질서있는 반면에 한국인들은 성질이 급하고 호들갑이 많다는 친일적인 칼럼을 기재한 것이 논란이 되었으며 동년에 문창극의 친일 망언에도 애국심이 뚜렷한 분이라고 옹호 또한 논란이 되었다.
9. 관련 작품[편집]
- 007 두번 산다
- 고스트 독
- 레고 닌자고
- 닌자 거북이
- 닌자 어새신
- 라스트 사무라이
- 로보캅 3
- 리틀 도쿄
- 매직 더 개더링 Kamigawa 블럭
- 블레이드 러너
- 블랙 레인
- 부도칸
- 분노의 질주 3
- 사무라이 잭
- 쉐도우 워리어(2번 항목)
- 스타워즈
- 아메리칸 닌자
- 야구격투 리그맨
- 킬빌
- 크라잉 프리맨
- 태양의 제국
- 퍼니셔 (1989)
- 하이랜더 : 도검제일주의가 작품 전반에 나오고 작중 숀 코너리는 일본 여인과 결혼해 그녀의 아버지 즉, 장인 어른이 자신의 검을 만들어 줬단 설정으로 나온다.
10. 캐릭터[편집]
- 가부키맨 : C급 키치영화 전문 트로마 영화사 대표 히어로 중 한 명 혹은 동명의 영화.
- 갈포드(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
- 기스 하워드(아랑전설 시리즈)
-
남작(마스터 루의 수수께끼): 95년 어드벤처 게임으로 꽤 어려운 퍼즐 및 길찾기로 그다지 인기를 얻지못했지만 어드벤처 매니아에겐 호평받던 게임, '남작'이란 등장 인물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 항목에 가깝다. - 드리프트(3번 항목)(트랜스포머)
- 로베르토 맥과이어(크레용 신짱)
- 로 왕(쉐도우 워리어)
- 로저 사스케(식신의 성)
-
그라함 에이커미스터 무사도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 - 베베(페르소나 3)
- 브루클린 럭필드(슈퍼로봇대전)
- 섀도우 팔콘(블랙 라군)
- 소돔(파이널 파이트,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 쇼군 미후네(용자특급 마이트가인)
- 앤디 폰 데 오니아테(카우보이 비밥)
- 어스퀘이크(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
- 이반 카레린 (TIGER & BUNNY)
- 재규어(네오 콘트라)
- 제레미 와트(아이실드 21)
- 젠가 존볼트(슈퍼로봇대전)
- 치프 자너프(길티기어 시리즈)
- 크리스틴 갤런드(슈퍼 리얼 마작)
- 텐카 히닝콸드(특영반)
- 패트리시아 마틴(러키☆스타)
- 호머 카타기리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
- 휴즈 가우리(오버맨 킹게이너)